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가] 한서 남궁억
- 최초 등록일
- 2002.12.20
- 최종 저작일
- 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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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한서 남궁억 선생님의 생애(1863~1939)
2. 한서 남궁억 선생님의 활동
3. 한서 남궁억 선생님의 사상
4. 맺은말
본문내용
1. 한서 남궁억 선생님의 생애(1863~1939)
한서(瀚西) 남궁억은 1863년 12월 27일 서울에서 꽤 부유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어려서 한학을 배웠고, 한말 외국어 학교를 졸업한 후 한.불(韓佛)조약이 맺어지고 여권이 회복되고, 노예제도가 폐지되고 남녀와 사민평등이 선포되던 1886년에 어전통역으로 등용되면서 관직에 입문하였다.
한서 남궁억은 정계(政界)에서 관리생활로 칠곡 부사, 내무부 토목국장, 성주 목사, 아양 군수를 역임 하였지만 매관매직에 관여하지 않고 첨렴한 국가 관리로 본분을 다했다. 관직을 내 놓을 때 그는 민간 뛰어들어 독립 협회로 황성신문(皇城新聞)으로, 교육월보로, 관동학회로 사회 계몽에 전념했다. 그는 민중의 문화의 향상을 위해 안일함을 뒤로하고 오히려 스스로 낮은 생활에 처하였다. 그는 독립협회일로 두 번에 걸쳐 두옥되고 황성신문 사장으로 있을 때에도 네 번의 투옥생활을 겪어야만 했으면 모진고문(拷問)을 받으면서도 끝끝내 자신의 양심을 지켜나갔다. 1933년 11월 4일에는 일본경찰국에 체포되어 서대문 감옥소에서 3년을 감금당하고 1939년 4월 5일 심한 옥고(獄苦)로 말미암아 중환에 누웠다가, 급기야 일흔 일곱을 일기로 조국의 독립을 못보는 비운을 마음에 담고 그의 찬란한 여생을 마감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