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탄생 철학은 지금까지 철학이 인간을 죽어야 할 운명인 자들로 규정하고 이론을 전개해온 것과는 달리, 탄생한 자들을 중심으로 탄생의 실존적 근거들, 즉 탄생과 자기 자신과의 관계, 탄생과 원인 제공자와의 관계, 탄생과 잠재적으로 자신의 원인이 되는 타자들과의 관계의 문제를 다룬다. 이러한 기조 하에서 저자는 죽음의 철학을 넘어서 탄생 철학의 존재론적이며 실존적인 의미를 고찰한다. 인간 실존을 당연한 있음이 아니라 존재가 되는 과정인 탄생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탄생 안에서의 존재론적 문제들인 무와 존재의 문제, 그리고 강제와 자유, 던짐과 내던져짐, 시작성과 물려받음, 부모의 의무와 자식의 권리 사이의 긴장 관계를 고찰한다. 이 책은 잠언적인 문체와 깊은 통찰력으로 철학적 패러다임의 변화, 즉 죽어야 할 운명에서 출생으로의 패러다임의 변화, 죽음의 철학에서 탄생 철학으로의 변화를 주장한다.
소크라테스, 아우구스티누스 등 몇몇 탄생 철학의 선구자들과 칸트와 쇼펜하우어를 거쳐 하이데거의 사유와 한나 아렌트의 출생성 철학을 논하는 한편, 전체적으로 실존철학과 존재론적 물음을 강조하면서 탄생 철학의 윤곽들과 문제들을 그려나간다. 탄생한 자의 입장에서 탄생성이란 자신이 원하지 않은 시작된 시작이라는 것의 의미, 탄생의 강제, 탄생의 원인이 되는 자의 책임의 원리, 탄생에 대한 오랜 은유인 삶의 선물과 세계의 빛, 이 세상에 던져진 삶에 대한 거부, 탄생을 거부하는 금욕, 탄생을 마치 선물과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문제 등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루트거 뤼트케하우스의 책은 처음부터 나를 깊이 흔들어 놓았다. 사실 나는 인간 본성에 대해 꽤나 냉소적인 입장을 가지고 살았다. 어릴 적부터 타인의 악의적인 말, 질투, 이기심 등을 겪으며 자란 나는, ‘사람은 본디 자기중심적이며, 선보다 악에 기운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하지만 『탄생철학』은 그러한 나의 세계관에 거센 반박을 던졌다. 그는 말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며, 협동과 공감은 우리가 본래 지닌 본성이라고.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그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례, 심리학적 실험, 철학적 통찰을 통해 내 마음의 단단한 틀을 조금씩 녹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