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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냉전이후 일본의 대아세안 영향력확대전략 (Japan's Strategy for Expansion of Its Influence on ASEAN since the End of the Cold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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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4.19 최종저작일 2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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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냉전이후 일본의 대아세안 영향력확대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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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동북아학회
    · 수록지 정보 : 한국동북아논총 / 13권 / 46호 / 111 ~ 126페이지
    · 저자명 : 강태훈

    초록

    본 논문에서는 탈냉전 이후 일본이 동남아에서 자국의 영향력 확대를 위하여 어떠한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탈냉전 이후 동남아에 대한 정치적 역할 확대가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는지, 또한 전후 일본의 대미기축외교를 고려할 때 미일관계를 손상하지 않으면서 동남아에 대한 일본의 외교가 어느 정도 독자성을 보이고 있는 지를 검토해 보았다.
    탈냉전 이후, 특히 후쿠다 독트린이 천명된 뒤, 일본의 대 동남아외교는 1970년대 중반까지의 경제실리 외교에만 전념했던 것과 비교할 때 경제대국에 걸맞은 정치적 역할을 추구하였다. 베트남전 이후 아세안과 베트남간의 교량역할을 추구하였으며 캄보디아 분쟁을 위한 독자안을 제시하여 파리평화협정체결의 기초를 마련하였고 UNTAC에 PKO를 파견하여 캄보디아 신정부 수립에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대미관계가 크게 악화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때때로 미국과 마찰을 빚어 가면서 독자적인 정책으로 영향력 확대를 노렸다. 예컨대, 후쿠다 독트린은 미국과의 사전 양해 없이 이루어졌으며 캄보디아 분쟁의 해결과정에 일본은 미국보다는 아세안의 정책을 지지하였다. APEC에서도 급속한 무역자유의 제도화를 바라는 미국과 이를 원하지 않는 아세안의 사이에서 아세안의 입장을 지지하였다. 아시아금융위기를 계기로 AMF의 창설을 주도하였지만 미국의 반대로 실패하였으나 신미와자와 구상, 첸 마이 이니시어티브를 통하여 아시아 국가들에 금융지원을 하였다. 중국은 아세안+3를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협력체로 재편하려고 시도하고 있으나 일본은 이를 견제하기 위하여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를 포함하는 동아시아 확대커뮤니티 구상으로 맞서고 있다.. 상기한 논의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탈냉전 이후 일본은 후쿠다 독트린의 선상에서 캄보디아분쟁의 해결을 위해 PKO에 참여하는 등 정치적 역할을 확대하였으며 또한 성공을 거두었다. 아시아 금융위기 때 위기에 처한 아시아 국가들에 신 미와자와 구상을 통해 금융지원을 하였으며 아세안+3에서 중국과 주도권 경쟁을 하여왔다. 1970년대부터 미국은 일본에게 자신을 보완하기 위하여 동남아에 대한 역할확대를 요구하고 있으나 자신의 이익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본의 정책은 허용하지 않았다. 미국의 반대로 EAEC와 AMF가 무산된 것이 좋은 예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아세안의 이익이 충돌할 때 기본적인 미일관계가 손상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본은 아세안을 지지하는 등 자신의 영향력 확대를 노렸다. 중국은 방대한 시장으로 일본은 금융자본으로 아세안+3에서 주도권을 잡으려고 상호경쟁 하고 있으나 이러한 패권다툼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 앞으로 일본의 동남아에 대한 영향력은 일본의 동남아에 대한 미국의 역할확대 요구, 동아시아지역주의에 대한 미국의 입장,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지역주의에 대한 미일의 견제, 중일에 대한 아세안의 입장 등에 달려있다 하겠다.

    영어초록

    After the Second World War, Japan pursued profit oriented economic policy toward Southeast Asian countries. This policy hightened anti-Japanese feelings in the Southeast Asian countries, causing furious anti-Japanese riots during Premier Tanaka's visit to Indonesia in 1974. The turning point of Japan's Southeast Asian policy was so called the Fukuda doctrine which was enunciated in 1977 when Premier Fukuda arrived Manila on his way back home from his trip to ASEAN countries. The main theme of the doctrine was to play political roles on the part of Japan in Southeast Asia in commensurate with her economic power. Although Fukuda announced that Japan was to play the role of bridge between ASEAN countries and Vietnam, Japan was not able to prevent Vietnam's invasion of Combodia in 1978. However, Japan played vital roles in the process of ending the conflict and establishing new Combodian government. Japan sometimes took autonomous policy from the U. S. to support ASEAN within not damaging basic U. S.-Japan relations. For example, the Fukuda doctrine was enunciated without prior consultation with the U. S. In APEC, Japan supported the ASEAN policy who did not want rapid institutionalization of free trade rather than the U. S.'s whose preference was to make free trade regime.
    The Asian financial crisis of 1997 provided Japan with opportunity to help Asian countries in crisis. Although Japan tried to establish AMF to ameliorate financially struggling countries, it was not materialized due to the U. S.'s opposition. However, Japan provided financial assistance to Asian countries in crisis through New Miyazawa plan and Chenmai Initiative. In ASEAN+3, the symbol of emerging East Asian regionalism, China and Japan struggled for leadership. In order to counter China's attempt to lead ASEAN +3, Japan proposed enlarged Asian community including Australia and New Zealand. The future of Japan's influence on the ASEAN countries will be dependent upon U. S.'s pressure on Japan to expand its political roles in Southeast Asia, U. S. position on East Asian regionalism, U. S. and Japan's checks on China centered regionalism, and ASEAN's policies toward China and Japan.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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