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는 조너선 스위프트가 18세기에 발표한 풍자 소설로, 주인공인 레뮤얼 걸리버가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겪는 기이하고 환상적인 체험을 통해, 당대의 영국 사회와 인간 본성 전반을 풍자한 작품이다. 첫 번째 여행에서 걸리버는 배가 난파되어 소인국 릴리퍼트에 표류하게 된다. 릴리퍼트 사람들은 키가 손가락만 한 작은 존재들이지만, 그들 역시 현실 세계의 인간과 다름없는 정치적인 권력 싸움과 허영심, 음모에 사로잡혀 있다. 걸리버는 거대한 존재로서 이 나라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지만, 결국 정치적 계략에 휘말려 탈출하게 된다. 두 번째 여행지 브롭딩낵은 릴리퍼트와 정반대인 거인국이다.
『걸리버 여행기』는 18세기 영국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가 집필한 풍자 소설로, 1726년에 처음 출간되었다. 작품은 의사이자 선박 의무관인 렘뷸 걸리버가 네 차례에 걸쳐 기이한 세계를 여행하며 겪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모험담은 겉으로는 흥미로운 판타지 여행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당시 영국 사회와 인간 본성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풍자를 담고 있다. 스위프트는 여행이라는 외형적 틀 안에 사회, 정치, 종교, 과학, 인간 심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교묘히 녹여냈다.
이 책이 쓰인 18세기는 계몽주의와 과학혁명이 활발히 진행되던 시기였지만, 동시에 정치적 부패와 사회적 위선, 전쟁과 계급 갈등이 심화되던 불안정한 시대였다. 영국은 명예혁명 이후 입헌군주제 체제를 구축했지만, 귀족과 정치가들 간의 권력 다툼은 여전히 치열했다. 식민지 확장과 상업 자본주의의 발전은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켰고, 스위프트는 이러한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자 이 작품을 집필했다.
소인국(릴리퍼트), 거인국(브롭딩낵), 하늘을 나는 섬(라퓨타), 말들의 나라(휘넘국) 등 네 가지 여행기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세계는 인간 사회의 특정한 모순과 병폐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소인국은 사소한 권력 다툼과 정치적 야욕을, 거인국은 인간의 왜소함과 도덕적 타락을, 라퓨타는 비현실적인 과학 집착을, 말들의 나라는 인간 본성의 추악함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스위프트는 기상천외한 세계를 통해 독자에게 인간 존재와 사회 체제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요구한다.
오늘날 『걸리버 여행기』를 종종 아동문학 작품으로 오해하지만, 본래 이 작품은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 정치적·사회적 풍자 소설이다.
●조너선 스위프트(1667-1745)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영국계 아일랜드 인으로 태어났다. 영국에서 활동하던 스위프트는 1714년 아일랜드로 돌아가 성 패트릭 대성당의 주임사제로 일하면서 아일랜드와 인간 본연의 문제에 대한 성찰과 고민을 보여 주는 작품들을 쓰게 된다. [걸리버 여행기]와 [드레이피어의 편지들], [온건한 제안]등이 있다.
그는 아일랜드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국인도 아닌 영국계 아일랜드 인으로 태어났으며 이러한 여러 문제에 대한 그의 복잡하고 모순된 태도가 작품에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그에게 아일랜드는 동정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야만성의 표본으로 경멸의 대상이기도 했으며, 영국은 그에게 아일랜드를 수탈했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었지만 출세의 욕망이 서린 곳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경계의 애매함을 통해 독자들을 불편하게 했던 스위프트는 1740대 중반 치매에 걸려 금치산자 선고를 받게 되었다. 1745년 평생 일했던 성 패트릭 대성당 묘지에 묻혔다.
1. 릴리펏(걸리버가 풍자의 주체)
소인국으로 걸리버의 큰 키는 소인들이 보지 못하던 것을 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뜻하며, 소인에 대한 걸리버의 도덕적 우월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인간 세계의 12분의 1이고 축소된 소인국의 여행을 통해 영국(인간사회)의 타락을 이야기한다.
** 황제가 자기 나라의 전통 공연 몇 가지를 보여 주겠다고 한다. 그것은 밧줄을 타며 추는 춤이다. 땅에서부터 30cm높이의 가느다란 줄 위에 서서 춤을 추는 것이다. 이 춤은 왕궁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여 황제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도전하는 것이다. 왕궁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황제의 두터운 신임을 얻으려면 반드시 추어야 하는 춤이다. 고위직 관리가 죽거나 파문을 당하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단순한 여행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사회와 그 본질에 대한 깊은 풍자와 비판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당시 사회와 정치, 인간 본성에 대한 스위프트의 날카로운 통찰을 느낄 수 있었고, 그가 어떻게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풍자적으로 풀어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걸리버 여행기는 읽는 이로 하여금 인간 사회와 개인의 행동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힘을 가진 작품이다.
걸리버 여행기는 거인의 땅, 소인들이 사는 땅, 하늘을 떠다니는 섬 등 여러 흥미로운 무대로 독자를 이끈다.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는 모험에 대한 호기심이 먼저 생겼다. 배를 타고 떠나는 탐험가의 기질, 낯선 땅을 발견할 때의 경이로움,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위험과 곤란함이 뇌리에 남았다. 그런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조금씩 다른 감상이 밀려들었다. 거인국에서의 체험은 인간이 얼마나 작아질 수 있는지 몸소 깨닫게 했고, 소인국에서는 주인공이 거대한 존재로 군림하면서 자신이 속한 문명이 정말로 우월한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행동 하나하나가 자칫 폭력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도 떠오른다. 거대한 신처럼 군림하면서도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생길 수 있다. 저자는 그 점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특히 브롭딩낵에서 마주하는 주인공의 심정이 가장 인상적이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커다랗다. 음식부터 의자, 그 나라 백성의 손가락까지 하나하나가 무서울 정도로 커다랗게 다가온다. 처음엔 낯선 구경거리인 것처럼 느껴졌지만, 곧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을 수그리며 조심스레 움직여야만 한다. 작은 동물 취급을 받으며 더 이상 주도권을 가지지 못한다. 소인국에 있을 땐 자신이 너무 크다고 느끼더니, 거인국에서는 그 반대가 벌어진다. 그래서 무척 혼란스럽다. 독자로서는 같은 인물이 완전히 다른 처지에 놓일 때 그의 생각이 어떻게 변하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거대한 존재가 되고, 작디작은 존재가 되는 양면을 모두 지켜보게 된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저자는 하늘을 떠다니는 섬 라퓨타나, 말들이 주도권을 쥐고 사는 나라까지 보여준다. 그 묘사는 우습게 보일 수도 있지만, 조금 더 고민해 보면 그 세계들이 지닌 특색이 결코 허무맹랑한 것만은 아니라고 느껴진다. 고국에서 마주하는 부조리나 이중잣대, 과학 발전에 대한 맹목적 기대, 말 못 할 역설을 거울처럼 비추는 것 같다. 라퓨타에서는 과학과 지식이 풍부해 보이지만 그들이 실제로 사회에 제공하는 이점은 의심스럽다.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다양한 모험을 통해 인간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풍자하는 소설입니다. 이 책은 걸리버라는 인물이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겪는 기이한 사건들을 담고 있습니다. 소인국, 거인국, 날아다니는 섬 등 상상력이 풍부한 나라들을 배경으로 인간 사회의 모순과 문제점을 꼬집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소인국과 거인국의 대조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소인국에서는 모든 것이 작고 세밀하게 이루어져 있어,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축소판처럼 느껴졌습니다. 반면, 거인국에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 아무 의미 없게 보였습니다.
설정이 매우 독특해서 인상깊게 본 소설이었고 다시 읽게 되었다. 그 설정이라고 하는 것은 ‘걸리버’라고 하는 인물하면 떠올리는 소인국, 반대로 거인국에 가서 겪은 것들을 떠올리기 쉽다. 이 여행기에는 멋진 비유가 잘 들어가 있다. 소인국 사람들의 행태만 지켜봐도 잘 알 수가 있다.
『걸리버 여행기』는 주인공 렘륄 걸리버가 네 차례에 걸쳐 가공의 나라들을 여행하며 겪는 모험과 풍자를 그린 작품입니다.
제1부에서 걸리버는 소인국 릴리퍼트에 표착하여 15센티미터 정도의 키를 가진 난쟁이들을 만납니다. 초반에는 왕의 총애를 받으며 지내지만, 점차 궁정의 파벌 싸움에 휘말려 곤경에 처하게 되고, 결국 탈출해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이를 통해 스위프트는 당대 영국 정치계의 부패와 당파싸움을 풍자합니다.
제2부에서 걸리버는 거인국 브로브딩내그에 도착해 자신보다 12배나 큰 거인들 틈에서 살게 됩니다. 그는 궁정에서 여왕의 사랑을 받으며 지내지만, 거인들의 눈에는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스위프트는 브로브딩내그을 통해 인간의 나약함과 오만함을 풍자하고, 인간중심주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제3부에서 걸리버는 공중 부양 섬 라퓨타를 방문합니다. 라퓨타의 학자들은 온갖 터무니없는 연구에 몰두하느라 현실을 돌보지 않습니다. 걸리버는 이들의 극단적 이론주의와 비현실성을 비판하면서, 근대 과학과 계몽사상의 맹점을 풍자합니다.
마지막으로 제4부에서 걸리버는 야후라 불리는 인간과 흡사한 짐승들이 사는 나라에 도착합니다. 야후는 추악하고 폭력적인 존재로 묘사되는 반면, 야후를 지배하는 이성적 존재 후이넘은 고결하고 건전합니다. 걸리버는 문명화된 인간으로서의 우월감에 도전받고, 인간 문명의 근간이 되는 이성의 한계를 깨닫게 됩니다.
귀국 후 걸리버는 인간 세계의 부조리와 모순을 견디지 못하고, 인간을 야후와 동일시하며 혐오하게 됩니다. 그는 말과 대화를 나누며 여생을 보내려 하지만, 가족들의 설득으로 인간 사회로 되돌아오면서 소설은 끝을 맺습니다.
거인국 왕은 걸리버에게 걸리버 크기의 여자를 얻어 주어 후손을 보기를 바란다. 그러나 걸리버는 후손을 남길 바에는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가 그곳에서 자식을 남긴다면 그의 후손들은 ‘카나리아 새처럼 조롱에 가두어지고’ ‘진기한 물건으로 팔려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흥미로운 포인트가 있다. 걸리버가 소인국에 있었을 때도 역시 소인국의 동물들을 영국으로 데려갔고, 소인국 사람들까지도 12명 정도 데려가려 하지 않았던가? 그때 소인국 왕은 ‘설령 그것을 희망하고 동의하는 자가 있더라도 단 한 명도 데려가지 말라’고 강하게 당부했었는데, 이 대목에서 그 이유를 새삼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소인국 왕은 소인들이 걸리버들로만 이루어진 나라에 가게 되었을 때 어떤 취급을 받게 될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걸리버는 그들의 처지에 대해서는 거의 고려하지 못했었다. 단순히 ‘신기하니까 고국에 좀 데려가면 좋겠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소인들을 데려가고자 한 것이다. 결국 걸리버는 소인들이 아무리 대단한 기술과 지능을 가졌던들 상관없이 오직 자신보다 크기가 작다는 이유로 그들을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애완동물 정도로 여겼던 셈이다. 그리고 정작 본인이 거인국에서 그런 취급을 받았을 때에는 분개하고 슬퍼하며 끊임없이 자신도 동등한 인격체임을 증명하고자 애쓴다. 하지만 거인들은 걸리버 자신이 그랬듯 끝까지 걸리버를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서점을 둘러보다 걸리버 여행기가 눈에 들어왔고 두께도 적당해 킬링타임용으로 구매했다.
어릴 때 읽었지만 그냥 소인국에 잡혀서 속박당해있던 걸리버의 모습 말고는 기억에 남는 게 없어 결말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어릴 때 읽었던 걸리버 여행기와는 너무나도 딴판이었다.
책 설명에 쓰여있는 강력한 해학과 풍자가 어떤 건지 절실히 깨달았다.
1부는 내가 알던 걸리버 여행기다.
릴리펏이라는 소인국에 표류하게 된 걸리버.
장님 마을에선 외눈박이가 괴인 취급을 받는다는 말이 있다.
모두가 난쟁이라면 걸리버가 거인이 되는 것이다.
그는 자신과 다른 소인국 사람들의 모습에 당황했지만 이내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습득하며 그들의 삶에 쉽게 동화된다.
불이 난 성의 화재를 진압하고, 주변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로 이끄는 등 많은 공을 세웠지만
명분을 중시하며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소인국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온다.
판타지 소설인데 이것만큼 고전이면서도 재밌는 소설을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어릴 때 동화책 비슷한 형식으로는 많이 접했는데 소설로 다시 읽어보니 굉장히 설정이 촘촘하고 판타지이긴 해도 보는 맛이 아주 좋았다. 걸리버는 의사였는데 배를 타다가 혼자 섬에 떨어지게 되었다.
작은 섬에 도착해서 불이 난 걸 오줌으로 끈 거는 다시 봐도 레전드였다. 걸리버가 착하네 마네 하면서 봐주려는 분위기가 일었음에도 벌을 가하겠다고 했고 결국 걸리버는 도망갔다. 또 예전에는 느끼지 못한 사실인데 소인국 사람들이 계란을 어디서 깨느냐 같은 사소한 걸로 싸웠다고 한다.
이거는 인터넷을 찾아보니 당시 영국을 비난하는 것이라고 한다. 거인국에서는 작다고 무시당하는 게 안타까웠다. 어릴 때 이것을 보고 나는 절대 작은 생명을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걸리버가 완전 꼭두각시 인형 취급을 당해서 더 마음이 아팠던 걸로 기억한다.
조나단 스위프트는 1667년에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작가, 시인, 정치인으로 유명했고, 대표작인 "걸리버 여행기"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인기를 누렸습니다. 어릴 때 걸리버 여행기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 소설을 아동소설로 알고 있지만, 사실 성인소설이고 당시 정치 상황을 풍자한 풍자소설로 유명합니다.
스위프트는 퀸즈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 문학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예리하고 비판적인 글을 주로 썼고, 정치적인 주장과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풍자적인 시를 썼으며, 이는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걸리버 여행기"는 네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고, 인간의 어리석음과 사회의 비극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걸리버여행기를 읽고 즐거운 상상을 했었던 아이였다면, 성인이 되서 실제로 걸리버여행기 완역판을 정독할 필요가 있습니다. 걸리버여행기는 조나단 스위프트의 풍자가 무엇인지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지구 상의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며 경험을 쌓은 주인공 걸리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단순한 여행기 이상으로 인간 세상과 사회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담고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었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작가가 독자들에게 단순한 모험 이야기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세상의 다양한 측면과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는 점입니다. 걸리버가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상황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 문제들을 비판적으로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작은 인간들인 릴리퓨트 사람들은 사소한 불만이나 이기적인 욕망 때문에 진실을 왜곡하고 변형시키는 모습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인간 세상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여행지는 브로브딩내그와 라퓨타입니다. 브로브딩내그는 거대한 자연의 힘을 상징하며, 인간이 그것에 얼마나 소외되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때까지 동화로 짧게 나온 이야기만 읽었는데 이렇게 완역본을 읽으니까 느낌이 새롭다. 나는 걸리버 여행기의 첫 번째 여행지인 소인국을 비판하고자 한다. 소인국에서는 모든 것이 작아서 그들에게 걸리버는 괴물처럼 보인다. 소인국 사람들은 처음에는 걸리버를 경계했지만 결국 그들의 이익에 맞게 이용한다. 또 그들의 사소한 관습, 편견들 때문에 싸우고 자기 집단만의 이익 추구를 목표로 한다.
총 4부로 1부는 소인국이야기, 2부는 거인국, 3부는 하늘 섬 라퓨타, 4부는 유토피아이다. 열심히 도왔지만 결국에 걸리버에게 사형을 내리는 소인국, 걸리버를 애완동물 취급하고 서커스를 시키는 거인국, 국민들이 궁핍으로 고통받고 토지가 황폐화되었으나 음악과 수학 이외에는 관심 없는 라퓨타, 지능이 없는 인간인 야후들을 다스리는 현명하고 신비로운 말(후이늠)이 다스리는 유토피아를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 내용이다. 이 모든 내용에서 걸리버 여행기는 인간의 잔혹함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으며, 영국의 지도층 뿐 아니라 일반적인 국민계층도 그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조나단 스위프트는 1667년 11월 30일 당시 영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태어나 활약했던 영국계 아일랜드 작가입니다. 그는 1745년 10월 19일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풍자 문학, 특히 영문학 소설의 고전으로 여겨지는 <걸리버 여행기>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소설 형식의 <걸리버 여행기> 이외에도 스위프트는 여러 비유와 은유의 기술을 사용해 수많은 수필과 산문, 그리고 기고문 등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통 이야기>, <책들의 전쟁>, 그리고 <겸손한 제안> 등이 특히 유명합니다.
스위프트는 유복자로 태어났으며 주변 친척의 도움으로 1686년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한 후 영국으로 건너가 유명한 정치가이자 학자로 은퇴 생활을 하고 있던 윌리엄 템플의 개인비서로 일을 하게 됩니다. 윌리엄 템플은 여러 고전이나 역사에 대한 조예가 깊고 또 많은 장서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위프트는 그의 밑에서 작가로서의 소양을 기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책을 읽게 된 동기와 기대하는 점]
어릴 때 ‘걸리버 여행기’라는 동화를 접했던 적이 있다. 접하기만 했지 정확히 읽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어렴풋이 기억하기로는 큰 거인이 소인들에게 묶여있는 책의 표지였던 것 같다. ‘걸리버 여행기’는 시대에 걸쳐 흘러내려오는 고전에 속한다는 것을 알게되서 흥미를 갖게 되었다. 어릴 때 봤던 그 표지가 내 기억에 나쁘게 각인되지 않은 듯 하다, 그러기에 읽어보리라 마음을 먹게 된 것도 있다. 어릴 때 잠시 접했던 것이라도 기억에 오래 남고 친근한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다.
모든 책을 읽을 때 늘 기대하는 점이 있다. 가령, 자기계발서 같은 경우 명확하게 내가 어느 부분을 기대하는지 확실하다. 고전의 경우 기대하는 점이 명확하지는 않아서 더 흥미가 생기고 생각하게 만든다. ‘작가가 과연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과연 어떻게 반응을 할까. 주인공은 왜 이랬을까.’ 생각하는게 싫었는데 생각하면서 읽게 되는 것이 조금 훈련된 것 같아서 좋다.
[소인국 릴리펏]
걸리버는 배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사, 선의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배를 타고 떠났다가 난파되어 소인국으로 휩쓸려 간다. 묶여있는 채로 지내다가 소인국의 황제의 환심을 사게 되고 자유를 보장받는다. 근처 나라와의 전쟁에서도 신체적 유리함을 이용하여 승리에 기여하고 여왕의 거처에 불이 났을 때도 자신의 소변으로 화재를 쉽게 제압한다. 하지만 소변으로 화재를 제압한 일이 훗날 소인국에서 그의 발목을 잡게 된다.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300년 이상 독자들의 마음과 정신을 사로잡은 문학적 걸작입니다. 이 책은 영문학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널리 간주되며 학자와 문학 애호가 모두에 의해 연구되고 분석되었습니다.
조너선 스위프트는 1667년 더블린에서 태어난 아일랜드 작가이자 성직자였습니다. 그는 다작 작가였으며 정치, 종교, 문학을 포함한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글을 썼습니다. 그의 작품은 신랄한 풍자와 정치적 논평으로 유명했으며 그의 글쓰기 스타일은 영문학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스위프트는 1720년에 "걸리버 여행기"를 쓰기 시작하여 1725년에 완성했습니다. 이 책은 1726년에 익명으로 출판되었고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소설은 풍자 작품으로 스위프트 시대의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쓰여졌다. 스위프트의 풍자는 정부, 교회, 사회 전반을 겨냥한 것이었고 그의 비판은 통렬하고 종종 신랄했습니다.
이 소설은 서로 다른 상상의 땅으로 네 번의 여행을 떠나는 선박 외과 의사 걸리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각 나라에서 그는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고 그의 경험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믿음과 사회의 믿음에 의문을 갖게 합니다. 소설은 네 부분으로 나뉘며 각 부분은 걸리버의 여행 중 하나를 설명합니다.
소설 "Lilliput으로의 항해"의 첫 번째 부분은 걸리버가 키가 6인치를 넘지 않는 미니어처 종족과의 만남을 묘사합니다. 소설의 두 번째 부분인 "A Voyage to Brobdingnag"는 사람들이 거인인 땅으로 가는 걸리버의 여정을 묘사합니다. 소설 3부 "라퓨타, 발니바르비, 글러브덥드립, 러그내그, 그리고 일본으로의 항해"는 걸리버가 과학과 수학에 집착하는 라퓨타족, 후이넘족 등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와의 만남을 그리고 있다. 잔인한 인간 종족을 지배하는 지적인 말 종족. 소설 "후이넘의 나라로의 항해"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부분은 걸리버가 후이넘의 땅에 머물다가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묘사합니다.
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 1667-1745)는 1667년 3월 30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토머스 스위프트는 헤리퍼드셔 구드리치의 교구 신부로서 청교도혁명 동안 변함없이 왕당파를 지지했다. 아버지는 3형제와 함께 왕정복고 뒤 아일랜드에 정착해 1664년에 애비게일 에릭과 결혼했다. 그녀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잉글랜드 레스터셔 지방 목사의 딸이었다.
1666년 5월에 누이 제인이 태어났으나 1667년 봄 아버지가 갑자기 죽자 그의 어머니와 어린 누이 그리고 뱃속에 있던 조나단 스위프트는 아버지의 형제들에게 맡겨졌다. 스위프트는 아버지 없이 삼촌들에게 의존하면서 안정된 가정생활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늘 불안감을 느꼈다.
그의 나이 6세 때 당시 아일랜드 최고의 명문이던 킬케니 스쿨에 들어갔고, 1682년에 더블린의 트리티니 칼리지에 입학했다. 여기서 몇 년 뒤에 썼다가 그가 죽은 뒤인 1755년에 출판된 미완성의 자서전 《스위프트가》를 보면 그는 “자신이 가까운 친척들의 학대 때문에 낙담하고 풀이 죽어 학업을 소홀히 한 까닭에 1686년 학교 측의 특별한 배려로 문학학사 학위만을 받을 수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인문학 석사학위 신청자로 1689년 2월까지 트리티니티 칼리지에 머물렀다. 그러나 1688년 명예혁명 뒤 더블린에 무질서가 만연하자 대학 당국은 학생들에게 안전한 곳으로 피신할 것을 권했다. 그는 잉글랜드로 피신했고, 어머니를 찾아뵌 뒤 주로 서리 무어파크에 있는 윌리엄 템플 경의 집에서 머물렀다. 이 기간은 1699년 1월 템플이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학식이 풍부했던 템플은 회고록을 쓰고, 수필을 출판할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서가 필요했다. 스위프트가 지적으로 성숙하게 된 것은 템플의 풍부한 장서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이다. 또한 그는 무어파크에서 템플 집의 가정부로 있던 과부의 딸 에스터 존슨을 만났다.
이 소설은 걸리버가 자신의 여행담을 서술하는 방식으로 쓰인 소설이다. 걸리버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하고 의사가 된 사람인데, 항상 여행을 좋아했었기 때문에 배의 의사로 일을 하곤 했다고 한다. 결혼을 하고 한동안은 배를 타지 않다가 남태평양으로 가는 배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 1699년 5월 4일 이었다. 아프리카를 지나 인도양까지의 항해는 수월했으나 그 후 폭풍을 만나 tasmania의 북서쪽으로 표류하던 중 암초에 걸려 배가 부서진다. 걸리버는 간신히 육지를 만났지만 쓰러졌고, 일어나 보니 온 몸이 움직일 수 없도록 밧줄로 땅에 매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