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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사] 안중근 공판기
    “안중근 공판기”를 읽고이제 월드컵이 2일 앞으로 다가왔다. 바로 모레가 프랑스와 세네갈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전 세계 60억의 대제전이 개막되게 된다. 그러나 한 가지 불쾌한 점은 우리나라와 일본의 공동 개최라는 점이다. 나는 이점이 너무 슬프다. FIFA는 한국과 일본의 정서를 너무 무관시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고대부터 지금 껏 한국과 일본은 절대 협력의 길을 간 적이 없었다. 항상 경쟁적이었고 문화적으로 훨씬 뒤 떨어진 미개인의 나라와 함께 월드컵을 개최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정말 비참한 일일 수 없다. 그리 오래 전도 아닌 50여년전만 해도 그들은 우리를 식민지로 삼아 약탈을 일삼앗던 그야말로 미개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개봉했던 2009 로스트 메모리즈는 우리에게 정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의 끈질긴 만행은 아직껏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만행의 시작일 수도 있다.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를 빈라덴과 같은 동급의 테러범으로 날조하는 일본의 자태에 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이렇게 글을 쓴다. 영화의 내용처럼 우리가 2008년에 통일이 된다면 지금의 주적의 개념은 북한이 아니라, 일본이 분명히 될 것이다. 그들이 반성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무래도 우리의 국민성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것이다. 우리는 너무 참는다. 참을 인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몇 번이나 참았을까?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참아야 하는 것일까? 다시 한번 선조의 빛날 얼을 오늘에 되살려 투철한 반일주의로 재무장 할 것을 주창하는 바이다. 요새 일본의 역사 교과서 문제로 한?일이 냉랭한 분위기이다. 우리나라 말고도, 북한, 중국 등 여러 동아시아 나라들이 일본에 사과와 바른 교과서 편찬을 요구하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귀머거리인지 듣고서 안 들은 체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삼키는 것인지 별 반응이 없어 보인다. 그들은 왜 역사를 바꾸어야 했을까? 이런 생각이 머리 속에 들어 왔다. 이 새 역사의 시대에의사는 나면서부터 가슴과 배에 검은 점 일곱 개가 박혀 있어 북두칠성에 응한 것이라 하여 이름을 안응칠이라 불렀다.그 뒤 집을 신천군 두라면으로 옮겨 산수 풍경이 아름다운 천봉산 밑 청계동에서 살게 되니 의사의 여섯살적 일이었고 어려서 글을 배워 문사의 앞날도 기약되더니 일곱살부터 말달리기 활쏘기를 익혀 무사의 기질을 엿볼 수 가 있었다. 16세때 동학혁명을 빙자한 지방 무리들이 일어나자 부친이 모집한 장병들을 이끌고 나가 그들을 진압했었고 김홍섭공의 따님 아려양과 결혼한 뒤 천주교에 입교하여 영세를 받고 또 이어 도마라는 믿음의 이름을 얻은 동시에 홍석구 신부에게서 프랑스 말과 새로운 지식을 배웠다. 10년이 지나 27세때 을사조약이 체결된 소식을 듣고 일본의 불법침략을 세계에 알리고자 상해로 건너갔다가 돌아와 부친상을 당하여 고향에 안장한 뒤 이듬해에 집을 진남포로 옮기고 재산을 기울여 돈의학교와 삼흥학교를 세워 구구인재를 양성하기에 전력을 다하다가 가슴에 끓는 피를 누를 길이 없어 29세에 블라디보스톡으로 나가 대한의군 참모중장겸 특파독립대장의 이름을 띠고서 무력에 의한 치열한 항일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했었다.30세에는 의병 300여명을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와 경흥에서 일본경찰과 교전하였고 회령에서는 일본수비군과도 격전하였다 31세에 노령 카리에서 결사동지 11명과 함께 모여 손가락을 끊어 태극기에 대한독립 넉자를 혈서 했었다. 그러자 이등박문이 러시아 대장대신 꼬꼬프체프와 만나 동양정책을 협의하려고 북만주를 시찰한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의사는 이때야말로 나라와 겨레의 원수를 갚을 때라 하고 원흉을 없애려 하얼빈에 이르렀다. 마침내 역사적인 1909년 10월26일 오전 9시반 삼엄한 하얼빈역 머리에 각국 대표의 환영과 군대의 호위 속에 하차한 이등박문은 단신으로 달려든 의사의 벼락같은 사격 4탄에 즉사하였다. 의사는 총을 내던지고 대한국만세를 세번 외친 다음 유쾌히 웃으면서 러시아 헌병의 손에 태연히 포박되었다가 곧 다시 일본관현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 통쾌유동하등에게도 각각 징역이 언도되었다. 의사는 2천만 동포들에게 뼈에 사무치는 유언을 남긴 뒤 새옷을 갈아입고 여순감옥 현장에서 조용히 순국하시니 1910년 3월26일 오전 10시요 향년은 32세라 비록 육신의 일생은 짧았으나 정신은 천추에 길이 빛날 것이다. 혈육은 준생 현생 오누이와 손자 웅호를 끼쳤을 뿐이로되 민족정기의 후계자는 만대에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안중근 의사의 최후 진술[1910년 2월 나라사랑 제34집]나는 의병으로서 이등(伊藤)을 죽였다재판장 : 피고들에게 말하노니, 이 번 재판도 거의 진행되어 최후의 진술만이 남아 있는 것같다. 앞에서 두 변호인에게서 상세한, 그리고 피고들에게 유익한 변론도 들었는데 이제 피고들도 할말이 있다면 그 진술할 기회를 주겠다안중근 : .......그리고 재판 자체에 관해서 한 가지를 말하겠는데, 대체로 나의 이번 거사는 나 개인의 자격으로 한 것이 아님을 재삼 말하였으니 양해해 주었을 줄로 믿는다. 또 국제관계를 심리함에 있어서 재판관을 비롯하여 통역. 변호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일본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한국의 변호사도 와 있고, 나의 동생도 와 있는데 왜 그들에게는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있는가? 변호사의 변론이나 검찰관의 논고는 모두 통역을 통해서 다만 요지만을 들려 주었으나 그 점도 나의 견해로서는 매우 미심쩍을 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 그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편벽된 취급이라는 인상을 면치 못하리라고 생각한다.그리고 앞에서 검찰관의 논고와 변호사의 변론을 들으니 모두들 이등의 시정방침은 완전무결한데 내가 그것에 대하여 오해를 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그 내용을 잘알지 못하고 하는 말들이다. 이들의 시정방침은 결코 완비된 것이 아닐진대 어찌 오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등의 시정방침이라는 것들을 잘 알고 있으나 이등이 한국에서 주재하며 대한정책으로 무엇을 했는지는 자세히 말할 시간이 없으므로 그 줄거리만을 말하고자 한다.......오늘날 한국의 비참한 운명은 모두가 이등의 정 의병이 조선 8도 도청에서 봉기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황제께옵서는 일본이 한국을 정복하려는, 참으로 국가의 운명이 위급한 순간에 가만히 앉아서 굼뜨고 어리석게 방관하는 자는 백성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자라는 조칙을 내시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한국국민들은 더욱더 분개하여 오늘날까지 항전을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아마도 오늘날까지 역살당한 한국인은 10만 이상을 헤아릴 줄로 안다. 10여만명의 한국인이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죽었으니 이것은 본래의 소망이겠으나 사실은 이들때문에 역살당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머리에 쇠사슬을 씌워 생살하고 사회를 위협하기 위해 양민들에게 그 광경을 보이는 등 참역무도한 짓을 공공연히 자행하여 10여만명을 죽인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 의병의 장교도 적지 않게 전사했다. 이등의 정책이 그러하므로 한 사람을 죽이면 열 사람이 일어나고 열 사람을 죽이면 백 사람이 더욱 연이어 일어나기만 했다.따라서 이익은 커녕, 오히려 해독만 날로 더해갈 뿐이니 결국 한국에 대한 이들의 시정방침을 개선하지 않는한 한국의 독립은 요원하며 전쟁은 끊임없이 계속되리라고 생각한다. 이등이란 놈은 스스로 영웅인 체하지만 사실은 간웅이다. 그놈은 간지가 많아 한국의 보호가 원만하게 이루어지고 날로 발전하는 양, 신문에 떠들고 일본천황과 그 정부에 대하여 갖은 거짓말로 속이고 있었으니 한국 국민은 오래 전부터 이등을 증오하고 그 놈을 없애버리고 말겠다는 적개심을 품어왔었다.사람이라면 누구나 생을 즐기려고 할지언정 죽기를 원할 자 있겠는가? 그러나 한국 국민은 하루 24시간을 도탄에 빠져 고생하지 않는자가 없으니 아마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는 마음은 일본보다 훨씬 심각하리라고 생각한다.또한 나는 이제까지 여러 계급의 일본인과 때때로 만나서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해 본 적이 많다. ....이와 같이 오늘 내가 말한 여러 계급의 인사들에게 다시 물어봐도 모두 동양의 평화를 희망하고 있다는 것을 대개는 알 수 있을 줄 안다. 그와 동시에 간신 이등을 얼마나 증오해 마지만하면 되지 않았는가?안중근 : 아니 좀 더 할 말이 남아 있다. 내가 지금 말한 것처럼 이 번 사건은 결코 잘못한 일이 아니므로 오늘날 만일 일본의 천황이 한국에 대한 이등의 시정방침이 실패했음을 알게 된다면 오히려 나를 충성스러운 사람이라고 가상하고야 말 것이다. 그리고 나를 단지 이등을 죽인 자객으로 대우하지 않을 줄로 확신하는 바이다.나는 아무쪼록 한국에 대한 일본의 방침이 개선되어 일본천황이 의도한 바 있는 동양의 평화가 한.일 양국간에 영원히 유지되기를 희망해 마지 않는다.이 자리에서 한 마디 더 말해 둘 것은 앞에서 두 변호사의 말에 의하면 광무3년 한청통상조약에 의해 한국인은 청나라에서 치외법권을 가지며 또한 청나라는 한국에 대하여 치외법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한국인이 해외에서 범죄를 저지를 때, 아무런 명문이 없어 무죄라고 한 것은 매우 부당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사람은 모두 법률 아래에서 생활하고 있다. 살인을 해도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그러나 나는 결코 개인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의병으로서 한 것이며 따라서 나는 전쟁에 나갔다가 포로가 되어 이곳에 온 것이라 믿고 있으므로 생각컨대 나를 국제공법에 의해 처벌해 줄 것을 희망하는 바이다.재판장 : 더 이상 할 말은 없는가?안중군 : 모두 말했으니 더 이상 아무 것도 없다.재판장 : 그러면 오늘은 이것으로써 본건의 심문을 끝맺기로 한다. 본건의 판결은 다음 14일 오전 10시에 언도하기로 한다.{안중근 공판기록'을 처음으로 접한 것은 이번 수업을 계기로 해서였다. 너무나 잘 알려진 인물의 대한 내용이라 특별한 내용이 있으리라는 기대 없이 대했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책장을 몇 장 넘기면서 나의 선입견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한줄 한줄 읽어 가면서, 한 장 한장 넘겨 가면서 이내 거침없는 눈물이 흘러 나왔다. 처음엔 그 눈물의 연원을 알 수 없었다. 차츰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나는 그 눈물의 강줄기가 어디에서 발원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것이다.
    인문/어학| 2002.11.02| 5페이지| 1,000원| 조회(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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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 미술의 이해 평가B괜찮아요
    ◎우리 무대 디자인의 역사와 위치, 그리고 용어문제에 대하여●무대 디자인의 위치인간을 둘러싼 디자인의 환경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생활(Living)이고 다른 하나는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다. 무대 디자인은 바로 커뮤니케이션 환경의 한 지점에 있다. 요즘 디자인의 영역은 모두 서로 상대적으로 물려 있어서 그래픽 디자인, 제품 디자인, 패션 디자인이 ‘생활?이나 또는?커뮤니케이션?의 한 곳에만 속해 있다고 할 수 없듯이 무대 디자인도 두 환경에 다 속해 있다.생활과 커뮤니케이션이 연결되어 있는 부분 중에서 환경 디자인과 물려 있는 것이다. 환경 디자인은 생활환경과 극환경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무대 디자인은 극환경 안에서 영화, TV, 연극 등의 매체와 물려 있으면서 존재한다. 디자인이라는 거대 환경에 속해 있으면서 그 시스템을 공유하는 분야인 것이다.또 다른 방법으로 무대 디자인의 위치를 찾아볼 수 있다. 흔히 무대 디자인하면 눈에 보이는 분명한 결과물이 있기 때문에 2차원적, 또는 3차원적인 디자인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무대 디자인은 명백히 4차원적인 디자인이다. ‘시간성?이 포함되는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4차원적인 시간이 개입되면서 비로소 무대 디자인의 정체가 밝혀지게 되는 것이다.●무대 디자인은 새로운 분야인가?무대 디자인의 분야가 최근 부각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등장한?사이버 캐릭터 디자인?과 같은 새로운 분야로 생각한다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 분야를 이렇게 인식하게 된 것에는 매체의 잘못도 있다. 무대 디자이너들을 소개하면서?최근 뜨는 새로운 직종? ‘특별한 일을 하는 사람?등과 같은 타이틀의 기사를 낸 일이 많기 때문이다.?무대 미술?이라고 해서 별개로 진행이 되어왔기 때문에 새롭게 돌파구가 되는 분야라고 봤을 뿐이지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해 온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희랍 문명 이후로 무대 디자인이 있었고 우리나라의 경우만 해도, ?마당?의 개념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극장 예술?이라는 것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실주의가 가운데 위치하면서 그 양끝으로 두 가지 형태의 극단적인 사실주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비사실주의 가운데 잘 알려진 두 가지 형태는 "우화"(allegory)와 "표현주의"(expressionism)이다. 우화는 등장인물, 행동, 그리고 무대장치 등의 작품 요소를 상징적으로 사용해 추상적인 부제를 전달하는 것이다. 정신적, 도덕적 교훈을 전달하고자 등장인물을 통해 추상적인 관념을 의인화한 중세 도덕극들이 그 좋은 예이다. 「만인(萬人)」(Everyman)에서 배우들은 선행, 우정, 속세 등의 역할을 연기하게 된다. 비교적 사실적인 스토리는 직접성이 떨어지는 우화의 형식을 빌어 교훈이나 풍자적인 역할을 한다. 아서 밀러의 「시련」(The Crucible)은 17세기말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에서 일어난 마녀 사냥을 다루고 있지만, 밀러와 당시 사람들이 일반 시민을 부당하게 대우하고 그것이야말로 현대판 "마녀 사냥'이라고 여겼던 1950년대 초 미국 하원의 특정 수사 사건을 다룬 것으로 볼 수도 있다.표현주의는 20세기의 첫 4반세기 동안에 미술, 문학, 연극에서 각광을 받았지만, 현재 에도 그 자취는 여전히 남아 표현주의 기법을 이용한 현대극을 "표현주의적"이라고 일컫는다. 간단히 말해 표현주의는 내적인 감정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가령. 엘머 라이스(Elmer Rice)의 「계산기」 (The Adding Machine)에서는 제로씨 (Mr. Zero)가 직장에서 해고됐을 때 느끼는 감정이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호루라기 소리 등의 귀청을 찢는 불협화음으로 들려오는 가운데, 방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을 통해 표현된다.한편 연극의 스타일을 비극과 희극의 관점에서 볼 수도 있다. 비극적인 작품인가 희극 적인 작품인가 하는 것은 극작가가 소재에 접근해 가는 방식에 따라 좌우된다. 극작가가 자신의 작품에다가 비극적인 태도나 희극적인 태도를 어떤 식으로 융화시키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살펴보기로 하자. 퐁네프에서 재회한다.‘새로운 다리’라는 뜻의 퐁네프는 역설적이게도 세느강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 다리 이름과 역사가 지닌 역설은 사랑의 의미에 대한 역설이기도 했다. 진로와 퇴로를 미리 모색해 두는 허다한 사람들 사이에서, “잊는 법을 배우지 못해”라고 말하며 권총으로 손가락을 날리는 알렉스의 낡은 사랑은 우리에게 새로운 사랑이라는 테두리를 보여준다. 오늘날의 표현으로 ‘엽기적이야’라고 수군 될 수도 있지만 말이다.지을 땐 새로운 다리였지만, 어느새 가장 오래된 다리가 되고만 퐁네프의 운명처럼 새로움을 기약한 그 많은 사람들은 또 얼마나 쉽게 군내 풍기는 사랑이 되고 마는가. 갈증을 호소하는 미셀과 불면증에 괴로워하는 알렉스, 누가 더 슬픈 항해자였을까? 해를 희망이고 잠을 안식이라 할 때, 휴식 없이 절망적인 삶을 살아야했던 둘의 비참함은 다리 위에서도 마침내 사라의 자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사랑이란 뭘까? 이별과 재회, 과거와 미래, 혹은 삶과 죽음 사이를 끝없이 오가면서도 종내 강 저쪽으로 건너가지 못하는 자의 고단함. 아무리 행복한 미소를 지어도 미셀과 알렉스의 그림자를 담고 있는 한 퐁네프의 모든 연인들은 슬프다.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무엇보다 우선 황홀한 영상들이다. 폭죽을 그림물감처럼 써서 파리의 하늘에 움직이는 그림을 그리는 것, 그 그림아래에서 춤을 추고 센 강에서 훔친 모터보트로 수상스키를 타는 것, 지하도의 벽을 덮은 포스터에 불을 붙여 불타는 통로로 만들어 버리는 것 등등이 ‘새로운 영상(nouvelle image)’ 을 추구하는 감독으로 불리는 레오스 카락스가 우리에게 보여준 꿈의 조각들이다.그러나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그런 인상적인 장면들보다는 우리 돈으로 약250억원이나 들었다는 엄청난 액수의 제작비이다. 87년 레오 카락스는 자신의 새로운 영화을 꼭 퐁네프다리 위의 실제적인 모습을 배경 삼아 찍겠다고 선언했다. 잠정제작비는 3600만 프랑이었다. 그러나 파리의 중심가를 횡단하는 퐁네프다리에서 촬영을 한다는 것은 절 선포된 범죄와의 전쟁. 각조직의 우두머리들은 무조건 감방으로 가야하고 조직 내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암 투가 벌어진다. 이제 서로의 적이 된 동수와 준석. 어느 비 오는 날. 준석은 부모님의 제사상에 조심스레 잔을 하나 더 올린다. 그리고 같은 시간, 서면의 단란주점 앞에서 동수의 앞을 가로막는 두 명의 괴한.2영화 해설어떤 영화를 선정을 할지 많이 고민하던 중 영화의 작품성 보다는 촬영 등에 신경을 써서 봐야하는 특이성 때문에 가장 흥미 있게 보았던 곽경택 감독의 ‘친구’라는 영화를 택하게 되었다. 뭐 이 영화에 대해서는 전 국민이 다 알만큼 흥행에 성공했기 때문에 스토리나 배경 등을 따로 설명하지는 않아도 될 듯싶다. 이 영화는 유사 조폭영화처럼 폭력장면이 많다. 그래서 hand-held 기법이 자주 쓰인다. 동수(장동건역)가 학교유리창을 바 부시고 선생님들에게 큰소리치는 부분에서는 low angle로 촬영을 하기도 했다. 그럼 영화 흐름에 따라 자세히 분석해 보도록 하겠다.영화는 유년시절부터 시간의 흐름과 일치하여 흘러간다. 부산이라는 항구도시의 느낌을 충분히 살리기 위해 배경에는 항상 뱃고동 소리가 깔리고, 주위 사람들의 지방 사투리 또한 적절히 쓰인다. 타 영화와 비교되는 점은 엑스트라중 대부분을 실제 지방 사람을 써서 완벽한 사투리 구현에 성공한 것이다. 영상을 정지 해놓고 상택의 멘트로 적절한 사건진행을 도우는 것도 보인다.시장거리를 걷는 소년들의 주위로 항구의 분위기를 풍기는 생선 장수나 냉동 창고, 갈매기 등도 보인다. 소년들의 바닷가에서 물장구치며 노는 장면에서 연두색 빛으로 촬영한 것이 특이했다. 이것은 영화를 몇 번씩이나 감상한 후에 안 것이지만, 후에 동수가 죽을 때도 화면 빛이 연두색이다.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모르겠지만 동수가 죽을 때 그 시절을 연상함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한다.고교시절, 등교하는 학생의 저 먼 곳부터 가까운 곳으로 포커스를 옮긴다. 가까운 곳에는 주인공 4명이 있다. 그리고 중호가 말을 함으로써 그 4기는 하지만, 그것은 영화의 주무대인 깡패 세계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택의 시선을 통해 분절된 에피소드들만을 이어 붙이는 구성을 하도록 하였다. 이를테면 준석은 아버지가 건달이었기에 그 뒤를 이어 건달의 길을 걷게 되고, 동수는 또 아버지가 죽은 사람의 염이나 하는 비천한 직업을 가졌기에 그것에 대한 반발로 결국 깡패 세계에 입문한다. 이것은 여느 깡패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인과 결과의 연쇄가 되풀이되는 것일 뿐, 상택의 시선으로는 인과관계 안에 있는 연결고리와 숨겨진 이야기들을 들춰볼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친구는 불운한 주인공들이 하강하는 운명의 이야기를 그리 설득력 있게 전해주지 못하고 있다. 상택의 시선은 영화 속에 그려지는 깡패 세계에 대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피상적인 것 이상을 보여줄 수 없다.나는 이 영화에서 아버지의 부재보다는 오히려 어머니 또는 여성의 부재에 대해 꼬집고 싶다. 이 영화의 어디에서도 어머니는 등장하지 않는다. 아버지들은 비록 무기력하거나 부패한 모습일지언정 영화 속에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어머니는 하다못해 단 한 장면도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그룹 레인보우의 리드싱어인 진숙 역시 준석의 여자친구이자 훗날의 아내로 등장하지만 영화 속에서 이렇다할 역할을 갖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의 예상치 못한 성공에 대해 ?남성성의 상실에 대한 저항과 그것을 회복하려는 욕망?(영화평론가 심영섭) 또는 ?답답한 현실에 대한 우울한 한풀이?(영화평론가 조희문)라 분석하고 있다. 영화 에는 지난 시대 우리 사회가 강조한 ‘의리?나?충성? 같은 남성적 가치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지만, 반면 여성이 분명 그 안에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언급을 회피했다는 비판을 얻고 있다는 점을 들지 않을 수 없다.그는 또한 이 영화에서 묘사된 깡패 세계의 원리가 현대 사회의 일반적인 생존 논리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에 군사독재에 종지부를 찍은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하였다. 그는
    예체능| 2002.11.02| 32페이지| 1,000원| 조회(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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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 미술의 이해
    살아있는 미술목차무대장치란? 영화에서의 배경 연극에서의 무대장치무대장치무대장치는 더 이상 보조물이 아니라 또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무대 디자인은 명백히 4차원적인 디자인이다. 시간성이 포함되는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4차원적인 시간이 개입되면서 비로소 무대 디자인의 정체가 밝혀지게 되는 것이다.영화(퐁네프의 연인들)퐁네프 다리주인공 : 줄리엣 비노쉬줄리엣 비노쉬 1964년 3월 9일 생 1997년 잉글리쉬 페이션트 의 앤소니 역으로 여우조연상을 받았으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으로 국제적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오랜 동안 크리스토프 키에슬로브스키 감독과 작업하면서 그 작품 '삼색'에 모두 출연했다. 블루 에서는 남편과 아이를 잃은 슬픔에 직면한 작곡가로 분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가난과 행복다리 위에서의 축제영화(친구)감독 : 곽경택1995 NewYork University 영화과 졸업 1995 단편 영창이야기 서울 단편영화제 우수상. 1997 억수탕 부산국제영화제 공식초청 1997 상파울로 국제 영화제 공식 경쟁작 1998 닥터 K 브뤼셀 국제영화제 공식초청, 부천 판타스틱영화제 공식초청, 캐나다 벵쿠버 공식초청친구 포스터공간적 배경실제 배경 : 시장동수의 죽음연극(가부키)용어정리어휘설명실제연극장면연극(햄릿)작가 소개세익스피어 생가1564년 잉글랜드 중부Stratford-upon-Avon 에서 출생 영국의 시인.극작가 국적 : 영국 활동분야 : 문학 주요작품 : 《로미오와 줄리엣》 《베니스의 상인》 《햄릿》 《맥베스》실제무대{nameOfApplication=Show}
    예체능| 2002.11.02| 23페이지| 1,000원| 조회(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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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의 역사와 문화 평가A좋아요
    독후감 ( 동양의 역사와 문화 를 읽고)책이름 : 동양의 역사와 문화저자 : 중국역사문화연구회출판사 : 조선출판 보성출판 연월 : 2001년 2월1.머리말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던 나는 이번 학기에 동양의 역사와 문화를 수강 신청하면서 평소 알지 못했던 공부를 하게 된다는 기대가 많이 되었다. 동양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중국은 동아시아의 대부분의 영토를 차지하면서 동양의 역사와 문화를 이끌어 나갔다. 우리가 중국의 역사를 중요시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부분이 중국과 그 이민족의 문화의 형성과 깊이 관계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사는 이민족의 역사이고 문화 또한 이민족과 한족의 대립으로 이룩된 오랜 관습을 통해서 이루어진 유구한 역사이다. 우리 민족이 오래 전부터 이룩해온 불교와 유교의 전통이 중국에 있기 때문이다.난 이번 독후감에 수업 교재로 채택된 동양의 역사와 문화를 읽었다. 독후감과 아울러 이 책의 장점과 단점을 평가해 보려 한다. 이 책은 크게 중국 역사의 이해와 중국 문화의 이해로 나뉘어져 있다. 중국의 역사의 이해에는 중국인의 역사 인식, 중국인의 특징, 중국의 정치 제도, 중국의 역사 인식으로 되어 있고 2부에서는 중국인의 여성과 지위, 사대부의 생활, 종교 등이 나타나 있다. 난 이중에서 중국사의 특징과 중국의 종교에 대해서 논하려고 한다.2.본문중국사를 논할 때 춘추전국 시대에 공자가 저술한 춘추를 높이 평가 한다.춘추는 기원전 6세기에 저술된 것으로 후대 역사서술의 전통과 모범이 되었고 후에 한 대의 사마천이 사기의 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공자는 역사에서 특히 중시한 것은 의로서, 사가는 죽음을 무릅써서라도 반드시 의를 지켜야 한다고 믿었다. 이것이 소위 춘추필법으로 후세의 사가들은 이런 공자의 의미를 계승 확대 시켰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사마천으로 기원전 145년에 태어나 전한 시대에 사기이며 중국 역사상 최고의 역사가로 평가받고 있다. 옛날 중국의 역사가는 대대로 역사가의 집안이 많았는데 시대부터 사마천 자신의 시대인 한 무제에 이르기까지 약 3천 년의 역사를 포괄하는 통사이다. 사기는 12본기, 10표, 8서, 30세가, 70열전 등 모두 13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같은 서술방식은 새로운 역사 서술체계인 기전체로 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고, 후대에 역사 서술에 춘추와 더불어 표본이 되고 있다. 또 한 명의 역사가를 들자면 북송대에 유명한 정치가이자 문호이며 역사가인 사마광을 들 수 있다. 자치통감은 사마광이 왕안석의 신법으로 정계에서 은퇴하여 쓴 것으로 춘추, 사기와 더불어 최고의 역사서로 평가받는다. 자치통감은 전국시대부터 오대까지의 1362년간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한 통사이다. 자치통감은 편년체 방식을 취한 대표적 사서이고 사기의 기전체와 더불어 역사를 기술하는 대표적인 방법이라 할 것이다.위에 나열한 세 가지 책 (춘추, 사기, 자치통감)을 통해서 중국사의 특징을 파악해 보면 다음과 같다. 특징이란 다른 것과 비교했을 때 구별되어 지는 것으로 여기서는 중국이 문호 개방 되면서 서구인의 눈으로 본 중국사의 특징을 알아보도록 하겠다.첫째, 중국사는 창조가 아니라 창시의 역사 인식을 갖는다. 서양은 과거부터 기독교 문화를 이루었고 구약성경의 창세기에 보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우주 만물의 기원은 하나님의 창조에 의한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중국에서는 우주 창조설 보다는 인류 문명과 문화를 창시한 신화와 전설이 중시된다. 삼황오제 신화가 바로 그것이다. 삼황은 불의 사용법을 알게 됐다는수인과 사냥 기술을 고한 했다는 수인과 사냥기술을 고안했다는 복희 그리고 농경법을 발명했다는 신농 등이다. 오제는 요순 외에 전욱과 제곡의 이야기이다. 삼황오제의 이야기는 모든 인류 문명과 문화가 인간이 만든 것임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중국은 신의 계시와 같은 진리가 없기 때문에 인간이 만든 기준으로 시비를 가릴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중국에서 사학의 중요성은 서양의 신학과 같다고 말 서 신학과 유사하고 서양의 신학과 같은 권위를 갖는 학문이었다. 학문을 기반으로 했던 지식인이 중국 사회에서 주도세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처럼 학문에 근거하였던 권위를 내원에서 찾을 수 있겠다.둘째, 중국에서는 성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성이 있지만 근래에 모든 사람이 성을 갖게 되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양반, 상민, 평민 등으로 나뉘었던 계급제도가 법적으로 철폐되고 양반만 갖게 되던 성을 모든 백성이 갖게 된 것이다. 중국에서는 훨씬 오래 전인 전국시대에 평민도 성을 갖게 되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논란이 있긴 하지만 평민도 자유롭게 토지를 매매하고 이주할 수 있고 직업을 바꾸고 사회제도도 이 시기에 상당히 개방적이었다. 새로운 경제 기초에 근거하여 중국 가족제도도 성립되었다. 반면 서양은 영국과 프랑스에서 16세기에 이르러서야 모든 가정이 하나의 성을 갖도록 법률이 제정되었다. 유럽인들은 이름을 매우 중요시했는데 신으로부터 받은 세례명을 상당히 중요시되었다. 이것에는 커다란 종교적 의의가 있다. 따라서 성은 별로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중국과 유럽의 성명제도에는 종교와 속세의 윤리적 의미가 있다. 중국의 성씨제도는 가족의 단결정신을 강화하는 것이고 서방의 성스러운 이름제도에는 종교적 의미와 얼마간에 개인의식을 강화하는 의미가 있다는 점이 다르다. 사회구조와 이념의 시각에서 보면 이것은 중국과 유럽사회가 다른 중요한 요소이다.셋째, 중국인의 국가와 가족의 중요성이다. 대부분의 민족도 가족을 사회구조의 기초로 하였으나 중국인과 같이 중요시한 민족은 없었다. 중국 전통 윤리는 효를 기본으로 하고 가족제도는 부계중심의 가부장권의 구조였다. 가의 바깥에는 족이 있어 이들의 결합된 가족은 강력한 사회조직이 되었다. 중국 사회에는 아래로는 가족이 위로는 국가라는 두 개의 대별되는 조직이 있었다. 두 조직 사이에 비록 다른 단체 조직이 있었으나 가와국의 범주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효제는 중요한 것으로 국가에 대한 충보다 중시조직이 가의 확대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전통적인 도덕관념은 효를 근본으로 하였고 가정의 실제 생활에 초점을 두었으며,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조화시키는데 목적을 두었으므로 현실에 참여하는 윤리체계를 만들어 내었다. 따라서 중국사상을 주도했던 지식인들은 한편으로는 이러한 중국의 독특한 사회배경에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점은 중세기 이후 서양의 철학가들이 가족의 구속에서 벗어나서 교회, 대학, 정치생활, 개인 생활 등에서 추상적인 진리를 추구할 수 있었던 것과는 매우 대조를 이룬다.넷째, 농경 위주의 문화이다. 전통적으로 농업 위주정책을 실시하면서 목축업을 소홀히 하였다. 이것은 일찍부터 농업이 위주가 되면서 토양을 개량하고, 개량 시설을 이용하며 비료를 주고 콩 같은 작물을 파종하는 등 농토는 휴식할 시간이 없이 계속적으로 사용되었다. 중국에서 농업 위주의 정책을 실시하고 집약농업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은 지속적인 인구증가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단위 면적당 좀더 많은 식량 생산을 강구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중국인은 식량을 위해서 목축을 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이상으로 중국사의 특징에 대해서 열거 해 보았다. 전통적으로 중국인들은 한족 중심의 중심 문화에 대한 강한 우월감을 지니고 민족에 대해서는 오랑캐 라고 비하하고 천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중국의 국가와 사회의 중요한 구성요소인 소수민족에 대한 관심도 중국사의 특징에서 이해해야 할 부분이다.다음으로 중국의 종교에 대해서 알아보겠다.중국 종교의 세속성은 두가지로 나타낼 수 있는데 종교가 세속성과 대립하거나 세속적인 체계의 우위에 섰던 것이 아니고 체계의 종속되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추월적이거나 내세에 대한 관심보다는 무엇보다도 현세의 복을 구하는 구복 신앙의 성격이 크다는 점이다. 이러한 중국의 종교를 내세종교라기 보다는 현세종교라는 단정하는 의견에 대체로 수긍할 것이다. 이와 같은 중국 종교의 성립과 변화, 발전을 통해서 중국 문화의 한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 종교의 또 하나의 특징은 원시 신 도교라 할 수 있다.첫째, 유교의 성립과 발전에 대해서 알아보자. 유교는 중국 고대 종교의 이념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다. 유교는 춘추시대 말 공자의 사상에 뿌리를 둔다. 공자는 주공을 상문화와 주문화를 융합한 위대한 인물로 해석한다. 그리고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혼란기에 주나라의 정신적 가치관이자 통치 이념이었던 주례 를 옹호하고 유지하고자 하였다. 주례의 특징은 혈연을 기초로 한 존비, 귀천, 상하 등의 엄격한 질서를 기초로 하여 집단을 단결시켜서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데 있다. 예의 원류는 제사에서 출발하고 예의 핵심은 조상에 대한 존경이다. 공자의 사상을 기초로 한 유교는 종교라기보다 중국의 정치 사상, 학술 사상, 그리고 통치이념으로 종합적인 유교 문화를 조성하고 주변 국가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근본적으로 혈연을 기초로 한 가족의 유대와 조상에 대한 제사를 통한 결속 그리고 인간의 내면적 자각을 통한 도덕적 실천을 강조하는 유교의 이념을 2000년동안 지속되어 왔다.둘째, 불교의 성립과 발전에 대해서 알아보자. 불교는 다 알다시피 인도에서 발생한 종교이다. 인도의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었던 초기에는 주로 불교경전의 번역사업이 이루어졌다. 남북조시대부터 수당시대까지는 번역승들의 활동과 중국학자들의 학설이나 사색이 어우러져 여러 종파가 형성되면서 중국불교의 전성시대를 맞이하였고 인도불교와는 다른 독자적인 중국 불교 사상이 발전하였던 시기이다. 중국 불교는 사상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면에서 이용되어져 왔다. 인도에서 국가적인 불교 정책이 자비의 가르침을 실현하는 이상세계를 구현하는데 목적이 있었다면 중국에서는 불교를 민중을 지배하는 도구로 이용되었다. 따라서 불교는 국가권력에 의해 통제되거나 규제되었으며 국가권력에 봉사하는 불교교단이나 불교교리를 성립시켰다. 이와 같은 중국의 국가 불교적 색체는 동아시아 전역에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호국불교적인 성격이 강한 신라불교를 탄생시켰고 일본 불교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불교가 수불교경
    인문/어학| 2001.04.15| 7페이지| 1,000원| 조회(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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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자의 기술론
    莊子의 技術觀1. 머 리 글 2. 技의 뜻3. 技의 用 4. 技人의 道 5. 맺 음 말1. 머 리 글17세기 뉴우튼에 의해 정립된 古典力學은 20세기초 相對性理論과 量子理論의 출현으로 커다란 변혁을 겪고 있다. 관측주체와 관측대상은 구분되지 않으며 波動의 성질도 갖고 있는 粒子의 세계는 不確定性原理가 적용되는 확률의 세계라서 因果律이 적용될 수 없게 되었다. 현대물리학은 有機的 全一的(holistic) 시스템적 세계관을 가능하게 하였는데, 뉴우튼의 機械論的 세계관과 데카르트의 物心二元論的 세계관이 받아들일 수 없게 되면서 東洋的 세계관이 새롭게 주목되고 있다.{ ) 현대의 科學과 東洋哲學을 관련시키고 있는 文獻들이 최근 學界에 소개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것들이 이에 속한다.1 新科學硏究會 編, 新科學運動 ,汎洋社,1986.2 유아사야스오(朴熙俊 譯), 科學技術과 精神世界 ,汎洋社,1988.3 브리그스 데이비드(김광태 조혁 역), 혼돈의 과학 ,범양사,1990.4 카푸라(李成範 具閏瑞 譯), 새로운 科學과 文明의 轉換 ,汎洋社,1985.5 카푸라(李成範 金鎔貞 譯), 現代物理學과 東洋思想 ,汎洋社,1979.道家思想은 對立者의 極關係 또는 對立者의 內含的 統一(Implicit Unity of all Opposites)이라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러한 개념이 현대물리학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카푸라(李成範 金鎔貞 譯), 現代物理學과 東洋思想 ,汎洋社,1979,135쪽.특히 渾沌의 科學 이라는 새로운 科學을 추구하는 학자들은 莊子가 應帝王 編에서 언급하고 있는 混沌 의 개념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 브리그스 데이비드(김광태 조혁 역), 혼돈의 과학 ,범양사,1990,19쪽.니담도 道家思想을 反科學的이 아니었던 唯一한 神秘主義 體系 라고 언급하면서 道家들의 經驗論, 자연에 대한 인식과 과학적 태도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 조셉 니담(李錫浩李鐵柱林禎垈 譯), 中國의 科學과 文明(II) ,乙酉文化社,1986, 제10장(45-234쪽).이 글은 도가사상의좋음 { ) 大韓和辭典 卷五,125쪽.이다. 古典에 의하면, 說文 에서는 技 를 巧也 라 했고, 廣韻 에서는, 藝야 라 했으며, 筍子 에는 그 注 에서 工也 라 했다. 따라서 技 를 東洋의 古人들은 藝人 또는 匠人들의 재주가 교묘함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莊子 에서는 技 에 설명이 간접적으로 나타나 있는데, 서로 대비될 수 있는 설명의 예를 2 가지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A1: 그러므로 天에 通하는 것이 道이고, 地에 順하는 것이 德이며, 萬物에 行해지는 것이 義이다. 위에서 사람들을 다스리는 것이 事이고, 才能이 뛰어 난 것이 技이다. 技는 事에 합쳐지고, 事는 義와 합쳐지며, 義는 德에 합해지 고, 德은 道에 합쳐지며, 道는 天에 합쳐진다. { ) 莊子 天地 , 故通於天者道也,順於地者德也,行於萬物者義也,上治人者事也,能有所藝者技也. 技兼於事,事兼於義,義兼於德,德兼於道,道兼於天. 陳鼓應 註譯, 莊子今註今譯 上冊(臺北市:臺灣商務印書館),1975,325쪽.A2: 그런데도 눈밝은 것을 좋아한다면 色에 빠지게 되고, 귀밝은 것을 좋아 한다면 소리에 빠지고, 仁을 좋아하면 德에 어지럽혀지고, 義를 좋아하면 理 에 어그러지고, 禮를 좋아하면 技를 돕게 된다. 樂을 좋아하면 빠지는 것을 돕고, 聖을 좋아하면 藝를 도우며, 知를 좋아하면 상처를 크게한다. { ) 莊子 在宥 , 而且說明邪,是淫於色也.說聰邪,是淫於聲也.說仁邪,是亂於德也.說義邪,是悖於理也.說禮邪,是相於技也.說樂邪,是相於淫也.說聖邪,是相於藝也.說知邪,是相於庇也. 이하의 莊子 의 原文은 陳鼓應이 註譯한 莊子今註今譯 上 下冊에서 引用하였음.위의 인용에서 A1은 技에 대한 肯定的인 의미를, A2는 否定的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A1에서 技는 事 義 德 道와 순차적으로 합쳐져서 窮極的으로는 天에 합쳐질 수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A2에서는 禮를 좋아하다보면 技를 돕게되는데, 明 聰 仁 義 禮 樂 聖 知 등을 좋아하게 되면 天下가 본래의 자연스런 상태에 머물러 있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곱자에 꼭 들어 맞는다. 고 한다. 匠人는, 나는 나무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다. 굽은 것을 만들면 콤파스에 꼭 맞고, 곧은 것을 만들면 먹줄에 꼭 맞는다. 고 한다. 흙이나 나무의 本性이 어찌 그러한 規矩鉤繩에 들어 맞기를 바라겠는가. 그런데도 世上에서는 대대로 이 어가며 伯樂은 말을 잘 다룬다. 陶工이나 匠人은 흙과 나무를 잘 다룬다 고 칭찬한다. 이 또한 天下를 다스리는 者의 잘못이다. { ) 莊子 第九, 馬蹄 , 陶者曰, 我善治塡,圓者中規,方者中久. 匠人曰, 我善治木,曲者中鉤,直者應繩. 夫塡木之性,豈欲中規矩鉤繩哉.然且世世稱之曰, 伯樂善治馬,而陶匠善治塡木 ,此亦治天下者之過也.위의 B1,B2는 母系社會 또는 原始共産社會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듯하다. 道家사상가들은 私有財産制度가 생기기 이전의 미분화된 자연 그대로의 생활을 이상으로 한 것 같다.{ ) Joseph Needham(李錫浩 李鐵柱 林禎垈 譯), 中國의 科學과 文明 II,乙酉文化社,1986,152쪽.B3,B4의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그 내용이 비유적인 표현이기는 하나, 陶工과 匠人의 技가 흙과 나무의 본성을 거스른다는 점을 批判하고 있다. 마치 仁義禮樂이 인간의 본성을 어떤 틀에 얽매고 있듯이 技와 工商은 자연의 본성을 그르친다는 것이다. 商人은 賣買할 일이 있어야 마음이 편하고, 百工은 精巧한 器械{ ) 1禮器와 武具. 周禮 天官,司書 知民之財,器械之數. 疏 器,謂禮樂之器,械,謂兵器弓矢戈投戟矛.2武器. 史記 秦始皇紀 器械一量,同書文字. 注 正義曰,內成曰器,甲胄兜務之屬,外成曰械,戈矛弓戟之屬.3道具.機械와 같다. 呂氏春秋 貴信 百工不信,則器械苦僞. 漢書 宣帝紀贊 至于技巧工匠器械,自元成閒,鮮能及之. 注 師古曰,械者,器之總名也.一曰,有盛爲械,無盛爲器.가 있어야 열심히 일하듯이, 이들 工商人들은 外物에 사로잡혀 일하므로 無爲로 있을 수가 없어 본연의 자기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 莊子 第二四, 徐无鬼 , 農夫无草萊之事則不比,商賈無市井之事則不比.庶人有旦暮之業則勸,百工有器械之巧則壯.錢財不積則貪者 목적에 이용된 技에 대한 비판으로 보고 싶다. 天地 編에 나오는 機事 機心 은 하나에 치우친 技{ ) 莊子 第三三, 天地 , 猶百家衆技也,皆有所長,時有所用.雖然,不該不偏,一曲之士也.를 부정한 것으로 생각된다.3. 技의 用莊子는 일상적인 有用을 뛰어넘어 無用을 말함으로써 有用에 매달린 당시인들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無用을 消極的 無用 과 積極的 無用 { ) 消極的 無用은 用 을 動詞로 해석하여, 쓰지 않음 이라 해석하고, 積極的 無用은 用 을 名詞로 해석하여 씀이 없음 으로 해석한다. 명사로 해석한 씀 은 莊子가 추구하는 진정한 씀 이 아니라, 否定하고 批判해야할 씀 으로서 日常的이고 常識的인 의미의 씀 을 말한다.으로 구분하여 인식할 필요가 있다. 莊子 에서 技의 用을 설명하고 있는 대표적인 예를 들어 技의 用이 갖고 있는 의미를 분석하기로 한다.C1: 지금 선생에게 五石이나 되는 瓠가 있다면, 어째 큰 통을 만들어 강이 나 호수에 띄워 보려고 하지 않고, 瓠가 쓸 곳이 없다고 걱정만 합니까. 역 시 선생은 마음이 구부러져 있군요 { ) 莊子 第一, 逍遙遊 , 今子有五石之瓠,何不慮以爲大樽而浮乎江湖,而憂其瓠落無所容.則夫子猶有蓬之心也夫.C2: 손을 트지 않게 하기는 마찬가지이나 한 쪽은 領主가 되고, 한 쪽은 솜 빠는 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은 쓰이는 바가 달랐기 때문이다 { ) 莊子 第一, 逍遙遊 , 能不龜手一也.或以封,或不免於 幷 壁 光,則所用之異也.C3: 지금 선생이 큰 나무를 가지고 있으면서 쓸데가 없어 걱정하고 있는데, 어째서 있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는 곳(无何有之鄕)의 드넓은 들판(廣莫之 野)에 심고{ ) 无何有之鄕 과 廣莫之野 는 莊子가 追求한 無爲自然의 理想鄕 이다., 그 곁에서 마음 내키는 대로 한가로이 쉬고, 그 그늘에 유유 히 누워 잠을 자지는 못하오. 도끼에 찍히는 일도 누가 해를 끼칠 일도 없을 텐데, 쓸모가 없다고 어째서 괴로와한단 말이오 { ) 莊子 第一, 逍遙遊 , 今子有大樹,患其无用,何不樹之於无何有之鄕,廣莫之野,彷徨乎无爲其側 활용할 때와는 그 쓰임의 효과는 다르다. C1,C2에서는 技의 用(有用性)이 어디까지나 有用함 內에서의 相異性을 말하고 있다. 쓰임의 條件에 따라 用의 價値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C3,C4에서는 無用한 것처럼 보이는 技{ ) C3의 상수리나무는 木材의 일종이기 때문에 技의 用과 關聯이 있으나, C4의 支離疏라는 꼽추는 技의 槪念을 직접 적용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가 社會에 쓸모있는 技術을 가진 技人으로서의 役割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서 技術을 갖고 있지 않은 者(無技者)라는 의미로 해서 技의 用이라는 說明에 포함시켰다.의 用를 말하고 있다. C3에서 惠子가 莊子의 말을 樗{ ) 가죽나무 저.소태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 잎은 냄새가 이상하고 재목은 옹이가 많아 쓸모가 없으므로, 無用의 뜻으로 쓰임.(저)에 비유하여 材木으로 쓸모가 없다고 한데 대하여, 장자는 樗를 그대로 두고 그늘을 이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樗를 베지 않고도 樗를 이용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나무를 베어 재목으로 쓴다는 것은 인간의 입장에서는 용이나 나무라는 자연의 입장에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나무도 살리고 이용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따라서 장자의 용은 인간의 관점에서 본 용이 아니라, 자연의 입장에서본 용이었다. 人間世 編에 나오는 匠石과 樂樹 { ) 莊子 第四, 人間世 , 勿言之矣.散木也,以爲舟則沈,以爲棺槨則速腐,以爲器則速毁,以爲門戶則液 滿,以爲柱則 .是不材之木也,無所可用,故能若是之壽.의 이야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쓸모가 없음(無所可用)이 큰 쓸모(大用)였음을 말하고 있다. 무소가용에서의 용은 인간을 위한 재목으로서의 용이고, 대용에서의 용은 나무의 입장에서 베이지 않고 오래 보존되어 온 것을 말한다. 여기서 장자는 有用함에 두가지 종류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人間을 위한 用과 自然을 위한 用이라고 말해 두자.{ ) 人間을 위한 用을 소극적인 用, 自然을 위한 用을 적극적인 用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
    인문/어학| 2001.04.15| 8페이지| 1,000원| 조회(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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