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ercial 그 가능성과 전략'보는 것'에 익숙해진 비디오 세대들에게 동영상은 주목률이 높다. TV가 광고 매체로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광범위한 시청자 집단에게 광고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이점뿐만 아니라 광고메시지가 움직이는 영상으로 제작되기 때문이기도 하다.비디오 세대에게 가장 매력적인 동영상은 '영화'다. 영화의 종류, 내용 등을 떠나 '영화' 자체가 이미 신세대의 키워드가 됐다. 그래서 영화는 젊은 세대를 공략해야 하는 광고주에게 중요한 마케팅 채널이 되었다.상품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광고영화는 영화마케팅 전문업체 헬로우닷TV가 한발 앞서 선보였다. 헬로우닷TV)는 영화(Movie)와 상업광고(Commercial)을 결합시켜 무버셜(Movercial)이라는 개념을 제창했다.BMW의 도발, 하이어 프로젝트가 그 것인데 영화가 광고를 적극 수용하는 전략이 극대화되면 영화와 광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세계적 자동차 메이커 BMW는 하이어 프로젝트를 통해 영화 형식에 광고 메시지를 담은 '무버셜'을 제작, 웹사이트(www.bmwfilms.com)에서 선보였다.BMW는 세계적 감독들을 고용해 인터넷 영화를 제작했는데 시리즈의 핵심은 노상에서 벌어지는 자동차 추격전. 5편의 영화 모두 BMW의 다양한 차종을 등장시켜 차량 성능을 과시하고 있다.하이어 시리즈에서 영화의 줄거리, 왜 쫓고 쫓기는 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추격전에 사용되는 BMW의 차량이다. 그로 인해 차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킨다.PPL이 소품을 단순히 노출시키는 수준이라면 무버셜은 상품을 영화의 중심소재로 다룬다.그로인해 광고주 입장에서 보자면 무버셜은 상당히 매력적인 광고기법이다. 우선 홍보하고자 하는 제품의 노출 효과가 매우 크다. TV는 단순노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채널로 광고비로 20∼30억원은 들여야 하지만 헬로우닷TV가 제작하는 무버셜 프로젝트 비용은 1∼2억 수준으로 저렴하다.TV CF의 경우 보통은 15 ~ 30초 동안 제품을 알려야 한다. 30초라는 시간은 제품을 알리기에 넉넉잖은 시간이다. 그러나 무버셜은 10분 이상의 상영시간 동안 반복해서 제품을 알릴 수 있고 제품 자체가 영화 주인공이기 때문에 단순히 상품을 노출시키는 PPL보다 노출 효과도 크다.무버셜이 TV CF와 다른 또 한 가지는 표현의 제약이 없다는 점이다. 무버셜은 인터넷 상영을 전제로 하는 영화로 방송에서 할 수 없는 표현들, 섹스 어필한 표현들도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재미를 위해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치들을 사용하는 것은 현재 단계에서 무버셜이 안고 있는 한계다. 구성만으로 긴장감과 재미를 확보하는 작품을 만들 만한 역량이 없다는 반증이다.
나에 경쟁 상대는 타사의 음료가 아니라 물이다!! 라고 말했던 코카콜라는 정말 물을 경쟁상대로 잡을 만큼 지금 전 세계 청량 음료 시장의 제조 및 마케팅에서 선두 적인 위치를 견지하고 있는 코카-콜라사는 그 초창기 때부터 전통적으로 매우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펼쳐왔다. 그 중 광고는 선두 주자로서의 코카-콜라의 입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콜라사의 광고 집행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그 핵심 메시지는 전 세계적으로 동일하며, 그것은 삶에 기쁨을 주는 독특하고 어디서나 가능한 청량 음료로써의 "상쾌함"이다. 현재 코카-콜라 광고는 그 메시지를 강화하기 위하여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고 있으며, 주요 광고 매체인 TV, 라디오, 신문, 잡지뿐 만 아니라, 각종 인쇄물 그리고 새로운 매체로 부상하고 있는 사이버 공간 활용을 통한 광고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코라콜라사의 브랜드 전략코카콜라의 성공은 특유한 맛에서라기보다는 병의 모양과 로고 등에 의한 광고에서 기인되며, 전 세계의 모든 기업과 상품을 통틀어 브랜드 가치가 가장 높은 상품으로 보통 명사화되어 있다. 코카콜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자산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코카콜라의 역사를 같이한 코카콜라글자의 스펜서체, 80년 된 코카콜라 콘투어 병, 50년 역사의 빨간 원형 아이콘, 1920년대의 "마시자 코카콜라", "상쾌한 이 순간"이라는 광고문구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거의 변함 없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듯 코카콜라사는 다른 제품과 구별되어 지는 독특한 브랜드 상표를 만듦으로써 사람들에게 좀더 제품을 오래 기억시키고 또한 그것을 오랜 세월 사용함으로써 친숙함을 느끼게 한다.그리고 듣기만 해도 코카-콜라임을 알게 해주는 코카-콜라 슬로건은 1929년 "상쾌한 이 순간(The Pause That Refreshes)이 가장 오래 지속한 바 있다. 그 후, 올해로 6년째를 맞이한 글로벌 광고 슬로건인 "언제나 코카-콜라(Always Coca-Cola)"는 현재 120편 이상이 제작되어 전 세계에서 방영되고 있다. 본 광고는 전 세계 적으로 가장 널리 사랑 받는 음료로써의 상쾌한 매력을 강조하며, 각각 다른 특성의 소비자와 요구에 잘 맞춘 광고로써 그 명성이 높다.1) 코카콜라 빨간 원형 아이콘{코카콜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자산인 코카-콜라 빨간 원형 아이콘은 코카콜라 원형 아이콘은 4가지의 독특한 요소- 둥근 원판, 코카콜라 고유의 빨간 색, 조지아 그린 색의 코카콜라 콘투어 병, 코카-콜라 스펜서체 로고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코카콜라 고유의 빨간색, 콘투어 병 그리고 스펜서체 로고는 그 자체만으로도 코카콜라를 상징이다.(1) 스펜서체 로고{빨간 바탕에 하얀색 글씨로 쓴 코카콜라의 스펜세체 로고는 프랜크 로빈슨이 코카 나뭇잎과 콜라나무 열매에서 추출해낸 원료를 써서 만들었다고 해서 두 단어를 합성해서 이름을 만들어 내었다.코카콜라 로고는 독특한 글씨체로 코카콜라를 상징하는 마케팅 요소이다. Coca-Cola라는 이름을 흐르는 듯한 스펜서체로 표기하였고, C자를 절묘하게 매치 시켰다. 오늘날,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잘 알려진 이 상표는 코카콜라의 독특한 상쾌함, 맛, 그리고 정통성을 상징할 분만이 아니라 모든 소비자 커뮤니케이션의 바탕이 된다.(2) 콘투어 병{콘투어 병은 미끈한 곡선을 자랑하면서 모든 상품 패키지의 어머니라고도 불리 울 정도로 80년 이상 그 완벽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상품 포장이다. 코카콜라사의 첫 보틀러 사는 많은 유사품들 사이에서 코카콜라 제품을 차별화 시킬 수 있는 독특한 용기디자인이 필요함을 느꼈고, 이에 코카콜라사는 어둠 속에서도 그 모양을 느낄 수 있는 코카콜라 컨투어 병을 고안해내게 된 것이다. 밋밋하고 직선적인 다른 음료 용기와 구별되는 컨투어 병 특유의 모양을 만들어 내기 위해 그는 코코넛 열매의 흐르는 듯한 세로 선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코카콜라 컨투어 병은 1950년 소비자 제품으로서는 처음으로 TIME지의 커버를 장식하였고, 1960년 미 특허청에 상표 등록되면서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트레이드마크이자 코카콜라의 상징으로 영원히 보장받게 되었다.미끈한 곡선을 자랑하며, 모든 상품포장의 어머니라 불리는 코카-콜라 컨투어 병은 현재 전 세계 200여 개국의 소비자들에게 소개되고 있으며, 현대문화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인정 받고 있다.2) 산타클로스와 북극곰 캐릭터코카콜라사는 전설 속의 인물인 산타클로스와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오는 북극곰을 제작하여 코카콜라의 대표적인 광고 캐릭터로 사용하였다.매년 크리스마스마다 산타클로스가 전 세계인들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찾아오는 것과 같이, 코카콜라사도 산타클로스의 이미지와 코카-콜라 제품을 통해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기쁨과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북극곰은 코카콜라의 친근함을 떠올려 주어,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즐겁고 행복한 순간의 대명사로 인식시키고 있다.북극곰, 산타클로스 등 캐릭터를 이용한 이벤트, 인형, 제품, 광고, 여 북극곰, 산타클로스 등 캐릭터를 이용한 이벤트, 인형, 제품, 광고, 여러 행사 등 캐릭터를 이용한 마케팅을 활발히 전개해 나가고 있다.{매년 12월이면, 친근하게 다가오는 코카-콜라의 대표적인 광고 캐릭터가 있다. 바로 북극곰이 그것이다. 코카-콜라사는 지난 1993년 코카-콜라 클래식 광고 캠페인을 위해, 소비자에게 친근한 코카-콜라 이미지에 맞는 북극 곰 를 개발, 광고에 도입시킨 이래, 이 북극곰을 코카-콜라의 대표적인 광고 캐릭터 중 하나로 발전시켜 왔다.코카-콜라 북극곰은 미국 로스 앤젤레스에 위치한 프로덕션 전문 회사 엣지 크리에이티브(Edge Creative)사에 의해 탄생되어,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전문 회사인 리듬 앤드 휴(Rhythm & Hues)사가 space-age라는 컴퓨터와 첨단 그래픽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12주에 걸쳐 완성하였다. 이 북극곰들은 TV광고상에서도 아무런 어색함 없이 그 완벽성을 이뤄 현재 코카-콜라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발전하게 되었다.{북극해를 보면서 코카-콜라를 즐기는 북극곰의 모습을 담아93년 그 첫 선을 보인 이래, 북극곰 TV 광고는 최근 선보인 것을 포함해 현재까지 모두 7편이 제작되었습니다. 94년에는 스케이트를 타고, 스키 점프를 하던 곰이 등장했고, 이후 두 마리의 쌍둥이 아기 북극곰을 선보이면서 가족의 이미지도 강화되었다. 1997년 겨울에 선보인 코카-콜라 북극곰 광고는 북극곰 가족이외에 아기 물개가 등장함으로, 서로 도우며 코카-콜라를 나눠 마시는 모습을 보여줘 가족 사랑은 물론 한 차원을 높은 화합과 우정의 메시지를 하고자 했다. 1998년에는 코카-콜라 북극곰 시리즈의 7번째 광고인 편이 소개되었다 .{매년 12월이면 모든 지구 마을 아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모든 부모님들을 할아버지로 변신시키고 마는 산타 클로스 할아버지가 코카-콜라의 작품이다.빨갛게 상기된 볼에 드리운 인자한 미소, 부드럽게 곱슬 거리는 흰 턱수염과 빨강 모자에 까만 부츠를 신고 어깨엔 커다란 선물 보따리를 둘러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굴뚝을 드나드는 장면은 이제 너무나 친숙해져 상상이 아닌 현실로 여겨지고 있습니다.어린이들은 물론,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전설 속의 인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어른들조차 쉽사리 깨고 싶어하지 않는 꿈과 환상의 주인공인 산타클로스. 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이미지가 1931년, 코카-콜라 광고에 사용되기 위해 개발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당시만 해도 산타클로스의 전설은 나라마다 다양했고 기념방식과 기념일도 달랐으며, 산타클로스의 이미지 역시 꼬마 요정의 모습에서부터 장난꾸러기 요정, 싸움꾼 난쟁이 등으로 다양했는데, 코카-콜라 광고를 담당했던 미국의 화가 헤든 선드블롬(Jhaddon Sundblom)은 산타클로스를 작고 어린 요정의 모습이 아닌 현재 우리에게 알려진 이미지로 창조해냈는데, 산타 클로스의 트레이드마크인 빨간 옷과 흰 수염은 바로 코카-콜라의 로고색과 신선한 거품을 상징화한 것이다.코카콜라의 산타클로스는 전설 속의 인물처럼 종교적인 진지함과 엄숙함에 깃 든 인자한 이미지보다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러 왔다가 냉장고 문을 열어 콜라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장난스러운 모습, 아이들의 우유와 과자를 뺏어먹는 익살스러운 아이들의 친구로 그려졌다. 우리들에게 익숙한 산타클로스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이러한 코카콜라의 의도가 얼마나 성공적이었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매출액 향상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연말... 빈잔을 채워라 !!목차마케팅 목표 매체 목표 빈잔을 채우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전략 정리 빈잔을 채우기 프로 모션위스키 전체 시장 추세는 …위스키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2000년 시장규모 1조 2천억 예상 1998년 이후 연평균 36% 성장위스키 주세 인하, 경기 활성화 심야 영업규제 완화, 벤처 특수 등의 요인으로Mind Share는 2위딤플에 대한 소비자 인지는 …광고 목표30~40대를 상대로 12월 ~5월 이르는 6개월동안 매출액 35%의 증가와 딤플의 브랜드 mind share를 1위로 높인다.위스키 heavy user인 30대 남성층과의 심리적 밀착성을 강화 딤플 고유의 브랜드 Recall 요소 창출매체 목표30~40대를 표적수용자로 두고 연말인 12월~5월 까지 인쇄매체인 잡지를 주력매체로 전단지와 신문 등의 보조매체로 사용하여 전국권으로 광고연중최대 성수기로 한해를 마무리 짓는 연말이 한 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연말 연시면 으레 망년회를 비롯한 각종 술자리가 따르게 마련이다. 주류업계로서는 연중 최대 성수기다.자칫 이번 연말 성수기를 놓칠 경우 최악의 실적이 우려될 수 도 있다. 새해의 시작으로 직장 상사나 친척의 선물용으로 많이 이용 경쟁사들도, 인쇄매체를 주력으로 하여, 광고를 하고 있다,.빈잔을 채우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인쇄 매체의 경우 직장인들이 쉽게 접하는 신문을 중심으로 잡지등에 광고. 주 음용 장소인, 룸싸롱이나, 단란주점, 나이트 클럽 등을 위주로 전단지와 판촉 물을 투입. 광고 지역은 전국을 대상으로 하되, 주류 판매 전문점과 업소를 최대한 고려. 업소의 Dealer에게 꾸준한 광고와 함께 직장인들에게 연말연시 등의 동절기에 광고를 집중 해야 하는 파정형으로 한다.인쇄 매체의 경우 직장인들이 자주 보는 일간지에서 경제,비즈니스 면을 최대한 활용하고, 경제 전문지와 비즈니스 관련 잡지에 최대한 광고 망년회가 시작되는12월부터 VIP고객을 상대로 자사의 위스키를 소개하는 전단지와 판촉 물을 내고 망년회 시즌이 절정에 이르는 오는 2월 까지 보낸다.인쇄 매체의 활용 방안위스키의 주음용 장소위스키는 63.1%의 소비자가 단란주점이나 룸살롱에서 마시며, 위스키의 Hearvy User일수록 단란주점, 룸살롱에서의 음용율이 높다.조사대상 전체단란주점 - - - - 44.5% 룸살롱 - - - - - 18.6% 카페 - - - - - - 16.4% Bar - - - - - - 10.7% 나이트클럽 - - - 7.9% 기타 - - - - - - 1.9%Heavy User단란주점 - - - - 49.7% 룸살롱 - - - - - 22.5% 카페 - - - - - - 11.7% Bar - - - - - - 7.6% 나이트클럽 - - - 6.3% 기타 - - - - - - 2.3%[자료원 : '99년 KRC-RESEARCH 자료]소비자가 생각하는 상표 지명업소에서 권해주는 상표 (15.0%)같이 간 사람이 상표 지정 (39.3%)내가 직접 상표 지정 (45.7%)(N=300)20%만 소비자가 지정 대부분 업소 권유 수용 웨이터나 마담이 권하는 것 수용 손님 유형이나 기타 특성 고려 보다는 재고 상태를 감안해서 권유 손님보다 먼저 권하는 경우는 신상표일 때업소 - 심층 면접 결과“소비자의 브랜드 선택에 영향력이 큰 Dealer(업주,종업원)의 공략이 병행되어야 실질적으로 소비자의 지명구매를 높일 수 있다는 것에 감안하여, 광고와 업소와 소비자 프로모션 등 제 3자 구도로 딤플의 브랜드 지명율을 제고 할 수 있다”업소를 내 편으로!! 전단지와 판촉물 다량 업소등에 배포국내에서 판매되는 위스키의 90% 이상이 룸살롱 단란주점 등 이른바 '업소'에서 팔린다고 한다. 웨이터 등 업소 종사자들이 찾아오는 손님에게 적극적으로 특정 회사 술을 권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도 있듯이 개별 업소에서의 매상 차이가 모이면 전체 매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요약연말 연시면 망년회를 비롯한 각종 술자리가 많아 진다. 그에 따라서 술의 판매량이 가장 많이 증가하는 시기이다. 이시기에는 양주 뿐만이 아니라 각 주류업계가 업체마다 자사의 대표상품을 중심으로 광고는 물론 각종 이벤트를 총동원하고 있다. 신제품을 내놓거나 기존 상품을 업그레이드하기도 한다. 이때 성수기를 놓칠 경우 최악의 실적을 기록할 우려가 있다. 얼마나 실속 있고, 독특한 아이디어와 매체 계획을 세우느냐에 따라 판매량의 차이는 엄청나다.빈잔을 채우기 프로모션약 5억원을 들여 시음회와 함께 유흥업소에서 즉석복권을 나눠준 뒤 당첨자를 뽑아 사은품을 나눠준다. 사은품으로는 딤플 선물세트와 문화 상품권 연극 영화화 티켓 등으로 한다. 연극 영화 티켓이나 문화 상품권을 사은품으로 이용함으로써 딤플의 이미지가 고급스럽고 질적으로 높아 보이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nameOfApplication=Show}
Ⅰ. 영화배경이 된 전쟁에 대한 조사ⅰ. 영화배경 : 제 2차 세계대전① 2차 세계대전의 발발 : 인류사에서 가장 거대했던 전쟁, 지구상의 모든 곳에 영향을 미쳤고 모든 것을 황폐해 버렸던 전쟁은 1차 대전이 지난 간 자리에서 피어나던 발전과 성장을 멈춰 버리게 했다. 그러나 사실은 세계 대 공황으로 전 세계는 어디론가 뛰어나가야 할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리고 누군가 그 탈출구를 뚫어 주었다.독일의 히틀러. 그리고 그와 같이 일어난 이탈리아와 일본이 그 주범이다.이탈리아는 새로운 로마 제국을 건설할 꿈을 꾸고 있었다. 독일은 중부유럽에 자국의 늘어가는 인구를 위한 생활공간을 얻고 싶어했다. 일본은 "大東亞 공영권"의 새로운 중추로서의 자기자신을 그리고 있었다. 이들 국가들이 함께 하나의 동맹을 형성했고 이것은 로마/베를린/도쿄 추축, 혹은 간단히 추축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전에 일본은 1931년 만주를 병합했고 1937년에는 중국을 침공했다.1500년이 넘는 시간만에 처음으로 로마에 수도를 둔 로마제국의 첫번째 황제가 되려했던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네디또 무솔리니는 1935년 에티오피아를 정복했다. 한편 그동안 아돌프 히틀러는 한번에 한발자국씩 영토를 넓히려는 그의 목표를 성취하기 시작했다. 1936년 그는 베르사유 조약을 직접적으로 위반하면서 라인란트를 점령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자 그는 더욱 힘을 얻었다. 1938년 3월 그는 오스트리아를 병합하여 독일의 일부로 만들었고 1939에는 체코슬로바키아를 얻기 위해 그의 군대를 파견했다. 비록 프랑스와 영국은 강력하게 불만을 표했으나 전쟁을 피하려는 생각 탓에 어떤 구체적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그러나 독일이 1939년 8월 24일 독일은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9월 1일 독일군이 폴란드에 대한 전면공격을 시작하자.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대한 최후통첩을 공포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폴란드와 맺은 상호협력조약에 따라 독일의 공격을 저지할 조치를 취할 것이 요구루꼬교사건, 중일전쟁 시작11.5 히틀러, 전쟁계획 제시11.6 이탈리아 방공협정 참가1938 3. 독일, 오스트리아를 합병9.30 뮌헨협정 조인1939 3. 독일 체코슬로바키아를 해체5~9. 일,소 국경분쟁, 노몬한 사건5.22 독일,이탈리아 군사동맹 조인8.23 독,소 불가침조약 조인9.1 독일군, 폴란드에 침입9.3 영국,프랑스 독일에 선전11.30 제2차 세계대전 시작됨, 소련,폴란드 전쟁1940 4.9 독일군, 덴마크,노르웨이 침입5.10 처칠, 영국수상에 취임 독일군, 네덜란드,프랑스에 침입6.10 이탈리아, 영국,프랑스에 선전6.22 프랑스 항복9.22 일본, 인도차이나 북부에 진주9.27 독,이,일 3국동맹 조인1941 3.11 미국, 무기대여법 제정4.13 소,일 중립조약 조인5.6 스탈린, 소련수상에 취임6.22 독일군, 소련에 침입7.28 일본군, 인도차이나 남부에 진주8.1 미국, 일본에 석유 수출 금지8.14 대서양헌장 발표10.18 도조 내각 성립12.5 소련국, 모스크바 전면에서 반격개시12.8 일본, 진주만 공격, 태평양전쟁 발발12.11 독일,이탈리아, 미국에 선전1942 1~2. 일본군 마닐라, 싱가포르, 자바섬을 점령3.9 네덜란드군 일본군에 항복6. 일본해군,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배8.7 미군, 과달카날섬 상륙11.8 미국,영국 연합군, 북아프리카에 상륙1943 1. 미국,영국, 카사블랑카 회담 후 무조건 항복방식 선언2. 스탈린그라드의 독일군 항복5.29 일본, 애투섬에서 전멸7.25 이탈리아, 바툴리오 내각성립9.3 이탈리아 항복11.22 영,미,중, 카이로 회담, 카이로 선언 발표1944 6.6 영,미 연합군, 노르망디 상륙7.4 일본군, 임펄작전 퇴각명령7.6 일본군, 사이판섬서 전멸7.18 도조 내각 사퇴7.19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8.25 파리해방10.18 미군, 레이터섬 상륙11. B 29의 일본 본토 공습 본격화1945 1.17 소련군, 바르샤바 점령2. 영,미,소 얄타회담3.7 영,미군, 라인강 도하3.17 먼은 그러한 결과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 시점에 이르렀을 때 미국은 핵무기 --당시는 원자폭탄이라고 알려진-- 개발의 마지막 단계에 있었다. 트루먼은 그의 각료 및 수석 군사고문과 함께 일본에 대해 새로운 폭탄 중의 두개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그러한 전술은 일본이 즉각 항복하도록 만들것이며 많은 희생을 내는 대회전을 피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8월 6일과 8월 9일 미국의 초공위 요새 B-29 폭격기는 원자폭탄을 일본에 투하했다.첫번째 폭탄은 히로시마에 다른 하나는 남부의 도시 나가사키에 투하되었다. 각각 TNT 5만톤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 폭탄들은 기대한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8월 14일 일본은 연합국의 무조건 항복조항을 받아들인다는 전갈을 보내왔던 것이다. 공식적으로 항복문서에 서명이 이루어진 것은 1945년 9월 3일 이었고 이날은 공식적으로 "일본에 대한 승전일"( Victory over Japan Day)이라 불리워지게 되었다. 서명은 토쿄만에 정박하고 있던 엄청난 연합군 무적함대 중 한대인 미주리호 선상에서 이루어졌다.역사상 가장 많은 피를 요구했던 전쟁이 드디어 끝났다. 그러나 어렵게 얻어낸 평화의 이면에는 가공할만한 파괴력을 가진 핵무기라는 불길한 유령이 숨어있었다. 그러한 무기의 존재는 모든 후대들의 세계관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④ 2차 세계대전의 전후세계와 전후처리 : 제2차 세계대전은 문자 그대로 세계를 전장으로 하고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를 끌어들인 전쟁이었다. 참가국은 연합국측이 49개국, 동맹국측이 8개국이며, 중립국은 스위스 등 6개국에 불과하였다. 동원병력 1억 1000만 명, 전사자 2,700만 명, 민간인 희생자 2,500만 명으로, 그 중에서 독, 소 양국의 희생이 가장 많아 소련의 전사자 1,360만 명, 민간인을 포함하여 사망자 2,000만 명, 전인구의 약 1/10, 독일의 전사자 500만 명, 민간인을 포함하여 사망자 550만 명, 전인구의 약 1/10이라고 알려졌다. 일본의 전사뿐만 아니라 인도에서 중동아프리카에 이르는 지역에서 민족해방운동은 고조되어 잇달아 독립하였다.이리하여 패전국 일본, 이탈리아는 물론, 전승국 영국, 프랑스 뒤이어 식민지를 잃었다. 더욱이 영국에는 노동당내각이 성립되었고, 프랑스, 이탈리아에서는 저항운동 가운데에서 공산당의 힘이 신장되었다. 미국만이, 민주주의 병기창으로서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최대최강의 자본주의국으로서 세계를 지도하기에 이르렀다.⑤ 양 체제의 대립 격하와 평화조약 : 소련을 정점으로 하는 양 체제의 대립이 격화, 냉전화함으로써 추축국과의 평화조약 체결은 용이하지 않았다. 1946년 7~10월의 파리 평화회의에서는 트리에스테(Trieste)문제를 둘러싸고 미,소가 대립하였으나, 1947년 2월 10일 간신히 이탈리아 ,루마니아 ,헝가리 ,불가리아, 핀란드에 대한 강화조약이 조인되었다.이탈리아는 북아프리카의 식민지를 잃었고, 프랑스 , 유고슬라비아, 그리스에게 영토를 할양하였다. 트리에스테는 국제연합 통치하의 자유지역이 되었으나, 1954년 이탈리아와 유고슬라비아에 분할되어 일단 해결을 보았다. 루마니아는 1940년의 소련에의 영토할양을 재확인하였으나 트란실바니아지방의 대부분을 회복하였다. 헝가리의 국경은 거의 1938년의 국경으로 되었고, 불가리아는 도브루자 남부지방의 영유가 인정되어 41년의 국경을 거의 유지하였다. 핀란드에 대하여는 1939년의 소련-핀란드전쟁에 의한 소련에의 영토할양이 인정되었다.독일처리방침은 1945년 8월 2일 포츠담 의정서에서 명확히 되었으나 그 해석을 에워싸고 미, 소는 매사에 대립하여, 1947년 말의 런던 4국 외상회담은 결렬되었다. 1949년에는 독일연방공화국(서독)과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 수립되었고, 미, 영, 프는 1952년 5월 서독과 평화확정조약을 맺었으며 1954년 10월 파리협정에서 서독의 주권을 회복하고 사실상의 단독강화를 체결하였다. 이에 대하여 소련은 1953년 5월 동독에 자립권을 주었고, 1955년 9월 동독의 주권을 회복하였다. 이리하여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본 기동부대와 함께 출항해 먼저 진주만으로 향한 일본 잠수함대가 미국에 의해 발각된 것이다. 7일밤 잠수함대는 진주만을 향하여 특수 잠함정을 발진시켰다. 이들 중 한 대가 8일 03:40분에 미군 소해정인 콘들에 발견되었고 이 연락은 받은 구축함 워드가 폭뢰공격을 가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06:40분이 되어서야 진주만의 본부에 보고를 하게 된다. 그때는 이미 일본의 폭격기들이 기동부대를 떠났을 때였다.일본기동부대는 나쁜 날씨에도 불구하고 8일 오전 06:00에 폭격기들을 발진시켰다. 1차 공격부대인 전투기 43대, 뇌격기 40대, 급강하폭격기 51대, 대형 폭격기 41대가 발진한 것이다. 이 공격부대는 짙은 구름 덕에 목표를 찾는데 고생했으나 07:50분 이들은 하와이 상공에 도착했다. 이들이 폭격대형으로 흩어지고 각 목표로 향할 때까지도 진주만은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또한 일본의 기습부대에게 단 하나의 장애로 남아있던 날씨마저 공격시작과 맞추어 안정되기 시작했다. 진주만 항내의 미국 전함들에게 먼저 공격이 시작되었다. 뇌격기가 편대를 풀고 일제히 뇌격 침로에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훈련에 훈련을 거듭한 이들 뇌격기들은 군함에 최대한 접근하여 200-300m 지점에 이르러서야 어뢰를 투하했다. 이들 어뢰가 명중하고 기습에 성공하였다는 무전을 일본 지휘관기가 송신할 때까지도 미국의 반격은 전혀 없었다. 소총 한발조차 발사되지 않은 것이다. 공격시작에서 불과 3,4분이 지날 동안 미국의 주력함군은 모두 커다란 상처를 안고 있었다. 미국의 군함들이 뇌격기의 제물이 되고 있을 때 하와이에 있던 히컴 육군비행장, 카네오네 해군비행장을 비롯한 두 개의 공군기지가 일본 급강하폭격기와 전투기의 공습을 받고 있었다. 단 한 대의 반격기도 띄우지 못한 채 이들 항공기지는 차례로 불길에 휩싸이며 줄줄이 늘어선 미국의 전투기들은 일본 공격대의 절호의 목표가 되어 불길에 휩싸인다. 이 1차 공격대가 공격을 거의 끝마칠 무렵에야 비로소 지상의 대
미래의 식량 전쟁!!전쟁에 있어 치열한 유격전은 이미 필요 없는 것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 하늘 위로는 엄청난 속도로 날아다니며 폭격하는 전투기들, 적의 무기고위치 파악이 가능한 기구들, 적군의 움직임조차 볼 수 있는 위성, 위치 조정만 해서 단추하나만 눌러도 끝나버릴 핵무기 등등 이미 전쟁은 전후방이 사라진지 오래고 몇 번의 키 조작으로 전쟁이 끝날 수도 있을 만큼 무기들의 성능과 위력이 발달했다. 그래서 이제는 서로 전쟁을 하면 전쟁 뒤의 후유증에 더 시달려야하며 스스로 피해만 늘리게 되는 전쟁이 될 것이다. 그래서 미래에는 이런 서로 죽이고 터트리는 전쟁이 아닌 경제적 우위나 식량의 자체 생산능력 등의 것으로 전쟁 아닌 전쟁이 일어날것이라고 생각한다.우리는 지금 미국과 이라크전쟁에서 보듯이 지금까지의 모든 전쟁 수단은 병기였다. 그러나 앞으로의 전쟁수단은 병기가 아니고 식량이 될 것이다. 아직 먼 훗날의 이야기 같지만은 이제 곧 우리에게 닥칠 상황일지도 모른다. 본래 인류사회에서 전쟁의 시작은 식량쟁탈로부터 비롯되었다.그러다가 문명이 발달하면서 국가간의 이해충돌, 이념의 대립이 그 원인으로 발전하였지만 미래의 전쟁은 다시 식량을 둘러싼 무역전쟁이 될 것이다. 즉 식량을 수출하는 나라와 수입하는 나라 사이의 무역마찰로 인하여 곡물생산의 부족 현상을 만성적으로 안고 있는 나라에서는 곡물가격의 앙등으로 생존을 둘러싼 사회혼란이 가중될 것이다.또 식량무역 마찰로 지구촌 곳곳에서는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다.그리고 인류가 만들어낸 인위적 위험 중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위험은 환경파괴로 인한 식량부족이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히복불가능으로 파괴해놓은 생태계, 등으로 인해 땅이 황폐화 되어 농사를 지을 땅을 찾을수없음에 차츰 식량 생산이 줄어들 것이다. 또한 식량생산이 줄어드는 상황인데다 세계의 인구는 날로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이 상황을 이용해 간접적인 식민지를 늘려갈 강대국들의 식량 공격이다.대지가 넓고 기계등으로 대규모 농작을 하는 미국, 칠레, 호주등의 나라에선 각 나라에 싼값으로 농산물을 수출하여 농산물시장을 점유율을 높이는 가운데 그 농산물을 수입한 국가에서는 서서히 대규모의 싼값의 농산물로 인해 오는 수입의 감소로 농사짓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그러하여 자체 식량생산이 부족해 나중에는 식량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게된다. 식량부족 현상을 겪게 되면 식량 수출국은 엄청난 값을 요구하게 될 것이고 수입국은 변명의 여지도 없이 그 값을 몽땅 지불하고 수입하여야 할 것이다.이러한 와중에서 식량수입이 제대로 안되었을 때 식량수입국의 사회내부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혼란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며 국가는 국가대로 식량수입비로 외화를 낭비하여 국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국가산업은 마비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간접적인 식민지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지금의 한국에도 미국이 미리 계획해 놓은 식량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한국 전쟁이후에 미국은 전쟁으로 식량난에 허덕이는 우리에게 미국내에 잉여 농산물인 밀을 대가성없이 나눠주웠다. 그로인해 사람들은 밀농사를 짓지 않게 되었고 밀의 자체생산력이 차츰 없어져버렸다. 미국이 무상원조 해주던 밀이 어느순간부터인가 돈을 받고 판매하게 되었고 이제것 거의 밀을 짓지 안고 있던 우리나라에서는 밀의 사용량 거의 100%에 가까운 전량을 수입하게 되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고 있는 쌀의 잉여현상은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간악하고도 교활한 밀가루 원조경제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형성된 한국인의 쌀체질의 밀가루 체질화 때문이다.이 결과 40대 이하의 한국인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밀가루 음식을 거의 주식으로 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2002년부터 쌀생산면적이 줄었음에도 쌀공급이 남아도는 기현상이 나타났다.미국은 한국·일본·동남아인들에게 밀을 무상으로 원조하면서 동남아인들의 식생활 문화까지 바꿔놓아 밀 수요국를 넓힌 후, 밀을 팔았고 그 후에는 밀 재배 농사까지 없애버리는 무서운 전략까지 펼치는 현실인 것이다. 그리고 차츰 WTO, FTA 등으로 다른 농산물도 위기를 느끼고 있다.그리하여 우리나라 현재 기준 수출액이 16만3500만 불이고 수입량은 64억600만불이다. 즉 우리나라의 식량분야에서 무역 역조현상은 심각한 지경이며 앞으로 이러한 식량무역 역조는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농지감소에다 급격한 산업사회 지향으로 인한 유휴 농지, 과다한 인건비 지출등으로 인한 생산원가가 상승하여 수익성이 감소하고, 이로인한 농촌의 젊은 인력의 이농현상이 심화되어 생산의욕이 더욱 저하되고 있는 것입니다.이런 추세가 더 진행되면 이제는 정말 수입 쌀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닥치고야 말 것이다.이러한 논리로 보았을 때 우리나라와 같은 주변부 자본주의국가에서의 맹목적이고 무분별한 산업제일주의에 입각한 세계화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지금부터라도 깨닫고 식량자급을 위한 대책을 수립하여야 한다. 남한인의 먹거리 체질이 쌀에서 밀가루로 변했다고 해서 쌀 생산을 줄여야 한다는 발상은 위험천만하다. 이러한 때일수록 식량안보를 생각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