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주의(Absolutism)1. 절대주의의 정의절대주의 (Absolutism)란 봉건 사회에서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넘어오는 과도기에 영국.프랑스 등을 중심으로 시행된 군주 전제 정치 형태로 학설상으로는 이 절대주의 국가를 봉건 국가의 최종 단계로 보는 설, 근대 국가로 보는 설 등이 있으나, 균형설이 유력하다. 절대주의 체제는 대개 군주정을 채택하였으므로 흔히 절대왕정이라 불린다. 봉건제도와 근대제도의 과도기에 위치한 절대왕정은 여전히 토지의 영유관계를 기반으로 하였기 때문에 절대군주들은 토지 영유권자와 교회를 자기에게 종속시키면서 동시에 시민계급의 지지를 얻으려고 하였다. 정치형태에 있어서 중앙집권적 통일국가였다는 점에서 분권적인 중세 봉건국가와는 다르고, 인민의 무권리와 신분적 계층제를 유지하였다는 점에서 근대국가와도 구별된다. 요컨대 봉건제도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출현한 정치형태로서, 절대라는 말은 국왕이 봉건귀족·부르주아 등 어느 누구에게도 제약을 받지 않는 절대적 권력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왕권신수설이 그 이론적 기반이다. 영국은 헨리 7세 때부터 비롯되어 엘리자베드 여왕 시대에 이르러 그 극성기를 이루었으며, 가장 늦은 것은 러시아와 일본으로 19, 20세기에 들어와 시행되었다. 절대주의 시대는 한편으로는 봉건 귀족의 세력이 잔존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흥 시민의 세력이 증대하였던 시대였다. 이 시대의 특색은 관료와 상비군 제도이며, 이를 기반으로 하는 군주는 귀족과 시민의 양 세력의 균형 상태에 서서 전제 정치를 강행하였다. 이 시대의 경제 정책은 일반적으로 중상주의를 취하였으며, 군주는 관료와 상비군의 유지를 위하여 화폐 획득에 전념하게 되어, 각국은 식민지 획득을 위하여 광분하였다. 대표적인 군주로서는 프랑스의 루이 14세, 영국의 제임스 1세, 차알스 1세 등이 있고, 계몽 전제 군주로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러시아의 에카테리나 2세 등 이 있다. 절대주의 시대의 문화는 일반적정이 성립되는데 그래서, 이 시기를 절대주의(Absolutism) 혹은 절대군주(Absolute Monarchy)의 시대라고 달리 부르기도 한다. 물론, 절대왕정이 전형적인 정치 형태를 갖추고 고유의 기능을 발휘하는 것은 17세기 이후의 일이지만 이 시기는 봉건제의 위기가 표면화되면서 국내적으로는 종교전쟁과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귀족들의 경쟁 그리고, 국외적으로는 자국의 이익을 위한 국가간의 대립이 나타나는 시기였다. 또한, 지리상의 발견을 계기로 식민지 획득과 상품시장 개척에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는 시기였다.즉, 이시기는 역사상 가장 중대한 사건들과 변혁이 복합적으로 일어난 시기인데 그 중에서도 절대왕정의 등장은 대표적인 정치현상의 하나였다.Ⅱ. 본 론1) 절대주의의 개념절대주의는 "지배자가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전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체제"를 말하는데 전제주의(Despotism) 혹은, 참주정(Tyranny) 등과는 엄연히 구별되는 개념이다. 즉, 여기서의 절대주의는 일반적 의미의 전제주의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사의 한 특정한 시대에 출현한 정치형태를 지칭하는 말이다. 물론, 왕권신수설에 입각한 절대왕권정치는 이집트의 전제군주나 로마의 황제체제에서 이미 나타나기는 하지만 가장 과장된 형태와 세련된 이론으로 합리화된 것은 17세기 유럽의 그것이다.절대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론들이 있지만 오래 전부터 주장되어 온 것은 계급균형론 내지는 과도 정부론이었다. 이 견해는 구귀족 및 영주의 몰락과 부유한 상인을 중심으로한 시민계층의 등장을 중시하여 절대왕정은 이 상호 대립되는 귀족과 시민의 양 균형위에서 그 양 계급의 조정자로서 독자적이고 초월적인 권력을 보유하는 과도적, 예외적 국가형태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봉건사회로부터 근대시민사회로 넘어가는 가교의 시대라고 말 할 수도 있는데 봉건제도 그 자체를 완전히 해체하거나 폐지한 것이 아니고 영주와 교회의 권력을 절대군주에게 통합시키고 또한 신흥시민계급의 지지를 받아 그 위에 군림하는 신분제의회마저도 그 기능이 점차 정지되는 것이다.이와같이 절대군주에게 집중화된 절대권력은 봉건영주와 교회의 권력에는 대립되는 것이나, 봉건제도 그 자체를 폐지한 것은 아니었다. 즉, 이러한 권력의 집중은 봉건제도를 민족적, 전국적인 대규모로 재편성한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그리고, 이렇게 집중화된 절대왕정의 정치권력은 그 본질상 일반 개개의 영주와 교회의 정치권력 즉, 지방분권적 정치권력과도 상반되는 것이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적인 정치형태인 자유주의의 정치권력과도 대립되는 개념이다. 물론, 절대주의의 정치권력은 통일민족국가를 형성하여 봉건적 신분관계를 대신하는 시민적인 자유평등의 토대를 닦고 중상주의에 의하여 Guild 제도를 Manufacture 체제로 전진시킴으로서 시장의 확대를 초래하는 등 자본주의적 발전을 허용하였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절대주의의 정치권력을 옹호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였으며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적 시민계급 그 자체의 발전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이 시대의 정치권력은 봉건주의와 자본주의 모두에 모순된 일종의 기형적인 권력형태였다.2) 절대주의의 성립과정1 중세의 유럽절대주의가 등장하기 이전 유럽의 중세사회는 봉건귀족들이 국내에 할거하여 정치권력은 분산되어 있었으며 국왕은 그들 귀족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데 지나지 않았고 대귀족들은 국왕의 행동을 제한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국왕을 제거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귀족이외의 중세인들은 자신이 어느나라의 국민인가에 대한 자각은 없었고 오직 그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이 사는 마을이나 도시였으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은 국민이라기 보다는 어디까지나 그들이 속한 작은 공동체의 일원이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공동체를 지배하고 있던 질서도 오직 신분제의 원리뿐이었다.이 시대를 살던 사람들은 귀족, 서민이라는 신분 또는 그 신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회집단에 속하고 그 집단에 주어진 권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개인으로서는 누릴 수 없었다. 따라서유한 규칙과 권리를 오랜 역사에 의해 길러진 관습으로부터 부여받고 있었다. 이처럼 중세의 유럽은 분산되고 신분제적인 질서가 지배하고 있는 세계였다.또한 중세에 있어서의 정치적 지배권력은 사적인 토지지배에 기초를 두고 있었으므로 영주가 영민에 대하여 직접적인 정치지배를 하고 군주에게는 그 권한이 없었다. 즉, 군주의 신하에 대한 권력적 지배관계는 관념적이고 간접적이었으므로 절대주의 성립이전의 권력구조는 지방영주들에 의한 다원적이고 분열적인 것이었이며 각 정치단위는 독립적이었다. 그러므로, 군주는 영주권을 구속하고 영지의 내부까지 간섭할 강력한 권력을 갖추지 못한 예의상 또는 종교상의 존재였다.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경제분야에 있어서도 동일한 성격을 가지고 나타났는데 중세시기 동안의 경제는 각 영주들의 장원 내부를 중심으로 농업을 바탕으로한 독립적이고 자급자족적인 경제활동이 전부였다. 물론, 일부의 도시를 중심으로 소규모의 수공업과 상업 활동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이 역시 길드와 같은 수공업자 혹은 상인들의 공동체를 정점으로 이루어지는 폐쇄적이고 독립적인 활동이었다.2 중세의 위기이상과 같은 중세사회는 13세기 초반에까지 팽창과 발전을 지속해 왔으나 13세기 후반∼14세기에 이르면서 정체 내지 쇠퇴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개간 가능한 숲과 황무지가 바닥나자 인구에 비하여 토지의 부족이 심화되어 갔고 지력의 쇠퇴, 등으로 인해 생산성도 낮아졌으며 기아와 질병에 의한 인구의 감소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무엇보다도 이 시기 지배계급의 소비수준이 전투장비와 사치품 구입 때문에 수입을 초과함으로써 다수의 영주들이 재정적 위기를 겪는 14세기초 '중세의 위기현상'이 나타났다. 즉, 이것은 봉건적 생산양식이 가지는 구조적인 모순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봉건적 생산력이 더 이상의 인구를 수용할 수도 없고 지배계급의 수입증대 욕구도 충족하지 못 하는 한계점에 도달한 것이다.이러한 봉건제 자체의 구조적인 위기와 함께 1347년 이후로는 흑사병(Black Death)이라는 파국적인따른 식량수요의 감소는 곡가의 하락과 노동임금의 상승을 초래하였고 그래서, 이러한 위기는 소득 분배를 둘러싸고 지배-피지배계급간의 대립과 계급갈등을 증폭시켰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도된 지배층의 가혹한 정책들은 농민과 수공업자들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하게 되어 1323년 플랑드르(Flanders)지방의 반란, 영국의 외트 타일러(Watt Tyler)반란, 스페인의 까탈로냐(Catalonia) 반란 등 대표적인 농민, 수공업자들의 투쟁이 나타난다.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며 14∼15세기에 이르자 장원제 자체가 붕괴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래서, 영주들은 곡가하락, 지대하락, 임금상승, 농민의 반발에 따른 노동력확보 블능 등으로 인해 현금을 받고 직영지를 임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다. 이것은 결국 중세의 장원제적 농업 경영의 사실상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며 동시에 장원제적 제반 질서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또한 시민층의 성장을 촉진하고 자연경제에서 화폐경제로의 전환을 촉진시켰으며 자영농민의 출현으로 인한 농민의 사회적 지위의 향상은 봉건제도의 존립기반에 동요를 가져오는 것이었다.3 절대주의의 등장앞서와 같은 유럽 사회 내부의 변화와 함께 유럽 사회 외적으로도 십자군전쟁 이후 세계로의 통로가 개척되고 15세기에 이르러 지리상의 발견등으로 항해와 무역이 급속도로 발달하여 거대한 부를 축적하게 되자 봉건사회의 붕괴를 더욱 촉진하게 되었다. 그리고,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인식은 더욱높은 단계로 발전하여 유럽인의 시야를 더욱 넓히고 유럽인들의 경제적인 활동은 지중해에서 벗어나 전세계로 확대된다.이러한 경제적 활동권의 확대는 상업적 활동을 더욱 촉진시켜 새로운 중산계급을 낳게 하였다. 즉, 상업자본의 발달은 봉건적인 사회관계를 해체하고 새로운 근대자본주의 발달을 이끌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신대륙에서 유입되는 막대한 양의 귀금속은 자본주의의 발달에 불가결한 화폐의 공급을 촉진하였고 아울러 새로운 시민계급을 나타나게 하였
< 청소년과 주부, 노인 여가의 문제점과 해결책 >현대사회에서 이제 여가라는 것은 단지 즐기고 노는 것의 의미를 훨씬 뛰어넘어 현대인의 삶에 있어서 삶의 질이라는 의미와 결부되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그 만큼 올바른 여가 생활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게 되었고 중요성 또한 커지게 되었다.그렇다면 여기서 여가의 효과가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것은 여가의 중요성을 알아볼 수 있는 기회와 올바른 여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확한 방향을 잡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줄 것이다. 여가의 효과에는 개인적 효과와 사회적 효과가 있다.여가의 개인적 효과1.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 건강의 증진과 체력향상에 기여한다.2. 지적이고 심적, 정서적인 면에 기여한다.3.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한다.4. 새로운 생활양식의 창조→건전한 생활패턴 형성여가의 사회적인 효과1. 도시환경 개선에 도움을 준다.2. 국민전체의 건강과 체력을 향상시킨다.3. 사회복지의 질적 향상에 도움을 준다.4. 자연환경의 보존에 도움을 준다.그런데 여가의 의미와 특성이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게 적용이 되지는 않는다.사회 구성원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사회적 지위, 자금력, 개인 성격 등등 여러 요인에 따라 구분할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타당성 있고 세대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가정을 세우면 나이에 따른 구분이 가장 타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아이들의 여가생활, 청소년들의 여가 생활, 노인들의 여가 생활로 나누어 분석해보도록 하겠다. 청소년의 생활과 역활1) 청소년의 생활획일화된 학교 교육과 치열한 입시 경쟁속에서 청소년 역할이 흔들리고 있다. 물론 교육이나 제도의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발달과 청소년의 문화 변화에 비교한다면 그러한 틀의 변화는 너무나 미비하다. 또한 기성세대의 상업적 수단에서 시작된 청소년을 위한 모든 시설들-학원이나 그 밖의 놀이 공간 등-은 결국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결코 길지 않은 청소년 시기이나 그 짧은 기간동안 청포츠와 관련된 여러 가지 현상들, 예컨대 스포츠 스타들의 사회적인 위상도 크게 바뀌고 있는 것이다. 스포츠는 우리 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구성 요소가 됐다. 특히 스포츠 스타들이 청소년들의 새로운 우상으로 떠오르면서 스포츠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스포츠는 룰에 의해 진행되는 경쟁이다. 사회의 여러 일반적인 경쟁, 예컨대 판매 경쟁 같은 것들이 룰이 없는 가운데 이뤄지는 것을 보면 청소년 시절 스포츠를 통한 건전한 승부 의식의 함양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회화의 한 과정일 것이다. 중, 고등학생 시기는 신체적인 성장이 왕성하기 때문에 체육시간 이외에 방과후에도 다양한 스포츠 활동에 참여하여 체력의 향상과 운동 기능을 익히는 데 힘써야 한다.학교 스포츠 활동의 장점은 체육 시설이 고루 갖추어져 있으므로 손쉽게 스포츠 활동을 할 수 있고, 교내 운동 경기 대회는 애교심을 길러주고, 친구 사이의 우정을 북돋아 주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스포츠에 관심이 있고 기량이 뛰어난 학생은 학교 대항경기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이러한 대회는 서로의 실력을 겨루는 가운데 스포츠맨십을 길러주고, 애교심을 갖게 해준다. 학교 스포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면 성인이 되어서 건강한 체력을 유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이런 이유로 학교 체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면서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사회 체육이 유난히 강조되고 있는 것은 학교 체육에서만 얻게 되던 건전한 시민 의식이 평생 교육을 통해 계속적으로 향상된다는 점에서 크게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중, 고등학생 시기는 신체적인 성장이 왕성하기 때문에 체육시간 이외에 방과후에도 다양한 스포츠 활동에 참여하여 체력의 향상과 운동 기능을 익히는 데 힘써야 한다.이와 같은 학교 체육의 강화, 사회 체육의 확산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 재정이 아직은 스포츠를 통한 국민의 건전한 시민 의식 향상을 도모할 수 야 한다.· 청소년들을 바람직한 동반자, 경쟁자, 그리고 인도주의자로 육성할 수있도록 사회적 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도기준을 개발해야 한다.· 놀이, 여가, 레크리에이션, 휴식, 긴장해소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 지도.· 자기와 다른 문화 속에 여가활동을 이해시키고 감상시켜야 하며 세계속의 스포츠나 레크리에이션에 대해서도 이해시켜야 한다.한편 여가헌장 제 6조에 의하면 "모든 학교와 지도단체는 여가활용을 위한 기능과 태도 그리고 이해를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학교이외에서 활동하는 내용이 무언가 알 필요가 있으며 어린이들도 내면적 가치와 흥미를 가지고 충실히 참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예컨대 어린이들은 평소에 술래잡기나 단순한 놀이를 주로 하고 있으나 중 학교과정에서는 팀 게임에 참가하게 되어 흥미 있는 운동의 기초기술을 연습시키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작성해야 한다. 고등학교과정에서는 각종 구기운동이나 육상종목, 그리고 대학에서는 테니스나 골프, 수영, 볼링, 사교춤 등 장래 성인이 되어 활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4) 청소년의 여가 특징청소년들은 현재 자신의 생활에 대한 저항적 몸짓으로 자신의 여가 특징을 보이지만 여전히 기성세대를 모방하면서 자생적인 여가문화 형성이 어려운 청소년들의 여가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보인다.첫째, 청소년들이 여가에 참가하는 활동은 일반적으로 생산적인 활동이기보다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감각적이고 획일적인 여가활동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둘째, 청소년의 여가는 실내형 위주의 정서적 놀이가 중심을 이룬다는 것이다.셋째, 여가활동시 개인 또는 소집단 중심의 놀이가 점점 늘어난다는 점이다.넷째, 가족과 함께 하는 여가활동의 부족 또한 우리나라 청소년 여가문화의 특성이다.다섯째, 이제 청소년들의 여가활동에서 과거 우리의 전통적인 놀이의 맥을 찾기는 아주 어려워졌다.실제로 지금까지 우리사회에서 청소년을 둘러싼 환경은 청소년들이 여가를 즐기거나 여가를 통해 자신의다. 아이라도 낳게 되면 나와 내 가족만을 챙기기에 급급한 살림살이에 푹 파묻히게 된다.주부들의 사회적 참여가 막혀 있다보니 눈앞의 이익에만 매달리게 되고 가치관은 표피적 감각과 물신주의에 함몰되고 만다. 경제적 여유와 힘을 남편의 출세와 아이들의 교육에 쏟아부을 수밖에 없었다. 이화여대 함인희 교수는 "주부 문화는 외국에 비해 전업주부의 비율이 높은 우리의 독특한 사회 구조와 연관이 있다. 사회적 권리가 주어지지 않은 주부들은 집에서 인정받아야 했고 이것이 가족 이기주의로 왜곡된 것"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한국의 주부는 우리의 독특한 상황과 조건 속에서 잉태된 특수계층이라는 것.90대 주부들은 교육수준이나 경제수준이 10년, 20년 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사회적 욕구와 자아실현 욕구도 훨씬 강하다. 그러나 보수적이고 남성중심적 사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이든 여성을 필요로 하는 직종은 일용직이나 단순직 혹은 서비스업종에 한해 있다. 그래도 방법은 있다. 반드시 취업을 통해서만 이러한 것들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성 자신들만의 여가를 강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다음 연구는 주부의 여가활동 유형과 여가만족의 관계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보다 구체적으로 여가활동을 스포츠 활동, 취미교양 활동, 관람감상 활동, 사교 활동, 관광행락 활동, 놀이오락 활동 등 6개 유형으로 분류하여 각 유형에 따른 여가만족의 하위 요인 즉, 심리적, 교육적, 사회적, 휴양적, 생리적, 환경적 여가만족의 차이를 비교·분석함으로써 여가활동 유형이 여가만족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는데 주된 목적이 있다.본 연구에서는 1997년 현재 서울, 성남 등 대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도시 주부를 모집단으로 설정하였다. 조사대상의 표집은 유층집락무선표집법(stratified random sampling)을 이용하여 대도시 주부 500명의 표본을 추출하였다.한편 본 연구에서 사용한 통계분석 방법은 중분류분석(Multiple Classification Analysis)과 공변량분석(ANC생활체육 참여 여성과 비참여 여성을 모집단으로 설정한 다음 유층집락무선표집법(stratified cluster random sampling)을 이용하여 표본을 추출하였다. 본 연구에서 표집한 유효 표본 수는 총 1,197명이었으나 실제 분석에 사용된 자료는 불성실하게 응답한 자료로 판단되거나 조사내용의 일부가 누락된 127명의 설문지를 제외한 1,070명(참여자 395명, 비참여자 675명)이었다.본 연구에서 사용한 설문지는 크게 스포츠 참여 형태에 관한 영역, 자아개념에 관한 영역, 신체상에 관한 영역, 그리고 조사 대상의 일반적 특성에 관한 영역 등 3개의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자료분석을 위하여 본 연구에서 사용하고자 하는 통계분석기법은 조사대상의 일반적 특성을 알아보기 위하여 기술통계 실시하였고, 여성의 스포츠 참여 형태와 자아개념의 관계를 규명하기 위하여 상관관계분석과 중다회귀분석을 실시하였다.이와 같은 자료수집, 분석과정 및 논의를 통하여 얻어진 본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첫째, 스포츠참여 여성이 비참여여성 보다 스포츠 참여 형태는 일반적 자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둘째, 스포츠참여 여성이 비참여여성 보다 스포츠 참여 형태는 사회적 자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셋째, 스포츠참여 여성이 비참여여성 보다 스포츠 참여 형태는 가족적 자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넷째, 스포츠참여 여성이 비참여여성 보다 스포츠 참여 형태는 정서적 자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다섯째, 스포츠참여 여성이 비참여여성 보다 스포츠 참여 형태는 신체적 자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이러한 사회참여는 개인의 삶과 함께 사회 환경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게 도와준다. 개인, 가족, 집단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초월하는 공동체의 선을 위해 힘을 합하는 것이 좀더 가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을 키워 나갈 때 주부들의 활동이 의미 있는 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노인들의 여가 생활1)노인들의 여가생활의 특징노인은 사회적 심리적으로 소외감과 외로움을 가장 큰 고통으로 인식하고 있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