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교에 들어오면서 이제 대학생도 되었으니 책도 많이 읽고 대학생답게 지내야지 란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게 대학생활을 하다보니 이것저것 처음 경험하게 되는 일이 많아 책 한 권 읽을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또 독서의 계절이라는 가을이 되면서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더 자주 떠올랐지만 그때마다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서양사상의 이해 라는 과목을 들으면서 주어주신 서양사상의 형성발전에 영향을 미친 사상가들의 저서를 읽는 과제 덕분에 오랜만에 책다운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과제를 위해 책을 읽는다는 점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번 기회를 발판으로 앞으로도 자주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나에겐 더더욱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었다. 난 더군다나 이번 학기에 철학의 이해라는 과목도 듣고 있어 더더욱 철학과 사상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요즘에 누구보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된다.내가 선택한 책은 라이프니츠라는 서양 철학가에 대한 위인전이라고 해야하나? 그의 사상 전반에 대한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을 때 눈에 들어오는 이름이 바로 라이프니츠였다. 다른 칸트나 헤겔, 데카르트 같은 유명하고 모두에게 잘 알려진 철학가에 대한 책들도 많이 있었지만 내눈엔 라이프니츠라는 이름이 눈에 띄였던 것이다.우선 라이프니츠 그에 대해 알아보면, 그는 1646년에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라이프뉘츠는 라이프치히 대학교의 도덕 철학 교수였고, 어머니 카테리나 슈무크는 아버지의 세 번째부인이었다. 라이프니츠에게는 이복형인 요한 프리디리히와 누이동생 안나 카테리나가 있었다. 20대에 라이프니츠는 자신의 이름 라이프뉘츠(Leibn tz)를 라이프니츠(Leibniz)로 바꾸었다. 그는 1661년 부활절 직후, 열네 살의 나이로 라이프치히 대학교에 입학했다. 나이가 어리긴 했지만 당시로서는 그 정도의 조기 입학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대학에서 철학, 수사학, 수학, 라틴어, 희랍어, 히브리어 등을 배웠고 졸업한 뒤 박사학위를 따기위해 법률학을 공부한다. 라이프니츠의 관심이 학문적인 데 쏠려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는 또한 문학적으로도 성공하고 싶어했다. 그는 주로 라틴어로 씌어진 자신의 시에 일생동안 자부심을 가졌으며, 그의 라티어 문체는 정교하고 화려했으며, 여러 책을 출판하기까지 했다.라이프니츠는 또한 정치적인 문제들에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그는 그 당시 30년 전쟁으로 국력이 상당히 쇠약해져 있는 독일에 대한 프랑스의 위협에 대해 오랫동안 주목했었고, 주기적으로 반프랑스적인 생각을 드러냈다. 또한 1684년에는 루이 14세의 호전성을 익명으로 풍자한 글을 가장 기독교적인 전쟁의 왕 이란 제목으로 출간하기도 하였다.라이프니츠는 그 외에도 발명에도 많은 재능을 보였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계산기가 있다. 그가 발명한 계산기는 그 당시 상황으로 볼 때 교육을 받은 자들도 나눗셈은 물론이고 곱셈도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이런 업적은 지금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것보다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그 외에도 시계나 나침반 등의 많은 발명품과 많은 것들을 고안해 냈다.그밖에도 그는 역사가로서 외교관으로서 학자로서 그의 다재다능한 능력을 발휘했다.일반적으로 말년의 라이프니츠는 보잘 것 없는 불쌍한 인물로 묘사된다. 그가 말년에 불행했던 것은 60대 말이라는 그의 나이와 예전에 늘 그랬던 것처럼 여행을 하거나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에는 너무나 허약해져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 뒤 시간이흘러 1716년 12월 14일 그는 통풍과 복통으로 그의 나이 70살로 생애를 마감했다.그의 성격을 보면, 그는 지적인 활동 영역과 정치적인 활동 영역 모두에서 수위를 차지하려는 이루어질 수 없는 야망으로 뒤덮인 삶을 살았다. 놀라운 것은 그가 그렇게 자주 실패했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행한 만큼 이루었다는 점이다. 그의 성공은 철저한 노력, 타인들의 생각에 대한 관대한 태도, 그리고 자기 자신의 정신적 창의성에 대한 남다른 확신 들이 절묘하게 결합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또 라이프니츠는 보편주의적인 정치관과 종교관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향에서는 푸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실제로 좀더 보편적인 통일체를 위해 자신의 공국과 분파만을 위한 사사로운 이익을 과감히 포기하고자 했으며, 그 때문에 그는 그 시대의 민족주의와 분파주의에 맞서야 했다.그가 중시했고 관심있어했던 여러 분야 즉 수학, 형이상학, 과학 등의 분야외에 그는 논리학을 매우 중요시 했다. 그는 당대의 일반 지식인들과는 달리 논리학의 중요성을 확신하고 있었다. 현대는 스콜라 철학의 전성기 이후 처음으로 논리학이 철학의 무대에서 중심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라이프니츠의 철학이 새롭게 부각되는 것은 현대 철학에서 논리학이 중요한 학문 분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시기의 대다수의 대철학자들, 특히 프랑스의 데카르트, 영국의 베이컨, 토머스 홉스 등은 새로운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최선의 추론 방법을 찾는 데 열과 성을 다하였다. 하지만 라이프니츠는 논리학, 수사학, 기하학이 각기 주목하는 측면(형식주의, 언어적 적합성, 수학화)들을 수학적 기호로 표현되는 하나의 형식 언어 체계 안에서 조화시키려고 하였다. 라이프니츠의 논리가 갖고 있는 전통적인 성격 가운데 하나는, 그가 유(genus)와 종차(differentia)에 의한 전통적인 정의 체계( 분할의 방법 )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분할의 방법은 어떤 집단의 사물들을 정의하기 위해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고안한 것으로, 먼저 가장 일반적인 개념을 찾아낸 다음, 그 개념에 포섭되는 모든 성원들을 상호 배타적인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 한나의 속성 종차를 찾아내고, 다시 각 부류의 성원들을 다시 상호 배타적인 두 하위 집합으로 나누어 가는 방법이었다. 당시의 일반적인 견해에 따라, 라이프니츠는 원리상 모든 개념들이 이런 종류의 단일한 위계조직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의해 정의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이상적인 생각은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그의 철학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또한 그는 궁극적으로 개별적인 실체와 그것의 속성만을 실재로 간주하였다. 그가 보기에 실체는 존재하는 속성들의 집합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어떤 속성이 한 실체에 속하거나 거기에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었다.라이프니츠는 자신의 형이상학 이론을 언제나 체계, 특히 예정 조화의 체계라 불렀다. 하지만 이 말을 사용하면서 그가 자신의 형이상학의 체계적 특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코페르니쿠스적 체계 라고 부를 때처럼 단순히 이론 을 의미하고 있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많은 주석가들은 라이프니츠의 실제적인 저작들이 동시대인들의 스피노자, 홉스, 말브랑슈 등의 체계적인 논문들과 비교할 때 완전히 뒤죽박죽임에도, 그의 형이상학을 전자의 의미에서 체계인 것으로 받아들여 왔다. 라이프니츠의 이상이 완전한 연역 체계 아래 놓여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40세쯤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철학적 착상들을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리게 된 것처럼 보이며,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이 동일성의 원리 와 충분한 이유의 원리 로부터 얻어진다고 주장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여기서 충분한 이유의 원리는 어떤 것이 지금과 같은 것으로 존재하는 데에는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원리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나머지 체계가 어떻게 이 두 가지 원리로부터 따라 나오는지를 보여주지 않았다.라이프니츠는 거의 언제나 대화를 나누는데, 서신을 교환하는 과정에서는 실제로 생존하는 논적들이 대화 상대가 되고, 대화 형태의 저술에서는 상상 속의 인물이 대화 상대가 되며, 자신의 개인적인 노트에서는 자기 자신이 대화 상대가 되었다. 그는 대화 형식을 사용함으로써, 체계의 토대를 모호하게 하기보다는 사실상 그의 공적인 저술과 사적인 저술들의 진정한 구조적 통합에 다가갈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대부분의 논쟁에서 논쟁 당사자들이 부분적으로 참된 주장을 하고 있으며, 그들의 잘못은 상대방의 주장에서 참된 부분까지도 인정하지 않는 데 있을 뿐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진리에 도달하는 최선의 길은 어느 한쪽의 주장에 어떤 사실들이나 논증들을 더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들의 공존 가능성을 극대화해 주는 보편적 틀을 찾는데 있는 것이다. 라이프니츠의 체계는 그것이 우주의 조화를 가정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그가 학창 시절에 이야기한것처럼 철학자들을 조화시키고 있다는 의미에서 조화의 체계였던 것이다.
첫 번째 책을 읽고 두 번째 책을 고르기까지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첫 번째 책을 위인전 같은 스타일의 책을 골랐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좀 다른 형식의 책을 고르려고 노력했다. 솔직히 철학이나 사상에 대한 책들은 내가 평소에 읽던 다른 책들과는 달리 좀 딱딱하고 어렵고 읽다보면 잠이 오기 쉬운 그런 책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책을 고르면서 분량이나 내용을 신경 쓰게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내가 철학이나 사상에 대해 아는것도 없고 그동안 관심 밖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은 책을 선택하고 싶었다. 이 책을 선택하기 전에 그래도 못난 자존심 때문에 나도 이제 대학생인데 언제까지 쉬운 책만을 골라 읽어야 하나? 이번엔 조금 어려운책을 골라봐야겠다고 조금 어려운 책을 선택했었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무슨 얘기인지 읽고 또읽어도 이해가 되지않는 그런 내용들로 가득했던터라 책을 바꾸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 읽기 편한 책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내가 두 번째로 선택한 이 책은 쇼펜하우어가 쓴 수필같은 단편적인 형식의 글들을 모아놓은 것으로 쇼펜하우어의 독설 이란 제목의 책이다. 내용도 다른 철학책과 비교했을 때 그다지 딱딱하거나 어렵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우선 쇼펜하우어에 대해서 알아보면, 쇼펜하우어는 1788년 2월 유럽 북쪽의 단치히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모두 네덜란드계였다. 아버지는 크게 성공한 사업가였고, 어머니는 나중에 작가로 세상에 알려질 정도로 예술적 기질이 풍부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관계는 그다지 원만하지 못했다. 스무 살 정도의 나이 차와 상인과 예술가 기질 사이의 차이를 생각해 볼 때 이 둘의 사이가 왜 좋지 않았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쇼펜하우어의 이름 앞에는 보통 '염세주의자'라는 말이 붙는다. 분위기와 어머니와의 잦은 불화에서 출발했으리라 추측하게 된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 대해 처음부터 그다지 애정을 보이지 않았을 뿐더러, 뒷날 그에게 '너는 용서할 수 없는 귀찮은 녀석이며 함께 사는 것은 몹시 힘들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 보내기조차 했으니 말이다. 현실주의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쇼펜하우어를 자신의 뒤를 이을 개방적이고 활달하며 세계 시민적인 사업가로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쇼펜하우어가어렸을 때 세계를 배울 수 있도록 프랑스와 영국 등지로 보내 외국어를 익히고 고급 문화를 직접 보고 느끼게 했다. 쇼펜하우어는 이 기회를 통해 각국의 언어와 귀족적 품성을 익혔을 뿐 아니라, 이 때 평생 동안 지속된 '보통 사람을 혐오하는 태도'도 갖추게 되었을 것이다.그가 한 말 중에 Das Leben ist eine missliche Sache... 란 말이있다. 해석하면 삶이란 더러운 것이다 라는 말인데 이 말은 23세의 젊은 쇼펜하우어가 늙은 시인 빌란드에게 한 말이다. 아무리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해도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그것도 자기보다 연장자에게 그런 말을 던질 수 있다니... 한편으로는 당돌하고 무례하기까지한 그의 말은 어쩌면 그만큼 쇼펜하우어가 삶에 대해 진실했단 걸 보여주는 건 아닐지 생각된다.쇼펜하우어는 우리는 결혼해도 불행하고 결혼을 하지 않아도 불행하다. 혼자 있어도 불행하고 오락장에 있어도 불행하다. 우리는 온기 때문에 모여있는 고슴도치와도 같아서, 너무 가까이 있으면 기분이 나쁘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비참해진다. 라고 했다. 이렇듯 쇼펜하우어는 지독하게도 냉소적이고 지독하게도 고독하다. 그는 인간 삶을 처절하리만치 조소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사회를 두려워하고 인간 관계의 가치나 기쁨을 여지없이 부수고 있다. 그는 이런 극단적으로 소리치기까지 한다.적에게 숨기고 싶은 일은 친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그러나 이런 거대한 혐오감은 사실 쇼펜하우어 자신을 향한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망쳐져버린 자신의 삶을 원망하며, 변명할 수 없는 환경이나 세상에 한없이 독설을 퍼부어대는 것이다.쇼펜하우어는 스스로 지나치게 낭만적인 인간이었기에 오히려 혹독한 염세주의자가 되었다. 그는 평화를 소망하였지만 평생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았다. 그는 현실이든 정신이든 어디서나 투쟁만을 보았을 뿐, 어린이의 웃음, 젊은이들의 사랑, 대지의 묵묵한 평온 같은 긍정적인 면을 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는 또한 한 시대 젊은이들이 기대하던 나폴레옹이란 절대자의 패배와 루소의 이성 탄핵, 칸트의 이성 비판 등을 목도하였다.이러한 세계의 극단적인 풍경이 그 자신의 격렬하고 고독한 갖가지 경험과 기질에 더해져서 그로 하여금 스스로의 의지가 오로지 최선이며 궁극이라고 믿게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그의 말 중에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라는 말이 있다. 최고도로 발달한 존재가 가장 큰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그 고통 가운데 기쁨도 담겨있다. 그리하여 그는 무지한 행복보다는 불행한 지혜를 선택하였다. 고통이라는 힘겨운 대가를 치르더라도 인생을 날카롭고 깊게 경험하고 싶고, 환멸이라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인생의 오묘한 비밀에 접촉하고 싶어했다. 이것이 곧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의 삶이었다.사실 염세주의란 자존심이 강한 청년기의 사치품이다. 청년기는 가족의 따스한 품을 떠나 개인주의적 경쟁과 탐욕의 냉정한 분위기 속으로 뛰어들어 모성을 그리워하는 때이다. 쇼펜하우어도 그와 같았다. 평생을 어머니의 멸시 속에서, 하숙집을 전전하며 지낸 사람이 어찌 세상을 낙천적으로 바라 볼 수 있었겠는가. 그는 의식적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거부함으로써 염세주의에 아주 깊게 몰입되었다. 급기야 그는 어버이가 되는 것을 최대의 악으로 규정하였고, 여자의 아름다움과 향기는 경멸하고 증오해야만 될 대상이기까지 하였다.이 책을 읽으면서 그중 인상에 남는 부분이 있다. 세상에 태어난 것이 가장 큰 죄이다 라는 소제목의 부분인데, 내용을 보면 괴로움을 주는 자와 괴로움을 당하는 자의 무게는 다르지 않다. 전자가 자신이 남에게 주는 고통과 관계 없다고 생각하고, 한편 후자는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양자가 모두 잘못이다. 라는 구절이있다. 눈을 올바로 뜨고 보면, 남에게 고통을 준 자는 자기가 이 넓은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는 모든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만일 그가 이성을 갖춘 인간이라면 이 세상에서 영문도 모르고 악인에게 시달리는 사람이 어찌 그토록 많이 발생하였는가 하고 섣불리 걱정할 것이다. 괴로움을 당하는 자는 어떤가.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악이 인간의 의지로부터 발생한 것이며, 이 의지는 나 스스로의 본질이기 때문에 괴로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는 자신의 의지가 불러온 현상을 긍정함으로써 모든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