라쇼몽 감상문
- 최초 등록일
- 2020.07.23
- 최종 저작일
- 20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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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라쇼몽은 일본에서도 유명한 명작중에 하나이다. 라쇼몽을 제작한 감독은 구로사와 아키라 라는 감독이다. 라쇼몽이라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전에 감독인 구로사와 아키라에 대해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구로사와 아키라의 일대기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구로사와 아키라는 1910년일본 도쿄근교에서 태어났다. 본래는 화가를 지망하여 한때 화가로서 활동하기도 했으나,26세에 화가 생활을 접고 오늘날 토호(東宝) 영화사의 전신인 P.C.L 영화제작소에 입사하여 야마모토 가지로 감독 밑에서 조감독으로 영화감독의 경력을 시작했다. 1943년 흑백영화 스가타 산시로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하여 그 특유의 영상 표현력이 높은 평가를 받으며 흥행에도 성공. 이후 주로 인간적인 휴머니즘을 다룬 《가장 아름다운 자》(1944년), 《우리 청춘 후회 없다》(1946년) 등을 제작하며 토호의 간판 감독으로서 활약했다. 그러나 토호가 공산당계열의 노조로 인해 혼란한 상태가 되자 토호를 퇴사하고 나루세 미키오 등과 함께 '영화예술협회'를 설립, 다이에와 함께 1950년에 만든 영화 《라쇼몽》이 1951년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를 수상하며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을 일약 세계적인 감독으로 급부상했다.
이무렵 할리우드에서 감독직 제안이 들어오자 구로사와는 미련없이 미국으로 건너가 《폭주 기관차》의 감독을 맡아 작품 제작에 들어갔다. 그러나 원래 각본을 맘에 들어하지 않은 구로사와가 각본을 뜯어고친 데다가 흑백 35mm 촬영을 원한 미국 프로듀서와 컬러 65mm 촬영을 원한 구로사와와의 갈등으로 결국 영화제작이 무산 1968년에는 미일 합작으로 진주만 폭격을 다룬 영화 《도라 도라 도라》의 총감독을 맡았지만 미국측 제작사인 20세기 폭스사, 일본 측 제작사인 토에이 영화사와 촬영 일정 등의 문제로 대립했고 결국 감독에서 강판되고 말았다.이때의 정신적 타격에다 다른 여러가지 문제들이 겹쳐 1970년에 자살미수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참고 자료
카카오 티비 https://tv.kakao.com/channel/3177811/cliplink/391938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