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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무용]마기 마랭의 작품세계와 전후 예술
    Maguy Marin의 작품세계와 전후(戰後)예술김대원1. 들어가며프랑스의 안무가로 마기 마랭(Maguy marin)은 독일의 후기 표현주의의 피나 바우쉬(Pina Bausch) 같이 기존 발레의 규격화된 형식과 현대의 춤동작의 혼용은 타 예술분야와의 접목을 시도하여 작품에 반영하고 있다. 이것은 춤동작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연극적 기법을 사용한 ‘탄츠 떼아트르(Tanz Theatre)’는 독일 문화의 독점적인 장르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데, 마기 마랭(Maguy Marin)의 작품들은 춤에 청각적 요소들이 가미되어 있는 ’탄츠 떼아트르(Tanz Theatre)'에 대한 프랑스적인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녀는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매체를 활용함으로써 대규모의 인원으로 장시간 투자하여 복잡다단한 현대의 사회상을 대변하였다.여기에서 마기 마랭이 당시의 현대 사회상을 작품 속에서 어떻게 대변하는지, 그리고 당시 문학예술들이 가지고 있던 공통된 시대인식과 창작경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2. Maguy Marin의 작품세계마기 마랭(Maguy Marin)은 스페인계 부모 사이에서 1961년 프랑스의 뚤루스(Toulouse)에서 태어났다. 여덟 살 때 뚤루스(Toulouse)의 콘서바토리(Conservatory)에서 발레를 배우면서 무용을 시작하였고, 파리로 이주하여 당시 유명한 러시아의 발레리나 니나 비로부바(Nina Vyroubova)에게 사사하였다. 그 후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에 있는 오페라 발레단에 입단하여 직업무용수로 출발하였다. 스트라스부르에서 국립연극학교의 학생들을 만나면서 기존의 춤에 회의를 느끼고 새로운 학업을 위한 진로를 모색하였다. 공연예술에 대한 지식을 넓히고자 열린교육을 추구하던 그녀는 모리스 베자르(Maurice Bejart)의 ‘무드라(Mudra)’에서 수업을 하게 되었다. ‘무드라(Mudra)'는 3년 과정의 무용 학교로 목소리 훈련, 연기교육, 즉흥연기 및 리듬훈련을 주로 가르치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창조적인 사고와 자유로녀는 기존의 창작방식과는 다른 교육으로 ‘무드라(Mudra)’의 학생들과 함께 그룹 ‘샹드라(Chandra)’를 창립하였다. 이 모임은 연극의 이해를 바탕으로 춤으로의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기 위한 실험적인 작업을 하는 모임이었고 1974년에 해체되었다. 또한 그녀는 스위스 로잔느에 있는 모리스 베자르(Maurice Bejart)의 ‘20세기 발레단’에 입단하여 안무의 기회를 얻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그녀는 춤의 정체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녀는 첫 작품으로 1976년 ‘20세기발레단’에서 ‘유쿠리(Yu-Ku-Ri)'를 안무하였고 1977년 리옹 콩쿨에서 ’환기(Evocation)'를 안무하여 대상을 수상하였고, 1978년 바뇰레(Bagnolet) 국제 안무경연대회에 출전하여 ‘Niebels de Nino'라는 작품으로 대상을 수상하였다. 그녀는 바뇰레 국제안무경연대회(1978)와 리옹 콩쿨(1977)에서 연속 수상하면서 작품활동의 기반을 다지기 시작하였다. 1978년 ‘떼아뜨르 드 라르쉬(Theatre de l'Arche)'라는 자신의 무용단을 설립하였고, 1984년 ’꼼빠뉘 마기 마랭(Compagnie Maguy Marin)'이라는 무용단으로 개명하였다. 이 무용단은 1981년 크레테이유(Creteil)시에 정착하여 발드마렌(Val de Marne)시의 협력 기구와 크레테이유(Creteil)시 후원 기구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았다. 작품 대부분은 크레테이유(Creteil)문화예술관에서 재정지원을 받아서 공연되고 있다. 이 무용단은 1996년부터 프랑스의 엑상 프로방스(Aix en Provence)에서 활동하고 있다. 마기 마랭(Maguy Marin)의 초기작품으로 ‘죽음과 소녀(La jeune fille et la mort, 1979)', ’칸테(Cante, 1980)'는 발레와 현대무용의 테크닉이 결합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나타난 주제의 선택은 ‘무드라’와 ‘20세기 발레단’의 단원시절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이 결과 1981년 이후 연극에 대한 깊은 연구로멘(Hymen, 1984)'과 같은 대규모의 총체적인 작품을 창작하게 되었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메이 비(May B)'는 사뮤엘 베케트(Samuel Bekett)의 작품 “고도를 기다리며”를 토대로 안무한 것으로 이 작품에서 마기 마랭은 현대인의 절망적인 인간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언제 올지 모르는 ‘고도’를 막연히 기다리는 ‘블라디미르’과 ‘에스트라공’의 지친 모습을 포착해내어 방대한 군무로 희망과 이상향을 기다리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냈다. 1982년 작품 ‘바벨 바벨(Babel babel)'은 성서의 바벨 신화를 기초로 한 작품으로 이상화된 원초적인 세계와 문명화를 거쳐 인간이 창조해낸 엄격하고도 불합리한 사회를 대조적으로 그려냈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빠르게 변화하는 극적 전환과 무용수들의 자유로운 움직임이 특징이다. 또한 타 장르와의 종합적인 결합으로 영화의 몽타주기법을 도입한 공연의 형태는 주목할만하다. 그녀는 자신의 무용단과 파리 오페라 발레단(Paris Opera Ballet)을 위한 두 편의 부조리극은 전쟁의 잔혹함을 겪고 현대문명 속을 살아가는 현대 인간의 존재와 삶의 문제들이 무질서하고 부조리하다는 것을 소재로 삼는 연극이다. 부조리극은 사실주의적인 전통 연극기법 대신 소위 반 연극의 기법을 통하여 부조리한 상황을 제시한다.실험적 경향의 단막 작품도 안무하였는데 특히 발레테크닉과 현대적인 움직임을 결합하여 안무방식에 있어서 핵심적인 테크닉을 형성하게 되었다. 기존 발레를 토대로 한 창작 발레를 시도하였는데 이들 작품은 은유적이고, 우화적인 이미지들을 창조하고 있다. 주로 작품을 반영하는 상징화된 움직임이 모호하지 않도록 하여 관객들에게 친숙한 주제로의 접근을 시도하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으로 ‘신데렐라(Ciderellion)’는 1985년 리옹 오페라 발레단에 의해 무대에 올려졌으며 환상적인 무대와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특히 무용수들은 모두 19세기 중국인형을 닮아 보이는 가면을 쓰고 있다. 그리고 전통적인 판토의 형식파기에 따른 새로운 춤 스타일을 추구하였다. 이 작품은 무대 위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줄넘기 놀이를 하는 등 일상적인 움직임이 보여진다. 또한 무용수들은 자동차를 타고 무대를 돌아다니거나, 다양한 소품과 의상에 작은 전구를 달아 기계적인 이미지를 부여하였다. 그리고 무대미술은 평면적인 무대공간에서 벗어나 수납공간처럼 짜여졌다. 2층으로 꾸며진 무대 공간은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여러 장소에서 볼 수 있게 함으로서 다양한 시각적 효과를 살리도록 하였다. 음악은 소음이 복합적으로 사용되어 의성어가 음악으로 편집, 재구성되었다. 이 작품에 나타난 주요 테크닉은 일상적 움직임과 로봇의 기계화된 움직임 등으로 나타났으며, 클래식 발레인 ‘신데렐라’를 새롭게 창작하여 다 매체의 활용과 타 장르의 혼합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형성하는 총체예술의 형태를 보여주었다.마기 마랭은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스스로 “줄거리 없이 반복되는 일상의 무의미한 동작과 대사, 허탈한 웃음 뒤에 파고드는 인생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짚어 보는 한편의 부조리 연극과 같은 춤이다"라고 평가한다. 그녀의 춤은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으며 일상적이고 평범한 동작 안에서 포장하지 않은 삶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1997년 세계연극제의 무용극 부문 초청작으로서 예술의전당에 올려졌던 '바떼르조이(Waterzooi)’와 ‘메이 비(May B)’에도 잘 나타나 있다.발레와 현대무용의 테크닉의 조화는 일상적이고 단순한 움직임을 통해 자기 세계를 표출시킨 것이다. 이와 같은 경향은 최근 유럽 현대 춤에서 보이는 추세이며 관객과의 의사소통을 보다 긴밀하고 용이하게 하기 위한 장르통합으로 인식되고 있다.마기 마랭(Maguy Marin)의 작품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독특한 안무기법과 연극적 기법 등 다양한 방법으로 무용수들의 창작방식과 해설방식을 유추하게 되었다. 그들의 표현영역을 확대시킴으로써 무용과 타 장르의 결합으로 그 경계를 무너뜨려 장르를 해체시키는 총체예술을 지향하는 것으로 요약할충, 조화되어서 하나의 통합된 양식으로 총체예술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마기 마랭(Maguy Marin)은 안무과정 중에 무용수들을 참여시키는 방법으로 피나 바우쉬의 방식과 흡사하다. 즉 단순한 신체의 표현이 아닌 무용수 개인의 심리에 기반을 두어 그들이 느끼는 것을 독자적으로 자유롭게 표현토록 유도하였다. 무용수들에게 있어서 주역과 단역의 개념을 초월하여 자신의 개성에 따라 각각에 부합되는 동기를 유발하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작품 안에 연극적인 움직임과 춤 형식 외에 그들이 갖는 미묘한 감정들 기쁨, 슬픔, 좌절, 불안 등의 미세한 감정을 표출하게 하였다. 이와 같이 그들이 추구하는 움직임은 삶의 현장에서 보여지는 몸짓으로 일상적이고 평범한 동작이다. 이것은 일상의 움직임을 춤으로 승화시키고, 여기에 연극적인 기법을 대입시킨 극적 연출양식을 시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장르의 일원들 즉 무용수, 안무가, 음악가 등이 함께 해야할 공동작업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주변의 예술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자세를 강조하였다. 이러한 정신은 독일, 프랑스 뿐 아니라 최근 유럽 등지 기타 각국에서 시도하고 있는 총체 예술화된 무용극형식으로 발현되어 현대 무용계에 등장한 새로운 사조로 풀이되고 있다.3. 「May B」를 통해 본 전후(戰後)예술의 지향점무용극의 조건은 무용을 기초로 하여 연극적인 체제와 원칙에 따라 나가는 극의 기본 전제로서 플롯 구성과 인물 또는 성격, 그리고 행동과 갈등 등의 요소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May B’는 무용극이 지녀야 할 요소들과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인간존재의 허무 또는 존재의 상실이라는 주제를 무대에 표현하였다. 인간 자신의 주체성 탐구나 자아의 본성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성 그 자체의 문제를 제기하는 실존주의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그가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문제제기 되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실존은 절망적이고 허무적인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되찾고 다.
    예체능| 2009.01.16| 5페이지| 1,000원| 조회(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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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무용]케이르스매커의 작품세계 Anne Teresa De Keersmaeker
    Anne Teresa De Keersmaeker김대원1. 들어가며1960년 벨기에에서 태어난 안나 테레사 드 케이르스매커(Anne Teresa De Keersmaeker; 이하 케이르스매커)는 빔 반드케이뷔스(Wim Vandekeybus), 마크 반룽트(Marc Vanrucxt)와 더불어 벨기에 현대무용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현재는 1983년 창단한 댄스 컴퍼니 ‘로사스’를 중심으로 전세계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일본의 무용평론가 미우라 마사시의 표현을 빌리자면, 70년대의 노이마이어, 킬리언, 80년대의 니파 바우쉬, 포사이드의 뒤를 이어 90년대는 케이르스매커의 시대로 기억될 것이라는 평가를 내림으로서 벨기에와 유럽을 넘어 세계의 무용을 주도할 당대의 중요한 안무가의 위치에 올려놓았지만, 그러한 명성에 맞지 않게 이에 대한 연구는 아직 활발하지 못하다. 본 보고에서는 케이르스매커에 대한 평론, 리뷰 등의 자료를 수집 축적하고, 케이르스매커의 작품세계가 어떠한 역사적 흐름에 경유하고 있으며 또한 이런 역사적 흐름이 당시 예술사에 미친 영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2. 시대적 고찰유럽사회-특히 프랑스와 독일사회-의 전 영역에 걸쳐 전폭적인 변화를 초래한 1968년 5월 혁명(이하 68혁명)은 예술 분야에도 직간접적인 큰 영향을 미쳤다. 극좌사상의 영향을 받은 예술인들이 늘어나면서 연출가, 극작가, 안무가, 작곡가, 지휘자가 중심으로 펼쳐지던 무대예술에 대한 반기가 세워졌고 배우, 무용수, 연주가들이 자신의 고유한 말을 할 수 있는 자유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런 영향으로 창작기법은 집단적인 목소리와 몸짓의 표현으로서 구성되어 지고, 공연 자체에서는 집단창조의 방식이 성행하게 된다.한편 7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혁명의 열기가 사라지자, 68혁명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실패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고 탈환상(demysficcation)의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가두투쟁, 서정적 담화들, 위대한 변화에 대한 희망 등 변혁의 공간을 채웠던 개념들이 모사(simulacre)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함께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68혁명이 초래한 사회형태의 변화와 구성원들의 새로운 삶의 방식 및 세계인식을 무대에 구현하기 위해 새로운 표현형태를 찾지 않을수 없게 된 것이다. 사라작의 주장처럼 ‘새로운 것을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것들을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을 통해, 그동안 지나치게 이념의 장이었던 무대, 원대한 스토리를 보여주었던 무대, 세계를 역사적 관점으로 분석하는 표현들로 가득했던 무대를 거부하고, 이념과는 무관한 소시민들 그 자체와 그들의 진부한 일상적 삶의 단편적 일화들에 관심을 돌리고, 그 대상들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마치 멀리서 망원렌즈로 잡듯이 수평적 접근을 시도한다.무대예술의 탐구영역은 소시민의 세계로 집중되고, 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 또는 우연히 발생한 사건 등 일상성을 표출해내고자 하는 노력들이 전개된다. 그동안 발언권이 제공되어지지 않았던 보통 사람들에게 발언권을 주게 된 것이다. 소시민의 일상생활은 저속하고 무의미하다는 이유로 무대에서 배척당해 왔지만 이제는 창조영역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고급스러운 표현양식이나 잘 짜여진 형식을 거부하고, 상이한 표현양식을 뒤섞어 사용하며 일상의 삶을 바라보는 복수적 관점들이 서로 교차되거나 충돌되는, 때로는 우연히 일치되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한다. 지금까지 설명한 관점과 방법은 소시민들의 평범한 삶에 생긴 크고 작은 균열들을 통해서 현대인의 모습을 밝히고 현대사회의 하부 역사를 쓰려는 당시 무대예술의 실험이었다.3. 케이르스매커의 작품세계마사시는 케이르스매커의 작품의 특징을 강인함으로 보았다. 여기서 말하는 강인함은 신체의 강도를 의미한다. 신체의 움직임은 단순한 요소로 환원되어 가는데 동시에 이 단순함 속에 강인한 힘을 채워나간다는 것이다. 몸을 뒤집을 때도 전신의 힘을 넣어서 뒤집고, 의자에 일어나더라도 온 힘을 다해 일어난다. 신체에 힘을 집중시키다보면 동작에 엇박자가 나기도 한다.케이르스매커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강인한 신체의 모습 그 자체가 아니라 내재적인 강인함이다. 이것은 ‘강렬함(intensite)’이라는 새로운 조어로 명시된다. ‘강렬함’은 강력함 같은 외적인 힘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내재적인 흐름의 집중을 통해 형성되는 내재성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70년 이후 프랑스 사회학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개념이며 그들의 저서도 강렬함의 연속이다. 이질적인 요소의 외부까지 포함하는 내재성의 원리는 70년대 이후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강렬함은 현상학적인 감정에 빠진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내재적인 감정을 느낀 것이다.이러한 강렬한 움직임은 지속성을 나타내기보다는 단절을 지향한다. 단절의 인상이 제시하는 것은 음악적인 요소이다. 끊임없는 단절의 연쇄작용이 관객으로 하여금 음악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이 음악(단절의 음악)속에서 무용수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체가 개별적으로 뚜렷하게 부각된다. 이것이 케이르스매커의 안무원칙이다.당대 예술의 창작원리에 있어서 기존의 방법과 가장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이 접속과 이질성의 원리이다. 기본 구성단위는 장면이며, 각 장면은 대상이 된 어떤 일상적 삶의 단편들이다. 그 장면들의 결합방식은 영화, 미술, 음악 등 인접예술의 기법들을 적용한 것이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논리적 연결과 연속성을 배격하고 이질적인 혹은 무관한 장면들을 조립하여 그 사이의 충돌 혹은 대립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려는 충돌 몽타주(montage de collision)기법이다. 충돌 몽타주는, 하나의 에피소드에 해당하는 장면들을 나열하며, 전체적인 구도는 시작, 중간, 종말의 틀이 없이 하나의 장면 이미지에서 다른 장면 이미지로 연결하여 장면들 사이의 이미지 연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주로 영화에서 사용되는 편집 방식의 일종으로, 전통적 의미의 스토리를 무시하고 연상적 비교에 의해 의미를 창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착안한 것이다. 이 기법을 사용하는 작품에서는 장면들 사이의 논리적 빈틈, 논리적 비약이 흔히 나타나고, ‘불연속성, 절분법에 의한 리듬, 부분들의 상호충돌, 소외효과, 단편화’ 등의 특징들이 나타난다.‘음악은 내 무용작업의 첫 번째 파트너’라는 케이르스매커의 고백처럼 음악의 그녀의 작품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지닌다. 사용되어지는 음악을 완벽히 이해하여 이를 움직임에 고스란히 적용함으로써 마치 ‘무용으로 듣는 음악’이라는 그녀만의 독특한 안무 스타일을 확립시켰다. 지난 20여 년동안 선택한 음악은 바흐, 모차르트, 바그너, 바르톡, 쇤베르크, 존 케이지, 리게티, 이자이, 티어리 드 메이, 스티브 라이히 등 바로크 시대 음악으로부터 현대음악까지를 망라한다. 특히, 미니멀리즘 음악의 대가로 꼽히는 스티브 라이히 음악은 안느 테레사의 선호 레퍼토리로 최소한의 리듬과 악구가 무한히 반복되듯, 움직임의 동작구(motion phrase)가 반복 변형 확장되며 매우 견고하면서도 눈부시게 화려한 작품을 창조하여 ‘무용의 미니멀리스트’로서의 그녀의 정체성을 확립시켰다는 평이 있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다양한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할뿐 미니멀리즘만을 고수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예체능| 2009.01.16| 4페이지| 1,000원| 조회(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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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용,문화인류학]존 미들톤의 무용문화인류학, 우간다의 루그바라족
    우간다의 루그바라에서의 춤 by 존 미들톤김대원서문본문은 북서 우간다의 루그바라 종족이 수행하는 춤의 특정 측면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생각되어질 수 있다. 움직임이 핵심 요소가 되는 미학적 양식, 특정 심리적 상황의 정화작용 및 표현 양식, 관찰하는 관중들을 위한 드라마의 양식, 열중함으로서 영혼과의 교감에 들어가는 방식 자신이 관찰되고 있든 그렇지 않든지 관계없이 자기 자신의 신체적 움직임의 감각을 즐기는 것 등 그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생각되어질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서 춤을 사회적 행위라는 전체성의 일부로 보고 있다.?임종춤(Death Dances)옹고는 사후에 죽은자와 부계 혈통적인 유래로 연결된 남성과 여성 집단이 추는 춤이다. 아비 abi로 알려져 있는 다른 옹고춤들은 사후에 일년 동안 다양한 시기에 친척 집단이 춘다. 옹고는 ‘애도하는 춤’인 오위-옹고 auwe-ongo와도 관련이 되어 있고, 아비는 ‘유희춤’인 아비코-옹고 avico-ongo와 관련이 있다.애도하는 춤은 사후에 가능한 빨리 시작되거나 실제 매장이 되기 전에 시작된다. 춤이 이루어지는 시간은 낮 시간대이지만 죽은 사람이 연장자이면 밤까지 계속된다. 무용수들은 죽은 자의 혈연관계에 속한 사람이고 죽은 자가 연장자일수록 혈족의 범위가 넓어지고 춤추는 시간도 길어진다.옹고가 수행되지 않으면 죽은이가 자신에게 보여지는 존경이 부족한 것으로 인해 모욕을 받아 자신의 친족에게 질병이나 악몽을 초래하거나 그들에게 유령으로 나타난다고 믿었다. 이런 경우 사후 일 년 뒤에 아비춤을 수행하는데 많은 주의가 기울여진다.임종춤이 수행되지 않는 경우는 죽은이가 아기들이나 나병환자, 벼락 맞은 사람들, 기우제의 기도사일 경우이다.옹고와 아비춤이 수행되는 장소는 죽은이의 컴파운드에서 멀지 않은 평평한 평지에서 공개적으로 수행되는데 죽은이를 위해 마련될 무덤과 사당과 관련이 있다. 무덤은 비석으로 표시되지만 곧 파내져 잊혀진다. 춤은 죽은이의 지위에 따라 다양한 장소에서 이루어지는데 지위가 높을수록 컴파운드로부터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루어진다.옹고와 아비춤은 중앙에서 집단적으로 추는 남성들과 주변에서 개별적으로 추는 여성들에 의해 수행되어진다. 무용수들은 춤을 추면서 자신들 문중의 용맹성을 찬양하고 참석한 다른 문중들을 모욕적으로 공격한다. 무용수들은 기혼이든 미혼이든 상관없이 주로 젊은 남성들로 구성되어지는데 이들은 ‘위대한 젊은이들’이라는 의미의 카룰르 와라 karule wara라고 불린다.아비는 전체적인 애도 시기가 종결되었다는 것을 표시하며 옹고로 시작되어 아비의 기쁨으로 마친다. 아비와 옹고가 함께 적절한 혈연과 친족적 유대를 재진술한다는 점에서 아비는 옹고를 적절하게 보완한다.♡구애춤구애춤은 ‘원을 만들기 위해 옆으로 움직인다’라는 뜻을 지닌 왈랑갸 walangaa라고 불린다. 젊은 남녀의 춤이고 늦은 저녁에 수행되며 장터에서 수행된다. 군중 속에서 기쁨을 누리기 위함은 물론 이성과의 밀회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임종춤과 달리 구경꾼들은 없으며 춤을 추지 않는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휴식을 취하는 무용수들이 전부이다. 남녀 사이에 신체접촉이 가능한 춤이다.?비교되는 춤들임종춤은 주로 남성들이 추며 여성들은 구경꾼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이웃사람들은 가까이 서서 구경은 할 수 있지만 무대 주변에 머물러 있어야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춤에 참여해서는 안된다. 왈랑갸는 사회적으로 덜 중요한 공동체 일원들로 구성되는데 심지어는 지나가는 행인들도 참여할 수 있다.옹고와 왈랑갸 모두는 어느 시간대에서든지 수행이 가능한데 보통 옹고는 낮시간대에 왈랑갸는 늦저녁이나 밤에 춘다. 왈랑갸는 1년내내 추지만 임종춤은 파종이나 수확시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는 추지 않는다. 옹고는 주거지의 안전한 사회적 중심지와 신성시 여겨지는 영적인 장소에서 수행되어지고, 왈랑갸는 대부분 장터나 길거리에서 이루어진다.임종춤은 의무적으로 몽환의 경지와 취하는 것이 허가되어지고 종종 집단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왈랑갸는 황홀경이나 그와 유사한 행동들이 결여되어 있고 취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고 폭력도 강하게 금지하고 있다.형식적인 측면에서, 임종춤은 남성 무용수들이 구경꾼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원 안에서 두 줄을 형성하여 고정된 유형을 보여주는 반면 왈랑갸는 명확한 선의 유형 없이 아무렇게나 서서 구경하고 쉬고 대화한다. 임종춤은 루그바라 사회의 남녀의 사회적 특성과 위치에 대한 관념에 따라 구분되어 서로 다른 움직임들을 수행하지만 왈량갸는 남녀 사이에 다른 차이는 없다.상징적인 의미에서의 차이는, 임종춤은 중요한 전이 의식 rite of transition의 기본요소이며 성인식 등에 대한 이렇다할 의식이 없는 루그바라에서는 유일한 전이 의식인 셈이다. 인간의 물리적인 죽음으로부터 신에 의해 정화되고 강화되기 위해 하늘로 그의 영혼이 날아오르는 과정과 그의 다른 영적 요소들이 관목림지로 날아가서 초혼되어 그 사당과 함께 조상이나 영령으로 바뀌는 것에 이르는 과정의 특징이 있다. 또 다른 특징은 죽은이의 지위에 집중된 혈연과 친족, 이웃 같은 연대의 고리가 소멸되고 조상과 영령의 새로운 지위에 집중된 새로운 연대 집단을 만드는 과정이다. 황무지는 신적인 능력의 자리이며 매우 위험한 곳이다. 하지만 황무지의 힘과 강력한 영적인 힘에도 아랑곳 않고 춤을 통해 개인적인 정체성을 들어내며 그 힘을 거부한다. 또한 황홀경의 상태가 됨으로서 무용수들은 자신들이 혈연 집단 내에서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례적인 관계를 포기하고 신 그리고 죽은이와 연결된 총체적 개체의 형태로 변모된다.반면 왈랑갸는 춤과 관련된 의식성과 모호성이 상대적으로 더 적다. 비친족적이어서 친족 개념이 사회의 주를 이루는 루그바라 종족에 비추어 보았을때 비사회적이다.다른 춤들여성들이 수행하는 니암비 nyambi라는 춤이 있다. 죽은 여성의 자매들이나 결혼하기 위해 출생지를 떠나는 소녀, 자신의 자매를 잃은 여성 등이 추는 작은 규모의 춤이다. 사용되어지는 음악은 성적인 것과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루그바라 사회에서는 자주 수행되는 춤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중요하지 여기지 않는다.또 다른 니암비라는 춤이 있는데 앞서 말한 니암비 보다는 규모가 더 크다. 보통 수확이 좋았을때나 긴 건기가 끝났을 때 수행된다. 이 시기는 질서 있는 일상의 진행이 중단되었다고 생각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무질서한 사회의 모습이 보여진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혼동스럽고 불확실하여 일시적인 의식의 한계에 부닥친 시기에 수행된다는 점에서 임종춤과 유사한 점이 있다. 하지만 임종춤과는 다르게 여성들만 수행하는 등 부계 중심의 친족 관계를 넘어서서 수행된다.
    예체능| 2009.01.16| 4페이지| 1,000원| 조회(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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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연구, 종교]기어츠의 '문화의 해석' 종교에 대한 접근 평가A+최고예요
    영적 세계는 광대하다. 영계(靈界)는 물질세계를 넘어선 다른 영역에 펼쳐져 있다. 그러나 그 보이지 않는 힘은 물질세계와 상호침투하며, 또 물질세계를 전적으로 지탱하고 있다. ― 마크 헤드슬《비밀의 역사》1. 기어츠의 종교에 대한 접근 방법의 특징: 문화 이론기어츠는 종교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물론 이것은 작업 정의working definition이다.종교란 (1)작용하는 상징의 체계로서 (2)인간에게 강력하고, 널리 미치며, 오래 지속되는 분위기와 동기를 성립시키고, (3)일반적인 존재의 질서 개념을 형성하며, 그러한 개념에 사실성의 층을 씌워, (5)분위기와 동기가 특이하게 현실적인 것으로 보이게 한다.기어츠는 ‘문화 체계’라는 것들 중의 ‘하나’로서 종교로 본다. ‘하나’라고 하는 것은 즉 상대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에게는 이데올로기도 문화가 된다. 즉 종교와 동등한 위치를 가진 것이다. 기어츠에게 있어 종교는 이데올로기와 마찬가지로 문화라는 가장 포괄적인 범주의 한 부분으로 포함될 수 있는 하위 범주, 그러나 ‘문화’라는 범주와 전체성-부분성의 차이만 있을 뿐 같은 본질을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종교가 문화의 ‘일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한 표현’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라는 것이다.이처럼 기어츠에게 있어서는 종교보다는 문화가 우선적으로 이해되어야할 개념이기 때문에 기어츠의 종교 정의를 하기 전에 문화에 대한 기어츠의 이해를 간략히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물론 기어츠 자신도 인정하듯이 ‘문화’는 한 마디로 쉽게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것이다. 그에게 문화는 본질론적으로 기호론적인 것이다. 그래서 ‘상징symbol’이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게 된다. 그에게 “문화는...상징으로 나타나는 역사적으로 전승된 의미의 유형, 즉 인간이 그것을 통하여 생활에 관한 지식과 태도를 서로 전달하고, 영속화하고, 발전시키는 상징의 형태로 표현되는 전승된 개념의 체계를 뜻한다.” 이처럼 ‘생활에 관한 지식과 태도’와 연관된 것이 문내어 그대로 행동하기만 하면 그들 문화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기어츠가 원하는 것은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왜 그렇게 표현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문화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설정된 일련의 의미구조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람들은 그러한 의미체계에 의거하여...[산다]”라고 표현한다. 또 달리 표현하면 “문화는 해석 가능한 부호들...의 상호 연결된 체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중층 기술은 자연과학과 같은 분석적 이해를 목표로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행위자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이해적 접근법verstehen approach”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인류학의 ‘이해’의 작업을 통해 목적하는 바는 “인간들간의 의사 소통의 세계를 넓히는 것”이다.이와 같은 기어츠의 문화 이론과 방법론--결국 종교 이론에도 그대로 적용되는--은 스미스의 종교에 대한 이해와 방법론과 상당부분 같은 기초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해석학적 견지에 근거하여, 첫째는 ‘그들의 살아있는 의미’를 존중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설명’보다는 ‘이해’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이해’를 결국 인류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서로에 대한 상호 이해와 존중으로 이어지게끔 하려는 목적성을--물론 기어츠와 달리 스미스에게서 더욱 노골적이고 ‘진리’라고 표현되는 차원으로까지 표현되고 있지만-- 갖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기어츠는 분명히 인류학자이기 때문에 그의 구체적인 민족지에서는 미시적이고 현재 진행형적이며 특정 공동체의 차원에서 행하는 현지 조사field work의 관찰 기록들과, 그에 대한 ‘해석’--‘분석’이라기 보다는--을 기술하고 있다. 이는 스미스가 대종교 전통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통해, 거시적이고 역사적이며 보편적인 차원에서 타인의 신앙을 ‘해석’하려는 것과는 다른 점이다. 그렇지만 기어츠는 여전히 객관적인 과학을 추구하며 자신이 주관주의나 신비주의에 대항하고 있다고 스스로 표현하고 있다. 기어츠의 종교 정의로 돌아가자. 필자는 기어츠의 종교 정의의 모든 항목을 거론하기보다는 스미스와의 차이점을 드러낸다고 보여지는 부분인 (1), (3), 그리고 (4)-(5)를 선택하여 기술하도록 하려 한다. 기어츠는 종교를 “(1) 작용하는 상징의 체계”로 보았다. 여기서 상징은, 기어츠의 설명에 따르면, ‘모델model’이다. 그리고 모델은 ‘무엇에 대한 모델models of...’과 ‘무엇을 위한 모델models for...’의 양 측면을 갖고 있으며, 이런 양 측면 모두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단독적인 것이 아니라 ‘체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은 이 ‘문화체계-종교’에 의해 형성되어지는 반면 동시에 ‘문화체계-종교’를 형성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문화는 이처럼 철저히 인간과 관련된 영역의 것이다. 물론 기어츠는 초월이란 없다느니 하는 무신론적인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는 철저한 방법론적 무신론자methodological atheist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그는 객관적인 과학을 추구하는 사회과학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점이 스미스와 다른 어떤 점이다. 스미스에게 종교는 인간과 초월과의 연결통로이자 인간이 그 초월에 대해 갖는 신앙과 반응하는 표현들의 총체이다. 물론 스미스에게서도 역시 종교는 인간을 형성하는 기능을 한다. 그리고 그는 역사적인 고찰을 통해 인간의 종교적 표현들이 변화되어왔음을 기술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남아 있는 것이 있다. 여전히 인간은 초월과 모종의 관계를 추구하는 ‘종교적 인간’이라는 것이다. 기어츠에게서는 이 부분이 말하여지지 않는다.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필자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차이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변화’의 문제를 다룰 때에 있어서 양자 간의 차이가 나올 수 있다. 길희성은 스미스식의 종교 연구가 이데올로기의 은폐성을 간과할 수 있다고 비판했지만--필자도 거기에 동의하지만-- 스미스가 역사주의적 관점에 서 있었다는 것은 좀 다른 시사점을 준다. 스미스가 ‘그 사람들의 의미’를 인정 관계는 마치 스미스에게서의 축적적 전통과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만’을 보았을 때 보이는 것과 같은 폐쇄된 계closed system이다. 스미스에게는 인간과 축적적 전통 사이에 초월과의 연계 하에 있는 ‘신앙’이라는 탈출 또는 초월의 개입의 통로가 있다는 것이다. 즉 기어츠에게 있어서는 인간 자체에 의해서만 ‘문화체계-종교’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의 변화, 개혁, 새로운 종교의 창시 등을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리고 종교라는 것을 인간적인 영역에서만 서술한다. 역사주의적 관점이 적고 현재의 모습에 집중하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온다고도 할 수 있다.탈랄 아사드Talal Asad는 기어츠의 문화 해석 이론을 상당 부분 충실히 따르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그만큼 기어츠를 비판하고 있는 독특한 사람이다. 『종교의 계보: 기독교와 이슬람에 있어서 권력 관계에서의 학문과 이성Genealogies of Religion: Discipline and Reasons of Power in Christianity and Islam』에서 보여지는 그의 기어츠에 대한 비판은 기본적으로 역사주의적 견지에서 행해지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필자는 그 ‘역사주의적 관점’으로 인해, 만약 스미스가 기어츠를 비판한다면--물론 그런 일은 지금까지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하지는 않겠는가 라는 추측을 한다. 물론 아사드는 스미스와 같은 종교학적 입장에서라기보다는 역사적, 사회학적 관점에서 기어츠를 비판하고 있다. 아사드는 기어츠가 종교의 역사적 변천과 그 역사 속에 나타난 권력관계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고 비판하면서 근대화의 기획 과정에서 근대 학문이 종교나 믿음belief 등의 것에 작용한 권력적 행위들을 설명하고 있다. 근대화의 기획이 종교적인 것을 개인적인 것, 다시 말해 부분적이고 사적인 것으로 폄하하는 정치적인 역사가 있었으며 이의 반작용으로 종교들에서도 근대 학문들을 인간의 목적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으로 비난하며 오히려 종교의 있다는 점에서 근대--종교개혁 후의-- 그리스도교의 합리주의 전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즉 아사드는 기어츠가 상징symbol을 ‘사상idea’의 차원에서 말하고 있다고 보면서 그와 같은 주지주의적 견해는 종교적인 것을 충분히 표현하기에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또 기어츠는 상징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두기 때문에 상징에 큰 관심없는, 또는 관계없이 종교적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천하려고 하는, 그리스도교나 이슬람 신앙인들의 종교를 적절히 표현하기 어렵다는 것도 아사드는 지적하고 있다.필자가 제시한 아사드의 기어츠에 대한 비판은 아사드가 서술한 순서를 따르지는 않았다. 필자가 제시한 아사드의 마지막의 두 가지 비판은 기어츠의 종교 정의의 (3), (4)-(5)의 내용과 연결지을 수 있다. 기어츠는 종교는 인간이 느끼는 존재의 불안에 대해 답을 주는, 즉 “존재의 질서 개념을 형성”하는 작용을 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런 차원에서만 종교를 설명한다면 레드클리프-브라운Radcliffe-Brown의 종교 이해--종교는 상식적인 것 이외의 것을 설명해주는 설명 체계--와 별반 다르지 않으며 신앙인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아사드는 비판한다. 신앙인들의 동의를 얻을 수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이해가 아닐 것이다. 물론 기어츠는 과학의 입장에서 객관적이고 현상적인 해석을 한다고 하겠지만, 그리고 초월 자체가 없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신앙인들의 눈으로 보기에 이런 표현은 환원적인 느낌을 주는 것임에 분명하다. 이처럼 기어츠에게 종교는 인간이라는 총체의 기능적 한 부분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할 수 있는 것이다.(4)-(5)에 보이는 기어츠의 종교 정의에서 필자가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그의 표현의 방식이다. 그는 종교가 존재 질서의 개념을 제시하며 그렇게 제시된 개념에 ‘사실성의 층’을 씌워서, 인간으로 하여금 종교적인 행위와 사고를 하게 하는 분위기와 동기가 특이하게 ‘현실적인 것으로 보이게 한다’고 서술한다. "사실성의 층을 씌우고 현실적으로 보이게 다.
    사회과학| 2009.01.16| 6페이지| 1,000원| 조회(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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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Bivblo" genevsew" !Ihsou'1. 기독교의 기원기독교의 창시자로 알려지고 있는 예수는 로마제국의 지배 하에 있던 팔레스타인의 남부지역인 유대 지방에서 태어났으며, 생애의 대부분을 이 나라의 북부지방인 갈릴리에서 보냈다. 그리고 초대 기독교 신자들은 예수 탄생의 시기와 장소가 우연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따라서 당시의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종교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초기 기독교의 배경과 특성을 고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기독교가 성립되던 당시 세계는 로마제국에 의해 정치적인 통일이 이루어졌던 시대였다. 이러한 로마의 정치적 예속이라는 상황은 초기 기독교의 형성과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로마제국이 정치적 통일의 이념으로 삼았던 것은 다름 아닌 헬레니즘 문화였다. 한편 예수시대에는 로마제국 안의 모든 대도시에 상당수의 유대인 공동사회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들은 보통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라 불리며 기독교사상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사도행전은 이 디아스포라 유대교가 기독교적 가르침의 최초의 전달자로서 초기에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들 가운데는 헬라 문화와의 적극적인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으며 특히 알렉산드리아는 이 같은 헬라화의 중심지였다.초기 기독교가 조직화 되어 가는 과정에서 로마의 법률과 제도의 요소가 상당히 수용되기도 하였다. 결국 로마제국과 헬라 문명은 새로운 종교의 확산을 위한 통로를 제공하였지만 바로 그 점에서 부정적인 요인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점은 특히 기독교가 로마제국으로부터 공인을 받게 된 이후에 기독교 예배가 황실의 의식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결과 일반회중은 예배에 있어 보다 수동적인 역할로 밀려난 일이나, 이른바 ‘어용 신학’의 출현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초기 기독교는 유대사적 입장에서 볼 때 유대교의 한 종말론적 종파에 불과했다. 기독교가 보편의 메시지를 주장하였던 것은 헬라 문화 내지 철학과의 만남을 통해서 구체화 되었던 것이다. 결국 역사적 기독교는 유대 문화와 헬라 의적 경향에 동조하고 있었으나 여기서도 자연 신교적인 유니테리안주의와 대결하게 되어 심각한 변도의 고비를 넘게 되었다. 설교가 무디와 같은 인물들의 영향으로 많은 청년들이 세계 선교에 헌신하게 되어 세계 선교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유대교dj;a, hw:hy] WnyheOla> hw:hy] laer;c]yI [m'v1. 유대교의 이해유대교는 오직 야훼만을 창조와 도덕 그리고 정의의 유일한 원천으로 간주하는 윤리적 유일신관의 종교이며 특유의 선민사상과 계약사상을 배경으로 집단적 역사의식을 강조하는 종교이다. 또한 유대교는 대체로 형이상학적이라기 보다는 현세지향적이며 행위를 강조하는 종교이다. 이들의 율법인 토라의 준수를 제 1강령으로 삼는 그들은 내세보다는 지상에서의 거룩한 삶의 구현을 가장 중요한 종교적 목표로 간주한다. 유대교에서 토라(인내, 가르침, 교리라는 히브리 명사)는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한다. 먼저 그것은 하느님의 계시로 여겨지는데, 이 계시가 인간의 실천성을 요청할 때 그것은 계명으로서 토라로 받아들여진다. 또는 구체적으로 토라는 율법을 의미한다. 이때 협의로는 통상 모세 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만을 의미하지만 광의로는 히브리 성서 전체, 미쉬나, 예루살렘 및 바빌로니아의 탈무드, 미드라쉬 문헌, 히브리 성서와 탈무드에 대한 주석, 그 밖에 신비주의 문헌과 윤리, 철학적 문헌을 포함한 모든 유대 종교 문헌 전승을 뜻하는 것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 밖에도 토라는 지혜와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러한 유대교는 광의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 족장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4000여 년에 걸친 유대 민족의 종교현상 전부를 뜻하며, 협의로는 B.C 5C 유대 민족이 바빌론 유수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와 유대교를 재건한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2400여 년 동안 믿어온 신앙체계를 가리킨다.이러한 유대교는 지금까지 유대인들의 정신적 의지처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지만 이들이 가지고 있는 선민의식은 다른 민족에게 혹시켜 주었다.-십자군과 게토십자군 전쟁 이후 1348년에서 1350년까지 발생한 흑사병은 유럽인구의 삼분의 일을 앗아갔으며 그로 인해 유대인은 최악의 곤경에 빠지게 된다. 즉, 흑사병의 책임을 유대인에게 뒤집어 씌워 흑사병으로 가족을 잃은 기독교인들은 곳곳에서 유대인에 대한 대규모적인 테러와 학살을 일삼았고, 이는 곧 영국(1290), 프랑스(1309년, 1311년, 1394년), 독일(14세기), 러시아(15세기 말)에서의 유대인 추방령으로 이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교회와 국가는 정기적으로 유대인 박해를 사주하거나 묵인함으로써 이들의 탄압을 눈감아주었고 이러한 현상들은 16세기 이후 차츰 일정한 지역에 갇혀 살아야 하는 게토(Ghetto)제도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유대 신비주의유대교가 토대로 삼는 것은 계약사상이지 특정한 종교적 신비 경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대교는 본질적으로 신비주의적 종교는 아니다. 유대교 역사에서 신비주의 전통이 지니는 의의는 그것이 박해에 대한 유대인의 대응방식의 하나였다는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그리하여 이때 독일을 중심으로 한 Hassidism과 스페인 및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을 중심으로 한 Kabbalism의 신비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카발리즘은 유대 신비주의의 대표적인 경전으로 알려진 《조하르(Zohar, 빛의 서)》를 탄생시켰다.《조하르》는 다른 유대 종교문헌과 마찬가지로 오경과 성서에 대한 교훈적 설교투의 주석서 형식을 띠고 있으나, 더불어 다양한 상징적 묘사가 두드러지며 여러 유형의 카발라 사상이 자세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전통적인 유대 사상과는 달리 악의 문제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즉, 악의 세계 역시 무한자 신으로부터 유출된 것으로 이해한다. 《조하르》를 계승 발전시켜 독특한 자기 수축설을 주장한 모세 코르도베르 이후 유대 신비주의 사상은 매우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하시디즘에서는 이 자기수축설을 신이 피조물의 세계 안으로 스스로를 감추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고 불렀다. 또 그의 계시를 수록한 책을 “꾸란”이라고 불렀으며 신의 책이라고 일컬었다. 그는 메카의 개혁을 시도하였으며 처음 그의 메시지 “알라만이 참 신이며 카아바의 신들은 참 신이 아니다)라 하였다. 당시 조금 호응은 있었지만 대부분 조롱하고, 박해까지하여 그는 기독교국인 에디오피아로 피신하였다. A.D.619년 크하디자아와 그의 삼촌이자 보호자였던 아부탈리브가 세상을 떠났고, 이제 부족 내에는 무함마드의 위치는 전보다 불안정해졌다. 6년간의 피난 생활중 메디나의 여러 공동체들간의 투쟁과 알력을 해결해 달라고 요청을 받고 A.D.622년 메디나에 입성을 하게 되었다. 이 사건을 ‘헤지라'라고 하는데, 모든 모슬렘들이 기원을 이때에 두고 있다. 그는 “예언자여 저 불신의 무리들을 대항하여 싸워서 그들을 준엄하게 다스리라”(꾸란9:47)는 계시의 말씀을 합리화시켜 종교를 앞세워 약탈을 일삼게 되었다. 그는 아라비아 내의 부유한 기독교인, 유대교인들을 괴멸하고 메카군과 맞서게 되었다. A.D.630년에 저항하는 메카가 항복하였다. 그는 메카로 진격하여 메카를 이슬람의 중심지로 삼았으며 그의 첫 설교가 금요일이었으므로 그들은 금요일에 예배를 드린다. 메카의 통치자로 등장하면서 아라비아 반도 전역의 각 부족들을 이슬람교로 개종시켰다. 헤즈라 10년인 A.D.632년 메카에 마지막 순례를 마치고 후계자 알리에게 그의 자리를 물려주고 그해 6월8일 62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3. 이슬람교의 확장한손에는 꾸란, 한손에는 칼이란 표어아래 이슬람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노예와 짐승의 중간 쯤으로 여기고 죽여도 살인이 아니라는 태도로 이슬람교의 확장을 서둘렀다. 이들의 목적은 이루어져 무함마드 사후 25년이 되었을 때 이슬람의 정복은 이집트, 북 아프리카,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까지 퍼져 나갔으며 1세기 후에는 러시아와 스페인에게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슬람교는 그들의 신조에 대하여 지지를 얻기 위하여 폭력과 설득의 방법을 사용했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통치자로 주신 거룩한 책은 104권이며 이는 아담에게 10권, 셋에게50권, 에녹에게 30권, 아브라함에게 10권, 모세에게 5권(토라), 다윗에게 시편(자부르), 예수에게 복음서(인질), 무하마드에게 코란을 주었다. 무슬림들은 기독교인들이 책들을 변조시켰다고 하면서 코란의 권위를 정당화시킨다. 코란은 신이 인간에게 준 최후의 계시이므로 모든 성스러운 책들을 대신하며 선지자의 책들은 변조되었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준 책에는 진리와 오류가 섞여있어 코란이 이를 바로잡기 위해 주어진 책으로 본다.(4) 선지자: 신에 의해 선택받은 선지자를 나비라고 한다. 전통에 의하면 무하마드가 말하기를 124000명의 선지자와 315명의 사도가 있었다고 한다. 이들 중 여섯명의 탁월한 선지자들이 있는데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무하마드인데 그 중 무하마드는 가장 위대하며, 이전에 있었던 모든 선지자들을 대신하다.(5) 예정론: 무슬림들에 의하면 선악을 막론하고 모든 일의 발생은 변하지 않는 알라의 천명에 의해 예정된 것이라한다. 무슬림들은 “알라는 어떤 사상으로 제한할 수 없으며 그것이 도덕적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다”고 믿는다. 용서와 저주는 전적으로 알라에게 달려있다는 것이다. 알라는 그가 원하는대로 천국으로, 또는 지옥으로 인도한다. 이것은 알라만이 인간의 행위와 운명에 대한 유일한 결정권을 가진 자라는 것이다. 이것은 완전한 숙명론이며 인간의 모든 행위에 대해서는 그것이 선하든지 악하든지 전적으로 알라에게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무슬림 신학자들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완전히 부인하는데, 혹 신학자들은 약간의 자유의지는 인정한다.(6) 최후의 심판: 무슬림들은 최후의 심판을 믿는다. 코란에 의하면 최후의 심판일에 신의 유일성을 믿고, 무하마드가 마지막 예언자로 믿는자는 천국으로 보내지며 그들 가운데에서도 죄를 범한 자는 자신의 죄만큼 지옥으로 보내어졌다가 그의 신앙에 따라 다시 천국으로 보내진다. 또 신의 유일성을 믿지 않고 아들이 있다고 믿는 자와, 불신자, 위선자들은 한다.
    인문/어학| 2009.01.16| 27페이지| 2,500원| 조회(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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