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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인류학] 인류의 시대
    1.자연계에서 인류의 위치기록을 가지고 있는 사회는 그들 나름대로의 기원 신화에 대한 해석을 가지고 있는데 이때의 신화는 상징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어떤 환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간 정신에 관한 훌륭한 탐구의 산물인 기원 신화는 각기 특수한 종족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 땅에서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이 기원 신화는 인간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사회의 규범 척도가 될 뿐만 아니라 그 사회를 묘사하는 기능을 함께 가지고 있다. 기원 신화는 한 사회를 축소시켜 놓은 소유물로,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서로 영향을 미치는가, 자기네 종족들과 이방인과의 관계는 무엇이며, 이 세상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는 어떤 것인가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 내면에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특성이 발전해 온 이래, 기원 신화가 현대 인류가 영위하고 있는 지적인 삶의 핵심이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인류의 진화와 관련된 학문이 20세기 사회에 기여한 역할은 바로 달의 정령이 야노마모족에게 끼친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이 기원 신화가 무엇인가에 대해 묻는다면 인류 기원에 관한 생각들이 비과학적인 문화와 과학적인 문화 내에서 서로 비슷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찰스 다윈의 벗이자 그의 열렬한 지지자인 토머스 헨리 헉슬리는 1863년에 자신의 책에서 서구의 전통적인 지적 세계에서는 처음으로 인류의 기원과 더 나아가 자연과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 진화의 원리를 수용하였다. 선사 인류의 화석들이 별로 발견되지 않은 그 당시에 인류와 동물의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다윈과 헉슬리는 비교해부학적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들은 슬기 사람이 유인원과 아주 닮았고, 사람과 침팬지 그리고 고릴라는 같은 공통 조상의 혈통을 이어 받았다는 데에 의견이 일치하였다. 그러나 다윈은 인간의 탁월성을 인정한 이유 중 많은 부분을 과학적으로 주장하기보다는 문화적인 요인을 강력하게 나타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조 최근에 한 발견에 의하면 인간과 유인원은 많은 인류학자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3천만 년 전에 분화된 것이 아니라 단지 5∼7백만 년 전에 갈라졌다고 한다.중신세 때 살았던 프로콘설이 호미니드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는데 프로콘설은 약 1천 8백만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살았으며, 오늘날의 유인원과 인류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여겨진다. 중신세 시기의 모든 유인원 중 프로콘설의 화석이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까닭은 중요한 뼈화석 조각들이 야외뿐만 아니라 이미 박물관 창구에 보관되어 있는 수집물에서 발견되어 뼈대의 복원이 일부 가능하기 때문이다. 프로콘설의 후예로는 지금까지 라마피테쿠스, 시바피테쿠스,기간토피테쿠스 등 세 종류가 알려져 있다. 인류학자들은 오랫동안 어떤 존재가 처음으로 유인원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인류의 역사에 나타났는지, 또 이런 일이 언제 일어났는지 하는 의문에 사로잡혀 왔다. 필빔과 사이먼은 일찍이 자신들의 적문적인 방법에 따라 인류의 해부학상 특징을 규정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유인원보다 인류를 닮은 존재를 화석 증거들에서 찾고자 하였다. 이런 해부학적 특징은 현생인류와 유인원 사이에서 분명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인류학자들에게는 중요한 비교의 기준이 된다. 1961년에 사이먼은 획기적인 연구 논문을 내놓았다. 이 논문에서 사이먼은 라마피테쿠스가 인류 최초의 구성원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인류학자들은 이로부터 20년이 지난 후에야 라마피테쿠스가 인류의 조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공통조상이 현생 유인원과 인류라는 두 계열로 갈라지는 과정에서 각각의 계통은 DNA 속에 변화를 계속적으로 축적하지만, 물론 그 변화는 서로 다르다. 분리되면 될수록 그 차이는 점점 더 커진다.1968년 최초의 연구 발표 이후 윌슨과 새리치는 많은 진화 계통도를 만들어 냈으며, 다른 학자들도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였다. 어떤 학자는 여러 종류의 단백질 기본 구조인 아미노산의 순서를 조사하였으며, 또 DNA 자체를 연구하였다.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약 8백만 년로피테쿠스의 한 종이었기 때문이다. 리키는 이 화석이 우리 자신들이 속해있는 사람 속의 화석중 가장 이른시기의 증거라고 믿었다.리키와 동료들은 흔히 쿠비포라로 알려진 투르카나 동쪽 호숫가를 따라 매번 새로운 발굴기간 중에 엄청난 수의 호미니드 화석들은 수집하였다. 많은 화석들이 진즈 또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를 닮았으며, 그 외 화석들은 좀 여리게 생겼으며 손쓴사람을 닮았다.과거부터 오랫동안 또 앞으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인류학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인류의 계보를 구성하는 일이다. 리키는 많은 사람들이 손쓴사람과 슬기사람을 이어주는 호미니드로 160만 년 전부터 25만 년 전 사이에 살았던 곧선사람을 상정하는 것과는 반대로 곧선사람은 진화과정에서 옆으로 제쳐놓았다. 그는 또한 인류의 직계조상에 관한 어떤 토론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종을 제외시켰다. 인류와 비슷하지만 정말로 인류의 조상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시대 대다수 학자들은 그의 견해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시간 대학교의 로링 브레이스와 밀포드 올포프등이 주도하는 단일종 가설의 지지자들에 따르면 인류는 진화과정 중 분화되어 갈라져 나간 가지는 전혀 없으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한 단계씩 단일계열선상을 따라서 먼 조상으로부터 후손으로 진화해와 마침내는 슬기사람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생태학적 이론에 따르면 두 종의 호미니드는 분명히 사이좋게 공존할 수 없다. 따라서 단일종 가설의 결론은 인류의 기원은 시작부터 다른 동물들과 구별된다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불변의 과정이며, 슬기사람은 마지막이자 아마도 변함없는 진화의 마지막 산물이다.학자들이 인류의 기원에 관해 토론을 처음 한 이래, 진화상 각각의 변화는 어떤 내적 추진력의 결과로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몇몇 학자들은 최근에 인류의 진화활동은 자주 다른 동물들의 진화활동과 함께 일어났다고 지적하였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기후가 그 이유였다. 기후변화 속에 갈라져 나간 집단이 점점 활발해지는 진화활동은 촉진시키는 요인이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이다. 이들은 곧선사람이 소멸하고 바로 우리 자신인 슬기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과도기적인 시기에 살았다. 따라서 네안데르탈인은 인류의 진화사상 가장 활발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생인류가 출현하는 시기와 같은 시기에 살았다.1856년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이 하나 발견된 이래, 이 네안데르탈인의 신분은 미니스커트의 길이가 유행에 따라 변한 것 보다 더 많이 변해왔다. 19세기 초, 프랑스가 낳은 위대한 인류학자 마르셀 부울은 라샤펠로생의 옛사람으로 불리는 새로운 화석을 분석한 후, 당시 유행하던 견해와는 달리 네안데르탈인은 우리 조상이 될 자격이 없다고 단정하였다. 원시인의 생활은 묘사한 토머스 홉스의 글에 나오는 불결하고 포악하며 작달막한 모습이라는 표현은 부울과 그의 추종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의 외모를 표현하는 데 그대로 적용하였다.네안데르탈인의 두뇌를 떠서 만든 틀은 보면 분명히 이들의 두뇌 구조는 현대인들의 두뇌구조에 아주 가깝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고고학 기록들은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궁금한 점에 대해 대부분 근본적으로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안데르탈인의 잠재적인 인간성을 증명해 줄 단서는 있다. 인류역사상 최초로 네안데르탈인은 인류만의 독특한 의식활동인 장래를 거행하였다.진정한 의미의 현생인류가 정성 들여 만든 최초의 무덤들과 비교해 볼 때 네안데르탈인의 무덤은 아주 간단하고 단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살았던 시기 내내 어떤 종류의 의식 행위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삶과 죽음 그리고 삶 그 자체에 대해 선험적으로 얻어진 그들의 높은 인식을 웅변으로 증언한다고 할 수 있다.네안데르탈인의 진화는 점진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이들의 뿌리는 적어도 20만 년 전부터 30만 년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빙하시대 중 마지막 따뜻한 간빙기가 시작된 13만 년 전에 처음 나타났다. 이 따뜻한 시기는 약 7만 년 전에 끝이 났는데, 이 때 전형적인 네안데르탈인의 독특한 모습이 완성되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견해를 독자적으로 제기하였다. 그들은 이런 구조가 사회의 모델 즉, 남성과 여성의 구분을 함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어떤 동물은 남성을 상징하고 또 어떤 동물은 여성을 상징하여, 이들은 동굴안에서 분명한 방법으로 구별되어 있었다고 한다. 여성을 상징하는 그림은 동굴 가운데에 모여있고, 남성을 상징하는 그림은 그 주위에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라스코 동굴의 그림은 그리고, 조각한 사람들이 살던 세계는 오늘날의 세상과는 다르다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라스코 동굴의 그림은 1만7천년 전에 최고조에 달했는데. 이 시기는 7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 사이에 진행된 마지막 빙하시대의 절정기가 막을 내리고 있는 때였다. 빙하가 한창일 당시 북유럽의 많은 지역은 두께가 1마일 이상이나 되는 두꺼운 빙하에 덮여 있었다. 유럽 남부지역은 춥고 건조하여 넓은 초원으로 뒤덮여 있었다. 프랑스 남서부와 스페인 북부처럼 지형적으로 기복이 있는 지역에서는 식생이 보다 더 다양하였고, 동굴이나 바위그늘 및 한데지역은 각기 다른 미세한 기후조건을 제공하였다.그 당시 식생에 관한 내용은 유럽의 빙하시대 예술, 특히 채색된 그림들에서는 실제로 나타나지 않는데, 이는 분명히 유럽 전 지역의 풍부하고 다양한 식생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사실 동굴 벽에 그려져 있는 그림과 조각들을 살펴보면, 이 그림들은 카메라 영상으로 잡아내듯이 구석기 시대의 풍경을 잘 나타내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이들 그림의 대상은 어떤 면에서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삶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자연을 표현하고 있다고 해석된다.모든 사냥채집인들은 빙하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식물성 음식과 고기를 함께 취하는 경제생활을 하였다. 마지막 빙하기에는 오랫동안 추위가 계속되었다. 기온의 변동이 있었지만, 때로는 오늘날의 간빙기 지역처럼 살기 좋은 기온을 유지한 때도 있었다. 동물과 식물의 세계도 기온의 변화에 따라 변하였다. 빙하기에 유럽에 살던 인류는 이렇게 자주 자연환경이 변하는 시기
    자연과학| 2002.02.21| 29페이지| 1,000원| 조회(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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