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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탕달의 '적과 흑' 평가A좋아요
    ▷ 스탕달의 생애▷『적과 흑』 개요▷『적과 흑』 내용요약▷ 두가지 소견-소설 문학을 영화화함에 따르는 문제점-스탕달이 살았던 시대의 사회적 상황과그 소설에서의 재현 및『적과 흑』에서의 적용▷ 마치며….▷ 참고문헌◈ Stendhal (1783∼1842)프랑스의 소설가·문예 비평가·외교관으로서 프랑스의 동남부 그르노블에서 태어난 스탕달(본명 Henri Beyle)은 엄격한 부르주아 가정교육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과민한 감수성과 내향적인 정열을 무표정한 마스크 속에 감추려는 습성이 있었다. 즉 그는 자기의 소년 시절을 증오했다. 왕당파적인 그 지방의 정치 풍토, 그의 교육자인 신부의 강압적 태도, 그에게 돌아올 재산을 날린 아버지,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 그 모든 환경이 그에게 불만밖에는 줄 것이 없었다. 그는 1799년에 공과 대학에 들어갈 목적으로 파리로 올라 왔다. 그러나 그 계획을 포기하고 1800년부터 2년간 군대에 들어가 밀라노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이것이 그가 평생을 두고 깊은 관계를 맺게될 이탈리아와의 최초의 만남이었다.1802년에 파리로 돌아오자 그는 몰리에르처럼 희극을 쓰고 싶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그 대신 18세기의 관념학자들의 사상에 매력을 느꼈다. 인간의 생각은 감각에서 유래하는 것이며 또 그 행동은 개인적 행복을 추구하려는 욕망의 소산이라는 그의 인간관과 그런 인간관에 의거한 분석 정신은 이 무렵부터 길러진 것이라고 하겠다.1806년부터 1814년까지 다시 군대 생활을 한 그는 나폴레옹의 원정에 참가하여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에서 복무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제1제정이 몰락하자, 1821년까지 다시 밀라노에 가서 살면서 딜레탕트로서의 생활을 즐기고 파리로 되돌아 왔다. 그리고 1830년까지 계속된 파리 생활 동안에 그는 De l'amour(1822), Racine et Shakespeare(1823), Armance(1827), Le Rouge et le Noir(1830)등, 괄목할 만한 작품들을 연달아 발표했다. 7월왕정 냉철하게 그리고 위선을 무기로 출세와 영달을 위해 사회와 맞서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양심과 감수성에 굴복하게 되는 주인공의 눈을 통해 모든 것이 표현되고 있다는 의미에서 주관적 사실주의의 구현이다. 책제목에 뜻에 대해 대해서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적(赤)은 제정시대의 영광을, 흑(黑)은 왕정복고시대의 암울의 상징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적과 흑』내용 요약주인공 줄리앙은 목수인 소렐 영감의 세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난다. 베리에르라는 프랑스의 소도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격심한 육체 노동을 요구하는 가족적 환경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섬세하고 연약한 체질을 타고남으로써 항상 멸시받으며 자라난 줄리앙은 나폴레옹의 군대에서 군의관이었다가 퇴역한 노인이 심심풀이로 라틴어를 가르친 것이 그가 받은 교육의 시발점이 된다. 그리고 줄리앙은 약간의 교육을 받게 됨으로써 자신의 가족적 환경과는 더욱더 유리된다. 줄리앙의 아버지는 공장에서 일을 하지 않고 항상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줄리앙을 항시 못 마땅해 했다. 줄리앙은 제재소의 일 보다는 조용히 혼자서 책을 읽는 것을 즐겼는데 이 때문에 아버지의 꾸중을 자주 들어야만 했다.자신의 최초 스승인 늙은 퇴역 군의는 열렬한 보나파르티스트로서 나폴레옹에 대한 자신의 열광을 어린 제자에게 그대로 물려준다. 그래서 줄리앙은 나폴레옹을 좋아했다. 소설 처음부터 줄리앙은 이미 열렬한 나폴레옹 숭배자로서, 출세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골백번이고 죽는 편을 택하겠다는 불굴의 결심, 즉 요지부동의 사회적 성향을 지닌 인물로서 묘사된다. 일개 시골뜨기였던 나폴레옹이 훗날 프랑스를 비롯하여 전 유럽을 주름잡았다는 사실은 자신의 처지를 못마땅해하는 줄리앙에게는 그에 대한 숭배는 당연한 것이었다. 불완전하고 편협한 교육의 결과로 줄리앙은 나폴레옹의 신화를 더욱 광신적으로 수용하여, 그는 나폴레옹 시대에는 개인적 능력과 가치에 대한 보상에 끝이 없었다는 식으로까지 생각하게 된다.어느 날 레날 시장이 소렐 영감을 찾아와 줄리앙을 자기 아이들의더 이상 줄리앙의 사랑을 거부할 수 없기에 이르렀다. 그녀는 자신이 줄리앙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신분의 차이 따위는 그녀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줄리앙은 레날 부인을 자신의 출세의 배경으로 삼으려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드디어 줄리앙과 레날 부인은 조심스럽게 연애를 시작했다.그러던 어느날 줄리앙과 레날 부인은 큰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레날 시장에게 둘 사이를 밀고하는 내용의 편지가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이제까지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던 시장은 점점 그 두 사람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줄리앙과 레날 부인은 그 편지가 모함이라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해 서로 서로 연극을 하기도 했으나 레날 씨의 마음을 완전히 돌려놓지는 못했다. 결국 줄리앙은 시장의 집을 떠나 신학교에 들어가기로 했다.신학교에 들어간 얼마간 줄리앙은 그곳의 신학생들에게서 따돌림을 받았다. 그들과는 어딘지 모를 그런 뛰어난 어떤 것이 있어서 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뛰어난 실력으로 모든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게 되자 신학생들은 줄리앙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줄리앙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고 줄리앙과 같이 있고 싶어하였다.그곳에 온 신학생들은 대부분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었다. 귀족이 되기는 어려운 일이었으므로 사제가 되어서 자신의 생활보다 좀 더 풍족하고 안정적인 일을 하고 싶어하는 상승의 욕구를 가지고 신학교에 들어온 것이다. 줄리앙이 신학교에 있을 때 그곳의 교장인 피라르 신부는 아이들에게 공정하려고 애썼다. 그래서 특별히 누구를 편애한다던가 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줄리앙에게만큼은 달랐다. 줄리앙은 아주 총명한 학생이었고, 교장 신부에게도 무척이나 마음에 들게 행동을 했으므로, 자연히 줄리앙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지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교장 신부의 이런 애정이 줄리앙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훗날 줄리앙이 라 몰 후작의 집에 들어가게 되는 것도 이 신부의 추천의 의해서였으니깐 말이다.그 당시에는 종교계에도 파가 갈려 심심이 컸기 때문이다. 마틸드 양은 자신이 줄리앙을 사랑하면서도 그것을 금방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줄리앙의 마음을 받았다 가도 다음날이면 줄리앙을 경멸하였다. 자신보다 낮은 신분의 사람이 자신이 그를 좋아한다고 해서 자신 앞에서 군림하려고 하는 것이 용납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줄리앙은 몇 번의 고백과 마틸드 양의 변덕스러운 태도에 고민하고 아파하다가 다른 곳으로 떠나게 해 달라고 라 몰 후작에게 제안한다. 마침 라 몰 후작은 비밀스런 일을 추진하고 있었으므로 믿을 만한 사람을 찾고 있던 터라 줄리앙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줄리앙은 목숨이 걸릴 만큼 위험한 일을 무사히 끝내고 있던 차에 독일에서 한 귀족을 만나게 된다. 그 귀족은 줄리앙에게 아주 친절했으며 줄리앙도 그 사람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도 역시 많은 연애를 해 봤던 사람이었으므로 여자들의 마음을 훤히 읽고 있었던 터라 줄리앙에게 앞으로 돌아가서 해야 할 일들을 상세히 일러주었다. 줄리앙은 반신반의했으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터라 그렇게 해 보기로 했다.사교계에 드나드는 많은 사람들 중에 페르바크라는 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과부였으나 절개를 굳게 지키고 있었던 터였다. 그런 부인의 마음을 끌어 마틸드 양의 질투를 유발시켜 그녀의 마음을 움직여 보려는 것이었다. 그런 줄리앙의 계획은 거의 성공을 거두었다. 마틸드 이름에도 몸이 달았던 줄리앙이었으나 여행을 다녀온 후부터는 그녀에게 아주 냉소했고, 다른 여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애쓰는 줄리앙의 모습이 자존심이 강한 마틸드 양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그 동안 줄리앙은 몇 번이고 그 방법을 포기하고 싶었으나 일을 그르치고 싶지 않아 몇 번이고 아픈 마음을 진정시켜야만 했다.줄리앙의 계획이 거의 성공할 무렵 마틸드 양은 줄리앙에 대한 사랑으로 철옹성 같던 자존심을 무너뜨렸다. 라 몰 후작에게 줄리앙과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인정해 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당연히 라 몰 후작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그 동안 그렇게 똑똑옹에서 고무된 불굴의 사회적 상향의지를 획득한 젊은이가 사회와 부딪치는 얘기와 그 와중에 눈뜨게 되는 진실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두가지 소견⊙ 소설 문학을 영화화함에 따르는 문제점프랑스 소설문학이 영화화된 경우는 얼마나 될까? 사실 위 주제를 논하기 위해서는 앞서 밝힌 명제를 조사하는 것부터가 순서일 것이다.『보바리 부인』,『마르셀의 추억』,『위험한 관계』,『발몽』,『미녀와 야수』,『달로의 여행』,『팡팡』,『적과 흑』,『레미제라블』,『시라노』등등…. 확실한 자료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 동안 읽고, 수업시간에 배우거나 어렴풋이 스쳐들은 문학 작품들이나 보고들은 영화를 짝짓기 시켜보면 거의 모든 프랑스 문학(특히 스탕달과 같은 근대의 문학)이 영화화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프랑스 초기 장편 발성영화는 회화 예술적 전통 및 아방가르드적 무성영화 제작의 영향을 드러내 보이는 동안에도 영화에 이용할 수 있는 문학적, 연극적 자원들에 더 많이 의존하였다. 역사적으로 프랑스 소설은 전반적인 발성영화의 양식과 밀접한 일종의 리얼리즘으로서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스탕달을 위시해서 발자크, 플로베르, 졸라 그리고 모파상의 작품들은 프랑스 문학에 있어서의 주요 경향을 대변한다. 대체로 1930년대 후반기 프랑스의 많은 영화는 대체로 그러한 전통의 연장선상에서 파악될 수 있다.그러므로 고전적 영화는 반박할 여지없이 19세기 중요한 소설이 가지는 형식들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영화들은 연극적 신 처리의 영향을 뚜렷이 받고 있다. 화면분할과 이미 말해진 이야기에 의거해서 주어지는 시점을 통해(1920년대까지는 정면 촬영이 영화생산을 지배했다) 소설에서 획득된 서사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시점의 유연성, 기동성이 늘어가는 가운데 소설적 서사 형식은 눈에 띄게 나타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영화관객들은 소설의 독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속 이야기의 공간과 시간이 명료하고 동질적이며 논리적으로 연결되려면 시각적 지표들이 수미 일관되어야 한다. 그리하여았다.
    인문/어학| 2000.12.01| 13페이지| 1,000원| 조회(1,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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