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네장 (Minnesang) 』서사시와 마찬가지로 기사의 생활 감정과 문화 이상을 문학적으로 독특하게 표현한 것이 민네장 (Der Minnesang)이다. 이 시대의 문학을 평가하는데 있어 이 연애시에 최고의 위치를 부여하였다. 궁정 서사시인이면 누구나 다 민네장 시인으로서도 인정을 받으려고 애썼지만, 민네장 시인은 서사시인으로 인정 받으려 노력하지 않았다. 민네장의 권위자가 된다는 것은 특별한 명예로 여겨졌다. 여기에서는 노래가 그대로 문학이 되었다. 시인은 작곡가인 동시에 자신의 가요를 노래하는 가수였기 때문이다.프랑스의 궁정 서사시는 귀부인, 영주부인, 군주부인들 사이에서 이전에 유럽에 존재하지 않았던 아주 새로운 평가를 얻게 되었다. 음유시인(11~14세기경 남프랑스지방의)들은 구애와 열망의 노래를 읊어 귀부인들의 궁정에 받아들여지려고 애썼다.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높은 품위를 지니거나 스스로가 지체높은 귀족출신들이었다.구애는 대게 허구적이며, 충성 또한 비유적일 뿐이다. 궁정가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의 모험이 아니라 구애이다. 음유시인이 남편의 질투를 불평하고 귀부인과의 밀회를 방해하는 감시인들에 대해 격분하면 할수록 귀부인의 미덕은 더욱 더 빛나는 광채를 발한다. 청을 들어 달라고 비는 것과 거절하는 귀부인의 매정함을 푸념하는 것은 경의를 표하는 일..즉, 정중함과 친절한 행동의 표현이었다. 이 모든 것은 순종적 봉사, 불타는 갈망과 거부된 애정으로 이루어지는 궁전오락이었다. 노래가 우아하고, 철저하게 암시적이며, 감동적일수록 궁정가인의 기술은 더욱 더 완벽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귀부인을 높은 자리에 올리는 것은 사랑의 관계가 여태까지 알려지지 않은 방법으로 사회적으로 상승, 순화되었으며, "사랑(민네)"에 순수한 정신적 의미가 부여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민네장의 생성에는 많은 요소들이 함께 작용했다.구 귀족보다 편견이 덜하고 남부에서 영지를 보유하고 있는 영주부인들의 총애를 갈망하는 하급귀족들, 어린 기사들의 교육이 귀부인들에게 맡겨졌던 상황, 허구적 유희를 즐기려는 당시의 풍조, 모든 물질적 근심에서 해방된 궁정의 관능적 쾌락의 증가, 그리스도교적 신비설과 카발라의 신비설(=헤브라이 신비설), 성모마리아 공경, 동양 세계와의 접촉,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페인에 있던 부유한 아라비아 궁정들과의 접근 등이 그러한 요소들이다.초기 궁정 서정시 (1150~1170)초기 궁정 서정시는 프로방스 지방의 세련됨이 효력을 발생하기 전에 주로 바이에른-오스트리아 지역의 도나우에서 형성되었다. 이때 노래에는 사실적 연애관이 나타나 있을 뿐 아니라 자연스런 생활감정의 표현이며, 사랑 예찬이 없는 민네장이기도 하다. 시들은 허구적 자아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 혹은 여자의 입에서 울려 나오며, 퀴렌베르크연으로 된 것이고, 니벨룽겐 노래의 운율과 유사하다. 초기 민네장의 독창적인 업적은 이른바 "교대"라는 것이다.로만어 단계 (1170~1190) 긴장감이 덜한 구 귀족의 연애시는 정열적이며 정교한 프로방스의 노래에 의해 밀려나갔다. 프로방스의 노래는 1170년 라인 강 상류에서 나타났으며 본래의 민네장이라 불리웠다. 「높은민네(Hohe Minne)」즉 응답 없고 보답 받지 못하는 봉사는 이제 서정시의 주요 테마가 된다. 사모, 아득한 것에 대한 동경의 모티브, 소망을 이루지 못한 사람의 말 못할 고통이 형상화되고, 내적 체험이 분해 되면서 민네에 대한 모든 규범이 변화된다. 장행의 연은 사라지고 4운각의 시구가 유행하게 되며 로만어의 10음절 및 11음절의 시가 모방되면서 형식에 변화도 나타난다. 장단단격이 자주 사용되었고 여러모로 뒤엉킨 삿운들은 연으로 연결되어 확대된다. 간단히 말하면 전테의 형식유형들이 엄청나게 풍부해진다는 것이다. 이 업적을 수행한 사람은 프리트리히 폰 하우젠 (Friedrich von Hausen:1150~1190)과 그의 학파였다.높은 민네(Hohe Minne)기사서정시의 정신적 전제가 된 것은 커다란 문화적 의식에 함양된 사랑(Minne)의 봉사였다. 민네장은 서사시보다는 아주 비현실적으로 극도의 정신적 양식화와 경험한 현실의 전형화를 감행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형식은 후대에 가서 개인적 체험과 궁정의 관습의 구별을 매우 어렵게 했을 뿐 아니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서정시는 비개인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사교의 놀이이며 궁정의 오락이다. 그렇지만 훌륭한 시인들은 서사시의 경우에 있어서처럼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가진 깊은 표현과 음향을 이 서정시에 부여한 것이다. 신분이 높은 기혼 여성에게 사랑을 바치고, 애절한 구애를 하고, 여성을 찬양하고, 지칠 줄 모르는 열렬한 탄성을 올리는 것이 언제나 중심 문제였다. 높은 민네는 관능의 충족을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고조된 감정과 동경하면서 감내하는 열망을 희구하는 것이다. 관능이 정신화되고, 사랑하는 여성은 도달하기 어려운 이상으로서 숭배를 받는다는 점에 있어서 낮은 민네(niedere Minne)와 차이가 있었다. 사랑의 봉사는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것은 감각과 마음을 궁정적, 도덕적으로 순화했다. 군주의 부인에게 봉사하는 일은 귀족의 표증이며, 자기의 혼을 고양시키고 인간정신을 세련시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목표가 높으면 높을수록 마음의 긴장은 커졌다. 성애적인 것이 거의 신비적으로 체험되었다. 이리하여 정열은 아름다운 형태를 갖고 이상의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기사의 모든 덕목[견고, 성실, 예의, 명예]은 사랑의 봉사에서 실증되었다.사랑의 봉사는 '고상한 마음' 즉 모든 높은 것과 머나먼 것, 그리고 모험적 행위에 대하여 이상적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마름의 각오를 주었다. 이 민네는 본능적인 것과 대비되고 있으며, 안드레아스 카펠라누스의 '사랑에 대하여'에서 언급하고 있는 바와 같이 '모든 선의 근원'이다.궁정의 민네장은 예배와 정신적 동질성을 갖게 되었다. 성애적 언어와 종교적 언어가 혼합되어, 동시에 이것과 평행하여 봉건적 복종에 대한 방향도 나타났다. 민네의 노래는 얼버무려 암시할 뿐이며, 사실적으로 파악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알레고리적으로 표현하는 언어를 찾아내고, 마음이 불타오르거나 슬픈 경우에도 억제된 어조를 쓰려고 하였는데, 그것은 가령 현실이건 또는 허구이건, 열망과 포기, 정열과 거절, 희망과 단념 사이의 긴장이 아무리 클지라도 그랬던 것이다. 비밀스러운 사랑의 모임을 감시하는 자나 엿보는자, 시기하는 자나 경쟁자에 대한 허구적인 또는 실제적인 싸움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티브의 다양화를 가져왔던 것이다.절 정하인리히 폰 모룽엔 (Heinrich von Morungen:1150~1222) 과 더불어 독일의 민네장은 그 절정에 이르렀다. 그의 작품들은 더 이상 규범을 따르려 하거나 규범에 복속시키지 않았다. 그의 노래들은 비범한 감성을 정교하게 끼워 넣은 연과 유희적 느낌을 주는 운율기술로 가득차 있다. 정열로 가득찬 서정시를 쓴 모룽엔과 정반대되는 사람은 라인마르 폰 하게나우 (Reinmar von Hagenau)였다. 감수성이 뛰어난 이 시인은 암시, 은유, 애매모호한 어법 구사의 대가였다. 다양한 관계로 서로 연결된 연들에서 그의 예술의 근본사상인 사랑의 봉사의 부질없음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번뜩인다. 라인마르는 자기의 시에서 비교적 개인적인 음조들을 제거시킨다. 그는 풍부한 뉘앙스로 높은 민네라는 한 가지 이념을 늘 새롭게 변화시켜 형상화시킨다. 그러나 중용을 갖춘, 능란한 문체의, 영화된 그의 노래는 하나의 종말을 의미했다. 그는 형식은 물론 내용면에서도 더 이상 고양시킬 능력이 없었다. 가장 위대한 서정시인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가 새로운 길을 제시하였다.♣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 (Walther von der Vogelweide)그에 의하여 우리들은 독자적인 소리를 가진 문학과 만나게 된다. 그의 문학은 시인의 외면생활을 거의 가르쳐 주지는 않으나 시인의 내면의 모습을 비추어 주고 있다. 그의 문학은 여러 가지의 것을 합한 하나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즉 귀족의 교만한 절신, 불굴의 용기, 격하기 쉬운 성격, 침착하지 못한 표류와 생활고, 궁정 감각과 따뜻한 인간성, 왕성한 생명력과 감동하기 쉬운 마음, 그리고 정치적 사고와 국가적 의식이다. 그는 아름다운 것과 선에 대하여 애착을 가졌으며, 투쟁과 환멸이 되풀이 되는 험난한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강한 신앙과 밝은 현세감각을 가지려고 끝내 노력했다. 발터는 1170년경에 오스트리아에서 탄생했으리라 추측된다. 오랫동안 그는 빈의 궁정에서 라인마르 곁에서 지냈다. 스승을 능가하는 발터의 강한 기질은 라인마르에게 반항했다. 젊을 때부터 이미 이시인의 명랑하고 쾌활한 성격은 특징적이다. 귀부인의 정신적인 고매함에다 그는 생명력이 넘치는 젊은 처녀를, 단순한 정신적인 사랑에다 진정한 피가 상통하는 애정을, 그리고 참고 접근하기 어려움에다 자상한 헌신을 대비시켰다. 그는 미의 유희와 궁정의 허식을 자연과 삶의 충일로 변화시켰다.
한일 TV 제작 시스템의 비교*** 시작하면서 ***21세기의 미래 정보화 사회와 뉴 미디어 산업 시대에서는 영상산업이 각광을 받게되고, 어느 나라가 영상제작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나라의 경제를 좌우하게 될 것이고, 그 나라의 문화를 존속시키고 발전시킬 것이다. 또한 상품으로써 세계의 방송망을 타게 될 것이다.과학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발달하기 시작한 영상매체는 영화와 텔레비전으로 대표된다. 그러나 영화는 장소의 제약이 크고 익명의 관객에게 향유되는 반면, 텔레비전은 주로 가정이라는 일상적 배경 속에 놓여있어 그 영향력의 범위가 훨씬 넓고 구체적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두 영상매체는 모두 대중성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각기 다른 길을 가고 있다.우리나라의 경우 60년대 초반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된 이래 40여 년이 지나는 동안, 텔레비전은 수상기의 보편화와 더불어 매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21세기를 맞이한 지금 그 영향력은 더욱 더 증대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그러므로 앞으로는 영상제작의 환경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즉 제작기술의 노하우와 제작기획의 능력 그리고 창의력이 있는 인력 등으로 좌우하게 될 것이다.영상산업은 전자기술과 컴퓨터 기술의 발전 그리고 전자매체의 확산으로 인해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확대되고 있다.그러나 이렇게 급변하는 21세기의 뉴 미디어 시대를 맞이하여 우리나라의 TV제작의 환경은 그다지 포지티브(positive)하지는 않다. 텔레비전 방송국들의 영상제작 독점으로 제작환경이 확대되고 있지 않아서 창의력 있는 영상제작의 인력들이 아웃사이드로 맴돌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한 졸속제작으로 프로그램의 완성도는 떨어지고, 시청률에 따라서 프로그램이 늘어났다 줄었다하는 엿가락 편성이 부끄럽기 한 실정이다.앞으로의 일본방송의 본격적인 개방시대를 앞두고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일본문화의 종속화에 우리의 문화는 물 속으로 가라앉게 될 것이다. 따라서 과연 TV가 우재에 대한 인본주의적 신화에서 나왔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결론적으로 이 접근 방법은 노동의 분화, 계급대립, 지역문화, 경제적인 차별과 다양한 하위문화 등의 발전을 낳은 역사적인 과정을 무시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으며, 그보다는 오히려 심리적 욕구를 선호한다. 이 가정이야말로 우리가 일본 방송을 맞이하는데 있어서 간과해서는 안 될 관점이다.셋째, 기능주의(Functionalism)는 텔레비전이 시청자 자신의 심리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다소 의식적이고 적극적인 방법으로 이용된다고 가정한다. 기능적인 분석은 한 체계의 서로 다른 부분들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데, 이는 부분들이 어떻게 작용하며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 밝히기 위해서이다.텔레비전에 있어 (개인적) 시청자, 커뮤니케이터, 사용되는 채널 그리고 확인될 수 있는 (혹은 더욱 잘 계량화할 수 있는) 시청자의 사회, 문화적 경험에서 오는 외적 요소들 사이의 관계는 모두 상호작용이라는 견지에서 기술된다. 기능주의의 개념은 확고한 사회학적 원칙에서 나왔으며, 매스커뮤니케이션 영역에 도입되어 초기의 자극-반응 가설의 범위를 확장시켰다. 이 개념으로부터 발달한 가장 최근의 연구가 '이용과 충족'이론이다.위에서 기술한 이론들을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텔레비전이 좋든 싫든 간에 그것을 보는 시청자와의 사이에서 일종의 커뮤니티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 점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 나라는 일본문화를 단계적으로 개방해 오면서도 텔레비전만은 가장 뒤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TV 제작환경 ***1) 편성(編成)의 비교일본의 텔레비전 방송국의 역사는 1953년도에 시작했으며 컬러방송도 1960년도에 시작되었다. 그리고 하드웨어에 있어서는 미국을 앞질러 세계 텔레비전 방송국의 모든 방송기자제의 90%를 독점하고 있다. 특히 방송영상의 테크닉을 영화영상의 테크닉만큼 발전시킨 데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일본의 공중파 TV 채널 수는 도쿄의 NHK 1과 2의 공영방송가 25.1%, 교양이 22.7%, 오락이 52.2%로 되어 있고, SBS는 보도가 12.9%, 교양이 32.9%, 오락이 54.2%(1999년 5월 기준의 문화관광부의 자료)로 구성되어 있다.일본과 한국의 프로그램 편성에서 나타나듯이 우리 나라 방송국의 오락 프로그램은 MBC가 52.2%이고, SBS가 경쟁이라도 하듯이 54.2%로 편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텔레비전 방송의 특징을 무시하고 단지 시청률에 급급한 나머지 국민의 정서를 무시한 편성으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이러한 편성비율과 함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점은 모든 프로그램 제작을 자체적으로 독점화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우리 나라 방송국의 외주 비율은 20%이지만 자회사에서 제작한 7%의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13%에 불과한 실정이다. 외국의 경우에는 일본은 5대 민영방송국 기준으로 평균 80%이상을 외주 제작을 하고 있으며, 프라임 타임대에 1시간 이상의 외주 프로그램을 의무화해서 외부 독립 프로덕션을 발전시키고 있다.이런 편성은 무엇을 의미할까?우리 나라 사람들이 일본사람들 보다 단지 놀기를 더 좋아하고, 교양이나 시사 프로그램에는 관심이 없어서 이런 차이점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상업방송의 천국이라는 일본에서조차도 우리 나라보다 오히려 더 교양이나 시사 프로그램에 관심을 쏭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일본인 특유의 본능에 기인한다.일본인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커뮤니티(community)를 매우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것은 일본인들의 집단주의와 관계가 있다. 일본에는 집단주의의 대표적인 예로 이지메가 있다.뭔가 전체 대열에서 낙오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 그러므로 그 대열에서 낙오된 자들은 우리의 집단에 있을 가치가 없다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것이 일본 사람들이다.일본의 상업방송들조차 편성비율에서 오락프로그램이 40%를 넘지 않는 것은, 다름 사람들에게 뒤떨어지면 안 된다는 의식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보도, 교양, 교육 프로그램을 찾았다. 그러나 80년대 중반 . 그러나 '뉴스 스테이션'은 다른 저녁뉴스보다도 긴 90분 동안 방송되었다. 더군다나 앵커는 코미디언 출신의 '구메 히로시'였다. 그는 다른 앵커들과는 달리 자신의 코멘트를 덧붙였다. 이 뉴스의 지론은 중학교 학생이라도 이해하기 쉽게 뉴스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물론 시청률 경쟁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였지만, 어떻게든 전체(집단)를 아우르려는 일본인 특유의 정신이 발휘된 결과물이었다. 결국 이 뉴스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여러 유사 프로그램을 낳게 되었다. '뉴스 스테이션'에 자극 받아 우리 나라에도 비슷한 형식의 뉴스가 시도된 적이 있다. 바로 SBS 창사 초기에 방송되었던 '8시 뉴스'이다. 한 시간 빠른 뉴스를 표방하면서 시작된 이 뉴스는 기본 포맷까지 '뉴스 스테이션'을 그대로 따왔다. 심지어 진행자까지도 이때까지의 관례를 깨고 영화배우 이혜영을 기용한다. 그러나 '8시 뉴스'는 성공하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성공하고, 우리 나라에서는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집단주의에 있다. '뉴스스테이션'은 모든 사람들을 더욱 쉽게 포용하기 위해 뉴스의 기본적인 형식을 포기하였고, 그것을 집단들이 호응하고 따라와 주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물론 '8시 뉴스'의 제작상의 허점도 많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런 형식의 뉴스를 대중이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뉴스를 보는 계층은 어느 정도 한정되어 있었고, 꼭 무리하면서까지 뉴스를 볼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2) 제작 환경의 비교지난 50여 년간 텔레비전의 제작환경과 방법기법들은 다양한 변화와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한가지 변함없는 텔레비전 제작의 특성은 팀(Team) 작업이라는 것이다. 가장 간단한 프로그램에서 가장 복잡한 프로그램까지 텔레비전은 많은 전문인과 숙련된 기능인들 그리고 다양한 예술가들의 공동작업과 협조만이 좋은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그 분야의 전문화된 팀이 필요하다.분야별로 다른 특성과 기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목표를 성취하려 하는데 있어 없을 것이다. 많은 영상 연출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능이나 능력으로 뽑지 않고, 시험을 거쳐서 뽑고 나서 고급인력을 수년간 교육시킨 후에 연출가로 입문하는 것은 마치 피아노도 못 켜는 사람에게 무대 위에서 연주하라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게 있겠는가? 그리고 말도 잘 못하는 수십 명의 탤런트를 뽑은 후에 1년이 지나면, 불과 몇 명만 출연시키고 나머지 탤런트들은 버리고, 1년마다 다시 뽑는 제도는 프로그램의 독점화와 오락 프로그램의 과다 편성으로 인한 연기자들을 잡아두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오는 폐해이고, 인권 보호적인 측면에서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이러한 모든 무리수의 원인은 80%이상을 자체 제작을 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보도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모든 프로그램을 사전제작 시스템으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드라마의 경우에, 프로듀서가 미리 작가를 선정하고 대본을 완성시킨 후에 작품에 맞는 프리랜서 연출가를 선정한다. 그리고 드라마의 경우에는 방영회수를 결정하고 30회의 분량이면 30회의 대본을 완성시킨 후에 제작에 들어간다. 우리나라와 같이 방영이 되면서 작가들이 집필하는 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대본의 수정이 끝나면, 연출자는 스텝을 구성하고, 연기자는 오디션을 거쳐 선발하고, 제작에 들어간다. 작품이 완성된 후에는 TV스크린을 거친 후에 방영이 결정된다. 심지어는 뉴스취재의 경우에도 부분적으로는 외부 제작에 의뢰하고 있고, 교육 프로그램과 교양 프로그램 그리고 오락 프로그램도 외주(外主) 제작을 통해서 드라마의 제작과 같은 시스템으로 제작을 하고 있다.이러한 시스템이 이루어 질 수 있는 제작 환경은 약 900개의 독립 프로덕션이 있기 때문이고 그들이 방송국에 납품하기 위한 경쟁력은 치열하기 때문에 창의력 있는 프로그램이 제작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텔레비전 방송국이 프로그램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약 30~40개에 불과한 독립 프로덕션이 설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프로그램이 일본의 프.
********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헤세는 독일의 소설가이자 시인이다.그는 독일 남쪽에 있는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1877년에 출생하였다.그의 아버지, 요하네스는 목사였다. 외조부 헤르만 군데르트는우수한 신학자로, 인도에서 다년간 포교에 종사 하였고, 그 인격과인도 학과 수천권의 장서는 헤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가 내면세계에 대하여 보다 동양 적인 색채를 띌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영향때문이 아니었나 싶다.어머니 마리는 인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교육을 받았고 인도로돌아가 그곳에서 영국인 선교사와 결혼하였으나, 그와 사별 후칼프에서 요하네스와 재혼하여 그를 낳았다.헤세는 4 세부터 9세까지, 한때 스위스의 바젤에서 지낸 것 외에는대부분 칼프에서 지냈다.그는 부모의 희망대로 1890년 라틴어 학교에 입학하고, 이듬해에 어려운 주 시험을 통과하여마울브론의 신학교에 들어갔다.#헤르만 헤세{{그러나 미래에 시인을 꿈꾸던 헤세는 신학교의 속박된 기숙사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그곳을탈주, 한때는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하였다.노이로제가 회복된 후 다시 고등학교에 들어갔으나 1년도 못되어서 퇴학당하고 서점의 견습 점원이 되었다. 그 후 한동안 아버지의 일을 돕다가 병든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칼프의 시계 공장에서 3 년간 시계 톱니 바퀴를 닦으면서 틈틈히 할아버지의 서재에서 책을 읽으면서 문학 수업을 시작하였다.1895년 가을 튀빙겐의 서점에서 다시 견습 점원이 되었고 그는 이 서점에서 많은 책을 읽었고 교수들과의 친교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 처녀 시집 “낭만적인 노래 Romantiche Lieder"(1899) 와 산문집 “자정이후의 한 시간 Ein Stunde hinter Mitternacht"(1899)을 출판하여 R.M. 릴케에게 인정을 받았다.헤세는 이로써 시인으로 입신할 기회를 얻게 되었지만 그의 이름을 유명하게 하고 그에게 확고한 문학적 지위를 얻게 해준 것은 그의 최초의 장편소설 "페터 카멘친트 Peter Cam상황을 겪게 되는데 그의 아버지의 죽음과 아내의 신경병 악화, 그리고 아들 병의 악화를 겪게 된다. 그때 그는 자신도 극심한 우울증에 걸려 요양소에 입원하게 되고 정신분석학자인 랑박사에 의해서 치료 받게 되면서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그 이전까지 그가 주장한 것은 ‘자연으로의 귀환’ 이었는데 이것으로는 전체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그의 내면속의 ‘나’를 찾는 것으로 생각을 변화하게 된다. 그는 ‘자신과 세상이 그토록 고통을 가졌다면 그것은 바로 내 자신에 무질서가 있어서 이다’ 라고 변화 하게 된다.그때부터 그는 많은 여행을 하였고 특히 인도 여행으로 동양에 대한 관심이 깊어 지게 되었다. 그리고 또한 그의 정시적인 편력도 다양해 지는데 그 이전까지 그가 기독교 중심적이었다면 그 이후 유태교, 인도교, 중국의 사상 선불교, 괴테, 니체등을 깊게 파헤치고 그것을 자기 창작의 밑거름으로 삼았다.그 사상의 변화 이후 나온 것이 바로 ”데미안 Demian"(1919)이다.그후 그는 자기의 세계관과 인도 철학을 아름답게 조화한 “싯다르타”(1922)를 완성하였고 1946년 노벨 문학상과 괴테상을 받게한 “유리알 유희 Das Glasperlenspiel"(1943)를 스위스에서 발표 한다. ”유리알 유희“는 헤세가 창작한 것으로서, 그러한 유희가 역사적으로 존재 했던 것은 아니다. 카스 터리엔이라는 미래의 이상향에서 2400 년경에 쓰여 졌다는 설정을 해 놓고, 이보다 약 200년 전에 존재하였던 카스터리엔의 유희의 명인 크네히트를 회상하며 서술하는 형식을 취한 정신 문화사 적인 미래 소설이다. 이후 헤세는 몇 개의 작품을 더 발표하고 1962년 8월 9일 세상을 떠나게 된다.# 데미안의 배경‘데미안’이란 말은 데몬(Damon)과 같은 뜻으로 ‘악마에 홀린 것’ 이라는 뜻에서 유래한다. 데미안은 1919년에 출간 되었는데 그 발표 방법이 특이 하였다. 저자 이름이 익명으로 되어있었고, 그 이름이 작품의 주인공과 동일하게 징클레어였다. 뿐만1 인칭으로 서술하는 형식의 소설이다. 이 형식의 소설은 특히 독일에서 발달한 것으로, 주인공의 체험이나 운명을 개성의 성장과정으로서 묘사한다.독일 문학에서 이히로만은 처음에 자서전 형식에서 출발하였다. 예술성보다 사실성이 요구되는 자서전과 달리, 이히로만에 있어 주인공의 체험은 허구이며, 역사적 사실의 테두리를 설정할 경우라도 그것은 작자의 자유의사로 개변하여 고도의 상징성이 요구 된다.# 데미안 줄거리데미안은 앞에 프롤로그와 총 8장으로 구성되어있다.*프롤로그데미안에서의 프롤로그는 이 작품의 유형과 특성을 예시한다. 머리말의 화자는 이 소설의 전체의 화자이다. 이 소설엔 ‘이야기 하는 나 erzahlendes Ich(화자)’ 와 ‘체험하는 나 erlebendes Ich(작중의 인물)’ 가 있고 양자가 동일인이다.프롤로그에서 화자는 이 작품의 방향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본문중에 있는 ‘자연의 의지를 실현 하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의 주제인 것이다. 그러니까 데미안은 주인공 싱클레어가 자연의 의지를 이행해 가는 과정을 그린 교양 소설인 것이다.화자가 말하는 자연의 의지에 알맞게 형성된 인간이란 것은 시민적인 규범이나 종교의 교의나 윤리적 규범의 저편에 있는 자연적인 삶의 모든 것을 포용하는 인간이라고 서두에서 화자는 밝히고 있다.*1장 - 두세계싱클레어는 신앙과 지성이 조화된 분위기 속의 부모님 아래에서 성장 했다.그의 가정은 말 그대로 밝은 세계이며 선의 세계이다.그리고 싱클레어는 그의 주위에 있는 아주 어두운 악의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싱클레어는 동네 놀이 집단에 끼기 위해 도둑질을 했다는 허풍을 프란츠 크로머에게 떨게 된다. 그렇게해서 그는 어두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2장- 카인어두운 생활을 하던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만나게 된다.데미안을 통해서 카인과 아벨이라는 새로운 해석으로 선과 악을 생각하게 되고, 데미안은 크로머를 만나 싱클레어를 옭아맨 올가미를 풀어 주게 된다.*3장 - 죄인싱클레어는 자기 자신 속의 두 세계의 갈등으로, 즉 금지된 것과 허고, 그에게 아프락삭스에 대한 가르침도 받게 된다. 그러나 마지막에 싱클레어는 피스토리우스에게 독설을 퍼붓게 되고 그럼으로써 피스토리우스를 떠나게 된다. 싱클레어는 정신을 이끌어 줄 지도자와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7장 - 에바 부인싱클레어는 데미안을 길에서 다시 만난다. 그리고 데미안의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이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여인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꿈, 운명, 탄생의 괴로움을 알려준다.싱클레어는 그녀에게 정신적인 사랑과 육체적인 사랑을 느끼게 된다.*8장 - 끝의 시작전쟁이 터지고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함께 참전한다.싱클레어는 부상을 당하고 야전병원으로 옮겨지게 된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와 나란히 누워있고 데미안은 언젠가 만약 자신이 필요하게 되면 싱클레어 스스로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하고 어머니의 키스를 그에게 전한다.다음날 아침 데미안은 옆에 없다. 싱클레어는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친구이며 지도자인 데미안과 꼭 같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본다.((간단요약)):데미안에서는 싱클레어의 자기 발견에 이르는 성장과정을 3 단계로 나눠 볼수 있다.1단계는 1-3장 까지인 싱클레어의 초등학교 시절에 해당한다. 그리고 2단계는 4-6장까지인 김나지움 시절에 해당하고, 3 단계는 7,8장인 그의 대학시절에 해당 한다.그러므로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10세에서 20세까지에 이르는 10년 동안의 내적 성장 이야기가 기본 이야기 이다.1 단계에서는 2 가지 국면이 있는 데 첫 번째는 싱클레어가 현실에서의 두 개의 이원성 즉 ‘어두운면’과 ‘밝은 면’을 깨닫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두 개의 이원성이 바로 자기 자신의 내면에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2 단계에서는 성장과정이 중간 단계이고 그는 이때에 자기 형성의 예비적 요건을 갖추게 된다. 2 단계에서는 3가지 국면이 있는데 첫 번째는 싱클레어가 어두운 세계로 전락하는 것, 두 번째는 그가 밝은 세계로 회귀하는 것, 마지막 세 번째는 그가 전악으로부터 싱클레어를 구해 주기는 했지만 데미안은 그에게는 알고 싶지 않은 갈등 상황, 인 것이다. 다시 밝은 세계속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그 속에 화합하지 못한 채 불안한 생활을 영위하던 싱클레어에게 또 하나의 어두움이 다가오게 된다. 시절이 다가온 것이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사실은 어두운 세계 가 다시 나타났는데, 일찍이 크로머의 모습을 통해 외부의 세계에서 나타났던 것이 이제는 그 자신의 속에서 나타났다는 점이다. 한때 크로머였던 것이 이제는 을 느끼면서 오랫동안 멀리 있던 데미안이 다시 서서히 다가섰고 다시 힘과 영향력을 발휘한다. 데미안은 독심술과 주의력 집중의 비결을 알려주며, 또 하나의 종교화,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 곁에 매달렸던 도둑들을 예로 싱클레어의 의식 지평을 넓혀준다. 마지막 순간에 회개한 도둑보다 그 자신의 길을 끝까지 간 도둑 쪽이 도둑이고 뛰어난 카인의 후예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공인된 신의 세계만을 인정할 것이 아니라 묵살되어 온 악마의 세계도 적극적으로 승인할 것을 요구한다. 데미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작가의 중심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구절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중요한 건, 이 온전한 유일신, 오랜, 그리고 새로운 맹약의 신이 탁월한 분이기는 하지만 원래 그가 표상하는 그런 신은 아니라는 점이야. 그는 선, 고귀함, 아버지다움, 아름답고도 드높은 것, 감상적인 것이지. 옳아! 그러나 세계는 다른 것으로도 이루어져 있어. 그런데 다른 건 죄다 그냥 악마한테로 미루어지는 거야. (…)우리는 모든 것을 존경하고 성스럽게 간직해야 한다고 생각해. 인위적으로 분리시킨 이 공식적인 절반 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를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는 신에 대한 예배와 더불어 악마 예배도 가져야 해. 그게 올바른 일인 것 같아.어두운 세계를 승인하고 체험할 것을 요구하는 것, 이는 곧 그동안 보호받아왔던 밝은 세계, 곧 어린시절과의 결별을 의미하는 것이다.싱클레어는 유년시절이 완전히 붕괴된 이후 극단적으로 대립된 어두운
코린트의 신부아테네의 코린트에한 낯선 청년이 찾아든다.그는 한 시민의 환대를 기대했다.부친들은 절친한 사이였고오래 전에 이미아들과 딸을신랑 신부로 정해 놓고 있었다.그러나 특별히 호의를 구하지 못한다면그가 환영받을 수 있을 것인가?그는 아직 자신의 신들을 모시는 이교도이고,그들은 이미 기독교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다.새로운 신앙이 싹이 트면때로 사랑과 신뢰는쓸 모 없는 잡초처럼 제거되기 마련이다.집안은 벌써 정적에 싸져 있었고,아버지와 딸들도 자고 단지 어머니만이 깨어 있다.그녀는 성의를 다해 손님을 영접한다.그는 곧 화려한 객실로 안내된다.그가 요구하기도 전에포도주와 음식이 푸짐하게 대접된다.그녀는 이것 저것 돌본 뒤에 밤인사를 한다.그러나 잘 차려진 성찬에도식욕이 나지 않는다.피곤이 음식과 음료를 잊게 하고,그는 옷을 입은 채 침대에 눕는다.그가 막 잠에 빠져들 무렵한 낯선 객이열린 문 안으로 움직여 들어온다.그가 희미한 불빛 아래 보고 있노라니하얀 옷에 베일을 쓴한 처녀가 조심스레 방 안으로 들어선다.이마 주위에는 검고 금빛나는 띠를 두르고 있다.그녀는 그를 보자당황한 듯 놀라며하얀 손을 치켜 든다."내가" 그녀가 외쳤다. "집안에손님이 온 것 조차 모를 만큼 남이란 말인가?아, 나를 그렇게 내 밀실에 가두어 놓다니!이제 이곳에 서니 수치심이 엄습하는구나.잠자리에서계속 쉬시오나는 올 때처럼 급히 돌아가리다.""멈추시오, 아름다운 처녀여!" 청년이 외치며재빨리 잠자리에서 일어선다."여기 체레스와 바쿠스의 선물이 있다오,그내는 아모르를 가져왔군요, 사랑스런 이여!그대는 공포에 질려 있나요!내 사랑, 이리와 쉬시오우리 함께 신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봅시다.""물러서세요, 오 젊은이여, 멈추세요!나는 기쁨과는 인연이 없답니다.착한 어머니의 병적인 망상으로 인해마지막 한 걸음까지 이미, 아! 내딛고 말았어요.아이를 분만하면서 맹세했지요:청춘과 본능을앞으로는 하늘에 맡기고 순종하겠노라고.그리고 나서 곧 조용한 집안에옛 신들의 조각상이 모두 제거되었어요.유일자는 하늘에 거주하며 눈에 보이지 않고,구세주는 십자가에서 숭배를 받는답니다.여기에 제물이 바쳐졌어요.새끼양도 황소도 아닌전대미문의 인간 제물이."그는 질문을 하져, 한 마디도 놓치지 않도록들은 말들을 곰곰이 헤아린다.고요한 이 곳에사랑스런 신부가 내 앞에 서 있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내 사람이 되어 주오!우리 부친들의 맹세가우리를 위해 하늘의 축복을 간청했다오.""나를 잡지 마오, 그대 마음씨 착한 이여!그대는 내 둥째 동생 차지라오.내가 고요한 밀실에서 괴로워 할 때,아! 비록 그 애 품안에 있더라도그대를 그리워 하며,사랑에 병들어,곧 땅 속으로 돌아갈 나를 생각해 주오.""아니오! 히멘 신이 자비롭게 우리에게 베풀어주신이 횃불에 두고 맹세하겠소.그대는 기쁨도 또 나도 잃지 않으리다.나와 함께 아버지 집으로 갑시다.사랑하는 이여, 가지 마오!예기치 못한 우리의 피로연을나와 함께 이제 가집시다."두 사람은 벌써 정표를 주고 받는다:그녀는 금목걸이를 그에게 바치고,그는 무엇에도 비길 수 없이정교하게 만든 은잔을 그녀에게 내민다."그것은 내게 소용 없어요.청컨대 그대의 머리카락 중에한 올만 뽑아 주시오."삼경을 알리는 종소리가 막 울리고,그것이 이제 그녀를 편하게 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창백한 입술로어둡고 핏빛으로 물든 포도주를 홀짝거렸다.하지만 그가 친절히 내미는밀빵은한 입도 먹지 않았다.그녀가 젊은이에게 술잔을 내밀자,그는 그녀가 그랬듯이 성급히 단숨에 들이켰다.그는 조용히 음식을 드는 동안 사랑을 요구한다.아, 그의 가엾은 가슴은 사랑으로 병들었다.그러나 그가 아무리 간청을 해도,거부당하자,그는 마침내 울면서 침대에 쓰러지고 말았다.그녀가 다가오며 그에게 몸을 던진다."아, 그대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볼 수 없어요!그러면, 아! 내 사지를 만져보시오.내가 그대에게 감추는 것을 몸서리치며 느껴보시오.눈처럼 희지만,얼음처럼 차가운 것이그대가 선택한 사랑이라오."그는 사랑의 젊은 힘이 솟구치는 두 팔로그녀를 힘차게 껴안는다."내게서 몸을 따스하게 녹이시오.그대 스스로 나를 위해 무덤에서 돌아왔다면!"서로의 숨결, 입맞춤!넘치는 사랑!"그대는 타오르지 않나요, 내가 타오르는 것을 느끼나요?"사랑이 두 사람을 단단히 얽어맨다.욕망 속에 눈물이 서로 뒤섞인다.그녀는 탐욕스럽게 그의 입술에서 열기를 빨고,두 사람은 오직 상대 속에서만 자신을 의식한다.그의 사랑이 열정이그녀의 굳은 피를 녹인다.그러나 그녀의 가슴에서 심장은 뛰지 않는다.그 사이 늦도록 집안일을 돌보던어머니가 복도를 지나간다.이상한 소리에문에 귀를 대고 오래 엿듣는다.신랑 신부의탄식과 희열의 소리,그리고 광적인 사랑의 웅얼거림.그녀는 먼저 확신을 갖기 위해문앞에서 가만히 어 있는다.그녀는 열띤 사랑의 맹세를 듣게 된다.불만이 섞인 사랑의 웅얼거림:"가만! 닭이 울어요!"-"하지만 내일 밤다시 오겠지?" -그리고 입맞춤, 임맞춤.어머니는 더 이상 노여움을 참지 못하고재빨리 방문 자물쇠를 딴다."이 집안에 손님에게 몸을 바치는몹쓸 창녀가 있단 말이냐?"그러면서 문을 열고 들어선다.램프 불빛 아래그녀는 - 하느님! 그녀는 바로 자기 자식을 본다.그러자 청년은 놀라면서처녀의 베일과 이불로사랑하는 이를 덮어주려 한다.그러나 그녀는 스스로 몸을 돌린다.마치 정신력에 이끌리듯여인은아주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어머니! 어머니!" 그녀가 공허한 소리로 말한다."당신들은 이 아름다운 밤을 이렇게 내게서 앗아가는군요!당신들은 나를 따뜻한 곳에서 몰아내는군요.나는 절망하기 위해 깨어났나요?내게 수의를 입혀서일찌감치 무덤에 넣은 것만으로당신들은 만족하지 못하나요?"그렇지만 특별한 심판이무거운 덮개의 속박에서 나를 내밀었어요.당신들의 승려가 중얼거리는 노래소리와그들의 축복은 중요치 않아요.소금과 물은젊음이 느끼는 것을 식히지 못해요.아, 흙은 사랑을 식히지 못해요!이 청년은 처음에 나와 약혼했어요.아직 비너스의 명랑한 신전이 서 있을 때 말이예요.어머니, 낯설고 거짓된 서원에 매여당신들은 약속을 어겼어요.하지만 딸의 약혼을 거절하겠다고어머니가 맹세할 때,신은 소원을 들어주지 않아요.나는 무덤에서 돌아왔어요.놓쳐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잃어버린 남자를 사랑하고,그의 심장에서 피를 빨기 위해.그는 이제 끝났어요.다른 사람을 찾아야 하고,그리고 젊은이들은 그 격정에 굴복하겠지요.아름다운 젊은이! 그대는 오래 살지 못할 것이오.그대는 이제 이 곳에서 병으로 야위겠지.나는 내 목걸이를 그대에게 주었고,그대의 머리카락은 내가 지니고 떠나오.머리카락을 잘 보시오!내일이면 그대는 백발이 될 테고,저곳에 가서만 그대는 다시 갈색으로 보일 것이오.어머니, 마지막 청을 들어주세요.장작가리를 쌓고,내 불안하고 작은 오두막을 열어,화염 속에 사랑의 안식을 주세요.불꽃이 피어오르고,재가 휘날리면,우리는 옛 신들에게 달려갑니다.**시의 이해**이시는 괴테의 담시이다.이 시의 배경은 종교사적인 변혁기인 후기 헬레니즘시대의 아테네에서 전개된다. 이때 당시는 기독교가 희랍세계에 침투하기 시작하던 때이다.배경이 그렇듯 이 시는 이교적인 삶의 감정과 기독교 적인 윤리관의 대립 그리고, 기독교비판이라는 쟁점에 따르고 있다.
☆브레이트에 관하여..1898년 독일 아우구스부프크에서 한 제지공장직원의 아들로태어난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1956년에 사망하기까지 희곡작가로연출가로 새로운 연극의 창조을 위해 전생애를 바쳤다.그는 1918년 처녀작 '바알' 을 발표한데 이어 '한밤의 북소리' 등희곡을 잇달아 발표했으며, 후기에는 '갈릴레이의 생애'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사천의 선인들' '코카서스의 백묵원' 등의 대작을 남겼다나찌즘의 광기가 본격화되자 그는 덴마크, 핀란드등을 거쳐 1941년 미국으로 망명했으며, 나찌즘이 패망하기까지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 희곡과 연극 이론에서 새로운 시야를 열어 놓았다.브레히트에 있어서 연극의 목적은 '어떻게 살아 남아야 하는가' 그 방법을 관객에게 가르치는 것' 이었다. 이목적을 위하여 그는 배우에 대하여 자신들이 연기하고 있는 인물과 정서적으로 일체될 뿐 아니라 문제를 제시 할 것을 요구하였다. 관객을 '이화' 하기 위하여, 즉 무대와 관객과의 사이를 넓혀서 '동화' 를 막는 효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클라이막스 직전에 장면을 중지했다.또한 슬라이드를 사용하여 적당한 간격을 두고 장면의 요점을 강조하는 말이 영사되었다.그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끈임없이 '극행동' 을 소개했고 각 장면의 마지막에서는낮은하얀 커텐을 치기도 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이러한 '이화효과'에 의해 관객은 극행동을 차분히 생각 ..... 자신의 결론을 이끌어 내고 그결과 '더욱더 유익한 사회의 일원으로 된다' 라고 말하였다.현대연극을 전진시키기 위해서는 브레히트의 관문을 통과하지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연극예술에서의 그의 위치를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사천의 선인' 은 .......브레히트의 가장 성공적인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이 비유극은 그가 가장 오랫동안 정성을 쏟은 작품이기도하다. 작가 자신이 밝힌 집필 시기는 1938~1940년이지만 이미 20년대에 작품 구상이 시작되어 1930년에 '사랑은상품' 이라는 제목으로 다섯 장면이 완성되었다. 브레히트는 1939 선인』은 오랜 세월에 걸쳐 쓰여진 희곡으로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브레히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이며, 또 그 자신의 말에 따르면 그가 가장 아끼는 희곡 중의 하나이다.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수정과 보완 과정을 걸쳐서 완성된 희곡『사천의 선인』은 모두 10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1,3,4,5,6,7,9장 다음에는 각각 막간극이 있고, 희곡의 서두에는 서막이, 말미에는 발문이 있다. 제4장과 제5장 다음에 오는 〈막 앞에서의 막간극〉을 제외하고는 모두 물장수 왕이 꿈 속에서 세 신들과 만나는 내용의 막간극이다.서막에서 물장수 왕이 희곡적 상황을 도입한다. 사천 사람들의 생활은 극히 절망적일 정도로 가난해서 그 탄식의 소리가 하늘에까지 들리게 되었다. 이런 가난은 오직 신만이 구제할 수 있다는 중론에 따라서 세 명의 최고의 신들이 이 세상으로 파견된다. 물론 사천은 인간이 "인간에 의해서 착취되어지는 지방"을 비유적으로 대신하는 지명이다. 최고위의 세 신이 지상으로 파견되는 전제조건은 "인간적인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착한 사람들이 충분히 있다면 이 세계는 현재 있는 그대로 존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런 하늘의 결의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세계이다. 따라서 이 희곡의 진행과정은 "이 세계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며, 위의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못할 경우에는 이 세계의 개혁이 필요하게 된다는 당연한 귀결이다.그러나 이들 세 신은 오로지 관찰자들로서, "도처에 곤궁과 저열함 그리고 쓰레기"만을 발견하고도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착하게 살수가 있는가?"라는 절규에는 "그 점에 대해서는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경제적인 문제에는 간여해서는 안 된다"고 회피한다. 이들 세 신은 여러 가지 문제에 있어서 서로 이견을 드러낸다.〈관찰자〉로서 신들은 두 번 즉 서막과 마지막의 제10장 재판 장면에서만 직접적으로 출현하고 그 외에는 막간극에서 중개자인 물장수 왕의 꿈에 나타난다. 그들의 실험은 서막에서 시작되며 제10장에서는견하지도 못했으며 또 설혹 착한 사람들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인간의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생활을 영위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한 사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들의 전제조건을 축소 내지는 수정하여 셴테 만으로 그들의 세계질서를 합리화한다.우리들의 계명이 살인적이라는 것을 자인해야만 되겠단 말이오? 우리들의계명을 포기하란 말이오? (기분이 상해서) : 결코 그럴 수는 없어요. 이 세상이 개혁되어야 된단 말이오? 어떻게? 누구의 손으로? 아니요, 모든 것이잘 되어 있소.세 신은 이런 최후 판결을 내린 다음 셴테의 구원 요청을 저버린 채 사촌이 수이 타를 매월 한 번씩 불러도 좋다는 위로의 말을 남기고는 분홍빛 구름을 타고 그들의 허무 속으로 승천한다. 그들이 발견했다고 믿은 착한 사람 셴테는 사실은 반쪽의 인간밖에는 되지 못한다. 현실을 직시하고 정확한 판결을 내리기를 거부한 신들은 인간 세계의 적합한 관찰자일 수 없다. 그들은 결국 쫓기듯이 이 세상을 떠나갔으며 인간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지상에서 착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온 세 신들을 위해서 물장수 왕이 구한 숙소는 창녀인 셴테의 거처였다. 그녀는 그들에게 자기의 딱한 입장을 고백한다. 즉 그녀는 착하게 살고는 싶지만 현실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아 창녀로서도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녀의 딱한 사정을 들은 세 신은 숙고한 끝에 숙박비 명목으로 그녀에게 보조금을 지급한다. 이렇게 해서 신들의 실험은 그 출발부터가 불공평한 점을 내포한다. 신들도 보조금의 지급에 대해서 이견이 있었으며 오해받을 소지가 있었으므로 이 사실을 비밀로 해줄 것을 요구한다. 이 보조금으로 셴테는 연초 소매상점을 개업하며 이것을 통하여 "많은 선행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상점이 설비를 갖추고 채 개업을 하기도 전에 가난한 이웃 사람들이 와서 가게를 점령한다. 세 신들이 그녀에게 준 〈구원의 작은 배〉인 담배 가게를 구하기 위해서는 그녀에게 몰려드는 손들을 물리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 그녀는 상품화되어 버렸다. 따라서 셴테의 삶은 인간의 품위를 유지하지 못하는 삶이었다.그녀는 신들의 보조금만으로 조그만 담배 가게를 차릴 수 있게 되어 최하위의 사회적 계층에서 노동자들보다 더 우월한 지위인 소매상인 소시민 계급에 속하게 된다. 그녀는 소매상인의 지위를 획득했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즉 그녀는 선행을 많이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부풀어 선행의 조그만 샘인 그녀의 상점을 개점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빈민 구제라는 이웃 사랑의 실천은 그녀의 상인적 본질과 갈등에 빠지게 된다. 즉 상인으로서 그녀가 무자비하게 이윤 추구에 전념하지 않으면 그녀의 지위를 유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셴테의 인간적인 분열이 발생하며 이렇게 분열된 그녀의 인간상은, 바로 시민사회를 살아가는 개체가 두 면으로 분열되어 그 존재를 영위해 가는 삶의 형태가 연극적으로 구체화된 것이다.난처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주위 사람들의 착상으로 고안된 사촌 수이 타는 이미 제2장에서 등장하게 된다. 극이 진전됨에 따라 〈악한 반신〉은 점점 더 우위를 차지하게 되며 상대적으로 〈선한 반신〉은 밀려나게 된다. 그러나 전자의 사업적 능력이 없이는 후자는 선행을 실천할 수 없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악한 반신〉만이 지배하게 되며 〈선한 반신〉은 완전히 고립 상태에 빠지게 된다.그녀는 마침내 그녀의 애인인 실직 비행사 양순과의 관계에서 잉태한 아이에게만 헌신할 수 있다. 즉 적어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그녀의 아들만은 가난과 기아에서 구출하려는 것이 그녀의 이웃 사랑의 마지막 수단인 것이다. 굶주린 어린이가 쓰레기 통을 뒤져먹는 것을 본 그녀는 뱃 속의 아이에게 헌신과 애정을 약속한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그녀의 헌신과 애정을 약속한, 태어나지 않은 아기는 결국 그녀 자신이다. 그녀는 자신의 분신인 아이를 위해서는 폭력과 기만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수이 타로 변신한다. 여기서부터 그녀는 사라지고 오직 수이 타만이 등장한다.명확하게 볼 수가 있으며, 셴테와 수이 타가 동일한 인물이라는 것을 재인식한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셴테는 수이 타로 완전히 변신한 것이 아니라 그의 가면을 쓰고 그의 역할을 제시한 것에 불과하다. 브레히트는 배우가 그의 담당 역할로 완전히 변신하는 것을 반대하고 그의 역할을 제시하는 제시자로서 무대 위에 설 것을 요구해 왔다. 이런 〈제시의 기본 자세〉가 이 희곡에서는 이미 작품 속에 표본적으로 실현되었다.셴테는 비행학교를 졸업하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 비행사 양순이 자살하려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저지한다. 그녀는 그를 동정한 나머지 그와 애정관계에 빠진다. 비행사 양은 북경의 비행학교를 다닌, 즉 특수한 직업훈련을 받은 사람이지만 일자리가 없어서 좌절한 것이다. 사랑에 빠진 셴테는 비행을 용감하고 고상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녀는 또 비행사 양순의 어머니와의 대화에서 비행에 대하여 이 지상의 온갖 비참을 초월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다. 여기서 비행은 또 우편물을 싣고 소식을 전달해 주는 행위로써 새로운 인연을 맺어 준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우편 비행은 야간 비행이라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양순에게 있어서 비행사의 직업은 표면적인 면과는 달리 역시 소외된 노동이며 그는 오직 기계의 하수인으로 전락된 것이다. 또 우편비행기 조종사로서의 일자리는 뇌물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타락된 것이다. 셴테에 대한 그의 사랑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한 뇌물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그는 끝내 비행사로서 소기의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혼인을 빙자하여 셴테로부터 !받은 돈을 변상하기 위해서 수이 타의 연초 공장에서 노동일을 시작한다. 그는 그의 지성과 그가 누린 교육을 십분 활용하여 다른 공원들을 감시하고 독려하는 감독의 지위로 승진한다. 양순의 어머니는 무자비하게 노동자들을 부려서 사천의 연초왕이 된 수이 타의 앞잡이가 되어 동료 인간들을 착취하는 그의 행동을 그녀는 교양과 지성의 힘으로 이룩된 위대한 기적이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