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기의 『고려열전』 서평: 고려 시대 인식과 개인의 역사적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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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기의 <고려열전> 서평_고려 시대 인식과 고려열전에서의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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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1
문서 내 토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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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열전(列傳)의 역사서술 방식과 의의열전은 사마천의 『사기』에서 비롯된 기전체 역사서술 방식으로, 임금을 제외한 여러 인물의 전기를 기록한다. 사마천은 시대 변화를 주도하거나 올바른 길로 인도한 개인을 널리 알리고 교훈으로 삼기 위해 열전을 저술했다. 박종기는 기존의 『고려사』 열전과 달리 개인의 삶과 의식을 중심으로 고려 시대의 다양성, 개방성, 역동성을 파악하고자 『고려열전』을 집필했다. 이는 개인을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변화의 주체로 보고, 개인의 삶을 통해 사회 현상을 파악할 수 있다는 신념에 기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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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려의 다원 사회적 특성과 왕조 중심 사관의 극복박종기는 한국사에서 개별 왕조의 장기 지속이 특징이며, 이것이 왕조 중심의 사관을 낳았다고 설명한다. 고려가 '베일에 싸인 왕조', '잊혀진 왕조'로 지칭되는 이유는 물리적 접근 불가능, 1차 자료 부재, 근대역사학의 발전 방향성 때문이다. 특히 신채호의 자주-사대 논리로 고려 시대가 정형화되었으나, 저자는 21세기에 맞춰 고려의 다원 사회적 면모를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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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견훤과 궁예의 재해석: 영웅과 이상주의자기존 역사서술에서 견훤과 궁예는 폭정을 일삼는 무뢰배로 묘사되었으나, 박종기는 이를 재조명한다. 견훤은 통일신라 말기의 정치 문란과 민심 이반에 대한 대안으로 발병한 '통합전쟁의 이슈를 선점한 영웅'이며, 궁예는 고려-마진-태봉으로의 국호 변화를 통해 삼한통일을 넘어 이상 국가를 건설하고자 한 '새 시대를 갈망한 이상주의자'로 평가된다. 이는 도덕성이 아닌 시대의 흐름으로 인물을 평가해야 한다는 성호 이익의 주장과 맥락을 같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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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최영의 죽음과 고려 다원 외교질서의 종말최영은 고려 말 명장으로 왜구 침입을 막고 국가 위기를 극복했으나, 이성계 무리는 '요동 정벌' 명목으로 그를 처형했다. 이는 공죄론(功罪論)에 기반한 것으로, 사대 명분질서를 내세운 것이다. 그러나 당시 고려의 외교 질서는 사대 명분질서가 아닌 다원적 외교 질서였으며, 500년에 걸쳐 형성된 자주적 외교 전통이었다. 최영의 죽음은 고려 특유의 다원적 천하관과 자주적 외교 질서가 종말을 맞이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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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김부식과 신채호의 역사관 대립: 사대의 재해석김부식은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유교 이념을 기준으로 삼았으나, 이는 사대주의가 아니라 선진 문물 습득의 수단으로서의 사대였다. 그에게 사대는 지배와 종속이 아닌 호혜적 상호보완 관계였다. 반면 신채호는 20세기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시대 상황에서 고려의 사대를 지배와 종속으로 평가했다. 박종기는 역사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지금'의 시각이 아닌 '당시'의 관점에서 봐야 함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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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제1 열전(列傳)의 역사서술 방식과 의의열전은 개인의 삶과 행적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으로, 왕조 중심의 기년체 역사서술을 보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개별 인물의 구체적인 활동과 성격, 업적을 통해 시대상을 생생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 이해의 폭을 넓혀줍니다. 특히 주류 권력층뿐 아니라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을 포함함으로써 역사의 다층성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다만 개인의 도덕성 평가가 과도하게 반영되거나 편향된 관점이 개입될 수 있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열전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역사가의 가치관과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서술 방식이므로, 비판적 읽기와 함께 다른 사료와의 비교검토가 필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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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제2 고려의 다원 사회적 특성과 왕조 중심 사관의 극복고려 사회는 귀족, 신진 양반, 상인, 노비 등 다양한 계층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다원적 구조였습니다. 기존의 왕조 중심 사관은 왕과 중앙 권력의 활동만을 강조하여 이러한 다양성을 간과해왔습니다. 고려 사회의 진정한 이해를 위해서는 각 계층의 이해관계, 문화적 특성, 경제활동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특히 귀족 정치의 변화, 무신 정권의 등장, 신진 양반의 성장 등은 왕조 중심 사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입니다. 다원적 관점의 도입은 고려 역사를 더욱 입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이해하는 데 기여하며, 이는 한국 역사학의 성숙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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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제3 견훤과 궁예의 재해석: 영웅과 이상주의자견훤과 궁예는 전통적으로 후삼국 시대의 반란자나 패배자로 평가되어 왔으나, 재해석의 관점에서 보면 각각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견훤은 신라의 중앙 집권에 저항하며 지역 기반의 독립적 정치체를 구축하려 한 지역 지도자로, 궁예는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새로운 이상사회를 추구한 이상주의자로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활동은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당시 사회의 다양한 가능성과 갈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다만 이들의 긍정적 재해석도 역사적 맥락과 증거에 기반해야 하며, 과도한 낭만화는 피해야 합니다. 이러한 재해석은 역사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승자 중심의 역사관을 극복하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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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주제4 최영의 죽음과 고려 다원 외교질서의 종말최영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고려 시대 다원적 외교질서의 종말을 상징합니다. 최영은 원, 명 사이의 변화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고려의 독립성을 지키려 노력했던 인물로, 그의 죽음은 이러한 노력의 좌절을 의미합니다. 고려 말 국제 정세의 급변 속에서 다양한 외교 선택지가 축소되고 명에 대한 일방적 사대로 수렴되는 과정에서 최영 같은 인물의 활동 공간은 점점 좁혀졌습니다. 이는 고려가 보유했던 외교적 자율성과 다원성이 상실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최영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국제 정세의 변화가 개별 국가의 정치 구조와 인물의 운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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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주제5 김부식과 신채호의 역사관 대립: 사대의 재해석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중국 중심의 보편적 역사 질서 속에서 한반도 역사를 위치시키는 사대적 관점을 보여주며,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는 한민족의 독립적 주체성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적 관점을 제시합니다. 전통적으로 신채호의 관점이 진보적으로 평가되어 왔으나, 김부식의 사대도 단순한 굴종이 아니라 당시의 국제 질서 속에서 고려의 생존과 번영을 추구하는 현실적 선택이었을 수 있습니다. 사대의 재해석은 이를 도덕적 우월성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역사관의 대립은 한국 역사학에서 객관성과 주체성, 보편성과 특수성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