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의 발전 역사 그리고 나의 생각
- 최초 등록일
- 2010.12.25
- 최종 저작일
- 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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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기독교의 발전 역사 그리고 나의 생각을 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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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나는 유아세례를 받았고 가족모두가 기독교인이지만 한국기독교의 역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 생각해보면 아시아국가중 한국만큼 빨간 십자가가 불을 밝히고 있는 나라가 없는데말이다. 나는 한국기독교의 역사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겼고 그것을 시기별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가 기독교를 최초로 접한 것은 635년 당나라의 경교라는 설도 있으나 그것은 증거가 부족하고 사실 한국 땅에 처음으로 발디딘 기독교인은 1952년 임진왜란당시 왜군들이었다.이미 일본은 프란시스 사비에라는 예수회 선교사를 통해서 카톨릭이 전파된 상태였다. 임진왜란의 결과,, 5만명이상의 조선인포로가 일본에 끌려가서 7000명이 천주교인으로 개종하게된다.흔히 역사학에서 전쟁은 파괴의 신과 창조의 신을 동반한다고 하나, 우리역사의 치욕적인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을 접했다는 사실이 정말 아이러니하다고 느껴졌다.
게다가 이후,정묘호란과 병자호란에서 소현세자가 청에 잡혀가 아담샬이라는 예수회 신부와 교류를 하며 그들이 국내에 오지만 소현세자의 죽음으로 천주교 선교사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당시 한국에서는 왜란과 호란을 겪으며 조선 후기 사회는 개혁의 움직임이 발견되었고 18세기에 이르러 천주학이라고 불린 서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이수광은 천주실의를 소개했고 이 시기 대표인물은 이익, 정약용----권일신, 철신, 약종 약전, 이벽, 이승훈, 이가환 등
함석헌 선생은 당시 유교와 불교가 특권층과 결탁했지만, 기독교는 당시 정권에서 소외되었던 남인계열에게 받아들여졌으며, 시대 자체가 새로운 종교가 들어와 새 생명을 부여해줄 필요가 있는 상황이었다고 말한다.
이중 이승훈은 한국인 최초로 세례를 받고(1784) 이벽을 중심으로 강학회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후 1년도 못되어서 천주교는 자생적으로 신앙공동체를 형성하가며 신도수를 넓혀간다. 나는 여기서 의문이 들었다. 왜 이렇게 한국은 빠르게 기독교 세력이 형성되었을까? 중국 일본에 비해서 늦게 수용되었음에도 과연 무슨이유였고 특징이 있었을까의 의문말이다. 사실 중국은 발전된 문물을 받아들여 강대국이 되려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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