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이 정신질환의 상대적인 것으로 정의된다는 가정에서, 전반적인 정신병리가 없는 상태가 종종 정상적인 행동과 동등한 것으로 여겨왔다. 최근에 이러한 가정의 유용성이 의심되고, 정신과 의사들이 정신건강과 정상의 보다 정확한 개념과 정의를 제공하기 위해 점차 중요성이 증가되고 있다.일반적인 의학적 상태에서 정상과 질병의 정의는 비교적 간단하지만, 정신의학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구별하는 것은 보다 복잡한 과정이다. Offer와 Sabshin(1966)은 일반의학과 정신의학 양쪽에서 질병과 건강, 정상과 비정상의 구별에 대해 기술하였다.그들은 3가지 견지(perspectives)에서 무엇이 정상(normal)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단순히 병이 없는 상태(simple absence of disease) : 잠재적인 신체적이고 기질적(temperamental)이상이 있더라도 증상이 없거나 장애가 없는 사람은 'normal health'내에 있다.◈ 통계적인 빈도 (statistical frequency): standard bell-shaped curve로 많은 인구집단에서 조사된 신체적이고 기질적(temperamental) 요인들에 관해 정상이라고 정의된다.◈ 문화적인 범주(cultural criteria): 특정한 사회나 아문화(subcultures)에 의해 가정되는 이상화된 믿음에 기초를 두고 있다.이러한 3가지 통합적 접근에 의해 건강상태가 포괄적으로 기술된다.JA Foley(1935)은 비정상(abnormal)을 특정한 문화적 집단의 통계적인 규범으로부터의 벗어난 것(deviation from the statistical norms of a particular cultural gruop)이라고 정의하였다.신체질환에서와는 달리 정신질환은 정상과 비정상간의 뚜렷하고 고정된 경계선이 없고, 다만 어느 시점에서 한 개인이 얼마나 미숙하고 비합리적이며, 비효과 적이고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보이고 있느냐 하는 '정도의 차이'로 평가한다.정상에 대한 많은 이론적인 그리고 임상적인 개념들이 Daniel Offer와 Melvin Sabshin에 의해 4가지 기능적인 견지(perspectives)로 구분된다. 각 조망들은 자체의 정의와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은 서로를 보완하고 정상에 대한 행동과 사회과학적 접근의 전적인 것을 나타낸다.1) 건강해야 정상이다. Normality as Health이것은 기본적으로 건강과 질병에 대한 의학적-정신의학적 접근이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정상과 건강은 동등하고 건강은 대부분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행동은 명백한 정신병리가 존재하지 않을 때 정상범위 내에 있다고 가정된다. 모든 행동이 척도(scale)에 적용된다면, 정상은 연속연상에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고, 비정상은 나머지 작은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정상의 이러한 정의는 의사가 환자의 전반적으로 관찰가능한 증후와 증세에서 자유롭게 하는 전통적인 의학적 모델과 연관된다. 이러한 의사에게는 증후와 증상이 없는 것은 건강한 것이다. 다른 말로, 건강은 기능적으로 적절한 상태라기 보다는 적당한 것(reasonable)으로 언급된다.Ludwing은 정신질환은 알려지거나 추정되는 생화학적 또는 신경생리학적인 생물학적 기능장애로 인한 인지-정서적 행동장애로 정의된다고 기술하였다. Ludwing에 따르면, 질병은 정상으로부터 충분하게 벗어난 것이다.Romano는 건강한 사람은 심한 동통, 불편, 장애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기술하였다.2) 성격의 여러 요소들이 최상의 조화를 이루어 갈등없이 욕구의 충족을 맛보며사는 사람이 정상이다. Normality as Utopia이것은 적절한 기능에서 최상이 되는 정신기구의 다양한 요소들이 조화롭고 적절한 조합을 정상으로 생각된다. 정신과의사나 정신분석가가 이상적인 인간에 대해 말할 때나 그들이 자신의 성공적인 치료를 위한 기준을 논의할 때 이러한 정의가 나타나게 되었다.이러한 접근은 Freud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그는 정상에 대해 논의하기를 "정상적인 자아란 일반적으로 정상과 같은 것이고, 이상적인 허구이다"라고 했다. 이러한 조망은 높은 가치가 부여되고 문화와 연관되고, 각 문화는 규범과 이상을 가진다. 따라서, utopia로서의 정상의 개념은 독특한 문화적 가치와 연관된다.3) 사회적으로 특별나지 않고 보통사람들의 범주에 들어가야 정상이다.Normality as Average이것은 행동의 규범 연구들에 일반적으로 적용되고, bell-shaped curve의 수학적인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심리학적 검사를 적용하였을 때, 중간범위는 정상으로, 양극단은 정상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즉, 정상분포에서 규범의 1 standard deviation에 포함되면 정상으로 보고, 1과 2 standard deviation 사이에 포함된다면 평균에서 다소 벗어난 것이고,2 standard deviation 이상이라면 유의하게 비정상으로 본다.일반적으로 말해서, 정상에서 deviation이 약간 있는 경우를 신경증이라고 하고, deviation이 큰 경우를 정신증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통계학적인 원칙에 기초한 규범연구는 일반적인 평가(assessment)와 총점(total score)으로 각 개인을 기술한다.정신과 의사들은 IQ tests, Rorschach tests, T.A.T.의 결과를 사용할 뿐 아니라, 자신이 고안한 검사나 질문지를 사용한다. 변이성(variability)은 한 개인이 아닌 전체 집단의 내용 속에서만 기술된다.이러한 접근이 정신과학보다 심리학이나 생물학에서 보다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정신과 의사들은 최근에 표준화된 성격검사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모델에서는, 성격의 유형은 통계적으로 측정되는 것으로 가정된다. 그러나, 개념적이고 실질적인 어려움은 평균이나 정상이 정확하게 어디에서 끝나고, 정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다.4) 변화하고 성장하는 사람이 정상이다.Normality as Process(Normality as Transactional Systems)이것은 정상적인 행동은 상호작용하는 기관들의 마지막 결과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정의에 기초하여, 일시적인 변화는 정상에 대한 완전한 정의에 필수적이다. 다시말하면, 이러한 조망은 횡단적인 정상의 개념보다는 변화(change)나 과정(process)를 강조한다. 이러한 조망은 생물학적, 심리학적, 사회학적 영역 뿐만 아니라 경제학, 정책과학, 그리고 건강과 질병의 문화도 포함하고 있다.이러한 접근으로 기술하는 조사자들이 행동이나 사회과학에서 발견될 수 있다. 이러한 조망에서의 개념으로 Erikson이 성격발달의 epigenesis(후성설:생물의 발생은 점차적인 분화에 의한다고 하는 학설)와 성숙한 성인기능의 획득에 필수적인 8가지 발달단계를 개념화한 것이다.정신과 의사는 정상의 4가지 개념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정상에 대한 이러한 4가지의 조망은 상호배제적인 것이 아니며, 또한 서로 독립적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들간의 중요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연구에 어떤 개념을 사용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정신건강에 대한 기본적인 전제가 다르다면 결과는 다르게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시계와 더불어 삶을 영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은 시계의 째깍째깍 아로새기는 금속성 소리가 아니다. 우리의 순간은 자아(自我)가 타아(他我)에 대해서 또 다른 사물의 감각에 대해서 느끼는 경험이요, 인식이요, 진동이다.우리는 과거를 회상할 때 측정된 시간의 연속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고 여러 순간의 연속으로 느끼는 존재이다. 어린 시절을 다시 회상해 보아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은 여러 순간의 기억들이다.과거에 경험한 정서의 힘에 의해서 망각의 세계 속에 스러지지 아니하고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몇 가지의 희미한 자취가 남아 있다.유난히 즐거웠던 순간, 뚜렷한 경이의 순간, 죄악의 순간, 이러한 순간들이 우리들 깊은 곳에 내재율(內在律)처럼 남아 있는 것이다.우리의 시간은 우리의 기분과 느낌에 따라서 시계의 시간보다도 더 빨리 가는 수도 있고 더 느리게 가는 수도 있다. 몸에 열이 났을 때의 십분 이라는 시간은 맥박이 순조로울 때의 이십 분의 시간보다도 아마 더 길게 느껴질 것이다.시간이 우리의 감정 상대에 따라서 길어지기도 하고 짧아지기도 한다는 것은 아마 옛 사람들도 생각한 일일 것이다.셰익스피어의 희곡 《소원대로》에서 주인공 로잘린드는 이렇게 말하였다.“시간이란 사람에 따라서 발걸음의 속도가 다른 것과 같다. 어떤 이에게는 시간이 소걸음 하는 것 같고, 또 어떤 이에게는 달리기와 같고, 어떤 이에게는 번개같이 달리고, 어떤 이에게는 꼼짝 않고 머물러 있는 상태와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자신있게 말해 줄 수 있다.”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는 시간이다. 우리는 시계를 잊어버린 시간 속에서도 최선을 다란다. 삶에 있어서 우리가 시간을 측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러나 사실을 무시한 활동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사람들은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냐’‘왜 살아야 하느냐’이런 질문들을 종종 하곤 한다.사회문제나 예술에 관한 질문을 하면 대답할 수 있어도 인간과 삶에 관한 문제를 꺼내면 누구도 그 대답을 하기 어려워진다. 질문을 한다는 일 자체가 잘못일지도 모른다.그러나 우리는 그 질문을 묻어 두거나 외면할 수는 없다.나 자신의 문제이면서 우리 모두의 물음이기 때문이다.물론 우리는 인생의 궁극적인 의미와 목적을 모르고 있다. 또 알 가능성도 없을 것 같다.내 자신이 찾은 것은 존재의 의미와 가치이기는 해도 존재 자체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거부할 수 없는 두 가지 결론을 얻었다.그 첫째는 결론은 주어진 삶의 완성을 위하여 성실히 노력해야 한다는 과제이다.이미 삶을 출발한 우리로서는 미완성 속에서 완성을 향해 성실한 성장과 노력을 계속함은- 1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다. 그 사실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인생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두 번째는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사랑으로 증대시켜나가야 한다는 의무이다.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가족과 이웃들 사이에서 삶을 누리도록 되어 있다.나의 존재가 주어진 것 같이 사회적 삶은 부정할 수 없는 필수 여건이다. 그러므로 타인과의 관계는 삶의 내용을 이끌어 가는 기본조건이 되어 있다.그것을 부정하거나 회피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삶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결과가 된다.이러한 자기에 대한 성실성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어느 한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종교와 철학이 그 뜻을 다짐하고 있으며 도덕과 윤리의 기본도 이것에 기반을 두고 있다.‘너 자신에게 성실하며 이웃을 사랑하면서 살라’는 교훈 이상의 것은 없다고 보아 잘못이 없겠다.자신에 대한 성실은 자기 인격의 완성을 위한 계속적인 노력이다.배울 것을 배우고 체험할 것을 지혜로이 터득하여 보다 완전한 인간이 되도록 노력하는 자세를 스스로 포기한다면 그것은 불행 중의 불행이다.인간의 가치와 행복이 모든 인간 관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책임과 의무는 감당치 않으면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논한다는 것은 생에 진실한 태도가 될 수 없다.물론 성실한 노력 뒤에도 죽음은 모든 삶을 허무로 돌린다.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 관계도 세계 악이나 역사적 비극 앞에 무슨 의미를 갖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지금 주어진 가능성과 의무는 감당치 않으면서 영원한 결론만을 얻겠다는 것은 성실한 생의 태도가 못 된다. 그런 문제의 해결과 긍정적인 모색을 위해서 종교가 있고 신앙적 초월을 가르치는 석가나 그리스도 같은 이들도 있었는데, 성실한 노력과 진실한 사랑도 해 보지 않았으면서 자신의 삶을 단안하거나 포기한다면 그것은 생에 대한 더 큰 모독과 과오가 될 수도 있다.삶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말은 아주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탐구해왔다.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삶이 무엇이라는 명확한 해답을 구하지 못하였다. 이는 바로 삶 자체가 하나의 수수께끼와 같기 때문이다. 이런 수수께끼 같은 삶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 우리는 어렵지 않게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그리고 우리가 느끼는 그것이 아마도 가장 정직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수많은 종류의 삶들이 존재한다.우리는 이 많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간략히 자율적이라는 말과 타율적이라는 말로 구분 지어 말 할 수가 있다. 즉 표현대로 자율적이라는 것은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하고 결단하는 책임적인 것을 의미하며 타율적이라는 것은 스스로의 가치관이나 의지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주위환경이나 주변사람에 의해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물론 여기서 우리는 당연히 모두 자율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내 인생을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고 가꾸어 나가려면 당연히 자율적이 되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이런 자율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하는 몇 가지가 있다.- 2 -첫째, 뚜렷한 삶의 목표를 가져야 한다.둘째, 자발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셋째, 도전의식과 모험의식이 있어야 한다.넷째, 자신의 삶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야 한다.다섯째, 책임의식이 강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매사에 의욕과 정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이상이 자신의 삶을 가꾸어 나가는 자율적인 사람이 갖추어야 할 조건이다.그럼 나는 이런 것들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고 실천에 옮겼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었다. 단 한번뿐인 나의 인생이다. 그리고 소중한 것은 자기자신이다.그렇게 소중한 인생을 멋지게 살아가지 위해서 나는 무엇을 했나?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즉, 어떤 사고방식, 어떤 행동적 습관, 어떤 의식적 신념,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결과를 만들었나?지금까지의 나를 거울삼아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깨닫고, 보다 낳은 삶을 위해 인생 각본을 재정립하라는 제안을 준다면 내 자신은 어떻게 하겠는가?이 세상에 혼재 하는 수많은 가치 중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았는가?우리는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이러한 질문들을 수 없이 되풀이하고 있다.그러나 대부분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지 못한 채 분주한 현실 세계로 다시 뛰어들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 지쳐서 허탈감에 빠지게 될 때면 다시 같은 질문을 반복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은 간단하고 분명하다.즉 [우리의 삶은 우리가 생각한 결과]라는 말로 우리가 수없이 반복해온 질문들에 대한 답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가진 생각과 태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우리들 대부분은 잠재능력 중 극히 일 부분 밖에는 사용하지 못하고 살아간다.이것은 우리가 지식이나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바로 우리의 생각과 태도가 잘못 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삶의 본질을 바르게 알 고, 우리의 무한한 잠재능력의 가능성을 깨닫고, 우리가 생각한 태도를 긍정적이고 방향을 제대로 잡기만 한다면, 우리의 삶에는 무한한 변화가 생길 것이다.삶이란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다.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없으며, 또 한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길이 아닌 단 한번뿐인 나의 길을 자기 위해 지금까지 수많은 땀들을 흘렸으며 앞 만보고 달려온 자신이다.어제도 오늘도 그저 최선을 다했다는 자기 만족으로 자아의 함정에 빠져 무엇이 참된 나의 길이며,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오지는 않았는가 되돌아- 3 -보아야 할 때이다.삶은 무엇인가? 나는 ‘삶의 이야기’라는 한 권의 책을 읽고 나의 생각들을 혼란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가치관들이 많이 바뀌었다.한 이야기를 통해 내가 앞으로 살아갈 삶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마차를 타고 켄터기주를 방문하고 있었다. 그때 한 장교가 대통령에게 얼음을 탄 위스키를 권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정중하게 거절하였다.“대령, 성의는 고맙지만 사양하겠소” 대령은 잠시 후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피를 꺼내대통령에게 권했다.링컨은 대령에게 거듭 사양의 뜻을 전한 후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아홉살 때 어머니가 나를 침대 곁에 앉혀 놓고 말씀하셨소,‘에이브야, 이제는 회복이 불가능하단다. 죽기 전에 한가지 약속을 해야겠다. 평생 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 않겠다고 약속해줄 수 있겠니’ 그날 나는 어머니께 약속했다오. 그리고 지금까지 이 약속을 지켜왔소. 이것이 바로 술과 담배를 거절한 이유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