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독감 (鳥類毒感, pathogenic avian influenza)1.조류독감의 정의닭·칠면조와 같은 가금(家禽))류와 야생 조류에 감염되는 급성 바이러스성 전염병으로, 주로 닭과 칠면조 등 가금류에 많은 해를 입힌다. 병원성(病原性)에 따라 고(高)병원성)·약(弱)병원성·비(非)병원성 3종류로 구분되며, 이 가운데 고병원성은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 리스트 A등급으로, 한국에서는 제1종 가축전염병으로 분류하고 있다. 가금 인플루엔자는 조류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Avian influenzal virus type A : AIV type A) 감염에 의한 가금류의 전염병을 말한다.자연생태계의 야생조류, 특히 청둥오리, 가창오리 등의 물새류에는 모든 종류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다양하게 감염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비병원성이거나 약병원성 바이러스이다. 그 중 일부는 고병원성 바이러스로서 야생조류에는 전혀 병을 일으키지 않지만 닭이나 칠면조에 감염되면 70%이상 폐사시키는 고병원성 인플루엔자를 일으킬 수 있다.이렇듯 감염되는 숙주에 따라 병원성에 큰 차이를 보이는데, 예를 들어 닭에서는 100%의 치사율을 보이는 바이러스라 하더라도 오리에게는 전혀 병원성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주로 닭과 칠면조에 피해를 주는 급성 바이러스성 전염병으로 오리(집오리, 철새), 거위, 메추리 등은 임상 증상은 잘 나타나지 않으면서 바이러스를 분변으로 배출한다. 고병원성 가금인플루엔자가 발생 한 경우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의 대부분 국가들이 살처분 하고 있으며 발생국가에서는 양계산물을 수출 할 수 없다.2.조류독감의 원인체조류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RNA바이러스로 이 바이러스는 혈청형이 다양한 것이 특징이며, 혈청형이 다르면 서로 교차방어가 되지 않는다. 현재 Nucleoprotein 및 matrix antigen의 항원성에 따라 Type A, B, C로 크게 나누며 동물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모두Type A 에 속한다.) 다시 Type A 는 바이러스의 한다. 폐사율도 병원성에 따라 0~100%로 다양하며 산란율도 40%∼50% 저하 또는 산란중지로 다양하다. 국내에서 발생되는 가금 인플루엔자는 약병원성이며 주로 산란율 감소가 특징적인 임상증상이다.산란율 감소 때는 무각 또는 연각란이 관찰되며 이외에 활력 저하, 사료섭취 감소와 쇠약, 육수나 벼슬에 청색증, 머리와 안면부에 부종, 그리고 깃털을 세우고 한곳에 모이는 행동이 관찰된다. 감염 후 회복된 닭은 신경증상을 보이기도 하지만 특이적인 임상증상은 아니다.뉴캐슬병(Newcastle disease)), 전염성 기관지염, 전염성 후두기관염, 미코플라스마(Mycoplasmatales) 감염증 등과의 감별이 중요하다. 산란율 감소는 1-2주 사이에 40%∼50%정도까지 감소할 수 있으며, 심한경우는 산란정지를 보이기도 한다. 산란율 회복의 특이한 점은 보통 산란율 감소가 시작된 이후 2주일 후부터 나타나며 한 달이 지나면 거의 회복된다. 폐사율은 매우 다양하여, 질병이 있는지 모를 정도로 폐사가 없는 경우부터 5-10% 폐사율을 보이는 계군까지 있으며, 산란 전에 감염된 닭에서는 임상증상이 관찰되지 않는 예가 많다. 백색산란계나 육용종계는 갈색산란계보다 평균폐사율이 더 높다.⑵사람의 주요증상조류독감에 감염된 환자는 일반적으로 고열, 기침, 근육통과 같은 독감에 걸렸을 때와 유사한 증세를 보이며 폐렴, 급성 호흡기 증상 등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합병증을 동반하기도 하며 유행성 결막염과 같이 충혈 된 눈의 상태를 보이기도 한다.4. 조류독감의 발생⑴홍콩사례)?발생 개요초발환자 : 3세 소아(1997.5 발병)로 발병전에는 건강하였으며, 5월 16일부터 발열, 인후통, 복통이 생겨 입원한 후, 급격하게 상태가 악화되어 급성호흡부전증, 폐기흉, 간 및 신부전으로 사망하였음. 환아에서 비정형 조류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가 분리되었으며, 세계보건기구 협력실험실로 의뢰한 결과 8월에 조류인플루엔자 A/H5N1로 밝혀짐. 환아는 학교에서 조류와 접촉한 적이 있었고, 조류인플루 바이러스 근원1996년 중국 광동지역에서 있었던 유행시 거위에서 분리된 A/goose/ Guangdong/1/96(H5N1)의 Hemagglutinin 유전자와 유사하며, 다른 유전자는 일치하지 않았으며, 홍콩 지역의 메추라기의 H9N2, 물오리의 H6N1바이러스와 유사성을 보여, 순환하고 있는 여러 종류의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유전자 재조합에 의해 출현한 것으로 추정함임상적 증상은 무증상, 경한 호흡기증상, 심한 폐렴, 다기관 부전 등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임-18명중 7명은 경증을 보여 완전 회복되었으며, 11명은 폐렴이 발생하였고 이중 6명이 사망함?치명률 : 33.3%(18명중 6명 사망)12세 이하 : 1/9명 사망13세 이상 : 5/9명 사망※ 무증상ㆍ 경증 감염자에 대해 파악을 할 수 없어 정확한 치명률을 계산할 수 없었음?증상초기증상 : 발열, 두통, 전신쇠약, 근육통, 인후통, 기침, 콧물 등을 보였으며, 일부 환자는 결막염, 위장관 증상을 호소함1단계 : 무증상 또는 경증 호흡기 증상, 발열을 보임2단계 : 심한 폐렴 소견, 혈액학적, 신, 간기능 이상소견을 보임3단계 : 급성호흡부전증, 다기관 부전소견을 보이며 사망※ 입원후 며칠만에 기계호흡이 필요할 정도로 폐렴환자의 상태가 급속하게 악화됨? 중증 환자의 특성 (총 11명)중증 환자의 특성 (총 11명) : 림프구감소증 (11명/11명), 범혈구감소증 (2명/11명), 간효소수치 증가 (10명/11명), 신기증 장애 소견 (4명/11명), 혈액응고시간 증가?세계적인 조류인플루엔자 범유행시세계적인 조류인플루엔자 범유행시에는 이차적인 세균합병증이 주된 사망원인이었는데, 이번 유행에서는 다른 양상을 보여 이차적인 세균합병증을 보인 환자는 없었다.⑵전파되는 조류독감세계적으로 1930년대 이후 발생하지 않다가, 1983년 벨기에·프랑스 등 유럽에서 발생하기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세계 각국에서 약병원성을 비롯한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발생하고 있다. 고병원성의 경우 인간에게도 감염되어 1997년 사람에게 감염할 수 있는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출현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그림 2 홍콩조류독감전염흐름도② 직접 전파조류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중간동물에서의 유전자 재조합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접 사람에게로 전파되는 경우로, 1997년 홍콩에서 조류의 H5N1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직접 감염하여 6명이 사망한 경우가 좋은 예이다.(2) 사람끼리의 감염2003년 4월 네덜란드에서 조류 독감이 유행하여 80여명이 감염되었고, 이 중 한명이 사망했다. 홍콩의 경우와 다른 점은 감염자 가운데 일부는 조류가 아닌 인간과의 접촉을 통해서 2차 감염이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그 후 네덜란드의 조류 독감은 인근 벨기에에 까지 침범하여 수천 마리의 새들을 감염시켰고, 벨기에 정부는 이를 비둘기의 소행으로 간주하고 대중 스포츠인 비둘기 경주를 금지시킨 바 있다.6. 조류독감이 위험한 이유그림 3 사육가금 및 야생조류에서 H5N1 형이 확인된 지역('03년말 ~ '06.6 )가금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혈청형이 사람보다 복잡?다양하고, 서로 교차면역이 되지 않거나 약하여 다른 혈청형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을 막을 수 없고 또한 변이가 잘 되기 때문에 효과적인 예방약 개발이나 생독백신 사용은 극히 위험한데, 이는 백신주와 야외 유행주간의 유전자 재조합에 의한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직까지 조류독감방역은 백신보다는 차단방역 등을 통한 유입방지가 최선의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또한 지금까지 병든 조류와 접촉만 피하면 걸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알려졌던 조류독감이 변이를 하면서 사람들끼리도 전염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WHO관계자에 따르면 아직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인간에 전염된 케이스는 극히 희귀하지만 (96년 영국 - H7N7형 1명, 97년 홍콩조류독감(H5N1) - 18명 감염 중 6명 사망, 03년 홍콩 - 같은 유형으로 2명 감염 중 1명 숨짐 등) 돌연변이를 통해 동물 대 인간, 또는 인간 대 인간 감염이력을 늘려가고 있다.이는 2003년 태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를 휩쓸었던 바이러스와 동일형이다. 이 시기는 사람들이 독감에 걸리기 쉬운 계절로 현재 과학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스와핑 현상으로 새로운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탄생해 독감 바이러스처럼 사람에게 쉽게 전염되는 것이다.최근 WHO가 전세계로 유행할 수도 있는 독감에 대비하기 위해서 항바이러스 약품의 저장방안에 대해서 토의하는 가운데, 영국 임페리얼 컬리지 런던의 연구진이 동남 아시아 지역에서 확산되고 있는 조류 독감 바이러스가 인간 대 인간으로 전이될 수 있는 돌연변이가 발생할 경우 어떤 사태가 일어날 것인지에 대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모델의 연구결과를 발표한 결과 중국, 캄보디아, 태국, 베트남의 농촌지역에서 조류 독감이 발생할 경우 불과 3개월내에 전세계로 번지게 될 것이며, 만일 엄격한 조치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1년 안에 전세계 인구의 절반이 감염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연구진은 또한 H5N1)이라고 알려진 바이러스가 인간 독감 바이러스와 유전자를 교체하는 돌연변이를 일으켜 인간에게 좀 더 감염성이 높아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믿고 있다.7. 국내 발생 상황그림 4 국내발생지역2003년 12월 12일음성군 닭농장에서 A/H5N1형 조류 인플루엔자의 첫 발생 이후 일정간격을 두고 10개 시군 18개 농장에서 발생 (약 500만마리의 닭오리 살처분)2004년 2월 2일연기군 발생이후 조류인플루엔자 종식선언을 하였으나 2004년3월 4일 양주시에서 재발생(2004년 3월21일 공식보고)2004년 3월 21일양산시에서는 야생 까치에서도 동종의 바이러스 검출우리나라의 경우 1996년 경기도 화성에서 처음 발병한 이후 수년간 가끔씩 약병원성 조류독감의 경험은 있었으나 고병원성의 경험은 전혀 없었다. 그러다가 03년 12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충북 음성군 삼성면에서 발생하였고 그 후로 여러 건의 고병원성 AI가 확인되고 있다. 당시 음성군에서 발생한 조류독감이 인체 전염이 우려되는 고병
목차서론1 . 임진왜란2 . 16세기후반의 동아시아정세⑴국외정세⑵국내정세본론1 . 의병의 동기2 . 영남 ?호남지역의 의병봉기⑴의병의 봉기⑵영남지역의 의병봉기-경상도 의병병력⑶호남지역의 의병봉기3 . 의병의 기반과 조직⑴의병의 기반⑵의병활동의 조직4 . 의병장으로 보는 의병활동⑴의병활동⑵의병장들의 활약-진주성전투 김천일 고경명5 . 의병의 변천6 . 관군과 의병7 . 의병운동의 성격⑴의병운동의 성격⑵영남 의병의 성격결론의병운동 이후의 정국추이참고문헌서론1.임진왜란(壬辰倭亂 1592~1598년에(선조25년~31년) 2차례로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일어난 난리)임진왜란이란 전쟁이 일어난 해의 간지에 ‘왜놈이 일으킨 난리’ 라는 뜻을 붙인 것이고, 7년이라는 과정으로 언급할 때에는 '7년전쟁' 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1597년의 제2차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만을 따로 언급할 때는 '정유재란'(丁酉再亂)이라고도 부른다. 그 외 임진왜란을 일본에서는 전쟁이 일어난 당시의 일본 연호의 앞 글자를 따서 ‘싸움을 벌였다’ 는 뜻을 붙인 '분로쿠[文祿]·게이초[慶長]의 역(役)',) 중국에서는 '만력(萬曆)의 역'이라고 한다. 이를 계기로 조선의 전기와 후기를 나누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 정도로 역사상 많은 영향을 끼친 전쟁이었다. 임진왜란은 7년 동안 전국을 폐허화시키는 등 조선에게 많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친 타격을 주었다.2.16세기 후반의 동아시아 정세⑴국외정세동아시아의 조선·중국·일본 각 나라는 14세기에 다 같이 새 국가와 정권이 등장한 이후 2세기 동안 안정기를 누려왔다. 그러나 16세기에 접어들면서 명나라가 동요되고 이웃한 여러 민족들이 자주적으로 발전하려는 경향을 보이면서 동아시아의 정세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명나라는 16세기경에 환관(宦官)이 실권을 장악하는 등, 정치가 극도로 문란해졌고, 지방에서도 향리재주(鄕吏在主)의 관리나 과거 급제자 층이 향신(鄕紳)이라는 새로운 지배층을 형성하여 반(反)환관운동·반(反)해금정책 등 중앙 봉기임진왜란 전부터 부역과 형벌이 혹독하여 경상도와 전라도에서는 원망의 소리가 컸다. 임란이 발발한 후에도 이러한 폐단은 그치지 않았으니 당시의 영남 초유사 김성일은 ,“근래에 부역이 번거롭고도 과중하여 백성들은 마음 놓고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형벌마저 혹독하여 군민 모두가 원한이 가득하지만 호소할 길이 없어 그들의 마음은 흩어진지 오래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상태 아래에서 일본군의 침략은 영남지방을 더욱 혼란에 빠지게 하였다. 일본이 침략할 당시의 상황을 조금 살펴보면 일본군이 동래성으로 밀어 닥치자 경상좌병사 이각은 소산역을 지키겠다고 거짓으로 동래를 빠져 나갔고 경상좌수사 박홍과 밀양부사 박진도 도망하였으며 우수사 원균도 영을 불태우고 바다로 내려가 오직 배 한 척만이 있는 형편이었다. 당시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던 조선에 일본군의 침입이 전하여지자 관리들은 도망하기에 급급할 뿐 아니라 경상순변사 이익은,“오늘의 적은 신병과 같아서 감히 당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따라서 연암도이의 실상은 적병이 가까이 온다는 소문만으로도 성이 텅 빌 정도였다. 임진장초에 보면,“남해성 안의 관청과 여염집들이 온통 비었고 굴뚝에 연기 없어 쓸쓸하고 창고문은 열려 곡식은 모두 흩어졌고 무기 창고의 병기도 모두 없어졌습니다. 무기 창고 행랑채에 한 사람이 남았기에 그 까닭을 물으니 ‘적의 형세가 급박하자 온 성안 군졸들이 소문만 듣고서 도망해 버리고 현령 첨사도 모두 따라 도망 하여 간곳을 모른다.” 하더이다. )라고 쓰여 있다. 이러한 혼란은 그 이후로 더욱 심화되었다. 부산과 동래가 함락된 후의 김성일의 말에 영남지방의 실정은 이러하였다.“본도가 패한 나머지 도망한 자들, 대소인민이 모두가 산림 속으로 들어가 새나 짐승과 같이 숨어 버렸습니다. 아무리 반복해서 사리를 알아듣도록 깨우쳐도 군대에 응모하는 자가 없었습니다.”)이와 같이 관군은 무너지고 관리는 도망하기에 이르니 온 민중들은 지방수령을 살해하기까지 하였다. 또한 종들 가운데는 혼란한 틈군대와 식량의 여유가 있어서 국가가 기대하는 바가 크다고 강조하고 있으며“우리 도 사람으로 부형된 자는 충을 다해 순국하는 것으로 자제를 근계하고 사졸 된 자는 임금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지기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라고 하여 충과 근왕을 강조하였다. 그 뒤에 나온 고부 유생의 격문에는“왜적이 우리 강토에 침입하여 영남을 유린하여 사녀를 겁탈하고 약탈을 일삼고 있으니 이를 좌시할 수가 없다. 임금이 욕을 보면 신하가 죽는 것이 의리이니 신하된 자가 충의를 다하여 목숨을 바칠 날을 당한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물론 이 두 유생들의 통고문이나 격문은 의병을 모병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호남 유생들의 일반적인 생각이었고 곧이어 의병의 기병에 반영되었다.이러한 호남의병의 거의이념은 경상도 의병의 이념과는 차이가 있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의 호남의 사정은 일본군의 직접적인 피해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향토수호라는 개념이 구체적인 필요로 다가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막연한 것 같지만 유교적인 충군애국을 내세웠던 것이다. 그리고 의병장이 많이 배출되었음을 통하여 그 실현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일본군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지역보다 의병활동이 적극적일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경제적 조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3. 의병의 기반과 조직⑴ 의병의 기반임진왜란기 의병의 구성을 볼 때 의병장은 양반인 지배계급이고, 병사들은 대부분 양인, 농민, 노비층 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사화(士禍)로 인해 낙향한 사림이 유향소(留鄕所), 향교(鄕校), 서원(서원) 등의 건립을 통해 사회에서의 기반을 확립하고, 임진왜란 기에 이들 문인들의 호응과 재지적 기반으로 노비와 거주지 향민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모병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구성된 의병은 전통적인 향촌 질서와 더불어 지연적, 혈연적 유대감으로 운영되어 향촌방위에 힘썼다. 사림의 의병활동은 퇴계(退係)ㆍ남명(南明)학파의 사상적 기반 위에서 가능했다. 이 학파는 경(敬)과 의그리고 또 한 차례의 큰 전투가 있었는데 호남진출을 꾀하던 6번대는 7월 9일 금산성 제 1차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여 기세가 올라있었다. 이 무렵 조선과 영규스님이 이끈 의병은 1592년 8월 1일 청주성을 탈환하고 1,0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온양으로 진출하여 근왕하고자 하였다.김천일은 처음 고경명과 같이 의병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주로 지금의 경기, 서해안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활발하게 하였다. 이는 주로 전라도 지방 곡식을 윗 지방으로 올려 보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조헌은 충청도 의병이었는데 곽재우와는 달리 재정적 뒷받침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조헌이 이전에 보은 현감을 한 적이 있어서 보은 지역의 절대적 신망을 받고 있었고 보은에서 낙향을 하여 용천으로 갔는데 그 쪽에 제자들도 다수가 있었다. 또한 임진왜란 전에 충남 공주의 제독관으로 가 있었는데 충청도에서 학문적 명망이 가장 높았고 공주지역 유지들의 스승으로 조헌을 따르는 자 들이 많았다. 조헌의병의 주체세력은 충남사람이었고 제자들을 중심으로 의병이 모여지고 조헌은 제자들에 의하여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곽재우와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이 때 충청감사 윤선각은 조헌 휘하에 있던 장덕익을 불러 관군과 의병과의 합동작전을 수행하자고 하였다. 이에 따라 조헌은 온양에서 공주로 돌아와 협동작전을 구상하게 되었다. 그러나 윤선각의 배신으로 700의병들은 권율 장군에게 전라 관군에게 협동작전을 벌여주도록 한 후 8월 15일 유성으로 진출하여 영규스님이 이끄는 600여명의 승군과 합세하여 금산성의 적을 향하여 진군하였다. 결사적인 항전으로 세 차례에 걸친 전투 끝에 적에게 피해를 입히기는 하였지만 결국 이 전투에서도 패하고 말았다. 이때의 일본의 6번대는 조헌 군대에게 결정차를 입고 8월 17일 충북 영동으로 철수를 하게 된다.1592년 5월 2일 한성을 점령한 고니시 유끼나가와 가도오 기묘마사는 의주로 피난한 선조를 잡기 위하여 고니시 유끼나가는 평안도로 가오도 기요마사는 함경도로 공격하기 위하여 황해도 안성문제에서, 붕당 사이의 대결을 통해서 왕권의 유지와 강화를 추구하는 선조(宣祖)의 실정을 들 수 있다. 이는 전쟁이라는 국난기에 지역 실정에 밝은 인사를 임명하지 않아서 효율적인 대응이 되지 못하게 한 요인이 된 것이다. 또 전술적인 측면에서도 1차와 달리 공성론(空城論)을 주장한 것인데 이는 결과적으로 패배를 가져왔다.김천일김천일은 나주에서 기병을 하여 근왕을 위한 북상을 계속해 갔는데 해산된 군줄들이 계속 투속해 옴에 따라 충청도에 이르러서는 그 병력이 천을 헤아리게 되었고 공주에 도착했을 때는 조헌이 기의에 뜻을 두고 찾아와서 기의문제를 상의하고 돌아갔으며 수원에 이르러서는 종사 송제민으로 하여금 충청도에 가서 호서의병을 일으키는데 일조케도 하였다. 이렇게 볼 때 호서의병의 봉기에 있어서 김천일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김천일의 창의 활동중에 세운 중요한 또 하나의 공이라고 말할 수 있다.김천일의 본격적인 군사 활동은 秀城山城을 거점으로 시작되고 있다. 수원은 과거 그의 임재지였던 연고등이 있어 더욱 군세를 보강할 수 있었고 그러한 세력의 결과 여러 전투에서 상당한 전과도 올렸었다. 또한 이 지역에는 근왕군 해산이후 왜군들에게 의복을 협조하는 자들이 있었기에 김천일은 이들을 색출, 형벌 등으로 다스려 민심을 수습하고 또 토민들이 더 많이 의병에 참여토록 했던 것은 앞서의 공들보다 더 큰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김천일은 단지 의병의 구심적 역할만을 한 의병장은 아니었다. 의병진의 문반출신 장사로서 전술 등에서도 무장 못지않게 밝음이 있었다. 그는 결코 군사전략 면에서도 결코 문외한이 아니었으며 그것은 난이 발발하기 이전부터 변란에 대비하여 자제문생들에게 매일 기마훈련 등을 익히도록 하였던 것이다. 조선조에 유학자로서 그것도 노년기에 국난에 대비하여 직접 군사훈련을 익힌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 의문스러운데 김천일은 바로 여기에 속하는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의병장이 특별한 군사지식이나 훈련을 익혔다해서 창의한 사실이 더 높이 평가되어 지는 것은있다.
변화와 생존의 경계에 선 중국 지식인1. 우리는 왜 중국 지식인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가?중국에 있는 사람들이 과장 좀 섞어서 말하기에 자고 일어나서 밖에 나오면 모르는 골목들이 생길 정도라고 말했다. 그 정도로 급격한 변화를 이루는 곳이 현재 중국이라고 한다. 기술학자들중 혹자들은 말하기에 우리가 이룩해 노은 이 기술들이 2~3년 사이에 중국에 따라 잡힐 것이라는 말도 하고 있다. 그 정도로 빠른 변화를 보이는 곳이 중국이며, 단순한 빠른 변화만 보인다고 해서 중국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왜 우리는 중국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여러 미래 통계에 따르면 2025년에 이르면 중국이 바야흐로 세계 제일의 경제부국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한다. 즉 그때가 되면 중국은 아시아 제일의 힘을 갖게 될 뿐만 아니라 세계 제일 국가로 부상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면 중국의 부상은 한반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라는 인식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동아시아 각국 상호 간의 신뢰나 연대틀이 구축되지 못한 오늘에 있어서 아마도 당연한 우려이지 않을까. 여기서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이 중국에 대한 연구가 아닐까? 중국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지식인의 연구는 중요하게 평가된다.지식인이란 무엇인가? 그들은 인간?사회?자연?우주에 대한 보편적 법칙과 추상적 원칙을 그 어느 사회 구성원보다 빈번하게, 그리고 깊이 있게 생각하는 존재다. 지식인은 사회적으로 일정한 의식 세계를 창조?분배?보존하는 역할을 하며, 그들의 사고는 이상주의를 지향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므로 지식인 혹은 지식층은 한 시대와 사회 문제들의 본질에 어떤 사회 구성원보다도 더 관심을 가지며, 사회의 의식 체계와 도덕적 문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다.중국은 21세기 동아시아의 주역으로 부상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중국의 역사와 함께 자라온 중국 지식인들이 직면한 현실은 결코 순탄치 않다 특히 그들은 여러 혼란시기를 겪고 심각한 정신적 혼란을 겪고다. 중국의 근대에서 현재까지 지난 150여 년 간의 역사에 나타난 지식인의 역할은 이러하다. (표1-1) 개혁?개방 이전의 지식인은 우리가 흔히 지식인이라고 알던 계층의 역할과 비슷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1978년부터 본격화된 중국의 개혁?개방과정에서 중국의 지식인들은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조정과정을 겪어야 했다. 경제 발전을 이루어나가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 조작이 선행되어야 했고, 그런 만큼 그 과정에는 지식인 내부의 논쟁 내용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진리 기준 문제에 대한 논쟁, 사상 해방 운동을 위한 체제 내부 또는 권력 중심부의 개혁에 대한 요구, 정치적?사회적 변혁 요구, 권력 주변시대구분지식인의 지위봉건사회 (1911년이전)유가적 법통. 신분적?경제적 명망 유지신해혁명-중화인민공화국 건설기(1911-1949)반전통, 반유가 사회실천(혁명)문화대혁명기(1966-1976)노동자/지식인사회주의 시장경제 실시기(1978-현재)상품경제하의 대중스타/지식인부 인사의 휴머니즘적 마르크스주의 주장, 권력 중심부로부터의 제동?지시?하달 등에 이르는 여러 과정에 변화하는 지식인의 위상이 그대로 투영되었다. 특히나 중국 지식인들은 ‘봉건 시대-근대-사회주의 건설기-기장 경제 도입기’ 등의 시대 구분과 맞물려 권력과 재력과 명예에 있어 상-중-하-극하 단계로 점차 내려앉아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지식인 스스로가 자기 존재 기반에 대한 준비를 결여했던 데 기인한다. 보통의 지식인들은 더 많은 사회 개혁의지를 강화하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또한 중국 현대 사회가 보여준 특수한 사정으로 인해 중국 지식인들에게 특별한 성격을 부여했다. 서양에서의 지식인이라는 의미는 계급적 의미에서 대열 이탈자적 성격을 갖는다. 그들은 고등학력자보다 책을 많이 읽은 노동자나 자기 출신 배경을 저버린 상류 계급으로 구성되었다. 반면 중국의 지식인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고등 교육의 수혜자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봉건 시대부터 뿌리 깊은 유가 전통 위에서 흔히 ‘교 자리잡고 있는 존재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은 대부분 격동의 근대화 과정에서 뜨거운 열정과 관심으로 중국의 지도자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그런데 중국 사회주의 혁명이 완수된 후 중국 지식인은 주변화를 겪게 된다. 이상적인 것이 세속화 또는 퇴행을 겪게 될 때 권력을 가진 자는 과도한 권력을 행하게 되고 그렇지 못한 자는 자기 부정으로 기울게 되는 현상을 보인다. 문화 대혁명을 겪으면서 중국의 지식인들은 개인적 주체가 아니라 집단 또는 세력이었고, 이 안에서 전통적 지식인은 무력해지거나 ‘소시민적 자유주의자’라고 비판받는 존재로 전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하여 전통적 지식인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중국 지식인은 어떠한가?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시장 경제 실시로 중국 지식인은 또 다른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들은 권력에서 소외되었고 대중과 타협할 물질적 배경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념의 퇴조와 대중의 도약은 비판적 지식인을 소외시키는 한편 지식 자체를 변모시킨다.3. 자본주의의 유입 그 이후중국의 1990년대는 덩샤오핑에 의한 장쩌민 리더 만들기라는 토대위에서 강력한 개혁 추진으로 시작되었다. 또한 동유럽에서 발단이 되어 이후 소련과 베트남까지 이어진 사회주의 붕괴는 마치 자본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의미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이러한 자본주의는 미국의 주도아래 전 지구적 팽창을 획책하는 신자유주의 논리로 아시아를 거대한 먹이로 상정하여 퍼졌고, 거기서 중국은 예외가 될 순 없었다. 중국에서 ‘사회주의 시장 경제’와 ‘사회주의 정신문명’을 양대 바퀴로 하는 개혁?개방의 수레바퀴에 바야흐로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중국의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면서 중국에는 여러 가지 부정적 단면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개혁?개방의 성과로 중국에 신흥 부르주아가 탄생하고 있으며, 새로운 취향의 생활 방식과 소비 욕구, 천박한 자본주의 산업이 유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사회적 성취를 위한 과도한 경쟁과 심리적 압박이 사회적 문제로 발전하고 장화 과정에서 발생한 사상적 혼란 속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중국 지식인에 대해 문화학적 관심을 보여준 멍판화는 「뭇 신들의 열광」이라는 책에서 지식인들에게 발생한 심각한 전환기적 문화 충돌 현상을 개괄하였다. 뿐만 아니라 시장경제 체제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중국 문화시장에는 분화현상이 발생했다. 즉 ‘주류문화’, ‘지식인문화’, ‘시장문화’가 바로 그것이다. 우선, 주류문화란 국가정통 이데올로기를 표달하는 문화로서 국가 의지와 이익의 이데올로기를 표달한다. 따라서 권위성을 띠며 ‘주선률’을 이룬다. 여기서 주선율이란 역사문화의 개발, 전형인물의 선전을 주로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현실에서 주선율 강조의 표리부동성을 확인하게 된다. 다음으로 지식인문화를 들 수 있다. 고대사회에서는 가름침이 즐거움은 우선했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세속화 추세는 독립된 지위와 의의를 부여해 주었다. 전통과 복고를 원칙으로 삼았던 유가 지식인과는 달리 현대적 지식인은 반전통?반복고를 원칙으로 삼고, 나아가 당대지식인은 급진 서구주의 아니면 반시장문화주의(복고, 전통 회귀)를 원칙으로 삼는다. 지금 시장문화의 비판에 있어서 이 부류의 지식인들은 인간의 욕망과 향락주의에 대해 배척하면서 동시에 역시 그들의 생존을 지탱하는 의식세계의 단호한 저항을 드러낸다. 이들에게서 현대인의 초조, 억압, 조급성, 망상, 우울증 등의 불행감을 확연히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시장문화는 다름 아닌 시장경제의 산물이다. 시장경제란 시장을 점유하고 또한 상업이윤을 획득하는 것이 그 최대의 목표이다. 이러한 이익 추구아래, 모든 문화자원은 모조리 이 문화형태를 시장으로 진입시킬 것이고, 새로이 발굴하여 포장한 후 그것을 문화소비품으로 바꾸어놓는다. 멍판화는 이러한 세가지 문화를 설명하고, 나아가 그는 이 세 가지 문화 형태가 서로 융합하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하면서, 대단히 복잡한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얽히고설키며 관계를 맺고 있다고 이해했다. 그리고 이들생기면서 개량파, 기술 관료, 신보수주의의 관변 이론가, 급진적 운동론자 및 그 반대파로 해체?분화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와 아울러 생산력의 증가, 국제경쟁력 강화, 생활 수준 향상 등의 물질성장의 풍요에 반해 대량 생산과 대량소비의 자본주의 시장화, 만연된 물질만능주의, 이기주의, 도시와 농촌 사이의 소득 격차, 계층 사이의 갈등, 부패구조의 가속화 등 사회적?정신적 위기가 만연하게 되었다. 90년대 문화계 지식인들은 다양한 방법과 이론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진단하고 그것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고자 나섰다. 이에 논쟁의 발단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논쟁 과정에서 많은 오해와 의견 대립-이를테면, 논쟁의 주체인 지식인을 보는 관점과 현재의 상업문화를 보는 관점의 상이함 등-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정신에 의지한 현실 비판이든 인문적 가치의 강조든, 모름지기 중국의 당대적 현실, 구체적이며 일상적인 현실을 떠나서 논쟁을 전개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고 나아가, 새로운 삶의 양식은 새로운 인문정신을 낳는 다는 것을 깨달았다.5. 중국 지식인의 대응양상이제 중국에서는 더 이상 전통적 지식인의 역할이 요구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역사의 무대 뒤로 퇴장할 수밖에 없다. 지식인들이 전망했던 것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현실화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역사가 오히려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이제 지식인은 더 이상 자기의 사명을 사회나 국가 차원에 두지 않는 듯했다. 캠퍼스의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현실에 밀착되어 있는 지식인들조차 스스로의 신분이 무엇인가에 의해 대체되어버렸다는 곤혹감을 느끼게 되었다.또한 ‘전통’ 이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더 이상 대항적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사람들은 재빨리 전통이란 전통은 깡그리 폐기해버렸다. 뿐만 아니라 사회에 통용되던 중심적 가치 관념 역시 더 이상 통제력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한편 세계화라는 이름 하에 전 세계가 자본주의를 중심으로 획일화되어가는 상황에서 중국이라는 나라의 차별화된 민족 문화적
한류(韓流)를 통해서 본 동아시아 문화교류Ⅰ. 들어가며Ⅱ. 동아시아란 무엇인가?ⅰ.동아시아의 개념ⅱ. 동아시아 지역의 동일성ⅲ. 동아시아 지역의 상이성Ⅲ.한류란 무엇인가?ⅰ-한류의 의미ⅱ-한류의 현황Ⅳ. 글을 맺으면서Ⅰ. 들어가며20세기 말부터 등장한 멀티미디어, 광통신, 휴대용무선통신, 케이블 TV, 위성, 인터넷등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등장과 급속한 확산은 공간적·시간적 제약을 뛰어넘어 모든 인류가 각종 지식과 정보 그리고 문화를 거의 동시에 향유할 수 있는 물질적 환경을 조성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빠른 디지털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인류는 더 빠르고 신속하게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자국의 문화뿐만 아니라 타국의 문화까지 접하게 되면서 각국의 사람들은 타국의 문화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더군다나 서구문화에 대한 자각이 일기 시작하면서 서구를 극복할 대안으로 동아시아 문화가 모색되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동아시아 문화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때문에 동아시아에 위치한 한·중·일 삼국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하지만 시대적 대세가 동아시아로 기울기 시작했다고 하여 동아시아의 미래가 밝을 수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기울기 시작한 대세를 어떻게 움직여 갈 것인가에 대한 고찰이 수반되어야 한다. 동아시아 삼국의 문화를 동질의 문화로 간단히 정의 내리는 일은 동아시아의 미래를 논하면서 가장 착각하기 쉬운 일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삼국이 지리적·역사적으로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삼국의 문화는 간단히 정의 내려지기에는 너무나 긴 시간동안 단절되어 왔었고 그 시간만큼이나 다른 문화를 지니게 되었다.동아시아를 대안으로 삼기 위해서는 먼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삼국 문화에 대한 고찰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한류를 그 예로 볼 수 있는데 한류가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이것이 바탕이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가에 대한 고찰을으나) 세계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주변부로부터 중심부로 이동했거나 이동하고 있는 중이라는(혹은 그렇다고 얘기되는) 공통성을 갖는다.일찍이 인류 문명의 위대한 새벽을 열었던 동아시아는 근대 이후 서구 자본주의의 동점(東漸) 물결 속에서 민족의 보위와 민중의 생존을 확보하기 위한 가난한 행보를 거듭해왔고, 냉전 체제의 본격적 작동과 함께 세계의 그 어느 지역보다도 혹심한 갈등과 분쟁으로 얼룩져왔다. 그 결과 냉전이 전지구적으로 해체되고 있는 오늘날에도 동아시아는 그 족쇄로부터 근본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요컨대 동아시아는 세계사적 모순의 가장 난해한 결절점(結節點)의 하나인 것이다 {『동아시아인의 동양 인식:19-20세기』,최원식·백영서 엮음, 문학과 지성사, 1997, p.4.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동아시아는 모순의 결절점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세계적 대안으로 모색되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아시아적 가치{2)《 아시아적 가치 의 담론학적 분석》, 이승환, p.313, 출전:『아시아적 가치』, 전통과 현대, 1999.의 담론이 바로 그것이다. 아시아적 가치란 말 그대로 아시아 문화권이 간직하고 있는 독특한 가치의 체계를 말하는 것이며, 아시아 문화권에 아시아 나름의 고유한 문화전통과 가치체계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ⅲ. 동아시아 지역의 상이성광대한 땅을 가진 중국에서는 국내 소수 민족의 생활상도 상당히 차이가 나고 있다. 하물며 동아시아 삼국의 생활상은 어떠하겠는가. 지리와 기후의 차이뿐만 아니다. 동아시아 삼국은 국가적으로나 또는 사적인 수준에서도 상호간의 직접적인 접촉이 적었다. 지리상으로 해양에 의해 땅이 떨어져 있고 서로간의 왕래가 어렵게 되어 있었다. 또한 각국은 근세에 들어와 정치 이념과 대외 관계 등을 이유로 해안을 폐쇄하여 자국민의 출항도, 외국인의 상륙도 허용하지 않는 이른바 쇄국정책을 엄격하게 실행하였다.삼국은 오랫동안의 쇄국과 격절의 결과로 의복이나 갓과 신 및 복식, 음식의 소재나 조리 방식, 그리고 주택의 재료나 구조 등의 생활상에서 로 조합시킨 것으로, 그 의미전달의 방편은 눈에 의한 관찰이 주된 것이고 귀에 의한 청음은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과 일본의 언어구조는 중국어와 전혀 달라 한문을 읽는 방식 자체도 매우 달랐다.뿐만 아니다. 현재 삼국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선 중국은 정치적 노선부터 두 나라와는 확연히 다르다. 사회주의체제를 표방하고 있지 않은가. 이는 현재에 이르러 두 나라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이유로서 설명되어진다. 그렇다고 하여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 이 두 나라는 유사한가? 아마도 그렇다고 보기에는 상이한 질적 차이를 보이고 있다.Ⅲ. 한류란 무엇인가?ⅰ. 한류의 의미지난 92년 8월 24일, 한국과 중국이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래 9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이를 계기로 한국과 중국간의 서로 쉽게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으며, 다방면에서 양국간의 교류가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교류가 시작되면서 당연히 중국은 우리나라에 대한 우리나라는 중국에 대한 관심이 이어 질 수밖에 없다.일반적으로 중국 대륙에서 대중가요, TV드라마, 영화등 한국의 대중문화가 큰 인기를 끄는 현상에 대해 중국인들이 붙인 명칭으로 한류라는 말을 쓴다. 하지만 일본, 대만, 베트남, 몽골등 그 밖의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도 나타남으로 인해 한국에서는 그 용어가 지칭하는 범위가 크게 확장되고 있다. 대략 97년부터 나타난 이러한 현상에 대해 한류라는 이름이 처음 붙여진 것은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 방송국 기획사에 의해서다.{ 《한류(韓流)현상과 한중 문화교류》.이치한 허진. 한국외국어 대학교 외국어 종합연구 센타 중국연구소. 2002이러한 한류(韓流) 현상은 90년대 말부터 상당수의 한국 드라마와 대중음악이 이들 지역에 소개되면서 본격화되었다. 한류에 대한 한국 내 평가가 실제 보다 과장된 점도 없지 않지만, 중국의 도시 젊은이들에게 한류가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고 그들이 한국의 대중문화에 친밀감을 가 일반 도시주민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의 수준은 아님을 의미한다.중국인이 한국 대중문화를 선호하는 이유는 일부 한국 대중문화(댄스가요, TV용 드라마)의 경쟁력에도 기인하지만, 무엇보다도 중국 내에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대중문화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 내 대체 상품이 개발될 경우 한류가 타격을 받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ⅱ.한류의 현황지난 99년 문화관광부는 한국가요의 홍보용 음반을 CD로 제작하여 해당국가의 방송사, 잡지사, 대학 디스코텍 및 한국 공관에 배포할 목적으로 1억5천만 원을 투자, 중국어 6천장과 일본어 및 영어 각 3천장씩 음반을 기획 제작하였다. 이 음반의 영어와 일어 버전은 'Korean Pop Music' 중국버전은 '韓流-Song from Korea' 란 타이틀을 달았다(중앙일보 2000년 1월 20일, 문화 44면). 그런데 이 중국버전의 음반기획을 맡은 회사는 지난 97년부터 베이징 음악방송국을 통해 정규적으로 1시간씩 중국어로 진행되는 한국가요 소개 프로그램인 '서울음악실의 제작 및 운영을 맡고 있는 (주)미디어플러스 였다.이 회사의 손장현 팀장의 얘기에 따르면, 당시 홍보용 음반의 타이틀을 논의하는 기획회의에서 북경영화대학 연출과 교수가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새로운 유행경향을 총칭하는 '寒流'라는 신조어에서 '寒'을 ''韓'으로 바꾸자는 의견을 제시하여 타이틀을 '韓流'로 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韓流'라는 신조어는 서울음악실을 통해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등 중국의 10개 주요 도시의 약 5억 중국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천 전파를 타게 되었고, 99년 가을부터 H.O.T, 안재욱, 유승준의 노래가 담긴 '한류'라는 타이틀의 홍보용 한국가요 음반이 중국 전연에 배포되었다.또한, 중국언론은 한국 대중문화의 유행현상을 보도함에 있어 '한류'라는 용어를 그대로 인용함으로써 '한류'가 중국 대륙에서 한국의 유행 엔터테인먼트-음악, 드라마, 패션,영화등-를 통칭하는 일반명사가 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2000년미의 폭이 넓어지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한편, 중국에서 나타난 한류 현상은 중국에서 97년부터 한국의 TV드라마가 시청자들의 인기를 끌면서 시작했다고 보여진다. "별은 내 가슴에"가 란 제목으로 당시 중국 대륙과 대만{ 대만의 경우, 이미 90년대 중반 "마지막 승부"와 "모래시계"가 방영되면서 한국 드라마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며 99년 유선방송사인 GTV에서 차인표 이영애 주연의 "불꽃"이 예상외로 큰 인기를 끌면서 한국 드라마의 붐을 일으켰다. 현재 한국에서 수입된 모든 드라마가 프라임 타임에 방영되고 있으며, 근래 방영작중에 "가을동화"는 한국보다 더 큰 인기를 누리며 대만 전역을 술렁이게 할 정도로 지속적인 초강세를 나타내고 있다홍콩을 비롯하여 아시아 전역에 방송되는 스타 TV계열의 중국어 방송인 Phoenix TV에서 방영되어 예상 밖의 호응을 얻으면서, TV드라마를 통한 '한류' 열풍을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이 드라마에 등장한 안재욱은 일약 스타로 떠올랐고 이어 한국에서 방영된 최신 드라마들이 차례대로 방영되기 시작하였다.한국 TV드라마에 대한 중국 시청자들의 반응에 대해 분석한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대체로 한국 드라마는 중국의 청소년층과 장년층에서 높은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한국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중국 시청자 반응》허진. 한국방송학회세미나 발표논문. 2001. 청소년들의 경우는 한국 드라마가 지닌 현대적인 요소들 즉, 출연자의 세련된 용모와 패션 그리고 높은 생활수준 등이 동경의 대상으로서 크게 어필한 반면, 장년층의 높은 시청률은 한국이 지닌 강한 가족공동체적 성격과 유교적 가족질서 등에 대한 호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되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방송 프로그램은 현실적으로 수용자 층이 아주 제한되어 있는데, 그들은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은 다수의 사람들로 중국사회에서 주류가 아니며 수입도 낮아 구매력이 매우 약한 계층이기 때문에 사회적 영향력도 없을 뿐 아니라 광고주의 관심을 끌지도 못한다. 중국의 TV시청자들이 신문과 잡지, 있다.
1. 들어가며2. 물류거점항만(21C 거점항만)의 의미와 그 기능⑴21세기 항만의 의미⑵21세기 항만의 기능3. 동아시아 경제성장⑴동아시아 경제 전망⑵증가하는 중국의 물동량4. 부산항의 여건⑴부산항의 물류 이동량⑵부산항의 이점⑶부산항의 위상(경쟁항만과의 비교를 통해)5 . 부산항 고찰과 거점화 방안⑴부산항 컨테이너 항만시설 부족, 조기 개발 시급⑵부산항이 중심항으로 기능하기 위한 조건⑶환적화물의 적극적인 유치6.맺으면서국제물류기지화에 대한 부산항 고찰1 . 들어가며21C는 동아시아의 세기)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미 큰 경제력을 쥐고 있는 일본과 뛰어난 노동력과 발전하기 쉬운 경제로 인해 새로운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 그리고 그에 발맞춰 나아가려 하는 한국, 이렇게 삼국에 의해 동아시아는 큰 발전을 꾀하고 있다. 이런 동아시아의 발전으로 인해 삼국의 물동량 또한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며, 많은 물동량을 관리할 수 있는 보다 광대하고 유용한 시설들이 필요하다. 그로 인해 각국에는 많은 산업과 이익이 창출 될 것이라 보여 진다. 이러한 시점에서 동아시아 거점이 중요한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벌써 다른 나라들에서는 이미 이러한 물류의 이동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고 새로운 국가계획을 시행하고, 서로들 경쟁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만 있는 것인가? 이러한 이익덩어리인 물류중심이라는 큰 타이틀을 아무 준비 없이 놓쳐야만 하는가?나는 그에 대한 고찰을 이 글에서 하고자 한다. 또한 우리나라가 물류거점지역이 되기 위해 우리나라 제1항구인 부산이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어떠한 문제점들이 있는지 알아보고, 그러한 문제점을 극복하여 동북아의 거점이 되기 위한 방안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2 . 물류거점항만(21C 거점항만)의 의미와 그 기능⑴21세기 항만의 의미일단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앞서 먼저 물류 거점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떠한 기능이 있기에 우리는 부산항을 거점으로 만들려고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한다'04'03'04'03'04세계1.92.03.02.93.24.1--3.13.6선진국1.61.52.52.41.82.92.03.01.72.3미국2.42.23.42.82.63.92.94.22.53.0일본0.10.81.31.32.01.42.71.81.81.1유로권0.80.71.72.10.51.90.51.80.81.9개도국3.34.04.94.95.05.6--4.95.5동아시아6.76.16.76.76.46.5----[표1]주요기관의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자료: IMF, World Economic outlook, 2003.9OECD Economic Outlook 2004, 2003. 11World bank, Global Economic prospects, 2003. 9LGERI(LG경제연구원), 2004년 경제 및 경영환경전망 2003. 9이러한 경제회복으로 인해 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동아시아 지역 내의 경제 성장률이 두드러지게 보이고 있으며 이러한 세계경제의 성장은 교역증가에도 영향을 주어 특히 아시아지역의 교역증가율은 큰 폭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그동안 강국이었던 미국 재정 및 경제수지 적자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됨으로 인해 경제 성장이 예상되는 유럽과 아시아 통화들에 대해 달러화의 약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여 진다.수출수입‘02‘03‘04‘02‘03‘04선진국2.01.14.82.42.94.8개도국전체6.35.06.86.25.38.0아시아12.17.28.412.78.510.0중국?인도제외아시아5.33.75.56.84.77.4[표2]IMF의 주요국 상품 증가율 전망(%)일본은 2004년에 1%대의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는데, GDP의 10%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부문의 저축이 투자를 증가시켜 경제 회복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중국경제는 2004년에도 투자 및 수출의 빠른 증가에 힘입어 연간 7~8%의 고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⑵증가하는 중국의 물동량2001년 9.11테러이후 해운경기는 하락추세에 빠졌지만, 특히 2002년833△5,264△6,265△10,238[표4]부산항 물동량 예측)⑵부산항의 이점①지정학적 입지여건부산항은 중국 동북삼성, 일본의 큐슈(九州), 서안(西岸),북한 및 극동러시아를 포함한 동북아 경제권의 물류중심지가 될 수 있는 지리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하면, 유럽↔싱가폴↔홍콩↔카오슈↔부산↔일본↔북미를 연결하는 세계 주간선항로(Main Trunk Route)상에 위치하여 있음으로 인해서 북중국 및 일본 서부지역의 환적화물을 처리할 수 있는 최적의 전략 요충지이며 TKR, TCR, RSR이 연결시 유라시아 대륙과 해양을 잇는 관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또한 주변 1,200km 반경 이내에 인구 7억명의 거대한 배후시장이 존재 한다.) )②세계 3위의 컨테이너 처리항만부산항은 ‘00년 이후 세계 3위의 컨테이너 처리항만으로서 높은 인지도를 얻고 있다. 또한 ’02년도엔 945만의 teu를 처리, 홍콩 싱가폴에 이어 3년연속 세계 3위에 머무르고 있다. 또한부산항은 우리나라 총 컨테이너 화물의 80%와 환전화물의 93%처리하고 있으며, 세계 100여개국의 500여항만과 교류하며, 약 4만여척이 기항하는 장소이다.③환적화물의 증가부산항의 높은 인지도와 저렴한 항만비용으로 인해 최근 5년동안 연평균 28.2%의 환전화물이 증가하였다.)④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을 위한 정부의 강력한 정책 추진현재 노무현 정부에서는 부산항개발을 이번 발전 과제로 삼고 있다. 이러한 강력한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빠른 진행을 보이고 있다.) )순위국가99년실적98년 순위99년 실적1중국,홍콩28,215124,7082미국26,141224,1653싱가포르15,945315,1364일본11,796410,5235대만9,75858,8566한국7,01476,4607영국6,79666,5258독일6,53886,1289네델란드6,52996,06210이탈리아6,023105,85711스페인5,122114,75712아랍에미레이트4,850124,44813벨기에4,475134,053있다선석수(부두길이)?터미널 면적?장치 면적?하역장비 및 최종 확장게획 등을 기준으로 할 때 기반시설이 가장 출실하고 여유가 있는 항만은 고베항이며, 다음으로 카오슝항?싱가포르항?홍콩항?부산항의 순으로 되어있으며, 부산항은 가장 하위이다.③생산성컨테이너항만의 생산성을 나타내는 기준은 투입량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기반시설을 기준으로 한다면 안벽길이당?크레인당?선석당?시간당?처리량 등으로 나타낼 수 있다.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홍콩항과 싱가포르항의 생산성이 매우 높으며, 부산항과 카오슝항은 중간수준이고, 고베항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만 고베항의 생산수준이 낮은 것은 고베항의 여유능력이 매우 커서 취급물량이 기반시설 능력의 반 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며, 특히 시간당 처리량은 가장 높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④물류비용컨테이너항만에 있어서의 비용, 또는 가격은 복합운송이나 물류체계의 진전에 따라 단순한 항만요율의 차원보다는 복합운송을 기본으로 한 물류비용 전체에 대하여 비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물류비용은 상업활동의 내용, 복합운송의 이용 패턴 및 항만의 특성에 따라 달라지므로 아래에서는 하역요율?항만시설 사용료 및 내륙운송요육을 기준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하역요율의 경우, 컨테이너 하역요율은 국가에 따라 요육체계가 다르나, 크게 나누어 기본료?선내 이적료 및 구내 이적료로 나눌 수 있으며, 부산항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다음으로, 항만시설 사용료(선박입항료, 화물입항료, 접안료)에 있어서는 고베항이 가장 낮고, 부산항이 그 다음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부산항의 경우에는 컨테이너화물의 도심통과에 따른 비용으로 1teu당 약 2만원이 부가되므로 실질적으로는 사용료가 훨씬 비싸진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컨테이너 내륙운송요율은 각 국가별로 요율체계가 달라 직접 비교하기 어려우나 우리나라와 대만이 거의 비슷한 반면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2배이상 높다.⑤물류서비스컨테이너항만에 있어서 서비스수준은 컨테이족한 컨테이너 부두 건설을 적기에 공급하지 않으면 부산항은 동북아의 중심항(Hub-Port)으로 역할을 할 기회를 잃고 말 것이다.⑵부산항이 중심항으로 기능하기 위한 조건부산항이 21세기에 동북 아시아의 중심항(Hub-Port)이 되기 위해서는 코스트와 서비스면에서 경쟁 항만에 비해 경쟁우위를 유지해야만 한다. 그 조건은 다음과 같다.①충분한 컨테이너 항만시설과 운영 면에서의 효율화 : 항만 운영은 민영화하여 효율을 극대화한다.②글로벌(Global) 정기선항로망으로 해외와 직결할 것 : 부산항은 지정학상 동북아의 중심으로 정기선항로상에 위치하여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③사용에 편리한 항만으로서 서비스 질의 보장 : 365일, 24시간 가동체제 유지와 서비스 수준 향상④국내외 피더(Feeder) 기능의 강화 : 부산항을 중심으로 한 인접 항만과 피더 네트워크(Feeder Network) 완비와 환적화물(T/S Cargo) 유치를 위한 인센티브제 도입⑤항만 코스트의 저렴화 : 항비 및 항만 요율의 저렴화와 동시에 고속하역시스템을 갖춘 터미널을 건설하여 선박의 재항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도록 하여 선박의 운향효율을 극대할 수 있는 항만이어야 한다.⑥정보화의 촉진과 수속의 간소화 : EDI화와 수속의 간소화로 사용자(User)의 편리성을 향상⑶환적화물의 적극적인 유치부산항은 작년에 컨테이너 처리물량이 연간 754만teu였는데, 그 중 환적화물은 250만 5,472teu로서 부산항 전체 취급량의 33.2%를 점하고 있다. 그리고 연 증가율이 46.4%로 대폭 증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중국의 WTO 가입에 따라 교역량이(2005년까지 거의 2배의 증가 예상)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따라서 앞으로 부산항이 동북아의 중심항(Hub-Port)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이웃 나라인 중국, 일본 및 극동러시아의 환적화물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위하여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참고로 우리나라 컨테이너 화물의 증가는 연간 6~8% 정도가 예상될 뿐이다. 따라서 환적 화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