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제 제기최근에 몇 번 가수의 콘서트와 야구 경기를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풍선 에 대한 것이었다. 너무나 많은 풍선이 사용되고 난 후에 바닥에 그냥 지저분하게 버려지거나 하늘로 올라갔다. 야구경기에서는 막대풍선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소리도 크고 응원 효과도 일반 풍선보다 높아서 많이 사용되는데 문제는 경기가 끝나고 나서이다. 경기가 끝나고 나면 막대 풍선은 경기장 관중석은 물론 운동장에도 너무 지저분하게 온갖 쓰레기와 함께 널브러져 있다.특히, 요즈음에는 행사가 많이 열릴 뿐만 아니라 무슨 행사만 했다하면 수많은 풍선을 날린다. 그 수많은 풍선이 하늘로 올라가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환경단체의 행사에서조차 풍선이 사용되니 다른 행사에서 풍선을 사용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지 모르겠다. 고무풍선과 막대풍선은 사람들의 눈과 기분을 좋게 해줄지는 모르지만 또 하나의 커다란 환경을 오염시키는 원인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자료를 찾기에도 약간 어려움이 있었다. 이제부터라도 많은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2002년 월드컵이라는 국제적인 커다란 행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고무풍선을 날림으로서 발생하는 피해와 정부/민간의 해결 노력에 대해 살펴보자.♧ 응원용 막대풍선 및 고무풍선이 미치는 악영향응원용 막대풍선의 경우 사후 처리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막대풍선이 대부분 1회용의 비닐로 만들어지기 때문인데 경기가 끝나고 나면 이러한 막대풍선이 버려져 쓰레기가 된다. 특히, 막대풍선의 경우 바람이 잘 빠지지 않아 처리하는 것이 더 어렵다. 사실상 재활용이 된다고 하더라도 경기장에서 재활용을 위한 분리수거가 사실상 어려운 형편이다. 그리고 구단주 측에서 무상으로 나누어주는 경우가 흔해 더욱 문제가 된다.고무풍선의 경우, 이미 해외환경단체에서는 고무풍선 사용의 자제를 촉구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바로 이러한 피해가 생기기 때문이다. 날려진 고무풍선은 반드시 다시 땅으로 다시 되돌아온다. 고무풍선은 하늘로 올라감에 따라 공기가 희박해져 팽창을 하게되고 결국 터지게 되는데 풍선의 잔해물이 지표면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환경부 홈페이지 , 나의 의견란, 정주용 , 2000.05.10이러한 잔해물이 육지로 갈 경우도 바다로 갈 수 도 있다. 육지로 갈 경우 풍선은 고무제품이라서 잘 썩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더욱 문제는 지표면의 ⅔를 차지하는 바다로 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바다로 떨어졌을 경우 결국 피해는 바다에 살고 있는 생물들에게 돌아간다. 바람 빠지고 터져서 떨어진 풍선은 색깔이 없어지고 언뜻 보면 해파리처럼 보인다. 해파리는 고래나 바다거북이 가장 즐기는 먹이 중 하나다. 거북이나 고래가 터져서 바다 위에 떠있는 고무풍선 잔해를 해파리로 잘못 알고 먹게 되는데 이것이 기도를 막아 질식사시키거나 굶어죽게 할 수 있다. 물론 확률이 그다지 높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주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오래 전의 일이기 하지만 고래가 떨어진 풍선을 먹고 죽은 사건이 있었다. 85년 미국 뉴저지주 해안에 서 바싹 마른 채 죽어있는 고래 한 마리가 발견됐다. 이 고래를 해부해 본 해양학자들은 깜짝 놀랬는데 그 이유는 위에서 장으로 연결된 부위에서 길이 9.0㎝의 리본이 달린 고무풍선이 발견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종관, , 조선일보, 1993.06.10고무풍선이 고래의 위장을 틀어막아 굶어 죽은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행사를 더욱 멋지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풍선이 무고한 해양생물의 생명을 빼앗아 갈 수 있는 무서운 존재임을 인식해야 한다. 바다에 사는 생물에게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 풍선이 날아가는 동안 하늘에 있는 새들이 자신의 먹이인줄 알고 먹고 죽을 수도 있다. 그리고 고무풍선을 매고 있던 실에 새의 다리가 걸려 죽은 예도 있었다고 한다.고무풍선을 날리는 행위는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피해뿐 아니라 경제적 측면으로 보면 외화의 낭비이기도 하다. 고무는 우리 나라에서 생산되지 않는 순전한 수입품으로 풍선 일회용 사용으로 많은 귀한 외화가 낭비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의 해결노력지난 5일 환경부에 따르면 경기종료후 대부분이 경기장에 폐기물로 버려지는 막대풍선과 비닐방석, 대형 손 모양의‘팜팜’등 비닐로 만들어진 1회용 응원용품의 무상제공을 법으로 금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구단들이 관람객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막대풍선의 사용량은 지난해만 무려 69만 세트(17.3t)로 매년 15%씩 증가하는 등 수년 전부터 우리나라응원문화의 핵심으로 자리잡은 상태이다. {) 정규득, , 조선일보 , 2001.12.05환경부에서는 이러한 막대 풍선의 경우 쓰레기처리 과정에도 상당한 애로가 있다며 무상으로 공급하는 것을 방치할 경우 막대한 자원의 낭비는 물론 환경오염의 우려도 있다고 사려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부에서는 유상으로 판매하는 것은 제재하지 않는다고 말해 아직은 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렇게 함으로써 응원용 풍선 사용이 조금은 감소할 지 모르나 야구경기나 축구경기 등을 보고 응원을 하자면 풍선사용이 불가피할 경우도 있으므로 그 효과가 크지는 못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응원용 막대 풍선의 문제점만을 인식하고 해결하려하고 있지 행사 때마다 사용되는 수많은 오색 풍선들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는 점에서 아쉽다.
4 . 모티베이션 전략구성원의 만족을 통해서 외부 고객의 만족을 창출하고, 인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기업의 미래를 힘차게 열어갈 '색깔 있는 인재 육성'을 목표로 모티베이션 전략을 이용하고 있다.동일 직급, 동일 직무 공평하고 합리적인최고의 능력보유 평가 및 보상최고의 경쟁력 최고의 대우적성에 맞는 업무 부여 경쟁사 최고 수준그리고, 다음과 같은 추진단계별로 근무 조건과 급여 및 복리 후생을 향상시켜 구성원으로서의 긍지와 보람을 느끼게 하고 있다. 그리고 각종 인센티브제로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게 되어 안정되고 풍요로운 삶을 제공하고자 한다.Step 1ProfessionalHumanStep 2GlobalHumanStep 3CreativeHuman21세기를 선도해 나갈 유통전문 지식인을 육성하기 위해 실시하고 있는 핵심 전략은 다음과 같다.직급체계직급과 직책을 분리하고 결재단계를 축소하며 Hypertext 조직운영전환배치CDP(경력개발프로그램)도입과 전문가 프로그램을 확대하여 인력 Bank제를 시행해 정기/수시 전환배치를 한다.평 가인재육성과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평가의 공정성과객관성을 확보한다.승 진인재육성을 지원하고 사내경력을 반영하며 승진제도를점차 개선한다.의사소통인간을 존중하는 정신으로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원할하게 하며 참여도를 높힌다.그러면, 실제적으로 기업에서 실시하고 있는 모티베이션 전략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1) 커뮤니케이션현대백화점의 창립 때부터 꾸준히 지켜오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면에서의 전략은 제안활동과 대화모임이 있다.가. 제안활동제안활동이란 직원들이 회사에 대해서 고쳐졌으면 하는 점이나 부족한 점을 회사에 말 그대로 제안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휴게실에 소파가 있었으면 좋을 것 같다든지, 각 사무실에 공기 청정제를 달아달라든지, 화장실에 자판기를 설치해달라는 등의 사소한 것들이다. 만약 사원들의 제안이 받아들여지면 여기에 대해 회사는 일정액(한 제안 당 2만원)의 보상을 받게된다. 많게 받는 사람은 1년에 200만원까지 받는다고 한다. 특별한 경우에만 받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모든 사원이 한 달에 약 6만원 정도의 보상을 받고 있다.◎ 시행 목적과 이유목적은 회사의 창의력과 연구의욕을 계발함과 동시에 전 직원으로부터 당사 업무 개선을 위한 자유로운 제안을 모집하여 그 창의를 활용함으로써 경영의 합리화 및 효율화를 도모하기 위함이라 하겠다. 시행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하는 방법을 개선하여 쉽고, 빠르게 일할 수 있다.§ 일에 끌려 다니지 않고,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다.§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주고, 문제의식을 지니게 한다.§ 인관 관계를 향상시키며, 직장을 활성화시킨다.§ 부하와 상사간의 대화를 촉진시킨다.§ 기업의 체질을 변화시킴으로서 경쟁력을 강화한다.◎ 제안활동의 기대되는 성과발상, 아이디어ㆍ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은 업무의 부림을받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업무를 하고 있다는 마음으로 사물을 주시해 나가다 보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즐거우며 시간경과도 다소간의 괴로움도 잊게 된다.제 안ㆍ제안을 작성함으로써 분석력, 사고력, 정리하는 능력,기록하는 능력이 생긴다. 이것이 자신감으로 이어진다.직장에서 활용ㆍ개선에 의해 업무가 쉬워지고, 모두가 환영할 때에는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보람을 느낀다.ㆍ자기 아이디어로 개선이 착실히 효과를 거두고 회사 가 진보 향상된다. 이것은 무엇보다 기쁜 일이다성 과ㆍ업무가 쉬어진다.ㆍ안전하게 일을 할 수 있다.ㆍ업무의 오류가 없어진다.ㆍ능률이 높아지고, 코스트가 낮아진다.ㆍ서비스가 향상되어 고객이 환영한다.자기가인정 받는다.ㆍ직장과 가족으로부터 자기에 대한 평가가 높아진다.ㆍ직장에서 자기 업무내용, 방식을 상사로부터 이해 받게 된다.ㆍ자기가 예상한대로 평가를 받았을 때는 성취감을 느 끼며, 다음에도 다시 해보겠다는 의욕이 생긴다.상금을받을 수 있다.ㆍ제안의 최대 기쁨은 상금에 있다. 1개월에 25건 이 상을 하여 10만원 이상 받는 사람도 있지만, 이럴 때 의 기쁨은 비길 데가 없다. 주머니 사정이 훨씬 좋아 진다.나. 대화 모임대화모임은 아침 9-10시 사이에 각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모여서 회사나 일에 대해 토론 및 사소한 대화를 갖는 것으로 반드시 대화 모임을 가진 후에는 결과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되어있는 시스템이다. 결과 보고서에는 소속팀의 팀장 및 책임 추진위원의 평가, 결재를 얻은 후에 추진 사무국에 제출한다. 그리고 각 책임 추진위원은 즉시 실시 가능한 부분에 대해서는 즉각 조치를 취한다. 결과 보고서는 추진위원회에서 검토 후에 다시 각 분임조에 회송되고 그것은 소속팀 및 코너에 항상 비치하도록 되어있다.회사에서 이러한 대화 모임을 시행하는 목적은 분임조의 활동을 통해서 직원 상호간의 건전한 인간관계를 조성하여 밝고 명랑한 직장을 만들고 분임조 전원이 자발적, 자주적으로 참여하여 지혜를 모아 경영합리화를 통한 기업체질향상에 기여하기 위함이다. 대부분의 대화 모임의 주제를 회사에서 선정해 주는데 예로는 다음과 같다.월 별주 제월 별주 제1 월물자절약, 원가절감7월고정고객의 확보 및 관리2 월문서 보안 관리8월재고관리 효율화 방안3 월접객 서비스 강화9월매장 청결 관리 방안4 월직장 근무분위기 개선10월백화점이미지 강화 방안5 월매출증대방안11월디스플레이 수준 향상6 월컴플레인 감소 방안12월소방 및 안전관리예) 월별 대화의 모임주제(2) 급 여아직까지는 전직원에 대한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지는 아니하고, 과장 이상은 연봉제를 실시하고 그 이하는 월급제를 적용하고 있다. 급여의 평가방식은 MBO를 도입하고 있다. 평가는 동료와 상사가 그 직원에 대해 평가한 것을 자료로 한다. 자료를 토대로 평가를 할 때의 기준은 현재의 일의 성과와 앞으로의 잠재 능력이고 그에 따른 등급을 나누게 된다. 성과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잠재 능력도 평가 기준에 들어가는 만큼 성과와 관련이 없는 그 조직원만이 가진 능력이 있다면 그것 역시 평가에 반영한다. 예를 들면, 사원의 성과가 그리 좋지는 않지만 중국어를 잘한다면 앞으로 중국 진출 시에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에 평가할 때 그것을 반영한다.만일 사원이 자신에 대한 평가를 인정할 수 없다면, 인사위원회를 열어 다시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인사위원회는 언제라도 사원이 원하면 열 수 있기 때문에 이것에 대한 부정적인 보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평가서를 개인이 요구할 시에는 열람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직원들이 스스로 자유롭게 자신에 대한 평가를 피드백 해 볼 수 있다.구성원들의 합리적이고 만족할 만한 성과비례형 임금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과학적인 평가제도와 보상체계를 개발해서 시행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제 1단계로 목표 관리제를 도입 시행하고(현재 시행 중) 2단계로 평가제도의 개선 및 정착, 제 3단계에는 보상체계 개발 및 도입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과제는 다음과 같다.중 점 추 진 과 제목표관리제ㆍ성과비례형 임금체계 구축ㆍ임금체계의 단순화ㆍ성과에 대한 개인기여도ㆍ임금 체계 탄력성 부여신 평가제ㆍ공정/과학적인 평가기준ㆍPositive 육성형 평가도입ㆍ평가 신뢰도 확보ㆍ목표관리 및 보상연결(3) 교 육이 기업은 상당히 인재개발과 교육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 인재개발원, 현대유통대학원/대학, 숭의 여대 현대 캠퍼스와 서비스 아카데미 같은 교육시설을 갖추고 사원의 교육에 힘쓰고 있다. 인재개발원에서는 직급에 따른 교육으로서 승진 당해 년도에 필요 역량을 배양하는 필수 교육과 경영교육 /경영관리에 필요한 다양한 스킬을 배양해주는 강의 등의 선택 식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인재개발원의 부설 교육기관으로 상설로 운영되는 현대유통대학원/대학, 숭의 여대 현대 캠퍼스와 서비스 아카데미가 있다. 각각의 경우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현대 유통 대학원/ 대학정사원의 경우에 해당하는 교육으로 국내 유명 교수님들을 초빙하여 유통부분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제도이다. 시험을 쳐서 1년에 60명을 선발하고 있는데 주임-대리 사원들은 유통대학에 진학가능하고 보다 높은 직급의 사원들은 유통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다. 유통대학교와 대학원의 경우 1년의 교육기간으로 진행되며 약간의 학사운영상의 차이가 있다. 유통대학원에서는 교육과정에 해외연수가 포함이 된다. 해외연수는 제각기 설정한 연구테마에 따라 연구대상 지역을 선정, 약10일간의 해외연수를 실시하며, 비용부담은 개인 50%, 회사 50%로 하고 있다. 반면 유통대학교에서는 수료 후에 해외연수 및 각종 외부교육의 기회 제공한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제도로 회사에 뜻이 있는 모든 사원들은 외국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숭의 여대 현대 캠퍼스숭의 여대와 연계하여 실시하고 있는 대학교육으로서 판매사원의 경우 5사을이 5사갑으로 승진할 경우 받을 수 있다. 여성인력에 대하여 직무와 병행하여 자기계발 기회와 학위취득기회를 제공한다. 일반 전문대와 마찬가지로 2년 4학기 제이며 첫 학기의 학비는 무상 지급되고 있으며 매 학기에 40%의 할인을 해주고 있다.◎ 서비스 아카데미판매직원들의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실시되는 교육으로 인재개발원의 내부 시설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200평 정도의 규모이지만 서비스 교육만을 전담하는 5개의 실습교육장을 비롯해 각종 첨단 서비스 교육 기자재를 부대시설로 갖추고 교육에 활용하고 있다.또한 MBA business 과정이라 하여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지는 교육과정이 있다. 또한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교육을 받는 사원들 중에 성적 우수자의 경우에는 외국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며 사내의 교육관(미아동)이 있어 누구나 쉽게 할인된 가격으로 이용 가능하다.현대는 21세기 종합 유통서비스 산업의 주역이 될 미래 지향적 유통서비스 분야의 인재를 양성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위해 인재육성 제도를 정비하고 실천하고자 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중 점 추 진 과 제
또 다시 살펴보는 현대미술1. 색채와 형태의 체계를 부수며미술에 있어서 20세기는 르네상스 이후 미술을 지배해 왔던 형태와 색채의 체계를 무너뜨리는 조형의 혁명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담하게 형상을 조각조각 분석하여 보다 실제적인 현실성을 추구하려 했던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주의, 야수 라고 불리울 정도로 강하고 거친 원색을 서슴지 않고 사용함으로써 색채를 형태로부터 분리 또는 해방시키려던 마티스의 야수파, 형태의 표면과 그 몸짓을 가능하게 하는 해부학적 토대 사이의 소통관계를 단절시키고 선행경험에 논리적으로 부합될 수 없는 몸짓들을 보여준 로댕의 시도들은 새로운 세기의 시작을 장식하기에 충분히 혁신적이었다.미술사가인 곰브리치가 지적하였듯이 현대미술은 전통과의 단절 을 목표로 삼아 숨가쁘게 변화의 변화를 거듭해왔다. 19세기까지는 한 세대, 혹은 한 시대를 지배하는 양식의 미술은 느린 변화를 일구어왔으나, 20세기에는 한꺼번에 여러 다양한 양식이 공존하면서 새로움 의 추구를 최고의 미덕으로 삼아 누구나 전위Avant-garde 의 위치에 서고자 하였다.20세기 미술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며 모더니즘 미술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추상의 출현은 미술가들이 외부세계의 재현이라는 임무를 버리고, 유기적인 무정형의 선들이나 기하학적인 형태를 통하여 인간의 정신성과 보편적·이상적 질서를 표현할 수 있게 만들었다. 추상의 발생은 19세기 중반에 나타난 인상주의 이후 회화의 내적 변화에 연유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원근법적 공간이 근거로 했던 유클리트 공간에 대한 불신, 불확실성의 원리, 시간과 공간의 절대성을 무너뜨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 등 미술 외적인 것에서도 연유한다.1,2차 세계대전은 미술사에서도 획을 긋는 커다란 사건이었다. 1차 대전이 끝나갈 즈음 전쟁을 혐오하고 나아가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 낸 정치, 제도, 전통에 반감을 가졌던 일군의 예술가들은 급기야 반미학을 표방하기에 이르는데, 다다운동으로 명명된 이들의 반항적인 사고와 기존의 모든 형식을 뒤엎는 행위들은 20세기 전위미술의 뿌리가 된다.작품을 만들지 않고 대량 생산된 물건들 중 하나를 선택하여 사인만 하는 레디메이드 행위역시 이후의 오브제 미술에 커다한 영향을 미쳤다. 이들 흐름에 내재하는 우연성의 원리와 콜라주의 원리는 합리적 이성과 논리적인 사고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원리들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무의식의 무한한 세계를 탐구함으로써 이성이 할 수 없었던 사고의 자유로움이라는 정신의 해방을 추구했던 초현실주의 미술운동으로 이어졌다.2. 지속되는 기존미술과의 관계들2차대전 이후의 미술에서 두드러진 현상은 대중미술과 순수미술의 영역이 서로 침투하여 이른바 고급/저급문화의 이원론적 분리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였다는 점이다. 그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팝 아트는 코카콜라와 복제로 대변되는 현대 대도시의 삶을 반영한다.다른 한편 기존미술에 대한 거부는 미술가들을 최소한의 작업과정과 최소한의 의미를 지닌, 혹은 비미술과 최소한의 차이만을 허용하는 미니멀 아트, 그리고 아이디어 혹은 개념만 가지고 작업은 하지 않는 개념미술의 비물질화 단계를 추동시켰다. 이 변화과정은 현대 과학자들의 업적이나 실존주의, 현상학, 정신분석학, 구조주의, 후기구조주의 등 철학, 심리학과의 밀접한 연관 속에서 현대인들의 다양한 사고방식과 가치추구와 동일 궤도를 그리며 진행되었다고 하겠다.또한 1960년대 과학기술 및 기계와 미술의 결합은 순수미술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되었으나 지금의 미술상황에서는 기술력을 동원한 매체 및 영상작업에서 보듯이 없어서는 안 될 주요한 요소로 자리잡게 되었다.그러나 과학기술의 발전과 진보를 명분으로 진행되어 온 지구생태계의 많은 위기적 문제상황은 근대성 에 대한 깊은 성찰적 반성을 요구하였다. 1960년대 말 서구에서는 근대 이후 성립한 인간과 자연의 이원론적이고 위계적인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확산되면서, 인간의 생산활동인 미술도 과학기술문명과 환경문제에 종속된다는 생각을 받아들인 미술가들이 등장하였다. 전체환경을 글로벌 캔버스로 접근하는 대지미술이 대표적인 예인데, 이들에게서는 미술작품이 고립되고 정지된 물체(오브제)가 아니라, 상호관련을 맺고 있는 역동적인 체계의 일부로 구성된다. 이러한 생태계에 대한 인식 확장과 더불어 이른바 타자 들의 목소리도 높아지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페미니즘 운동은 1970년대 권리찾기와 여성성에 대한 강한 긍정의 입장에서, 1980년대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안에서 여성이 재현되는 이데올로기적 방식을 분석해내는 지점으로 변화, 발전되어 왔다.
독일 표현주의Ⅰ.서론독일의 미술가인 빌헬름 보링거(Wilhelm Worringer)는 1911년 잡지에 발표한 세잔느, 반고흐, 마티스에 관한 논문에서 '표현주의'라고 하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표현주의라는 말은 처음에는 인상주의에 반대되는 경향을 지칭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인상(Impression)이란 볼래 외적인 것이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것을 뜻한다. 이에 대해 표현(Expression)이란 말은 반대로 내적인 것을 밖으로 밀어내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인상에서 표현으로의 변이는 그대로 회화의 대상이 외적 세계에서 내적 세계로 옮겨간 것을 나타낸다. 즉 외부 세계의 제현을 기본으로 삼고 있던 사실주의 회화가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새로운 말로 된 것이다.미술사에서 논의되는 표현주의는 유럽에서 하나의 주요 흐름으로 나타난 1905년과 신증물성이라 불리는 사실주의적 미술의 주류를 이루게 된 1925년 사이의 미술을 지칭한다. 따라서 넓은 의미로 표현주의 미술은 1905년에 시작된 프랑스의 야수파, 같은 해에 결성된 독일의 다리파, 1911년 첫 단체전을 가진 청기사파, 그리고 베를린과 빈에서 개인적으로 활동한 화가들, 나아가서는 1915년과 1925년 사이에 앞서 열거한 미술들과 유사한 형태 언어들로 사회 비판적인 작품을 제작한 제2세대 독일 미술가들이 작품을 포함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좁은 의미로는 독일의 다리파와 청기사파를 뜻한다.Ⅱ.독일 표현주의 미술의 형성Ⅱ-1. 사회적 배경19세기말의 독일의 미술은 아직 뚜렷한 움직임이나 화가를 배출하지 못하고 혼란을 거듭하고 있었다. 19세기 프랑스 미술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의 거듭된 탈바꿈을 진행하고 있었던 반면 독일은 19세기 초 프리드리히(Friedrich)와 같은 낭만주의 풍경화가들을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미술운동이나 미술가가 나오지 않고 있었는데 이러한 현상은 당시의 역사적 또는 사회적 실제와도 관련이 있다.당시 독일은 산업혁명에 있어서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뒤져 있었고 19세기 지 못한다고 믿었으며 디오니소스적인 본능에 의한 인간의 창조력을 찬양하였다.20세기 초 독일 표현주의 미술은 19세기 후반에 나온 예술에 대한 이론적, 비판적, 역사적 저술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콘라드 피들러(Konrad Fiedler)는 미술은 다른 어떤 예술형태로 표현될 수 없는 미술만의 조형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화가의 '내적 필연성'을 중시하였다. 피들러의 주된 논지는 결국 예술작품이란 본질적으로 작가의 독특한 시각적 지각의 결과로서 작가의 선택능력에 의해 자유로운 형태가 주어진 것이라는데 있다.같은 시기의 선구적인 심리학자 테오도르 립스(Theodor Lipps)는 미술과 보는 사람의 심리적 반응을 토대로 '감정이입'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그는 인간의 자연의 어떤 대상에 주관적인 반응을 하며 어떤 작품을 보았을 때 그 작품과 자신이 동일화되는 것을 느낀다면 작품에 미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립스의 뒤를 이은 리글은 한 시대의 미술은 그 시대의 목적과 의도에 부응한다고 말하면서 미술과 개인과 그 시대의 시대정신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 역시 고전을 표준으로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면서 이제까지 퇴보기로 생각해오던 후기 로마, 중세, 그리고 바로크 미술에 관심을 가졌다.립스와 리글의 이론을 복합한 보링거는 1908년 이라는 논문을 써 독일에서의 표현주의 운동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그는 재현적 양식의 창조에서 감정이입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한편, 현대작가들의 위기는 자연으로부터의 도피, 즉 자연의 선택적인 조직화나 추상화에 대한 내적 충동에 있다고 보았다. 인간의 자연과 융화할 때, 즉 감정이입이 가능할 때는 자연을 그대로 재현하는 사실적인 회화가 나오며, 자연과 대립되고 내적 불안을 느낄 때는 자연을 변형시켜 추상적인 회화를 그리게 된다고 말하여 표현주의의 선도적인 지지자이자 선전자가 되었다.Ⅱ-3. 미술사적 배경1). 분리파 운동과 유겐트 스틸(Jugend Stil)의 영향분리파 운동은 19세기말 독일에서 일어났던 반 인식한 최초의 것이었는데 이러한 새로운 조형추구는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몰이해를 불러 일으켰고 결국 유겐트 양식은 그 자체가 시시한 일시적인 유행으로 취급되어 버렸다.그러나 유겐트 양식은 조형성에 문제를 제기함으로서 독일의 새로운 미술에 결정적인 일보를 내딛게 하였고 그것은 오늘날 다시 돌이켜 보면 독일 표현주의의 발생을 본질적으로 준비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유겐트 양식은 오랫동안 응용미술에 있어서의 조형이라고 하는 과제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에 그 기반을 부여해 주었던 고흐, 고갱, 뭉크 등의 회화로 눈을 돌리게 하는 결과가 되었다.2). 뭉크, 고흐, 고갱의 영향어느 화가들보다 독일에서 표현주의 미술의 태동에 자극을 준 화가는 뭉크였다. 그는 얼굴이나 자세의 왜곡을 통해, 또 이미지와 공명화는 듯한 색채와 선을 사용하여 인간의 불안과 절망, 고독, 조바심의 내적 심리를 표현하였던 화가였다. 뭉크가 독일미술계와 관련을 갖기 시작한 것은 1892년이고 그 이후 베를린, 쾰른, 뒤셀도르프, 드레스덴에서 전시를 하였고 특히 1902년 28점의 작품이 베를린 세제숀에 출품되어 화제가 되었으며 그의 작품에 대한 글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특히, 그의 작품 속에서 강하게 시사된 성과 인생의 체험과 같은 주제는 다리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반 고흐와 고갱 역시 표현주의의 태동에 영향을 미쳤던 화가들이다. 반 고흐의 작품들은 1901년 이후 독일에서 전시되었으며 그의 왜곡된 형태나 율동적인 화면구성, 강렬한 원색의 사용등은 표현주의 작가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쳤으며, 서구 문명을 거부하고 감정적 형식 및 색채로서 표현한 고갱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풍부한 색채와 자연과의 일치는 표현적 방법을 모색하던 20세기 화가들 직접적인 모델의 되었다.Ⅲ. 독일 표현주의의 미술의 특징1. 표현주의 미술의 원리표현주의는 세기말 유럽인의 위기 혹은 종말의식의 배경 하에서 이해될 수 있다. 표현주의는 18세기의 질풍노도운동에 상응하는 파토스를 지니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그과 일치하던 미술에 반대함으로서 전 세기와의 단절을 시도했다. 앞 세대를 이렇게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자세는 이제까지 찾아볼 수 없었던 것으로 이를 통해 표현주의는 다음과 같은 아방가르드적 특징을 획득하게 되었다. 표현주의는 첫째 반 자연주의적이고, 둘째 반 물질주의적이며, 셋째 주관주의적이고, 넷째 반 도시적이고 따라서 문명에 반대했으며, 끝으로 반 부르주아적이다.표현주의자들은 눈에 보이는 것 뒤에 존재하는 것, 정신적인 것 및 주관적인 것을 강조했다. 물질세계를 거부하는, 즉 반 물질주의적 태도는 그들로 하여금 19세기까지 서양미술을 지배했던 미술원칙인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거부하도록 했다.그들의 이러한 반 자연주의적 입장의 기저에는 문명화되고 복잡해진 사회를 진보된 것으로 봄으로써 자연주의 미학을 정당화시킨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반발이 깔려있다. 그들은 당시만 해도 탁월한 기술로 복잡하고 자세하게 묘사한 미술보다 낮게 평가되던 미술 즉, 형태가 단순하고 세부 묘사가 생략된 원시인들의 미술과 서구의 중세 미술에서 조형상의 영감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원시인들의 생활방식과 예술관은 문명에 반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20세기 인들에게 정신적인 면에서도 모델이 되었다.다른 한편으로 표현주의의 반 자연주의적인 기법은 기존의 미/추에 대한 구별을 말소 시켰다. 표현주의자들의 전형적이고 생경한 색채, 과장되거나 일그러진 형상은 19세기의 예술을 위한 예술에 대한 반대입장의 표명으로 볼 수 있다.표현주의 미술의 반 부르주아적인 자세는 그들이 도식적이고 부르주아적인 삶을 묘사한 인상주의에 반대한 점에서 뿐만 아니라 유겐트 스틸을 반대한 사실에서도 발견된다. 그들은 세기말과 금세기 초 유럽전역에 유행되었던 유겐트 스틸 미술이 우아하고 세련된 조형언어로 일상을 미화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미학적 유토피아를 꿈꿨지만, 실제로 이 양식은 소수 계층만이 직접적으로 향유할 수 있었던 것임을 간파했다. 또한 소수의 부르주아들의 이양식을 허용함으로써 그로부터 벗어나려고 했으며, 다리파미술은 미술 형식상은 문제이기 앞서 세계관의 표명이라고 할 수 있다.다리파의 창조자로는 에리히 헤켈, 에른스트 루두비히 키르히너, 칼 슈미트 로틀루프, 이외에도 1909년 그룹을 떠나버린 프리츠 브라이르가 있으며, 여기에 막스 팩슈타인이 가담하였고 동시에 2년동안 뿐이었지만 에밀 놀데도 가담하였다. 마지막으로 오토 뮐러가 1910년에 다리파에 참여하였다. 다리파는 독일 미술의 전위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활동하는데 1910년에 일어난 '베를린 분리파'전에서의 기성세력과의 논쟁에서 다리파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고 신분리파와의 합동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나 1913년에 해체되었다.2. 청기사파(Der Blaue Reiter)다리파의 활동무대가 주로 중부와 북부 독일에서 일어났다면 남부 독일에서는 좀 더 감성적이고 범 자연적인 표현주의 미술이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뮌헨은 다른 도시보다 문화의식이 강했던 곳이었고 국제적 흐름에 개방적인 시였는데, 뮌헨에서의 표현주의 운동은 다름 아닌 청기사로 알려진 것으로서 이 표현주의 그룹의 가장 중심적인 인물은 당시 독일에 거주하던 러시아인 바실리 칸딘스키(Vasili Kandinsky)였다.청기사파는 다리파의 과민하고 날카로움 심리적 불협화음의 세계와 대치되는 조형적 조화와 시적이며 때로는 신비주의적인 세계를 지향하였는데 그것은 필연적으로 추상적 조형에로의 길을 트는 움직임이기도 했다. 칸딘스키의 회화는 순전히 선과 색채의 리듬에 의해 수상에로의 길로 변모해가고 있었는데 이러한 경향을 이론적으로 변호해주고 있는 것이 그의 저서인 (1910년) 이었다. 이 책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추상회화의 바탕은 따라서 인간의 내면세계이며, 이것은 미술가의 내적인 필연성에 의해 표출되고 이를 표현하는 형태와 색채는 외부세계가 아니라 비무질적인 세계, 즉 내적인 내용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와 색채를 통해 물질세계가 용해되고 이를 통해 추상화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칸딘스키는 관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