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국토 면적 3만6천km2에 인구 2천1백만명의 조그만 섬나라 대만. 이 작은 나라에도 지난 79년부터 핵발전소가 들어서 현재 6기의 핵발전소가 가동되고 있다.한국의 섬에서는 번번이 좌절되었던 핵폐기장 건설이 대만 내에서는 일찍이 이루어져 82년부터 핵폐기물이 처분되어 왔던 란위도는 핵폐기물을 받아들인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죽음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대만 정부는 전체 인구의 2%밖에 안 되는 원주민 중에서도 얼마 안되는 집단거주 원주민인 야미족에게 핵폐기장을 통조림공장이라 속이면서 핵폐기물을 처분해왔다. 태평양에 떠있는 이 아름다운 섬 란위도는 15년간 핵폐기물을 보관해오며 서서히 죽음의 섬으로 바뀌어 갔다. 평화롭게 자급자족하던 섬주민들 사이에 반대운동이 시작돼 주민 전원이 대만 본토로 나가 반대시위를 벌이는 일까지 일어나자 대만정부는 2002년까지 이 섬의 핵폐기물을 다른 곳으로 완전히 이전할 것을 약속했다. 란위도 원주민의 승리였다.그런데 바로 그 이전지가 한반도 북쪽 황해북도 평산 탄광으로 결정된 것이다.대만정부는 15년 전 통조림공장이라고 속여 란위도에 핵폐기물을 싣고 들어갔다. 15년이 흐른 지금에도 똑같은 방법으로 북한주민들이 핵의 위험성에 대해 무지하고 반대하지 않는다는 약점을 이용하여 핵쓰레기를 북한으로 반출하려고 하고 있다.그러면 이런 사회적 상황 속에서 반인도적 행동이라고 비판하기 전에 '핵'이라는 것은 중요성, 그리고 왜 문제가 되는지, 그 속에서 우리의 외교방향과 이런 정치적 상황과 연관되는 문제의 해결방법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2. 에너지원으로 핵의 중요성-전체적 입장: 기존의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의 에너지 자원 중 현재의 소비추세로 화석연 료인 석유는 40여년이면 바닥이 나고 석탄은 앞으로 100년, 천연가스 역시 금후 50년 내에 한계를 드러낼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우라늄은 앞으로 3600여년 정도는 공급이 가 능하므로 결국 획기적 대체 에너지의 개발이 없는 한 세계에너지는 원자력에 의존할 수 밖 에 상당히 높은 편이고 주요 에너지인 석유는 해외에서 전량 수입하여 쓰고 있 음은 알고 있다. 그래서 한국은 지난 30년간 원자력개발을 통해 한국 에너지안보의 향상을 도모하여 왔으며 현재 원자력발전에 있어서 세계 10위안에 들고 있고 현재 한 국가에서 10 기 이상 가동하는 나라 중 한국의 이용률이 1위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원자력 그 자 체가 한국의 에너지 자립화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주지는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한국이 보 유한 원자력 발전소는 미국 기술에 기초한 경수로(light-water reactor)체제인데 여기 쓰이 는 저농축우라늄 전량을 외국으로부터 수입할 뿐 아니라 이것의 이용효율이 극히 낮기 때 문에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려면 사용한 핵연료를 재처리하여 사용할 수 있는 핵연료 주기를 국내적으로 완성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는 국제적 핵확산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 되어 있기 때문에 국제원자력기구와 핵확산금지조약에 의해 제약받지 않을 수 없고 미국의 핵비확선 정책의 강력한 추진으로 이런 기술개발을 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3. 핵시대의 여러 가지 현상과 문제점1) 체계적 문제원자력 기술의 군사적 목적으로의 전용을 방지하기 위한 국제 핵비확산 체제는 IAEA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와 NPT(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핵문제의 효율적 통제를 하지 못하고 있다.-국제조약으로서의 불평등성: NPT에 따르면 핵보유국은 군비축소에 대해 규정하고 있으나 그 의무에 불성실이 하였고 비핵보유국들만 핵사찰 등의 엄격한 통제를 받아야한다는 것으 로 인해 핵확산을 야기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핵 개념의 모호성과 핵사찰의 불완전성: 핵의 군사적 기술과 산업적 기술의 구분이 모호함으로 인해 분쟁의 불씨를 남기고 있다.-적용의 편파성과 약소국에 대한 불이익 강요: NPT의 모체인 IAEA의 헌장이 발표된 후연이어 터져나오고 있다. 이는 아시아지역 핵산업에 막대한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이는데 대표적으로 국내 핵발전소의 주요 사고현황, 그리고 잠복되어 있는 대형재해 위험요소들을 짚어보자.국내의 핵발전소들은 증기발생기와 원자로의 노후화로 인한 사고 및 고장이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혀지고 있는데 이는 제작사의 설계 및 제작결함이 원인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내 핵발전소의 무리한 가동률 유지와 핵폐기물의 저장용량의 포화로 인한 안정선의 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결국 향후 대형사고의 위험가능성도 이런 문제들로부터 발단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밖에 캔두형 핵발전소인 월성 핵발전소의 만성적인 중수누출사고와 이로 인한 삼중수소 오염량 증가, 핵폐기물의 누적과 포화상태가 또 다른 대형 방사능재난을 일으킬 수 있는 원인으로 지적된다.3) 환경 문제이는 수십 수만년에 걸친 재앙이다.대만 핵폐기물의 북한 반입에 대해서 여러 단체들이 강력하게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한반도에 미칠 심각한 환경오염 때문이다. 방사능을 내뿜는 핵폐기물은 지구상에서 최고의 맹독성 물질이다. 일단 오염되었다 하면 수십 수만 년간 방사능을 방출하므로 그 속에 사는 생물체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사멸하거나 생명이 있더라도 고통스럽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현대 과학자들은 아무리 그 양이 적다고 할지라도 모든 방사선은 위험을 수반한다고 믿고 있다. 핵쓰레기로 인해 일어나는 재앙은 규모와 시간이란 면에서 다른 재앙과 완전히 구분된다. 태풍, 해일, 지진 등 자연적 재앙은 그것이 지나간 자리에만 피해를 낳고 그 피해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또한 인간의 의지에 의해 복구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핵쓰레기로 인한 재앙은 그것이 아주 좁은 지역에서 발생한다 할지라도 주위의 공기에 의해 미세한 방사능 입자들이 멀리까지 날아가기 때문에 그 피해가 무한히 확산될 수 있고, 시간적으로도 사고 당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세대에 걸쳐 재앙이 계속된다.-지하수 오염 심각성지난 수십 년간 과학자들은 핵폐기물을 자연생태계로부터 격리시키기는 것이다. 사용 후 핵연료의 경우엔 현재의 과학기술로 수십만 년간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이 없어 우선 핵발전소 내의 수조(水槽)에 임시 보관만 하고 있을 뿐이다.지금까지 핵쓰레기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독성에 의해 여러 가지 사고가 있었지만 그 중 에 가장 대규모의 사고는 58년 소련의 우랄산맥에서 일어난 사고다. 체르노빌과 같은 핵발 전소 사고가 아니라 핵쓰레기로 인한 것으로 광활한 지역이 방사능에 오염되어 수백 명이 사망한 사고다. 또한 맨해튼 계획에 따라 미국이 원자폭탄을 개발하면서 1957년까지 핵폐 기물을 처분한 펜실베이니아주 캐논스버그에서 80년대 들어 수십명의 암환자가 발생해 원 인을 조사한 결과 토양과 물이 방사능에 오염되어 있음을 발견했던 것도 유명한 사례이다.미국의 경우 저준위 핵폐기물을 얕게 매장한 6개 지역 중 3개 지역에서 방사능이 흘러나와 폐쇄되었다. 이러한 사정은 중저준위 핵폐기물을 처분한 프랑스, 스웨덴도 마찬가지다. 스 웨덴에서도 핵폐기장 인근 해안에서 방사능 한도의 50배 이상 오염된 물고기가 잡혔다.도버해협 근처 프랑스 아그지방 자치단체들이 핵폐기물저장센터(앙드라), 핵물질재처리공장 (코제마)과 핵발전소가 있는 이곳에 서 오래 전부터 백혈병환자가 무더기로 발생하고 있는 사실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서 아그지방 반경 35km에 거주하는 25세 이하 6만명을 대상으 로 조사한 결과 지난 15년간 백혈병에 걸린 27명의 환자와 가족들이 인근 해변 및 바다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결론을 내린 예도 있다.국내에서도 원자력연구소에 의해 중저준위 핵폐기물을 처분할 경우 '처분장 안 핵폐기물 드럼이 지하수에 노출되어 부식되는 것은 4∼5년부터이며 핵물질이 90년간 계속 흘러나올 것'이라는 보고가 나와 있는 것을 볼 때 지하수 오염이 얼마나 심각한 위험인지를 알 수 있다.-처분장 문제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대만의 폐기물 반입문제에서 북한이 매립하려고 하는 지역은 폐광 으로 지하수에 노출될 위험성이 높은 곳이다. 지난 90년 한국에서도 핵폐기물 처분폐기물 매립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이는 핵에너지 사용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하고 있다.-수송 문제수송 문제 또한 심각하다. 서해는 수심이 얕은데다 해류의 흐름이 없어 사고가 한 번 발생 하면 핵물질이 그대로 누출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 8백t급 선박으로 운반할 경우 1백회 이 상 수송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것은 국제원자력기구(IAEA)마저도 인정하고 있는 해상수송 시의 사고위험이다. 만약 하나의 방사성물질 덩어리만이라도 연안에서 분실된다면 엄청난 방사능노출의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러시아로 방사능 폐기물을 수출한다는 제안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이나 대만 또는 일본으로부터 러시아로 수송될 방사능폐기물의 양은 엄 청난 양이 될 것이며, 수송 중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는 곧 심각한 방사능오염사고가 될 것 이다. 실제 지난 84년 핵물질화물선 몽 루이(Mont Louis)호가 UF6 등의 방사성물질을 싣 고 프랑스에서 소련으로 가던 중 벨기에 해안에서 여객선과 충돌하여 침몰한 적도 있다. 이러한 예는 한국이 절대적으로 핵의 노출에 있어서 안전하지 않으며 다자간의 노력의 절 실히 필요한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다.4)강대국들의 자국 중심주의1997년에 대만이 방사능 폐기물을 북한에 폐기하려고 했던 시도, 지금도 역시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 그리고 미국과 러시아의 사용 후 핵연료 최종 처분장을 마샬 군도의 웨이크 섬(Wake Island)에 건설하려던 제안은 부유한 나라들이 환경기준과 민주주의 수준이 낮거나 없는 아주 가난한 나라들에 자신의 핵폐기물을 폐기하는 데 분명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러시아로 방사능 폐기물을 수출한다는 제안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돈이 절박하게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저항하기 어려운 가난한 나라에 방사능 폐기물을 "폐기"하는 것은 최고로 부도덕한 일이다. 현재 핵발전을 하고 있는 전세계 29개국에서도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골칫거리인 핵폐기물을 처리 능력이 검증된 바 없는 북한에서 처리된다면 처리는커녕 관리조차 안될 가능성.
"Channel Firing" by Thomas Hardy우리에게 소설가로 더 알려진 Thomas Hardy는 오히려 시에 대한 애착이 더 했으며 시인으로서의 천재성과 중요성을 인정받기 원했을지도 모른다. 일단 시를 보기 전에 그의 시대적 배경과 전체적 시의 특징을 간단하게 살펴보겠다.그가 살았던 시대는 급진적인 과학기술의 발달로 전통적 종교관이나 가치들이 붕괴되면서 새로운 진보적인 사상이 나오기 시작했고 의례 그렇듯 산업화의 진전으로 농촌 공동체가 해체되는 시기였다. 또한 사회계급의 위계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여성 문제도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Hardy는 이런 변화에 민감했으며 이 변화들은 그의 사상과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먼저 그의 시속에 언어를 보면 보통 시인들이 쓰는 아름답고 부드럽거나 함축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들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흔하지만 이런 단어로 시를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언어의 사용이 거부감보다는 더 친근하게 다가오며 피부에 가깝게 와 닿는다. 또한 그의 시를 보면 어떤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그가 소설가라는 것의 영향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 D. H. Lawrence의 "Snake"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Are You Digging on My Grave?"는 대화형식으로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가듯 내용을 전개하고 있으며 그러는 중에서 독자들은 죽음으로 인해 끝난 모든 인간관계, 그리고 무의미함, 바닥으로 떨어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하여 더 절실히 느낄 수 있게 된다.산업혁명에 따른 물질문명의 번영에 힘입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주와 세계를 움직이며 조종하는 힘을 인간의 의사와 노력여하에 따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Hardy는 비관주의적인 생각을 품었다. 인간 삶의 진행은 그 자체의 법칙을 따를 뿐이며 또 그것은 이미 정해진 운명에 의해서 좌우되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행복과 불행이 인간의 의식적인 노력으로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 운명은 신성이나 인성을 갖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불행이나 재난에 대해서도 무관심하고 냉담하다. 어떤 사람이 선량하다고 해서 그의 불행이나 재난을 막아주거나 그 처지에 동정하지 않는다. 인간이 선의로 된 노력을 모아서 그 힘을 돌려보려고 해도 그것은 이미 정해진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Thomas Hardy의 이러한 운명의 힘은 흔히 내재의지 (The Immanent Will) 라고 불린다. 그의 시속에서도 이러한 내재적 의지에 의한 파멸을 그린 시가 있는데 "The Convergence of The Twain"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타이타닉호의 침몰을 계기로 하여 인간의 허영을 풍자하기도 하며 한편에서 인간이 배를 만드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이와 상응하는 빙산이 형성되고 있었고 이 둘의 충돌은 파멸을 가져왔으며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다는 Hardy의 운명관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자연은 인간이 삶에 대해서 철저히 무관심하고 냉정한 운명 그 자체이기 때문에 이런 자연 앞에서 아무리 우대한 인간이나 고상한 종교나 사상도 덧없고 무가치할 뿐이다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이러한 그의 사상은 인간의 고통과 삶의 가혹함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였고 그를 비관적으로 만들었으며 신에 대해서 냉소적이 태도를 갖게 만들었다. 이런 그의 태도가 여실히 드러나 있는 "Channel Firing"이란 시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이 시는 잔학한 전쟁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제 1차 세계 대전 직전 영국 해협에서 함포사격 연습하는 것에서 착상하여 가상으로 상황을 만들어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이 시에서 말하는 끝없는 전쟁과 인간의 욕심, 투쟁이 제 1차 세계 대전이라는 앞으로의 상황을 예견이나 하듯 나타내고 있다. 그는 인간의 잔인한 전쟁에 대한 본성을 풍자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내는 함포 소리에 무덤에서 일어난 죽은 자들이 대화하는 방법으로 표현된) 그런 것에 탐닉하여 빠져나오지 못하는 인간의 무능력함에 대해서도 비난하고 있다.That night으로 시작하는 이 시에서 Hardy는 죽은 자들이 산 자들에게 말하고 신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시를 풀어나간다. 죽은 자들은 대포소리가 심판의 날에 하나님이 모든 죽은 자를 불러일으키는 나팔소리로 알고 있어 난다. 이는 The dead들이 살았던 시대나 산 자들이 살고 있는 시대나 그다지 다르지 않음을 그리고 앞으로 미래 또한 비슷할 것임을 암시한다. 죽어서 무덤 속에 누워있던 사람들이 모두 잠에서 깨어나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며 앉아있는 음울하고 조용한 분위기 가운데 부지런히 음식을 먹던 생쥐(그냥 음식이 아닌 신이 축복한 음식이 하찮은 동물의 배나 채우기 위한 가치 없는 것이 되어 버린, 신의 가치가 얼마나 떨어졌는지 보여주고 있다.)와 벌레들도 모두 숨어버렸다. 그러자 신은 이것은 죽은 자들이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현재 살아있는 인간들이 전쟁을 일으킬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심판의 날이 아니라고 진정시킨다. 또한 전과 다름없이 인간들은 전쟁을 일으키기를 좋아한다고 말한다."All nations striving strong to make/ Red war yet redder./ Mad as hatters/ They do no more for Christ sake/ Than you who are helpless in such matters." (13-16) 모든 인간들이 자신의 국가를 더 강하게 하기 위해서 전쟁무기를 개발하고 죽음과 살인을 부르는 일을 하고 있다. 또한 죽은 이들이 당연히 하지 못할 수밖에 없는 주를 위한 일, 즉 평화와 사랑을 실천하는 일을 살아있는 인간들은 죽은 자들과 마찬가지로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말을 죽은 자들에게 말하는 신의 태도도 역시 냉소적이다. "It will be warner when/ I blow the trumpet (if indeed/ I ever do; for you are men,/ And rest eternal sorely need)." (21-24) 심판의 날이 아마도 없을 것이며 혹시 있다 할지라도 나팔을 부는 심판의 날에는 더 뜨거울 것이라고 말하는 어투는 바로 앞 연에서 지금이 심판의 시간이 아닌 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다행인 일이며 만약 지금이 그 시간이라면 그들은 지옥 바닥을 문질러 닦아야 할 것이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냉소적이다. 또한 신은 인간이라는 것이 신을 위해 살기보다는 끊임없이 싸우고 서로를 죽이려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심판의 날에 영원한 안식처,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곳이 (아마도 지옥이 아닐까)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을 듣고 다시 자리에 누워 죽은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한다.
자연으로의 회기...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 대하여...그는 인간에 대하여 그리고 그 인간을 변호할 것이라면서 이 글을 본론을 시작한다.인류에게는 두 가지 불평등이 있는데 하나는 자연적 또는 신체적 불평등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또는 정치적 불평등이다. 자연적 불평등을 왜 그런 것이 생겼는가를 탐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사물과 인류가 진보하면서 생긴 사회적 불평등에 관하여 다루고 있다.제1부인간의 육체적 조건을 간단하게 표현해 본다면 '동물> 야생에서 생활한 자연 상태의 인간 > 문명에 길들여진 인간' 이며 이들이 두려워 하는 적은 유소, 노쇠 (모든 동물에게 공통됨), 그리고 병 (인간에게 병이 없다면 사색과 고뇌 따위는 필요 없었겠지만 그 병은 자연 상태 때보다 사회가 형성된 뒤에 더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면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루소는 이를 구별하는 것은 지성이 아니라 그의 자유로운 특질이고 (어떤 것에 복종하거나 저항하는 것이 자유임을 아는 것처럼) 이런 자유 의식에서 자신를 개선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고 그의 영혼도 발전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언어라는 것이 어떤 존재의 특성과 상이점을 알게 하고 자연적인 것과 형이상학적인 것에 대한 정의와 관찰을 필요하게 하였다. 그는 사고를 발달시키는 언어에 관해서 언어의 제정에 있어 이미 만들어진 사회가 필요하다는 것과 사회가 이루어지려면 이미 발생된 언어가 필요하다는 식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묻고 있다. 하지만 원시상태에서 이 언어는 그리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고 있다.우선 자연상태에 관해 설명하면 이것은 우리의 자기 보전을 위한 배려가 다른 이들의 보존을 위해서는 가장 해가 적은 상태이므로 이런 상태는 평화롭게 살아가는 데 적합하여 인류에게 가장 바람직한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때 인간들은 전혀 도덕적인 관계를 갖고 있지 않고 분명한 의무도 없었으므로 그들은 선인도 악인도 아니다. 또한 이런 경우 자연 충동에 가장 거역하지 않는 사람을 유덕한 사람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이런 자연상태에서 인간들은 인류의 최초의 감정이이며 자연의 순수한 충동, 즉 자연의 연민의 힘을 가짐으로써 동포의 괴로움을 보는 것을 싫어하는 선천적인 감정, 동정심을 갖고 있으며 이 후에 이성을 가지게 되면서 자존심이라는 것이 생기며 반성이라는 것이 이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또한 인간에게는 정념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복합적으로 형성되고 격해지기 쉬움으로 이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법률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이성을 그리워하는 정념이 있는데 이는 둘 사이 결합을 원하는 일반적이고 육체적인 욕구와 그것만을 위해 정력을 쏟는 사회 속에서 인공적으로 생겨난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다시 돌아가서 자연상태에서 주종관계라는 것은 소유라는 욕심과 상호의존이 앞서지 않는 한 형성되지 않는다. 이 상태에서는 불평등이란 거의 무(無)에 가깝다. 하지만 인류가 그 원시 상태에서부터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은 몇 가지의 외부적 요인과 우연한 발견과 사건에 의해 이루어 진 것이며 인간을 협력의 필요와 이성의 완성을 알게 하였고 그러한 것들이 지금의 이런 상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제2부인간의 최초의 감정은 자기 생존에 관한 것이였지만 인간의 생각이 발달함에 따라서 그 결과로 생긴 다른 동물이 비한 우월성을 자각하면서 자존심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고 서열을 만들게 되었다. 또한 인간은 공통의 인간 관계에서 동포와 협동해야 하는 경우와 자기 생존을 위해 그들과 경쟁해야 하는 경우도 알게 되었고 이해관계가 성립되었다. 이 속에서 사유재산이 생겨났다. 이것은 도구의 사용에 큰 영향을 받은 것인데 같은 일을 하더라도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어떤 이들은 여가를 가지게 되고 꼭 중요한 것도 아닌데 소유해도 그리 행복하지 않은 반면 잃으면 불행한 것처럼 생각되었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무의식중에 자기에게 부과한 최초의 속박이고 또 다른 불행의 시초가 되었다.이런 상태에서 법률이 있기 전까지 도덕이라는 것이 각자의 심판자가 되었고 더 이상 순수한 선은 사회에서 적합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도덕으로 통제되기 힘들어졌고 그에 따른 벌이 엄하게 되어졌으며 그로 인해 법률은 강한 벌을 수반하고 등장하게 되었다. 이 때 루소가 보는 가장 바람직한 상태는 원시시대의 완만한 움직임과 우리 자존심에서 비롯되는 활동의 중간에 위치하여 혁명이 일어나기 어려운 때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