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 론자유민주주의 하의 자본주의체제에서 사회의 자원이 어떠한 기준에 입각하여 분배되어야 할까?이는 물론 그 사회의 환경, 처지에 따라 달리 적용되겠지만 일반적으로 이러한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분배적 정의에 대한 접근은 자유, 평등 등의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가치관을 기준으로 하여 이에 대해 기본적인 권리가 어떤 것인가에 따라서 롤스의 자유평등주의 와 노직의 자유지상주의 로 의견이 상반되어 진다.여기서 롤스는 자유를 기반으로 한 평등에 기초한 분배적 정의를, 노직은 개인적 권리와 자유에 대한 절대성을 원칙으로 하였는데, 이들 각각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살펴보도록 하겠다Ⅱ. 롤스의 자유평등주의먼저 자유 평등주의는 공리주의 사상의 몰개인성(impersonality)을 지적하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모든 인간은 어떤 명분에 의해서도 인간의 본질적인 도덕적 가치, 즉 개인적 자유와 권리는 희생의 되어서는 안되며 이를 지켜줄 새로운 정의관이 필요함을 주장했다공리주의적 정의관은 벤담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으로 대변되고 있는데 즉 바람직한 분배란 사회의 총체적 후생을 극대화할 수 있는 분배 이여야 한다는 것이다. 공리주의자들의 이런 견해는 부의 이전이 사회전체의 후생을 증대시킨다면 그것이 정당한 방법에 의한 것이 아니더라도 사회 전체적으로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된 것이라고 본다.이러한 공리주의적 정의관에 반하여 롤스의 정의론의 핵심은 ‘공정성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fairness)’이다. 롤스는 사회의 기본구조에 대해 아무 원칙도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들이 기본원칙에 합의해 가는 과정에서 이 원칙을 도출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정의의 원칙들이 채택되는 가상적 상황을 ‘원초적 상황(original position)’ 이라고 부른다. 이 상황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이 장래에 자신의 지위, 계층을 비롯하여 천부적 재능, 체력 등을 어떻게 타고날 지, 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지능이나 능력, 심리적 특징까지도 어느 정도일지도 모르는, 철저히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속에 감추어진 사회적 상황 속에서 정의의 원칙은 전제되어 진다.롤스는 이러한 원초적 상황에서 사람들이 선택하리라고 기대되는 정의의 원칙으로 다음의 두 가지를 제시한다.{< 제1원칙 >☞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유와 양립할 수 있는 한에서 가장 광범한 자유에 대해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제2원칙 >☞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은 다음 두 조건을 만족시키도록 편성되어야 한다.(a) 최소수혜자에게 최대의 이득이 되고(b) 공정한 기회균등의 조건에서 모든사람에게 개방된 직위와 직책이 결부되도록 하여야 한다.제1원칙은 평등한 ‘자유의 원칙’(liberty principle)이다. 제2원칙의 첫부분인 차등의 원칙(difference principal)은 불평등이 최소수혜자에게 최대이득이 돌아가도록 배치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 부분은 공정한 기회균등원칙아래 직책과 직위가 모든 이에게 개방되어야 한다(공정한 기회균등의 원칙)는 것이다. 차등의 원칙 하에서는 불평등이 모든 이에게 이득이 될 수 있을 때만 정당화될 수 있다. 차등의 원칙의 논리적 연장이 최소극대화의 원칙(maxim)으로서 최소수혜자에게 최대의 이득이 될 때만 불평등이 정의로운 것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롤스는 이 세 가지 원칙 사이에 우선성이 있어서 제1원칙이 제2원칙보다 우선시되고 제2원칙 안에서는 기회균등의 원칙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본다. 즉 부와 소득의 불평등한 분배와 권력의 계층화는 반드시 시민권과 기회균등을 보장하는 기회균등의 원칙 하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롤스는 자연적으로 타고 나는 능력이나 소질, 사회적 우연성에 의한 유리한 여건들도 개인이 차지해야 할 도덕적 이유가 없으며 따라서 사회전체의 공유(pooling)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롤스는 정의의 원칙이 어떤 심리적 법칙이나 확률에 의해 추측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또한 경험적·실증적 자료에 의해 분석될 수도 없으며 이성론적 인식에 기초하여 확립되는 것이고 가설적 원리에 의해 연역적으로 도출되는 것이라고 보았다.롤스는 이러한 원칙의 실현을 게임이론의 틀을 가지고 설명한다. 이 원칙이 관철된다면 그 사회에서 가장 못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의 물질적 안락이 보장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위험부담을 기피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이에 대해 동의할 것이라는 것이다. 즉 앞으로 생활수준이 어떻게 될지를 전혀 알 수 없는 원초적 상황에서 위험 기피적인 사람이라면 이 안전망을 환영할 것이라는 것이다. 위험 기피적 태도가 강하고 불확실성이 강한 상황에서는 안전망이 있는 사회 쪽으로 기우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라는 것이 롤스의 설명이다. 이러한 원칙이 바로 최소극대화원칙이다. 그러나 이는 계층간 불평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배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롤스에 의하면 정의는 불평등의 크기에 상관없이 절차적 정의가 보장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롤스의 설명틀은 분석철학적 방법과 게임의 이론을 이용하여 사회계약론을 일반화하고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평가된다.롤스의 정의원칙을 정책규범화하기 위해서는 제2원칙인 차등의 원칙이 중요하다. 롤스 정의론이 제1주제로 다루는 것이 사회기본구조이므로 우선은 사회체제 비교가 이뤄지고 다음 사회체제 안에서 어떤 정책대안이 정의원칙의 이행방향에 더 적합한지를 밝히게 된다. 최소극대화의 원칙은 진보주의의 이념적 기초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복지제도를 설계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롤스의 이론에 대해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신성함을 주장하는 자유주의자들은 이러한 원칙들이 사람들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비판한다. 또 다른 비판은 분배적 정의가 사회의 유일한 가치가 아니고 많은 도덕적 가치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정의라는 가치가 다른 종류의 도덕적 가치와 상충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 모든 도덕적 가치 중에서 유독 정의에만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분배적 정의는 롤스에서 시작해서 롤스에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Ⅲ. 노직의 "자유지상주의"이상 롤스가 평등에 입각한 정의를 내세우고 있다면 이에 반해 자유주의적 입장을 대변하는 학자로는 노직이 있다. 그는 사람이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고 목적 그 자체여야 한다는 칸트적 원칙으로부터 출발한다. 분배적 정의를 달성한다는 명목으로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으며 분배적 정의라는 용어 자체가 중립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배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노직의 정의론은 ‘소유권리론 (entitlement theory)을 통해서 나타난다. 이 원칙은 ‘취득(acquisition)에서의 정의 , 이전(transfer)에서의 정의 , 취득에서의 부정(injustice)에 대한 교정(rectification)의 원칙’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며 정당한 권리가 자유의 핵심이라고 본다.
Ⅰ. 서 론맑스주의에 있어서 평등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공산주의 사상에서는 일반적으로 평등이 자유와 거의 동등한 정도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듯이 맑스주의에도 역시 그러한 원칙이 적용되고 있는 것일까?맑스주의의 핵심적인 이론적, 실천적 개념은 계급과 사회이며 이러한 개념의 궁극적 목표는 바로 인간의 해방에 있다. 맑스주의는 억압, 착취, 불평등 등을 발생시키는 근본적 원인이 자본주의 사회에 있음을 지목하며 이러한 모순들이 모두 평정되고 심지어는 국가와 계급까지 사멸된 완전한 자유와 평등의 추구를 이상으로 삼았다. 국가와 시민생활은 인간의 권리를 제한하고, 오로지 정치적 국가에서만이 인간은 상호 평등한 존재로 대우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사회적 불평등은 사회갈등의 최대 쟁점이며 여기에서 파생하는 제 사회문제를 시정 또는 해결하는 일은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행정분야의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정책적 대응은 이 현상에 대한 도덕적, 인식적 인식에 따라 그 목표와 수단이 크게 달라진다. 맑스는 계급이론은 통해 불평등의 인위성을 강조하고 궁극적으로 이를 불식되어야 할 문제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맑스의 평등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고찰을 위하여 우선 그의 정의관을 비롯하여 공산주의적 사상에 입각한 맑스의 실질적 평등사상을 살펴보도록 하겠다.Ⅱ. 본 론1. 맑스의 정의관맑스의 실질적 정의관은 그의 『고타 강령 비판』에서 명시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가 말하는 바에 의하면 공산주의의 하의 단계(사회주의적 단계)에서는 공산주의의 모태인 낡은 사회의 반점이 남아 있어 각 생산자는 사회로부터 자신이 쓴 노동력과 같은 가치(미래의 투자, 공공 서비스, 노동 불능자를 위한 기금 등을 공제한)에 상응하는 소비수단을 돌려 받는다. 여기서는 아직 동등한 권리가 원칙이 되고 있는데 유명무실한 것은 아니나 이것 역시 부르주아적 원칙이다.그러나 사람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차등이 있는 한 노동에 비례하는 동등한 권리란 불평등한 노동에 대한 불평등한 권리이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수단의 소유권을 개인으로부터 박탈한 것일 뿐 각자 그의 능력에 따른 능력주의적이고 업적주의적인, 따라서 불평등한 사회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사회는 개인의 욕구나 능력에 있어 풍요한 다면성이 추상화 된 일면적인 사회일 수밖에 없다.맑스가 묘사하고 있는 공산주의의 더 높은 단계(공산주의사회)에서는 분업에 의한 개인의 노예적 종속과 그와 더불어 정신노동과 육체노동간의 대립 또한 사라진 뒤에, 생산력 또한 개인의 전인적 발전과 더불어 증가된 뒤에, 협동적 부의 모든 원천이 더욱 풍요롭게 넘쳐 흐를 때 오직 그때에만 부르주아적 권리의 협소한 지평이 완전히 극복될 수 있다. 여기서는 부르주아적 권리와 법체계 및 좁은 의미의 도덕이나 정의 필요성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그 대신 각자로부터 그의 능력에 따라 그리고 각자에게 그의 필요에 따라 라는 규칙이 자리할 것이다. 그런데 맑스에 따르면, 능력과 필요는 한계 짓거나 규정될 수 없을 만큼 무한 하며, 공산사회에 있어 이들 능력은 공동체적 관계를 통해 서로 교류라는 모든 개인들의 공공 이익에 기여할 것이고, 필요는 그러한 관계와 물질적 풍요로 인해 상충하는 요구 없이 모두 충족될 것으로 본다.2. 맑스의 평등사상맑스는 우선 사람들의 사회생활과 의식을 결정하는 관건이 경제적 조건 또는 생산력에 있다고 믿었고, 사회적 불평등의 근원을 생산구조내에서 점유하고 있는 개인과 집단의 상이한 위치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는 불평등 구조의 구체적인 양상은 기술특성에 따라 시대마다 상이하게 나타나지만,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집단과 무소유 집단으로 양분되는 구조는 모든 시대의 보편적인 철칙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밖에 소득, 직업, 교육, 정치권력등 기타의 모든 차별적 요인들은 맑스의 개념틀 안에서 이차적이고 파생적인 변수로 간주되었다. 육체적, 정신적 능력 등의 차이에 따른 불평등한 노동에 대해서는 불평등한 보상이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동일한 노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조건에 따라서도 다른 노동자들에 비해 결과적으로 불평등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물질적 불평등이 존속할 뿐만 아니라 다양하고 이질적인 개인적 욕구도 완전히 충족되지 못하며 이러한 불평등한 상황에서는 그 불평등을 정당화할 보편적인 기준이 필요하게 된다.한편 초기 공산주의 단계에서 완전한 사회보장 및 복지가 구비된 상태에서의 개인적 능력의 차이에 따른 다소간의 소득의 불평등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맑스는 이러한 현상은 자본주의적 요소가 완전히 제거되면 함께 극복이 될것이며 발전한 공산주의 사회 에서는 계급 차이의 완전한 소멸과 더불어 그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사회적, 정치적 불평등이 사라질 것이라 하였다.맑스는 평등을 궁극적인 가치로 여기지 않았다. 그의 궁극적 가치는 자기소외의 지양을 통한 인간의 자유로운 자기실현 이었으며, 평등은 단지 프롤ㄹ레타리아 혁명을 위한 선동의 수단으로 보았다. 또한 모든 사회적 불평등은 계급적 갈등의 다른 표현이며 이는 자본주의적 기초의 소멸과 더불어 함께 사라질 것이라 보았다. 또한 맑스는 개성의 자유로운 발전을 신봉하며 개인의 소질과 능력이 불평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등 절대평등주의 를 옹호하지 않았다. 사회주의를 대변하고 맑스에게 평등이란 당연한 논리로 적용될 듯 싶으나 그의 궁극적 평등 그 자체가 아니였으며 궁극적으로 평등의 개념 그 자체를 초월하고자 했다. 이처럼 공산주의 사회는 평등의 개념 자체까지도 무의미하고 불필요하게 만드는,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된 공간으로 보았다. 따라서 공산주의는 창조해내야할 목적 그 자체로 보기 보다는, 영원히 지향해야할 유토피아 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