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역사라는 수업을 처음 들었을 때 많이 생소했고 다른 나라의 문화라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레포트를 써야하는데 도서관에 있는 책들은 일본어로 되어있는 게 많아서 이해하기 힘들었다. 서점의 많은 일본의 역사에 관한 책들 중에서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일본의 역사를 시대에 따라 주목해야할 일들을 따로따로 정리해서 일본사를 이해하기 쉬울 꺼 같았고, 또 그림 자료을 많이 싣고 있어서 좀더 자세하고 시각적으로 일본의 역사를 들여다 볼 수 있을 꺼 같아서 이 책을 선택하였다. 참고로 일본의 역사를 시대에 따른 중요사건을 다루는 것으로 일본역사를 요약했다.원 시 구석기시대>죠몬시대>야요이시대역사시대에 대비시켜 쓰는 용어. 선사시대와도 같은 의미. 그러나 선사시대는 문헌학상의 시대구분으로서 문헌사료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를 말한다. 원시시대는 인류문화가 시작되는 시기라는 뜻으로 선사시대보다는 넓은 의미. 일본의 원시시대는 구석기 시대를 시작으로 죠몬시대를 거쳐 야요이 시대에 이어진다. A.D 3세기경 까지 .*시 대1)구석기 시대분명치 않다. 죠몬시대 이전의 무토기(無土器) 문화를 구석기로 보지만, 이 때에 이미 간 석기가 사용되어 신석기 시대라 보는 견해도 있다.2)죠몬시대죠몬식 토기가 사용된 시대. 죠몬(繩文)이란 토기의 표면에 밧줄을 눌러 만들어낸 무늬. 간 석기가 사용된 신석기 시대에 해당하지만 농경이나 목축이 아닌 채집경제 단계로 실생활은 구석기에 가깝다. B.C 1만년 전후에 시작된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아직 아리송. B.C2500년 경으로 보기도 한다.3)야요이 시대야요이식 토기가 사용된 시대. 1884년, 도쿄의 야요이(彌生) 지역에서 죠몬 토기와는 다른 항아리 형의 토기가 발견되어 야요이식 토기라 하였다. 벼농사가 시작되고 청동기와 철기가 사용된 시대로 B.C 3세기부터 A.D 3세기 경까지. 한반도 도래인 또는 그 영향 하에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농업 공동체가 형성되고 소규모의 정치적 지역집단도 성립되었다. 홋카이도는 너무 멀어 아 변모하여 전방후원분이 발생했을 것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숫적으로는 원형분이나 방형분보다 적지만 규모가 대단히 크다.대체적으로 전방후원분은 야마토 지역에서 처음 형성된 후 야마토 정권의 확대와 함께 세토 내해(瀨戶內海)를 중심으로 한 각지로 퍼져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거대한 규모 때문에 강력한 고대왕권의 확립을 말해주는 증거로 채택되기도 한다. 반대 견해도 있다. 내부의 매장시설도 비교적 간단하고 껴묻거리도 빈약할 뿐아니라 대부분 주술적 성격이 짙은것들이어서 강력한 정치, 군사력의 성장보다는 샤먼적 권위의 비대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도래인(渡來人) : 1970년대부터 사용하게 된 조어. 그 전에는 귀화인(歸化人)이라고 했다. 주로 고분시대에 일본에 건너 온 사람들을 가리키지만 일본으로의 도래는 이전의 야요이 시대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다. 어느 일본인 학자에 의하면 7세기 말까지의 전체인구중 70-90%가 도래인이라고도 한다.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생각된다.-천황(天皇) : 7세기 경부터 사용된 용어. 통수자의 뜻을 가진 '스메라미코토'라 읽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5,6세기에는 '대왕(大王)'이라 표기하고 '오키미'라 읽었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각지에 지역의 수장급에 해당하는 '왕(王)' 즉 '기미'들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2)아스카(飛鳥) 시대쇼토쿠(聖德) 태자가 스이코(推古) 천황의 섭정이 된 593년부터 나라(奈良)의 헤이죠(平城)경으로 천도한 710년 까지. 좁은 의미로는 스이코 천황 때만을 가리킨다. 스이코 천황은 592년부터 628년 까지 재위. 고대국가의 기틀이 잡히고 불교가 전래되어 발전하였다. 문화상으로는 고분시대에 포함시키기도 한다.*주요사항-스이코 천황 : 제33대 천황. 소가(蘇我) 씨의 딸로 30대 비다쓰(敏達) 천황의 황후가 되었으나 32대인 스슐(崇峻) 천황이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에 의해 살해된 후 천황으로 추대되었다. 쇼토쿠 태자를 섭정으로 하여 정치를 하게 했으며 아스카중심으로 번영한 문화. 율령제와 당문화의 영향을 기반으로 발달하였으며, 당문화의 국제적 성격과 당시의 귀족적 색채가 잘 융합되어 독자적 문화가 형성되었다. 진호국가(鎭護國家) 사상이 유행하여 도다이 사(東大寺)를 비롯한 고쿠분 사 들이 건립되었으며 대규모의 사경(寫經)이 이루어졌다. 이와 함께 불상이나 불화(佛畵)의 제작, 사원 건축 등이 크게 발달하였다. 도다이 사의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상을 비롯한 많은 불상들이 대표적 작품이며 건축으로는 역시 도다이 사의 법화당과 호류 사의 몽전(夢殿) 등이 대표적이다.이 뿐만 아니라 가요집인 만요슈(萬葉集)와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 및 일본서기(日本書紀)가 이 때에 만들어 졌으며, 지지(地誌)인 풍토기(風土記)도 이 시기에 성립되었다. 이 시기는 일본 고유문화의 성립기로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쿠분 사(國分寺) : 국가에서 각 지역별로 설치한 관립사원. 나라 불교의 전성을 보여주는 제도이다. 쇼무(聖武) 천황에 의해 각 지역의 관청 소재지에 설치되었으며 770년대까지는 거의 전국에 걸쳐 완성. 불교의 호국사상을 중앙집권 강화에 이용하고자 한 것으로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가 지급되었다. 10세기 이후 쇠퇴.-도다이 사(東大寺) : 나라에 조영된 총 고쿠분사. 745년 쇼무 천황에 의해 창건. 일부는 수차에 걸쳐 재건되었다. 도다이 사를 대표하는 것은 세계 최대의 목조 건축이라는 대불전과 그 안에 모셔진 대불. 대불전은 높이 47미터, 동서 길이 57미터에 이르는데 이것도 18세기 초 재건할 때 동서 길이를 2/3로 축소한 것이라 한다.대불 또한 세계 최대의 금동불. 높이 약 16미터, 무게 380톤으로 머리 부분은 17세기에, 오른손은 16세기 후반에 다시 주조하였다고 한다. 그 밖에도 도다이 사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정창원(正倉院)을 비롯, 삼월당(三月堂), 남대문(南大門) 등 많은 건축물이 남아 있다.-나가오카 경(長岡京) : 감무(桓武) 천황이 민심의 환기를 위해 784년부터 천도하여 조영하기 시작. 지금의 교토부미.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가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이 된 후장군이 거주하는 곳을 막부라 하였다. 역사적으로는 무가정권 자체를 가리키는 의미로 많이 쓰인다.-정이대장군 : 원래는 8세기말 9세기초 주변지역 정벌을 위해 두었던 임시관직. 헤이안 시대 말기에 부활되었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정이대장군이 되어 가마쿠라 막부를 연 이후 막부의 수장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우리가 흔히 '쇼오군(將軍)'이라 부르는 것이 정이대장군. 가마쿠라막부 시대에는 미나모토(源) 씨, 무로마치막부 시대에는 아시카가(足利) 씨, 에도막부 시대에는 도쿠가와(德川) 씨가 정이대장군이 되었다.*시 대1)가마쿠라 시대가마쿠라 막부가 정치의 실권을 가졌던 시대. 1185년부터 1333년 까지. 막부를 세운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의 정권 장악 과정에 따라 1180년이나 1183년을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종료는 미나모토 씨의 세력 약화를 틈타 실권을 장악한 호오죠(北條)씨의 멸망. 1333년.막부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세웠지만 미나모토 씨 '쇼오군'은 3대로 끝난다. 그 후에는 섭정과 관백을 맡던 섭관가 쇼오군이나 황족계 쇼오군 등이 이어가지만 실권은 '집권(執權)'이던 호오죠 씨가 행사.*주요사항-미나모토노 요리토모 : 가마쿠라 막부의 초대 쇼오군. 미나모토노 요시토모(源義朝)의 아들. 미나모토노 요시토모는 호겐의 난 때 고시라가와 천황 측에 가담하여 공을 세운 인물. 그러나 같은 편이었던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淸盛)와의 권력 쟁탈전, 이른바 헤이지(平治)의 난에서 패하여 살해당했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이 때에 잡혀서 유배당했으나 후일 관동지방 호족의 도움을 받아 가마쿠라에서 재기. 교토를 세력권에 넣고 다이라 씨를 멸족시킨 후 무가정권을 확립하였다. 이어서 후지와라노 야스히라(藤原泰衡) 등의 반대세력을 토벌하고 1192년 정이대장군이 되어 막부를 창설하였다.-죠큐(承久)의 난 : 조정과 막부 간의 세력다툼. 1221년. 초대 쇼오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죽은 후의 혼란을 틈처음부터 지방 통제력이 약했던 무로마치 막부는 중기 이후 슈고 다이묘(守護大名)의 반란 등으로 지배력이 더욱 약해져 갔다. 슈고 다이묘란 지방관인 슈고가 영주화한 것. 대부분 교토에 머물면서 막부의 요직도 겸하였다.그러던 중 8대 쇼오군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의 아들 요시히사(義尙)와 동생 요시미(義見) 사이에 쇼오군 직 계승다툼이 생기고, 여기에 최고 관직인 관령(管領) 집안의 후계다툼과 유력한 슈고 다이묘인 호소가와(細川) 씨와 야마나(山名) 씨의 세력쟁탈전이 어우러져일대 전란이 발생하였다.1467년 교토에서 시작된 전란은 지방까지 확대되어 호소가와 씨 쪽의 동군과 야마나 씨 쪽의 서군이 무려 11년간 전투를 벌이는 사태로 발전. 1473년 주역이었던 호소가와 가쓰모토(細川勝元)와 야마나 모치토요(山名持豊)가 병사하고 서군이었던 아시카가 요시히사(足利義尙)가 쇼오군이 된 후 1477년에 이르러서야 전란은 끝이 났다.그러나 이로 인해 교토가 황폐화되었을 뿐아니라 막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슈고 다이묘들이 대부분 몰락하였다. 반면 지방 무사세력은 강화되어 이른바 센코쿠 다이묘(戰國大名)들의 격렬한 세력투쟁이 이어졌다.-전국시대(戰國時代) : 오닌의 난이 발생한 1467년부터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교토에 입성한 1568년까지. 각 지역 다이묘들의 세력투쟁이 활발했던 군웅할거 시대였다. 오다노부나가와 그를 이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통일.3)아즈치·모모야마 시대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쇼오군(將軍)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와 함께 교토에 입성한 1568년을 시작으로 본다. 종료는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한 1598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關ケ原) 전투에서 승리하여 실권을 장악한 1600년을 종료 시기로 보기도 한다. 약 30년간.*주요사항-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 센코쿠 디이묘(戰國大名) 출신. 1562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동맹을 맺고 지금의 나고야(名古屋) 일대에 해당하는 오와리(尾張)를 통일. 주변지역으로 세력을 넓힌 후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