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1991 공산주의 붕괴에 대하여2차 대전 이후 1946~1955년 동안 소련의 공업 생산력은 연평균 12~14%로 고도성장을 기록해가며 이러한 고속성장 속에서 60년대에는 국민들이 높아진 생활수준에 사회적으로 낙관론이 팽배했으나 소련은 1970년대 중엽을 고비로 경제에 적신호가 나타나면서 사회의 정체와 부패가 뚜렷한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 공업성장률이 1970연대 후반에는 3.4%까지 떨어졌고 전통적으로 생산재와 군수산업에 치중해온 경제 구조 또한 국민들의 기대수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었고. 폐쇄적인 관료체계는 이 위기를 은폐함과 동시에 심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물가상승을 감안한 경제 성장률은 사실상 제로 상태로 떨어졌고 투입자본에 대비한 산출량의 비율도 격감했다.경제위기가 모든 사람에게 피부로 느껴지면서 국민들이 불만은 국가의 통일성을 해치는 정도로 발전해왔고 이러한 위기에서 고르바초프가 등장(1985년)해 글라스노스트(개방, 정보공개, 언론자유)를 주장하며 폐레스트로이카(총체적 개혁, 재편)를 제창(1986년 4월)하게 된다. 1987년 고르바초프가 직접 쓴 에는 소련경제의 병폐로 원재료의 낭비와 비효율성, 신기술의 도입 지연, 중앙집중관리의 경직성 등으로 나열하면서 위기의 근원을 소련에 건설된 특수한 형태의 사회주위의 결함, 그중 에서도 특히 경제관리의 과도한 중앙집중, 인간이해의 다양성 무시 등에서 찾았다. 즉 소련체제의 가장 큰 결함은 민주주의의 결여이며 그 해결책은 사회의 모든 면에서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여기서 특히 페레스트로이카는 사회주의를 강화시키는 것이며 그것을 다른 체제로 대체하는 것이 아님 을 강조했다. 이러한 개혁은 민주적 사회주의의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그러나 이러한 개혁으로 각종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사회활동이 다양화되면서 조금씩 성장해가던 민주주의 세력이 더욱 커지고 여기에 덧붙여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있어서 걸처 개혁이 본격화되면서 폐레스트로이카는 개혁지도부의 통제 선을 넘어 자체발전을 시작했다. 여기서 소련의 지도부는 기존 체제를 중심으로 한 개혁을 추진하는 고르바초프를 중심으로 한 개혁파와 페레스트로이카의 과도한 진전에 우려를 나타내는 보수파, 그리고 엘친을 중심으로 한 급진 개혁파의 3구도로 나뉘어 서로 국가권력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하게된다.정통 보수파와 개혁 주도파는 경제와 사회전반의 위기를 극복하고 사회주의를 재건하려는 목표는 같았으나, 정통보수파가 더 이상의 개혁의 진행은 특히 시장요소의 급속한 도입은 사회주의의 붕괴를 가져온다고 생각하여 반대한 반면에 개혁 주도파는 개혁을 계속 진행하고 시장경제를 도입해야 사회주의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급진개혁파는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로 전환을 해야 러시아가 살수 있다고 주장했다.이렇게 지도층의 분열과 동시에 다민족 연방이었던 소련에는 민족주의 성장과 함께 연방 내 발트3국의 주권선언(1989년 7월)에 이어서 연방구성의 15개 공화국이 실질적인 권력으로 부상하며 연방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르바초프의 정치개혁으로 정치의 민주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급진 개혁파인 엘친이 러시아 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에 선출되고 러시아의 주권선언을 함으로(1990년 6월) 모스크바에 소련과 러시아의 이중권력 상태가 출현했다. 소련 연방이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공산당은 권위와 힘을 점점 일어가며 소련이 점점 실체를 잃어가며 변해 가는 와중에 1990년 산업생산이 마이너스 생산을 기록하면서 경제는 악화되어가며 혼란과 불안이 가중되었다.이런 분위기 속에서 온건개혁주장은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급진파의 자본주의적 개혁에 대한 지지가 점점 높아져가며 정권을 잡고 있던 개혁파는 마침내 시장요소의 대폭 도입을 결정하고 1990년 8월 고르바초프와 엘친은 장유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종합기본합의서에 합의하게된다. 한편 보수파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1991년 8월 19일 소련 공산당의 KGB와 군부 일부 관료를 중심으로 한 보수파들이 시도한 체제수호의 쿠데타인 국가비상위원회의 쿠데타가 일어났다. 그러나 이 쿠데타는 3일만에 무너지고 말면서 엘친은 러시아 공산당의 활동정지 명령을 내리며 고르바초프의 자진해산 요청에 소련 공산당은 해산했고 소비에트 연방은 종말을 점점 맞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