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의 서체(書體) 4 - 예서(隸書){(예서체 1){{(예서체 2) (예서체 3)고문자(古文字)들과는 다른 차원의 획기적으로 새로운 한자의 자형(字形)이 성립된 예서(隸書)는 진(秦)나라의 군현제(郡縣制) 실시라는 정치적인 배경이 이끌어낸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행정적 실용성이 중시되어 보다 빠르고 쉽게 문자를 쓰기 위해 고안되었던 것입니다. 상형(象形)의 회화적 요소를 벗어버리고 문자의 기호적 요소가 완성되어 현대 한자의 출발점으로도 볼 수도 있습니다.隸書의 정의예서의 명칭에 대한 이해는 예서가 형성된 배경과 연결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학설로는 법가(法家)를 바탕으로 철권통치를 행했던 진(秦)나라였기에 강한 형벌(刑罰)의 행사로 노역(勞役)의 죄수들이 많아 이 죄수들을 관리하는 형리(刑吏)들이 간편하고 쉬운 행정 문서를 다루기 위해 고안했다고 해서 '노예 예[隸]'자를 쓴 예서(隸書)라 명명되었다고 합니다.당시의 문자의 흐름은 진(秦)나라의 분서갱유(焚書坑儒)에 이어 한(漢)나라 초기까지는 예서의 체제가 완성되지 않았는데, 한(漢) 무제대(武帝代)에 예서가 국가의 공식 문자로 정착되고 유학(儒學)이 국교(國敎)가 된 이후 경전(經傳)의 해석을 둘러싼 왕성한 학문적 발전과 함께 서체 역시 큰 진전을 가져오게 됩니다.한 무제의 앞 경제(景帝) 때 산동(山東) 지방 곡부(曲阜)의 공자(孔子)의 고택(古宅)을 개축하다가 벽 속에서 대량으로 발견된 경전(經傳)에 대한 해석으로 훈고학(訓 學)이 발전하는데, 이 벽 속에서 발견된 경전에 기록된 문자는 한대(漢代)의 예서보다 훨씬 이전의 서체였기에 이를 고문경서(古文經書)라 하고 당시 사용되던 경서를 금문경서(今文經書)라 합니다.서체뿐만 아니라 경전 해석 연구에도 큰 의의를 둘 수 있는데, 기원후 100년경에 완성된 허신(許愼)의《설문해자(說文解字)》에도 이 고문경서의 서체를 고문(古文)이라 제시하면서 기본 소전(小篆) 자형과 함께 인용하고 있습니다. 결국《설문해자》는 당시 규격화되어 가는 서체[예서]로 인해 정확한 한자의 연원을 밝히려는 의도와 경전의 바른 해석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隸書의 특징진나라의 소전(小篆)은 이전의 갑골문(甲骨文)이나 금문(金文)에 비해 획기적인 발전을 이룬 한자의 개념을 제시한 서체였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문자 자체로 보면 획이 둥글고 자형의 성분들을 그대로 살린 다소 불편하고 복잡한 형태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용적 방향으로 의미전달에 큰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쉽고 빨리 쓸 수 있는 형태로 간략하게 된 것입니다.곡선의 둥근 자형으로 인해 아직 회화적 요소가 남아 있던 소전의 자형에서 완전히 벗어나 직선의 기호적 성격을 지닌 서체를 만들어 전체적인 자형이 사각형 모양으로 되는 전형을 이루게 됩니다. 현대의 한자에서 둥근 원형 모양의 획이 없는 것이 바로 이 예서에서 형성된 것입니다.이와 함께 또 다른 획기적인 변화는 한자들마다 각기 복잡한 모양의 서체를 유사한 모양이면 공통의 모양으로 간략화 시켜 실용성을 더한 것인데, 이 부분은 후대에 한자의 자형만으로 의미를 이해하는데 다소 부적절하거나 난해한 원인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결국 소전(小篆)과 같은 고문자(古文字)의 자형이 한자의 자원을 이해하는 중요 수단이 되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자의 서체(書體) 5 - 해서(楷書) : 정서(正書){(해서체 1){{(해서체 2) (해서체 3)서체의 변천사에서 해서체(楷書體)부터는 문자학적 논의보다는 예술적 논의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정서(正書)나 진서(眞書)의 명칭으로도 불리는 해서체는 현재까지 서예(書藝)의 기본 교습 서체로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문자학적 논의보다는 예술적 경지에 이른 당대의 대표적인 서예가(書藝家)의 면모를 살펴보는 것이 해서체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楷書의 정의중국 후한(後漢)시대 말기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해서(楷書)는 '楷'자가 '본보기'나 '모범'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듯이 표준으로 삼을 만한 서체라는 의미입니다. 위(魏)·진(晉), 남북조(南北朝)시대에 그 기틀이 완성된 해서(楷書)는 동진(東晋)의 유명한 왕희지(王羲之)와 함께 당(唐)나라에 들어서 구양순(歐陽詢)이나 안진경(顔眞卿) 등의 걸출한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그들 이름의 서체라는 명칭이 생길 정도로 서체의 전형이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해서(楷書)가 현재까지 표준 서체로서의 면모를 지닐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인물들에 의해서 완성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한가지 해서체(楷書體)의 정착에 앞서 예서(隸書)에서 또 다른 한 축을 이룬 서체로 팔분체(八分體)를 언급합니다. 한(漢)나라 중기에 채옹(蔡邕)이라는 인물이 만들었다는 팔분체는 전서(篆書)의 요소를 완전히 탈피한 예서의 틀을 완성시킨 서체인데, 특히 장식미를 더한 양식의 서체로 후한시대에 많이 사용됨으로 해서 예서와 해서의 과도기적 단계의 서체라고 보기도 합니다.楷書의 특징예서(隸書)에서 발전된 해서체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예서체(隸書體) 자형의 전체 윤곽이 다소 가로로 퍼진 형태라면, 해서(楷書體)는 다소 세로로 퍼진 형태를 지니고 있는 점입니다. 이는 서체가 보다 부드러우면서도 명확한 양식으로 발전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인데, 역시 유명한 서예가들의 서체 전형으로 인해 정착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자의 서체(書體) 6 - 초서(草書){(초서체 1){{(초서체 2) (초서체 3)고대(古代)에서 중세(中世)로 접어들면서 문자(文字)의 활동도는 크게 신장됩니다. 이에 이전의 예서(隸書)가 지닌 혁신성 역시 크게 감소되면서, 보다 실용적으로 신속하게 문자를 쓸 필요가 생겨났고, 이에 부흥해서 크게 유행하게 된 초서(草書)가 등장하게 됩니다.草書의 정의초서는 아주 거칠고 단정하지 못하다는 의미인 "초솔(草率)하다"는 의미에서 극도로 흘려서 쓴 서체라는 의미로 초서(草書)라는 명칭을 사용합니다..표의문자(表意文字)의 단점인 서체(書體)의 복잡함과 난해함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극도로 흘려서 빠르고 간단하게 쓴 서체를 생각해 낸 것입니다. 규격을 갖춘 서체인 예서(隸書)로부터 해서(楷書)로 발전했지만, 글자를 쓸 때 너무 복잡하고 많은 정성이 들어가 쓰는 시간도 꾀 필요한데,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간략하게 흘려 쓰는 초서(草書)가 생겨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