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음악] 남북한 음악비교
- 최초 등록일
- 2003.06.05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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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해방 당시의 남북한의 음악적 환경
북한음악의 전개
남한음악의 전개
북한 음악사회의 전통해석
북한음악의 한계
결론
본문내용
역사적으로 서울이 음악중심이었다는 사실에 비하면, 해방 후 북한은 50여년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왔다. 해방직후 북한음악계는 남한에 비하여 전문음악인 수 단체 교육기관 등의 음악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하였다. 1945년 해방직후 남한에는 국악원 구왕궁아악부 등의 전통 음악계와 조선음악가동맹 고려교향악협회등 양악계 등의 조직체가 있었다. 남한 전국의 전문음악인들을 거의 망라하여 1946년에 전문화 된 조직체들이 서울과 지방에 산재되어 있는데 비하여, 북한은 음악전문가를 비록하여 동호인 중심의 조직들이 각 지방별로 산재해 있다가 1946년에 가서야 전문가 중심의 음악단체들이 조직되었다. '북조선음악건설동맹'이 1946년 3월에 조직되었고, '중앙교향악단'이 1946년 7월에 조직되었다가 1947년 1월에 '국립교향악단'으로 재편되었으며, 1947년에 국립합창단, 북조선가극단등의 양악계와 조선고전악연구소와 같은 창액계 조직이 있었다.
교육기관에서도 남한에서는 1946년 2월에 경성음악하교가 설립되고 같은 해 8월에 국립서울대학교 예술대학 음악부로 흡수 발전하였으며, 지방에서도 경주예술대학원과 대구음악학원등을 비롯한 사설 연구소 등이 전국에 있었다. 반면 북한은 1949년 3월에 대학제에 의한 국립음악학교 창설을 결정하여 평양 및 각 도에 산재되어 있던 음악연구소들을 통합하여 평양음악전문학교를 창설하고 동시에 해주예술전과학교를 발전시킨 것이고, 1949년 국립음악학교가 1952년 11월에 해주의 학교와 통폐합하여 5년제의 평양음악대학으로 개편한 데 이어, 현제에는 35개의 전공학과가 있는 평양음악무용대학으로 발전하였다.
참고 자료
노동은 『북한 음악사회의 전통해석』 예술과 비평('89,6)
노동은 『남북 공연예술 교류 협력 방안』22차 예총정기 심포지엄
노동은 「북한의 민족음악」.『민족음악론』1994
『1986년도 조선음악연감』문예출판사, 1987
『해방후 조선음악』조선작곡가동맹 중앙위원회. 1955
『철학사전』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