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4
검색어 입력폼
  • 행정학의 학문적 성격과 패러다임 평가A좋아요
    ☞ 행정학이 학문의 특성상 다양한 여러 학문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Ⅰ. 들어가며한 학문이 하나의 독자적인 분과학문으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첫째, 고유한 연구주제가 있어야 하고 둘째, 주제를 체계적으로 정리, 해석할 수 있는 이론이 있어야 하며 셋째, 개념적 경계가 뚜렷해야한다. 그리고 여기에 부수해서 대학에서 그 학문을 가르치고 독립된 학과가 있으면 정체성의 정도가 높다고 말할 수 있다. 정체성의 위기로 고심하는 행정학은 이러한 여러 가지 요건들을 충족시키는 듯 하면서도 그 충족도가 만족스러운 것이 되지 못해 그 학문적 정립에 많은 의문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행정학에 있어서 綜合科學性은 母系科學인 정치학으로부터 분리되면서부터 그 숙명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행정은 정치과정의 최종단계로 파악될 때에는 정치학과 밀착되어 있고 관리현상으로 파악될 때에는 경영학과 밀착된다. 행정학을 조직현상으로 파악할 때에는 행정학은 사회학의 부속품처럼 보인다. 또한 의학이나 법학처럼 전문직종으로 파악하는 입장도 있다. 이와 같이 행정학은 綜合科學性이 농후하여 행정학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행정이라는 그 자체가 정치학, 경영학 및 심리학 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속성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로는 행정학자 자신들이 인접학문에서 나온 이론들을 무분별하고 염치없이 받아들여 행정학을 타학문의 모든 이론의 전시장과 같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의 행정학에서 채용되고 있는 많은 이론들이 사회학자나 경영학자 및 심리학자들에 의해서 연구된 것들이다. 인접과학의 이론들이 행정학의 영역에 물밀듯이 들어올 때에 행정학은 정체성을 잃고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또한 한국행정학의 특징이나 문제점에서 나타난 것처럼 학문의 발전단계를 타 학문이론의 무비판적 도입과 소개의 단순모방기, 타학문이론의 적응적 도입과정인 적응모방기, 새로운 이론과 개념의 창조단계인 창조태동기, 학문의 보편성이 강조되고 이론의 일반화에 역점을 두는 학문성숙기로 행정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모호한 태도를 보인 것 같다. 그는 실제로 행정의 연구가 무엇을 함축하는지, 행정영역과 정치영역간에 고유한 관계가 무엇인지, 그리고 행정연구가 자연과학과 유사한 하나의 과학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윌슨은 그의 논문 속에서 분명히 이 분야에서 지속적 영향을 미치게 된 행정은(정치에서 분리해서) 연구할 가치가 있다" 라는 하나의 분명한 명제를 제시했던 것이다. 정치학자들은 뒤에 이러한 논쟁을 중심으로 행정학에 대한 최초의 명확한패러다임을 설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Ⅲ. 행정학의 패러다임과 그 변화1. 政治·行政 二元論 (1900∼1926년)(1) 정치·행정이원론의 정의정치행정이원론은 행정연구의 소재로서 관료제에 중점을 두고 정치와 행정을 구분하는 정치·행정 분단론을 이론적 기반으로 하였으며 굿노우(Frank J. Goodnow)와 화이트(Leonard D. White)등이 대표적 학자였다. 행정을 권력현상으로 파악하지 않고 오히려 관리현상으로서 파악하는 정치행정이원론 또는 기술적 행정학은 정치와 행정의 개념을 준별하여 행정을 정치가 형성한 의사의 기술적 수행과정으로서 파악하면서 목적이나 가치의 판단과 관련되는 정치를 배제하고 행정을 전적으로 수단적, 기술적 기능으로 보았다.(2) 정치·행정이원론의 영향첫째, 행정연구의 과학화를 촉진시켰다. 정치행정이원론은 행정을 정치로부터 단절시킴으로써 새로운 과학으로서의 행정학을 발전시키는데 이론적 기초를 닦아주었다. 둘째, 공사행정일원론을 제기시켰다. 목적가치의 판단과 관련되는 정치를 배제하고 행정을 전적으로 수단적, 기술적 기능으로 고찰하게 됨으로써 행정의 관리와 기업경영의 동질성을 인정하는 공사행정일원론이 제기되었다. 이리하여 과학적 관리법을 행정분야에 적용함으로써 행정능률을 향상시키려는 운동이 전개되었다. 셋째, 실적주의의 확립을 촉진시켰다. 정치적 영향력이 작용하는 정실주의 또는 엽관주의를 지양하고 공무원이 정치적으로 형성된 국가의사를 합리37년까지는 행정학의 주류였으나 다음 해인 1938년에 바나드(Chester I. Barnard)의 「관리자의 역할」이 간행되면서 종래의 정치행정이원론과 원리론을 중심으로 하는 행정학의 주류는 그 첫번째 개념적 도전을 받게 되었다. 행정학에 대한 바나드의 영향은 그 당장에는 대단하지 않았으나 그 뒤(1946년) 사이먼(H. A. Simon)이「행정의 격언」(The Proverb of Administration)이라는 글 속에서 원리론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가할 만큼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기존의 행정학의 주류에 대한 비판과 도전은 1940년대에 들어와 두 개의 상호 강화적인 방향으로 가속화되었다. 하나의 이론은 정치와 행정이 어떠한 형태로든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반박이고, 다른 하나는 행정의 원리는 관리적 합리성의 최종적 목표 이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원리론에 대한 비판이다.1 政治行政二元論에 대한 挑戰정치행정이원론에 대한 이견 내지 비판은 이미 1930년대에 시작되었지만「공공행정의 제요소」는 정치와 행정이 분리될 수 있다는 가정에 의문을 제기한 최초의 주요 저서 가운데 하나였다. 1946년 마르크스(F. M. Marx)가 편집한 이 책엔 모두 14項의 논문이 행정실무경험을 쌓은 행정학자들에 의하여 쓰여졌으며, 이들 논문은 가치에 구애받지 않는 행정, 즉 가치사상적 내지 가치중립적 행정이 실제적으로는 가치함축적인 정치로 자주 나타났다는 새로운 인식을 제시했다. 즉 예산이나 인사문제의 諸결정에서 정치적인 것과 비정치적인 것(행정적인 것)을 구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또한 이들을 구분하고자 하는 의식적인 노력도 실질적인 가치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같은 1940년대의 도전자들은 행정인들이 입법자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결정과 공공정책을 형성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였다.2 行政原理論에 대한 挑戰전통적 정치행정이원론에 대한 도전과 동시에 야기된 것은 행정원리론에 대한 것으로 행정의 원리'와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보다 기본적 내용이었다. 1946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행정학은 조화와 상호 지적 자극 속에서 일하는 두 부류의 학자단을 포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즉, 하나는 사회심리학의 철저한 기초 위에서 순수행정과학'(pure science of administration)을 발전시키려는 학자들이며, 다른 하나는 공공정책의 규명 (prescribing for public policy)에 관련된 학자들이다. 사이먼에 의하면 공공정책을 처방하는 것은 정치학에만 한정될 수 없고 경영학과 사회학도 함께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러한 순수행정과학과 공공정책처방은 서로를 강화할 것이라는 것이다.즉, 사이먼의 이론은 외형상 정치와 행정을 분리하게 되나 이것은 과거의 정치행정이원론에서처럼 행정의 정책결정기능과 같은 가치판단적인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양자(정치와 행정)의 연계를 논리적으로 인정하면서 다만 행정의 과학화를 위하여 행정연구에서 가치지향의 대상을 배제하고 사실지향의 대상에 국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행정은 정책결정과정에 있어서의 내적 단계를 형성하고 정치는 정책결정의 외적 단계를 통하여 정책을 최종적으로 결정하여야 한다는 주장 역시 행정학자들에 의해 제기되기도 했다.3. 정치학으로서의 행정학 (1950∼1970년)정치학으로서의 행정학은 행정학과 정치학간의 개념적 관련성을 재확립시키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1950년대의 행정학에 관한 저서들은 행정학분야를 정치학의 강조영역, 또는 관심영역, 심지어는 정치학의 동의어로서 이해하였다. 그 결과 행정학은 정부관료제란 소재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했으나 행정학의 초점은 상실하게 되었다. 행정학을 오랫동안 인정해 왔던 사람들조차도 이 분야에 대한 의구심을 표명하였고, 그 결과 독립된 학문으로서의 행정학은 쇠퇴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태는 195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더욱 악화되었고 1960년대에도 지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 행정학의 正體性危機(identity crisis)논쟁이 일어나게 되었고, 왈도는 이를 극복하고자 행정의의 가치에 의존한다.2 연구주제의 선택은 통상 연구자의 사회화의 과정과 연구자가 속한 사회의 필요성을 반 영한다.3 행태과학에 있어서 인간은 연구의 대상이기 때문에 인간의 가치관, 관점, 문화는 相關分 析에 있어서 하나의 매개변수로서 이론개발에 포함되어야만 한다.4 행정이론과 자료의 이용은 필연적으로 문화구속적 일 수 밖에 없다.일반행정론과 비교행정론 간의 두 번째 차이점은 그 기원에서도 나타난다. 미국행정학은 실무지향적인 학문이기 때문에 현실세계를 다루는 데 반해, 비교행정론은 이론행정에 치중하여 지식을 위한 지식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비교행정론의 이러한 순수학문적 경향은 점차 그 자체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4. 관리학으로서의 행정학 (1956∼1970년)정치학으로서의 행정학에 대한 대안으로 관리학으로서의 행정학이 성립되었다. 연구의 소재보다 연구의 초점을 중시한 행정학 패러다임으로서의 관리학은 행정과학 또는 일반관리학 으로서 불려지기도 하였으며 조직이론과 관리과학을 포괄하여 공공행정이나 사행정을 가리지 않고 보편적인 행정과학의 성립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관리학으로서의 행정학도 본질적으로는 행정학의 정체성, 독자성 확립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기간 동안에 정책학의 연구가본격화되고 신행정이론이 제기되었다.5. 행정학으로서의 행정학 (1970∼ )행정학으로서의 행정학은 이미 성립된 것이 아니라 연구의 초점과 소재를 명확히 하면서 행정학의 독자성을 추구하는 패러다임을 확립시키자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독자적 분야로서의 행정학의 윤곽은 1947년 사이먼(H. Simon)이 행정학은 순수행정과학'이어야 한다고 천명했던 바와 같이 여러 면에서 반영되고있다. 행정학이 하나의 순수행정과학'이라는 형태 속에서 행정학분야의 초점은 아직까지도 부족하다고 볼 수 있지만 순수행정과학의 방향으로 특히 조직이론과 정보과학(information science)의 분야에서 커다란 발전을 가져왔으며, 아울러 행정학의 적용기법들과 방법론들을 세련시키는 데 상당한 발전을 이룩하였다.그러나 없다.
    사회과학| 2001.12.11| 10페이지| 1,000원| 조회(751)
    미리보기
  • [행정이론] 율곡의 사회개혁론
    Ⅰ. 16세기 사회인식과 개혁의 논리율곡이 태어나 생애를 마칠 때까지 활동했던 16세기 후반은 조선이 건국한 지 약 2백여 년이 되어가는 시기요, 연산의 폭정이 끝나고 중종의 시대를 거쳐 인종, 명종, 선조의 시대에 해당한다. 정치적으로는 비교적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사림의 분열이 싹트기 시작하는 때였고, 주변 정세는 명나라가 쇠퇴하고 여진이 강성하는가 하면 일본은 분열의 혼란 시대를 극복하고 통일 시대를 맞는 때였다. 경제적으로는 공물, 진상 등 각종 조세제도의 불합리로 인해 민생이 극도로 피폐하여 농촌 경제가 위기를 맞는 시대였다. 사회적으로는 연산 시대의 악법이 그대로 상존해 있어 법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고, 인사제도는 능력과 공정성이 보장되지 못하고, 윤원형 등 특권층의 처벌과 억울하게 희생된 사림의 명예회복이 공론화(公論化)되는 시대였다. 아울러 공직 윤리가 무너지고 선비의 기풍이 더러워져 기강이 해이된 현실이었다. 특히 신분적 차별이 극심하여 서얼, 천민 등의 인권과 민생이 위태로웠던 시대였다. 뿐만 아니라 인심이 타락하고 사치 풍조가 만연하여 새로운 가치관과 윤리의식이 절실히 요청되는 상황이었다.따라서 율곡은 16세기 후반 조선조 사회의 현실을 개혁해야 할 경장기(更張期)로 인식하고 임금의 단호한 결단을 촉구하였던 것이다. 율곡은 점진적인 개혁을 주장함으로써 과거 조광조와 같은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조급한 개혁 추진은 인심의 동요나 보수층에게 역습의 빌미를 줄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하고, 또 반대로 지나치게 느슨한 개혁 추진은 시기를 놓쳐 실패하게 되므로 완급이 중도에 맞아야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여러 사람의 계책을 수집하여 선(善)을 가리고 중도(中道)를 써서 일대의 훌륭한 정치를 이룩해야 하는 것이다. 율곡은 성공적인 개혁을 위해서 점진적인 방법과 함께 개혁의 시의성(時宜性)을 강조했으며, 아울러 훌륭한 개혁안의 수집을 위해 언로의 개방을 주장했던 것이다. 이제 이러한 현실 인식과 개혁의 논리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그의 사부터 훌륭한 인재를 발탁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정사를 도모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예나 지금이나 인사는 정치의 첫걸음이요 만사의 근본으로 일컬어진다. 왜냐하면 구체적인 정치적 명령이나 법제는 인간을 통해 시행 실천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율곡은 인사 문제를 매우 중시하여 그의 상소문 곳곳에서 이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그러면 인사 문제의 해결을 위한 대책을 알아보자.율곡은 먼저 치자 자신의 인사에 대한 중요성의 인식과 함께 현재(賢才) 발굴을 위한 의지와 성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둘째는 도덕적 자질과 실무적 능력이 인사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인사에 있어서 신분, 문벌, 배경 등 일체의 특권을 배제하고 오직 도덕적 자질과 실무적 능력을 기준으로 인사를 해야 인사의 공정성이 확보되고 정치적 신뢰를 지닐 수 있으며, 정치의 실효를 거둘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특히 적재적소에 능력과 재질에 따라 일을 맡김으로써 인사의 효율성을 기해야 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또한 인사의 방법에 있어서는 과거제와 추천제를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과거로 사람을 뽑는 이외에도 별도로 현명하고 어진 이들을 구하되, 사방에 전교(傳敎)를 내려 숨은 인재를 찾아내도록 하며, 그의 재능과 행실에 따라 벼슬을 내리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인사관리의 측면에서 크고 작은 안팎의 관직에 모두 거기에 합당한 사람을 가려 그에게 전임시키되 오래 지속케 하여 공적을 이룩할 것을 기약하고 기일을 한정하기 말라 한다. 이와 같이 공정한 인사와 합리적인 인사 관리를 통해 인사의 실효를 거두고 정치와 행정의 성공적인 운용을 기약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2. 신분 차별에 대한 관심율곡이 살았던 16세기의 조선조 사회는 확실히 불평등한 사회였다. 조선 사회의 지배적 계층인 사대부, 즉 양반이 누린 특권과 피지배층인 중인, 평민, 천인의 차별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가 존재하였던 것이며, 그것은 동질적 관계보다는 이질적 관계로 정립됨으로써 사회문제로서의 위험을 항상(代白參贊仁傑論時事疏)에서 진상하는 공물은 양을 마땅히 감해 주어야 하고, 여러 종졸과 하인들 모두에게 고통과 휴식을 고르게 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만언봉사》에서 선상(選上)제도를 바꾸어 공천의 고통을 덜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율곡이 비록 적극적으로 신분 계급의 타파와 신분 질서의 붕괴를 위한 혁명까지는 외치지 않았다 하더라고 그의 사상과 생활 속에 연면하게 일관된 평등의식은 현대적 안목에서도 높이 평가된다. 아울러 서얼에게 벼슬길을 허락하고 노비의 해방을 주장한 것은 인재를 등용하여 국가적 이익을 도모하고자 한 뜻이 있는 반면, 당시 이러한 논의가 어려운 현실에서 인권의 신장과 평등을 합리적으로 시행하려는 노력이 있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컸던 것이다.3. 사치풍조의 개혁과 절검(節儉)의 숭상율곡은 16세기 후반 조선조의 사회문제로서 사치풍조의 만연을 우려하고 이의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당시 가진 자들의 사치가 극심했음을 설명하고 지나친 소비로 인해 의, 식, 주의 기초적인 생활이 위협받고 있음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따라서 율곡은 사치 풍조의 배격과 절약, 검소의 기풍을 진작시키기 위해 먼저 임금 자신이 모범을 보일 것을 강력히 진언한다.율곡이 왕실의 솔선수범을 강조하는 것은 일면 백성들의 검약 기풍 진작에 그 목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곤궁함을 펴 주어야 한다는 목적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시국을 구하는 방책은 오직 절용(節用)에 있고, 절용하는 방법은 오직 검약을 숭상하는데 달려 있다한다. 이렇게 볼 때, 율곡이 16세기 후반 조선조의 사회문제로서 사치풍조의 개혁을 주장하고, 이를 위한 대안으로 절약과 검소의 기풍을 숭상할 것을 주장하였던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할 것이다.4. 사회 기강의 확립국가의 치란흥망(治亂興亡)은 그 외형적인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강의 확립 여부에 있는 것이다.기강이란 무엇인가? 율곡은 주자의 말을 인용하여 기강을 설명하고 있다. 기강이라 함은 어질고 어질지 못한 이를 분별하여 상하의 기강이 떨쳐지면 만사가 스스로 잘 다스려지고 기강이 문란하면 모든 법도가 허물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세기 후반 조선조 사회는 기강이 해이해져 국가적 위기를 맞고 있었다. 율곡은 당시 기강의 문란 사례로서 私를 좇고 公을 업신여기는 풍조, 호령과 명령이 실행되지 않는 풍토, 공직자들의 직무 유기 내지 근무 태만 등을 지적하고 있다.그러면 기강을 진작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첫째로 임금의 입지와 공명정대한 심법이 요구된다. 임금의 권위는 강제적 물리적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공명정대한 가운데 위엄이 스스로 존재할 수 있다고 보고, 이는 바로 사념(私念)의 제거를 통해 가능한 것이라 하였다. 결국 치자의 명령이 제대로 행해져 기강이 설 수 있는 바탕이 임금 자신의 공명정대한 도덕성 확보에 있는 것이다.둘째로 기강의 확립을 위해서는 법이 제대로 지켜져야만 한다. 율곡은 기강이 서는 근거가 법을 지키는 데 달려 있다 하고, 법이 있되 실행되지 않는다면 기강은 반드시 문란해진다 하였다. 따라서 기강의 확립을 위해서는 위로는 임금으로부터 아래로는 모든 백성에 이르기까지 법이 제대로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셋째로 기강의 확립을 위해 인사의 공정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기강의 정돈은 위세(威勢)로써 위협하고 법으로써 몰아세우는 데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관리의 등용과 좌천을 합당하게 하고, 상과 벌을 반드시 진실하게 하는 데 달려 있다.넷째로 상벌의 공평성이 보장되어야 기강이 바로 설 수 있다. 만약 상이 공정성을 잃고 사심에 따라 주어진다면, 이미 그 상은 상으로서의 의미를 잃게 되며, 벌이 공평성을 잃고 뇌물과 배경 등에 의해 좌우된다면 법 정의는 세워질 수 없게 된다.이렇게 볼 때, 율곡은 당시의 사회문제로서 기강의 해이를 우려하고 이를 개혁하기 위해 도처에서 기강 확립의 방안과 이론을 제시했던 것이다.5. 권간(權奸)의 처벌과 사림의 옹호율곡은 기강이 국가가 유지될 수 있는 원기라고 보았듯이, 사림이야말로 국가가 믿고 의지하는 바로 곧 나라의 원기라 했다. 학의 교양을 지닐 뿐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는 인물이요 공론 형성의 주체이다. 따라서 사림이 조정의 주체가 되어 국정을 운영해 나갈 때 기강이 확립되고 민심의 순종을 받아 원만한 정치가 가능해진다. 이처럼 사림은 국가에 있어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마땅히 존숭되고 보호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곡 시대 직전에 4대 사화는 사림의 엄청난 피해와 몰락을 가져왔다. 그러므로 율곡은 기미(幾微)를 잘 살핌으로써 사림을 보호해야 한다 고 임금에게 강조하는 것이다.율곡은 사회 기강 내지 사회 정의의 실현이라는 차원에서 구시대의 비리와 불의에 대한 단호한 청산을 주장하는 일면, 사림의 명예 회복을 통해 국민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요컨대 율곡의 이러한 주장들은 기강이 국가의 원기이듯이 사림이 곧 국가의 원기라는 인식에서, 사림의 보호와 사림의 존숭 기풍을 통해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기강을 진작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할 것이다.6. 붕당(朋黨)의 해소(解消)와 지도층의 화합16세기 후반 조선조 사회는 동, 서의 당쟁이 싹트는 시대였고, 이것은 이후 조선조 사회의 발전에 커다란 장애가 되었음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동서의 파당은 이미 골이 깊어가 이성적인 대화와 협력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니, 이는 지도층의 분열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므로 율곡은 양시양비(兩是兩非)의 논리로서 어떻게든지 동, 서의 분당을 막고 화합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였던 것이다.임금은 대신 대시(臺侍)들을 널리 불러 탑전(榻前)에서 면대하여 임금의 뜻을 밝게 일러, 동인·서인을 가르는 풍습을 고치고, 선인을 등용하고 악인을 벌하여 일체 공도(公道)를 따르며, 의혹과 당파를 말끔히 씻어 버리고 진정조화(鎭定調和)하도록 해야 한다 하였다. 여기에서 율곡이 인심이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공시 (公是)와 공비 (公非)의 공론(公論)으로 하여금 동서논의의 기준으로 삼자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또한 율곡은 동, 서 대립의 조화와 분열
    사회과학| 2001.11.20| 6페이지| 1,000원| 조회(540)
    미리보기
  • 일본의 종교에 관하여 평가A좋아요
    Ⅰ. 서론나는 기독교인도 아니고 불교인도 아닌 무종교인이다. 내가 숭실대학교를 입학하면서 조금 부담스러웠던 부분이 미션스쿨이라는 점이었다. 누구나 필수적으로 매주 채플시간에 예배를 드려야하고 기독교 과목을 꼭 수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채플시간을 이수하지 못하면 졸업을 못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크리스찬이야 그 시간이 아무 부담없고 자신이 믿는 종교에 대해 배우는 것이니깐 좋겠지만 아무런 관심도 없는 나에게는 정말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시험을 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하긴 했지만 너무나 억지스러웠었다.특히 학기초에 벤치에 앉아있으면 한 명 또는 두 명의 여자나 남자가 조그만한 종이를 들고 은근슬쩍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너무나 친절하게 말을 걸어오고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얘기를 했더니 알고 보니 기독교를 전도하려는 사람이었다. 1시간도 넘게 설교를 들었는데 나중에는 정말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관심없다고 해도 계속 권유하는 그들의 의지에 정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아마 우리학교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 봤을 것이다.꼭 그렇게까지 해야만 할까? 그렇게 안 해도 기독교가 좋은 사람은 알아서 교회로 갈텐데 왜 사람들한테 피해를 주면서까지 전도를 하려고 할까? 그렇게 한다는 게 더 거부감을 일으킨다는 모르는 것일까?물론 그 사람들이야 너무 좋은 것이기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겠지만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옛날에 친구를 따라 교회를 간 적이 있다. 목사님이 설교를 하는 내용이 나에게는 참 한심하게만 들렸다. 도대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 왜 저렇게까지 해야만 하는지 정말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갑자기 기도를 하던 사람들이 신들린 사람들처럼 막 우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정말 너무 놀랐고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우리나라가 중동이나 동남 아시아처럼 한 종교만 숭배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종교적으로 심한 갈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같은 무종교인이 피해를 보는 것은 사실이고 종교간에 갈등도 적지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것은 단순한 모순, 혼돈이 아니라 「하나의 목적, 즉 현실생활에의 기여」라고 하는 것으로 통일되어져 있는 것이다.(1) 무종교가 아닌 무종교를 가진 일본인대체로 일본인은 종교에 대해서 너그러운 동시에 둘 이상의 복수 종교를 가지고 있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헌법에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엄격히 실행되고 있다. 따라서 국교라는 것이 없고 나라의 행사도 종교와는 일체 무관하다. 또 국립, 공립학교에서는 종교교육이 금지되어 있다. 그렇다 해도 천황 자체가 종교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완전히 종교가 평등하다고는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일본은 근대의 정치가들에 의해 신도가 종교가 아니라는 교육을 받으며 자신들의 생활에 깊이 침투한 종교에 대해 종교의 부정을 강요받았다. 그래서 지금은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의 왜곡된 종교관을 가지고 있다.일본인은 종교란 일본인의 마음속에서 어떤 교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자신들이 속해 있는 사회의 종교의식을 전혀 종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자연 종교는 메이지 유신이후로 천황제를 구심점으로 이루려는 시도에서 그리고 국제적인 정세에 어쩔 수 없이 종교가 아니라고 일본정부가 설명했던 개념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자연종교라고 하는 것이 일상의 생활습관으로 굳어 버렸기에 종교가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 의문이 드는 점이 있다.무종교라는 관념이 일본인의 머릿속에 들어가게 된 이유를 두가지의 커다란 줄기를 잡아 설명할 수 있다. 한가지는 메이지유신이후의 정치적인 이유이고 또 한 가지는 원래 일본인의 사상 속에 스며 있는 것들에 의한 것이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부세라는 사상, 즉 지금의 세상을 즐기라는 사상이 사람의 삶의 방식을 제공해주고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자연종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적인 이유로 든 것은 메이지유신 당시 국제정세에 의해 한사람을 중심으로 주도면밀하게 국가가 움직여야할 필요성이 발생하여 화합과 통합이 낳는 것이 무라의 일상의 평온함이고 이것을 일상주의로 설명할 수 있다. 일상주의는 일상에서의 평온함을 제일로 삼는 사고 방식으로 모든 일을 일상 생활의 편의에 맞추는 생활 태도를 낳게된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일상 생활을 희생해야 할 일이 생긴다고 해도 그 희생을 최소치로 줄이고 싶다는 판단이 작용하게 된다. 이러한 일상주의는 일본사회를 상당히 다신교적인 사회로 만드는데 일정한 도움을 주었던 것 같다. 새로운 신이 들어와도 그것에 따르는 잡음을 싫어하는 일본사람들로서는 그 신의 이전에 있었던 신도 버리지 못하고 새로 들어오게 되는 신도 버리지 못하고 다함께 수용하는 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만일 그 이전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새로 들어오는 신을 반대하게 된다면 이는 종교전쟁으로 이어질 것이고 그러면 즉 무라의 화합과 통합이 깨어짐을 의미하게 된다. 이것의 적절한 예가 바로 막부의 그리스도교의 탄압에서 잘 드러났다고 생각되어 지는 바이다. 이는 그리스도교로부터 자신들의 정치권력을 잃어버릴 것 같은 세력이 그리스도교 신도들을 탄압하면서 그들을 어쩔 수 없이 죽이게 되는 일이 일어났는데 무라의 통합이나 일상의 평온함과는 거리가 먼 조치임에 틀림없는 것이다.이러한 일상주의가 낳은 것이 많은 종교들의 왜곡이었다고 생각된다. 즉 유교와 신도의 결합이라든가 불교와 신도의 결합으로 원래 그 종교가 가지고 있던 성격이 많이 변하고 또한 신도의 성격도 많이 변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바로 생활의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악이라도 좋은 것이고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생활의 해를 끼치게 되면 그것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에서부터 출발한다. 유교와 신도의 결합은 신사에서 조상신의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알 수 있고 불교와 신도의 결합은 신도는 죽음을 부정적으로 보는데 반해 불교는 삶을 부정적으로 죽음은 깨끗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에 의해 여기서도 좋은 점만을 취한 일본인이 죽은 다음세계를 기원하기 위해 불교의 사후세계만을 받아들인 일본불교, 장의불교라는 것을중의 하나가 다양성이다. 이는 문화, 종교, 예술, 사상, 경제, 정치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서 나타나고 있다. 종교분야에서는 토착신앙에서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고 신의 종류가 수천이 넘는다는 범신론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 지금의 일본의 다양한 종교가 사람들에게 믿어 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즉 태어나서는 신도의식으로 결혼은 크리스트교의식으로 장례는 불교의식으로 치를 수 있다는 것은 여러 신이 있고 필요하면 그 신에게 부탁하면 된다는 사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이런 토착신앙이 신도로 이어져 그 기반 위에 일본식 불교나 일본식의 유교가 발달한 것이다. 초월적인 신이 없고 무수한 신이 공존하는 일본의 신도가 보여주듯 외래에서 들어오는 신앙의 초월적인 가치는 일본 안에서 해체되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면만이 남겨진다. 이것이 일본의 현세성인 것이다. 즉 일본은 불교를 받아들여 주문을 외며 부처의 도움을 받아 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면하는 것이나 일족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우는 절과 같은 현실적인 면만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또한 기독교가 일본에 들어오는 과정을 보면 더욱더 이것을 알 수 있는데 기독교는 초월적인 신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이기 때문에 일본의 사상과는 맞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은 그러한 사상적인 면보다는 기독교와 함께 들어오는 서양문물에 더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가 일본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이러한 일본 문화의 특징이 사상적 기반을 갖는 종교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3) 일본의 종교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일본에 종교가 없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존재양식을 취하며 존속해 왔다. 특히 신도와 불교는 고대이래 생활 속 깊숙이 뿌리내려 일본문화의 저변을 형성했다. 현재 일본은 종교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돼 있으며 국교가 따로 없다. 신도, 불교, 유교, 기독교 등의 기존종교 외에 최근 등장한 신흥종교가 사회문제를 야기하며 교세를 확장하고 있다.1. 신도(神道)신도는 일본고유의 자연종교다. 원래 자연물이나 자연현상 본에 전래된 이래 발전을 거듭하여 왔다. 호류지를 세운 쇼토쿠 태자 등에 의해 불교는 뿌리를 내리고, 나라 시대에 일시 호국불교적인 성격도 있었지만 헤이안 시대 때까지 불교는 귀족들의 일족을 위한 종교로서 발달하였다. 그러나 중세에 들어서부터는 뛰어난 고승들이 나타나 서민이나 무사들을 위한 새로운 종파를 속속 열고 전파에 진력하였다, 가마쿠라 신불교의 기운은 전계층·전지역으로 확대되고 각종 종파가 창설되었다. 한편에서는 무사들을 중심으로 선종이 보급되었다. 선종의 좌선수양 등의 수도법은 지배계층인 무사들에게 받아들여진다. 또한 오늘날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의 하나가 된 다도, 꽃꽂이 등은 이 때 선종을 따라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다.근세 들어 불교사원은 주민들의 신앙과 장례, 의료 등을 책임지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에도막부의 통제하에 놓여 세속화되기도 하였지만 막부는 조선왕조와 같은 강력한 억불숭유 정책을 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독교를 막기 위하여 모든 주민을 주변의 특정 사원에 가족묘지를 갖게 하고 신자로 등록시켰다.또한 사원이 장례의식을 전담함으로써 당시의 유교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종교로서의 역할이 강화되었다. 사원은 대부분 산속이 아닌 주택가 주변에 자리잡고 사원 한쪽에 가족납골당이 늘어선 묘지를 갖게 되었다.근대 이후 메이지정부의 신불분리령과 폐불훼석 운동에 의한 신도국교화 정책에 의해 불교계는 커다란 타격을 받아, 많은 사원이 황폐화되고 승려의 환속이 속출하는 위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새로운 근대사회에서의 시민불교로 거듭 나기 위한 불교근대화 운동이 일어나고, 교육문화에도 힘을 쏟아 종문별로 고등교육기관을 설립하였다. 패전 후에는 세계불교로 성장·발전을 꾀하고 있다.현재는 나라시대의 화엄종, 법상종, 율종, 헤이안시대의 천태종(개조는 사이쵸), 진언종(개조는 구카이), 그리고 가마쿠라 시대에 생겨난 정토종(개조는 호넨), 정토진종(개조는 신란), 시종(개조는 잇펜), 니치렌종(개조는 니치렌), 선종인 임제종(개조는 에이사이), 조동종(개조는 도겐)었다.
    사회과학| 2001.06.01| 10페이지| 1,000원| 조회(1,765)
    미리보기
  • APEC의 현황과 비전, 실천과제 평가B괜찮아요
    오늘날 세계 경제질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분위기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인한 양극체제의 붕괴는 각국의 탈정치화를 촉진시켰으며,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에 따라 국제 교역질서는 공정무역의 기본틀에 근거하여 형성되어 나갈 것이나, 무역의 자유화 과정은 WTO이후에도 많은 부문에서 계속될 것이다. 이에 따라 각국은 자국의 경제적 실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선진국을 중심으로 자국의 고용을 증대하는 한편, 국내시장이 일방적으로 잠식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교역상대국에게 시장개방 압력을 가하는 이른바 공격형 개방주의 경향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흥미로운 사실은 선진국에 의해 주도되는 공격형 개방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지역주의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지역주의 추세의 심화는 유럽의 변화에 기인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는데, EU는 마스트리히트조약을 발효시킴으로써 완전경제동맹에 한걸음 다가섰으며 점차 단일합중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편 여타지역에서도 그에 대한 대항적인 성격의 지역주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데 미국·캐나다·멕시코 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미 국회에서 비준됨에 따라 EU에 버금가는 무역블록으로 등장하고 있다. 또한 EU통합과 NAFTA 출범에 자극 받은 지역협력에 대한 논의가 아·태 지역에서도 시작되었는데 1989년에 창설된 아·태 경제협력체(APEC: Asia Pacific Economic Cooperation)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다.이렇듯 역동성이 높은 아·태 지역에 지금까지 이렇다할 역내(광역)경제기구가 형성되어 있지 않았었다는 것은 특이한 일이다. 그러한 배경에는 세 가지 이유로 생각된다.첫째는 아·태 지역의 역동적인 경제성장은 시장주도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물론 각국 정부의 대외지향적인 정책성향도 중요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민간부문에서 일어난 상호작용, 즉 수출입, 직접투자, 자본의 이동 그라고 공표하였다. 동 선언을 통하여 APEC이 비로소 협력기구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다.제2차 각료회의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협력사업은 APEC의 기능적 접근을 잘 나타내준다. 협력사업은 회원국의 공동이해관계를 고려하여 회원국간에 갈등의 소지가 적고 협력의 성과를 비교적 쉽게 가시화 할 수 있는 부문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10개의 실무반에서 추진되는 공식적인 협력사업 외에, 경제위원회에서는 아·태 경제간의 상호이해 증진을 위하여 각국의 거시경제 동향 및 전망을 논의하고 있으며, 무역투자위원회는 무역정책 대화, 관세율 데이터 작성, 통관절차 조화, 시장접근관련 행정규제 개선, UR결과 검토, 저명인사그룹의 보고서 검토 등의 주요과제를 추진함으로써 역내 무역자유화 및 투자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무역투자위원회 설립의 근거가 된 제5차 각료회의에서 채택된 무역 및 투자 기본틀에 대한 선언(TIF)은 APEC 성과의 조기 가시화를 위한 것이다. 동 선언은 역내 무역자유화를 단계별로 추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써, 우선 무역자유화의 근거를 마련한 후 추진과제의 선정 및 실행을 통해 실질적으로 무역자유화를 실현시키자는 것이다.한편, 1993년 11월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제1차 APEC정상회담에서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의 정상들은 아·태 경제권의 창설을 천명하였으며, 1994년 인도네시아 보고르에서 개최된 제2차 정상회담에서는 제 1차 정상회담 때 제시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이행조치의 합의를 그 내용으로 하는 보고르선언을 채택함으로써 APEC의 실질적인 진전을 이룰 수 있는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보고르 선언은 아·태 지역에서의 자유롭고도 개방적인 무역과 투자를 성취하기 위한 구체적인 일정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동 지역의 장기비전은 개방적 다자간 무역 체제에 대한 APEC 지도자들의 확고한 의지를 반영하고 있으며, 특히 무역자유화에서 파생되는 경제적 이익을 역외국가와도 무차별적으로 공유한다는 의미의 개방적 지역주의 개념에 기초하ic Committee, EC) 설립ㅇ APEC Business Advisory Forum 구성 원칙 합의ㅇ 한국의 APEC 차세대 지도자 육성계획(ANGP) 및 미국의 APEC Education Foundation 설립 계획 환영ㅇ APEC 비구속적 투자 규칙(Non-Binding Investment Principles : NBIP) 채택- 회원국의 경제발전 단계와 산업구조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역내 무역·투자 자유화에 의미있는 성과를 도출함.※ APEC 투자원칙 12개 항목1 역내 투자에 대한 내국민 대우2 투자 이행 요건의 완화3 과실송금 제한의 해제4 투자 관련법규의 명료화5 회원국간 무차별 원칙의 적용6 건강, 안전, 환경법규완화 등을 투자촉진책으로 활용 지양7 수요의 제한 및 보상8 투자관련 분쟁의 합리적 해결9 투자유치국 법규 준수 노력⑩ 회원국간 자본이동 장벽 제거⑪ 체류비자 등 투자관련 직원이동 장벽의 제거⑫ 이중과세방지ㅇ 인력자원개발 선언 채택 (교육과 훈련의 중요성 강조)ㅇ 한국의 APEC 비회원국 참여 및 사무국 조직 강화 필요성 역설- 사무국 조직 강화를 위한 Task Force 설치- 러시아, 페루의 Working Group 참여문제는 1995 각료회의시까지 재검토하기로 함.ㅇ 중소기업 정책 임시협의회 가동7. 제 7차 각료회의 (오사카, 1995.11.16∼17) 결과ㅇ APEC 자유화 행동지침(Action Agenda) 내용 확정ㅇ APEC 경제인 자문위원회(ABAC) 설치- 1994년 정상회의 및 각료회의 결정사항에 기초하여, 구성 및 활동에 관한 지침 합의ㅇ 비회원국의 APEC 실무그룹 참가 지침서 채택- 비회원국의 APEC 실무그룹활동 참가 여부를 해당 실무그룹과 SOM에서 1년 단위로 결 정함.- 참가기준은 시애틀 각료회의의 지침에 따라 아·태 지역이라는 지리적 요건을 주요 고 려요소로 하되, 역외국가에 대해서도 수산, 해양자원 보존 등 전문성이 요하는 실무그룹에 대해서는 참여 가능성을 고려하도록 함.※ 신규회원국 가입 문제상의 타결 및 OECD가입 전망 등으로 무역진흥을 위한 정책수단도 제약을 받고 있다.이와 같은 여건하에서 무역규모의 배증과 무역수지 균형기조 정착을 위한 기본정책방향으로는 첫째, 수출상품구조를 중화학·기술집약제품 위주로 고도화하고, 경공업제품도 고부가가치화함으로써 높은 임금 등 변화된 경제여건 하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하며, 둘째, 품질, 브랜드 등 비가격경쟁력 제고를 위해 독자적인 해외마케팅 체제를 갖춘 선진 무역국으로서의 지위를 구축해 나가려는 정책을 펴고 있다. 셋째, 무역의 지속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무역관련제도 및 절차를 WTO 등 국제규범에 일치시키고, 수출지원제도를 선진화하며, 유통 및 정보화 등의 하부구조를 확충해 나갈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4) 자본협력의 강화세계의 각 기업들은 투자지역을 찾아 생산설비를 이동하는 경영의 지구촌화를 추구하고 있고 각국은 외국인투자를 유치하여 국내고용을 늘리고 선진기술을 습득하여 경제성장의 동인으로 삼기 위해 경쟁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한 날 경제를 선진경제로 한 걸음 도약시키기 위해서는 선진기술·경영기법의 이전 및 개발을 촉진함으로써 기업경영의 지구촌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서는 외국인 투자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국내기업의 해외투자를 적극적으로 촉진해 나간다.이에 한국전부는 계획기간 중 외국인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외국기업의 자유롭고 원활한 국내경영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나가는 한편 기업경영의 지구촌화, 지역주의 경향, 산업구조조정 필요성에 적극 대응하기 위하여 해외투자정책을 규제 위주에서 촉진 위주로 과감히 전환하고 국제기업의 해외진출확대도 적극 도모하고 있다.(5) 개도국 경제협력의 확대한국경제의 개방과 국제화가 진전되고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높아짐에 따라 개도국에 대한 경제협력이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개도국과의 교역은 최근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에 있으며, 해외투자의 경우도 국내임금상승에 따라 중국·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 개도국여야 할 것이다.7 개발 및 기술협력개도국과의 원활한 협력관계 설정 및 필요분야에서 기술도입의 원활화를 위해 동 부문의 협력에 적극적으로 찬성해야 한다. OECD 가입시 ODA 확대 의무를 지게 될 것인데 이를 APEC에서의 개발협력과 연계하여 추가적인 부담 없이 대개도국 협력강화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3) 한국의 역할APEC은 한국이 유일하게 참가하고 있는 경제협력체이며 개방적 지역주의를 표방함으로써 앞으로 세계경제질서 재편에 주도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에 APEC의 창설과정에서부터 호주와 함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던 한국은 APEC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APEC의 강화에 일조를 하여야 한다.한국은 APEC을 통하여 범세계적인 지역주의 심화경향에 대처하고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아·태 경제와의 협력관계를 강화할 수 있으므로 APEC이 활성화될 수 있는 제반조치를 취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한국은 APEC의 무역투자 자유화 추진을 위한 중추적 기구인 무역 투자위원회(CTI)의 초대의장국으로서 역내 무역·투자자유화를 활용하여 산업구조 조정에 필요한 자본을 유치하도록 노력하는 한편, 투자에 수반되는 기술이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또한 한국은 아·태 지역내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대립을 완화하는 중개자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협력의 진전속도에 대한 합의 없이는 원활한 협력을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역내경제의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여 선진국과 개도국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아·태 경제협력이 대외지향적 성장전략을 채택하고 있는 개도국에게 궁극적으로 득이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개도국이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경제협력에 임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또한 일본시장의 개방, 미국시장의 개방성 유지, 선진국으로부터의 기술이전 등 쌍무적으로 해결하기 힘든 현안들을 APEC의 틀 안에서 논의하도록 유도해야 하며, 동 현안들의 해결을 위한 역내국간 정책협조의 한다.
    경영/경제| 2001.05.16| 20페이지| 1,000원| 조회(1,021)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12
12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0
  • A좋아요
    3
  • B괜찮아요
    9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02일 토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6:50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