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정*
Bronze개인인증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43
검색어 입력폼
  • 현대사회의 무용의 의미
    현대사회의 무용의 의미1. 현대사회의 특징(가) 도시화산업이 발달하면서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 현상은 주택난, 교통 혼잡, 대기 오염, 쓰레기 공해, 소음 공해 등의 많은 문제를 발생 시켰다. 또, 생활 공간이 좁아지게 되어 운동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지나친 경쟁으로 심리적인 압박을 받고 있다. 이와 같은 생활환경은 사람들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허약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나) 산업화고도로 발달된 현대의 기계 문명은 기계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신해 주고, 교통 수단의 발달로 인하여 신체 활동은 감소하고 있다. 또, 각종 생산 과정이 분업화되고 자동화됨에 따라 인간도 기계의 일부분처럼 단조로운 동작만을 반복하게 되었다.(다) 문화의 발달문화의 발달 정도가 낮은 사회에서는 주로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의 해결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현대인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어서 다양한 문화 활동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체육 활동은 다른 어느 활동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참여할 수 있는 폭넓은 문화 활동으로서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라) 여가 시간의 증대국민 소득의 증대와 더불어 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작업이 기계화 및 자동화됨에 따라 노동 시간은 줄어드는 반면 여가 시간은 늘어나게 되었다.여가 시간은 결코 남는 시간이 아니라, 보다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 힘써 노력하여 얻은 귀중한 시간이다. 따라서, 여가를 잘 활용하는 것은 현대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현대 사회에는 불건전한 환경이 청소년들을 유혹하고 있어 건전한 여가 활용 방안이 요구되고 있다. 체육 활동은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해주므로 중학생에게 적합한 여가 활동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여가 활동의 새로운 인식과 스포츠 활동을 통한 다양한 여가 선용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 바람직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2. 무용의 의미무용은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의 의식과 신체의 체험적 문화현상이다. 그것은 시대, 지역, 생활에 따라 변화하면서 인간이 무엇을 추구하며 어떻게 살아왔는가 또한 어떠한 방식으로 살아가려고 하는가에 대한 증거로서 존재하는 역사적 차원에서의 문화인 것이다.그러므로 무용을 수행한다는 것은 그것의 동작 기능을 익혀나가는 것과 동시에 '문화적 체험(cultural experience)'을 구축해 나가는 복합적 과정의 일환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오랜 역사성 또는 시대적 시공 속에 전승 전래되어 내려오는 그 춤의 주체적 맥락을 피부로 느끼면서 확인하는 문화적 체험의 인식과정인 것이다.여기서 말하는 문화적 체험이란 무용에 대한 역사성 및 예술성을 포함한 수행자의 의식과 행위를 포함한 사회 문화적 및 환경적인 요소 등 모든 것을 포괄한다. 예를 들어, 전통무용을 오랫동안 수행해온 무용가는 그가 수행해온 특정 전통무용의 동작, 의식, 행태, 주변환경의 요소, 심지어 생활습관까지도 그것과 관련되어 구축되어 진다는 것이다.문화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에 의해서 학습되어진 총체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은 일종의 생활양식이며, 사고 및 행동 양식이다. 따라서, 한 집단내의 구성원 개개인들은 특정한 문화매개의 영역에 속한 의식과 행위를 구축하는 것이다. 무용은 이러한 문화 현상을 반영해온 역사적 전달 매체이다.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무용가들이 체험하고 이해하는 전반적인 무용경험은 그들이 속한 세계의 의미로운 문화에 대한 인식체험을 그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생활세계에 있어서 무용에 대한 지속적이고 반성적인 신체와 의식의 체험적 양상의 역사적 집합체인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그들의 무용경험 세계에 대한 문화적 속성과 특성을 구축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겠다.전술하였듯이, 무용가들은 그들의 인식과 행동양식 그리고 주어진 환경의 토대 위에 문화적 체험을 구축한다. 그들이 속한 무용세계 내에서의 언어, 행동, 대인 관계 등을 통하여 공통의 인식을 형성해 나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체험의 의미들은 살아있는 무용의 인식구조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은 바로 무용가들 자신의 문화적 특성을 근거 지우는 밑바탕인 것이다.보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이것은 무용의 인류학적 시도인 것이다. 특정한 무용현상을 통하여 한 사회의 문화 또는 민족을 이해하는 작업이라 일컫는 소위 '무용 인류학(dance anthropology)'인 것이다.3. 현대사회에서의 무용의 의미무용은 인간의 신체를 통한 인간감정의 자연적인 표현 예술이다. 물론, 최근 신체적인 표현을 통한 사상의 교호작용까지도 무용으로 여기는 경향이 되고 있어, 무용의 의미는 아주 광역적으로 해석되고 있기도 하지만, 인간의 의사소통을 위한몸동작까지를 모두 무용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무용에 대한의미를 잘못 해석한 것이라 할 것이다.무용의 의미를 광역적으로 해석하든, 또는 협의적으로 해석하든, 무용은 그것이 신체를 움직여서(to move the body) 표현하는 예술인 점에서 신체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으며, 신체를 떠난 무용은 존재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생각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런점에서무용을체육의한분야로여기게되었으며,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무용교육이 생활체육교육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4. 현대사회인에게 미치는 무용의 역할무용의 가치현대의 급속한 산업화는 인간에게 많은 편리함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신체활동의 감소와 공해. 오염으로 인하여 인간의 신체적 기능이 약화되고 있으며, 사회 병리 현상은 인간의 정신 건강마저 해치고 있다. 이와 같은 현대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회체육으로서의 무용의 필요성과 가치가 증대되고 있다.(1) 신체적 가치성장. 발달의 측면인간의 신체는 생물학적 욕구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성장. 발달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신체활동을 하지 않아도 성숙한다. 그러나 적절히 계획된 신체 활동은 인간의 기본적인 활동 욕구를 만족시켜 주며, 신체에 적당한 자극을 부여하여 성장과 발달을 촉진시킨다. 루(Roux)는 '신체는 적당히 사용하면 증대. 강화되나 사용하지 않으면 약화. 위축되고, 너무 과도하게 사용하면 지장을 가져온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사회체육으로써 무용을 통하여 자연적인 성숙 단계 이상으로 신체의 성장 발달을 촉진할 수 있다.생리적 측면무용을 하게 되면 근력이 강해진다. 그리고 호흡. 순환 기관이 발달하여 산소 섭취량이 증대되며, 에너지 발생이 활발해져 지구력이 발달된다. 또한 소화 흡수능력을 향상시켜 신진 대사가 왕성해지며, 신경 기능이 향상되어 동작이 민첩해지고 협응작용이 향상된다.특히 고등학교 시기는 신체의 모든 기관이 현저하게 성장. 발달하므로, 이 시기에 계획적이고 지속적으로 무용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함으로써 평생 건강을 유지. 증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2) 심리적 가치욕구의 충족인간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움의 표현 욕구, 집단 참여에의 욕구, 자기 인정의 욕구, 자기 실현의 욕구 등 여러 가지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거나 억제되면 욕구 불만이 생겨 정서적으로 불안해지고, 심할 경우에는 여러 가지 신체적. 정신적 장애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무용을 통해 이러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줌으로써 정서적 안정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자기실현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그러므로 건전하고 정상적인 인간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신체 활동을 생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체능| 2003.07.11| 4페이지| 무료| 조회(1,466)
    미리보기
  • 항렬에 따른 경어법
    Ⅰ.성씨와 이름1. 성씨(姓氏)의 뜻우리민족은 예로부터 조상숭배사상과 애족사상이 강해 혈연(血緣)을 바탕으로 가통(家統)의 맥락을 이으며 조상(祖上)의 얼과 가문에 대한 긍지를 갖게 되었으며 특히 부계(父系)를 중심으로 각각의 성씨(姓氏)를 갖고 있어 씨족(氏族) 역사가 면면히 이어져 문화적(文化的), 사회적(社會的), 심리적(心理的), 정치적(政治的) 발전에 영향을 주어왔다.2. 성씨(姓氏)의 유래(由來)정확한 기록이 없으며 고조선시대 왕족(王族)등 일부 계층에서 사용하다가 통솔자(統率者)가다른 씨족(氏族)과 구별하기 위한 호칭방법으로 성(姓)이 나타났으며 점차 왕족(王族),귀족(貴族)층 공신(功臣) 등이 사용하게 되었으며 고려 문종(文宗) 이후 보편화되어 상민(常民)과 노비(奴婢) 등 모든 사람이 성(姓)을 갖게 되었다.3. 이름은?넓게는 성(姓)과 이름을 합쳐 이름이라고 하나 일반적으로 성(姓)아래에 붙여 부르는 명칭을 이름이라고 한다. 항렬자(行列字)를 사용하는 경우는 항렬자를 포함한 것을 이름이라 하고 일반적으로 성(姓)을 제외하고 두자 를 많이 짓고 간혹 일자(一字)를 쓰기도 하며 두자 이상을 쓰기도 한다. 현재 법적으로는 성과 이름을 합하여 5자 이내로 한다.지금은 이름을 하나로 부르지만 옛날에는 여러개가 있어 복잡했다.아명(兒名): 어렸을 때 부르는 이름.자: 20세가 되면 관례 또는 혼인을 행할 때 부르는 이름.호: 특별히 따로 부르는 이름, 항렬자에 따라 지어 부르는 항명 등이 그 예이다.4. 항렬자(行列字)이름 두 글자 중 한 글자를 혈족(血族)사이에 세계(世系)를 구분하기 위한 문자이다. 문중(門中)이나 가문(家門), 파(派)마다 다른 경우가 많다.5. 항렬법(行列法)①오행 상생법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변(邊)을 오행의 상생(相生) 순서 를 사용하여 이에 따라 이름을 짓는다.②십간순 (十干順)갑(甲)을(乙)병(丙)정(丁)무(戊)기(己)경(更)신(申)임(壬)계(癸) 를 순서대로 사용하여 이름을 짓는다.③숫자 또는 원(元용하고있다. 오행 목,화,토,금,수 의 음오행(音五行) 과 자원오행(字源五行) 상생법을 잘 활용하여 시대감각에 앞서고, 세련된 개성이 돋보이며, 자신의 운도 향상되는 이름작명을 제시한다.Ⅱ. 친척간의 호칭 (자기집안 시집 외가집 고모집 처가집 이모집 사돈간)1. 자기집안 호칭호칭특별호칭관계아버지어머니부친(父親) 가친(家親)모친(母親) 자친(慈親)나를 낳아주신 분나를 길러주신 분할아버지할머니조부(祖父)조모(祖母)아버지의 아버지아버지의 어머니증조 할아버지증조 할머니증조부(曾祖父) 한 할아버지증조모(曾祖母) 한 할머니할아버지의 아버지할아버지의 어머니고조 할아버지고조 할머니고조부(高祖父) 높은 할아버지고조모(高祖母) 높은 할머니증조할아버지의 아버지증조할아버지의 어머니남편아내부(夫) 가장(家丈)처(妻) 내자(內子)지애비, 아비지어미, 자기 부인아들며느리가아(家兒) 돈아(豚兒)자부(子婦)내가 낳은 사내아이아들의 아내딸사위여식(女息)서랑(胥郞)내가 낳은 여자아이딸의 남편형형수장형(長兄) 사백(舍伯) 사중(舍仲)큰 형수(長兄嫂)손위형제형의 부인아우제수사제(舍弟) 동생제수(弟嫂)손아래 동생아우의 아내누이자형가매(家妹) 언니자형(姉兄) 매형(妹兄)손위 남매누이의 남편누이동생매제매(妹) 가매(家妹)매부(妹夫) 매제(妹弟)손아래 자매누이동생의 남편큰 아버지큰 어머니백부(伯父) 중백부(仲伯父)백모(伯母) 중백모(仲伯母)아버지의 큰형아버지의 형수작은 아버지작은 어머니숙부(叔父) 계부(季父) 삼촌(三寸)숙모(叔母)아버지의 동생아버지의 제수당숙당숙모당숙(堂叔) 종숙(從叔)당숙모(堂叔母) 종숙모(從叔母)아버지의 사촌형제아버지 사촌의 부인재당숙재당숙모재당숙(再堂叔) 재종숙(再從叔)재당숙모 재종숙모아버지의 육촌의 형제아버지 육촌의 부인종조부종조모종조부(從祖父)종조모(從祖母)할아버지의 형제할아버지의 형수, 제수종형제종수사촌형제(四寸兄弟)사촌형수, 제수아버지의 조카아버지의 조카며느리재종형제재종수육촌형제(六寸兄弟)육촌형수, 제수당숙의 아들당숙의 며느리조카조카며느리질(姪) 조카딸(조카사위)질부(姪婦)의 부인외사촌외종수외종(外從)형제외종수(外從嫂)외삼촌의 아들외삼촌의 며느리외당질외당질부외당질(外堂姪) 외당질여외당질부외사촌의 아들 딸외사촌의 며느리진외당숙진외당숙(陳外堂叔)아버지의 외사촌4. 고모집안의 호칭호칭특별호칭관계고모고모부고모(姑母)고모부(姑母夫) 고숙(姑叔)아버지의 여자 형제고모의 남편당고모재당고모당고모(堂姑母)재당고모(再堂姑母)아버지의 사촌누이아버지의 육촌누이내종형제대고모내종사촌(內從四寸)대고모(大姑母) 왕고모고모의 아들 딸아버지의 고모5. 처가집 호칭호칭특별호칭관계장인장모장인(丈人) 빙장장모(丈母) 빙모아내의 아버지아내의 어머니처백부처백모처백부(妻伯父)처백모(妻伯母)아내의 큰아버지아내의 큰어머니처숙부처숙모처숙부(妻叔父)처숙모(妻叔母)아내의 작은아버지아내의 작은어머니처남처남댁처남(妻男)처남댁(妻男宅)아내의 남자 형제처남의 부인처조카처조카며느리처질(妻姪) 처조카딸처질부(妻姪婦)처남의 아들 딸처 조카의 아내처형처제동서처형(妻兄)처제(妻弟)동서(同胥)아내의 언니아내의 동생아내형제의 남편6. 이모집 호칭호칭특별호칭관계이모이모부이모(姨母)이모부(姨母夫) 이숙(姨叔)어머니의 여자형제이모의 남편이종이종수이종사촌(姨從四寸)이종수(姨從嫂)이모의 아들이종사촌의 부인이종이질이질부이질(姨姪) 이질여(姨姪女)이질부(姨姪婦)이종의 아들 딸이질의 아내7. 사돈간의 호칭호칭특별호칭과 관계사돈사부인바깥사돈(아들과 며느리 양가 아버지의 호칭)안사돈(아들과 며느리 양가 어머니의 호칭)사장노사장노사부인(사돈의 아버지 또는 안사돈이 바깥사돈에 대한 존칭)(사돈의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안사돈의 어머니 또는 할머니)사돈도령사돈댁 색시(안사돈이 사돈의 미혼 아들에 대한 호칭)(사돈의 미혼한 딸, 사돈새아씨의 약칭Ⅲ. 친족간의 호칭(문답형식을 빌어서)문 1. 동성동본간에 항렬이 동행이면 상대방을 어떻게 부르는 것이 맞는지?답. 년령이 많아지면 아우 항렬이라도 너무 하대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며, 이름을 위에 붙여서 호칭하는 것은 타인에게 지칭할 때는 필요하나 직접 면대했을 때는 필요치 않다.문특히 자기의 자녀에게 말할 때는 '너의 고모부'라고 해야 한다.문 6. 여동생의 남편에 대한 적절한 호칭은?답. 사위에게 있어 처가의 어른은 직계존속일 뿐이고 기타는 일반 사회적 관계이다. 원칙적으로 배우자의 친척과 나의 관계는 배우자의 관계로 설정된다. 손아래 매부와 손위 처남은 남매간이지만 처가의 어른은 직계존속일 뿐이라는 전제로 그냥 친구이다. 나이 차가 두 살이면 '자네', 'ㅇ서방'이 호칭이고 '하게'의 말씨를 쓰면 된다.문 7. 본인이 다섯째 사위임에도 넷째 사위보다 다섯살이 많은 경우 넷째 사위에 대한 적절한 대접은?답. 위 '6 번'답에서와 같이 처남이나 처형, 처제의 남편인 동서들과는 아내와의 관계에 따라서 '형님', '동생'하지 않고 나이에 따라 대접한다. 위에서와 같이 다섯살 어린 손위 동서와는 당연히 벗을 타서 친구 같이 지내야 한다.문 8. 고종사촌(姑從四寸) 동생의 丈人에 대한 칭호는?답. 결국 사돈간이며 자기보다 항렬이 높으니 '사장어른'이라 하면된다.문 9. 아버지의 형제간의 호칭법에 대하여?답. 가장 큰 형님만이 큰아버지의 호칭으로 불리고, 그 동생들은 둘째아버지, 셋째아버지, 넷째아버지로 부르고, 막내만이 작은아버지로 불러야 한다.문 10. 처남의 아내를 '처수' 또는 '처남의 댁'이라고들 하는데 어느 것이 맞는지?답. '처수'라는 칭호는 없고 처남의 댁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문 11. 형제 자매의 배우자 칭호법?답..아주머니, 형수님 : 시동생이 형의 아내를 부를 때.아주미, 아지미 : 집안 어른에게 형수를 말할 때.형수(兄嫂)씨 : 남에게 자기의 형수를 말할 때.제수(弟嫂)씨, 수씨 : 동생의 아내를 직접 부를 대.제수 : 집안 어른에게 제수를 말할 때.언니 : 시누이가 오라비의 아내를 부를 때.올케, 새댁, 자네 : 시누이가 남동생의 아내를 말할 때.ㅇㅇ댁 : 집안 어른에게 남동생의 아내를 말할 때.매부(妹夫) : 누님의 남편을 부를 때와 자매의 남편을 남에게 말할 때.자형( 兄), 매형(妹兄) : 누님의 남편을 부를 때와처형을 부를 때.처제, ㅇㅇ어머님 : 처제를 부를 때.처남, 자네 : 손아래 처남을 부를 때.기타 처가 가족의 호칭은 사회적인 호칭으로 한다.아내의 직계존속과 부인들을 제외한 남자는 사회의 사귐이기 때문이다.문 17. 요즘 형님이라는 호칭이 많이 쓰이고 있는데 정확한 사용법은?답. (1) 처남에 대한 호칭에는 손위나 손아래에 따른 별다른 호칭이 없고 연령이 많을 때만 호형하는 것이다.(2) 손아래 매제에게 손위 처남이 부르는 호칭은 '매제', '매부'이다.(3) 친동서 사이는 서로 동서로 부르며 맏동서 등 차례에 따라 부르는 것도 좋다. 가장 친한 친구간과 같다.(4) 동서간은 3항과 같은 사이이다. 동서간은 친구로 보고 친구처럼 지내는 것이다.문 18. 어머니의 성씨를 남에게 말할 때와 자기의 姓을 남에게 말할 때와 어떻게 다른가?답. 모친의 성을 남에게 말할 때 어느 姓氏(성씨)라고 하고 자기의 성을 남에게 말할 때는 무슨ㅇ가라 한다. 그러나 자기 문중 성씨를 말할 때는 '씨'자를 써야한다.문 19. 남자 동서간에도 처의 형제 서렬에 따라 형님, 동생할 수 있는지?답. 하지 않는다. 다만 친하게 지내며 연차가 높으면 경칭을 써야 한다.문 20. 여동생의 남편이 나보다 두 살 아래인 경우 호칭은?답. '매제', '매부'라고 하면 된다.문 21. 직계존속과 직계비속에 대한 설명은?ㅇ. 직계존속 : 조상으로부터 직선적으로 계속하여 자기에 이르는 사이의 혈족으로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이다.ㅇ. 직계비속 : 자기로부터 직선적으로 내려가서 후예에 이르는 사이의 혈족으로 아들, 딸, 손자, 증손, 현손 등이다. 그리고 할머니의 둘째 아들의 손으로 그 할머니는 직계가 된다.아버지, 어머니는 나의 할머니의 직계이다.직계는 자손, 자기, 부모, 조부이며, 방계는 삼촌, 사촌 등으로 계통이 갈라져 생기는 혈통이다.문 22. 누이동생의 남편에 대한 호칭은 ?답 . 누이동생의 남편을 남에게 말할 때는 '매제',라하고 누이동생의 남편을 부를 때는 성씨를 넣어 'ㅇ서방'.
    인문/어학| 2003.07.11| 8페이지| 무료| 조회(1,742)
    미리보기
  • [종교]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란 무엇인가?들어가며오늘날 세계는 하나의 지구촌이 되었다. 지구에서 기독교는 매우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그 형태 면에서도 다양한 흐름을 갖는다. 따라서 기독교가 어떠한 종교인가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이러한 기독교가 어떠한 기원을 가지고 어떠한 발전을 겪어 왔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런데 기독교의 기원이라는 문제에 당면하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기독교 신자 중에는 성서를 신앙의 입장에서 읽지 않고 과학의 입장에서 비평한다고 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고 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신앙의 문제는 오직 믿는 입장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이를 과학적 입장에서 검토한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신앙에 대한 모독이라고까지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기독교라는 말 자체는 기독교의 경전인 신약성서에 직접적으로 나타나있지는 않으며 '크리스티아노스'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하였다. '크리스티아노스'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지니며, 교회의 어원인 '에클레시아'가 지니는 의미와 맥락이 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기독교가 근본적으로 예수의 가르침에 그 기원을 두는 종교임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단순히 '예수의 종교'인 것만은 아니다. 기독교는 예수의 삶과 그 가르침을 자신의 삶 속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것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종교적 경험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본론에서는 이러한 기독교의 기원과 전개되어온 과정, 그리고 이 기독교의 혁명적인 특징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고찰해 보겠다.본 론I장. 기독교의 기원기독교의 창시자로 알려지고 있는 예수는 로마제국의 지배 하에 있던 팔레스타인의 남부지역인 유대 지방에서 태어났으며, 생애의 대부분을 이 나라의 북부지방인 갈릴리에서 보냈다. 그리고 초대 기독교 신자들은 예수 탄생의 시기와 장소가 우연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따라서 당시의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종교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초기 기독교의 배경과 특성을 고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기독교가 성립되행하였다. 이 정책에 의하면 국민들은 '솔 인빅투스', 즉 정복되지 않는 태양에 예배하도록 되었으며 만일 그렇게 하면 모든 다른 신들은 허용되었다. 이러한 정책은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그리하여 셉티무스 세베루스는 이 두 종교의 확장을 막기 위하여 기독교나 유대교로 개종하는 자들을 사형에 처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종교정책은 당분간 지속되었으며, 149년 제위에 오른 데시우스황제는 조상 전래의 종교를 회복하기 위해 종교정책을 쇄신하였다. 데시우스 이후 기독교와 로마제국은 상당한 기간동안 평화를 유지하였으나 4세기초 딩클레티안 치하에서는 마지막이자 가장 극심한 박해를 겪기도 하였다. 디오클티안은 네 명의 황제로 하여금 로마제국 전체를 분할하여 다스리는 정책을 수행했다. 이러한 정책은 디오클레티안의 퇴위 후에도 지속되었으며 311년경에 제국은 리키니우스, 막시미누스 다이어, 콘스탄틴, 막센티우스 들 사이에 4등분되었다. 콘스탄틴은 리키니우스와 밀란에서 동맹을 맺었는데 이곳에서 맺은 협정의 일부는 기독교에 대한 탄압을 중지하고 그들의 교회와 묘지 그리고 기타 재산들을 반환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밀란 칙령'으로 알려 졌으며 역사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종식되었음을 의미한다. 결국 콘스탄틴은 제국의 유일한 황제가 되었으며, 이에 따라 로마제국의 종교정책은 일대 전환을 보게 된다. 콘스탄틴이 비록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삼지는 않았지만 콘스탄틴의 개종과 기독교에 대한 공인은 향후의 기독교의 성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도 직접적인 영향은 박해의 종식이었다. 이제 더 이상 기독교인들은 죽음의 공포속에서 전교활동을 벌이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오히려 기독교와 로마제국은 서로 공생하는 관계가 되었다. 한편 콘스탄틴 이후 제도화된 기독교에 대항한 하나의 운동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수도원운동이다. 많은 사람들이 로마제국과 타협하지도 않고 신앙도 지킬 수 있는 방법으로 수도원운동을 택했다.2. 중세기독교로마제국은 정치적인 필요성도 하였다. 하지만 동·서방 기독교 분열 사건 이후 기도교의 역사는 각각의 서로 다른 걸음을 계속해 왔으며, 오늘날 기독교는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티즘으로 대표되는 서방 기독교권과 동방 정교회로 대표되는 동방 기독교권으로 나누어 지고 있다.동방 기독교의 역사는 그리스어권이나 슬라브권이나 큰 차이가 없어 초기, 비잔틴기, 오스만 터키 지배기, 근·현대 등의 4기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다. 다만 러시아 기독교의 경우는 오스만 터키 지배하에 있었던 적이 없었다. 따라서 동방 기독교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나누어 고찰해 보겠다.비잔틴기(콘스탄티노플 건설에서 함락가지, 330-1452)오스만 터키 지배기(1453-1821년)러시아의 기독교근·현대100년경의 비잔틴 기독교는 "이 세계에는 제국과 교회가 공동적으로 힘을 모아 이끌어나가는 '단 하나의 보편적 기독교 사회', 득 오이쿠메네만이 있어야 한다" 는 이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비잔틴 기독교는 동유럽 전역에 걸친 전교의 확장을 시도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의미심장한 사실이었다.1054년 동·서방 기독교의 분열 당시 비잔틴 기독교는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중동, 발칸 반도, 러시아 등지에 슬라브 민족에게로 옮겨 지게 된 것이다.한편 12세기에서 13세기 사이의 라틴 세계에서의 스콜라주의의 발전 또한 동·서방 기독교의 분열이 점차 고착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서방기독교의 합동의 시도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은 종교적인 이유보다는 정치적인 관심에서 시도된 것이었기에 큰 실효를 얻지는 못하였다. 가령 1274년의 시도는 황제 미카엘 팔라이올로구스와 교황 그레고리 10세가 상대역이었다.동방 기독교와 서방 기독교의 만남의 가능성이 모색되고 있을 때, 동방 기독교 세계에는 일련의 신학적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났다. 이 시기에 있어서 동방 기독교 신학의 가장 큰 논쟁점은 헤시키아주의였다. 헤시키아주의는 신비경험을 목표로 명상의 고요한 방법을 수행하는 동방 정교회의 집단적·신비주의독교의 두 주류는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티즘이다.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티즘이 나뉜 것은 16세기에 일어난 일련의 종교개혁 사건에서부터였다. '가톨릭'이라는 명칭은 본래 '모든 곳에 있는' 혹은 '보편적인'이란 뜻을 가진 희랍어 '가톨리코스'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기원은 오직 단 하나의 기독교에만 존재하던 초대 기독교까지 소급한다. 이러한 초기의 단일성 안에는 다양성이 감춰져 있었으며 그 다양성은 결국 4세기 이후부터 계속된 교회의 분열 낳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세력이 큰 교회가 '가톨리코스'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로마 가톨릭은 오늘날도 기독교의 3대 주류 가운데에서 가장 큰 덩어리를 형성하고 있다. 로마 가톨릭은 엄격한 중앙집권적 구조, 교리의 통일성, 전례의 균일성, 전통과 성례에 대한 의존, 교계제도와 성직자의 위계, 성직자와 평신도의 분명한 구분을 특색으로 하고 있다. '프로테스탄트'라는 명칭은 1529년에 개최된 신성로마제국의 쉬파이어 제2차 회의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가중된 황실로부터의 위협으로 인해 그 때까지 상당히 온건한 입장을 취하던 많은 영주들이 열렬한 가톨릭 진영으로 옮겨 가게 되었다. 그 결과1521년 루터를 소환했던 보름스제국의회의 칙령이 재승인되었다. 이에 루터란 영주들이 공식적 항의문을 제출했으며, 이에 따라 '프로테스탄트', 즉 '저항하는 이들 혹은 항의하는 이들'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서방 기독교는 이렇듯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티즘이라는 두 주류로 나뉘어 전개되었기 때문에 서방 기독교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개관할 때는 종교개혁 사건을 기점으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다. 종교개혁사건은 더 이상 서구 세계에 통일된 크리스텐돔이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샤늘마뉴와 그 후계자들의 통치에 의해 이루어진 서방제국의 통일성은 카롤링거제국의 쇠퇴로 인해 다시금 무너지게 되었다. 노스맨으로 불렸던 스칸디나비아인과 마자르족의 침략으로 제국의 권위는 약화되었으며, 상대적으로 교황권은 강화되었다. 교황권이 일시적을 세운 사건을 말한다. 31년 간의 분열기간이 지나고 양측의 추기경들은 피사에서 공의회를 소집하였으나 조정에 실패하였다. 이에 독일 왕 지기스문트가 콘스탄스 공의회를 소집하였다. 콘스탄스 공의회에서는 이른바 공의회 수위설을 주창하여 교회의 통일성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교회개혁에 대한 결정은 지켜지지 않은 채 남아서 후일 종교 개혁의 소지를 남겼다.기독교사 서술에 있어서 종교개혁사는 지나치게 과장된 느낌이 든다. 그것은 특히 개신교사가에 의한 서술에서 두드러진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전체 기독교사에서 갑자기 돌출한 독립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종교개혁은 처음에는 종교개혁이 아니라 교회개혁에서 출발하였다. 종교개혁은 마르틴 루터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 역사 전체를 통해 마르틴 루터처럼 많은 논쟁의 대상이 된 인물은 없었다. 루터가 95개 신조문을 비텐베르크의 본성교회의 문에 못박았을 때만 해도, 루터 자신은 대대적인 종교적 혼란을 의도하지 않았다. 당시 교황 레오 10세는 성 베드로 성당 건축완공을 위한 면죄부를 판매하였으며, 루터는 이에 항의했던 것이다. 그런데 루터의 이러한 행동은 외부세력에 의한 독일인들의 착취를 혐오하던 많은 사람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인쇄업자들은 라틴어 원문에 독일어 번역을 곁들여 독일 전역에 살포하기도 하였다. 루터는 이 신조문을 만성절 전날 발표하였는데 이 때문에 1517년 10월 31일은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 시작되는 날로 기념되기도 한다. 루터의 행동은 독일 전체뿐만 아니라 국경 너머까지 반응을 일으켰고 수많은 인문주의자들이 이에 합세하기까지 하였다. 계속되는 프로테스탄트의 확장은 츠빙글리, 재침례파, 칼빈 등에 의해 이루어졌다. 인문주의는 츠빙글리가 지도했던 스위스의 종교개혁에서 보다 강화되었다. 아나뱁티스트운동으로 알려진 재침례파는 로마 가톨릭뿐만 아니라 프로테스탄티즘에도 반기를 들고 나섰는데 교회를 세속사회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자발적 공동체로 이해했다. 존 칼빈은 중요한 종교개혁가 있다.
    인문/어학| 2003.07.11| 12페이지| 3,000원| 조회(725)
    미리보기
  • 외국인 노동자의 차별과 미(美)를 위해 성형하는 사람들의 문제들의 연관성
    외국인 노동자의 차별과 미(美)를 위해 성형하는 사람들의 문제들의 연관성뉴욕 타임즈의 유명한 칼럼니스트 윌리암 새파이어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고, 또 차별하는 사회적 병리현상을 염두에 두고, 루키즘(lookism),즉 외모지상주의라는 말을 수년 전 만들었습니다.외모지상주의는 인종차별주의(racism)나 성차별주의(sexism)처럼 개개인의 인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사회전체를 병들게 합니다. 특별히 우리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 것은 이 외모지상주의가 한국에서 풍토병처럼 번져있다는 사실입니다. 얼마 전 한 신문은 한국의 여성직장인과 여대생의 80%가 외모가 인생의 성공을 좌우한다고 믿고 있음을 보도했습니다. 또 외모가꾸기에 그들은 하루에 평균 53분을 투자한다고 합니다. 극단적인 예입니다만, 한 20대 여성은 지난 3년동안 눈, 코, 피부, 턱, 복부지방 흡입수술 등 무려 23회에 걸쳐 성형수술을 했다는 것이지요. 외모가 다소 바뀐다고 삶이 새롭게 변하거나 보다 아름다워 질 수 있을까? 그런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정신과를 찾는 여성의 20%가 성형과 다이어트 후유증과 연관된 환자라는 사실은 외모지상주의의 병폐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보여주는 일면이라 하겠다.그리고 한국의 3D업종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역시 인종차별주의를 받고 있다고 한다. 몇 칠전에 mbc프로의 "하자하자!" 에서도 나왔듯이 러시아나 미국 같은 나라에서 온 얼굴이 하얗거나 강대국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차별이나, 구타, 폭행과 같은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고, 얼굴이 검거나, 가난한 나라, 필리핀, 인도, 몽골 등등 과 같은 나라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는 폭행과 임금차별 등 외국인 노동자들 중에서도 얼굴이 하얗고 검고를 따져서 차별한다고 한다. 이것 역시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외모지상주의로 물든 한국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현대사회의 외모 지상주의는 결코 여성이라는 어느 한 특정한 성이나, 아니면 특별한 소수의 사람들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주로 여성들이 외모지상주의에 빠져 성형을 하는 주체로 삼고 있고, 또 일반적으로 외모는 남성들보다 여성들의 주된 관심거리라는 편견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결국 외모 지상주의라는 것은 '보아주는 사람'들과 '보여주는 사람'들 사이의 상호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닌가? 어떤 한 남성의 외모에 같은 남성이나 여성이 호감이나 반감을 표하고, 또 반대로 어떤 한 여성의 외모에 동성이나 이성이 반응을 보이면서, 평가되고 가치화하는 것이 바로 외모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내가 아무리 외모라는 것에 별다른 관심과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내가 주변사람들의 외모를 평상시 어떤 자세와 관점으로 보는지, 또 스스로의 외모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present)데 있어 어떠한 자세를 취하는지가 모여져서 현시대의 '외모관'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외모 지상주의는 단순히 여성들이라는 특정한 성의 문제이거나, 아니면 외모에 아주 관심이 많다고 여기는 소수 사람들만의 문제일 수 없다. 이는 사회를 구성하는 우리 모두의 외모에 대한 획일화된 반응과 평가 속에서 형성된 우리의 문제인 것이다.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손쉽게 한국의 길거리에서 엿볼 수 있다. 아리따운 용모와 늘씬한 몸매를 가진 여성들이 지나갈 때 이들을 뚫어지게(사람에 따라 그 정도는 다르겠지만) 쳐다보는 것이 단순히 우리네 중년 아저씨들과 젊은 청년들뿐이던가? 여성들도 남성들 못지 않게 지나가는 미모의 여성들을 쳐다보며 그들의 화장법, 옷차림 등을 살펴본다. 한마디로 '보아주고', '보여주는' 역할에 있어 성별이나 사람에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보아주는' 쪽과 '보여주는' 쪽의 상호작용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 바로 외모 지상주의이다. 그러므로 성별이나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외모 지상주의의 문제나 책임을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자세이다. 게다가 이제는 여성들 못지않게 적지 않은 수의 남성들이 자신들의 외모를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있지 않는가?마지막으로 다른 많은 사회, 문화적 현상들과 마찬가지로 외모 지상주의 또한 우리가 속한 지역, 사회, 문화권에 따라 각각 다른 경향과 입장을 보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외모 지상주의는 철저히 자본주의적이면서도, 더불어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상당히 경계하는 사회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한국의 외모 지상주의는 이에 비해 '상호비교'에 의한 차별적 양상을 지나치게 띠고 있는 것 같다.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보여주기 위한 '과시적 경향'과 이를 통한 '평가'에 지나치게 민감한 것 같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들로 인해 외모에 대한 관점이 미국보다 더 공개적(or 노골적)이고, 또 차별의 기준으로 오용되기가 쉬운 사회구조라 보여진다.
    사회과학| 2003.07.11| 3페이지| 3,000원| 조회(384)
    미리보기
  • [연극] 연극의 관객참여의 의의
    연극의 관객참여의 의의연극은 단순히 하나의 예술장르가 아니며 문화의 중요한 매체이다. 문화적 에너지를 담아 전달하며 공유하고 재창조시키는 매체로서 연극을 바라볼 때, 연극을 보는 시야가 확대됨은 물론, 미래 연극에 대한 전망도 적극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연극의 위기'란 실상은 기존의 편협되고 한정된 연극 개념과 거기에 기초한 각종 관행의 위기이다.연극이 연극일 수 있는 마지막 특성, 그것은 배우와 관객이 직접 만나 는 '현장성'에 있다. 현장성은 창작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공연성'으로, 관객의 입장에서는 '생동감'으로 이해된다. 대중매체가 지배한 산업사회에서 연극의 현장성은 대량 커뮤니케이션에 미치지 못하는 비효율성으로 치부되어 그 가치가 점차 하락했지만, 다양한 공동체적 관계가 확대되리라 예상되는 정보화 사회에서는 그 현장성이 중요한 문화적 형태로 새롭게 부상할 것이다.연극인들이 시선을 '연극계'에만 한정하여 몰두할 때, 사회 전반에서는 연극 혹은 연극적 현상이 확대되고 있다. 과거 한극연극을 지탱해 준 사회 문화적 토대가 매우 한정되었다면, 미래에는 수많은 비연극인들이 비전문적인 방식으로 연극에 참여하는 삶을 통해 연극문화의 터전을 만들어갈 것이다. 관객은 단순한 수용자에 머물지 않고 '연극의 실제적 에네르기'로 변모해 갈 것이다.뿐만아니라 미래 사회는 보다 많고, 보다 다양하고, 삶에 보다 가까운 연극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여 연극인은 기존의 연극개념, 관객 및 사회에 대한 생각, 창작 및 공연 방식, 홍보방식 등을 적극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미래 연극인은 확장되어가는 연극의 사회적 연결망을 연극의 에네르기로 끌어들일 수 있도록 자기 변신을 도모해야 한다.또한 미래의 연극은 희곡 중심에서 공연 중심으로 옮겨져 가야 한다. '문학의 젖으로부터 연극을 떼어야 한다'는 주장은 연극에서 문학성을 평가절하하자는 뜻이 아니다. 영화나 TV드라마 등과 마찬가지로 연극에서의 문학성은 여전히 중요할 것이며, 어떻게 보면 그 중요성은 더 커질지도 모른다. 문제는 문학성을 위한 문학이 아니라 공연성을 위한 문학으로 희곡의 위상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극작가나 평론가의 위상이 축소되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그것은 연극의 핵심을 현장공연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며, 구체적으로는 기획, 극작, 연출, 실제 공연, 각종 디자인 등 개별 창작부문 전체의 상호관계를 높이면서, 각 분야의 창작 에너지들이 현장성을 중심으로 분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기존 희곡중심의 연극은 극작과 연출/공연 부문간의 분업에 기초한 폐쇄적 생산방식이었다고 하겠다. '희곡은 공연으로 완성된다'는 열린 사고에 기초할 때, 극작도 관객과의 만남의 현장에 파고드는 적극적인 형태로 전환될 것이다.대중매체, 특히 영화, TV, 비디오, 컴퓨터 등의 영상매체가 사회적으로 급격히 파급되면서 연극의 고유영역과 사회적 기능이 점차 위축되자, 연극계 외곽에서는 '구태의연한' 연극 장르의 소멸론까지 대두하고 있다. 연극은 작품생산의 과정에서 필요한 인력, 연습장소, 연습기간에서나, 특정 지역에 부동의 형태로 있는 일정 공간의 공연장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교통난도 심하고 바쁜 현대사회에서 생산성, 전달성, 수용성이 매우 떨어지는 매체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이러한 도전에 직면하여 연극이 새로운 매체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공연으로서의 연극' 개념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새로운 매체환경을 전제한 연극 위기론은 1) 변화의 추세를 대중화로 규정하고 있고, 2) 문학 중심의 획일화된 연극만을 가정하고 있다는 한계 가 있다. 방송이나 신문 등 대중매체도 탈대중화의 압박을 크게 받고 있는 지금, 낡은 모델을 전제한 위기론은 변화의 추세를 잘못 읽고 있으며, 또 한 앞서 언급한 다양화되고 생활화되는 연극의 추세를 놓치고 있는 것이 다. 그러한 시각으로는 '미래의 연극'을 조망할 수 없다. 미래의 연극을 조망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변화의 추세와 연극의 고유성이 만나고 있는 '기묘한 인연'에 주목해야 한다. '연극이 연극일 수밖에 없는 마지막 특성'은 커뮤니케이션의 총체성과 참여성이며, 이는 사회변화가 요구하고 있는 바와 큰 줄기에서 합치한다. 미래의 연극은 직접적이고, 참여적이며, 총체적인 커뮤니케이션 장을 정보화 사회에 맞게 실현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예체능| 2003.07.11| 3페이지| 3,000원| 조회(678)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10
10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2
  • A좋아요
    2
  • B괜찮아요
    3
  • C아쉬워요
    2
  • D별로예요
    1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20일 월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42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