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초지진 답사기
- 최초 등록일
- 2013.07.02
- 최종 저작일
- 2012.10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목차
Ⅰ. 들어가는 말 : 답사의 동기 및 배경
Ⅱ. 본론(역사적 개관 및 의의)
1. 역사의 섬, 강화도
2. 초지진(草芝鎭)
㈎ 유적 정보
㈏ 답사 소감
본문내용
Ⅰ. 들어가는 말 : 답사의 동기 및 배경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강화’라는 곳이 큰 역사적 의의를 지닌 곳으로 조명된 적은 그리 흔치 않았던 것 같다. 적어도 지금껏 배우는 학생의 입장에서, 학문적으로는 그랬었다. ‘강화’라는 섬 지역을 한반도의 ‘역사적 장소’로 재인식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떠올려보니 고려 무신정권기와 삼별초가 떠올랐고 강화로 활동근거를 이동한다는 역사적 사건을 암기했던 기억과 조선조에 있었던 두 번의 胡亂등 에 대한 이야기들이 어렴풋이 떠올랐을 뿐이었다. 게다가 예전에 강화도에서 배를 타고 석모도로 여행을 갔음에도 불구하고 무심히 지나쳤던
<중 략>
특히 운양호의 침공은 고종 13년(1876) 강압적인 강화도 수호조약5)의 체결을 가져옴으로써 일본침략의 문호가 본격적으로 개방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이 진에는 병마첨절제사 1인, 군관 11인, 군사 320인, 전선(戰船) 3척이 주둔했었다. 이 초지진은 모두 허물어져 돈대 터와 성의 기초만이 남았던 것을 1977년에 다시 옛 모습대로 복원했다. 돈대에는 3개소와 포좌와 함께 100여개의 총좌가 있는데 성 높이는 4m정도이고 장축이 100m정도 되는 타원형의 돈대이다. 돈대에는 조선말의 대포 1문이 포각 속에 전시되어 있고 노송과 성벽곳곳에 각종 포탄의 흔적이 남아 있어 그 때의 치열함을 말해 주는 듯하다
<중 략>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가 숨 쉬는 유적을 대함에 있어 마치 관광지 정도로 치부해버렸으니 외국인도 아닌 한민족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이 이러함에 분노(憤怒)를 금할 길이 없다. 민족의 얼과 넋은 아직도 저 거친 바다로부터 한반도를 지켜내고 있는 것만 같은데 역사적 유물과 유적지를 찾으면서도 그 의미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반성하게 되었고, 같은 피가 흐르고 있는 한 민족으로써 응당 지녀야 할 역사에 대한 태도나 관념에 대해 다시금 배우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살아있는 ‘역사의 섬’ 강화도의 답사기를 마치면서 “임익문”의 詩 『초지진을 나서며.』 로 맺음말을 갈음할까 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