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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희의 경제 정책
    침만 뱉을 것이 아니라 똥이라도 뿌리리다!제출자 : 이동현학 번 : 2001310078제출일 : 2006. 12. 5.과목명 : 역사학 입문인물 발표 네 번째, 본 필자는 이 인물에 대한 글을 쓰려고 다른 인물에 대한 글을 참아왔다. 그만큼 할 말이 많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한다면 많지는 않다, 분명한 한 가지만 말하고자 하기에. 박정희에 대한 논의는 과거에 너무도 많이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글이 얼마나 많이 세상에 뿌려졌을는지는 명약관화한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평소 그의 행적에 여러 의심을 품어 온 필자로서는 도대체가 한마디 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다. 하지만 그의 친일 논란에 관해서는 증거가 부족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고 토론 중에 나왔던 주된 의견인 ‘경제발전’에 관해 서술하겠다.먼저, 필자는 발제문의 내용 중, 베트남 파병에 관한 부분에서 ‘박정희는 자신의 정치적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미국에게 귀여운 강아지가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라는 부분에 큰 공감을 했다. 그런데 어느 학우가 반박해서 언급하길, ‘베트남으로의 파병은 미국의 주한미군 철수등의 여러 협박에 의한 국가적 위기상황이라는 위기의식에서 나온 측면이 더 크다.’ 라고 발표했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 실소를 참을 수가 없었다. 주한미군 철수는 물론 우리나라로서 위기의식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것이 국가적 위기로 직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박정희는 미군이 철수하면 자신의 지지기반, 즉 미국의 입김이 약해지는 것을 두려워했을 뿐이다. 그렇기에 서둘러 파병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는 얼마 되지 않는 차관이었다.그리고 발표조의 주장에는 정경 유착에 관한 비판의견이 있었다. 그런데 어떤 학우는 ‘정경유착은 여러 가지 개개의 문제들이 복잡하게 뒤얽힌 문제이기에 박정희에게 책임을 모두 전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라는 발언을 했는데, 이것 역시 납득할 수 없는 의견이다. 분명 정경유착은 박정희 혼자만의 탓이 아니다. 하지만 그 시작이 누구였는가? 바로 ‘그’다. 정치학자 최장집 교수는 “재벌 중심의 경제 체제와 정경 유착을 개선해나가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서민 생활 문제는 결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며 민주화 이후에도 정부들은 과거 군부 세력들과 다름없는 경제 체제와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는 비판을 했는데, 이런 것은 이미 박정희 시기부터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재벌 체제가 한국의 경제 환경에 가장 적합한 체제인지, 아니면 외환위기 주범이자 해체의 대상인지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1960∼70년대에 형성된 재벌이 압축적 고도성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공적과 동시에 취약성과 모순을 폭발시키기도 하는 등 재벌 체제는 긍정적 유산과 부정적 폐해를 둘 다 안고 있다. 재벌 없이 “중소기업 중심의 기업구조로 한국 경제의 눈부신 성장이 과연 가능했을까?” 라고 물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역사에는 가정이란 없다. 여하간 재벌의 형성과 성장은 박정희 정권의 정부주도 개발전략의 산물이었다. 우리나라 재벌이 시장 논리와 경쟁을 통해 자생적으로 탄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박정희 정권은 전략산업과 이 과제를 떠맡을 기업집단을 선정한 뒤 집중적으로 지원·보호했다. 재벌을 산업화의 역군으로 지명하고 이들한테 산업발전을 맡긴 것이다. 당시에 “투자에 필요한 저축이 부족한 상황에서 선진국을 단숨에 따라잡으려면 소수 특정 기업에 자본을 집중시키는 길밖에 없다”는 논리가 지배했다. 박정희는 재벌기업에 대규모 외자를 배분하고 시중 금리의 절반에 불과한 저리 ‘정책자금’을 지속적으로 공급해 재벌 성장의 후견인 역할을 했다. 이렇듯 금융·조세·행정적 차원의 집중적인 지원으로 잠재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는 장벽이 두껍게 형성되면서 재벌은 독점적 이익을 제도적으로 보장받아 급성장하게 된다. 치약은 럭키, 라면은 삼양, 텔레비전은 금성 이런 식이었다. 재벌이 자본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다수 국민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재벌에 배분할 자금을 동원하기 위해 중앙은행은 통화를 증발해 인플레이션을 일으켰고, 이를 통해 사실상 강제 저축을 유도했다. 물가 폭등에 따라 노동자들의 실질임금과 생활수준은 계속 떨어졌다. 정부가 소수 재벌을 선택한 뒤 자금을 집중 배분하는 시스템에서 금융기관은 박정희의 명령에 따라 재벌에 재원을 지원하는 정부의 말단 창구로 전락했다. 이러한 ‘관치금융’에 따라 금융기관은 본래의 대출심사와 사후감독 기능을 상실하고 만성적인 저발전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특히 재벌기업은 “우선 많이 빌리고 보자.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구제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도덕적 해이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이른바 재벌의 문어발 식 경영과 과잉 투자의 못된 버릇을 박정희가 들여 준 것이고 이로 인하여 결국 과잉 투자로 IMF가 찾아온 것은 박정희시기에 만들어진 경제 시스템의 모순 때문이란 이야기는 분명한 사실인 것이다. 재벌들은 투기에 가까운 사업을 박정희의 말에 따라 거의 타율적으로 맡았지만, 일단 사업이 결정되면 온갖 특혜를 요구했다. 정경 유착과 ‘검은 돈’으로 대표되는 정권과 재벌의 밀월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정부의 특혜와 비호 속에서 성장한 재벌은 대규모 정부사업을 발주 받거나 외국 차관을 제공받을 때 일정 비율의 정치자금을 갖다 바쳤다.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 당시 전두환은 수천억원의 비자금 축재를 “관행이었다”고 말했는데, 박정희 시대부터 만연돼 있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겉만 번드르르한 성장에 눈이 멀어 제대로 봐야 할 것까지 못 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여, 하루빨리 눈을 비비고 일어서길 빈다.
    인문/어학| 2006.12.10| 2페이지| 1,000원| 조회(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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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학 입문]역사에서의 인과관계 토론 논평
    역사학 입문 토론 논평과목명 : 역사학 입문제출일 : 2006. 9. 29.제출자 : 2001310078 이동현카는 위대한 역사가란 새로운 사물에 대해서 또는 새로운 상황에 처했을 때에 ‘왜?’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라고 언급했다. 많은 세월동안 역사가와 역사철학자는 역사적 사건의 원인과 이를 지배하는 법칙을 발견하여 그것으로 인류의 과거 경험을 조직화하려는 시도에 몰두해왔다. 그러면 사건의 원인을 규명해야 할 경우 역사가는 어떤 일을 하게 되는가. 원인의 문제에 대한 역사가의 접근방법의 첫 번째 특색은 보통 한 사건에 대해 여러 가지 원인을 들게 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장기적인 것이든 단기적인 것이든 경제적, 정치적, 사상적, 개인적인 원인들을 마음대로 모아놓은 것처럼 된다. 두 번째 특색은 이러한 원인들의 목록을 놓고는, 여러 원인들의 상호관계를 결정할 상하관계로 설정하고, 혹은 결국에 가서 어떤 원인과 어떤 종류의 원인을 궁극적인, 곧 원인 중의 원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가를 결정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것이 주제에 대한 역사가의 해석이라는 것이다. 그가 어떠한 원인을 내세우는가에 따라 그가 어떠한 역사가인가도 알 수 있다. 모든 역사적 논의는 어떤 원인을 우위에 놓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서 맴돌고 있다. 이 원인들을 탐구함에 있어서 중요한 두 가지 함정이 있는데 하나는 ‘역사에서의 필연’, 또 하나는 ‘역사에서의 우연’이다.카는 이번 장에서 역사의 결정론과 우연사관을 놓고 비교를 하지만 결국 어느 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다. 우연까지도 하나의 사실로서 모든 것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보일 뿐이다. 하지만 덧붙이기를, 역사연구를 위해서는 주된 원인과 아닌 것을 골라낼 줄 알아야 한다는 언급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말이 ‘원인의 등급화’인데 이렇게 원인들을 놓고 결과가 나오게 된 등급을 매기다 보면, 우연은 일반화시키기가 어려워 등급의 상위에 들어가기가 힘들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아무래도 카는 우연사관을 그다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듯하다.토론은 지난번과 달리 제법 활발한 분위기로 진행 되었는데, 일단 발표조의 태도에 대해 한마디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파워포인트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지 않은 것이야 발표에 자신이 있어서였겠지만 자신들이 작성한 발제문 조차 가져오지 않아서 나에게 빌려 들고 나가는 모습은 한숨을 쉬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정작 발표 내용은 꽤나 충실했고 6월 민주항쟁을 예로 들어 토론을 진행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필자 역시 역사에서의 우연을 무조건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가는 어떠한 사건을 우연적인 사건이라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카는 누군가 ‘역사는 우연의 연속’이라 말한다면 그를 지적으로 게으르거나 혹은 지적인 활동이 저급한 것이 아닌가하고 의심하게 된다고 했는데, 필자의 생각도 어느 정도 그와 일치한다. 우연이라는 결론은 객관성을 얻기에 타당하지 못하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일반화를 이끌어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좀 더 명확한 인과관계를 밝혀내는 과정이 곧 사회적으로 좀 더 객관적인 역사를 추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카는 이 장을 마무리 지으며 우연성과 같은, 역사의 이중적 목적에 기여하지 못하는 것들은 모두 역사가의 관점에서 볼 때는 죽은 것이고 무익한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역사의 이중적 목적이란 과거에 대한 이해를 현재에 비추어서, 현재에 대한 이해를 과거에 비추어서 심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그의 이러한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거대한 단체에서부터 개인에 이르기 까지 역사는 미래에 대한 지침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우연의 예로 수차례 언급된 클레오파트라의 일화에서 사랑에 빠져 자기 앞가림조차 못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는, 더 나아가 공과 사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교훈은 우연에 한정 지어서 생각할 것은 아니지만 -우연뿐만 아니라 과거의 모든 일이 교훈이 될 수 있기에- 이러한 지침을 실제적 형태로 존립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는 역사가에게, 우연은 죽은 것이고 무익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그 ‘어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필자 역시 아직도 그 ‘어떤 것’이 무엇인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인문/어학| 2006.12.10| 2페이지| 1,000원| 조회(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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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행문 수원화성 정조 임금을 느끼다 평가A+최고예요
    수원 화성, 정조 임금을 느끼다제출자 : 이동현제출일 : 2006. 11. 28.학 과 : 미술학과학 번 : 2001310078기행문을 쓰는 것은 생전 처음 있는 일이다. 과제를 위한 것이라고는 해도 적당히 아무데나 다녀와서 쓰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탐방지를 어디로 정할까 하는 고민은 할 필요도 없었다.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당연히 기행문도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가진 장소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조선 시대의 왕들 중 가장 드라마틱하다고 생각되는 왕, 그리고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왕, 바로 정조의 마음이 새겨진 곳. 수원 화성을 찾아 떠나기로 했다.절대 군주가 지배하는 나라에서 백성을 진심으로 사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겉으로는 사랑하는 체하지만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할 뿐이지 마음에서 우러난 사랑을 베풀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정조는 달랐다. 화성성역 이전부터 국가의 공역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인건비를 지불했고, 영우원의 수원부 천장으로 이사해야 하는 수원 주민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했으며, 화성의 건설 자체를 백성의 편에 서서 이끌어나가고자 노력했다. 이는 조선의 500여년 역사에서 보기 드문 애민 사상의 구현이랄 수 있다. 거중기 등 축성의 편의 기계들도 결국은 백성의 수고를 덜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랄 수 있는 것이고, 합리적인 관리 및 경영 정신도 종국에는 백성을 사랑한 정조의 마음으로 귀결된다.정조는 후세를 위한 기록 또한 꼼꼼히 남기도록 하였다. 화성의 기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 정조 19년(1795)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낱낱이 기록하여 편찬한 원행을묘정리의궤가 있고, 화성의 건설이 끝난 다음 편찬한 화성성역의궤가 있다. 두 책 모두 완전하게 남아 있어서 당시의 사정을 밝히는데 큰 도움이 되거니와 자세한 기록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화성은 이제 세계가 지켜야 하는 문화유산으로 격상되었다. 유네스코에서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게 된 큰 이유는 바로 화성성역의궤에 있었다나 이 구상이 구체화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 끝난 1946년 이후라고 한다. 그렇다면 화성의 건설은 그 구상보다도 100여년 앞서고, 그 실천보다는 150여년이 앞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화성은 신도시, 혹은 전원도시의 개념과 맞아 떨어지는데, 이는 첫째, 수도인 한양을 모도시로 해서 계획적으로 조성한 위성도시였고, 둘째는 신도시의 번성을 위해 수도의 기능 일부를 이전했다는 점, 그리고 셋째는 자족적인 도시로 키우려고 했다는 점 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20세기 후반 들어서 세계적으로 불어 닥치는 신도시의 열풍과 견주어 볼 수 있다. 대개의 신도시들이 잠만 자고 생활은 수도에 가서 행하는 베드타운의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반면, 세계 최고의 계획된 신도시 화성은 서구의 구상보다 100여년 앞서 훌륭하게 건설되었던 것이다.아침부터 궂은 날씨에 비까지 내리더니 하루 종일 그칠 줄을 모른다. 평일에 혼자 떠나서 조용히 다닐 요량으로 아침 수업만 있는 날을 잡아 두었는데 아침부터 비가 오니 왠지 방해를 받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수업을 마치고 길을 나서서 수원역에 내릴 때 까지만 해도 그런 기분은 변함이 없었으나 막상 수원역을 나서자 그런 기분은 간데없고 까닭 모를 두근거림이 내 가슴을 방망이질 쳤다. 손에 쥔 유일한 도구인 카메라를 꼭 쥐며 수원에 사는 친구가 안내해준 대로 북문인 장안문을 향해 갔다.장안문에 도착하여 바라보니 참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께서 하시는 가게가 남대문에 있는지라 어려서부터 남대문에 자주 갔었는데 그 남대문과 비슷한 크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옆에 있는 팻말에 쓰인 말은 더 놀라웠다. ‘서울의 국보1호 숭례문보다도 큰 문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문이다.’ 남대문보다 큰 문이 있긴 있구나싶은 마음을 품고 장안문에 올라 내려다 본 경치는 참으로 기이했다. 서울의 숭례문과 같은 경우에는 문만 남고 성곽은 사라지고 없지만, 화성의 장안문은 문은 물론이고 성곽도 잘 뻗어 있는데 성문 좌우로 성보라가 수문으로 넘쳐나는 모습을 화홍관창(華虹觀漲)이라 하여 수원팔경의 하나로 꼽는다고 한다. 가을이라 날씨가 가물어서 설명과 같은 장쾌한 물보라가 일지는 않았지만 맑은 물이 유유히 흐르는 모습은 그대로의 풍미가 충분했다. 화홍문을 지나면 위쪽에 방화수류정이라 불리는 정자가 위치하는데 주위의 경관이 수려하고 건물 자체도 우아하여 한참을 그 앞에 앉아서 풍경을 바라보다 길을 나섰다. 다음으로 만난 것은 북암문이었는데, 암문이란 성곽의 비밀통로로 적에게 보이지 않도록 양식이나 무기, 물자를 반입하거나 사람들이 은밀히 내왕하는 통로라고 한다. 정말로 작은 크기의 문과 통로가 있었는데, 확실히 축조 당시에는 눈에 잘 띄지 않았을 통로로 보였다. 그리고 동북포루와 동암문을 지나 동장대에 도착했다. 동장대는 연무대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는데, 말 그대로 무(武)를 연마하는 곳, 즉 군사들의 훈련을 지휘하던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건물의 앞에는 잔디가 있는 마당이 있었고 연무대 건물을 지나가면 넓은 잔디위에 활을 쏘는 곳이 있었다. 정조는 학문뿐만 아니라 활쏘기에도 능했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활을 쏘며 심신을 단련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묘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군사훈련에 임했을 군사들을 상상하자 지금의 군인들의 훈련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살짝 웃음이 나왔다. 동장대를 지나 동북공심돈에 도착하였다. 동북공심돈은 타원형의 형태의 건물로 높은 건물에 위의 누각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나 화성 건물들 중에서 특이한 건물 중 하나였다. 벽에는 여럿의 총구멍이 뚫어져있었다. 동북공심돈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동북노대가 있으며 바로 창룡문이 있다. 비는 그치지 않고 날씨는 점점 추워지니, 홀로 하는 여행이랍시고 재던 기분도 누그러지던 찰나, 친구가 그토록 추천하던 창룡문을 만나니 반갑기 그지 없었다. 창룡문에서 불어오던 바람과 그에 날리던 빗방울이 나에게 기운을 내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다시금 아름다운 풍경에 힘을 얻어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잠시 쉬는 중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으나 필설로 형용하기엔 어려운 -생각이라 하기보다는 감정에 가까운 것이었기에- 것이라 굳이 글로 옮기지 않겠다. 15분 정도 걸었을까, 행궁에 도착하니 정문 앞에서 무언가의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문화재 시굴현장’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곳에서 새로운 문화재가 나오면 또다시 새로운 연구가 진행되고 논란이 생기고 주장이 나오고, 그렇게 역사가 이어지고 발견되는구나하는 생각에 발걸음을 멈춘 채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행궁의 앞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세 그루 서있었는데 설명에 따르면 품(品)자 형태로 서있는 이 나무들은 삼정승이 이 나무 아래에서 어진 이를 맞이하여 올바른 정치를 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조경 사업 하나에도 나라를 생각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35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행궁의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려니 입장권을 판매하시는 아주머니의 말씀.“한 시간 안에 나오셔야 돼요.”“네? 6시에 닫는 것 아닌가요?”“5시 30분에 닫아요. 그럼 문이 다 잠겨서 학생 갇히는 거야.”“아, 네. 그럼 빨리 나와야죠.”서둘러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거중기였다. 화성을 짓는데 큰 역할을 하였던 거중기를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그 구조는 단순하였다. 지금이야 워낙 복잡한 구조의 기계와 장비들을 많이 보기 때문에 거중기가 단순하게 보이는 것이지만 당시에 이 거중기의 역할을 생각하면 이를 만든 정약용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두 개의 문을 지나 봉수당 앞에 이르렀다. 설명에 따르면 봉수당은 화성 행궁의 정전(正殿)건물이자 화성 유수부의 동현 건물로 장남헌이라고도 한다. 1795년(정조 19) 정조는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진찬례를 이 건물에서 거행 하였다. 이 때 정조는 혜경궁의 장수를 기원하며 ‘만년(萬年)의 수(壽)를 받들어 빈다.’는 뜻의 봉수당이라는 당호를 지어 조윤형으로 하여금 현판을 쓰게 하였다. 다음남쪽에 위치하였다. 복내당의 이름은 ‘복은 안에서 생겨나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복내당은 복원이 아주 잘 되어 촬영이 잦은 곳이다. 현재 한류 열풍을 이끌고 있는 드라마 ‘대장금’, 그리고 ‘해신’도 이곳에서 촬영을 하였고, 행궁이 나온 장면은 이곳에서 반복하여 보여주고 있었다. 다음으로 본 유여택은 정조가 행차시에 잠시 머무르며 신하를 접견하는 건물로 경복궁의 사정전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유여택이라는 이름은 중에서 주나라 천명을 받아 나라를 크게 하고 집을 주었다는 데서 따온 것으로 정조의 입장에서는 화성 유수를 임명하여 내려 보내는 곳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곳도 복내당과 함께 드라마 촬영지로 각광받는 곳이다. 정리소는 장차 1795년 을묘원행에서 펼쳐질 각종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1794년 12월에 설치한 임시 기관이었는데, 화성 성역이 끝난 후 외정리소라 하여 정조를 비롯한 역대 임금이 행차할 때 화성 행궁에서의 행사 준비를 담당하는 관청이 되었다. 처음에 정리소는 장용내영에 설치하였는데, 1796년(정조 20) 화성 행궁이 완성되면서 유여택 앞에 외정리소를 세우고 ‘외정리아문(外整理衙門)’이란 편액을 달았다. 다음에는 북군영이 보였는데, 정조는 1784년에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존호를 장헌세자로 바꾸고 이를 경축하는 과거시험을 열어 많은 무사를 뽑고, 이듬해에는 훈련도감과 경과에 합격한 무사들 가운데 무예실력이 빼어난 자를 뽑아 국왕경호부대인 장용위(壯勇衛)를 설치하였다. 정조가 주도하여 창설한 장용영은 주 훈련과목으로 무예24기를 채택하여 전투력 극대화에 최선을 다했다. 이처럼 당시 최고의 무사들이 모인 곳이 장용영이었으며 장용영 외영군이 주둔했던 수원 화성은 무예24기가 가장 활발하게 펼쳐졌던 공간이었다. 남군영과 북군영은 장용영의 군사들이 거주하며 정조 임금을 호위했던 무예의 실질적 공간이다. 화령전은 순조 1년 4월 29일에 완성되었다. 화령전이 수원에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정조가 얼마나 수원을 사랑하고 아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생활/환경| 2006.12.10| 6페이지| 1,000원| 조회(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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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란 무엇인가 - 2장 사회와 개인에 관한 논평 평가A+최고예요
    역사학 입문?역사란 무엇인가? 에 관한 논평미술학과 2001310078 이동현카는 역사를 거대한 인류의 행렬에 비유하였다. 그리고 역사가는 그 흐름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 무리에 섞여서 걷고 있는 일반적인 존재로 보았다. 이렇듯 카는 역사가를 사회에서 독립된 존재가 아닌 사회에 일부로 포함된 존재로 보고 있다. 이것은 간혹 역사가들의 저서에서 필자가 느끼던 거만함을 일갈하는듯하여 상당히 기분 좋은 비유였다.카는 개인은 그 자체로서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회의 일부라고 한다. 역사를 서술하는 역사가 역시 이미 역사의 산물이라고 한다. 필자는 카의 이러한 생각에 동의한다. 개인은 사회 속에서 여러 과정을 거쳐 독자적인 존재로 자리 잡고 결국 스스로가 사회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는 일상적인 상황 속에서라면 불만을 품고 있는 한 사람의 농민이나 하나의 촌락에 관해서 알 필요가 없을 것이다.’ 라고 말하는 부분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단지 한 사람의 개인적인 불만이라고 해서 그걸 그저 눈감아 버리기에는 각종 네트워크가 너무나도 잘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어떤 스님께서 산에 도로를 뚫는 것에 반대하며 단식투쟁을 했고 이것은 국가 정책의 실행을 주춤하게 만들기까지 하였다. -각종 보도의 무분별한 영웅 만들기식 논리도 한몫 했었지만- 개인의 불만과 행동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견해는 더 이상 효력이 없다. 현대에 이르러 인터넷을 통해 만인의 열린 광장이 존재하게 된 이상 한 사람의 목소리도 가볍게 흘려들을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즉, 역사가는 그 목소리가 얼마나 울려 퍼질지에 대한 잠재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역사가는 예리한 감각으로 자신이 걷고 있는 행렬을 세세히 살펴야 할 것이다.카는 사회와 개인, 둘 중에 어느 것도 우위에 있지 않고 동등하며,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는 듯이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그 분리 될 수 없는 둘의 관계 속에서도 선후관계는 어느 정도 있다고 밝히고 있다. 카는 본문 중에 “역사를 연구하기에 앞서 역사가를 연구하고, 역사가를 연구하기에 앞서 그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연구하라”고 말하고 있으며, “역사의 원동력은 천재적인 개인의 창조력이 아니라 사회”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위인’은 그 시대가 낳은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즉 위인, 그 개인의 뛰어난 역량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위인은 그 시대상황이 배출한 필연적 존재라고 보는 것이다. 혹자는 ‘역사란 위인의 전기’라고도 했다지만, 이는 역사상에 발생하는 큼직한 이슈 그 자체에 너무 관심을 가진 나머지 역사 발전의 주체를 보지 못한 경우라 하겠다. 어느 역사의 주인공이 특정한 계기를 마련하는 것도 다 그가 속한 사회가 그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변모할 준비가 되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만약 고대에 어떤 과학자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의 역할은 단순한 흥미의 제공이나, 그가 속한 왕조의 정복사업에 도움을 주는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과학자가 18세기에 태어났더라면, 산업혁명을 주도하여 사회변혁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둘 사이의 차이점은 속해 있는 사회의 차이뿐이다. 즉, 카가 말했듯 위인은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요술 상자 속의 잭’ 이 아니라 필연적 산물이라는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발표조는 -카의 중도적인 의견을 따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가지의 견해를 들려주고 학생들에게 토론을 펼칠 것을 유도했다. “역사의 주체는 개인이며 역사를 이끄는 것은 위인이다”와, “아니다, 역사의 주체는 사회이며 역사를 이끄는 것은 대중이다.”라는 두 가지 견해를 보여 주었는데 필자로선 두 가지 중 어느 편에도 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업 시간 내내 생각을 정리하는데 여념이 없었고 변변한 의견조차 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때 까지만 해도 -졸린 눈을 비벼가며 책을 읽었던 보람도 없이- 카의 입장을 분명히 읽어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읽어본 책의 내용은 발표조가 던진 화두로는 토론의 여지조차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카는 사회와 개인을 분리하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는데, 이는 필자도 동의하는 바이다. 그런데 발표조의 화두는 이 둘을 분리해서 받아들이려는 듯한 느낌이었다. 발표문에서는 잘 정리한 카의 입장을, 정작 발표 후의 토론에서 무시하는 것 같았다. 물론 토론의 활성화를 위한 장치로서 두 입장을 분리시킨 것이라고 밝혔으나, 이러한 분리는 사족이 아니었나 싶다.
    인문/어학| 2006.12.10| 2페이지| 1,000원| 조회(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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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주의를 위한 민족주의
    국가주의를 위한 민족주의과목명 : 역사학 입문제출일 : 2006. 11. 21.제출자 : 2001310078 이동현필자는 민족주의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본인이 말하는 민족주의는 흔히 나쁜 쪽으로 이미지가 고착되어버린, 북한에서 쌀이나 얻어가기 위해 부르짖는 '실체 없는 혈연 민족주의', '배타적 국수주의를 불러일으키는 폐쇄적 민족주의'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적, 정서적, 언어적, 공통분모를 가진 '인간집단'을 '민족'이라고 정의했을 때 한국이 가질 수 있는 통합적 단일민족의 개념을 건져내고 싶을 뿐이다. 실제로 한국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국민간의 일체감이 매우 클 뿐 아니라 국민정서도 상당히 비슷해서, '단일민족'의 개념을 이러한 의미로 새롭게 정의하고, 그것의 메리트를 잘 끄집어내면 굉장히 긍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필자는 민족주의라는 단어를 상당히 구시대적인 것으로 몰아가고, 온갖 부정적인 정의 안에 가두어버린 세계화 지향의 진보 진영이 부르짖는 '국가'라는 단위를 경계한다. 그들은 '국가'라는 단위를 위해 '민족'이란 단위를 버리라하지만, '민족'이란 단어를 혈연적인 개념으로 좁히고 그것을 곧 폐쇄적인 자민족중심주의 따위로 발전시키지 않는 이상 '민족'이란 단위가 '국가'라는 단위에 비해 우리에게 가져다 줄 이득은 너무나 많다. '국가'라는 개념으로만 인간집단을 설명하면 우리는 수치화 된 수많은 것들 앞에 내쳐진다. 선진국 과 후진국, 잘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 OECD 가입국과 비가입국, G7과 非G7등등, 그 수많은 순위 매김 아래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으로 확립하며, 긍정적이고 건강한 애국심은 어디서 불러올 수 있는가. 민족주의가 사라지고 깨끗하게 국가라는 경계만 남게 되면 한국인은 세계 11위가 되고 G7의 바깥이 되며 미국과 일본보다 아래가 된다. 어차피 이 모든 것들은 선진국들이 바라는 것들이다. 한 나라 안에서 같은 언어, 같은 정서, 같은 문화를 바탕으로 한 '민족'이라는 개념. 여기에서 혈연지상주의적인 관점을 희석시키고 제대로만 살려내면, 이 21세기 민족주의는 한국과 한국인을 걷게 하는 힘이 될 수도 있다. '다른 나라에 지기 싫어서' 따위의 치기어린 애국심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애민애족의 애국심을 불러내기에도 더욱 용이하다. 막연하게 '세계시민'으로서의 평화를 부르짖는 사람들은 국가주의보다도 더더욱 문제다. 진정한 평화는 모두가 강해야만 존재할 수 있듯이,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 또한 각각의 국가들의 정체성이 제대로 확립되었을 때에 가능하다고 믿는다.
    인문/어학| 2006.12.10| 1페이지| 1,000원| 조회(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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