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면서인류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유가 아니면 나에게 죽음을 달라 했던 독립혁명의 지도자 패트릭 헨리는 인간에게 필수불가결의 요소인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얼마 전 보았던 '브레이브 하트'에서도 이러한 자유의 소중함을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정말 커다란 목소리로 '자유!'라고 외치자, 민중들은 다함께 주인공의 행동에 동해서 압제 정부에 맞서 싸울 용기를 얻는다. 그 주인공이 절박하게 내뱉었던 자유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들은 그토록 힘을 얻는 것인가에 대해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직접적인 우리의 현실 속에서의 모든 제도나 법은 국민 개개인의 '자유'를 실현하고자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자유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자유'라는 주제는 너무나도 넓은 영역에 걸쳐 있다. 정치적 자유, 경제적 자유, 종교의 자유, 사상의 자유... 사람들은 무수한 '자유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자유는 철학적으로도 중요한 사유의 대상임과 동시에 가장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항상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기를 원하지만 자유를 얻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그래서 인류는 자유를 갈망하는 만큼 오랫동안 자유에 대해서 이야기 해 왔다. 동양철학에서는 제자백가 시절부터 자유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서양철학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 이후에 중세에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었지만, 근대 이후 본격적으로 개인의 자유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이루어 졌다.이처럼 광범위한 자유 중에서 앞으로 우리가 중점적으로 살펴볼 자유는 종교적 자유이다. 오늘날 현대인에게 있어서 자유의 범위가 넓어짐으로서 종교의 자유가 다른 자유와 자주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교적 자유와 초월에 대한 추구가 섬세하게 드러나 있는 작품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다. 이 작품을 중심으로 인간에게서 보여지는 자유에 대한 추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2. 들어와서세계 리얼리즘 소설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지는 이 작품은 시베리아 유형지 체험이라는 극한적인 고통을 겪은 뒤에 얻은 세계문학사의 주옥편들 중의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인 도스도예프스키를 소설의 아버지라고 일컬을 수 있는 것은 부당하게 학대받고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의 운명을 뼈아프게 느끼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 곁에 서려고 노력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농노제적 구질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적 제 관계가 대신 들어서려는 과도기의 러시아에서 시대의 모순에 고민하면서, 그 고민하는 자신의 모습을 전적으로 작품세계에 투영한 그의 문학세계는 현대성을 두드러지게 지니고 있으며, 20세기의 사상과 문학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성장배경으로 인해 그는 특히, 러시아의 국민성을 잘 알고서 민중의 운명에 대해 강한 애착을 보임으로서 그의 소설의 위대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그의 소설을 대략적으로 구분해 보면 대개 심리소설과 종교소설, 사회소설과 범죄소설을 아우르고 있다. 이는 그가 선과 악, 죄와 벌, 악덕과 자유의지의 갈피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드라마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조국 러시아의 상황과 맞물려 그는 인간 내면의 모순을 다루는데 충실했고 그러한 점에서 심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신과 인간, 현세와 영원, 그리스정교와 무신론의 문제 등 우주적인 이원성의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그의 소설은 종교소설이며, 도시 뒷골목에서 살아가는 빈민 혹은 소외계층 사람들의 심리를 예리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그의 소설은 사회소설이다.특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작가의 전 생애동안 괴롭혀 온 사상적·종교적 문제, 인간의 본질에 관한 사색을 장대한 규모와 긴밀한 구성으로 집대성한 걸작이다. 또한 미완성 작품이라는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심층 심리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함으로서 인간 존재의 비극성에 대해 통찰하고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이 작품은 물욕과 음탕을 상징하는 아버지인 표도르와 카라마조프가(家)의 3형제(러시아인적인 야성적 정열과 순수함을 갖춘 장남 드미트리, 무신론자에다 허무주의적 지식인 차남 이반, 수도원에 몸담고 있으면서 동포애를 가르치는 조시마 장로에게 심취한 순진한 3남 알료샤), 거기에 아버지와 백치의 여자거지에게서 태어난 막내아들 스메르자코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부자간(父子間) 및 형제간의 애욕을 그리고 있다. 소설의 외면적 줄거리는 아버지 표도르의 살해를 둘러싼 심리적 갈등 위에 이루어졌으며 추리소설을 연상케 하는 긴밀한 구성으로 그 주제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드미트리는 부친 살해의 혐의를 받고 재판도 그에게 유죄를 선고하지만, 실은 간질병의 특성을 알리바이로 이용한 스메르자코프의 범행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반의 사상적 감화를 받고 저질러진 일이었다.그러나 이 소설의 진짜 내면적인 줄거리를 이루는 것은 ‘신이 없으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철학이다. 이는 이반과 알료샤의 스승인 조시마 장로 사이에서, 러시아의 미래를 상징하는 알료샤의 더럽혀지지 않은 영혼을 서로 빼앗으려는 형태로 전개되는 사상적 격투로 나타나게 된다.카라마조프가의 사람들은 자유와 초월에 대한 추구 의지를 저마다의 독특한 양식으로 나타내고 있다. 특히, 이반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신, 자유, 복종, 양심의 문제와 알료사,조시마 장로를 축으로 하는 사상의 대립에서 그것은 극명하게 나타난다. 먼저, 드미트리에 대해 살펴보면, 그는 음탕하고 탐욕스러운 아버지 표도르와 마찬가지 기질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지만 아버지가 가지고 있지 않은 순수한 일면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신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있다. 그럼으로써 그는 자유에 대해 포기하지 않으며 그것을 얻고자 한다. 그리고 시종일관 신의 부재에 대한 그의 이론과 일화로 악의 극단을 보여주는 듯한 이반은 여기서는 오히려 어린 아이까지 고통을 받아야만 하는 이 세계의 불합리함에 대해 처절하게 절규한다. 또한 순수한 영혼을 가진 알료샤는 선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조시마 장로의 죽음에서 자기의 신앙에 대해 회의를 느끼며 신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독신의 말을 한다. 이러한 인물들의 행동으로 볼 때 그들이 나름대로 저마다의 모순과 혼돈을 내면에 간직하고 있음을 쉽게 눈치챌 수 있으며 드미트리는 비록 타락한 인물이지만 그의 순진무구함과 단순함으로 인해 오히려 투명하게 보이며, 인간성이라는 것이 사실은 안정. 질서, 조화, 통일에 가깝다기보다 오히려 그 배후에 암흑의 신념과 부동의 관습에 저항하는 이율배반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드미트리는 선과 악 사이에서 불균형하게 흔들리고 있으며 이반은 "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창조한 이 세계가 너무나 불합리하기 때문에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신에게 반항하고 있으며, 알료사는 신앙의 흔들림과 유혹 속에서 고뇌를 맛본다. 즉 드미트리 자신이 바로 "선과 악의 투쟁의 장"이라는 것을 선포한 바와 같이 인간 영혼이라 불리는 저 신비로운 곳이 욕망과 야망이 뒤엉키고 우정, 사랑, 증오, 의심의 승리와 패배, 고통이 엇갈리는 전장 이상의 어떤 곳임을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점은 도스도예프스키가 인간에 대해 어떻게 사유했는가를 보여준다. 불완전하고 유한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리고 질서정연하고 반듯한 세계가 아닌 불합리하고 질척거리는 이 세계에 실존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모순이 드러나는 것이다.이처럼 이 작품에서는 선과 악 사이에서 불균형하게 흔들리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유와 초월에 대한 인간의 의지에 대한 필연성을 드러낸다. 그러한 모습은 드미트리가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 누군가 한사람쯤은 남을 위해서 가는 녀석이 있지 않으면 안되지 않겠니?" 라는 말을 던짐으로써, 그리고 이반은 자신이 신에게 반역하는 것이 실은 나름대로 살아가고 싶은 이유라고 외치며, 결국에는 자신이 길바닥에 밀쳐낸 농부를 파출소에 데려다 줌으로써 그의 마음속에도 사랑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기쁨은, 사랑은 그냥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슬픔 속에서, 고통 속에서 찾아지는 것이라고 조시마 장로는 알료샤에게 유언한다.이러한 모습들은 너와 나의 만남이 지속불가능이고, 그 만남 속에서의 고독과 허무가 우리를 좌절하게 만들지라도, 어떠한 방식으로든 인간은 서로 만나지 않을 수 없으며, 우리는 그 만남 속에서 결국, 대화를 통해, 서로의 영혼과 영혼이 부딪칠 때, 영원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도스토예프스키는 우리에게 보여준다. 조시마장로가 "지상의 순간적인 것과 영원한 진리와의 접촉"을 말한 것도 바로 이런 의미에서 일 것이며 결국 우리는 그런 자유를 통해 그가 말하는 "이 지상에서의, 마음 속의 천국"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드미트리와 이반, 알료샤의 영혼이 그들에게 주어진 고뇌의 무게를 제대로 감내하지 못하여 분열하려할 때 그것을 막는 것이 바로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은 "한 쪽 끝을 흔들면 그 반향이 곧 세계 구석구석까지 미치는" 한 알의 죽은 밀이 되어 사람들의 가슴속에 퍼지는 것이다. 여기 이 소설에서 각 인물들의 타락은 참으로 가볍지만 그들의 고뇌의 무게는 참으로 진실한 것이며,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들에게 그 무거움과 가벼움, 어느 하나가 옳다고 말할 수 없게 만든다. 그들은 지금 길 위에서 그 무거움을 딛고 서 있으며, 그 길 위에서 어쩌면 신기루일지도 모를 하나의 빛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들에게 아직 끝은 보이지 않으며 끊임없이 그 길을 걸어 나가는 일, 그 투쟁과 그 고뇌는 여전히 그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도스도예프스키의 공감은 조시마 장로 측에 기울지만 신이 창조한 세계의 불합리와 모순에 관하여 역설하고, 이 모순이 있는 한 미래에 다가올 지상의 천국도 인정할 수 없다는 이반의 반론 역시 박력 있게 다가온다.
Ⅰ.서론정부규제는 장기적으로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발전을 지체시킨다. 이것은 정부규제가 시장경쟁을 제약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고, 그 결과 현상유지를 선호하는 경향성을 갖고 있는 한 불가피한 일이다. 더 나아가서 정부규제는 현상유지를 기본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창의적인 노력에 적대적이다. 정부는 자신이 세운 질서에 도전하거나 이를 창조적으로 파괴하려는 노력에 대하여 호의를 가질 수 없다. 이러한 특성상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정부규제가 있으며 이를 둘러싸고 사회 여러 분야에서 열띤 논쟁을 벌인다. 비단 오늘날뿐만 아니라 이러한 행정규제에 관한 논의는 이미 20여년 전부터 화두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1980년대초 전두환정부에서는 성장과 발전을 위한 제도개선 이라는 이름으로 규제완화를 추진하였고, 그 뒤를 이은 노태우정부도 규제완화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그것이 본격화된 것은 규제완화를 바탕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던 김영삼정부 출범 이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특히, 환경처는 1990년대초에 새로운 환경규제 정책수단의 도입에 박차를 가했다. 선진된 환경규제기법을 도입함으로써 환경규제를 완화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우수성이 있다고 할 수 있으나 실제 운영의 측면에서 많은 문제점과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환경규제의 선진국들도 이러한 제도의 도입에 대해 신중을 기하고 있는데 비하여, 아직 환경규제의 초기단계에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제도들이 충분한 이해와 검토없이 성급하게 도입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환경정책을 사후 처리보다 사전 예방 쪽으로 강화해 나가는 추세이다. 오염물질의 발생을 생산단계에서 차단하는 데 드는 사전 예방 비용보다 사후 처리에 드는 비용이 훨씬 많을 뿐만 아니라, 사후처리 과정에서 생성되는 2차 오염물질이 새로운 문제를 야기한다는 사실을 선진국들은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속에서 우리 정로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환경규제의 문제점을 지적함과 동시에 환경과 조화된 지속가능한 개발을 유도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Ⅱ.토지규제완화의 내용정부는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규제완화조치와 관련하여 1993년 8월 개정을 시작으로 토지이용과 관련한 각종 법률의 개,제정 작업을 추진 하고 있다. 1995년 3월 내무부는 국립공원의 경계를 축소하고 공원 내 시설 규제 를 대폭 완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입법예고 한 바 있고, 산림청은 전국 산림지역의 약 23%를 차지하는 준보전임지의 개발을 완화하여 공장,주택단지 등의 개발을 허용하도록 하는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을 1995년 7월 5일자로 발표했다. 그리고 경제행정규제완화 실무위원회는 1995년 7월 26일 자연녹지에 중소기업 유통시설 설립허용을 골자로 하는 환경, 유통, 물류 분야의 규제완화방안을 확정한 바 있다.이같은 토지이용규제완화조치는 전국토의 15.6%에 해당되는 기존의 개발가능한 토지를 41.7%로 제고시키고, 이들 개발가능지에서의 행위규제를 대폭 완화함으로써 규제와 통제 일변도의 보전 중심의 기존체제를 개발 중심의 체제로 바꾸는 일대 변화를 가져다주는 혁신적인 조치로 평가되고 있다. 이와 같은 조치로 경제활성화나 지역균형개발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도 나타나고 있지만 반대로, 제도의 미흡과 기반시설의 미정비에서 오는 난개발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이제까지 유형,무형으로 환경보전기능을 해오던 환경보전형 토지이용이 도시적 토지용도로 변화됨으로써 환경용량의 감소 및 자연경과,생태계 훼손, 환경오염부하의 증대 등이 발생하여 토지이용규제완화에 따른 부작용이 심각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1. 국토이용관리법의 개정국토이용관리법은 1993년 8월 법률 제4572호로 개정, '94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토지이용 행위제한을 개발목적과 보전목적으로 구분하여 개발지역의 행위규제를 완화함으로써, 전국토의 15.6%를 차지하고 있는 개발가능지의 면적을 실질적으로 41.7%로 확대하는 것이땅이 부족한 상황에서 농림지역이 어느 정도 잠식당할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자연히 그 만큼의 환경파괴와 오염이 가속화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정부에서는 이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토이용관리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1995년 9월부터 각 자치체별로 지역여건에 맞지 않는 숙박시설과 음식점은 들어설 수 없도록 조례로 정할 수 있게 하고 있으며, 계획적인 개발을 유도하기 위해 대형공장이나 관광단지 등 산업지구 신설을 허용하고 있다.국토이용관리법 개정의 주요내용* 자료 : 국토이용관리법 재정리{구 분내 용용도지역의 단순화10개의 용도지역(도시, 공업, 취락, 관광휴양, 개발촉진, 농경지, 산림보전, 자연환경보전, 수산자원보전, 유보지역)을 5개 용도지역(도시, 준도시, 준농림, 농림, 자연환경보전지역)으로 단순화개발가능지의 확대토지이용 행위제한을 개발목적과 보전목적으로 구분해 개발지역의 행위규제를 완화함으로써 개발가능지 확대 전국토면적의 15.6% ---> 41.7%산업임지 개발유도보전임지와 준보전임지로 구분해 온 산림을 생산임지, 공익임지, 산업임지로 재편하고, 산업임지를 준농림지역으로 지정해서 개발유도수도권권역조정과거 5개 권역에서 , , 의 3개 권역으로 조정2. 산림법 개정산림청은 모든 산지를 경사도와 임목본수도(나무가 얼마나 촘촘히 심어져 있는 지를 나타내는 지수)에 따라 보전,준보전 임지로 나누는 기존의 구분체계가 불합리하다고 주장하면서 산림법 시행령 개정작업을 벌여 1995년 6월 23일 입법 예고한 바 있다. 시행령 개정의 배경은 스키장 등 레저시설이 값싼 경사지를 요구함에 따라 해마다 30km2 이상의 보전임지가 전용돼 왔고, 앞으로 국토종합개발계획에 따라 요구되는 택지나 공업용지를 상당 부분 산지로 공급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상황을 감안하는 것이다. 본 시행령이 발효되면 전국 산림지역(65,000km2)의 약 23%를 차지하는 준보전임지의 개발이 한결 쉬워지게 된다. 이곳에는 공장,주택단지 등을 지을 수 있으며 이밖에도 농림어업럼 터지고 있다. 자연공원구역의 생태계가 파괴되고 국립공원이 유흥장화할 것이라는 환경부와 환경관련단체의 우려 등의 의견을 들어 내무부는 입법예고안을 수정하여 1995년 3월 21일 국립공원 등 자연공원에 골프장과 스키장설치를 금지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한 을 마련, 올 정기국회의결을 거쳐 내년부터 시행키로 했다.이에 따라 일부업체들이 지금까지 국립공원 등 자연공원 내에 '체육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한 현행 자연공원법에 따라 골프장이나 스키장 건설을 신청, 시행허가를 받았으나 앞으로는 불가능하게 됐다.4.중소기업조합 유통 시설설립 허용경제행정규제완화 실무위원회는 1995년 7월 환경,유통,물류 분야의 규제완화 방안을 확정했다. 이의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자연녹지에 대형할인점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협동조합의 유통시설도 들어설 수 있게 되고, 농,수,축협이 세우는 농산물 유통센터에 대해서는 개별부담금이 면제된다. 또 화물운송사업도 1-2개 업종으로 되면서 등록제로 운영되고 운임,요금의 신고제도 폐지되며, 이 밖에 지금까지는 대기, 수질, 소음, 진동 등 오염원별로 환경관리기사를 따로 고용해야 했으나 앞으로는 복수자격증을 지닌 한 명의 기사가 여러 오염원을 모두 관리할 수 있게 되고, 기업들이 공해배출시설을 설치할 때 건별로 일일이 환경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관련시설을 일괄적으로 신고만 하면 되도록 하는 등 각종 규제가 대폭 완화된다.Ⅲ. 토지규제완화로 인한 문제점환경문제는 근원적으로 인구증가와 산업의 발전에 따른 각종 토지이용행위에 기인하고 있다. 따라서 최근 환경용량범위 내에서 토지의 과도한 집중을 배제하면서 자연환경을 최대한 보전하고, 환경오염대책을 철저히 강구하여 환경오염부하를 줄이는 방안을 찾는 노력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토지이용상황을 고려하여 일정한 행위규제나 적정밀도의 개발을 유도하는 시책을 통해 환경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노력은 과거부터 전통적인 방식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2년 용도지역을 지정하고 인구밀도현상과 보건위생을개발용지로 전용되면서 그 지역이 갖는 환경용량이 급격히 저하되고, 각종 개발사업 추진과정에서 녹지가 훼손되고 생태계가 교란되며, 특히 강우시 나대지에서의 토사유출로 인해 수중생태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아이러닉하게도 비교적 경관이 양호한 지역을 찾아 개발된 각종 위락시설들이 주변 자연환경의 훼손 및 환경오염부하의 증대로 위락,경관기능을 저하시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 한 가지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경제사회환경의 변화이다.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입지조건이 좋은 기존 대도시 주변지역에 개발이 집중되면서 자원소비의 집중현상을 가속화시키고, 도로 및 주택 등 사회간접자본 수급에 불균형이 더욱 심화되어 교통혼잡, 주택보급율 저하, 쾌적성 저하에 따른 사회,경제비용이 증가될 것으로 우려된다.Ⅳ. 토지규제완화에 대한 대책국토이용관리법의 개정 등 일련의 토지이용규제완화조치는 가용토지공급의 확대라는 단기적인 수요만을 강조하고 있어, 21세기 새로운 파라다임으로 천명된 환경과 조화된 지속가능한 개발(ESSD: Environmentally Sound, Sustainable Development)에 역행되고 있는 느낌이다. 국토이용의 지속성과 형평성보다는 효율성을 높이는 데 너무 치중하고 있는 나머지 환경적으로 많은 문제점이 노정되어 있고, 이로 인한 우려의 목소리도 자못 크다.먼저 준농림지역의 규제방식과 규제내용의 불합리성에서 오는 환경 및 생태계 훼손문제이다. 즉 현행법률에서는 준농림지역에서는 법으로 정한 공해공장의 설치는 금지하고 이밖에 비공해공장은 입지를 허용하고 있는데, 실제로 비공해업종으로 지정되어 있는 농,축산시설이나 숙박시설도 환경오염도가 높기 때문에 이러한 공해업종과 비공해업종의 구분에 의한 규제방식보다는 오염물질 배출농도나 양으로 규제하는 방식이 환경적으로 더욱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둘째, 준농림지역의 개발이 지자제 소관에 있기 때문에 생태적으로 보전가치가 높거나 환경보전기능이 큰 지역을 무분별하게 난개발함으로써 자연경관 및 환경오염부하를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다. 기독교 역시 수많은 종교들 중의 하나이면서 또 가장 보편화 되어진 종교중의 하나이다. 전통적인 분류로 보면 힌두교, 불교,유교, 이스람교, 기독교로 나뉘어진다. 그러나 이렇게 종교를 분류하고 그에 따라 종교 지역을 분류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인구 이동과 통신 혁명 및 정보 교환으로 종교간의 교류가 불가피 해졌기 때문이다.1940년대 중반 세계 대전 이후 여러 가지 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세계의 각 종교들은 각각 주체성을 찾기 원하게 되었고, 주체성 추구는 종교 부흥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 예로 이슬람교의 부흥은 서구 저항 운동이며 아랍 문화 부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9.11테러 역시 서로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만이 옳다는 편협한 사고에서 비롯된 비극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이스라엘 국가들은 야훼의 특별한 선택을 입은 민족으로 선민 사상을 강조하고 세계 모든 민족들이 시온 성에 모여 야훼를 경배할 것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아시아의 종교를 들수 있다. 공산국가에서 개방사회로 전환하면서 여러 가지 종교들이 부흥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힌두교와 불교가 발생한 지역으로써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5대 세계 종교들이 활발하게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그러나 종교가 다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배타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경향도 보인다. 종교간의 갈등은 각 종교들이 추구하는 보편적 사상을 망각하고 그 교리만이 옳다고 주장하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갈등을 잘 극복하고 부흥하고 있는 다양한 종교를 통해 비인간화 되어가는 현대인들은 그들의 피폐된 정신세계를 정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애니미즘이라 하면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원시시대의 종교가 떠오른다. 그러나 애니미즘은 영적 힘들이 자연, 개인과 공동체의 일상 생활에 작용한다고 믿는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사는 삶의 태도와 길을 의미한다. 이러한 모습은 한국의 샤머니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 나라의 무교는 지금도 볼 수 있다. 교리 체계는 없지만 우리가 소위 무당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무교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조상 숭배를 바탕으로 다른 종교들과의 혼합 현상을 빚으면서 변화 발전되어 왔다. 애니미즘은 여러 가지 특징을 가진다. 세계를 전체로 봄으로써 모든 살아 있는 것이 서로 관계가 있으며, 독립되어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것을 정령적 힘의 작용으로 봄으로써 삶의 중요한 순간들을 의례적 절차에 따라 통과한다. 그래서 많은 금기를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애니미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지만 그것을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하기는 힘들다. 그만큼 우리 삶속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힌두교는 우리 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종교 중의 하나이다. 인더스 강 주변에서 형성되어서 여러 가지 다양한 성격의 종교들이 뒤섞여 있다. 힌두교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우파니샤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우파니샤드는 힌두교의 경전인 베다에 근거하고 있으나 의식에서 벗어나서 인간 중심적인 철학과 윤리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또 카스트 제도는 힌두교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즉 전생에 선행을 많이 베풀었기 때문에 좋은 계급에서 태어날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함으로써 사회의 모든 불평등과 차별은 정당화되고, 사회 정의를 위한 어떤 개혁도 어렵게 만들어 버린다. 현대 인도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카스트 제도는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할 제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불합리한 제도를 옹호하면서도 하나의 종교로써 인정받을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포함되어져 있다. 그것은 구원을 통해 인간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구원의 방법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힌두교에서 말하는 구원의 길은 대표적으로 지식, 종교적 제의, 그리고 사랑이다. 올바른 지식으로 바른 길을 알고 그 지식만으로 부족한 것은 몸을 수행하는 제의를 통해 올바른 길로 가고자 했음이다. 그러나 궁극적인 목적은 나 이외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함으로써 그 길이 비로소 완성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불교는 우리에게 친숙한 종교로써 우리 나라에 전래되어진 불교는 대승 불교이다. 원래 힌두교에서 파생되어 그 원리가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그러나 힌두교에서는 구체적인 창시자가 없는데 반해 불교에서는 부처라는 역사적 이름이 있고 그의 가르침을 다르마라고 지칭하고 있다. 불교는 카스트 제도를 비판하고 그 권위에 도전함으로써 누구나 자기를 존중하고 어떤 계층이나 권위주의에 굴복하지 말 것을 가르쳤다. 불교는 소승 불교와 대승 불교로 나뉘어 진다. 대승불교는 부처를 구세주로 여기고 자비심을 최고의 가치로 여김으로써 개인이 상호 의존적으로 이해되고, 인간 구원은 타력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소승불교는 개인이 우주의 다른 존재들과 독립되어 있다고 보고 인간 개인의 구원은 오직 자기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본다.유교는 현재 우리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고, 또 조선시대의 핵심 사상으로써 지금보다 훨씬 그 영향력이 컸다. 그래서 어찌보면 종교라기 하기보다는 윤리적 가르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 구체적으로 누구를 구세주로 여기는 문제보다는 각 개인의 일신을 어떻게 수양함으로써 올바른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를 비중있게 다룬다. 유교의 대표자인 공자는 그러한 방법을 체계적으로 전달하고자 사서를 간행한다. 이러한 책들에서 유교의 기본 윤리인 인, 의, 예, 지, 신이 드러난다. 다섯 가지 덕목은 사람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와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유교의 전통에서 카톨릭과 충돌을 불러 일으킨 것이 조상 숭배와 관련된 것이다. 이것은 개신교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서로가 그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일어나게 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유교에서의 여성의 지위는 부정적이다. 여성이 억압과 차별을 받는 것을 당연시 여김으로써 여성의 사회 진출을 막는불합리한 제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 사회의 근간에 자리를 잡아서 오늘날 우리 나라의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이슬람교는 사막과 오아시스의 경험을 통해 이루어진 종교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기독교와 유태교와 깊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므로 이슬람교를 통해 이 지역의 역사 뿐만 아니라, 다른 두 종교와의 연관성을 고찰해 볼 수 있다. 당시 다신 숭배를 하던 메카의 지배층으로부터 유일신을 선포한 무하마드는 크게 저항을 받는다. 그래서 메디나로 이민하고 이를 가리켜 헤지라 라고 해서 이스람교의 원년으로 삼는다. 결국 무하마드는 메카를 점령하고 그곳을 성지로 삼게 되었고, 순례는 무슬림 공동체의 중심 의례가 되었다. 이스람교의 경전인 코란은 알라의 자기 계시이며, 창조된 것이 아니다. 특히 코란은 아랍어로 읽는데 그 의미가 보존되고 전달된다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다른 종교의 경전들처럼 각국어로 번역되지 않음으로써 오늘날 이슬람 세계가 단단한 결속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코란의 주제는 알라와 그 알라에 복종하는 인간의 운명이다. 윤리적 교훈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아브라함과 요셉 그리고 예수 이야기를 포함함으로써 기독교와의 깊은 관련성을 나타낸다. 정통 칼리프 시기에 영토를 확대하고 그 후 아바스 왕조가 들어서서 이슬람의 중심이 메카에서 페르시아로 옮겨졌다. 인종보다는 무슬림 신분이 중요시 되었고 아랍계 이슬람 제국의 발전상을 보존하였다. 몽고족에게 멸망당한뒤 오스만 시기로 접어들게 된다. 이렇듯 복잡한 역사 전개 과정을 거치면서 이슬람교 역시 다양한 종파로 갈라지게 된다. 수니파는 수나(무슬림에게 절대 지침)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수니들이 주축이 되는 종파를 의미한다. 이들은 법통을 주장하고 볍규례를 강조하였다. 시아파는 4대 칼리프 알 리가 계승자가 되면서 알리의 후손만이 참 계승자라는 주장에서 시아파가 형성되었다. 이들은 이맘이라는 무하마드 예언자의 직계가 마흐디 로 다시 온다는 것을 믿고 있다. 수피는 이슬람의 신비주의자로써 알라와의 합일을 목적으로 하고 그것을 깨닫는 것을 중시하므로 그를 위해 명상, 운동, 고행을 발전시킨다.종교들이 하는 근본적인 역할은 같다. 그러나 각 종교들간의 이해 관계로 인해 서로가 배타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기독교에서 그러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결국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선교의 태도에서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선교 활동의 주축인 교회는 구원 사건을 통하여 형성되었고 구원 사건을 이루어 준 하나님이 교회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자기를 완전하게 계시하며 사랑을 보여 주며 구원을 이룬다고 주장함으로써 기독교의 배타주의를 뒷받침 하였다. 그러나 사회 봉사와 참여의 여러 활동을 강조해 온 것은 우리가 긍정적으로 보아야 할 부분임에 틀림없다.
1. 들어가며법이라 하면 흔히 약자를 보호하는 정의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나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법에 대해 어렵고 추상적인 것이라고만 생각해왔다. 그러나 만약 일상생활에 법이 없다면 우리의 생활은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교통 법규가 없다면 차들이 뒤엉킨 채 어느 방향으로도 나아가지 못할것이다. 이와 같이 법이 없는 생활은 혼란 그 자체일 것이다. 그만큼 생활 속에서 법은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법은 인류가 공동생활을 하면서부터 그 대략적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환경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들이 함께 사는데 많은 어려움이 생긴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다툼을 일정한 기준에 의해서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법이 만들어 진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어져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그러나 현실 세계에서는 그러한 이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법이란 원래 사람들이 만들고 그 사람들은 그 시대를 반영하기 때문에 어느 시대에서나 같을 수는 없다. 더군다나 입법자들은 그 시대의 권력 관계를 반영하기 때문에 그들의 이익을 신장시키는 쪽으로 법든다. 그래서 법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대와 입법자에 의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판결이 나기 쉽다. 특히, 최근 200여년 동안에 세계는 산업화라는 경제적 급변동을 발판으로 사회 전분야에 걸쳐서 많은 변화를 해왔다. 법분야 역시,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원리라는 양대 이념 속에서 많은 변화를 거치면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었는데, 공정한 법 적용이라는 문제가 가장 극명하게 노정되었다. 법은 누구 편인가 라는 책에서 보여지는 미국연방대법원의 역사를 통해 이러한 문제가 역사적으로 어떤 변화를 거쳐왔는지 살펴볼 수 있다.2.들어 와서우리 나라와 체계를 달리 하는 미국은 사법권이 대법관과 연방의회가 창설하는 하급법원에 귀속된다. 특히, 대법관은 상원의 인준을 통해 대통령이 임명하기 때문에 이 강자간의 거리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빈부 문제는 역사이래 가장 오랬동안 거론되어 왔고 또, 프랑스 혁명과 같은 역사적 사건은 이러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간의 갈등에 의해 한꺼번에 폭발함으로써 역사가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이 문제는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핵심적인 쟁점으로 취급되어 왔다. 판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대법관들의 경제적 약자와 강자에 대한 가치관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보수경제주의와 진보경제주의는 그 시대의 집권자에 따라 바뀌게 된다. 먼저 보수 경제주의는 정부가 부의 재분배를 위한 주도적인 역할을 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보수경제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가난은 도덕적으로 치욕스러운 것으로 여김으로써 정부가 부의 재분배를 주도하거나 개인에 의한 부의 축적이나 이용에 간섭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닉슨 대통령과 레이건 대통령 등은 이러한 경향을 가진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에 반해 진보경제주의는 가능한 한 부는 빈곤의 고통을 덜어 주는 방향으로 분배되어야 한다는 신조를 고수한다. 보수경제주의가 가난을 도덕적인 잣대로 재려고 했던 것과는 달리 세습적인 또는 불우한 환경의 소산물일 따름이라고 함으로써 근본적으로 정부가 해야할 일에 관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제퍼슨 대통령과 루즈벨트 대통령 등이 있는데 이들은 사회보장제도와 같은 제도를 통해 약자를 보호하려는 노력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위와 같은 경제적 분쟁에 관한 대법원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헌법이 경제문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헌법에 대한 토의는 기초단계에 있어서나 비준단계에 있어서나를 막론하고 본질적으로는 가진 재산을 지키고자 하는 자와 가진 것이 없는 자간의 논쟁이었고, 이 논쟁의 결과는 주지하는 대로 가진 것이 없는 자의 패배로 끝나게 되었다.구체적 역사로 들어가서 살펴보면 먼저 1차 보수법원시대가 약 45년동안(1790~1835) 지속된다. 초기 미합중국 정부는 주로 부유층으로 구성된 연방와 제퍼슨주의적 반연방 세력과의 전투의 시기였고 대체로 제퍼슨파가 승리했다. 제퍼슨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를 가장 드러낸 존 테일러는 불평등은 착취의 결과로 생긴 것이지 도덕성이 약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제퍼슨이 대통령에 취임할 당시 대법원에는 보수세력이 독점했기때문에 3인의 공화주의자 대통령들이 이러한 상황을 변경시키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보수지배는 마샬의 사망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끊임없는 보수주의 법원의 해체를 시도함으로써 제퍼슨은 법원의 영향을 최소한도로 줄일 수 있었다. 제퍼슨이 대통령직을 떠나자마자 보수주의 법원은 플레쳐 대 펙 판결을 통해 보수경제주의 이념을 실현하였다.마샬은 1812년에 들어서자 단순한 법원의 보수성격유지 이상의 일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마샬 법원의 번성기 가 시작된 분기점이었다. 제조업이 유행하면서 1819년에 내려진 세 건의 중요한 판결에서 마샬 법원은 경제개혁운동에 제동을 걸어 부유층의 경제적 이익에 간섭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 세 건의 판결은 본격적인 보수사법적극주의의 첫 작품이라는데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이는 경제적 분쟁 심판에 있어서 소극적이던 자세에서 적극적으로 부유층 보호를 위해 정치적 과정에 참여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나타낸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점 불황이 심화되고 환난이 계속되자 이에 비례하여 개혁과 구제에의 요구가 높아지게 되었고 마샬과 부유층에게 정치적 양보를 강조하게 되었다. 결국 1차 보수법원기 동안 판결에 결정적인 요인이 된 제퍼슨과 마샬의 충돌에서 초반에는 분명히 제퍼슨이 승리했지만 마샬은 중반을 승리로 장식했다. 그러나 이러한 마샬의 통치는 1819년 이후로 옥덴 판결에 의해 제퍼슨의 진보경제주의의 재승리를 암시해 주었다.1차 보수법원시대에 이어 등장한 1차 진보법원시대(1836~1890)는 최초로 인민민주주의적 가치관이 법원의 다수철학이 된 시기였다. 대중의 시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던 일단의 그룹이 1828년 선거 결과 집권하게 됨으로써 잭슨주의 기득권을 침범했다는 주장을 배척했다. 그러나 브론슨 대 킨지 판결을 통해 그들이 마샬법원과 연속선상에 있었음을 드러내었다. 다시 정리해 보면 마샬과 타니는 빈부문제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서로 대조되나 확고하고도 전형적인 태도를 취했다. 마샬은 다수의 대중으로부터 소수인 부자의 기득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한 반면 타니는 특권을 경계의 대상으로 여겨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남북전쟁으로 시동이 걸린 산업발전은 빈부간의 격차를 더욱 심화시켰고, 계급충돌의 원인이 되었다. 링컨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들은 대체로 경제적 잇슈를 해결함에 있어서 연방 정부나 주 정부가 경제개혁 수행에 상당히 신축성을 가지도록 했다. 남북전쟁 후 경제입법에 대한 획기적인 판결인 먼 대 일리노이 주 판결은 재산권의 사적 행사가 공공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는 공익의 이익 보호를 위해 이를 규제할 수 있다고 판결함으로써 그들의 신념을 확고히 표현하였다. 그래서 1892년까지 타니의 경찰권론이 새로 출현한 계약자유원칙의 상위에 군림하고 있었다.1890년부터 시작된 2차 보수법원시대는 자유방임주의에 의해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각 세력간의 다툼 결과 보수주의가 승리한 시기이다. 1890년대 동안 새로운 사뢰개혁을 주장하는 계급과 전통적인 가치관을 고집하는 계급간의 대립은 더욱 심화되어 이념의 양극화 현상을 초래한다. 그리고 공황 1893년에 시작된 공황이 점점 더 심해지자 개혁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간의 대립은 절정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사회의 긴장이 고조되고 개혁의 요구가 높아지자 이에 정비례하여 보수적 반동세력을 규합하여 더욱 견고한 방어진을 구축하게 된다. 결국 19세기의 마지막 10년 동안 가장 진보적인 대법관 둘이 죽자 법원의 우익에로의 전향은 급히 가속되었다. 결국 1890년대의 중반은 보수세력이 법원을 지배하여 사회진화설과 자유방임사상을 미국의 기본법으로 삼은 보수주의의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미 시카고 철도회사 대 미네소타 주 판결 에 의해 그들의형법원시대를 유지하게 되었다.2차 자유방임주의시대는 윌슨의 지지 아래 하딩의 당선으로 시작된다. 결국 잭슨주의 시대 이후 처음으로 법원 6인의 골수 보수주의자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진보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먼 대 일리노이 주 판결에서 결정된 이래 계속 따라온 공익의 옷을 입은 재산권 이라는 개념을 공격하는데 에드킨스 대 아동병원 판결에 잘 드러난다. 한 동안의 침묵의 시대를 지내고 법원의 진보주의자들은 맹렬한 반격을 개시했다. 그리고 보수 대법관들은 급진 대중주의의 부활을 두려워한 나머지 더욱 우익의 자세를 공고히 하게 되었다. 결국 그들의 양립불가의 그룹은 1929년의 대공황을 정점으로 심화되어 갔다.그러나 공황이 심해져갈수록 그들의 정부의 개입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높아져갔고, 1933년 루즈벨트 대통령의 취임으로 전례없는 정부의 간섭을 허용하는 무더기 법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그의 경제회복정책인 뉴딜정책은 적법절차조항 을 활용하여 주의 권한을 효과적으로 제한하는 법원에 의해 작동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러한 사법우위원칙의 선언은 입법부, 행정부의 기능마비의 우려를 낳아 맹렬한 반발을 초래했다.1937년의 사법혁명은 경제입법에 대한 헌법적 거부권의 행사를 거부했다. 루즈벨트가 재선함으로써 경제를 소생시키기 위한 정부의 광범위한 개입을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이를 거부했다. 이를 보여주는 웨스트 코스트 호텔 대 패리쉬 판결은 보수적 사법적극주의의 주춧돌이었던 경제적 실체적 적법절차를 제거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때의 헌법철학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있다. 즉, 재산권의 지위는 우선적 지위에서 강등되어 다른 법적 권리나 마찬가지로 입법절차를 통해 조정, 절충될 수 있게 됨으로써2차 진보법원시대를 열게되었다. 루즈벨트 법원은 사회경제입법의 심사자의 역할을 중지하고 대신 홈즈적 진보주의의 특색인 사법자제의 태도를 채택하게 되었다. 그래서 모든 국민이 누구나 다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기본적인 욕구를 충적할 수 .
1. 서 론인간은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그들만의 규칙을 만들고 그것을 어길 때에는 벌을 줌으로써 그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왔다. 특히, 사회가 발전하면서 그들이 만든 형벌의 종류가 달라지고 그러한 형벌은 제도화되어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19세기 후반까지 사형은 일반적인 형벌중의 하나였고, 사형의 종류는 교수형과 참수형, 그리고 능지처참형으로 나뉘었으며, 가끔은 예외적으로 법률로 규정되지 않은 잔혹한 사형을 과하기도 했다. 또한 구경꾼이 많이 모일만한 장소를 골랐고, 3족을 멸하거나 5가작통제와 같은 연대형벌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살인죄가 아니더라도 통치질서에 도전하는 죄를 묶어 사형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말 천주교인들을 대거 처형하는 비극이 빚어진 것이다. 그러나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사형제도는 변화하게 되는데, 사형방법으로 참수형이 폐지되고 교수형만 남게 되었다. 사형집행장소도 감옥 담 안에서 이루어졌으며, 개별책임주의를 원칙을 적용하였다. 일제식민시대와 더불어 대량감옥의 등장으로 사형의 중요성은 현저히 줄어들었다.이처럼 사형은 목숨을 빼앗는 형벌로 극악무도한 범죄자에게 그 죄를 응징하기 위한 최고의 형벌이기 때문에 현재 극히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그래서 시대가 변함에 따라 가장 변화가 많았던 형벌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형제도는 아직까지도 많은 논란의 여지를 가지고 있다. 사형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교도소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고 자유형이 없었기 때문에 사형은 하나의 극단적 형벌로서 기능했으나 무기자유형이 현실적으로 실행되고 있고, 자유형으로서 범죄억제가 가능한 이상 사형은 무해화(無害化)의 유일한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한인섭(1999).『인간 존엄성과 사형제도』서울:청하 pp45~31. 그러나 사형제도의 존치를 주장하는 이들은 사형은 일부 흉악범 또는 사회 파괴범에 대해 선량한 다수 국민 또는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사형 폐지는 범죄자의 인권보다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할 의무가 있에 대한 개념적 논의를 고찰해 보고 진행추이와 그 향방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2. 사형제도에 관한 논의1)사형제도 존치국으로서 우리나라우리나라에서 해방이후 1948년부터 1998년까지 한국의 사형집행건수는 총 902명으로 연평균 19명이다. 전반적인 추이를 보면 70년대 전반에 사형집행건수가 가장 높았으며, 그 뒤 대체로 집행건수가 감소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80년대 후반 들어 사형건수가 상대적으로 낮았으나, 90년대 중반 들어 사형건수는 다시 증가하고 있다. 1989년부터 1998년까지 사형집행건수는 총 96명으로 연평균 9.6명이다. 10년 단위로 보면 사형의 집행건수는 점차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1996년 1월 1일 이후 사형이 확정된 자는 96년 9명, 97년 8명, 98년 9월 1일 현재까지 3명 등 총 20명이다{) 정국환(1999).『사형제도의 어제와 오늘』.서울:민음. 전반적인 추이를 보면 70년대 전반에 사형집행건수가 가장 높으며, 그 뒤 대체로 집행건수가 감소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80년대 후반 들어 사형건수는 가장 낮게 나타나나, 90년대 중반에 들어 사형건수는 다시 증가하고 있다. 대체로 정치적 권위주의, 권력집중이 강화되면 사형집행건수가 증가함을 알 수 있으며, 통제가 이완되는 상황에서는 사형집행건수 역시 낮아진다. 사형집행은 그 사회의 범죄의 흉포성 보다는 정치권력의 성격을 반영함을 입증한다. 즉, 우리나라의 사형제도의 역사에서 집권자는 정치적 숙적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합법적인 사형제도를 남용해 왔으며 그것은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형은 통상적 사형과 구분되는 몇가지 특색을 보이고 있다. 먼저 재판의 적법성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비상사태를 이용하여 사법권이 매우 위축된 가운데 사형을 선고하고, 변호인의 실질적 조력을 받을 권리가 매우 억압당하며, 방청권의 제한 등 적법절차에 어긋나는 가운데 사형선고가 내려진다. 때문에 사형선고의 정당성이 늘 의문시되고 있다. 둘째,대한 사형폐지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이는 인권의식의 신장, 사형 이외의 법적 통제수단으로 범죄자의 무력화에 충분한 제도의 정비 등의 사정도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큰 충격은 2차대전의 잔혹성, 특히 나찌하의 인종청소의 폐해를 목격하면서, 그에 대한 체계적인 반성이 뒤따르면서 사형폐지론이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폐지경향은 현재에 이르면서 더욱 가속화 되고 있는데, 1989년 이후에만 모든 범죄, 혹은 통상범죄에 대한 사형을 폐지한 국가가 20개국 이상에 이른다. 이들 나라는 대부분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함께 서구식 민주화를 규범으로 받아들인 나라이다.물론 모든 국가가 폐지대열에 그대로 가담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91개국이 사형을 존치하고 또 집행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형집행건수는 매우 적다. 사형집행 건수별로 보면 전세계 사형 중의 70% 이상을 집행하고 있는 중국이 가장 많고, 우크라이나 및 러시아가 뒤를 잇고 있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 사회주의를 갓 벗어났지만 여전히 억압적 통제정책을 선호하는 국가는 사형과 높은 친화력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사형제도의 폐해를 짚어보고자 한다.3. 영화 속 사형제도의 모습1) 데드 맨 워킹Deadman walking. 죽은 자의 걸음을 뜻하는 제목은 사형수가 형장까지 걸어가는걸 뜻하는 말이다. 분명 아직 살아있는 사람에게 '죽은 자' 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사회적 생명이 다 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사회에서 '죽은 자 로 여겨지는 그는 이미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무시되어졌다. 매튜는 약물 중독자인데다가 인종차별 주의자이고, 나치 추종자에 타인에 대한 존경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비열한 인간이다. 더군다나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을 뿐더러 종교의 힘을 빌어 죄를 면하고자 하는 파렴치한이다. 즉, 이 영화의 주인공 매튜는 분명 사형당해야 할 인간 임에 틀림없다. 그가 저지른 죄는 사형이외의 어떤 벌로도 용 곱지 않은 시선을 견뎌야만 한다. 결국 재판관의 선고에 의한 살해되는 사형수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에게도 커다란 상처를 입히고 있고 그들이 그들의 희생을 감수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영화는 이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결코 매튜에게 감정이입이 되지 않도록 매튜에게 손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마다 끔찍한 살인장면이 끼어 들고, 매튜가 아이들에게 쏘는 총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30분은 영화속 진행 시간과 실제 상영 시간이 일치한다. 즉, 시간의 진행을 일치시키고 매튜가 사형당하는 장면과 매튜가 저지른 살인 장면을 번갈아 보여줌으로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더욱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여기서 묻고자 하는 것은 합법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개인이 저지른 살인에 차이점이 있는가이다. 결코 2가지 방법 모두 용납할 수 없는 살인임이 틀림없다.사형은 보편적으로 인정된 인간의 생명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사회가 개인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결국 그의 존엄성을 무시한 것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더군다나 매튜가 누워있는 사형실은 병원 응급실과 비슷해 보이는 깨끗한 방이고 의사가 매튜의 팔에 튜브 달린 바늘 하나를 꽂고 기계에 타이머를 맞추고 나감으로서 사형은 기계가 집행하게 된다. 사형을 선고하는 과정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집행하는 과정의 비인간적이고 모순된 상황은 계속되는 것이다.2) 그린 마일그린마일이란 사형수들이 전기 의자가 놓여있는 사형 집행장까지 가는 초록색 복도를 말한다. 폴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어 영화의 신비한 분위기를 더하고 있다. 쌍둥이 여자아이를 둘이나 살해한 흉악범인 존 커피는 엄청난 거구임에도 어린아이같은 순진한 눈망울에 겁을 잔뜩 집어먹은 어리숙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영화는 사형제도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과는 달리 이야기의 중심내용은 폴과 존의 인간적인 교감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존이 살해범이 아닌 것을 알고 있지 수많은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종교적 광기, 인종적 편견, 이데올로기적 편견 등 각종의 편견이 오판의 구조적인 배경을 제공하였다. 이같은 편견은 지금도 남아 오판의 가능성을 열어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형사사건에서 쓰이는 증거의 불확실성 때문에 오판은 언제든지 내려질 수 있다. 증거로 널리 쓰이는 것은 피고인의 자백, 목격자 증언, 그리고 살인 사건 등에서 널리 보여지는 과학적 감정 등이다. 그런데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에 의한 강압수사의 산물인 경우, 심리적 곤경의 산물인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경우 자백의 증거능력이 배제된다고 하지만, 고문이나 강압을 받았음을 입증하여야 하므로, 그 입증에 실패한 경우 그 자백은 증거로 쓰일 수 있게 된다. 고문이나 강압을 받지 않은 경우에도 회유에 의한 자백, 진범을 은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허위자백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목격자 증언의 경우 그 목격사실의 확실성이 종종 의심되어지기도 하며, 가장 확실한 것처럼 보이는 사실도 매우 주관적인 해석작용을 통해 왜곡되어질 수 있다. 인간의 목격행위는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행지식과 편견을 통해 굴절되어지며, 그 목격을 기억화하는 과정에서도 일종의 의식 무의식상의 왜곡이 생겨날 수 있다.이처럼 존이 여러 정황 증거에 의해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할지라도 얼마든지 과학적 검증에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한 개인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오류를 시정하지 못한채 더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3. 사형제도 폐지의 정당성우리나라 사법제도에서 사형은 형법, 형사소송법, 행형법, 군형법 등 32개 법에 관련조항이 있다. 사형을 법정형량으로 정하고 있는 범죄는 무려 89가지나 된다. 법정형량에 사형이 규정되어 있는 범죄가 5~6개인 미국과 일본 등에 비해 과도하다고 할 수 있다.또한 사형이 사회악의 근원을 영구히 제거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는데 이는 불합리하다고 할 수 있다. 범행 당시에는 ‘사회악의 근원’이었지만, 영구히 사회악 자체였던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