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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산관리] JIT 평가A좋아요
    { ---생산관리---적시생산시스템(Just In Time : JIT)1 . JIT의 개념적시재고시스템을 운영하는 기업은 조건이 이상적이라면,매일 그 날의 수요에 충분한 재화량만을 구입할 것이다. 매일 작업의 종료시점에 공정에서 가공중인 재화는 없고, 당일의 완성된 모든 제품은 바로 소비자에게 인도되기 때문에 창고에 보관되는 제품도 없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암시하는 것처럼. 적시라는 용어는 원재료의 제조활동 투입, 부분품의 제품조립, 제품의 소비자 선적 등이 적절한 때에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이상을 그대로 다 실현해 재고자산을 완전히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많은 기업들은 적시스템을 적용하여 재고자산을 그 이전의 몇 분의 일 수준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그결과 이들 기업은 주문 및 보관원가를 상당히 절감하고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경쟁속에서도 영업활동을 원만하게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기업이 적시시스템을 사용할 때, 여러 작업장에서 부분품과 재료의 적체를 피하면서 재화의 원활한 흐름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적시재고시스템에서의 재화흐름은 소위 제품제조의 끌어당기는(PULL) 접근법에에 의해 통제된다. 끌어당기는 접근법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수 있다. 최종 조립단계에서, 이전의 작업장에 앞으로 몇 시간 후 제품제조에 필요한 부분품과 재료의 수량에 대해 신호를 보냄으로써 정확히 그 수량만을 전달시킴다. 동일한 신호수량에 대해 신호를 보냄으로써 정확히 그 수량만을 전달시킨다. 동일한 신호가 모든 작업장에 보내져 부분품과 재료의 원만한 흐름이 유지됨으로써 공정상의 어떠한 위치에서도 재고가 쌓이지 않게된다. 이처럼 모든 작업장은 최종 조립단계에서 행해진 끌어당김 에 반응하게 되며, 최종단계의 끌어당김은 소비자의 수요를 반영해 결정된다. 어느 작업자의 설명처럼 적시시스템하에서는 후속단계에서 요구하지 않으면, 그 어느 곳에서도 누구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생산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재고는 벗어나야 할 폐해인 것 이다.끌어당기는 으로 재료를 이동하는 데 쓰이던 운반기계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된다. 둘째 복수의 흐름라인이 가동되기 때문에 생산과정의 다음 단계를 기다리기 위해 공정 중간에서 부 분완성품이 적체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즉재고감소 외에도 증진된 공장배치는 설비를 통 한 총생산량을 생산고를 크게 늘이고, 재료의 제품변환에 소요되는 시간인 생산시간을 크게 줄 일 수 있다.(2) 작업단위로 묶인 기계적시시스템에서의 한 제품흐름라인은 상이한 개별기계로 구성된 작업단위가 여럿이 모여 형성된 다.작업준비(시동)시간의 감소1회작업량 규모를 줄일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작업준비시간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작업준비시간을 줄임으로써 회사는 소규모 수량이라도 경제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1회작업량이 적을수록 회사의 재공품 및 제품의 재고수준은 감소하기 때문이다. 재고수준이 줄면 유지원가가 감소하는 형태의 원가절감이 실현되며, 일과시간을 작업준비가 아닌 제품생산에 주로 사용함으로써 수익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또한 한 제품에서 다른 제품으로스이 생산전환을 신속하게 할 수 있게 되어 고객욕구에 보다 빠르게 부응할 수 있다. 셋업시간을 단축하는 방법으로 종업원 교육이나 관련흐름라인을 도입하는 방법이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생산공정의 자동화이다. 왜냐하면 작업준비가 대부분 컴퓨터 프로그램의 변경만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생산공정간 이동이나 작업준비가 몇 분내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예로 GE는 한 공장에서 제품제조작업의 준비시간이 통상 40시간이었으나 생산라인을 자동화한 후 단 8분으로 감소했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kanban system의 운용》·칸반시스템의 개념칸반시스템이란 마치 봉화불과 같이 물자가 필요할 때 이것을 선행공정으로 보내 필요한 것을 공급받을 때 쓰인다. 부품이 더 필요하다고 신호를 보내고 그 부품이 다음공정에 지장을 초래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다.·칸반시스템의 구성요소와 예칸반시스템은 생산칸반, 인출칸반, 그리고 컨테이너로 구성된다. 예를 수 있다. 다섯째 제고를 낭비적 요소로 인식하는 것이 오히려 제조부문의 위상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할수 도 있다.또한 아래와 같은 조건의 제조시스템일 경우는 본질적으로 JIT가 적용되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첫째 셋업시간과 비용이 크고 감축되기 어려울 때 둘째 품질이 열악하고 폐기율이 높을 때 셋째 제품라인의 다양성이나 제품구조의 복잡성이 매우클 때 넷째 연중수요의 변화가 매우 클 때 다섯째 작업자의 유연성이 낮을 때 여섯째 공급업체와의 관계가 원만치 못하거나 소규모의 빈번한 납품을 요구하기 어려울때이다.8 . JIT의 사례《일본의 적시생산관리(Just In Time:JIT)》도요타 생산 방식이라고 불리우는 이 방법은 적시 생산 방식 혹은 린(lean)생산방식으로 불린다. 일단 이 생산 방식이 나오게 된 이유를 살펴볼려면 먼저 이 시대의 일본 상황을 알아야 한다.〔이 시대의 일본 상황〕1)국내 수요자가 적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제품들이 요구되었다.2)미국 점령 사령부가 제정한 노동관계법이 노동자의 입장을 강화했고, 고용주의 권리를 극도로 제한하였다. 미국과 같이 이민자가 없어 노동자의 질도 높고 요구수준도 높아, 노동자를 부품처럼 취급할 수 없었다.3)일본 경제는 당시 자본이 부족하여 구미의 최신 기술과 장비를 도입할 수 없어다.이런 상황에서 나온 적시 생산 방식은 낭비없이 일을 하기 위해 먼저 낭비를 발견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도요타에서는 생산현장에서 흔히 발생되는 낭비들을 다음과 같은 7가지로 파악하며 그 원인들을 철저히 분석하였다.1불량품의 낭비2초과 및 조기 달성의 낭비3재고 낭비4운반 낭비5가공 낭비6동작 낭비7대기 낭비설비에는 많은 투자비가 들어가므로 이를 경제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원가를 크게 낮추게 된다. 기계 고장 없애 기계의 가동률을 높이는 것이다.고성능의 비싼 기계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소형 기계를 제품중심으로 배치하여 흐름생산이 가능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GT(Group Technology)를 활용하여 U자형 배치를 를 뜻하며, 인도재고(shipping inventory)는 조립공장으로 보내질 부품의 재고를 의미한다. 여유재고(operational reserve)는 작업중인 재고의 부족이나 불량부품으로 인한 조립라인의 중단을 방지하기 위해 확보해 두는 재고이다. 재고부족으로 조립라인의 가동을 중단할 경우 그 비용이 막대하기 때문에 부품재고 관리 JIT 이전의 부품 재고{자는 여유재고 (operational reserve)를 항상 준비해 두었다 (그림 2-1 참조). 여유재고는 협력업체로부터 부품인도가 지연되거나 작업중인 재고가 불량부품인 경우 조립공정의 중단없이 생산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협력업체의 경우에도 크라이슬러로부터 주문을 접수할 경우 빠른 시간내에 부품을 선적하기 위해 인도재고 (shipping inventory)를 별도로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여유재고와 인도재고는 재고부족으로 조립을 중단하는 사태는 막을 수 있었으나 크라이슬러와 협력업체에게 수억 불의 재고비용을 부담시킴으로써 생산비용증가의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JIT 도입이후 재고의 변화크라이슬러는 JIT를 통해 조립공장내 여유재고(operational reserve)를 제거함으로써 재고비용을 절감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협력업체 또한 인도재고(shipping inventory)를 제거함으로써 JIT혜택을 보도록 하였다.나. JIT 이후의 부품공급체계크라이슬러는 1984년부터 JIT에 의한 부품공급체계로 전환하였다. 협력업체가 크라이슬러로부터의 주문에 따라 부품을 공급하지 않고 크라이슬러가 제공하는 조립생산계획에 따라 독자적인 판단에 의해, 조립공장내에서 부품재고의 고갈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시간에 부품을 공급한다는 점에서 JIT는 기존의 부품공급체계와 다르다. 이를위해 크라이슬러는 자세한 조립생산계획을 협력업체에게 IOS 네트워크로 전달하고, 인도된 부품의 내역과 물량, 조립계획상 필요한 부품내역과의 차이 등을 IOS를 통하여 협력업체와 조정한다.JIT를 도입했을때 가장 중점을 둔 부으로써 JIT 생산성을 극대화한 점은 중요한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JIT 협력업체의 비중크라이슬러는 전체 협력업체의 31%에 해당하는 553개의 공급자만 JIT 파트너로 참가시키고 있다. 이들 533개 협력업체들이 공급하는 부품의 종류는 전체 26,500여가지의 부품중 43%인 11,500여개이며 이는 전체 부품구입가의 80%에 해당한다. 이들 부품은 거의 매일 조립공장으로 인도되는 것들로 전체 운송비용의 67%를 점하고 있다. 연간 200,000대의 생산시설을 갖춘 조립공장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크라이슬러는 JIT/EDI의 도입으로 차량당 100불 정도의 비용감소를 달성하였다.부품재고 유지비용은 부품유지로 자본이 묶임으로써 발생하는 비용이며, 폐기 부품비용은 자동차의 모델변경이나 생산계획의 변경으로 사용이 불가능해진 재고로 빚어진 비용을 의미한다. 부품속달비용은 재고부족으로 인한 조립라인의 중단을 막기위해 급행으로 부품을 인도하는데 든 비용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운송비용과 대별된다. 거래비용은 EDI를 사용한 정보교환의 자동화로 절감된 비용을 추정한 것이다.4. JIT와 IOS의 효과크라이슬러는 JIT를 도입함으로써 자동차 부품의 재고비용을 크게 절감하였다. 조립공장내 여유재고 (operational reserve)를 제거함으로써 부품재고의 평균 보유시간을 5일에서 2일로 줄였는데 이는 약 10억불정도의 재고비용감소를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협력업체와의 정보교환을 IOS 네트워크를 통해 자동화함으로써 인건비와 거래비용의 감소라는 부가혜택도 달성하게 되었다. 크라이슬러의 내부분석에 의하면 EDI의 도입으로 거래당 5불 정도의 비용절감이 가능하였던 것으로 평가되었다.크라이슬러의 연간 거래건수가 1,700만 건에 이르므로 IOS를 사용한 거래의 자동화가 가져온 비용절감만 연간 8,500만 불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크라이슬러의 조립공장중 연간 200,000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춘 조립공장을 대상으로 10년간의 데이터를 사용하여 JIT와 IOS의 효과를 측정한.
    경영/경제| 2002.10.12| 21페이지| 1,000원| 조회(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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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영] 내가 생각하는 미래 비지니스
    【내가 생각하는 미래 비즈니스】빠르게 변화하는 사회환경에서 10년 이상 지속 될만한 비즈니스 아이템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안정적이고 성장 가능성 있는 비즈니스를 생각해보았습니다.REITs와 실버산업이 그것인데, 두 가지를 제시하는 이유는 아직 도입시기인 REITs에 대한 법적·환경 적인 시행착오로 인한 위험 때문에 실버산업도 생각해봤습니다.1 . 리츠 (REITs ; 부동산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뮤추얼펀드.)1)선택의 배경이상하게도 우리 나라 사람들은 금리가 내려가면 투기심리가 더 짙어지는 것 같다. 얼마 전 겨울이 끝나갈 때에도 물론 봄이 되기 전 집을 장만해 이사를 하려는 사람들의 심리도 있었겠지만, 그 때의 부동산 가격은 너무 심하다 할 정도로 치솟은 적이 있었다. 금리가 내려감에 따라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부동산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REITs에 대한 얘기도 자주 들었으리라 생각된다.REITs는 1960년대 이후부터 미국의 부동산시장에서 간접투자의 문을 열었고, 40년간 꾸준히 건실한 성장을 해 왔으며 세계에서 가장 선진화된 부동산 간접투자상품이 되었다.이러한 REITs는 홍콩의 Publicly Listed Real Property Company 및 호주의 LPT(Listed Property Trust)와 더불어 부동산 간접투자의 가장 발달된 형태이다. 그러나 투명성, 환금성, 투자의 안정성, 투자의 성공적인 역사 등을 고려할 때 이중에서 REITs가 국내 시장에 가장 적합한 부동산 간접투자상품으로 판단된다. REITs는 적은 자본을 투자하는 다수의 투자자들에게 전국에 산재하고 있는 대규모의 첨단 고층빌딩이나 화려한 쇼핑몰, 대단위의 임대주택 등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투자수단이다.개인으로서는 투자하기 어려운 이들 상품을 다수의 투자자가 모여 공동으로 투자하여 그 수익을 나누어 갖는 구조인 것이다. 이와 같이 우수한 부동산 전문인력들이 끊임없이 부동산을 개발, 관리, 판매, 이용할 수 있는 효율적자. 세제상의 혜택에 있어서는 상당한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 금융시장의 육성은 우리 나라 전체 금융자본시장의 확대를 도모한다는 차원에서 제도 도입 초기에 적극적인 육성책이 필요하다. 비대해진 유가증권시장과 투자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시장활성화대책이 필요하다.미국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REITs 투자에서 기관투자자들의 역할은 지대하다. 자본시장과 부동산시장의 유기적인 접목을 통하여 자본이 시장의 원리에 의하여 자유롭고 원활한 흐름을 보인다면 국내 금융자본시장의 확대와 경제발전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또한, 투자사업에 대한 많은 정보가 투자자에게 제공되도록 하여야 한다. 이는 투자자가 보다 합리적인 투자결정을 하는데 필요하다. 투자에 대한 결과책임은 모두 투자자의 몫이다. 따라서 투자회사는 독립적이고도 객관적인 전문용역회사의 투자사업에 대한 사업성 혹은 수익성 검토보고서를 마련하여 그 내용이 투자유치에 앞서 투자자에게 공개되어 투자결정에 참고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 투자정보가 부족하여 맹목투자가 될 경우에는 투자자보호가 그 만큼 소홀해질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2개 이상의 검토보고서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3) 예상이익아직 REITs 투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자료가 없기 때문에 과거와 비교해 분석 할 순 없지만 REITs의 특성상 안정적인 수익률을 기대 할 것으로 예상한다. 8%라는 배당률은 어느 투자자에게도 뿌리칠 수 없는 투자가치로 작용할 수 있다.4) 경쟁력을 위한 조건 & 내가 할 수 있는 활동1 인식의 개선우리의 전통적인 투자패턴과 달리 일시에 매각차익(capital gain)을 얻으려고 하는 사고를 지양하고, 임대(income gain)를 중심으로 한 순 운영수입(net operating income)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투자자의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져야한다. 예금금리, 주식투자수익률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REITs의 장점은 예금이나 채권보다 높은 수익률과 주식보다는 안정된 수익률이 그 장점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고l public offering)하기 전 투자설명서(prospectus)의 기본검토(review)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법(안)의 구상처럼 투자회사가 투자자문회사를 자회사로 갖고있으면서 자체분석을 통하여 투자자에게 공개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많다. 특히 우리는 과거에 검증되지 않은 개발사업에 투자하여 사기피해를 경험한 투자자들이 많았다. 물론 이것은 제도권의 REITs가 아니고, 투자클럽을 표방한 사설펀드 같은 것이지만 투자자에게는 이러한 피해의식이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것과 차별화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투자회사 자체에서만 분석하여 홍보한다던가 자회사를 통하여 검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자기가 한일을 자기가 자화자찬한다던가, 아들이 아버지가 한일이 잘했다고 맞장구친다던가, 가족전체가 아버지가 한일을 극구 변명하는 것만으로 의심 많은 이웃이나 일반인에 대하여 충분한 설명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각히 재고할 부분이다.3 조세제도의 지원세제지원이 없이는 REITs의 성공은 불가능하다. 미국의 REITs제도 발달은 세제개혁의 역사와 일치한다. REITs는 투자자에게 일정한 수익률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우리 나라의 경우 상업용 부동산의 운용수익률(cap, rate와 동일)을 5%에서 7%수준이라고 추정한다면 세제의 지원이 없이는 REITs제도의 정착은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 있다. 그럼에도 투기의 재연문제를 두고 세제지원의 타당성여부를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우선, 법인세와 개인소득세는 이중과세가 되지 않아야 한다. 소득세법상의 배당세액공제제도로는 충분하지 않다.둘째, 부동산 관련조세는 부동산의 취득, 보유 및 양도단계에서 발생한다. 자료에 의하면 부동산관련조세는 정상적으로 취득시 5.6%(설립5년 내수도권의 경우 13%), 보유시(토지0.3%-5%, 건물 0.3%-7%), 양도이익의 45.8%를 부담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한 상황하에서는 세제 지원 없이는 투자자에게 최소한의 수익률조차 제시하기 어렵고 투자회사 자체가 유명무실한 것이 공시해야한다. 미국, 영국 및 일본 등에는 이러한 공시기관이 있는데 debt coverage ratio, capitalization rate 및 fund from operation(FFO)등 discount cash flow와 관련된 개별투자지표를 발표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도 한국감정협회, 한국부동산컨설팅협회나 한국감정원 등에서 공공적 성격을 가진 부동산 정보서비스회사를 설립해야할 필요가 있다.둘째, 부동산가치, 구체적인 부동산 Project의 가치 및 투자회사에 대한 적정한 평가를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다.부동산 가치평가에 관하여는 수익용 부동산인 경우 가격시점의 수익가치를 산정하는 감정평가 3방법중의 수익환원법도 중요하지만 미래의 기간수익을 현가화한 투자가치계산이 더욱 중요시되므로 이러한 부분은 IMF이후 외국투자가들과의 가치산정과정에서 실전경험을 쌓은 감정평가기관을 선별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며, 부동산프로젝트의 가치산정에는 개발사업 등의 사업타당성분석을 한 경험이 있는 적격의 부동산컨설턴트를 보유한 부동산컨설팅회사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부동산투자회사의 평가시, 신용등급평가는 기존의 신용평가회사를 활용하고 기업가치평가는 회계기관과 감정평가기관을 컨소시엄으로 결합해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가치 산정에 경험이 있는 외국회사도 이러한 제안의 대체 안이 될 수 있을 것이나 폐쇄적인 국내시장의 여건상 외국회사 단독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셋째, 정보인프라구축 중에서 자장 중요한 것이 전문인력의 확보다. 투자회사, 자산운용회사, 투자자문회사 및 시설관리회사 등에 있어서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부동산전문인력, 금융자산전문인력, 시설관리전문인력 등이 필요하다.초기에 있어서 전문인력의 확보도 중요하나, 전문인력을 계속적으로 육성하는 방법도 중요하다.5 자산운용의 전문성투자회사가 성공하려면 사업을 수행하는 전문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투자자는 대부분이 전문가가 아닌 사람(layman)이 많기 때문에 전문인력의 확보가 문제가 채권회수업을 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것을 Servicer라고 하고 채권회수의 수단으로서 담보부동산의 실질적 처리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자회수, 회수채권의 집중관리 및 연체 시에 담보권을 실행하는 등으로 세분화 되어있다. 위의 예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 기능을 열거하였으나 이외에도 회계, 자금조달과 보험 및 감정과 실적평가 업무 등이 있다.이러한 전문인력의 종류와 숫자 등 기준은 시행령에 위임이 되어있으나 기준을 세우는 것이 용이하지 않으리라고 보인다.첫째, 전문인력을 자격시험을 거치게 하느냐 아니면 기존의 국가자격자를 전문가로 인정하느냐하는 문제.둘째, 투자회사의 전문인력은 부동산종합기능을 가지고 있는 부동산컨설턴트로 하느냐 단일기능을 가진 자격자의 집합으로 하느냐.셋째, 현재 전문인력에 관한 적격자격자가 없을 때에는 그와 유사한 민간 자격 법에 의한 부동산컨설턴트라는 민간자격자로 하느냐.넷째, 이러한 업무의 실무경력은 몇 년으로 하느냐.다섯째, 도입교육과 계속교육은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자격요건을 엄격히 하면 해당자가 없게되고, 완화해주면 대부분의 부동산관련자격자가 전문가로 양산되는 모순이 따른다. 따라서 부동산 관련자격자로 상당한 기간 실무에 종사한 경력이 있는 자로서 일정한 교육을 거쳐서 교육시험을 통과한 자를 초기(예를 들면 1년)의 전문가로 활용하면서 제도의 정비를 하지 않으면 초기 투자회사법의 시행 상에 많은 혼란이 발생할 것이다. 국내 인력이 빈약하다고 해서 손쉽게 외국회사를 원용하는 발상은 하지 말아야 한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전문인력의 확보와 새로운 기법개발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6 Non-Performing 자산의 현물출자 제한우리는 IMF관리체제 기간 중에 금융기관의 부실자산 및 대기업의 구조조정에서 오는 부실자산 중에 이러한 non-performing또는 low-performing자산이 많다. 미국에서는 상업용 금융이 있어서 변제기일 90일 경과한 것과 소비자금융에 있어서 변제기일 180일이 지다.
    경영/경제| 2002.10.12| 7페이지| 1,000원| 조회(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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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날 대학교육이라는 것은 진리를 탐구하고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 외에 많은 것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 나라에 있는 대학과 세계에 있는 대학들은 각각의 국가적 전통과 대학의 이념에 따라 교육방식 { -세계대학의이해-뿐 아니라 제도적인 측면에서도 많은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옥스퍼드 대학】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옥스퍼드 대학은 9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대학으로 우수한 세계대학으로 뽑히는 대학 중 하나 이다. 현재 35개의 college로 구성되어 있고, 특별한 것은 튜터 제도 라 불리는 학사제도이다. 이 튜터 제도는 개인지도 교수를 학생 개개인에게 지정해주는 것으로 효율적인 학습을 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제도이다. 모든 수업의 기본은 튜터 제도로 이루어져 있고 그래서 학생 개인 당 학업 성취 율도 매우 높은 편이다. 이 제도의 장점으로는 학생의 글쓰는 능력이나 비평능력, 발표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지만 워낙 전통적으로 행해온 제도라 그리 문제되지 않는 듯 싶다. 옥스퍼드의 수업방식은 교수 한 명 : 다수의 학생이하는 수업방식과 튜터 제도로 나누어지는데, 후자의 제도로 인해 정치가가 많이 배출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 나라의 대학에서 이러한 제도를 시행하기란 매우 어려운 현실인데 왜냐하 면 학생 한 명 당 교수의 비율이 너무나 낮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뿐 아니라 다 른 대학도 지도교수라는 제도를 시행하고는 있지만 이 형태는 대게 한 학년을 한 교수가 돌아가면서 맡는 형태이기 때문에 옥스퍼드처럼 교수가 학생들의 학 업을 일일이 지도해주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꼭 이러한 제도가 있어야 학생이 열심히 한다는 것은 대학의 본질에 어긋나는 것이지만 자발적인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는 우리 나라의 대학문화에 이러한 제도가 도입된다면 지금보다는 좀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하버드 대학】미국의 하버드 대학은 350년 전통을 가진 대학으로 미국의 IVY리그 중 가장 많은 인재를 배출한 학교이다. 이 대학은 특이하게 학사제도가 학점제가 아닌 과목이수를 택하고 있는데 4년 동안 32과목을 이수해야만 졸업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한 과목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3시간 정도의 예습이 필요하다고 한다. 전체 수강해야 하는 과목 중 교양과목이 60%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다방면에 있어서 폭넓은 상식을 획득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그리고 또한 학생들의 성취욕구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의학적인 심리 상담제도도 운영하고 있으며 이러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 의무적으로 특별활동을 권장하고 있는데 학생들 사이에서는 스포츠 관련 클럽이 가장 인기가 많은 종목이다.▶ 과목 이수 제 라는 것은 충분히 매력적인 제도이다. 우리 학교에서도 졸업 취득 학점을 보게되면 필수교양과 선택교양을 합해 꽤 많이 있는 걸로 알고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교양과목을 이수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평소에 관심 있던 분야의 전문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고, 상식도 넓힐 수 있는 기회 가 유익한 것 같다. 지금 현재의 제도로서는 이러한 교양이수제중에서 필수교양 을 고등 학교 때 배웠던 국어, 영어, 수학, 외국어에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 사회에 나가서 꼭 알아야 할 것들 모두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MIT】공대로 유명한 MIT대학은 125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처음에 2차 대전에 필요한 군사물자를 만들어 정부에 제공하기도 했고, 이 덕에 학교의 장학금 지원을 매우 많이 받고 있다. 학생들을 공부에 집중시키는 원인은 매 주 있는 시험과 학점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어지는 과제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 과제의 대부분이 사례중심의 연구발표가 대부분이어서 공부를 게을리 하면 남에게 뒤쳐질 수밖에 없다.이러한 분위기가 세계 최대의 자동차 회사인 GM과 더글라스 항공, GE의 창시자를 만들어 냈고, 지금도 사회에서는 MIT의 학위는 돈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리고 현실로 학생은 꼭 졸업시즌이 아니어도 각 기업체에서 스카우트를 받는 일이 흔한 일이다.▶ MIT는 공대이기 때문에 우리 학교와 독자적으로 비교할 대상은 아니지만 이러 한 실무적이고 고도의 숙련된 기술로 대학은 진리만 탐구하는 곳이 아니라 정 보와 기술, 지식이 삼위일체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잘 새겨야 할 것이다.
    인문/어학| 2002.10.12| 3페이지| 1,000원| 조회(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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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 한국의 전망 평가A좋아요
    『 통일 한국의 전망 』▶ 목 차 ◀Ⅰ . 서론Ⅱ . 본론1 . 남북한 정부의 통일방안1) 남한의 통일정책과 그 평가2) 북한의 통일방안과 그 평가3) 남·북한의 통일방안의 비교 및 문제점의 검토2 . 한반도 통일에 관한 국제정세1) 긍정적인 측면2) 부정적인 측면3 . 통일에 대한 현재의 흐름 및 앞으로의 전망1) DJ의 햇볕정책과 그의 결과에 따른 통일의 전망Ⅲ . 결론Ⅰ . 서론과거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통일에 대한 관심을 그 어떤 국가보다 많이 두고 살아왔다. 그 이유는 독일의 통일 이후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분단 국가이기 때문이다.지금부터 통일에 앞서 우리가 지녀야 할 태도와 통일 방안 및 과정에 대해 살펴보겠다.Ⅱ . 본론1 . 남북한 정부의 통일방안1)남한의 통일정책과 그 평가7 7특별 선언,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남북 기본 합의서를 거친 남한의 통일 정책은 93년에 등장한 문민 정부의 3단계3기조 통일 정책으로 집결된다.3단계3기조 통일 정책이란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의 틀을 토대로 화해 협력 단계,남북연합단계,통일조국단계라는 3단계의 통일과정을 설정하고 민주적 국민합의,공존공영,민족복리등을 3대 통일 정책 추진기조로 정한 통일 정책이다.현 남한 정부의 통일정책은 다음의 글에서 그 주요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3단계3기조 통일정책*1 3단계 통일구도단계단계는 남 북간의 적대와 불신을 줄여가면서 상호 협력의 장을 열어가는 단계이다.이 단계에서 남 북한은 분야별로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해 나간다.이를 위해서 상대방을 타도의 대상이 아닌 공존공영의 협력자로 파악한다.그리고,서로 다른 정치체제가 존재함을 인정한다.단계의 단계는 교류 협력이 더욱 촉진되고 평화가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단계이다.이 단계에서 남 북한이 공존 공영의 길을 통해 민족동질성의 확보가 가능해진다.그리고 사회적,문화적,경제적 공동체를 이룩해 나갈 것이다.또,이 단계에서 남북이 공동으로 구성하는 기구에서 국가통합을 위한 여러 방법을 논의하게 될 것이다.이 단계를 관리해 나가는 데 특히 서,다른 한편으로는 현 정부를 약화시키려는 북한당국의 전술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가진다.이란 남과 북이 대립과 반목의 자세를 버리고 함께 자유와 풍요를 누리면서 공존하고자 하는 것이다.공존공영은 남과 북이 먼저 상대방당국의 실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바탕위에서 이루어진다.그러기 위해서는 냉전적인 사고에서 공존적 사고로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또한,공존을 통한 공영의 달성을 위해서 교류와 협력이 필요한 것이다.교류 협력의 주체가 반드시 당국자일 필요는 없다.비당국자간의 교류와 협력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그러나,민족 전체의 이익과 민족구성원 개개인의 운명과 권익에 관한 중대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정부당국이어야만 한다.정부는 이러한 책무를 역사와 국민으로부터 수임받고 있기 때문이다.공존공영의 기조는 상대방을 고립 또는 봉쇄하는 정책을 배제하고 있다.이러한 기조하에 정부는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토록 도와주는 참여 정책(engagement policy) 을 채택하고 있다.동시에 정부가 북한체제의 와해를 전제로 한 흡수 통일 에 반대하는 까닭은 공존공영에 있다.는 민족의 평화적 통합을 완성시키는 기조 정신이다. 민족 복리는 한민족 전체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복지가 신장되어 민족 구성원 모두가 골고루 잘 살게 되는 형태를 뜻한다. 또한 민족복리는 통일된 민족국가에서 안으로 자유와 복지가 신장되고 인권이 구현되는 상태를 말한다. 이런 뜻에서 민족복리는 열린 민족주의 , 민주적 민족주의 가 추구하는 핵심적 가치라 할 수 있다.현정부의 통일 정책은 위에서 삼펴본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다.이러한 정책및 기조등의 내용에 원칙적으로는 대다수가 지지를 표명한다.그렇지만,실무적 측면에서 현정부의 정책은 비당국자들에게서 만족할만한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는데,우리는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설면하겠다.첫째,현정부의 근본적인 집권 배경에는 반공이데올로기의 유지 강화등을 지향하는 세력들이 관련되어 있다.주로 구 여권으로 분류되는 이들 인사들로서 대표적인 예가 5 16을 주도태의 정책의 추진이 한 가지 원인이다.이상에서 살펴본 두 원인은 연관이 없는 듯 하나,실제로는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다.또한,이것들은 현 정부가 추진하는 일련의 개혁에도 관련되어 있다.이와 같은 반통일적 문제들이 해결은 단순하지 않다.그리고 좀더 나은 통일의 비젼을 제시하기 위해서 우리는 북측의 통일 방안의 분석이 필요하다.2)북한의 통일 방안과 그 평가북한의 통일 방안은 연방제 통일 방안 이다. 이는 1960년 8월 14일 광복절 15주년 기념식에서 행한 김일성의 연설에서 처음 제안되었고, 그후 몇 차례의 부분적인 수정을 거친 끝에 1980년 10월 10일 조선 노동당 제6차 대회에서 김일성의 연설을 통해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이란 이름으로 발표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1 남과 북이 현존하는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두고, 자주,민주,민족대단결 의 3원칙에 따라 통일을 이루어나간다.2 남과 북에 같은 수의 대표를 뽑고, 적당한 수 의 해외대표들로 최고 민족연방회의 를 구성하고,이 연방회의가 연방정부격인 연방상설위원회 를 조직하여 이 상설위원회 가 남과 북의 지역사회 전부를 지도할 뿐만 아니라 군사권과 외교권을 비롯하여 그 밖의 민족 전반적인 이익에 관계되는 사업 을 관할토록 한다.3 연방이 성사되면 남북간 각 분야에서 교류,협력의 증대,민족 연합군의 창설들 10개 시정방침 을 우선 실행해 나간다.이러한 연방제의 실현에 앞서 북한은 선결조건을 제시하고 있다.1 남조선에서 반공법및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파쇼적인 악법을 폐지해야 하고,모든 폭압통치기구를 없애라.2 모든 정당,사회단체등을 합법화하고 , 모든 인사들의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보장해야 한다.3 남한의 현존하는 정권을 광법한 인민 대중이 의사와 이익을 옹호하며 대변하는 민주주의적 정권으로 교체하여야 한다.4 미국은 분렬주의적인 두 개 조선 정책을 더 이상 추구하지 말아야 하며,주한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5 우리나라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전쟁위협을 제거 하기 위해 미국과락했다.북한의 이와 같은 변화는 통일 정책에 있어서 통일정책에 있어서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케 하였으나,핵문제의 돌출로 덮혀 있는 상태이다.그러나,연방제의 몇 가지 문제의 제기는 이후의 통일 정책연구에 필요하다고 본다.북한의 연방제에서 주된 한계점은 서로 체제가 다른 두 사회를 연방이라는 체제속에서의 수용이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현 정부의 남북연합단계와도 유사한 연방은 남북연합의 과정이 일시적이고,과도기적인 체제인 반면,항구적이라는 성격때문에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다시 말해,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중적 체제의 유지와 함께 연방제가 성립될 경우,두 사회는 서로 연방정부의 군사및 외교권등에 대한 갈등을 유발시킬 위험이 크며,이는 남북한 모두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그리고,아직까지 이러한 종류의 연방제가 성립된 지역이 없다는 점에서 연방제의 한계점을 분명하게 이해하게 된다.북한도 이를 시인하듯 1991년 김일성의 신년사에서 연방제를 보완하기 위한 태도등이 여실히 드러나 있지만,이 한계점은 잔존해 있다.3)남 북한의 통일방안의 비교 및 문제점이 검토앞에서 분석한 남북한의 통일 방안 중에서 우리는 남한 정부가 제시하는3단계3기조 통일정책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했다. 이는 남한의 방안이 남북연합이라는 과도기적 체제를 가정하여 남 북한의 국민들의 민족동질성의 확보를 통해 통일의 대한 한민족 전체의 합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제외하면 현 정부의 3단계3기조 통일정책은 몇 가지 수정이 불가결하다고 생각된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반공이데올로기에 근거해서 북한이 남한을 적화시키려는 의도를 방지한다는 내용들이 직 간접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점이다. 반공이데올로기를 통한 북한의 매도는 과거 정통성이 약한 정권들의 정치적 술수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현 정부가 국민의 정당성을 획득했다면, 북한에 대해서 좀 더 동조적인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 즉,남북간의 교류의 자유화, 북측의 주장인 선결조건에 관한 적극적 수의 통일정책이 융합된 듯한 그의 통일모형은 남 북한 양 측에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또한,그의 이론은 우리가 생각하는 개선된 3단계3기조 통일정책과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2 . 한반도 통일에 대한 국제정세1)긍정적 측면현재 4강은 서로 각각의 다른 이익을 추구하고 있어 남, 북한 각자에게 일임하고 있다. 소련의 대한반도 정책은 미, 일, 중 의 대소전략을 펴는데 있어서 우리 나라를 독점하지 못하게끔 북한을 완충지로 삼고 있다. 또 세계적인 시각에서 미국에 의한 봉쇄정책을 반대하기 위해서 한국이 미, 일과 군사동맹을 맺는 것을 경계해 왔다. 중국의 입장도 역시 소련과 비슷하다.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은 안정을 해치는 어때한 일도 우리 나라에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소련보다 더 긴 국경을 공유하고 있으며 자국의 안보에 대해서 한반도가 긴요한 요충지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일본의 대한반도 입장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긴요하다는 것이다. 일본은 우리 나라에 어떤 위급한 사태가 발생하면 일본 영토 내에 있는 미군기지와 시설을 사용하게 조처하겠다고 말해 왔다. 한국과 외교 및 정치관계를 강화해 오면서 한편으로는 북한과도 비공식적인 경제 및 문화관계를 유지해 왔다.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은 방위공약에 다라 또 다른 전쟁을 억지 하여 대소세력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아시아대륙에서 지상군을 갖고 있는 유일한 곳이 한국이다. 특히 일본의 방위를 위해서 한국은 중요한 곳으로 미국은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주한미군의 화력을 실제로 늘리고 있는 것이다.4강의 대한반도 정책에서 한가지 공통된 것은 그들은 묵시적으로 우리 나라의 한 민족 중 두 국가가 존재하는 현상을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반대로 인하여 그들이 남북한을 정식으로 수용할 수는 없지만 비공식적인 접촉은 확대해 왔다. 이것은 곧 교차접촉이며 이처럼 그들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태도이자 남북한은 독자적으로 경쟁을 심화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문이다.
    사회과학| 2002.10.12| 9페이지| 1,000원| 조회(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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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사상사] 신채호(申采浩)
    신채호(申采浩)1880(고종 17)∼1936한말·일제강점기의 역사가, 언론인,독립운동가본관은 고령(高靈)호는 일편단생(一片丹生), 단생(丹生),단재(丹齋)필명은 금협산인(錦頰山人), 적심(赤心),무애생(無涯生), 열혈생(熱血生), 한놈,검심(劍心), 연시몽인(燕市夢人)가명은 유맹원(劉孟源)▶ 성균관에 입학 ◀충청남도 대덕군 산내에서 출생하였고, 충청북도 청원에서 성장하였다. 신숙주(申叔舟)의 후예로 아버지는 광식(光植)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正言)을 지낸 할아버지 성우(星雨)로부터 한학교육을 받았으며, 10여세에 《통감 通鑑》과 《사서삼경》을 읽고 시문에 뛰어나 신동이라 불렸다. 18세 때에는 할아버지의 소개로 전 학부대신 신기선(申箕善)의 사저에 드나들며 장서를 섭렵하여 그의 총애를 받게 되었고, 신기선의 천거로 성균관에 입학, 관장 이종원(李鍾元)의 총애를 받았다. 한편, 당시 이름높은 유학자로서 성균관교수이던 이남규(李南珪)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김연성(金演性)· 변영만(卞榮晩)· 이장식(李章植)· 유인식(柳寅植) 등과 교유하였다. 이무렵에 그는 독립협회운동에 참여하여 소장파로 활약하였다. 22세 때에는 향리 부근인 인차리의 문동학원(文東學院) 강사로서 신규식(申圭植) 등과 계몽운동을 전개하였고, 25세 때에는 신규식· 신백우(申伯雨) 등과 함께 향리 부근에다 산동학원 (山東學院)을 설립, 신교육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언론에 몸담다 ◀26세 되던 1905년 2월에 성균관박사가 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갈 뜻을 버리고 장지연(張志淵)의 초청으로 《황성신문》의 기자가 되어 논설을 쓰며 크게 활약하였다. 1905년 11월 《황성신문》이 무기정간되자, 그 이듬해 양기탁(梁起鐸)의 천거로 《대한매일신보》에 초빙, 그뒤 주필이 되어 당당한 시론(時論)을 써서 민중을 계몽하고 정부를 편달하며 항일언론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우리나라 역사관계 사론(史論)을 써서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1910년 망명할 때까지 《대한매일신보》에 〈일본의 삼대충노(三大忠奴)〉· 〈금일 대한국민의 목적지〉· 〈서호문답 西湖問答〉· 〈영웅과 세계〉· 〈학생계의 특색〉· 〈한국자치제의 약사〉· 〈국가를 멸망케 하는 학부〉· 〈한일합병론자에게 고함〉· 〈이십세기 신국민〉 등의 논설과 〈독사신론 讀史新論〉· 〈수군 제일 위인 이순신전〉· 〈동국거걸최도통전 東國巨傑崔都統傳〉· 〈동국고대선교고 東國古代仙敎考〉 등 역사관계 논문, 시론 〈천희당시화 天喜堂詩話〉 등을 연재하였다. 《대한협회월보 大韓協會月報》와 《대한협회회보》에 〈대한의 희망〉· 〈역사와 애국심과의 관계〉 등을 발표하였다. 그밖에 역술서 《이태리건국삼걸전 伊太利建國三傑傳》과 〈을지문덕전 乙支文德傳〉을 국한문판으로 발행하기도 하였고, 《가정잡지 家庭雜誌》의 발행에도 관여하였다. 〈독사신론〉은 그뒤 내용의 일부가 가감, 수정되어 최남선(崔南善)이 발행하던 《소년 少年》 제3년 제8권에 〈국사사론 國史私論〉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는데, 이 글에서 이미 그의 단군·부여·고구려 중심의 주체적인 민족주의사관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무렵 그가 집필한 〈동국거걸최도통전〉과 〈이순신전〉· 〈을지문덕전〉은 한말의 민족적인 위기를 타개할 영웅의 출현을 대망하면서 썼던 것으로 영웅사관(英雄史觀)을 일정하게 보여주고 있다.▶ 신민회 참여 ◀한말 애국계몽운동에 힘쓰던 그는 28세 무렵, 양기탁· 이동녕(李東寧)·이회영(李會榮)·이동휘(李東輝)· 이갑(李甲)· 안창호(安昌浩)· 전덕기(全德基)· 이승훈(李昇薰) 등과 더불어 항일비밀결사인 신민회(新民會) 조직에 참여하였으며,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도 참여, 논설을 통하여 적극 지원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가 30세 되던 해에는 윤치호(尹致昊)· 안창호· 최광옥(崔光玉)· 최남선· 박중화(朴重華)· 장응진(張膺震) 등과 신민회의 방계조직인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를 발기, 그 취지서를 집필하였다. 1910년 봄에는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五山學校)와 안동현(安東縣)을 거쳐 산둥반도(山東半島)의 칭다오(靑島)에 도착, 신민회 동지들과 함께 청도회의에 참석하고 독립운동을 위하여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윤세복(尹世復)· 이동휘· 이갑 등과 광복회(光復會)를 조직, 그 부회장으로 활약하는 한편, 《해조신문 海潮新聞》의 후신 《대동공보 大東共報》에도 관여한 듯하며, 이해 12월에 창설된 권업회(勸業會)에서 기관지 《권업신문 勸業新聞》을 창간하자 주필로 활약하였다.▶ 외국에서의 활동 ◀1913년 북만주 밀산(密山)을 거쳐 상해(上海)로 가서, 동제사(同濟社)에 참여, 활동하는 한편 문일평(文一平)· 박은식(朴殷植)· 정인보(鄭寅普)· 조소앙(趙素昻) 등과 박달학원(博達學院)을 세워 교육에도 힘썼다. 그 이듬해 윤세용(尹世茸)·윤세복 형제의 초청을 받아 만주 봉천성 회인현(奉天城懷仁縣)에 가서 동창학교(東昌學校) 교사로 재직하면서 《조선사》를 집필하기도 하였으며, 백두산 등산, 광개토대왕릉 답사 등 고구려와 발해의 고적지를 돌아보아 부여·고구려·발해 중심의 한국고대사를 체계화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다시 북경(北京)으로 돌아가 한국사의 새로운 체계화를 구상하면서 중편소설 〈꿈하늘 夢天〉을 집필하였는데, 이는 일종의 환상적인 사상소설로서 그의 애국적 항일투쟁의식을 그린 것이다. 1918년경부터 북경의 보타암(普陀庵)에 우거하면서 국사연구를 계속하는 한편, 《북경일보 北京日報》 등에 논설을 기고하기도 하였다.그는 1922년 1월초 상해에서 개최된 국민대표회의에서 창조파(創造派)의 맹장으로 활약하였으나, 개조파(改造派)와의 대립으로 5월 그 회의가 결렬되자 북경으로 돌아와 석등암(石燈庵)에 우거하면서 한국고대사연구에 전념하였다. 이무렵 북경대학 도서관에 출입하면서 이석증(李石曾)· 이대교(李大釗)와 교유하게 되었다.▶ 임시정부 참여 ◀1919년 북경에서 대한독립청년단을 조직, 단장이 되었다. 그해 4월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참여, 임시의정원의원이 되었으며, 한성정부(漢城政府)에서는 평정관(評定官)에 선임되기도 하였다. 그해 7월 전원위원회(全院委員會) 위원장 겸 의정원의원에 선출되었으나 이승만(李承晩)의 노선에 반대, 이를 사임하였으며, 이어 임시정부기관지 《독립신문》에 대립적인 《신대한 新大韓》을 창간, 주필이 되어 적극적인 독립노선을 주창하였다. 특히, 이승만·정한경(鄭翰景) 등의 위임통치청원은 그뒤에도 신채호 등에 의하여 반민족적인 행위로 규탄받았다.▶ 의열단 선언 ◀1922년 의열단장(義烈團長) 김원봉(金元鳳)의 초청을 받아 상해에 가서 그 이듬해 초에 조선혁명선언(朝鮮革命宣言)으로 불리는 의열단선언을 집필, 발표하였는데, 이 선언에서 그는 폭력에 의한 민중직접혁명을 주장하였다. 이 선언은 일제의 침략과 압제를 경험하면서 성장한 민중세력을 일제의 이족통치(異族統治) 뿐만 아니라, 당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약탈적·불평등적인 제국주의 체제를 타파하는 주인공으로 부각시켰다는 의미에서 그의 민족주의 이념의 폭과 질의 강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여순감옥에서 생을 마침 ◀1924년경부터 그가 쓴 평론과 논문들이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에 발표되었다. 그의 연보에 의하면, 1925년에 민족독립운동의 방편으로 대만인 임병문(林炳文)의 소개로 무정부주의동방연맹(無政府主義東方聯盟)에 가입하였는데, 1928년에 발표된 〈용과 용의 대격전〉· 〈꿈하늘〉 등의 사상소설에서는 자유· 평등· 폭력· 혁명을 예찬하는 무정부주의의 논리가 강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1928년 4월 무정부주의동방연맹대회에 참석하여 활동하는 등 점점 행동투쟁에 나섰던 그는, 5월 대만에서 외국위체위조사건 (外國爲替僞造事件)의 연루자로 체포되어 대련(大連)으로 이송, 1930년 5월 대련지방법원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여순감옥 (旅順監獄)으로 이감, 복역하던 중 뇌일혈로 순국하였다.
    인문/어학| 2002.04.28| 4페이지| 1,000원| 조회(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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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21일 화요일
AI 챗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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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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