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士學位論文論文題目제7차 초등체육교과 중 민속놀이 현장적용 활성화를 위한 연구指導敎授 최 태 희濟州敎育大學校體育科敎育科현 승 용2003. 09. 30學士學位 論文論文題目제7차 초등체육교과 중 민속놀이 현장적용 활성화를 위한 연구指導敎授 최 태 희이 논문을 敎育學士學位 論文으로 提出함.2003. 09. 30현 승 용 (印)의 敎育學士學位 論文을 認證함.2003. .審査委員 (印)審査委員 (印)濟州敎育大學敎목차I. 서론1.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2. 연구의 제한점Ⅱ. 이론적 배경1. 민속놀이의 개념과 성격2. 민속놀이의 유래와 놀이방법1) 투호2) 굴렁쇠굴리기3) 제기차기4) 널뛰기5) 태권도6) 씨름Ⅲ 연구 방법1. 연구대상2. 조사도구 및 자료처리IV. 결과 및 고찰1. 연구대상자 구성2. 민속놀이 교육과정 이해3. 민속놀이 지도실태4. 민속놀이 지도의 문제점과 개선점V. 결론 및 제언VI. 참고 문헌I. 서론1.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현대 사회의 급속한 발전과 그에 따른 생활환경의 변화로 말미암아 아이들의 놀이 문화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과거 여러 명이 모여서 하는 단체 놀이에서 벗어나, 현대 아동들에게는 컴퓨터 또는 다른 오락기기를 이용한 개인적 놀이의 활용이 보편화되었으며, 그 결과 이전부터 전래되어 내려오던 민속놀이가 다양한 장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차 소외되고 있는 실정이다.이러한 배경 속에서 최근 민속놀이 혹은 전통 놀이에 관한 연구가 늘어나고 있으며 그 결과의 하나로서 제 7차 교육과정 체육교과에서는 민속놀이가 기존의 교육과정 때보다는 많은 수업시간과 내용을 할당받을 수 있게 되었다.민속놀이는 문화 유산으로 가꾸어 나아가 주체성을 기른다는 뜻에서 민속놀이 수업은 현장에서 어떻게 지도되고 있는지를 알아봄으로써, 민속놀이의 지도 실태를 알아보고, 문제점을 파악하여 민속놀이의 현장적용 활성화 방안을 제시하는데 목적이 있다.2. 연구의 제한점본 연구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제한점이 있음을 밝혀 둔다.1) 본 연구에서 민속놀이 지도내용은 초등학개인별, 모둠별로 투호놀이하기2. 굴렁쇠 굴리기1) 굴렁쇠 굴리기의 유래옛날사람들은 곡식이나 술등을 둥근 통에 넣어 보관하거나 운반하였다. 그런데 둥근 통을 운반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였으며, 이러한 기술을 배우는 방법으로 놀이가 유래되었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처음에는 통에 감았던 나무테(대나무나 칡 등)를 이용하다가 쇠테를 사용하였고, 우리 나라에 자전거가 들어온 뒤에는 자전거바퀴나 수레바퀴를 많이 이용하였다. 놀이는 전국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주로 봄, 가을철에 많이 굴렸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 가지 놀이기구가 많고 아이들도 움직이기를 싫어하여 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2) 놀이 방법① 채를 이용하여 굴렁쇠가 넘어지지 않도록 굴린다. 채는 굴렁쇠 모양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굴렁쇠 면이 둥글면 Y자 형태의 채를 만들어 사용하고 자전거 바퀴처럼 홈이 파져 있으면 I자 형태의 채를 만들어 사용한 다.② I자, S자, 원형 혹은 T자 형태의 선을 그어 선을 따라 굴리기도 한다. 이때는 누가 가장 코스를 이탈하지 않고 빠르게 갔느냐에 관점을 가진다.③ 경기 방법에는 목표 지점까지 개인별 빨리 굴리기, 조별 이어 굴리기, 재주 부리기 등이 있다.3) 굴렁쇠 굴리기에 대한 초등체육교과단원3학년 Ⅱ 게임활동 4 우리 것 우리 놀이구분차시차시별 제재주요 내용 및 활동필수 : 굴렁쇠 굴리기1여러 가지 방법으로 굴렁쇠굴리기·훌라후프굴리기·균형잡고 빠르기를 조절하여 굴렁쇠를 굴리기·직선, 곡선에서 굴리기·오르막, 내리막에서 굴리기2굴렁쇠 굴리기 놀아하기·여러 가지 굴렁쇠굴리기 놀이하기3. 제기차기남자 어린이들이 제기를 가지고 노는 놀이로써 음력 정초를 전후에 성행한 겨울철 놀이이다. 구멍 뚫린 엽전이 흔했던 옛날과는 달리 오늘의 어린이들은 대개 구멍가게에서 하는 플라스틱으로 된 제기를 차고 있다.1) 제기차기의 유래제기차기가 언제부터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그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일설에 의하면 고대 중국에서 무술을 연마하기 위해서 고안된 축국놀이에서 연유되었다고 스포츠가 된 격투경기이다.1) 유래한민족고유의 무예로서 오랫동안 성행되고 발전된 사실은 고구려 시대의 고분벽화에서도 실증된다.그 이전에는 우리 조상들이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맹수와 겨루어야 했던 시기부터 무예가 시작되었다.예를 들면 수도를 단련하면 칼로, 손끝을 단련하여 송곳으로 정권을 단련하여 망치로 사용할 수 있으며 발을 단련하면 몽둥이를 대신할 수 있었다.백제 시대 기록에 의하면 무예를 장려하여 말타기, 궁술, 맨손 격투 등이 군인이나 평민사이에 인기가 있었으며 신라시대에는 우리 나라의 무예가 극에 달하여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정복하여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였다.삼국통일의 원동력은 진흥왕이 창안한 화랑도라 할 수 있는데 화랑도는 귀족의 젊은 자제들로서 구성되어 몸과 마음을 수련하여 상부정신을 길러주었다. 특히 세속오계를 지켰으며 이 세속오계는 무예의 철학적 배경으로 성장하여 왔다. 화랑도는 수박도로 시작하였다. 즉 맨손으로 무형의 무예를 익혀 연속적인 동작으로 하여 심신의 단련은 물론 군사적인 훈련에도 동원되었으며 이것이 발전 계승되어 우리고유의 무도 수박도가 체계적으로 왕실의 지원을 받아 조직적이고 체계화된 기술을 증강하여 군인과 사범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을 보급 발전시키게 되었다.그러나 1392년 조선왕조의 건국으로 군사훈련이나 체력단련, 군사방위력의 증강에 대한 관심이 낮아졌으며 특히 태조 이성계의 집권으로 국교가 불교에서 유교로 바뀌어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에 빠져 천민 층에만 무예와 체육활동을 하게 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우리의 무예는 침체의 늪에 빠진 셈이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정조 때 고유무술에 관심을 보여 1790년 이덕무 장군을 통하여 무술형의 교재를 만들게 한 결과 무예보통지도를 발간 보급시켰다.2) 놀이방법태권도는 체급별 경기를 원칙으로 하며, 한국이 태권도의 종주국이므로 경기에 사용하는 모든 구령은 한국어로 한다. 경기시간은 3분 3회전, 휴식은 각 회 사이 1분으로 한다. 단, 어린이부 및 여자부는 2분 3회전, 또는 1분 있다. 고구려 태조 주몽이 왕위에 오르기 전 계루부(桂婁部) 족장 때 5부족장(五部族長)의 고추가(부족장의 존칭)시합이 있었는데, 이 시합종목이 각저 ·궁사(弓射) ·승마 ·수박(手搏)이었다고 한다. 특히 중국의 문헌에는 우리의 씨름은 고려기(高麗技) 또는 요교라고 했을 정도로 중국의 각저희(角溟戱)나 일본의 스모[相撲]와는 그 방식이 다르고 독특하였다.한국에서 씨름에 관한 가장 오래 된 사료(史料)는 1905년에 발견된 유물, 즉 옛 고구려 도읍지였던 환도성(丸都城:현 중국 吉林省 集安縣 通溝) 자리 각저총(角塚)의 현실(玄室)에 있는 벽화인데, 여기에는 씨름하는 광경이 그려져 있다. 고려사(高麗史)에서 문헌에 나타난 기록을 보면 충혜왕(忠惠王)은 용사들에게 싸움을 하도록 하며 구경을 하였고, 또 고용보(高龍普)와 거리를 행차(行次)하다가 씨름경기를 보고 용사들에게 많은 포목(布木)을 상품으로 하사하였다고 하였으니 충혜왕은 용사들이 씨름하는 것을 매우 즐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조선왕조실록인 《세종실록(世宗實錄)》에는, 세종 원년인 1419년 6월 15일에 상왕과 왕은 저자도(楮子島)에 거둥하여 물 한가운데에 배를 띄우고 종친과 더불어 주안을 베풀고 강변에서 군사들이 씨름하는 광경을 보며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송경지(松京志)의 실록에 의하면 5월 5일 단오절(端午節)에 명절놀이로서 관중들이 인산인해를 이룬 가운데 여아(女兒)들은 추천(韆)놀이를, 남자는 각저의 희, 즉 씨름경기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시대 정조(正祖) 때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의 그림에 씨름하는 광경이 그려져 있다.2) 놀이방법(1) 샅바 매는 법샅바는 대한씨름협회 경기규칙에 의한 경기용구의 규정에 의해 광목 전단너비로 하되 길이는 3.20 m 이내로 한다. 먼저 오른쪽 허벅다리에 맞도록 신축성 있게 매고, 샅바를 앞으로부터 허리 뒤로 한 바퀴 휘둘러 오른쪽 다리에 매어 있는 샅바 사이로 끼워 풀어지지 않게 허리에 두른 샅바에 동여맨다. 물론 이 때의 신체 부착물은 씨름사로 이루어져 있으며 구성은 와 같다. 대상의 성별은 남자가 45명(36.3%) 여자가 79명(63.7%)으로 합계 124명으로 나타났다.표-2 연구 대상자 구성구분빈도(명)백분율(%)남4536.3여7963.7합계1241002. 민속놀이 교육과정 이해초등학교 교사들의 초등체육교과 중 민속놀이의 교육과정을 파악하고 있는 정도를 살펴본 결과는 과 같다. 보통이다 에 59.6%로 가장 많은 응답을 하기는 하였으나 파악이 안 되는 교사가 25.9%로 파악이 되는 교사(14.5%) 보다 높게 나왔다.교육과정을 파악하고 있는 남자교사는 26.8%로 여자교사(14.5%)보다 많았다.표-3 초등체육교과 민속놀이 교육과정 파악구분매우 잘 파악잘 파악보통이다.약간 파악 안 됨전혀 파악 안 됨남4(9%)8(17.8%)20(44.5%)12(26.7%)1(2%)여0(0%)6(7.6%)54(68.3%)10(12.7%)9(11.4%)합계4(3.2%)14(11.3%)74(59.6%)22(17.8%)10(8.1%)3. 민속놀이 지도실태1) 민속놀이 지도 빈도초등학교 교사들의 민속놀이 지도빈도를 살펴본 결과는 와 같다. 수업시간외 수시로 지도하고 있는 교사는 17.8%로 적었으나 53.2%의 교사가 운동회는 다른 시간을 이용하여 민속놀이를 지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업시간에 지도하고 있는 교사는 29.0%이다.표-4 민속놀이 지도 빈도구분수시로 지도수업시간에만 지도운동회 등 기타시간지도하지 않는다.남8(17.8%)8(17.8%)29(64.4%)0(0%)여14(17.8%)28(35.4%)37(46.8%)0(0%)합계22(17.8%)36(29.0%)66(53.2%)0(0%)2) 아동들의 민속놀이 참여도민속놀이에 대한 아동들의 참여도 와 같다. 아동들 중 79%가 재미있게 참여하고 있다고 나타났고,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1.6%로 매우 적었다.표-5 아동들의 참여도구분아주 재미있음재미있게 참여보통흥미 부족참여하지 않음남6(13.3%)31(68.9%)6(13.3%)2(4.5%)0(0%)여1
민 속 놀 이제주교육대학교 2학년 2반 35번체육교육과 200010606 현승용〈 목 차 〉Ⅰ. 민속놀이의 개념과 성격…………………………………… 2Ⅱ. 민속놀이의 유래와 놀이방법……………………………… 31. 제기차기 ……………………………………………………… 32. 널뛰기 ………………………………………………………… 73. 줄다리기 ………………………………………………………104. 강강술래 ………………………………………………………155. 투호 ……………………………………………………………18Ⅰ. 민속놀이의 개념과 성격1.민속놀이의 개념우리 나라의 놀이는 오늘날의 단순한 시간을 보내기 위한 오락(pastime)과 즐기기 위한 오락(amusement)의 차원을 넘어서 이해되어야 한다.민속놀이는 흔히 민속오락, 민속경기, 민속유희, 민속예능, 전승놀이, 향토놀이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것은 민속놀이라는 개념 속에서 싸움(game)을 뜻하는 경쟁 의식을 비롯해서 유희성, 즐김을 나타내는 오락성,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성이 복합적으로 숨어 있기 때문이다.2. 민속놀이의 성격(1) 제의성(祭儀性)우리 민족은 농사를 천하의 으뜸가는 일로 삼아 온 농경 민족이다. 농사일은 자연의 변화에 따라 결실이 달라지므로 자연의 위력에 대해 경이감을 느끼고 이를 지배하는 신령에게 주술을 베풀거나 제사를 올려서 농사의 풍성한 수확을 기원했다. 따라서, 우리의 생활 풍속이 농경 의례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세시 풍속, 민속놀이도 여기에서 발생하여 변화해 왔다.민속놀이 중에는 천신(天神)이나 동신(洞神)에게 풍년과 마을의 태평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 신령의 기쁨과 감동을 불러일으킨 후, 신령과 인간이 한데 어울려서 흥겹게 춤추고 노래부르는 잔치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많다. 이러한 까닭으로 대부분의 집단놀이가 제의를 위한 전반부와 놀이 자체를 위한 후반부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2) 향토성집단놀이 중에는 농경 의례에서 발생한 것이 많으나 각각 다른 지역에서 전승되어 오는 동안 그물을 얹어 놓고 7∼8명씩 편을 지어 서로 공을 차서 그물 위로 많이 올리는 편이 이겼다고 한다.우리 나라에서 놀았던 축국에 관한 문헌 기록을 살펴보면, 중국의 옛 문헌 '구당서'에는 고구려의 풍속을 들어 인능축국(人能蹴鞠)이라 하여 당시 고구려에 축국이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고 '삼국유사'에서 신라, 백제에서도 있었음을 일러준다. 삼국시대를 지나 고려에 들면서 축국에 관한 문헌은 별로 찾아 볼 수 없다가 조선왕조시대에 한자어 축국을 우리말 음을 붙여 '적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그 후 '적이'란 말은 '제기'로 바뀌게 되고 놀이 방법도 공을 차올리는 것에서 오늘날에 보이는 어린이들의 제기차기로 변했으리라는 생각이 일반적인 견해이다.2) 놀이 방법제기는 보통 두 사람 이상이 어울려 편을 지어 논다. 제기를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계속해서 발로 많이 차올리는 편이 이기는데 차올리는 수를 먼저 정하고 교대로 서로 정한 약속에 따라 놀이를 진행시킨다.제기차기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① 한발떠서차기(개칙구) : 한 발을 땅에 고정시키고 다른 발 안쪽 옆면으로 제기를 차올린다. 이때는 발은 공중에서만 올렸다 내렸다하며 땅을 닫지 않게 한다.② 한발딛고차기(맨제기) : 차는 방법은 ①과 같으나, 차는 발은 땅에 댔다 올리며 차올리는 것이 다르다.③ 두발 딛고 차기(쌍발제기) : 두발을 번갈아 가며 제기를 차 올린다.④ 무픗으로 차기⑤ 종 들이기 : 벌칙으로 하는 놀이민속놀이에 대한 초등교과1. 제기차기1) 차시별 비교단원4학년 4. 제기차고 널뛰고구분차시차시멸 제재주요 내용 및 활동필수 : 제기차기1맨제기와 양발차기·제기차기 유래 알아보기·발의 여러 부위로 제기차기·종들이기놀이하기2재주부리기 제기차기·여러가지 제지차는 방법 알아보기·동네 제기 놀이3제기차기놀이하기·규칙을 정해 제기차기 놀이하기2) 지도요소(1) 지도상의 유의점과제를 제시하여 되도록 제기를 사지 않고 풀제기 등을 만들어서 사용하도록 한다. 풀제기는 발에 닿는 면적이 넓고 천천히 떨어져 보다 쉽게 익힐 수 등을 스스로 정하고, 규칙을 변형하여 놀이할 수 있도록 유도 한다.2. 널뛰기널뛰기는 음력 정월 정초를 비롯하여 5월 단오날, 8월 한가위 등 큰 명절에 행해지는 놀이로 주로 행하여졌다. 두꺼운 판자를 짚단이나 가마니 같은 것으로 괴어놓고 양쪽에 한 사람씩 올라서서 서로 발을 굴러 공중에 높이 솟아 오르는 놀이이다.1) 유래널뛰기의 유래에 관해 별로 알려진 바가 없으나, 그 놀이 성격을 미루어 보아 고려 이전의 옛 시대부터 전승되어 온 것으로 추측된다.널뛰기는 말을 타거나 격구(擊毬, 말을 타고 공치는 놀이) 같은 활발한 놀이를 하였던 고려 이전의 여성들에서 유래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널뛰기는 이웃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우리 나라 고유의 민속놀이로 그 특징이 있다고 하였다.2) 놀이 방법널 양 끝에 한 사람이 올라 서서 줄을 잡고 천천히 뛰기 시작한다. 널 가운데에는 한 사람이 앉아 널을 널받침 위에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두 사람이 번갈아 뛰게 되면 뛰었다 내리는 반동으로 몸은 점점 공중으로 높이 솟아 오르게 된다.이처럼 격렬한 운동이므로 오랜 시간을 계속해서 뛰기는 어렵다. 여러 사람이 짝을 지어서 교대해 가며 쉬었다 뛰고, 뛰었다 쉬면서 노는 것이 널뛰기의 재미이다.3) 널뛰기에 관한 속설(俗設)(1) 옛날, 두 남자가 죄를 짓고 옥 속에 갇혀 있었다. 이들의 두 부인은 옥 속에 있는 자기 남편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함께 널을 뛰면서 담장 너머로 남편 얼굴을 엿보았다고 한다.(2) 옛날, 문밖 나들이를 하기 어려웠던 부녀자들이 담장 밖을 보고 싶어서 널뛰기를 하여 몸이 공중으로 높이 솟을 때, 담장 밖 풍경과 남자의 모습을 잠시 보았다고 한다.(3) 처녀 시절에 널을 뛰지 않으면 시집을 가서 아기를 낳지 못한다고 한다. (이는 부녀자의 문밖 나들이를 심히 억제했던 조선조 시대에 운동 부족으로 인한 부녀자의 건강을 염려해서 생겨난 이야기로 볼 수 있다.)2. 널뛰기하기1) 차시별 비교단원4학년 4. 제기차고 널뛰고구분차시차시멸 제재주요 내용 및 활동 높이 뛰기상대편 떨어뜨리기짝을 이루도록 하며, 널뛰기는 둘이서 마음이 맞아야 잘 뛸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3.줄다리기줄다리기는 옛날부터 남한 각 지방에서 성행해 오던 대중적 의의를 가진 특수한 놀이로서 대개는 정월 대보름날에 행한다. 지방에 따라서 5월 단오날, 8월 한가위 등의 명절날에 또는 명절날과 관계없이 수시로 놀았지만 새해들어 처음 맞이하는 음력 정월 15일 만월에 특히나 성행했다.1)유래 - 문헌에 나타난 줄다리기최남선 『조선 상식 풍속전』의 「인색·줄다리기」에 '경기도, 전라도, 경상도의 정월 15일 풍속에 짚 또는 칡으로 큰 줄을 수십발이나 되게 길게 꼬고 줄 양머리에는 수많은 작은 줄을 매달아 몇몇 마을이 둘로 편을 갈라 서로 잡아 당기어 승부를 가린다. 이기는 편에 풍년이 깃든다고 말했는데 이를 줄다리기라 한다.'줄다리기를 할 때, 줄을 당기는 두편을 각기 암줄, 숫줄로 정하여 암줄-여성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도 있다. 이는 풍요다산으로 인력의 증가를 기원하는 농경어로 시대에 있어서 생산물의 풍작이나 흉작은 농어민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줄다리기같은 놀이에 그들의 평소 염원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2)놀이의 실제줄은 대개 짚으로 새끼줄을 만들어 쓰나 일부지방에서는 칡으로나 칡과 짚을 섞어 엮은 줄을 사용하기도 한다.줄은 한 가닥으로 된 외줄과 두가닥 줄-암줄, 숫줄을 한 곳에 이어 서로 잡아 당기는 암숫줄-이 있다. 암줄과 숫줄을 연결시킬 때에는 줄 끝의 암고리에 숫고리를 집어 넣고 여기에 비녀목(木)을 꽂아 고정시킨다.줄다리기는 대개 마을과 마을 대항으로 편을 갈라 동부,서부로 구분해서 규모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놀이를 펼치기도 한다.(1)경남 영산지방의 줄다리기①줄만들기 - 마을의 청소년들이 집집마다 찾아가 거두어 들인 짚으로+- 가닥줄 꼬으기 - 모든 짚을 3가닥으로 꼬기+- 줄드리기 - 줄다리기 하루 전날, 길 바닥에 줄을 펴고 우차를 이용해 줄을| 단단히 꼬이도록 함+- 줄엮기 -다리기1) 차시별 비교단원3학년 게임활동 1. 움직임 익히기구분차시차시멸 제재주요 내용 및 활동필수 : 줄다리기3밀고 당기기·밀기, 당기기2) 지도요소(1) 지도상의 유의점·어린이들이 친구들과의 밀고 당기는 운동을 통하여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운동하는 즐거움을 경험하게 하며, 끈기와 자신감을 가지도록 한다.·상해의 위험이 있으므로 지나친 경쟁은 피한다.(2) 지도내용♧ 움직임 학습 요소 분석밀고 당기기를 하는 방법 알아보기·몸의 자세를 다양하게 하여 밀고 당기기·여러 가지 진체 부위를 이용하여 밀고 당기기·도구를 이용하여 밀고 당기기·편을 나누어 밀고 당기기 놀이하기♧ 움직임 탐구 활동여러 가지 몸 모양으로 밀기·지름 1~2m의 원 안에서 여러 가지 몸 모양으로 밀기·몸의 여러 부위(손, 어깨, 등, 엉덩이 등)로 밀기·발의 위치 를 다르게(앞 뒤, 나란히 하고 밀기)하여 밀기·몸을 높게 하거나 낮추어 밀기신체 여러 부위로 당기기·서서 또는 앉아서 상대방의 손을 잡고 당기기·줄을 이용하여 허리나 팔에 걸고 당기기·신체 여러 부위를 이용하여 당기기·발의 위치를 다르게 하여 당기기편을 짜서 줄다리기 하기·두 사람이 한 모둠이 되어 허리에 줄을 걸고 줄다리기 하기·학급이 두 모둠으로 나뉘어 줄다리기하기4.강강술래「강강술래」는 우리네 여성놀이 중 가장 정서적이며 율동적인 놀이로서 전라남도 해안지방인 해남, 완도, 무안, 진도 등지의 특유한 민속놀이의 하나이다.해마다 음력 8월 한가위 날 달밝은 밤에 곱게 단장한 부녀자들이 수십명씩 일정한 장소에 모여 손에 손을 잡고 원형으로 늘어서서 '강강술래'라는 후렴이 붙은 노래를 부르며 빙글빙글 돌며 뛰는 놀이이다.이 놀이를 할 때에는 그중에서도 목청이 좋은 주도자 한 사람이 그 둘레 가운데에 서서 앞소리를(선창)하면, 다른 일동이 뒷소리(합창)로 '강강술래'라고 후렴을 부르면서 춤을 추며 돈다.1)유래(1)원시 공동체 사회에서 유래 - 고대 부족상사의 공동 축제에서 손을 맞잡고 뛰어 놀던 단순한 형태의 춤(2)임진왜란 때 충무춘다.
한 지 공 예1. 한지의 기원고대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종이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하였는가는 아직 정확히 확인된 바 없지만 우리나라 고대 사회에서 종이가 만들어져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제지술을 도입하여 제지를 더욱 발전 시켰고, 그 품질 또한 매우 우수하였다. 현존하는 최고의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니경의 종이가 그 증거라 하겠다.2세기 설우리나라 종이의 기원 및 전래는 몇가지 설이( 2세기- 7세기 ) 있는데 그 내용을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3세기 설2세기 설은 현재까지 한지의 주원료인 닥은“저(楮)"가 중국에서는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 사이에 “tag", 혹은 “tiag"라는 음으로 읽혔다고 한다. 그러므로 닥은“저(楮)"의 음이“닥"으로 읽혀지고 있던 시기에 종이원료로서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것이다. 이후“닥"이라는 음은 화석화되어 훈(訓)이 되었고, 음(音)“저"는 6세기 이후 중국의 음이 새롭게 들어온 결과일 것이다. 이같은 사실로 미루어 본다면 2세기 경에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종이나“저(楮)"를 사용한 제지법이 그 명칭과 함께 전래되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3세기 경 후한말 낙랑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종이와 종이 만드는 법이 들어 왔다는 설이 있다. 그것은 첫째 평남 대동군 남정리 채협총에 근거한다. 서기 1931년 조선 고적연구회 사업으로서 발굴된 후한 말엽의 것으로 추정되는 낙랑시대 고분 채협총에서 권자본(卷子本)의 질통(帙筒)으로 보이는 채문칠권통(彩文漆卷筒)과 묵분(墨粉)이 붙어 있는 벼룻집, 오수전, 화천, 채문칠권통, 동경, 채화칠협 등이 발견됨으로서 당시에 종이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고분의 밀폐된 칠관 속에서 발견된 종이로 보이는 섬유의 꼴이 닥종이가 물에 젖어 덩어리진 것과 같았다고 하여 한대의 종이와 이것이 비슷했을 것이라는 증거로 삼는다. 그러나 이것이 종이인지는 확실치 않다.두 번째 증거로 백제는 서기 285년 일본에 천자문을 전해주었는데, 이것은 채륜이 종이를 만든지 180년 뒤로 이그 때가 일본 추고천황 18년이며 일기원 1270년이 되던 해로 단기 2943년으로 보면 서기 610년에 해당된다. 이처럼 고구려 승 담징이 알본에까지 전파하여 준 사기를 고려할 때 담징의 도일 전에 고대 우리나라에 제지 공업이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앞서 언급한 고구려 종이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과 7세기 이전의 종이인 [법화경]은 고해나 정선 과정이 상당히 잘 되어 있고 표백 상태도 매우 좋다. 따라서 대단히 발전된 기술을 지닌 기술자가 정성들여 만든 종이임을 알 수 있다. 이들 종이는 긴 섬유를 두들여 충분히 고해하여 균일하게 만든 한지이며 중국의 것처럼 섬유를 잘게 갈아서 만든 종이는 아니다. 일본에 종이를 전했다고 하는 7세기 초 전후까지는 중국의 제조법인 맷돌로 갈아서 만드는 법도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후의 우리나라 종이는 그와 달리 긴 섬유룰 두들여(叩解) 만드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후 오늘날까지 이어온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제지법이다. 즉 7세기 이후부터 우리나라 종이의 주된 특성인 두껍고 질긴 모습이 드러나며 이것은 오늘날 한지에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3) 신라 (기원전 57년~ 서기 668년)삼국중 가장 문화적 후진국이었던 신라는 서기 545년 진흥왕 6년에 국사를 편찬하였다. 삼국유사 제 4권 원효불패조에는 종이에 대한 언급이 있으며 진덕여왕(서기 647년~)년대에는 종이연 이야기가 있다.최근 일본에서 정창원 보물 중 어떤 상자를 뜯어 수선하는데 그 상자안을 발랐던 종이 가운데 신라의 고문서인 종이를 발견했다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신라지의 보존 예이겠는데 일본 사람이 이를 원상대로 속을 발라 겉을 입혀 버렸다니 안타까운 일이라 하겠다.신라의 경우는 이들 두 나라에서 각각 전수받은 기법을 통일 이후 백추지로 대표되는 계림지로 발전시켜 오늘날의 한지를 이루었다.통일신라 시대제지 중심지는 경주 지방으로서 여기서 생산하는 종이가 관용지의 수요를 충당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백추지가 국내외에 유명지종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는 그 용도가 많아 우리나라의 전국에 걸쳐 생산되었다.닥나무가 종이의 기본 원료였지만 원료의 다양화로 당시의 종이를 검사해 보면 실질적으로 닥만을 사용한 것은 많지 않다. 기본적으로 식물은 모두 종이의 제조가 가능하므로 갖가지 원료가 사용되었고, 기타의 종이는 오히려 단순화된 경향도 있었다.보편적인 서사재료는 물론 서적, 창호, 모자, 병풍, 우산, 장판, 혼서용, 장례용, 서화용, 저화, 갑의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종이가 응용되고 일상용품화되어 사용자도 다층화되었다.우리나라 전 시대를 통하여 종이는 가장 두께가 얇고 품질이 매우 좋았다. 하얗고 광택있고 질겨서 서적 등의 용도에 적당했다. 그러나 긴 섬유 때문에 보푸라기가 일어나거나, 도침을 했을 경우에는 너무 매끄러워 붓이 미끄러지는 폐단도 있었다.관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왕으로부터 종이를 하사받아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대부분은 현재의 종로 1가에 위치한 육의전의 하나인 동·서 지전이나 그밖에 여러 곳에 위치한 종이를 상위에 놓고 팔아 이름 붙인 지상전 또는 지필묵연을 함께 파는 필방에서 구입하였다.후기는 우리나라 제지술의 쇠퇴기라 할 수 있다. 초기의 종이 품질은 고려조의 성가를 이어받아 세종시대까지는 손색이 없었고 부분적으로는 그 이후까지도 품질에 대한 신뢰도가 지속되었다. 그러나 세종조 이후의 종이 생산의 관영화와 적극적인 증산책은 초기에는 발전하는 듯 하였으나 폭발하는 수요, 원·명·청대로 이어지는 혹독한 조공지에 대한 압력, 여러차례 전란으로 점차 자발적인 창조성이 위축되고 획일화 경향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닥원료의 부족으로 짚·보리·갈대 등의 부원료 혼합으로 품질은 저하되었다. 제지술의 전통은 임진란을 기점으로 서서히 하향의 길을 걷게 되었다. 대소의 연이은 환난은 국가 재정의 파탄을 가져오고, 바닥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하여 지장에 대한 보호 육성없이 혹사시켜 훌륭한 제지술의 전통은 기술적 퇴보를 자초했다.말기에 이르면 태지 정도를 제외하고는 우리의 가공지는 거의 없이 중국과 일본의 종이가봉지, 서계지, 축문지, 표지, 도련지, 중폭지, 상표지, 갑의지, 안지, 세화지, 백주지, 화약지, 상주지, 장지, 유둔지 등을 공물로 바쳤다. 에 따르면 전라도의 전주와 남원은 종이의 품질이 가장 좋아 조공지 부과의 제일 대상지였다. 갑의지, 도련지, 백주지, 부본단자지, 부본지, 상주지, 상표지, 세화지, 유둔지, 자문지, 부분지, 중폭지, 표전지, 표지, 화약지등을 제조하여 공납하였다. 충청도에서는 각색종이와 일반종이를, 황해도에서는 유둔지를 공납하였고, 강원도에는 휴지를 제조하였다.근·현대1)정책고종 19년인 1882년에 종이를 제조하던 관서인 조지소가 관리의 개정으로 없어지고 조지사무가 공조(工曹)로 옮겨졌다. 기술 개량과 생산 장려책으로 원가 절감과 증산을 목표하여 원료 가격 안정을 위한 닥 재배의 장려, 협동조합의 조직 등 생산 조직의 정비, 품질과 품종의 개량연구 등 시책을 폈다. 양지는 1884년, 이씨조선 고종 21년경 유입되었다. 한말의 김옥균이 수신사의 일원으로 도일하였다가 일본인 임덕좌문에게서 양지 제조시설을 매수하여 그 일부가 한성 양화율에 도착되었다.1912년에 개소된 조선총독부 중앙시험소는 1915년에 공업전습소를 두어 화학공업부 안에 제지부서를 두어 원료와 제품을 분석·감정하고, 실지 기술지도를 하는 한편 기술원의 강습, 제지 기능공의 단기 강습 등을 하였으며, 우수한 한지 기능공도 보유하였다. 한지 개량을 위한 일반의 기술지도가 주업무였다. 특기할 사항은 중국에서 씨앗을 들여다가 황촉규를 널리 보급시킴으로써 초지용 점제를 통일시킨 일, 대발의 보급과 그 규격의 통일, 제조기술의 표준화 등이다.한편 1914년 이후 매년 지방비 예산을 책정하여 철판 건조기, 원료 증해용 솥 등 개량기구 구입을 보조 장려하였다. 부가가치를 높인다는 명목으로 고가지인 일본의 화지 생산도 일부 시도하였다. 이와 같은 시책으로 인하여 1915∼21년 간 저피 생산과 한지 덩이, 생산 가옥수, 닥 식재가 늘어났다. 또한 원가 절감책의 하나로 한지 역사상 의 효율을 높이는 방법이기도 하다.닥나무가 잘 익은 후 껍질을 벗기기 위해 건져낸다. 삶은 닥나무에 물을 끼얹은 후 추운 날씨에 하루밤을 얼리면 목질부와 피질부에 얼음층이 형성되어 쉽게 껍질을 벗길 수 있다.↓2> 흑피(黑皮) 추출다 삶겨진 닥나무에서 껍질을 벗겨낸다. 이것이 "흑피" 또는 "피닥"인데 한지의 기초 원료가 된다.증기가 나무에 깊숙히 밴 상태에서 껍질을 벗기기 시작한다. 닥껍질을 벗기는 작업은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다.겉껍질이 붙어 있는 상태를 흑피라고 한다. 작업이 보통 겨울에 이루어지므로 벗겨낸 닥이 얼지 않도록 햇볕에 내다 말린다↓3> 백피(白皮) 작업흑피를 프르는 맑은 물에 하루동안 재우고, 발로 밟아서 외피를 훑어낸다. 그러면 백피가 된다. 이러한 백피는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다.흑피 상태에서 순수한 닥의 섬유질만을 추출해내기 위해 칼로 겉껍질을 벗겨낸다.겉껍질을 벗긴 백피상태로 보관하며, 건조한 백피는 2-3년 동안 사용할 수 있다.닥섬유를 흐르는 깨끗한 개천물에서 빨고, 하루 동안 담궈 불순물을 제거하고 섬유를 부드럽게 한다.표백제가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에는 볏짚이나 메밀짚 등을 태워 잿물을 얻었다.메밀재를 떡시루에 얹고 물을 부어 고운 체로 걸러서 잿물을 만든다. 잿물은 표백력이 강하지는 않으나 닥섬유를 손상시키지 않아 질긴 한지를 얻을 수 있다.↓4> 저불 작업닥껍질 50근에 양잿물 3근의 비례로 백피를 콩대나 메밀대를 태워서 만든 알칼리성 잿물에 넣어 4-5시간 삶아서 비섬유분을 용해시켜 제거하고, 섬유를 부드럽게 하는 공정이다. 먼저 가마솥에 물을 붓고, 충분히 끓인 후 잿물을 가하여 용해시킨 다음 백피를 넣고 약 1-2시간 정도 삶는다. 요즘은 표백제 ChlorKalk를 배합해서 황색을 제거하기도 한다. 이때 백피는 삶기 전에 약 30-40분 정도 물에 불리기도 한다. 이 공정은 반드시 필요한 공정은 아니지만 이 공정을 거치면 지질이 훨씬 좋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삶은 백피는 더운 김이 가시기 전에 식기 전에 맑고 흐르는다.
수학이란 무엇인가?수학이란 연산구조가 정의된 수의 집합이나 함수, 그리고 공간에 대하여 공부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정확히 무엇이라 설명할 수는 없다. 수학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문제는 퍽 어려운 일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지금까지 많은 수학자들이 "수학에 대한 정의"를 시도하였지만 만족스러운 정의를 내린 사람은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 문제는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수학을 정의해도 수학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말할 수 없고, 수학의 매력과 특성을 통해서 '수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접근하고자 한다.1.수학의 기원수학은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할만큼 가장 오랜 된 학문에 속한다. 역사적으로 수학은 기원전 2천 년경(바빌로니아,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기원전 5세기부터 3세기까지(그리스)와 17세기경(유럽에서 무한소 계산법의 발생)의 풍요한 발달 시기를 거쳐 20세기초까지 자연과학 및 공학적인 문제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기하학, 대수학, 해석학의 고전적 분야가 크게 발달하였다. 20세기에는 실용 수학의 새로운 분야(추측통계학, 컴퓨터 과학)가 탄생하였다. 그와 동시에 수학은, 이전에는 수학적 방법으로 접근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던 많은 새로운(경제, 사회과학, 생물학, 언어학, 설계, 통신 등)에 침투하였으며,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폭넓게 응용되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다른 과학에 대한 수학의 위치를 흔히 '왕'으로 비유하기도 하고 '하녀'로 비유하기도 한다.2. 수학적 대상에 대한 입장수학적 대상은 인간이 그것을 인식할 수 있든 없든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으며, 수학적 대상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수학적 기호 자체에 불과하다고 보는 입장도 있고, 또 유한 번의 단계에 의해서 구성할 수 있는 개념만 수학적 대상으로 인정하는 입장도 있다. 수학적 대상에 대한 이러한 입장의 차이는 수학의 확실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불러오고, 따라서 수학교육의 이념과 방법에 대한 차이를 초래하기도 했다.또한, 수학을 체계적이고 연역적인 과학으로 보는 입장과 구성 도중에 있는 실험적이고 귀납적인 과학으로 보는 입장도 있다. 즉, 정의, 정리, 알고리즘과 그 연역 체계 등을 수학으로 보는가 하면, 그러한 수학적 이론을 만들고 수정하는 인간 사고 활동, 즉 수학을 하는 과정을 강조하는 입장도 있다. 그런 이유에서 수학의 특성을 한 가지로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3. 학자들에 의한 수학의 정의Whitehead☞ 수학은 모든 유형의 형식적이고 필연적인 연역적 추론이다.Russell☞ 순수 수학은 'p이면 q이다'라는 형태의 모든 명제의 모임이다.Black☞ 수학은 그 형식이 기호로 표현될 수 있는 모든 구조에 대한 연구이다.Kneebone☞ 수학은 어떤 특별한 종류의 사실의 총체라기보다는 사고 활동이다.Lakatos☞ 수학은 과학처럼 준 경험적 이론이다.Courant&Robbins☞ 인간 사고의 표현으로서의 수학은 능동적인 의지, 세련된 추론, 미적 완전함에 대한 갈망을 반영한다. 그 기본적인 요소는 논리와 직관, 분석과 구성, 일반화와 개별화이다. 서로 다른 전통들이 서로 다른 측면들을 강조할지라도 이들 대조적인 측면들의 상호 작용과 그 종합을 위한 투쟁만이 수학의 삶이요, 유용성이며, 최상의 가치이다.4. 시대에 따른 수학의 특성수학이 처음 싹트기 시작한 기원전 300년경 희랍의 수학자 유클리드는 수학이라는 학문을 진리만을 다루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수학을 학문적으로 전개하려면 완전히 연역법에 의하여 논리적으로 엄밀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의 저서를 전개함에 있어서 처음 시작을 몇 개의 진리(그는 이것을 공리라고 불렀다)를 출발점으로 하며 이를 바탕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을 활용하여 여러 가지 결론을 차례로 유도하여 나감으로써 수학적 체계를 이루어 나간 것이다. 결국 유클리드는 "수학이란 진리만을 다루는 가장 논리적인 학문이다"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유클리드가 제시한 '부분은 전체보다 작다'라는 공리는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 독일의 수학자 칸토르(1845-1918)에 의하여 밝혀졌다. 즉 자연수의 집합 N과 그의 일부분, 꼭 절반인 짝수 전체의 집합은 1대 1대응이 되므로 짝수 전체의 집합수는 자연수 전체의 개수와 같다. 이와 같이 수학이 점차로 발전함에 따라 공리를 진리라 보는 것은 잘못된 생각임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취급하여 확고한 수학의 기초를 확립한 사람은 독일의 수학자 힐버트(1862-1943)이다. 그는 수학을 전개하기 위한 바탕이 되는 공리는 진리가 아니라 그것은 가설 또는 규약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또한 공리에 나타나는 수학적 술어에 대하여는 정의를 내리지 않기로 하고, 이와 같이 정의 없이 사용되는 술어를 '무정의 용어'라고 그는 부르고 있다. 결국 수학을 엄밀히 합리적으로 전개하려면 처음에 몇 개의 가설 즉 공리를 설정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 가설에 나타난 수학적 술어는 무정의 술어로써 그 뜻은 일반 상상에 맡기기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수학을 전개하여 나가는 것을 공리론적 방법에 의하여 수학이 전개되었다고 한다. 수학이 공리론적 방법에 의하여 전개되면서 학문적 수학을 볼 때 수학이 무엇을 다루는 학문인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그 공리계에 나타난 술어가 무정의 술어이기 때 문이다. 이와 같은 실정에서 1920년대의 수학에 대한 정의는 "수학이란 무엇을 다루는 학문인지 또 그 다루는 내용이 옳은 것인지 그릇된 것인지를 비판 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할 수 있었다.이 공리주의와 아울러 위상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등장으로 현대수학은 그 종류가 다양해 졌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들이 추상적인 것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곧 수학에서 다루는 내용들이 우리 현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추상적인 내용을 다루게 된 것이 현대수학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수학이 추상화되고 다양화됨에 따라 수학은 수학자만의 독점 물과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1935년에는 "수학이란 사고유희이다"라고 정의 내려 졌었다. 수학은 사고유희에 불과하다는 정의에 대하여는 많은 수학자들 사이에서 반발이 일어났다. 물론 수학이 고도로 추상화되어 있다는 면에서 본다면 수학에는 그런 일면도 있겠지만 수학이 지닌 특성에는 그 보다 더 중요한 면이 있다. 예를 들어, Einstein의 물리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Tensor calculus를 도입한다거나 원자의 미시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수학적 언어로 infinite matrix라는 것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비단 자연과학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사회과학, 인문과학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이 생각하다 보면 "수학이란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과학 등 모든 과학분야에 이를 서술하는 언어를 제공하는 학문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직이 프랑스의 대과학자 포앙카레는 "이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은 Shakespeare도 Goethe도 아닌 바로 수학자인 것이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1930년대를 넘어서면서 수학자들은 현대수학의 추상성에 회의를 품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수학의 각 분야의 상호관련성은 어떤 것이며, 전체를 통괄적으로 통괄하는 큰 뼈대는 무엇인지 하는 문제를 제기하여 이를 수학의 구조라고 불렀다. 이와 같이 학문연구에 있어서 그 구조에 중점을 두는 것을 우리는 구조주의라고 부른다. 수학의 구조가 밝혀짐에 따라 수학의 각분야의 구조적인 모델들이 수학 이외의 다른 과학의 구조적 모델을 대변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볼 때 "수학이란 모든 학문에 그 구조, Model을 제공하는 학문이다"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수학이 지니고 있는 특징은 이 외에도 헤아릴 수 없으리만큼 다양하며 이를 올바로 인식하려면 현대수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여 나가는 길밖에는 없을 것이다.) http://math2.yonsei.ac.kr/math/story-10.html5. 수학의 특성과 매력1) 실용성수학은 실용성을 그 특성으로 한다. 원래 수학은 실제 생활의 요구와 자연의 탐구에서 비롯되었다. 비록 그러한 수학이 이론 수학으로 발전하였으며, 현재 응용과는 무관하게 공리로부터 순수하게 수학이 전개되고 있을지라도, 수학이 타학문과 실생활에 모델로 작용하고 있으며, 또 장차 작용할 개연성이 대단히 높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2) 추상성어떤 구체물의 집단이 있을 때, 각 구체물이 가지는 속성 중에서 이질적인 속성을 제거하여 나아가면 결국 동질적인 속성만 남게 되는데, 각 구체물이 지니는 이 동질적인 속성을 끄집어내는 것을 추상화라고 한다.수학의 추상성이란 우리가 느끼고, 맛보고, 냄새 맡고, 듣고, 볼 수 있는 물리적 세계나 그 세계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직접 다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다루는 것이다.이와 같이 수학에서 다루는 대상은 대부분 추상화하여 얻어진 개념으로 수학은 이들 개념 사이의 상호 관련성을 이론적으로 따져 나아가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때 물리적 대상의 수학적 대상으로의 추상화는 특별히 선택적으로 이루어진다. 또 이미 추상화된 수학적 대상이 다시 추상화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추상화의 수준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추상화는 계속 이루어지기도 한다.
{1. 듣기의 중요함듣기는 우리가 듣는 것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며 주위를 기울이는 활동이다. 남의 말을 제대로 들으려면 우리는 단순히 낱말들 그것만을 아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때에 그런 방식으로 그런 낱말들을 써서 말하는 이가 뜻한 바를 똑바로 알아야 한다.듣기가 어떻게 이루어지며, 알아듣는 법을 어떻게 배우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국어 듣기는 아주 쉽게 익혀지는 것처럼 보이고 외국어 듣기는 상당한 노력을 들여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무튼 듣기는 일종의 기술이다.1.1 모국어 듣기사람들은 아무런 노력 없이도 모국어를 들을 수 있는다는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때때로 특별한 억양에 의해서 또는 듣기 나쁜 상황에 의해서 모국어를 듣는 데에서도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나 흔치 않은 이런 문제들이 우리가 모국어를 아주 쉽게 듣고 안다는 것을 깍아내리지는 않는다.1.2 듣기에 뒤따르는 것들듣고 있는 동안은 겉으로 소극적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듣는 이로서 우리는 설명하려고 한 메시지를 얽어내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힘써야 한다. '들리기(hearing)'는 수동적 상황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듣기(listening)'은 언제나 능동적인 과정이다.1.2.1 듣는 과정{1. 소리가 메아리 기억장치라고 불리는 감각 저장고로 들어가서 듣는 이가 이미 가진 언어 지식에 의미 있는 단위로 조직.↓2. 단기 기억 장치로 정보를 옮겨가는 과정↓3. 장기 기억 장치로 그 정보를 옮겨가는 과정1.2.2 맥락의 중요성듣기 과정을 연구한 결과 요즘 들어 듣는다는 것은 모두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이가 들은 것을 어떤 맥락 속에, 설령 맥락이 듣는 이가 스스로 만든 것일지라도, 정리할 수 있는 있을 때 알아듣게 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브라운과 율은 말하는 이가 뜻하는 바를 듣는 이가 알아들으려면 말을 상황맥락 과 연결 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어떤 특별한 사건에서 무엇이건간에 이미 말해진 것 이라고 했다. 듣는 이가 말하2 강세와 억양영어는 강세 음절을 써서 많은 운율을 만들어낸다. 강세의 목적은 말하는 사람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요한 정보를 담은 낱말을 강조하자는 것이며, 강세를 옮기면 낱말을 그대로 두고서도 입 밖에 내어 한 말의 뜻을 바꿀 수조차 있다.학생들은 낱말만 발음할 때 들리는 것과 같은 강세가 때때로 이어지는 말하기에서 말해진 낱말에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익숙해지도록 도움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한번에 하나씩 선생님이 또렷하게 발음하는 것을 들으면서 학생들이 새로운 단어의 발음을 배우려고 하는데 있다. 몇몇 낱말에 더욱 중요함을 부여하기 위하여 말하는 사람이 강세를 이용하는 방식에 학생들이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억양의 분석은 복잡하지만 강세가 주어지는 낱말을 골라내는 것은 실제적이고 도움이 될 만한 연습이다.2.3 말하기의 짜임새말하기는 창조적인 과정이다. 말하는 사람들은 거의 언제나 자기 말을 듣는 이들이 행동하는 결과에 따라서, 그리고 그들 자신이 생각을 덧보탠 결과에 따라서 그들이 동의하는 만큼 말한 바를 명확히 하고 조정해 가는 처지에 있다. 그러므로 말하는 사람이 자신의 말을 어떻게 조직해 나가는가를 아는 확실한 방법은 없다.그러나 정상적인 말하기에서 일어나는 듯이 보이고, 말하는 이가 뜻한 바를 듣는 이가 추려내는 데 쓰일 수 있을 듯한 여러 가지 특징들이 있기는 하다. 거의 모든 말하기에서 억양을 달리하여 화제의 전환을 나타내고, 말하는 이는 한 이야기의 끝과 다음 이야기의 시작을 상당한 쉼을 써서 나태낼 수 있다. 더욱 공식적인 상황에서는 한 생각에서 다른 생각으로 바뀐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손이나 머리의 움직임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상황 징표들을 알아듣는 기술을 길러야 하고, 말의 알맹이를 찾으려 집중해야 하며, 정보의 흐름을 받아들일 때에 일어나는 딸꾹질 현상 이 있더라도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2.4. 말하기의 통사론과 어휘입말에서의 특징(by 브라운과 율)(가) 영어를 말하는 사람은 거의 모두 글말보고, 그들의 시도를 도와 주어서 학생들이 듣기 를 좀더 잘 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듣기 교육에 있어서 교사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가) 학생들에게 여러 가지의 듣기 경험을 시킨다.- 여러 가지의 말(격식 차린 말이거나, 격식 없는 말, 토박이가 하는 말이거나 외국인이 하는 말, 빠르게 하는 말이거나 느리게 하는 말)을 담은 갖가지 서로 다른 교재들(이야기, 대화하는말, 묘사하는 말)를 이용해서 할 수 있다.(나) 학생들에게 듣기가 목적있는 활동이 되게 한다.- 할 수 있는 대로 현실적인 듣기를 시켜야 가장 잘 이루어질 수 있다.(다) 듣기에 뒤따르는 일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학생들이 알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학생들이 듣기에 대한 태도를 바꾸도록 하는 것이다.(라) 학생들이 스스로의 듣기 능력에 자신감을 키우도록 한다.- 듣기 활동을 시험 으로 여기지 않게 하고, 문제 풀면서 누구나 맛볼수 있는 그런 흥미를 모든 듣기 활동의 기본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4.2. 듣기 학습에서 챙겨야 할 요소들(가) 학생들이 낱말 하나하나를 들으려고 애쓰다가 용기를 잃고 수렁 에 빠지는 것보다 모국어 듣기에서 자연스럽게 이용하는 전략을 적용.(나) 들어야 하는 말의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를 늘려간다.(다) 들은 것을 모조리 알아듣지 않아도 때로는 전체를 이해하는 데에 모자람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한다.{4.3.1 별도의 수업인가, 또는 전체 수업의 일부인가·듣기 연습에 초점을 둔 별도의 수업을 할 작정인가, 아니면 국어 수업의 일부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듣기에 알맞은 상황을 만들어 준다면 듣기만 하는 시간을 따로 내는 것이 실용적일 수 있다.4.3.2 교실인가, 어학실이나 또는 듣기 센터인가?듣기 수업을 어디서 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실질적인 상황에 맞추어 결정할 이다.듣기 장소 선정시 고려할 점·교사가 말하는 것을 듣게 한다면 학생들이 교사를 잘 볼 수 있는 곳에서 하는 것이 좋다.·어학실에서는 모둠 학습을 하기가 어렵다.·치르는 경우에도 옳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이러한 것은 학생의 듣기 능력을 저해할 수도 있다. 그래서 듣기에 앞서 학생들은 전체적으로 그리고 특별한 활동을 하는데 필요한 만큼, 앞으로 듣게 될 내용에 관해서 사전 조정 을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앞듣기 작업 또는 앞듣기 라고 부른다.5.2 앞듣기 활동의 유형들- 교사가 배경 정보를 주기- 학생들이 관련된 책을 일기- 학생들이 관련된 그림들을 보기- 주제/상황을 두고 토론하기- 질의 응답- 쓰기 연습- 본듣기 활동을 위한 지시들 따르기- 본듣기 활동을 어떻게 끝낼지 생각하기이러한 활동들은 모두 사전 지식과 이미 알고 있는 말과 관련해 학생들이 들을 것에 기대를 하면서 차차 범위를 좁혀 마음을 주제에 모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5.3 현장 활동들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들리는 말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되도록 이면 실제 현장과 같은 듣기 경험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듣는이가 단지 거기에 쓰이는 말로만 연습하는 것이 아니고, 실생활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을 하게 하는 것이다.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규칙을 아주 잘 만들어서 학생들이 참여하고 싶게 하느냐, 그리고 진짜는 아니더라도 목적있는 활동을 하게 해서 이 인위적인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5.4 명확한 지침이 있어야앞듣기 단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학생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똑똑히 알도록 하는 것이다. 모든 학생들은 듣기 교재를 틀어주거나 읽거나 말해주기 전에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만일 이런 것을 모르면 학생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고, 해보려는 의욕을 갖지 않을 것이며, 해보겠다는 학생이라고 마음을 모아 잡기가 어려울 것이다.지침을 미리 하는데에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듣기 교재를 여러 번 되풀이해서 들려 준다면 들려줄 때마다 번번이 명확하고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처음 들을 때 그 목표를 모두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학생들은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보다는 학생들이 다양한 듣기답을 가리는 활동들에서는 아주 성의 있게 배우려는 사람을 빼고는 거의 모든 학생들이 이내 실망할 것이다. 알아들었는지를 시험할 경우가 있겠지만, 이것은 모든 듣기 훈련 수업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좋은 본듣기 활동은 듣는 이들이 듣기 교재를 통해 듣는 방법을 찾고, 앞듣기 활동에서 일어난 기대들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지도록 돕는 것이다.6.2. 본듣기 활동의 본질{6.2.1 흥미·본듣기 활동은 흥미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들은 다음 행동에 옮기고 싶은 마음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6.2.2 어려움의 수준·본듣기 활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들이어야 한다.·듣기 교재 안에 해결책이 마련되어 있어야 하며 제대로 들으면 해결책이 나오는 활동이어야 한다.6.2.3 복잡함을 피하기·본듣기 활동은 다루기 쉬워야 한다는 뜻으로 단순해야 한다.·본듣기의 목적이 집중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고, 듣는 이를교재 속으로 안내하는 것이지, 듣기 교재의 내용에 기초하여 올바른 문장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다.6.3. 본듣기 활동을 고를 때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가) 필요하다면 쉽고 어려운 수준을 여러 가지로 바꾸는 가능성들(나) 교실에서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입말로 대답하게 하는 활동을 펼치기 어려움.(다) 듣기활동을 교사 앞에서 할 것인가 학생이 혼자 할 것인가(라) 본듣기 활동이 뒷듣기 활동 같은 다른 활동에 쓰일 수 있는 재료나 착상을 생겨나게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만약 그렇다면 교사가 이러한 것들을 써보려고 하는지.6.4. 본듣기 활동을 위한 착상들{6.4.1 그림 항목에 표시하기/체크하기·학생들은 그림을 가지고 앞듣기 활동을 해 보았으므로 그림 위에 표시함으로써 여러 가지 자극에 대답하기를 요구받게 된다.·낱말을 적으려고 애쓰기 때문에 집중하는데 도움이 된다.6.4.2 어느 그림?·학생들은 설명이나 대화를 듣고 고르도록 되어 있는 것 가운데, 어떤 그림이 맞는지 찾아 짚어야 한다.6.4.3 이야기에 따른 그림 세트·서너 개의 그림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