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비단의 기원
2. 중화사상과 비단
3. 실크로드의 탄생
4. 유목민과 비단
5. Pax Serica(비단의 평화)
6. 비단의 해외 무역과 갈등
Ⅲ. 비단 : 세계 역사를 한 획을 그은 발명품
참고자료
본문내용
Ⅰ. 서론
중국의 영어 명칭인 China의 어원에 대한 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흥미로운 것은 China가 ‘비단’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실제로 중국에 대한 직접적인 교류가 활성화되는 한 대 이전까지 중국에 대한 정보는 ‘비단을 생산하는 국가’라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기원전 1세기경부터 그리스, 로마인들은 중국인들을 ‘세레스’(Seres)라고 불렀으며, 나라 이름으로서의 중국은 ‘세리카’(Serica)라고 하였다. 이러한 명칭은 비단을 의미하는 ‘세르’(ser)나 ‘세리쿰’(sericum)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비단의 교역은 서역에 중국에 대한 정보를 퍼질 수 있게 하는 매개체였다. 게다가 비단은 이러한 교역이라는 경제적 측면 외에도 상당한 정치적, 문화적 파급력을 가진 존재였다. 높은 가격을 지닌 비단은 전 세계에서 화폐처럼 사용되기도 했고, 비단으로 제작한 의복은 유교정치를 뒷받침하기도 했다. 본 보고서에서는 비단의 발명 이후 비단이 세계사적으로 주는 영향력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여 비단의 파급력과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Ⅱ. 본론
1. 비단의 기원
중국의 산서(山西) 지역은 비옥한 황토 토양을 근간으로 한 고대 농업의 중심지였다. 특히 산서 동북에 위치한 대동(大同) 지역에 흐르는 상간하(桑乾河) 유역에는 뽕나무가 대량으로 자생하고 있었다. 1926년 발굴된 산서성 하현(夏縣) 서음촌(西陰村)의 신석기 유적에서는 인공적으로 쪼개서 실을 뽑아낸 것으로 보이는 반쪽 고치껍질과 돌로 만든 물레가 발견되었다. 발굴된 고치 껍질이 누에고치가 아니라는 논란이 있었지만, 양잠이 고도로 발달한 상, 주 시기보다 앞선 앙소문화(仰韶文化)기에 이미 잠업이 발생했다는 주장도 있다.
상(商) 대에는 옥으로 만든 누에와 누에고치 문양이 제작되었고, 桑(뽕나무), 蠶(누에), 絲(실), 帛(비단 천), 巾(비단으로 만든 머리쓰개) 등 방직과 관련된 문자가 갑골문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참고 자료
강판권, 『중국을 낳은 뽕나무』, 글항아리, 2009
김영종, 『실크로드, 길 위의 역사와 사람들』, 사계절, 2004
정은주, 박미란, 백금희, 『비단길에서 만난 세계사』, 창비, 2005
김택민, 「당대(唐代) 전기(前期)의 성세(盛世)와 비단〔絹帛〕(Pax Serica)」, 중국학보 60권, 한국중국학회, 2009
박기수, 「淸代 廣東 廣州府의 經濟作物 栽培와 農村市場의 發展」, 명청사연구 30집, 명청사학회, 2008
최재수, 「고대중국의 해상활동과 해상실크로드」, 한국해운학회지 20호, 한국해운학회, 1996
실크로드 사전(http://terms.naver.com/list.nhn?cid=55573&categoryId=555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