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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존 철학[멘 드 비랑(Maine de Biran, 1766∼1824)]외적 감각경험을 강조하는 당시 조류에 반대해서 인간의 내적 생활이야말로 인간이 자아를 이해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역설했다.철학면에서 처음에 멘 드 비랑은 이데올로그(Ideologues)로 알려졌다. 이데올로그란 모든 경험을 감각 영역에 제한된 것으로 보는 철학 학파였다. 그러나 그는 이 이데올로그의 태도가 부적합함을 점진적으로 상세하게 해명해 내었다. 이데올로그들은 내적 생활이 경험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무시했다. 그는 1802년의 논문에서 감각뿐 아니라 의지도 자아를 분석하는 데 필수요소라고 말했다. 1805년 이후에는 인간이 그 자신의 신체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의지'를 더욱 중요하게 보았다.이러한 의지적 운동개념에서 이끌어낸 인간 자유에 대한 생각 때문에 멘 드 비랑을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의 아버지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후기 논문들에서 인간의 자아가 순수하게 감각적 동물적 단계인 '동물생활'에서 의지와 자유의 단계인 '인간생활'로 발전하고, 마지막으로 인간성을 초월하는 경험인 '정신생활'에서 정점에 이른다고 묘사하고 있다.[키에르케고르(S ren Kierkegaard, 1813∼1855)]합리론을 비판한 덴마크의 종교철학자로 실존주의(유신론적) 철학의 창시자로 여겨진다. 그는 데카르트의 'cogito ergo sum'을 'sum ergo cogito'로 바꾸어 놓은 장본인이다. 그러나 그의 'sum'은 맑스와는 달리 정신적 존재로서의 단독자를 의미한다.그에 따르면 '불안'이란 '불확정적 가능성에 대한 감정'이며, '절망'은 '신 앞에서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이 되려고 하지 않는 것', 즉 부정적 계기가 우세한 탈자존재의 모든 형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 '절망'은 가능성 속에서 유일한 치유책인 '신앙'을 발견한다.그의 초기 철학적 저술인 「이것이냐 저것이냐」(1843)는 미적 인생관 또는 윤리적(윤리종교적) 인생관이 대안을 제시한다. 키에르케고르는 각 개인이 삶의 여러 길 은 미적 단계만이 아니라 윤리적 단계와도 구분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발전은 인간 윤리가 삶의 방식으로는 부적합하다는 점을 보여주려 한 것이었다.그는 또한 당시 유럽을 휩쓸고 있던 지배적 철학인 헤겔 철학에 보복을 가한다. 키에르케고르는 실존하는 것 전체를 체계화하려는 헤겔의 시도를 공격하면서, 실존은 불완전하고 끊임없이 발전하기 때문에 체계로 구성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주체성(주관성)이 진리라는 주장을 하였다.[딜타이(Wilhelm Dilthey, 1833∼1911)독일의 철학자로 인문학과 인문과학의 방법론에 크게 이바지했다. 당시 인문화학에 널리 퍼진 자연과학의 영향을 거부하고 인간을 역사적 우연성과 가변성에 따라 이해하는 생철학을 발전시켰다. 문화적 관점에서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룸으로써 특히 문학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딜타이는 역사학이 자연과학의 방법론적 이상에 접근하려는 경향에 반대하여 인문과학을 그 자체의 고유한 해석적 학문으로 정립하려고 하였다. 그가 이러한 생각의 기초로 삼은 것은 개인적 체험의 창조적 표현으로의 실현, 이러한 체험에 관한 반성적 이해 사이의 상호작용이었다. 그는 개인을 고립된 존재로 보지 않고 언제나 개인을 둘러싼 환경의 맥락에서 보았으며, 인간의 본질은 내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역사에 관한 모든 지식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역사 자체가 완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파악은 결코 완결될 수 없다.그는 합리적으로 구성된 체계들을 믿지 않았으며, 그것들이 복합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남겨두고자 했다.[니체(Nietzsche, 1844∼1900)]독일의 철학자로 전통적인 서구 종교 도덕 철학에 깔려 있는 근본 동기를 밝히려 하였으며, 신학자 철학자 심리학자 시인 소설가 극작가 등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신은 죽었다."라는 그의 주장은 20세기 유럽 지식인의 주요한 구호였다.니체의 저서들은 뚜렷하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초기작품들에서는 쇼펜하우어와 바그너의 영향 「즐거운 과학」이후에 나타난다. 원숙기 저작에서는 주로 가치의 기원과 기능을 다루었다. 생에 내재적 가치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면서 항상 생이 평가되고 있다면 그러한 가치평가는 평가자의 조건을 나타내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특히 서구의 철학 종교 도덕의 기본적인 문화적 가치들을 금욕주의적 이상의 표현이라고 보았다.그에 따르면 그리스도교가 죄지은 자들에게 구원을 약속한 반면, 철학은 현자들에게 세속적인 것이긴 하지만 구원의 희망을 제시했다. 전통적인 종교와 철학의 공통점은 존재는 설명 정당화 속죄 등을 필요로 한다는 가정을 숨기고 있다는 점이다. 양자는 경험을 다른 세계, 이른바 '참된' 세계를 빌려 훼손한다. 전통 도덕에 대한 니체의 비판의 초점은 '주인' 도덕과 '노예' 도덕의 유형학이다. 그는 독일어의 'gut(선한, 좋은)', 'schlecht(나쁜)', 'bose(악한)' 등을 검토하면서 선악의 구별은 원래 비도덕적인 기술에 쓰인 것으로 선은 우월한 주인, 악은 열등하고 천한 노예를 가리켰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노예가 주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지배의 속성들을 악으로 규정함으로써 선과 악의 대조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월함은 악덕이 되었고, 자애 겸손 복종이 경쟁 자존심 자율성으로 대체되었다. 노예도덕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한 것은 노예도덕만이 참된 도덕이라는 주장이었다.니체는 힘과 권력의지란 개념을 핵심 개념으로 도입함으로써, 주어진 대상의 의미와 가치를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비판철학'을 만들어 냈다.니체 없이는 20세기의 철학 신학 심리학의 역사를 생각할 수 없다. 예를 들면 독일의 철학자 막스 셸러, 칼 야스퍼스, 마르틴 하이데거는 그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으며 프랑스의 철학자 알베르 카뮈,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등도 마찬가지이다. 철학과 문학비평에서 일어난 실존주의와 해체주의는 그에게 힘입은 바가 크다.[후설(Edmund Husserl, 1859∼1938)]독일의 철학자로 의식의 분석과 기술을 통리론 사이의 대립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후설은 현상학을 보편적인 철학적 학문으로 기획했다. 이 현상학의 방법론적 기본원리는 후설이 현상학적 환원이라고 부른 것이다. 판단중지에서 시작되는 현상학적 환원은 해석되지 않은 원초적 경험과 사물의 본질에 대한 탐구에 철학자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이런 의미의 환원을 '형상적' 환원이라고 한다. 한편 현상학적 환원은 본질을 의식하는 기능에 대한 반성이기도 한다. 이러한 환원은 자아 때문에 모든 것이 의미를 갖게 됨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훗설의 철학은 고독한 선헙적 자아의 철학이다. 이렇게 현상학은 경험론과 합리론에 대한 칸트의 중재를 현대적인 방법으로 되풀이하고 개선한 새로운 양식의 선험 철학이라는 성격을 띤다.[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오스트리아 태생의 영국 철학자. 1925년에서 50년까지 영국 철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 한 사람이었으며, 논리학 이론과 언어철학에 관한 독창적이며 중요한 철학적 사유체계를 제시했다.그의 초기 사상은 「논리 철학 논고」(1921)에 나타나 있다. 이 시기의 '그림이론'은 종이 위에 씌어진 기호들과 외부세계의 어떤 상황 사이의 연관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명제가 그림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는 까닭은 명제를 완전히 분석된 형식으로 고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식 속에서 명제는 실재의 단순요소들과 상호 관련되는 단순 기호들을 배열한 것이며 따라서 '그림이 실재에 닿는다'.그의 후기 사상은 사후에 출판된 「철학적 탐구」(1953)에 집약되어 있다. 여기서 그는 초기에 자신이 만들어 놓은 이론과 생각들을 해체하고 부정하며 전혀 다른 입장으로 선회한다. 여기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게임'이란 개념을 제시한다. 특정한 규칙을 따르는 언어적 실천과 비언어적 실천이 서로 교차하는 영역이 바로 언어게임이라는 것이다. 즉 언어게임이란 언어와 행동의 결합체요 언어적 활동과 비언어적 활동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이는 언어적 활동이나 비언. 이러한 언어게임과 '주체' 간의 교호적 작동은 언어적 비언어적 실천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비트겐슈타인에게 '실천'의 개념이란 맑스에게서처럼 근본적이고 중심적인 축임에 틀림없다.[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실존주의자 중의 한 사람으로, 인간의 자기 실존에 대한 직접적 관심으로부터 문제에 접근했다. 후기 저작에서는 독일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의 몰락에 대응하여 사고의 새로운 통일을 모색했으며 이 통일을 세계철학이라고 불렀다.야스퍼스에게 인간 실존은 단지 '세계 속에 있음'이 아니라 인간존재의 자유를 의미했다. '나 자신'이라는 관념은 세계 속에서 자기 존재의 자유를 실현할 잠재력을 의미했다. 그리하여 철학의 임무는 생각하고 실존하는 주체인 개인의 자유에 호소하고 또 모든 실재의 중심인 인간실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었다.야스퍼스는 인간 일반의 상황에 대해 깊은 이해를 보이며, '한계상황'이라는 중요한 개념을 도입한다. 한계상황은 유한한 인간 실존에 결부되어 있고 이 상황 속에서는 확정된 것도 절대적인 것도 없고 모든 것은 지속적인 변화와 대립 속에서 분열되기 때문에 성립한다. 우리는 이 한계상황 속에서 우리를 현존재의 한계로 이끌어 가고 우리의 실존 전부를 동요하게 하는 상황(투쟁, 고뇌, 죄책, 죽음의 상황 등)을 체험한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들의 유한한 세계를 넘어선 것이 존재해야 함을 상기시키며, 이러한 상황이 우리들로 하여금 초월자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그는 이 초월자를 주관과 객관이 통일된 '포월자'라 일컫는다.후기 야스퍼스는 자신의 새로운 사고 발전을 세계철학이라고 규정했고, 그 주요과제는 자유로운 세계질서에 기여할 수 있는 사고방식을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실존철학에서 세계철학으로 넘어간 까닭은 색다른 종류의 논리학이 모든 인류 사이에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보장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20세기 실존주의의 대표자로 꼽히
    인문/어학| 2001.04.26| 5페이지| 1,000원| 조회(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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