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죽음과 불명예,아마겟돈,라이언일병 구하기,에어포스 원위의 네 편의 영화 포스터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미국은 위대하다”, “성조기는 빠질 수 없는 할리우드만의 소품 ”,“세상은 미국이 구한다.”등등미국의 우월함을 과시하는 영웅주의가 바로 그것이다.어느 것 하나 배제할 수 없는 사실들일 것 이다.할리우드 영화는 박진감 넘치며 막대한 제작비를 자랑이나 하듯 거대한 스튜디오와 견고한 촬영 시설들을 바탕으로 엄청난 음향효과와 함께 마치 실제로 관객들이 그 장소를 데려다 놓은 듯 한 느낌의 CG효과를 보여준다. 그러한 수많은 볼거리와 함께 우리는 너무나도 친숙한 그 무엇인가를 영화를 보고난 뒤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게 된다. 바로 미국 그 자체이자 미국인들의 애국심이 가득 담겨있는 성조기 이다. 미국인들의 애국심은 세계 어느 나라의 그것보다 강한 것으로 보인다. 일상 속에서는 무심한 듯 보이다가 국가적 위기의 사건이나 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United we stand 라고 외치면서 일치 단결된 모습으로 미국 전역에서 일반 대중들의 마음속에 애국심이 불일 듯 일어난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의 심장부에 행해진 사상 초유의 테러 이후로는 더욱 그러했다. 거의 80%에 가까운 사람들이 전쟁을 외쳤고, 복수심에 불탔다. 또한 미국은 하나가 되었다.미국의 국기인 성조기는 애국심의 표현으로 미국인들의 생활 속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성조기가 품귀현상이 일어났고, 성조기를 생산하는 중국의 공장들은 일손이 달려 철야 속에서 거의 몇 달을 보내기도 했다. 또한 상당수의 일상적인 제품의 디자인에 미국의 성조기가 활용되었다. 자동차에 성조기를 그려 넣은 사람이 뉴스의 초점이 되기도 했다. 어디를 가나 성조기가 펄럭거렸다. 풋볼이나 농구 경기장에서도 미국인들은 성조기를 들고 응원하였으며, 선수들의 유니폼에는 성조기가 새겨졌다. 심지어는 학교에서는 어린 초등학생들에게도 성조기 스티커를 나누어주었으며, 국기에 대한 맹세가 부활했다. 또한 미국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전쟁영화아메리카이다.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도 어느새 팍스 아메리카의 영향력 아래 있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영화들은 우리와 너무나도 친숙해져 있으며 우리들 모두는 어느새 그것을 어색하게 여긴다던가 낮설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그럼 과연 어떤영화들이 이러한 팍스 아메리카라는 개념을 내포하고 있을까?②팍스 아메리카가 나타난 영화냉전이 끝난 지금,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 패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아마겟돈’은 냉전의 최종 승리자로서의 미국의 현 위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영화다. 이 영화에 그려지고 있는 미국은 바로 이러한 유일의 초강대국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파멸로 몰고 갈 소행성이 지구로 돌진해 오고 있는 절대 절명의 상황에서도 다른 나라들은 그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으며, 오로지 미국과 미국 국민만이 지구를 위기에서 구출할 유일한 기술력과 행동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때 대등한 위치에서 미국을 위협했던 소비에트도, 한때 대등한 위치에서 미국과 전쟁까지 벌였던 일본도, 한때 미국 독립의 은인이었던 프랑스도 모두모두 미국 NASA 주도의 지구 구출 계획에 미미한 도움 밖에는 줄 수 없는 입장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영화가 철저하게 조롱거리로 만들어 버린 러시아의 퇴락한 모습이다. 이전에 만들어진 영화 에서 미국 대통령의 도움 없이는 일순간도 버틸 수 없는 무력한 국가로 몰락해 버린 러시아는 에 이르면 아예 미국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한심한 나라로까지 격하돼 버린다.18개월째 고장으로 우주정거장에 머무른 러시아 정비사는 비록 자기 스스로 끊임없이 자기가 러시아의 '영웅'이라고 떠벌이고는 있지만, 그는 그저 미국의 진정한 영웅들 앞에서 재롱이나 떠는 정신 나간 광대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러시아는 미국의 지구 구출 작전에 우연히 동참이라도 할 수 있었고, 또 어쨌든 지구를 구한 영웅 중의 한 사람을 배출할 수 있었으니까 영화상에서 그나마 상당한 대접을 받은 것이라 봐야 한 부르짖는다. 이를 듣고 있는 사람들은 숙연하게 이를 청취한다. 이렇게 지구를 지키는 것은 미국이고 미국은 위대하다고 결론을 맺고 있다. 의 홍보전략은 대단했다. 클린턴 대통령까지 백악관에서 특별시사회를 가져 재선 홍보 라는 논란을 불러 일으키면서까지 이 영화의 부가가치를 높였다. 일종의 살리기 캠페인이었다. 미국의 지구방위대 역할이라는 이미지 제고와 흥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건지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리고 미국 정부 당국도 영화를 통해 그러한 이미지를 전세계에 심어 놓으려고 하는 의도도 엿보였다. 그러나 에는 불쾌한 감이 많이 있다. 영화에 녹아든 패권주의와 영웅주의 때문이다. 워싱턴이 뉴욕이, 로스 엔젤레스가 풍비박산이 나는데도 이들 재난의 도시에는 흑인과 백인뿐이다. 동양인은 눈을 닦고 봐도 찾을 길이 없다. 미국식 패권 주의와 영웅주의, 유머가 뒤섞인 성조기 빛 영화, 성조기 밑에서 세계의 다른 나라는 꿇어 앉아있고 미국의 구원만 바라고 있는 영화가 바로 다.2.미국의 영웅주의고전적인 주류영화가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방식에서 주인공 즉, 영웅이 차지하는 역할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아마겟돈에서도 지구에 닥친 불길한 기운을 해결하기 위해 영웅이필요하다. 보통 이 영웅들은 백인남성이 주를 이루고 리얼리티를 벗어난 듯해 보이는 허구적 ‘그럴듯함’ 속에 잘 포장되어 우상시 된다. 이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 중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미국식 영웅주의이다. 지구에 닥친 중대한 문제에 미국 대통령의 주도하에 미국 사람들이 해결해 나가고, 그 것을 보여주는 방식에서도 우상시하고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사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라고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주류영화에서 문제의 해결은 미국인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들만의 우월적인 논리에 의해서 영화가 전개되고 결말을 맺는 것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아도 그들이 그 소재를 그럴듯하게 풀어나가는 방식에 있어서는 가슴으로 공감하고 영화를 따라 보게 된다.① Hero히어로 영화란 무엇인가. 이 글에서 말하는 히어로 영성들을 사회의 주 구성원으로 있을 수 있게 한 1차적인 힘인 물리력은 현대 남성의 의식에도 원형으로 남아 강한 힘의 소유=아름다운 여성+사회적인 명성의 도식을 낳은 것이다. 히어로가 보여주는 이상향의 남성상은 전형적인 마초이즘의 연장이다.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지는 히어로 영화에 역력히 나타나는, 이제는 진부해진 그들만의 이데올로기는 미국식 영웅주의이다. 영웅이 존재하는 나라 미국의 국민으로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할리우드 영화의 고전이 바로 히어로물인 것이다.② Hero 영화의 시작과 역사히어로물의 시작을 살펴보려면 그 지면 원작의 연원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코믹은 그래픽 노블과 코믹의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코믹은 주로 30페이지 정도의 격 주간 소책자로 먼저 출간된 뒤 합본 과정을 거쳐서 단행본으로 만들어지며, 내용은 30페이지 안에서 끝날 수 있는 간결한 영웅담이 주를 이룬다. 그래픽 노블은 두터운 서적의 형태로 출간되며 작은 에피소드의 모음이라기보다 하나의 종결된 세계를 다루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DC코믹스는 30년대와 40년대를 거치면서 슈퍼맨(1938), 배트맨(1939), 원더우먼(1941)을 비롯한 수많은 원로 히어로들을 탄생시켰다. 무한한 창작의 자유가 주어지는 매체의 특성에 따라 초인적인 힘을 가진 주인공들의 활약이 등장했다. 하지만 2차 대전이 종결되자 냉전에 빠져든 미국인들에게 히어로들이 난무하는 코믹스는 더 이상 매력이지 않았고 코믹스는 곧 하향기에 접어들었다.침체된 코믹스 시장을 60년대에 다시 부흥시킨 것은 마블 코믹스의 스파이더맨(1962)과 엑스맨(1963) 등 현대적인 히어로들이었다. 미국은 반전운동과 배트남전, 인권운동으로 들끓고 있었다. 그런 사회적 변동 속에서 DC의 전통적인 히어로들에 비해 마블의 현실적인 히어로들은 스스로의 힘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했다.슈퍼맨 만화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곧 만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1974년 5월 칸 영화제가 개최되는 상공에서 '슈퍼맨 영화화 결정'이라는 광고문을 단 비영웅미국의 영웅은 곧 세계의 영웅이나 진배없다. Pax America가 낳은 이유인 것이다. 미국의 영웅들은 4,700명 가량이나 되며, 그 영웅들은 이미 미국의 세계의 영웅들인 것이다.● Man ●- 슈퍼맨 -*본명: 칼엘 Kal-El / 클라크 켄트 Clark Kent*능력: 태양열의 흡수, 저장으로 인한 광대한 초인적인 힘과 체력, 상해에 대한 저항력, 초 스피드, 엑스레이 시선, 열시선, 비행, 생명체의 "기"를 보는 능력, 뛰어난 전투기술.*직업: Daily Planet의 기자*모든 슈퍼히어로들 중에서 가장 인간 같지 않은(사실 에일리언) 능력을 보유. 단 한가지 약점이 있다면 자신의 고향 크립톤 행성의 크립 토나이트라는 광석에서 나오는 방사선. 언제나 정의를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하는 캐릭터. 차에 치이려는 어린아이를 구하는 비교적 작은 일에서부터 외계의 악당들로부터 지구 전체를 지키는 일까지 그에 걸 맞는 능력으로 세계를 위해 갖은 일을 다 하는 미국 상징. 빨간색과 파란색의 대조적 색상대비도 미국을 상징하는 성조기의 색상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스파이더맨 -*본명: 피터 파커(Peter Parker)*능력: 초인적인 강함, 반사 신경, 균형감각을 소유, 달라붙는 능력, 위험을 알리는 스파이더 센스, 손목에서 자유자재로 발사되는 강력한 거미줄.*직업: 모험가, 프리랜서 사진작가*우연히 방사능 거미에 쏘인 피터 파커는 초인적인 거미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고, 이러한 능력에 따른 책임을 지기 위해 스스로 스파이더맨이 된다. 그러나 그가 범죄를 퇴치할수록 적은 점점 늘어나게 되고, 개인의 행복은 모두 희생할 수 밖 에 없는 상황이 된다. 이러한 설정은 자국이 경제강국, 군사강국으로서 세계를 위해서 나설 수 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반미주의의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정당화 시키려는 미국의 포석이 깔린 것은 아닐까.● Women ●히어로 영화는 악당과 그에 대적하는 히어로의 싸움, 히어로의 상대역인 여자주인공과의 로맨스 두 가지 내러티브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히어
{뮤지컬의 역사현대적 뮤지컬의 탄생은 미국이라는 의견과 19세기말 영국 런던이라는 두 가지 주장이있다.영국설이탈리아, 독일, 프랑스에서 희극 오페라나, 오페레타 (Operetta, 작은오페라)를 수입함으로 인해 음악극 분야에 있어서 식민지 같이 되버린 영국이 1728년 존 게이의 발라드 오페라 "거지 오페라 (범죄 집단의 탐욕과 배신을 정치적인 풍자와 함께 공연 음악에 특출난 작곡자 헨리 퍼셀의 작품부터 거리의 발라드에 이르는 다양한 음악들을 자유롭게 이용해 만든 작품으로 후에 런던 연극사에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old희가극의 전형이 되었다.)"를 무대에 올림으로 해서 초기 뮤지컬의 시작을 했다 볼 수 있다.19세기말 정치적 경제적으로 막강한 국가였던 영국은 몰려드는 무역상과 부호들을 위한 오락물이 없음을 한탄하고 1892년 10월 영국 황태자극장에서 "도시에서(In Town)"라는 뮤지컬 촌극 (Musical Farce)을 만들었고 그 당시 공연의 주류가 되었다.Musical Farce는 자유롭고 애매한 제목의 극본, 풍부한 노래와 춤, 희극 오페라 무대의 인기있는 연주자들과 화사한 미인들이 주역으로 등장하는 특징을 갖는다.그 뒤, 이 형식은 더욱 발전되어 1893년 존스의 음악으로 "게이티 걸(A Gaiety Girl)"을 공연하였는데 이것이 Musical Comedy라 불리는 첫 번째 작품이 되었다.80년대에 들어서면서 뮤지컬은 대중들로부터 더 이상 연극이나 오페라의 아류가 아닌 독특하고 독립된 장르로 인정받으며 대형화, 상업화에 성공하고 영국과 미국의 전유물에서 세계화된 공연 형태로 자리를 잡았다.여기엔 영국의 작곡가 엔드류 로이드 웨버의 공헌이 절대적이라 할 수 있는데 1978년 "에비타(EVETA)"로 시작하여 1980년에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1981년에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와 캣츠(CATS)" 등을 연속 크게 히트시키며 뮤지컬을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재탄생시켰다.반세기 동안 콜 포터, 레였던 1751년 발라드 오페라 "거지 오페라"로 알려져 있는데 이보다 앞서 1730년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에서 "폴로라"라는 발라드 오페라가 공연되었다는 기록도 있다.19세기중엽 "민스트럴 쇼(Minstrel Show - 흑인 노래 + 셰익스피어의 희곡 + 오페라를 혼합한 형태의 미국식 악극)"가 유행하며, 여기서 파생한 "보드 빌(Vaude Vill - 풍자적인 대중가요를 의미하던 용어, 가벼운 뮤지컬 극)" "발레스크(Burlesque - 해학적인 내용을 담은 장막 풍자극)" 등 순수 미국식 뮤지컬 쇼와 유럽에서 수입된 코믹 오페라, 오페레타 등이 혼합되어 차츰 뮤지컬 코미디 스타일의 형식이 구축되었다.미국인에 의한 최초의 뮤지컬 작품은 남북전쟁 직후 1866년 브로드웨이 니그로즈극장에서 상연된 "검은 옷의 부랑자(Black Crook)"가 있다. 이 작품은 원래 예정돼 있던 극장에 불이 나서, 급히 서둘러 브로드웨이의 니그로즈 극장으로 옮겨 공연한 것으로 현재의 브로드웨이 극장가가 생기게 된 시초가 되었다.그 뒤 유럽에 영향을 받은 코믹 오페라들이 공연의 주류를 이루다가 1927년에 막을 올린 "쇼 보트(Show Boat)" 1943년의 "오클라호마(OKLAHOMA)" 1949년의 "남태평양(South Seas)"으로 이어지며 이전 작품들과의 차별화와 또하나의 예술형식으로 정착하는 계기가 된다.그 후 50년대에 들어서며 그저 극 속에 머무는 것에 지나지 않던 뮤지컬의 노래들이 대중들에게 파고들기 시작하는데 로저스 햄버스타인이 음악을 담당한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은 가히 폭발적이었다.이 50년대의 대표적 작품들이 "아가씨와 건달들(Guys and Dolls -1950-)" "피터팬(Peteter Pan -1954-)" "마이 페어 레이디(My Pair Lady -1956-)" "시카고(CHCAGO -1957-)"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 -1957-)"들이다.이어 60, 70년대에는 사회적 문제들의 사실 1966년 무렵이다. 유럽에서 태동하여 미국에서 절정을 이룬 뮤지컬은 우리나라에 도입된 후 우리 문화 예술계에서는 이론적 체계 정리와 토착화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에 관한 방향을 계속 모색하여 왔다. 우리나라에는 그 양식은 조금 달라도 형식적인 면에서 뮤지컬과 같은 공연물들이 올려져 왔다. 1930년대에 유행하였던 대중극의 대표적인 악극, 우리의 정서를 담은 창극과 같은 전통 음악극 형식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뮤지컬은 용어 자체가 외래 문화이다. 그런 점에서 국내의 현대적인 뮤지컬 양식의 시작인 '예그린 악단'에서 찾을 수 있다.제3극장의 의 [새우잡이](1965) 같은 뮤지컬 형식의 작품도 있지만 예그린 악단의 [살찌기 옵소예](1966)를 본격적인 뮤지컬의 효시로 보는 것은 현대적인 뮤지컬 양식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며 대중적인 인기에서도 역시 서구적인 뮤지컬과 유사하기 때문이다.예그린 악단은 처음엔 연극 형태의 음악극을 시도하였다. 첫 작품으로 발표한 [삼천만의 대향연]이 그랬다. 연극과 음악을 합성한 형태였으며 그 이후에도 그와 같은 형식의 공연물이 올려 지다가 1963년에 공연된 [흥부와 놀부]에서 처음으로 무용, 음악, 연극이 함께 만나는 뮤지컬 형식을 취하였다. 그러나 [흥부와 놀부]는 극에 맞는 새로운 작곡을 하여 공연된 본격적인 뮤지컬이라기보다는 극의 줄거리에 맞도록 기존 민요를 적절히 편곡하여 엮어 나간 작품이었다. 예그린 악단의 본격적인 뮤지컬 작업은 단장 박용구,음악(상임 지휘) 최창권, 무용 임성남, 연출 백은선,임영웅이 한 팀이 되어 1966년에 만든 [살짜기 옵소예]가 시작되었다. [살짜기 옵소예]는 당시 상당한 반응과 호응을 일으켜 음반으로도 제작되었고 패티 김이 부른 주제가 '살짜기 옵소예'는 어느 대중 가요보다도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음악,무용,연극 등 각 분야의 전문인 또는 인기 스타가 모인 이 작품은 화려하게 한국 뮤지컬의 시작을 알렸다.그뒤 예그린 악단은 [꽃님이 꽃님이](1967), [대춘향전](1968),한 것은 1977년에 완공된 세종문화회관에 소속되면서부터이다. 시립가무단은 [달빛 나그네](1978), [우리들의 축제](1981), [사랑은 물이랑 타고](1983), [포기와베스](1984), [지붕위의 바이올린](1985), [용이 나리샤](1988), [고향의 민들레](1990),[춤추는 도시](1922),[서울 사람들](1994),[간도 아리랑](1995) 등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였다.민간 극단에서 올린 최초의 뮤지컬은 1966년 동랑레퍼토리극단이 드라마센타에서 공연한 [포기와 베스]이다. 당시 미국에서 연극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유인형이 동랑레퍼토리극장의 젊은 배우들인 신구, 백의현, 양정현, 안민수 등과 함께 만들어 큰 호평을 얻었다. 이후에 만들어진 [방황하는 별들] 등 별 시리즈는 청소년 뮤지컬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였다.또 1973년 극단 가교는 톰 존스 작의 [환타스틱스]를 [철부지들]이란 이름으로 바꾸어 국립 극장에서 공연하였는데 오랫동안 고정 레퍼토리로 관객들에게 선보여 왔다. 이 작품은 우리 뮤지컬 사상 가장 많이 공연된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지금까지 이 작품을 공연한 우리나라 극단의 수만 해도 10개에 이를 정도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극단으로 이 작품을 공연한 단체는 뿌리, 대중, 현대극장 등이 있으며 , 심지어 서울시립가무단과 서울예술단에서도 공연되었다. 출연 인원이 8명에 불과하고 음악이 피아노 반주만으로도 가능하기 대문에 영세한 민간 극단이 제작하기에 부담이 덜 가는 작품이었다.현대적인 뮤지컬을 지속적으로 공연한 단체는 역시 현대극장이다. 민간 극단으로 부담의 한계를 극복하고 대형 뮤지컬을 1977년부터 꾸준히 공연하였으며 류관순 기념관에서 [빠담 빠담 빠담]을 올려 상업극 논쟁을 불러 일으키며 성공하였다. 이 작품은 1996년에 극단 유인촌레퍼토리 제작으로 네번째 리바이벌 공연을 하여 대성공을 기록하였으며 더 이상의 상업극 논쟁은 발생하지 않았다.현대극장은 그뒤 [피터팬](1979),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198은 극단 민중, 대중, 광장의 세 극단이 1983년에 합동으로 공연한 [아가씨와 건달들]이었다. 이 공연은 초연 때부터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어 지금까지도 공연되고 있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본 미국 뮤지컬이다. 1983년 초연 이후 1997년 현재까지 13년 동안 연 200만명 이상의 관객이 공연을 본 것으로 집계되었다. [아가씨와 건달들]의 대성공은 세 극단으로 하여금 뮤지컬을 계속 제작 공연케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극단 민중은 1984년에 [카바레]를 극단 광장과 합동으로, 1992년에는 [노력하지 않고 출세하는 법]을 공연하였다. 극단 대중은 1989년에 [쉘부르의 우산],1990년에 [캐츠],1991년에 [넌센스]를 공연하였으며 극단 광장도 극단 단 민중과의 합동 공연인 [캬바레]를 비롯하여 1987년에 [피핀], 1992년에 [코러스 라인],1993년에 [레미제라블]을 공연하였다. [아가씨와 건달들]의 열기가 가득할 때 88서울예술단(현 서울예술단)에 뮤지컬 전문 단체로 변신하여 창작 뮤지컬을 공연하기 시작하면서 뮤지컬 대중화에 불을 당겼다.1987년에 [한강이 흐른다]를 시작으로 1990년에 [백두산 신곡], 1993년에 [뜬쇠가 되어 돌아오다], 1995년에 [꽃전차] 그리고 [아틀란티스 2045], 1996년에는 [살짜기 옵서예]를 리바이벌한 [애랑과ㅣ 배비장],[성춘향]등을 비롯하여 창작 뮤지컬을 꾸준히 공연하였다.1988년 뮤지컬 전용 극장으로 출발하였던 롯데월드 예술 극장도 전속 단원을 확보하고 [신비의 거울속으로](1989), [가스펠](1990), [아가씨와 건달들](1990),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91), [돈키호테](1992),[레미제라블](1993) 등 번역 뮤지컬을 꾸준히 공연하여 오다가 결국 재정적으로 이해타산이 맞지 않아 해체되고 말았다.또한 1990년대에는 극단 맥토가 [동숭동 연가](1993), [번데기](1994) 등 우리 창작극을 무대에 올려 높은 완성도로 관심을 모았고 젊은 극단인 모시는 사람들은 작품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