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조선후기 실학자들의 삼한인식"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삼한의 인식에 대한 시대적 변화
1. 고려시대~조선전기(18세기 이전)
2. 조선후기 (18~19세기)
Ⅲ. 결 론
참고 문헌
본문내용
조선 실학자들의 삼한 인식 연구는 다양한 관점에서 이루어져 왔다. 다만 근대 민족국가 형성 과정이나 조건이 단일하지 않기 때문에, 그 기원이나 원천을 근대 이전의 역사에서부터 발견하고 도출하려는 시도 역시 꽤 긴 학문적 계보를 지니고 있다. 즉 ‘문화적인 요소’에 기반 한 특정한 공동체인 ‘민족(Volk)’을 상정하고, 그 기반 위에서 민족적 정체성을 찾는 방법은 세계적으로 관심의 중심에 두고 있는 역사 탐구 방법론 중에 하나였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경우는 제국으로부터 빼앗긴 정치적 공동체를 되찾으려는 독립운동의 과정 속에서 근대 민족국가가 탄생한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기존의 유형으로 이해될 수는 없겠으나, 다만 문화적 요소의 ‘고유성’ 발굴에 몰두하는 경향을 드러냈다. 이러한 방향성은 조선왕조 성립기에 그 국호에 있어서 민족적인 의도를 담아내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정통 한국이라고 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한국 민족의 역사는 근대적인 것이며 그리하여 '아방'이라 칭한다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朝鮮’의 국호에 단군의 개국과 기자의 도덕성을 계승한 15세기의 민족 지향적, 도덕정치 지향적 역사의식이 반영되었다고 보는 조선시대의 계승인식에 대해서는 역사적 조건의 필요에 따라 재구성되는 의식의 흐름적인 측면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실로 ‘주체적’인 역사계승인식을 가지고 역사를 고증하고 실증하였으며, 이것이 근대 민족주의라는 목표를 향해 발전하고 있던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혹은 그렇다 하더라도 종묘사직의, 나아가 중화를 이어받은 소중화의 뿌리 깊은 의식이 어느 순간에 변화의 계통을 향하여 걷게 된 것일까? 이러한 의문점을 본고에서 크게 다루지는 않겠으나 일말 염두에 두고 진행하고자 한다. 종래 삼한의 위치와 역사상, 인식의 변천 등에 대한 검토가 꾸준히 이루어지면서, 실학자들의 삼한인식이 갖는 사학사적 의미가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참고 자료
김정배 편저, 2010, 『한국고대사입문』(1)
韓永愚, 1989, 「18세기 후반 南人 安鼎福의 思想과 『東史綱目』」, 『朝鮮後期史學史硏究』, 一志社
배우성, 2000, 「朝鮮後期 實學者들의 國土觀과 地域認識」, 『한국사연구』 108, 한국사연구회, 2006, 「조선후기 이역(異域)의 인식」, 『조선시대사학보』 36, 조선시대사학회
金文植, 2003, 「星湖 李瀷의 箕子 인식」, 『退溪學과 韓國文化』 33, 경북대학교 퇴계학연구소
문창로, 2011,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삼한 연구-연구 추이와 특징을 중심으로」,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학회 , 2014, 「星湖 李瀷(1681~1763)의 삼한 인식」, 『한국고대사연구』 74, 한국고대사학회
허태용, 2015, 「전근대 동국의식의 역사적 성격 재검토」, 『역사비평』, 역사비평사
박대재, 2017, 「삼한시기 논쟁의 맥락과 접점」,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