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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사상] 동양사상과 현실문제 시험자료
    天의 의미 변화중국의 상고시대 사람들은 인간사의 중요한 문제가 모두 天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上帝 혹은 天帝의 의지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었다. 이 시기의 상제나 천제의 개념은 인간생명 근원으로서의 모습과 지고무상의 권위를 지닌 주재자로서의 성격, 즉 인격적인 요소를 띤 신의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인간사의 대소사를 점친 기록인 갑골문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상제는 夏, 殷을 거치면서 점차 천과 그 의미가 혼용되어 사용되어 왔다. 그런데 周대부터는 천의 의미가 부각되었고, 그 의미도 인간의 자각이 커져감에 따라 인격적인 요소가 탈각되고 우주의 보편적인 이치나 운행원리로서 이해되기 시작하였다.주는 은의 정복을 정당화하고 국가기반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天命을 강조했다. 천명이란 보편자로부터 부여된 보편적 사명ㆍ의무감을 뜻한다. 천명사상에서 천은 德을 지닌 사람에게 왕이 될 명을 부여하고, 왕의 덕, 不德에 따라 명을 바꾸게 된다고 된다. 이는 天心은 民心임을 강조해 은의 주지육림을 일삼던 紂王에게서 천명이 떠났기 때문에 주의 革命이 불가피했다는 논리로 이어졌다.孔子의 생애공자(B.C. 552-479)의 이름은 丘이다. 아버지 숙량흘과 어머니 안징재 사이에서 태어났다. 숙량흘의 첫째부인은 딸만 9을 낳았고, 둘째부인이 아들을 낳았으나 장애자였다. 그래서 숙량흘은 아들을 얻기 위해 셋째부인으로 안징재를 들여 66세의 나이(안징재 19세)에 공자를 낳았다. 공자 3세 때 숙량흘이 사망하여 가세가 어려워졌으며, 안징재도 공자나이 16-17세에 사망하였다. '史記'에서 공자는 어릴 때부터 '제기'를 가지고 놀았다는 기사가 보이며, 유년시절에 주로 어머니를 통해서 교양을 배웠다고 전해진다. 공자는 20세 이후 창고관리ㆍ목장관리의 벼슬을 지냈으며 자신이 말한 '三十而立'처럼 30세 이후에는 고위직이나 禮의 자문역 등을 하고, 예에 정통하게 된다. 55세에 자신의 뜻을 받아줄 제후를 찾기 위해 14년 동안 6개국을 순례하였으나, 전국시대 초입의 당시 정황에서 공자의 사상을 받아주는 제후는 없었다. 당시 제후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설교나 하는 귀찮은 존재로 인식되어 있어 오는 것을 꺼려할 정도였다. 공자는 68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73세에 죽을 때까지 제자 교육에 힘썼다.공자는 한 인간으로서 순탄하지 않은 출생과정을 겪었고, 사회적 배경 또한 춘추ㆍ전국시대라는 혼란기를 살아갔음에도 불구하고, 고민하는 지식인ㆍ사상가의 모습을 보였다. 당시 정황에서 쉽지 않았던 시대고발정신을 가졌으며, 사회 혼란의 극복과 질서회복을 위한 방책을 제시하였던 공자를 혁신적인 사상을 지닌 개혁주의자로 볼 수 있을 것이다.孔子공자가 이상향으로 간주한 周公대는 禮文化의 시기로 볼 수 있다. 주공대의 禮는 사회구성원에게 차등적인 역할을 상정함으로서 신분과 생활의 질서를 확립시킬 수 있었다. 주공이 확립시킨 봉건제와 종법제는 이러한 예의 구체화였다. 72개의 제후국 중 55개가 혈연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 나머지도 개국공신들에 의해 지배되었기 때문에 忠이라는 개념보다는 孝라는 개념에 가까운 혈연적 봉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정치권력ㆍ재정 등의 적장자 상속의 종법제는 사회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원인이었다. 주를 떠받치던 혈연중심의 孝治는 주 왕조 중기 이후 점차 희석되었다. 이는 사회를 안정시키던 예의 붕괴를 의미했다. 결국 주는 멸망했으며 중국은 춘추ㆍ전국시대의 혼란의 시기를 거친다. 공자는 이러한 혼란의 시기를 살아간 인물이다. 공자는 혼란의 춘추ㆍ전국시대를 天下無道라고 진단하고,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방책으로서 주공대의 예문화에 주목했다. 공자는 주대의 예를 너무 형식적으로만 치우쳐서, 마음이 사라졌다고 보았다. 공자는 예란 우리 마음을 표출하는 것이고, 마음이 실려있지 않으면 예란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공자는 이러한 마음을 仁이라 하고 인과 예의 조화를 통해서만 질서를 회복할 수 있다고 하였다. 공자는 인은 외부적 강제에 의한 타율적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이 있으면 이룰 수 있다고 하여 인의 자율성을 강조하였다. 예에 대해서 공자는 겉치레, 형식보다는 인을 강조하여 예란 넘치는 것보다 검소한 것이 낫다고 하였다. 예를 들면 喪을 치를 때 매끄럽게 진행하기보다는 슬퍼하는 것이 낫다고 하였다. 현재의 허례허식의 기원을 유학 특히, 그 대표격인 공자에서 찾고 그를 비난하는 것은 공자에 대한 무지함에서 온 것이다.공자는 통치자나 통치자의 자제를 의미하던 君子와 그 상대개념인 小人의 의미를 德의 유무의 차이로 보았다. 곧 덕에 밝은 자는 군자이고, 이익에 밝은 자는 소인이라는 것이다. 공자는 군자가 되기 위한 자기 수양을 강조하였고, 더 나아가 타인, 백성에 이르기까지 더불어 사는 사회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강조하였다. 이는 '자기자신에서 세계로' 즉 사회참여를 통하여 자신을 포함한 가족윤리로부터 사회적 윤리로의 확대를 의미한다.공자는 君君臣臣 父父子子의 가르침을 통해 자기 위상에 맞는 도리의 실천을 강조했다. 군군신신의 뜻은 임금은 예를 갖춰 신하에게 일을 맡겨야 하고 신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와 주어진 일을 수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일방적ㆍ맹목적인 하급자의 상급자에 대한 예가 아닌 것이다.孟子맹자는 공자의 사상을 구체화 시켰다. 공자가 人性에 대하여 논하지 않은 반면 맹자는 기본적으로 인성을 善하다고 하였고, 맹자는 이러한 인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낙관적인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본 학자였다. 맹자는 식욕과 성욕을 본성으로 보고 , 인성에는 善도 不善도 없다고 주장한 告子의 주장에 반대하였다. 맹자는 우물에 빠진 아이를 건져내고자 하는 마음을 예로 들어 결과적인 이해를 계산한 행동이 아니라 본래 선한 마음을 담재한 존재로서 인간을 파악했다. 이러한 본래의 德性 즉 도덕적 본성이 인간과 금수와 다른 점이라고 주장하고, 비록 생리적 욕구, 생물학적 본능이 같다하더라도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담재한 덕성이 인간의 존재이유라고 설파하였다. 덕성은 학습이나 경험에 의해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보편적으로 담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맹자의 이러한 性善說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이라 비판받을 수도 있으나,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러한 신뢰는 현대사회에서도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다. 맹자는 이상적 인간상으로서 부귀ㆍ빈천ㆍ무력에 굴하지 않는 大丈夫를 이상적 인간상으로 삼았다. 대장부가 되기 위한 방법으로 浩然之氣 즉, 커다란 도덕적 용기를 갖으라 하였다. 작은 일이라도 옳은 일을 하면 점차 쌓여 큰 일에서도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며 이것이 호연지기이다.맹자는 정치에 있어서는 仁에 의한 王道政治를 주장했다. 民本사상을 강조하여 정치의 근본을 백성이라 보고, 天下를 얻으려면 民心을 얻어야 함을 주장했다. 민심을 얻기 위해서는 백성에게 일정한 경제 생활을 마련해주고, 교육을 통하여 선천적으로 담재한 덕성을 살려내는 것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恒産이 없어도 恒心을 갖는 자들은 소수에 불과한 선비 (士)들 뿐이고, 일반 백성은 최소한의 경제 생활을 영위하지 않으면 다른 뜻을 품기 때문에 경제력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맹자가 경제책으로 제시한 것은 선공후사의 정전제였다. 다음으로 일차적으로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한 후 행할 것이 교육인데,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담재한 덕성을 스스로 깨우치게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맹자는 왕도정치의 이념을 왕 앞에서 당당히 설파한 적이 있다. 흔종의식 중 선왕이 제물로 바치려던 소가 불쌍하여 양으로 교체하려 하였다. 맹자는 왕에게 소가 아까워서 그러느냐고 물었고, 왕은 그런 것이 아니라 무죄자가 사형당하는 것 같아 불쌍해서 볼 수가 없다고 말을 했다. 이 말을 들은 맹자는 왕에게 금수에게도 느껴지는 차마 불쌍해서 할 수 없는 마음 즉 惻隱之心을 왜 백성에게 쓰지 않느냐며 독설을 퍼부었다.맹자는 통치자가 백성에 대한 배려를 망각하고 자신의 역할을 못한다면 그에게 더 이상 민심이 가지 않을 것이며, 천명도 머무르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러한 자를 죽이는 행위는 왕을 시해하는 것이 아니라 한낱 범부에 불과한 자를 살해하는 것이라 하였다. 이러한 맹자의 역성혁명의 과격함으로 인하여 한대에서 당 중기까지 '孟子'는 금서가 되기도 하였다.
    학교| 2002.12.23| 4페이지| 2,000원| 조회(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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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학] 역사학입문시험자료 평가C아쉬워요
    ♧ 서양문명의 본질서양인들은 양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거치면서 자신들의 문명에 대한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다. 오스왈드 스펭글러는 '서양의 몰락'에서 문명도 유기체처럼 탄생-성장-죽음의 성장주기가 있다고 상정하고, 제 1차 세계대전이 서양문명 붕괴의 시작점으로 보았다. 그는 유기체가 죽듯이 문명도 소멸될 것이라는 비관적 입장에 있었다. 아놀드 토인비도 '역사연구'에서 스펭글러와 비슷한 관점으로 문명을 유기체와 유사하게 보았다. 그는 문명의 몰락직전에 고난 및 혼란의 시대가 나타나 붕괴징조를 보이는데 세계대전이 그 징조라고 보았다. 토인비는 이 시기에 위기관리를 잘 하면 문명이 부활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렇듯 지식인을 중심으로 한 문명의 위기의식은 서양인들의 자기 성찰을 가져 왔다. 자기 성찰의 분위기가 팽배했던 1950년대에서 1960년대에 서양인들 스스로 자신들의 문명에 대한 반성과 회고가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문명의 본질이 무엇이고, 그것들의 관계는 어떠한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양문명의 본질이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라는 데 동의하고, 이들의 관계가 적대적이었기 때문에 충돌과 전쟁이 일어났으며, 평화공존으로 가기 위해서는 상호 협력ㆍ보완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에 대해 살펴보면, 먼저 헤브라이즘은 유대기독교적 전통으로부터 유래된 신중심의 사상이다. 헤브라이즘은 서양인에게 신에 의해 태어날 때부터 선악분별능력을 부여받았으므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함을 주입시켰다. 헤브라이즘은 인간의 자아ㆍ개체의 중요성을 인식시켜주고, 도덕적 자유, 내면적 자율성, 인간 내적 자유의 정신을 강조하였다. 헤브라이즘의 경전인 성경은 시간 개념의 중요성을 인식시켰고, 역사의식ㆍ뿌리의식을 고취시켰다. 또한 역사의 발전과정을 직선적 패턴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헤브라이즘은 후대의 사회계약사상에 영향을 미쳤으며, 헤브라이즘의 선민사상은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이 신에 의해 결정된다는 예 인간의 자아ㆍ개체의 중요성을 인식시켰고, 정치적 자유ㆍ외적 자유의 정신의 부여했다. 헬레니즘의 경전인 일리아드-오딧세이 등은 인간에게 공간의 중요성을 인식시켰으며, 역사의 발전과정을 순환적 패턴으로 이해하게 하였다.♤ 제1장 역사학은 무엇을 하며, 왜 필요한가?역사학은 과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조사ㆍ탐구하는 학문이다. 과거란 직ㆍ간접적으로 경험한 시간적으로 지나가 버린 모든 일을 말한다. 역사학에서는 인간의 과거에 중점을 두지만, 혹 인간에게 영향을 준 자연재해 등의 과거도 다룬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없어지는 과거를 연구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과거에 대한 유적이나 유물 등의 흔적을 통하여 과거의 사실에 접근하는데, 이처럼 간접적으로 과거를 인식하는 일은 어려우며 이것이 역사학의 난점이다. 역사학에 제기되는 문제를 살펴보면, 우선 실용주의의 영향으로 나타난 역사학의 효용성의 문제이다. 다음이 연구대상이 유동적이고 불확실한 역사학이 과연 학문으로서 존립할 수 있느냐는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자연과학처럼 객관적인 연구결과를 내기 어려운 역사학의 객관적 탐구가 가능한가 하는 문제이다. 역사의 효용성문제와 관련하여 과거를 확인함으로서 과거의 지식을 습득할 수 있고,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역사학 연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은 역사적 기원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더 나아가 역사적 수행자로서의 임무를 알게 됨으로 역사학은 필요하다. 또한 역사는 지식의 정보와 비판ㆍ추론의 훈련을 통하여 판단능력을 부여하며, 시간개념의 중요성을 인식시켜준다. 이는 일반교육의 바탕으로 인간 정신교육의 기초를 다진다는 측면에서도 역사학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제2장 역사란 무엇인가?역사의 어원을 살펴보면 그리스어, 독일어, 영어, 중국어 모두 '사건이나 이야기'의 개념이 들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역사의 개념은 세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사실자체를 의미한다. 여기서 '사실자체'란 과거에 있어서 인간 나타낼 수 있다.전체과거 - 인간의 과거 - 자료(사료): 역사가(연구)-일반인(수용)선택 수집ㆍ정리 역사인식 역사의식역사적 사실은 역사가의 주관과 다른 역사가의 지지, 사회에의 영향력에 의거하여 선택된다. 역사학에서 역사가는 일반인에게 사실을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제3장 역사연구의 대상은 무엇인가?역사가는 과거에 있어서 인간이 사회에 살면서 느끼고 말하고 생각하고 희구하고 행동한 일체의 것, 즉 인간의 언행을 역사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는 곧 '역사현상'이 연구대상이 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인간의 언행과 인간이 생활하는 환경(사회)과의 상호관계도 역사연구의 대상에 포함된다. 즉 역사연구의 대상은 과거의 사회에서 인간과 환경(사회)은 상호 어떤관계를 가졌는가를 알아내는려는 보다 폭넓고 다이내믹한 인류생활에 대한 종합적인 탐구라고 말할 수 있다.♤ 제5장 역사인식론과 역사의식이란 무엇인가?1. 역사인식론(역사방법론)역사가는 과거의 사건들 가운데서 관심이 있는 테마를 정하고, 그 테마와 관련된 사료를 수집ㆍ분류하여야 한다. 이 사료의 이해와 독해를 바탕으로 역사가는 쟁점이 되는 이슈를 찾고, 자신의 새로운 주장 즉, 가설을 고안하고 논문형식의 구상에 의해 서술하여야 한다. 역사인식론이란 이런 역사학의 목표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일련의 역사학의 연구방법론을 일컫는 말이다. 역사인식론은 시간과 공간이 따른 지적배경이나 사조에 의해 형성된다. 역사인식론의 구체적 예로 홉스봄을 들어보자. 영국의 역사가 홉스봄은 '19세기 영국의 노동귀족'이라는 논문에서 마르크스주의의 합리적 방법은 수용한 반면 비사실적인 모순은 거부하는 전체적 사회사의 입장을 나타냈다. 엥겔스와 레닌 등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영국에서 사회혁명과 급진적 사회주의 노동당이 발달하지 않은 이유를 노동자계급과 자본계급간의 야합에서 찾았다. 이에 대해 홉스봄은 그들의 주장이 이데올로기적 믿음에서 나온 오류라고 비판하였다. 그는 1840-1890년에 영국즉 노동귀족이 영국의 산업자본주의화에 부분적 책임이 있지만, 혁명으로 나타나는 과격성과 파괴성을 감소시켰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홉스봄의 새로운 역사인식론은 19세기 영국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혁명론을 극복하고 영국의 점진적인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적 온당성을 확립시켜주는데 크게 기여한 것이다.2. 역사의식역사의식은 전문 사가들의 역사인식론에 의해 만들어지는 일반인들의 결속의식ㆍ뿌리의식을 의미한다.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그들은 시간적ㆍ공간적 차원에서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의 변천과정을 살피고, 그 의미를 알아내려는 태도를 가진다. 둘째, 그들은 시공적 차원의 사건들을 각각 다르게 이해할지라도 개개인을 동떨어진 개체로가 아니라 개체들을 뛰어넘어 다른 집단들과의 일체감과 귀속감을 간과하지 않는다. 셋째, 그들은 비교적 객관적인 비판의식을 가진다. 넷째, 그들은 역사의 두 가지 속성인 지속과 변화에 대한 조화와 균형의 감각을 가진다. 다섯째, 카아의 말대로 과거의 빛을 통하여 현재를 바라보고, 현재의 빛을 통하여 과거를 바라보는 동시에 다시 미래를 전망하는 전체적이며 종합적인 조망을 가지게 된다.다음은 전문 사가의 역사인식론이 일반 사람들의 역사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서 터너를 통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미국의 역사가 터너는 '아메리카 역사에서 프론티어의 중요성'이라는 논문에서 기왕의 유럽문명의 파생ㆍ연장으로 바라보던 미국문명에 대한 시각에 반론을 제기했다. 그는 미국은 미국인들 스스로의 개척활동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미국의 민주주의도 그들이 아메리카 대륙의 땅을 일구어 나가는 체험적 과정에서 형성되었다고 보았다. 또한 프론티어 생활은 소위 아메리카니즘이라 불리는 미국의 지적 성격을 형성하는 데도 이바지했다고 주장했다. 아메리카로 이주한 사람들은 프론티어환경에 적응하면서 아메리카적 특성인 개인주의ㆍ평등주의ㆍ자립정신ㆍ실천적 생활양식 등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결국 아메리카 문명은 유럽문명을 뛰어넘은 새로운 차원의 새 문명이라는 것이다.가의 주관적 입장 주입이 불가피하다. 그러므로 역사학이 학문분야로 존립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방법을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역사가들은 대체로 두 가지의 방향으로 갈라졌다. 하나는 역사적 사실의 탐구에 초점을 두는 실증주의적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적 이념이나 사상의 탐구에 초점을 두는 관념주의적 입장이다. 실증주의적 역사학파는 역사학을 과학과 동일한 차원에서 다루려 하였고, 그 대표가 랑케였다. 랑케는 첫째, 역사가는 편견 없이 과거를 바라보아야 하며, 그것들이 실제 일어난대로 기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둘째, 각 시대나 국가는 시대정신에 의하여 지배된다고 했다. 사실의 객관성에 대한 랑케의 주장은 기독교적 사상을 내포한 것으로서, 역사가가 자신의 편견과 생각을 버려야만 역사에 대한 편견이나 당파성, 주관적 불균형을 없앤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랑케는 시대정신이 어떤 특정 기간을 지배하는 일련의 이념들로 시공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으로 보았고, 시대정신에 의해 역사의 필연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랑케의 의의는 사료의 공정성과 객관적 취급을 강조해 역사학의 학문적 위상을 높여주었다는 데 있다. 하지만 사실의 절대적 가치를 지나치게 중시해서 인간을 사실의 주인이 아닌 노예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이는 뛰어난 지식인이었던 액튼 경의 예로서 알 수 있다. 그는 완전한 사료수집과 정리에 너무 많은 힘을 쏟은 나머지 저서를 하나도 쓰지 못하고, 사료뭉치만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관념론적 역사학자들(신이상주의 역사학)은 자연과학의 실증주의적인 인식방법을 거부하고 인간정신을 근간으로하는 역사인식 방법을 중요시했다. 이들은 사실에 의해 정신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정신에 의해 사실이나 사건이 야기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1)딜타이(생과 역사의 관계 강조)는 인간의 정신현상이 역사의식을 통하여 객관적으로 나타나 있는 것이 생이라고 보고, 역사현상의 모든 사건이나 문제들은 인간의 생과 연루되어 일어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정신과웠다.
    학교| 2002.12.23| 6페이지| 2,000원| 조회(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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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학] 북한학 시험자료
    ◎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선위원회1) 지역원리 :행정구역에 맞추어 당을 편성2) 생산원리: 모든 조직체에 당조직이 들어가는 생산원리3) 운영원리: 민주주의 중앙집권제-민주집중제(Democratic Centralism)※ 북한 당 조직의 운영원리ㆍ북한 헌법 11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민주집중제에 의해 운영된다고 명시됨.ㆍ기본적 운영원리: 민주집중제(북한에서는 '민주주의중앙집권제'라 명명)- 북한은 민주주의와 중앙집권제의 효율적 결합이라 주장. 그러나 형식적으로 다수의 의견을 묻지만 결국 통치자(수령)의 주관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는 문제점을 가진다.ㆍ당 조직 운영의 4대 원칙:① 조직우위의 원칙: 모든 구성원은 조직의 지시에 복종해야 한다.② 다수 지배의 원칙: 다수결 원칙, 소수는 다수에게 복종해야 한다.③ 상위 당 우위의 원칙: 하급 당은 상급 당에 복종해야 한다.④ 중앙지배의 원칙: 당 조직은 당 중앙에 복종해야 한다.◎ 에 대하여란 타도제국주의 동맹의 약칭. 음가는 [트드].북한은 타도제국주의 동맹을 최초의 공산주의 혁명조직으로 간주하며, 1926년 10월 17일 탄생하여 1945년 10월 10일 완성되었다고 보고 있다. 1912년 출생한 김일성은 1926년 만주의 화성의숙을 다니다 길림성으로 이주하여 육문중학교를 다녔다. 북한은 이 기간에 김일성이 청년공산당을 조직하여 일제에 대항해 '타도제국주의 동맹'을 결성했다고 주장하며, 또한 그 주도자를 14살의 김일성이라 하여 그를 부각시켜 왔다. 북한에서는 타도제국주의 동맹을 조선노동당의 뿌리라 주장하여 북한사에서도 1926년 10월 17일을 '현대'의 기점으로 삼을 정도이다. 문헌상에서는 1945년 해방직후 동아일보 만주지국장이었던 최형우의 에 "김일성이 1926년 10월에 타도제국주의 동맹을 만들었다"는 기사가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와전된 것을 기정사실화 했던 것으로 보이고, 실제 1929년에 조직된 것으로 보이는 타도제국주의 동맹에 김일성이 가담했는지 여부가 불확실하고, 가담했더라도 현실적인 나이를 감안하여 잔심부름 정도나 하지 않았을까 한다. 한편 북한에서는 가 1968년 『민족의 태양 김일성 전기』에서 처음 등장하며, 이후 여러 문서에서 계속 나타난다. 가 언급되기 시작한 1968년을 주목해보면 의 지속적 사용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1967년에 김일성이 수령제를 구축하면서 자신의 반대세력이나 정적을 모두 숙청한 이듬해가 1968년이다. 곧 진실을 알고 있던 기존의 김일성 반대세력이 모두 제거되었기 때문에 김일성 유일체제를 구축해가는 과정의 일환으로 와 김일성을 부각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주체사상1. 주체사상의 등장 배경 (cf> 역사문화적 배경도 간과할 수는 없으나 일단 논외로 한다...)1) 국제환경적 배경ㆍ1953년 스탈린 사망 후 흐루시초프 집권① 소련공산당 제2차 노동자대회에서 흐루시초프 스탈린 강력 비판(개인숭배, 스탈린주의)⇒ 스탈린주의를 수용한 위성국가에 큰 파장, 리틀 스탈린이라 불리던 김일성에도 큰 영향② 1950년대의 경제적 성장과 계급간 투쟁의 감소로 흐루시초프는 소련이 공산주의의 초입에 들어섰다고 판단 → 흐루시초프는 계급갈등으로 역사가 발전한다는 마르크스ㆍ레닌주의의 유물론적 변증법에 수정을 가해 조화의 필요성도 강조하기 시작 → 더 나아가 동구와 서구의 평화공존을 역설⇒ 공산주의국가의 양대 세력인 중국과의 이념적 마찰 야기, 1960년 중국은 소련과의 관계 악화를 밝혀 중ㆍ소 분쟁이 표면화- 국제정세에 영향을 받은 북한은 1955년 12월 주체사상을 당 정책으로 선언,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북한ㆍ김일성의 입장은 '주체' 곧 중립의 표방밖에 없었기 때문2) 국내정치적 요인ㆍ스탈린 사후 흐루시초프의 새로운 경향에 영향받은 북한 내부에 김일성에 대한 비판세력 형성, 전후 파벌형성으로 인한 내부권력투쟁 발생(소련파-소련식, 연안파-중국식, 국내파-원리적 MㆍL주의, 김일성-현실적 주체)⇒ 김일성은 도전세력을 제압ㆍ비판하는 명분 혹은 이론적 무기로서 주체를 내세움2. 주체사상의 전개1955. 12 당 선전선동자대회에서 '주체'를 당 정책으로 공식 선언(60. 5 『김일성선집』에 연설문 활자화)·주체사상의 전개1963. 10: '주체적 사상'이란 용어 사용 시작, 이후 김일성 해외 방문, 논문 등에 언급1965. 10: '주체사상'이 언급되는 논문 등장1967. 12: 당 지배 이념의 의미를 지칭하는 것으로 '주체사상'이 사용되기 시작1970. 11: 제5차 당대회의 당 규약 개정: 당의 공식 이데올로기 → MㆍL주의와 주체사상1972. 12: 7ㆍ4 남북공동성명, 박정희의 10월 유신의 영향→ 사회주의 헌법개정: 김일성 직위를 '수상'에서 '주석'으로 바꾸고 MㆍL주의를 조선의 현실에 맞게 창조적으로 적용한 주체사상을 당 기본원리로 삼는다고 밝혀 본래 MㆍL 주의를 지배이데올로기에서 제외시킴.이후 70년대: 김정일의 지위 향상 및 후계자 체제구축,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격상시키려는 움직임, 전 사회의 김일성주의화, 주체주의화1980. 10: 제6차 당대회에서 현행 당 규약으로 수정, 조선노동당은 김일성의 주체사상, 혁명사상에 의해 주도된다고 하여 MㆍL주의로부터 완전 독립함을 선언1982. 3: 김정일 『주체사상에 관하여』라는 논문 발표→ 1955년부터 시작된 주체사상의 정립을 일단락cf> 86. 7: 사회정치적 생명체론 - 생물적 생명 외 수령이 주는 정치적 생명이 있음을 주장89: 우리민족 제일주의→조선민족제일주의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① 수령 ② 주체사상 ③ 조선노동당 ④ 우리식 사회주의가 있기 때문에...3. 주체사상의 내용1) 철학적 원리: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주체사상은 사람 중심의 철학사상이며, 사람의 속성은 자주성 ㆍ창조성ㆍ의식성이다.2) 사회역사 원리: 역사발전의 주체는 인민 대중, 주체사상은 인민 대중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에 적합한 사상이다.3) 지도적 원칙① 자주적 입장 견지: 4自노선ㆍ사상에서의 주체ㆍ정치(외교)에서의 자주: 내부 권력투쟁과 소련의 정책노선 변경이 배경.사회주의 국가들은 모두 평등, 큰 나라 작은 나라가 있을 수 없다.ㆍ경제에서의 자립: 경제의존은 정치의존으로 이어진다고 하여 3개년 계획, 5개년 계획 등을 수립 시행. 현실적으로 중국이나 소련의 경제원조가 힘들었던 시기ㆍ국방에서의 자위: 61년 5ㆍ16쿠데타와 박정희정권의 반공노선, 62년 쿠바혁명, 미사일 사건, 중국ㆍ인 도 국경선사건에서 소련의 중립선언의 영향을 받아 66년부터 경제ㆍ국방 병진노선② 창조적 방법 구현: 인민 대중에 의거하는 방법(계급노선+군중노선), 실정에 맞게 하는 방법③ 사상은 기본으로 틀어쥘 것: 사상개조 선행, 정치 사업 우선 실시 강조4. 주체사상에 대한 비판① 개인 우상화, 김일성의 교주화를 합리화, 정당화② 공산주의와 관련 없는 외국 혐오의 민족주의사상에 불과③ 독창성 결여, 어록과 교시 중심의 정치적 교화를 의도, 철학적 개념화가 이루어지지 않음④ ML주의가 북한의 특수한 현실에 어떻게 창조적으로 적용되었는가에 대한 설명 부재⑤ 대중확보와 대중동원을 위한 의식화의 교리일 뿐⑥ 실제로 북한 내 참된 주체적 인간, 개별적ㆍ자주적ㆍ능동적 인간이 부재◎ 통일을 해야하는 이유① 전쟁의 공포에서 해방, 동족 상잔의 공포·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② 이산 가족에 대한 인도적 배려③ 북한동포의 기아문제, 인권탄압문제, 경제적 빈곤, 정치적 속박의 해소차원④ 과도한 지출, 소모적인 국방예산 낭비해소⑤ 전 인류의 평화에 대한 기여cf> 세계에서 가장 늦은 통일인 만큼 가장 아름답게 해야한다. 햇볕정책의 기조는 사실상의 통일→한반도의 냉전구도 해체, 실질적 화해◎ 북한의 대남 통일정책ㆍ북한은 '통일'에 '혁명'의 개념을 덧붙여 사용(先남조선 혁명, 後조국통일)⇒ 통일의 기본구도는 전조선 혁명, 민주기지인 북한의 지원을 통한 남조선 혁명 완수 목표ㆍ북한의 대남 시각: 남한을 미제에 의해 침탈된 식민지로 인식ex> 표현- 70년대: 식민지 반(半) 봉건사회80년대: 식민지 반 자본주의사회, 올림픽 이후: 신 식민지 반 자본주의사회신 식민지: 경제, 문화 등을 간접적ㆍ우회적으로 다스리는 통치방식으로 규정ㆍ남한의 ① 미제, 반동 지주ㆍ자본가 → 타도 대상② 노동자ㆍ농민 + 인텔리ㆍ청년 → 전략적 제휴 대상⇒ 반(反)미 반(反)봉건(자본주의)을 통한 민족해방ㆍ인민민주주의 혁명 완수ㆍ1964년 3대 혁명역량 강화론① 북조선 혁명역량의 강화② 남조선 혁명역량의 강화 ⇒ 남조선 혁명과 통일의 개념이 병합되어 있음을 나타냄③ 국제 혁명역량의 강화cf> 북한이 주장하는 통일의 방법① 평화적 방법: 남조선의 각성 시(북한 통일 방안 수용 시)ㆍ남조선 혁명의 성공 시ㆍ남조선 중립 시② 비평화적 방법: 미국이 세계전쟁에 휘말려 한반도에 신경을 쓸 수 없을 때ㆍ미국이 북침할 때ㆍ남조 선 인민이 지원을 요청할 때ㆍ남조선 혁명과 조국 통일의 공통점과 차이점공통점: ① 전 조선 혁명에 기여② 반미ㆍ반 제국주의③ 지도적 지침으로 주체사상을 사용남조선 혁명조국 통일주체남한인민남북 양자범위남조선남북 전체방법폭력과 민중 봉기평화적 합작절차차이점:◎ 북한의 연방제ㆍ60년대: 김일성의 광복 15주년 행사(1960. 8. 14) 연설에서 '남북연방제' 처음으로 언급
    학교| 2002.12.23| 4페이지| 2,000원| 조회(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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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대학] 세계대학의 이해 시험자료
    1. 시카고대학1) 카먼 코어: 카먼 코어란 시카고대학에서 실시하는 강도 높은 교양교육을 말한다. 현대사회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므로 대학 측은 학생들에게 전공이외의 타 분야에 대한 중요성을 이해시키고 전문지식을 학습시키기 위해 카먼 코어를 운영하고 있다.2. 옥스퍼드대학2) 유니온 디베이트: 유니온 디베이트란 옥스퍼드대학의 상징으로 학생회가 중심이 되어 진행되는 토론회를 말한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권위가 있고, 토론의 결과는 영국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친다. 토론 시의 예의와 상대방 존중, 공정한 태도는 학생들에게 신사도를 깨우치고, 넓은 안목을 갖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3) 칼리지제도: 옥스퍼드대학에서 실시되는 제도로서, 35개의 칼리지가 각각 별도의 기숙사제ㆍ튜터제ㆍ학생관리제를 갖고, 작은 종합대학의 개념으로 운영되는 것을 가리킨다.4) 튜터제: 튜터제는 옥스퍼드대학에서 모든 수업의 기본을 이룬다. 학생은 입학과 동시에 개인전담 교수인 튜터를 배정받고, 3년 간 튜터와 대면하며 개인지도와 생활지도를 받는다. 튜터제는 학생이 부과받은 과제에 대한 에세이를 발표하면, 담당교수가 지도를 해 주고 다음 과제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튜터제는 학생에게 남을 의식하지 않게 하고 논리적 사고방식과 발표력을 심어주고 학문에의 능동적 접근을 가능케 해준다는 측면에서 장점을 가진다.3. 하바드대학5) 과목제: 하바드는 학점제 대신 과묵제로 운영되며 학생들은 4년간 32과목을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다.6) 도서관: 하바드의 도서관이 보유하고 있는 장서는 1050만 권으로 미국 국회도서관과 시립도서관에 이어 3번째 규모이며 대학도서관으로서는 세계 제일의 도서관이다. 하바드의 도서관 중 와이드너 도서관은 중앙도서관으로 타이타닉 호를 타고가다 숨진 아들 와이드너를 기리기 위해 와이드너의 어머니가 재산을 기증하여 설립되었다.7) 테뉴어: 대학 교수의 종신 재직권을 뜻한다. 하바드에서 교수는 처음에는 2, 3년 간 계약을 맺고 강의를 하는데 연구 성과가 없으면 계약 연장을 하지 못하며 대내외적으로 업적을 쌓아야 평생 강의할 수 있는 테뉴어 자격을 받는다.4. 동경대학8) 츠바라사건: 1967년 동경대학 의과대학 수련의들이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것이 과격파 운동권 학생이 가담함으로서 교수를 폭행하고 방화를 하는 등의 폭력시위로 변모했다. 이 사건은 주동자인 츠바라의 이름을 빌려 소위 츠바라사건으로 불리는데, 폭력시위로 동경대학은 1968년 신입생을 뽑지 못하고 전 학생이 유급을 당하는 사태를 맞이했다. 이때 불탄 야스다 강당을 현재에도 보수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5. 소르본느대학9) 학부과정: 1, 2학년은 더그과정으로 3학년은 리상스과정으로 불리는데 더그과정에 리상스과정으로 진학 시 40% 정도가 낙제한다.10) 그랑제꼴: 이론 중심의 대학과 달리 그랑제꼴은 실무적 전문 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운영된다. 바칼로레아 시험을 치른 후 2년 간 별도의 준비교육을 거친 후 자원하는 그랑제꼴 자체의 입학시험을 치러야 입학이 가능하다.6. 하이델베르크대학11) 세나트: 독일에서 교수에 임용되기 위해서는 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한 후 지원한 대학에서 면접과 심사를 거쳐야만 하는데, 이런 교수의 자질과 능력을 평가하는 대학의 교수 채용위원회를 세나트라 한다.12) 샤인: 하이델베르크에서 세미나 과정을 이수하면 얻는 것이 샤인이라는 이수증을 준다. 샤인 16개를 모아야 졸업이 가능한다.7. MIT13) 연구활동: MIT는 대학 측에서 연구비를 지원하지 않고 테뉴어를 받지 못하면 월급조차 받지 못하기 때문에 교수는 연구실적을 가지고 정부기관이나 기업체에서 지원금을 확보해야 한다.14) 링컨연구소: 자유롭게 개방된 MIT내에서 유독 폐쇄적인 곳이며, 국방분야에서 첨병역할을 하기 때문에 재정의 30%가 지원될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진다.8. UC버클리15) 로렌스 버클리 연구소: 핵연구, 원자폭탄제조, 새로운 원소발견의 성과를 가지고 있으며 2억 5천만 달러의 연구비와 박사800명을 포함하여 3천명의 연구진을 가진 최상의 실험, 실습 장소이다.9. 스탠포드대학16) 서클식 기숙사: 서클과 기숙사의 장점을 혼합한 방식으로 기숙사 생활 자체가 학습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학교| 2002.12.23| 3페이지| 2,000원| 조회(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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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학] 장미와 유럽문화
    장미와 유럽문화문과대학 사학과 4학년960331 허석1. 들어가는 말유럽에 있어 장미의 존재는 각별하다. 설문조사를 통해 보면 유럽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은 장미인 것으로 나타나고 영국 등과 같은 나라는 장미를 국화(國花)로 삼기도 한다. 유럽 각 국에는 장미와 관련된 신화, 설화 등이 숱하게 회자되며, 장미의 유래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 속담과 민담 등도 다수 전해진다. 시, 소설, 동화 등의 문학장르와 회화, 조각, 음악 등 모든 예술분야에서 장미는 예술가들의 단골 소재이며, 예술가들이 아닌 일반 대중에게도 친숙하게 다가오는 대상이다. 이처럼 장미가 인기 있는 이유는 장미의 이미지가 상징하는 것이 매우 다채롭기 때문이다. 장미자체는 짙은 향기, 가시, 붉은 색상으로 사랑, 미, 정열, 유혹, 관능, 비밀, 순교, 생명 등 아주 다양한 것들을 상징한다. 여기에 장미의 색깔과 꽃잎 수, 장미 송이 수에 따른 상징까지 더해지면 장미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거의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장미가 포함되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다양한 것들은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며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장미와 장미가 갖고 있는 다양한 이미지를 통해 유럽문화가 갖고 있는 특성을 찾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예술인뿐만 아니라 보통 유럽인의 일반적인 생활 전반에서도 항상 숨쉬고 있는 장미를 살펴보면 유럽문화에 대한 접근이 한층 수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장미시인이라 일컬어지는 릴케와 장미와의 연관성을 살펴보고, 그의 작품 중 장미를 가장 깊게 표현하고 있는 시 Das Rosen-Innere와 또 다른 유럽의 장미 시를 통해 유럽문화에 있어 장미가 가지는 의미를 살펴보기로 하겠다.2. 장미 시1) 릴케의 장미 시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결혼생활이 원만하지 못했던 부모 밑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요제프는 말단 공무원이었던 반면, 중상류층의 상인이자 황제 고문관의 딸이었던 어머니는 꽤 까다로운 여인으로, 늘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과 결혼했다는 느낌진학을 위한 예비 학교)에서 학업을 마쳤다. 학교를 마칠 무렵 이미 시집 (1894)를 출판했고, 그가 시인의 길을 걷게 되리라는 데 아무런 의심을 품지 않았다. 1895년 프라하의 카렐대학교에 입학하여 독일문학과 미술사 과정에 등록했으며 자신의 선택에 실망한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1학기 동안 법학강의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학문에 열중할 수 없었기 때문에 1896년 학교를 떠나서 독일의 뮌헨으로 가게 되었고 예술적이고 코스모폴리탄적인 이 도시에 강한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내면적 욕구에 따라 끊임없이 방랑하면서, 자신의 시각이 정당하다는 것을 남에게 설득시킬 줄 아는 예술가로서의 성숙된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게다가 러시아·프랑스·스페인·오스트리아·스위스·이탈리아 등이 펼쳐져 있는 유럽 대륙 자체의 거대한 공간과 다양성은 충분히 그런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물리적 배경이 되었다.릴케의 문학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 상징체를 말하라고 한다면 장미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시를 살펴보면 복합어 형식으로 쓰여진 것을 제외하면 순수한 장미 라는 말이 대략 250번 정도 등장한다. 이로 인해 그는 장미의 시인이라 불리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상징인 이 꽃이 릴케의 문학의 핵심이 된 것은 릴케의 성장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릴케의 어머니는 낳자마자 죽은 딸을 잊지 못하여 자신의 상실감을 메어줄 대용물로 릴케를 키운다. 여자 옷을 입히고, 머리를 땋아주고, 소꿉장난을 하게 하며 남자아이들과 노는 것마저 금지시킨다. 여자 이름인 마리아 라는 영세명을 받게 된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또한 그녀는 1900년 자신의 이름으로 이란 소책자를 낼 정도로 활동적이었고, 정신질환에 가까울 정도로 상류사회를 동경했다. 이러한 어머니는 상류사회에 다가가고 싶은 열망으로 릴케를 군사학교에 보낸 것이다. 그녀에 의해 릴케는 원치 않았던 군사학교를 다녀야 했고, 감수성을 억압받아야 했다. 이러한 유년시절에 생겨난 억눌린 감수성은 시인이 된 후에 폭발한다. 시 뮈좃에서 후기의 완전한 고독 가운데 장미는 릴케에게 본질적으로 심오한 의미의 형상체였다. 그리하여 그는 장미를 소재로 한 마지막 말들을 그의 무덤에 장식하기도 하였다.이미 천사의 형상을 통해서 구현된 세계내공간(Weltinnenraum) 은 릴케가 가장 가깝게 여기던 장미를 통해서 더욱 인상적으로 표현된다. 장미는 섬세하고 현실적인 본질의 상징이며, 관조적인 것 을 내면성과 연결하는 영혼화의 표징이다. 세계내공간은 전일(All-Einheit) 의 공간이다. 거기에는 즉 안과 밖, 주체와 객체, 이쪽과 저쪽, 감각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신과 세계, 사랑과 증오, 삶과 죽음 등 모든 모순과 대립 상태에서 지양된다. 모든 인간 감정의 흐름에서 해방된 순수 공간이다. 이런 조건하에 장미는 자연, 예술, 삶, 죽음, 사랑을 총괄하는 핵심 상이 되는 것이다.그러면 다음으로 릴케의 작품 중에서 장미를 통한 성찰이 깊게 베여있는 시라고 인정받는 Das Rosen-Innere를 살펴보기로 한다.Das Rosen-Innere{Wo ist zu diesem Innenein Außen ? Auf welches Wehlegt man solches Linnen ?Welche Himmel spiegeln sich drinnenin dem Binnenseedieser offenen Rosen,dieser sorglosen, sieh :wie sie lose im Losenliegen, als konnte nieeine zitternde Hand sie verschutten.Sie konnen sich selber kaumhalten; viele ließensich uberfullen und fließenuber von Innenraumin die Tage, die immervoller und voller sich schließen,bis der ganze Sommer ein Zimmerwird, ein Zimmer in einem Traum.이 안 폭에 맞을바깥 폭은 어디 있을까? 얼간과 체험적 내면 세계 사이에는 대립을 통해서만 체험될 수 있는 내면이 어떤 감정 공간과 구체적으로 접촉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다 내포하고 있는 총체성으로만 서술된다. 즉 더 이상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제일 바깥 가장자리에 장미꽃이 피어서 장미가 몸을 지탱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를 위험 속에 내맡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삶에 요청되는 하나의 구원이 장미상징의 객관적 형식 속에 발견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장미가 내면을 가지고 있다기보다 장미 자체가 전체로서 하나의 내면으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꽃잎에 무한히 열려있는 상태, 다시 말해서 한 내면공간이 한 외면공간과 구별될 수 있는 표면을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장미의 내면과 외면의 관계는 공간적으로 파악될 수 없다. 활짝 열린 상태는 근심 없는 영역을 의미한다. 장미의 내면은 장미 그 자체가 내면의 존재라고 인식될 때에만 그 의미가 있다.장미의 내면 속에 넓은 호수가 있고 그로 인해 풍요한 그 내면은 넘쳐흘러서 충만해 가는 꿈의 방을 이룬다. 릴케의 열려 있음(Offenheit)"에서는 내면과 외면의 대립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하나의 세계만 있는 것이다. 그것은 순수한 모순의 실현, 장미 자신이 자기 목적이 된다는 것, 장미꽃이 피어나는 것은 밖을, 외부세계를 보려는 내면세계가 열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에서도 많은 꽃잎들이 저절로 넘쳐흘러 외부세계를 만나지 않는다면, 장미의 내면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대립은 그 상응하는 것이 존재할 때에만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무상무념의 상태, 모든 것을 초월한 상태, 無가 아니라 空인 모든 것을 비워낸 상태, 하나의 세계를 추구하던 릴케는 자신이 사랑하는 장미꽃을 갈등에 대입시켜 갈등을 풀어보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시에는 그의 삶과 문학을 상징하듯 무에서 피어나는 장미가 내면과 외면을 중재하고 있으며, 거리감을 유지하는 시인의 원근법적 시각, 그리고 관찰된 것이 본질과 만나도록 윤곽을 부여하는 창문 모티rnful pride,Mournful that no new wonder may betide,Troy passed away in one high funeral gleam,And Usna's children died.We and the labouring world are passing by:Amid men's souls, that waver and give placeLike the pale waters in their wintry race,Under the passing stars, foam of the sky,Lives on this lonely face.Bow down, archangels, in your dim abode:Before you were, or any hearts to beat,Weary and kind one lingered by His seat;He made the world to be a grassy roadBefore her wandering feet.아름다움이란 꿈같이 덧없다는 걸 누가 마음에 담았던가?다시는 새로이 생겨나지 않았기에 슬픈,도도한 비애를 지닌, 저 빨간 입술 때문에트로이는 높이 타오르는 화장의 섬광 속에 쓰러졌고우스나의 아들들도 죽었다.우리들과 수고하는 세상도 사라져가고,겨울 흐름 속의 파리한 물결처럼출렁이며 흘러 가버리는 인간의 혼 속에,하나의 물거품, 흐르는 별들 밑에서이 외로운 얼굴 영원히 살아 남으리.머리를 숙여라. 어둠 속의 천사들이여그대들은 어떠한 생명도 있기 전에피로하고 친절한 한 분이 신의 자리 옆에서 머뭇거렸고,이 세상은 푸른 풀밭 길로 만들어졌다그녀의 해매는 발길 앞에.예츠의 시는 19세기 후반 낭만주의 시대의 정감을 대표한다. 초기에는 아일랜드의 요정이나 영웅들의 전설, 상징주의 시들을 통해 현실의 저쪽에 대한 동경을 노래했다. 신비주의에 대한 관심은 그를 문학적으로 크게 발전시켜, 역사와 인간에 대한 신지학적 이해를 종합 체계화시킨다. 이 시에는 철학적이며 웅변적인 모습으로 강력한 힘을 내재하고 있는 있다.
    인문/어학| 2002.12.31| 7페이지| 2,000원| 조회(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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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20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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