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머리말
Ⅱ. 유득공의 생애와 역사서
(1) 유득공의 생애
(2) 유득공의『발해고』
Ⅲ. 유득공의 역사인식
Ⅳ. 한치윤․한진서의 생애와 역사서
(1) 한치윤․한진서의 생애
(2) 한치윤․한진서의『해동역사』
Ⅴ. 한치윤․한진서의 역사인식
Ⅵ.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조선후기의 역사학은 이전 시기의 전통적인 역사인식을 이어받으면서도 점차 경학인 성리학에서 독립하여 독자적인 학문영역으로 전문화되어가는 추세를 보임과 동시에 역사서술의 고증적 방법이 심화하고 역사주체를 넓혀가는 경향이 나타났다. 역사지리학, 금석학, 백과전서학 등에서의 학문적 발전은 역사학이 경학과 구분되는 고유한 영역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사상적 각성에서 온 전문적인 역사연구와 역사 재정리 및 전통의 재발견 시기였으며 역사연구에서 객관성과 자주성을 강조하였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포폄적인 역사이해에서 벗어나 사실의 고증과 관련된 연구를 시작하였다. 단군과 발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으며, 정통론과 함께 지리, 풍토, 문화 등의 여러 다른 변수들이 역사 파악의 기준으로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서술 체재에서는 중국사에서 이루어졌던 다양한 사체를 우리 나라에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상당히 정제된 모습을 보였다. 서술 형식에 있어서도 다른 자료를 단순히 뽑아서 수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장속에 체계화하고 그 내용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사찬의 역사편찬이 활발하였으며 이것은 학술운동이 국가적인 편찬사업에 의해 이루어지기보다 한 개인의 일생을 두고 연구하는 개인적인 저술활동이 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짐을 의미하고 있다.
조선후기에는 각기의 입장에 따라 과거를 되돌아보고 역사의 방향성을 모색하였다. 여기에서 새로운 역사의식과 역사학이 발달하게 되었는데, 그러한 노력을 보인 역사학자로는 李瀷(1681-1763:星湖僿說), 林象德(1683-1719:東史會綱), 安鼎福(1712-1791:東史綱目), 李種徽(1731-1786:東史), 李肯翊(1736-1806:燃藜室記述), 柳得恭(1749-1807:渤海考), 韓致奫(1765-1814:海東繹史), 洪奭周(1774-1842:東史世家)등이 있다.
본 글에서 이들 중 유득공과 한치윤을 중심으로 그들의 역사인식이 어떠하였는지 알아보고자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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