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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문방송] 일본문화개방과 한국의 방송 평가A좋아요
    목 차{Ⅰ. 서 론1. 연구의 목적-------------------------------------------12. 연구의 범위와 방법------------------------------------2Ⅱ. 본 론1. 일본 대중문화 개방의 전개-------------------------------------22. 한국 방송과 일본 방송의 비교1) 한국의 뉴스와 일본의 뉴스-------------------------------------62) 한국 드라마와 일본 드라마-------------------------------------63) 한국과 일본의 방송 제작 시스템-----------------------------------73. 한국 방송의 현실1) 표절을 통한 일본 방송의 유입-------------------------82) 위성 수신을 통한 일본 방송의 유입------------------------------104. 일본 방송 개방의 양면성1) 일본 방송 개방의 긍정적 측면-----------------------------112) 일본 방송 개방의 부정적 측면 3) 일본 방송 개방 설문 시행 결과-----------------------------12-----------------------------135. 일본 방송 개방에 대한 대응 모색1) 외국의 방송 개방 사례---------------------------------------152) 일본 방송에 대한 한국의 대응 방안-------------------------18Ⅲ. 결 론---------------------------------------------------20참고문헌-------------------------------------------------------------23Ⅰ. 서 론1. 연구 목적1998년 겨울 대학 입학을 위해 면접시험을 봤었다. 그 때 면접시험 주제가 바로 일본 문화 개방 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면접시험장에서 나는 면접 시험관들에게 일본 대중문화송 개방 당시 스포츠ㆍ다큐멘터리ㆍ보도에 한정됐던 지상파 TV 개방대상이 생활정보ㆍ문화예술 등 비오락형 교양프로그램으로 전면 확대됐다. 오락형 프로그램 가운데 영화ㆍ극장용 애니메이션ㆍ대중가요 등은 기존의 개방수준을 기준으로 유료방송인 케이블과 위성 방송 등 뉴미디어 분야에서 우선 개방됐다.< 일본 대중 문화 개방 진행 단계>{) 문화관광부 http://www.mct.go.kr{개방순서(공표시기)개방내용1차 개방(1998. 10. 20)- 영화 및 비디오부문(비디오는 개방 발표이후 국내에서 상영된 일본영화의 비디오를 의미)·4개 국제영화제(깐느, 베를린, 베니스, 아카데미) 수상작·한일공동제작영화·한국영화에 일본배우 출연 허용 및 한일영화주간 개최- 출판부문 : 일본어판 출판만화, 만화잡지2차 개방(1999. 9. 10)- 영화 및 비디오부문 개방 폭 확대·공인된 국제영화제 수상작·전체관람가 영화(영상물등급위원회 인정 영화)·다만 애니메이션은 제외- 공연부문·2000석 이하 규모 실내장소에서의 일본대중가요 공연 허용·다만, 식품위생법령에 의한 식품접객업소(휴게음식점, 일반음 식점, 단란주점, 유흥주점)에서의 공연과 공연실황의 방송, 음 반 및 비디오의 제작·판매는 불허3차 개방- 1차 방송개방(2000. 6. 27)- 공연 및 영화 부문·실내 2000석 규모 이내로 제한됐던 일본 대중가요 공연의 전면허용·국제영화제 수상작과 전체관람가 로 제한됐던 일본영화 개방 폭 확대( 18세미만 관람불가 제외)·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를 포함한 각종 국제영화제 수상작에 국한한 극장용 애니메이션·국내 상영된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비디오 출시 개방- 음반부문·일본어 가창음반을 제외한 나머지 음반- 게임부문·게임기용 비디오게임물을 제외한 나머지 게임물- 방송부문 (1차 방송개방)·모든 방송매체에 대해 스포츠, 다큐멘터리, 보도프로그램의 방송 허용·케이블TV 및 위성방송의 경우 공인된 국제영화제 수상작과 전체관람가 영화로서 국내 개봉작에 한해 허용{개방순서(공표시기)개방내용4차 개방(20허설, 촬영 그리고 확인으로 이어지는 일본팀의 제작 형태는 분명 한국의 제작방식과 달랐다. 또한 리얼리즘에 입각해 있는 그대로의 시각적 느낌을 묘사하려는 일본의 영상관과 사물의 주제를 부각시켜 아름다운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우리의 표현주의 경향은 카메라의 앵글뿐만 아니라 조명의 설정, 소품의 선택 및 배치에 이르기까지 제작 전 부분에 걸쳐 잦은 마찰을 일으켰다.연기자의 움직임을 가능한 한 많이 주고 카메라의 앵글을 다양화함으로써 극의 속도 및 감정의 깊이를 고조시키는 일본의 연출기법과 이보다는 카메라 워킹을 통하여 같은 효과를 얻고자 했던 우리의 연출 스타일 등 양국의 상이한 제작 형태로 인해 치러야 했던 시행착오와 갈등의 순간들이 많았다고 한다.또한 하나하나 치밀하게 준비해 일을 진행하는 것이 일본 방식인데 반해 한국의 제작 방식은 기세를 몰아 제작하면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힘을 합쳐 신속하게 해결하는 집중력에서도 차이를 보였다.3. 한국 방송의 현실1998년 10월 일본 대중문화의 개방이 시작되고 2003년 4차 일본 대중문화의 개방으로 방송 부문에서의 부분적인 개방이 이루어진 후 많은 일본 방송이 우리나라에 유입되었다. 하지만 일본 방송은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기 이전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었다. 우리나라 방송에서 지금까지도 자행되고 있는 일본 방송 프로그램의 표절, 위성 수신에 의한 전파 월경 등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일본 방송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1) 표절을 통한 일본 방송의 유입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 대중문화는 쉴새없이 표절시비에 휘말려 왔다. 더구나 암암리에 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쉬쉬하던 것이 이제는 인터넷의 보급 확산으로 대중적으로 확산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표절, 베끼기, 모방 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함은 TV드라마, 광고, 소설, 음악 등의 무분별한 표절을 불러왔다.방송위원회가 98년부터 2002년까지 심의를 통해 표절로 인정돼 제재한 건수는 KBS 2건, MBC 2건, SBS 4건이다. 1998년 K뿐 문화나 사회 부분은 거의 교류가 없었고, 종군 위안부와 원폭피해 한국인, 재일 교포 문제 등 수많은 역사의 미청산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2002년 한ㆍ일 월드컵 공동개최 이후 한국과 일본은 전 지구적 행사를 같이 함으로써 모든 분야에서의 화합의 장이 열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21세기 한ㆍ일 파트너십이라는 컨셉으로 한국과 일본이 동반자로 협력해 나간다면 이로 인해 중국의 변화를 모색할 수 있고, 한ㆍ중ㆍ일 공동체로 나아가 21세기 동북아 신질서라는 큰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문화발전의 측면에서도 개방은 필요하다. 이미 개방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일본의 대중문화는 상당부분 들어와 있고, 이러한 문화물 중 대부분은 불법복제, 밀반입이라는 음성적인 경로를 통하여 들어오고 있다. 이로 인해 음성적인 유통시장 형성, 규제나 검열의 여과장치를 거치지 않은 일본 폭력물, 에로물의 음성적 침투, 불법복제의 성행들의 부작용 등의 문제점이 생겨나고 있다. 또한 일부 유해한 문화만을 두고 판단하여 일본의 대중문화는 저질문화라는 왜곡된 문화 인식이 심어질 수 있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그러한 왜곡된 의식 때문에 우리는 우리 문화에 자극과 발전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일본의 고급 문화는 전혀 접할 기회를 잃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일본 방송 개방은 우리나라 방송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우선 더 이상의 표절은 불가능 할 것이라는 것이다. 표절문화는 방송 내부적으로는 기획력을 떨어뜨려 왔으며 대중문화 자체에 대해 악영향을 미쳐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 문화가 전면적으로 개방이 되면 그러한 문제는 원인 소멸과 함께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 있다. 표절한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것은 너무도 쉬운 문제가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이런 관행을 기묘한 묵인과 교활한 즐김으로 일괄하던 일본 방송 측도 저작권에 관해 문제화할 것임을 본격적으로 드러낼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 방송 측은 을 보이는 등 일부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특히, 전반적인 조사결과에 있어 고연령층(4·50대), 고졸 이하 계층, 농림어업 및 블루칼라 계층에 종사하는 종사자와 주부들이 일본방송 개방문제에 대해 저연령층(30대 이하), 대학 재학 이상 계층, 자영업 및 화이트칼라에 종사하는 계층과 학생들에 비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결과의 해석에 있어 주의를 요하고 이를 정책추진 과정에서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 방송위원회, http://www.kbc.or.kr/index.asp5. 일본 방송 개방에 대한 대응 방안 모색1) 외국의 방송 개방 선례전 세계적으로 방송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모두가 튼튼한 국가는 미국밖에 없다. 문화적 정체성이 강하고 프로그램이 질적으로 우수한 유럽의 경우에도 막강한 할리우드의 침투에 무력하게 무너졌다. 하물며 소프트웨어와 기반시설이 부족하고 정치적 규제의 논리로만 시장개방을 막아왔던 우리나 주변국가들로서는 방송시장의 개방은 더욱더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적인 잣대의 시장개방이나 절대적인 개방반대를 주장하는 것은 절박한 우리의 방송현실을 간과 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우리와 유사한 처지에 있는 아시아 각 국가들이 안고 있는 개방의 딜레마와 대응책을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의 경쟁 속의 보호 정책{) 정용준, 일본문화개방이 국내방송산업에 미치는 경제적 파급효과 , 동국대학교 멀티미디어 종합연구소 학술 세미나 논문집 , 1998, p. 2일본은 효율적인 시장개방전략을 통하여 90년대 초반까지 실패했던 뉴미디어 산업을 활성화시키고 자국의 프로그램을 아시아시장으로 수출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일본은 외국자본의 지분참여가 지상파 방송과 위성방송 채널공급업자(위탁방송사업자)는 20%, 종합유선방송국과 위성방송플랫폼사업자는 33%(전기통신사업을 겸업하는 케이블TV 시설에 대해서는 33%미만의 규제조항을 폐지)로 제한되어 있다(ASIAcom, 1998.
    경영/경제| 2005.01.01| 24페이지| 3,500원| 조회(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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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철학] 매트릭스의 철학적 논변 평가D별로예요
    Ⅰ. 서론감상문을 쓰기에 앞서...얼마 전 사이버 사회에 관한 전공 수업을 들으면서 교수님이 추천해 주신 영화 론머맨 을 본 적이 있었다. 성인의 몸이지만 지능은 여섯 살 꼬마에 해당되는 주인공이 어느 한 박사의 실험대상이 되어 결국 사이버스페이스로 사라진다는 이야기이다. 재미도 없었고 지루하기까지 했지만 이 영화가 내가 처음으로 접해본 사이버스페이스 영화였다. 론머맨 이 후 내가 다시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장르의 영화를 접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매트릭스 였다. 론머맨 에 대한 안 좋은 추억 때문에 '매트릭스'에 대한 기대는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론머맨 과는 수준이 틀린 독특한 시각효과로 스크린을 가득 채웠던 매트릭스 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었다. 매트릭스 1편에서 경찰의 습격을 받은 트리니티가 우아하게 공중으로 날아오른 뒤 순간 동작이 멈추고, 카메라가 360도 회전하여 그 모습을 잡아내는 장면, 네오가 스미스의 총알을 흐느적거리며 피하는 장면 등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다. 물론 각종 광고나 TV프로그램에서 보여져서 익숙해진 것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확실히 매트릭스는 눈이 즐거웠다. 홍콩영화의 와이어 스턴트를 이용하고 일본 애니메이션의 표현 기법을 차용한 액션연기는 지하철역에서 벌어지는 네오와 스미스 요원들의 결투장면에서 그 진가를 아낌없이 드러내주었다.이렇게 재미와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해서 매트릭스 를 봤던 나에게 매트릭스 에 베어 있는 철학적 측면에 대해 감상문을 써야하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매트릭스 를 본지 꽤 시간이 흘러서 기억이 가물가물했기 때문에 다시 봤지만 여전히 시각적 즐거움에 정신을 빼앗겨 철학적 측면을 중심으로 한 매트릭스 다시 보기 는 성공을 거두질 못하였다. 그래서 매트릭스 에 관해 여기저기서 자료를 찾아보았고 여러 사람들이 쓴 다양한 글을 읽은 후에야 그것과 관련된 장면과 대사들이 떠오르면서 매트릭스 의 철학적 모습을 알 수가 있었다. 또한 매트릭스 를 보고 철학적 모습을 찾아보지 못한 이유가 내가 우둔해서인지가? 라는 영화라는 분야에서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새롭게 제기하는 영화야말로 철학적인 영화라고 부를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철학적이지 않은, 철학적인 영화매트릭스 의 철학에 관한 사람들의 글 중에서 이와 비슷한 기준으로 매트릭스 를 바라보는 것이 있었다. 그 글은 위와 같은 기준에서 보자면 영화 매트릭스 는 전혀 철학적인 영화가 아니라는 내용을 담고있다. 1편부터 3편까지 어느 곳을 보더라도 이 영화 속에서는 영화란 무엇인가? 라는 문제의식이 발견되지 않으며, 또 이 영화 속에서 아무리 새로운 요소를 발견하려고 노력해도 기존의 할리우드 대형 영화들과 크게 구별되는 점이 없다는 것이다. 고작해야 기존의 공상과학(SF) 영화와 달리 무협 영화적 요소가 강하다는 정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매트릭스 가 보여주는 영화 보다는 말하는 영화 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매트릭스 는 오히려 과거로 돌아가는 반동적 영화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고 한다.확실히 매트릭스 는 긴 대사나 알 수 없는 스토리 등 텍스트적 요소가 전반적으로 영화를 지배했다. 그렇게 되면 자연적으로 영화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는 그 텍스트적 요소를 보충하여 보여주는 보조적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전부 3편으로 제작될 만큼 매트릭스 의 스토리는 장엄하고도 거대했으니 텍스트 요소의 과잉현상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 텍스트적 요소의 과잉이 여러 결과를 일으켰다. 이제까지 내가 봐왔던 영화들을 살펴보면 보통 난해한 영화는 대사나 설명 없이 영상 이미지를 나열했다. 일반적으로 관객들이 그런 영화를 접하게 되면 스크린에서 보여지는 온갖 이미지들을 머리 속에서 정돈하여 퍼즐 맞추듯이 맞추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다분히 여러 철학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난해하다는 매트릭스 는 정반대이다. 대사가 길게 늘어지고 스토리가 그 수를 더해갈수록 보는 이는 더 어지러워진다. 나는 매트릭스 1편보다는 2편이 더 난해했으며, 3편은 그 중간정도의 난해함을 느꼈다. 1편과 3편에 비해서 2편의 대사 혹은에서 사라지고 제 기능을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다. 이런 맥락으로 보면 네오는 완전히 삭제되지 않고 잠재적인 프로그램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결국 네오 자신이 매트릭스 안의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그가 모빌 애버뉴 에 남게 된 것, 이것은 곧 그가 곧바로 제거되지 않고 휴지통에 보관되어 있다는 것이고 이는 네오가 다시 프로그램으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전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모피어스의 믿음대로 네오가 현실세계의 예정된 구원자라면 시온의 세계 역시 매트릭스와 다를 바 없는 예정된 세계로 해석할 수 있다.이렇듯 매트릭스 는 보는 사람의 마음대로 평가가 되어질 수 있다. 영화가 서로 모순된 해석,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얼마든지 열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철학적 관심을 일으키는 가장 큰 이유는 여기에 있다. 즉, 무수히 많은 철학적 주제들을 담고 있다는 것보다 매트릭스 를 통해 어떤 철학적 논변이 가능하기 때문이다.매트릭스 의 철학에 관한 다양한 논변영화 매트릭스 를 통한 철학적 논변은 매우 다양하다. 그 중 비평가 진중권씨는 영화 매트릭스 의 철학을 실재론과 관념론, 결정론과 자유의지로 나누어 보고 있다. 먼저 실재론과 관념론측면에서 진중권씨가 본 매트릭스 의 철학을 알아보자. 그는 매트릭스 1편에서 거대한 수조 속에서 배양되는 인간 클론들의 충격적인 영상을 보고, 곧바로 미국 철학자 파트남의 사유실험이 머리에 떠올랐다고 한다. 파트남의 사유실험은 외부세계의 존재에 관한 회의론이라는 고전적인 문제 를 새로이 제기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하나의 두뇌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지 그는 곧 이 운명을 전 인류에 지워 모든 인간이 통 속에 들어 있는 두뇌라고 상상 하더니, 결국은 자기가 묻고자 했던 그 질문을 던진다. 정말로 우리가 통 속에 들어 있는 두뇌라고 한다면 그와 같은 사실을 우리가 말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가? 대답은 아니오 이다. 이 물음 자체가 모순, 즉 스스로 논파하는 가정에 입각해 있다는 것 이다.진중권씨는 그 역없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며, 손으로 만지는 감각을 가지고 세상에 대해서 느끼고 아는 나의 존재에서 시작해서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 현재까지의 인류가 일구어낸 모든 문명까지 진짜가 아니라 조작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쉽게 받아들일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아니, 혹시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에는 이 세상이 너무 생생하기 때문이다.다음으로 결정론과 자유의지 측면에서 진중권씨는 기계들의 도시로 향하는 네오의 모습은 예수의 모습과 다름없었다고 한다. 네오는 시온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전쟁이 끝난 뒤 모피어스는 전쟁의 끝을 선포하는데 이는 결국 매트릭스 가 가진 기독교적 세계관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진중권씨는 이때만 해도 아직 가상과 현실의 구별이 존재했다고 한다. 선택은 기껏해야 빨간 약과 파란 약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문제였고 인간을 구하려고 네오는 행복한 가상을 포기하고 현실의 비참함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2편에서는 이 선택마저 미리 입력된 프로그램일 수 있음을 시사했는데 이로써 1편의 소박한 해방 의 서사는 흔들린다고 그는 말한다. 만약 네오의 선택마저 미리 입력된 것이라면? 그리하여 매트릭스 밖의 현실도 또 하나의 매트릭스라면? 이제 그것은 무엇을 선택하느냐 의 윤리학적 문제가 아니라, 도대체 선택이란 걸 할 수 있느냐 의 존재론적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제기되는 것은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대립 이라는 고전적인 물음이라는 것이다.그러나 꼭 그렇게 대립 구도의 측면으로 매트릭스의 철학을 보기에는 너무 암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름지기 영화는 권선징악의 내용을 담고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재미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으로 매트릭스 를 보면 이 매트릭스 시리즈는 근본적으로 개별 자아가 능동적 인식을 통해 섭렵한 개념과 신념에 따라 세상이 구축되고 그의 의지로 세상이 바뀌어갈 수 있다는 '주체적이고 자발적 의지의 힘'에 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희망적 영화인 것이다까지 겪은 현실과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의심한다. 모피어스가 말한 진실을 쉽사리 믿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피어스가 건네는 빨간 약을 선택하여 먹은 후부터 신념과 결단과 의지의 행위를 걸쳐서 변신의 변신을 거친 네오는 결국 도덕경에서 말하는 으뜸가는 인간으로 거듭난다. 도덕경에서 말하는 으뜸가는 인간이 도를 들으면 부지런히 지켜 행하는 것과 같이 모피어스가 말하는 진실을 받아들인 네오는 끊임없는 의문과 굳은 의지와 결단으로 구원자인 그 가 된 것이다.남을 알려고 하는 자는 겉만을 아는 자이고, 자기를 알려고 하는 자는 속을 아는 자이다. 남을 이기려는 자에게는 힘이 있고, 자기를 이겨내는 자는 강하다. 만족할 줄 아는 자는 부유하고, 자기를 이겨내는 힘을 행하는 자에게는 뜻이 있다. 도덕경 제 33장 변덕(辯德)의 구절이다. 매트릭스 에서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앞으로 전진하는 네오의 대립되는 역으로 스미스가 나온다. 그러나 실상 스미스는 네오와 대립되는 역이 아니라 또 다른 네오이다. 네오의 어두운 면을 가진 것이 스미스인 것이다. 네오가 몸속으로 뛰어들어 해체시켰던 스미스 요원은 네오의 일부를 덮어쓰기 형식으로 복제해 너 덕분에 자유를 얻었다. 고 말한다. 그러나 매트릭스의 프로그램인 스미스가 네오로 인해 인간성을 갖게되자 매트릭스는 스미스를 추방한다. 결국 도망자 버그 가 돼버린 스미스 요원은 무차별 복제로 자신의 힘을 키워간다. 스미스가 자신의 힘을 키워 가는 원동력은 물론 네오를 향한 복수심이다. 스미스에게 복수심의 대상이자 또 다른 자신인 네오는 생각의 대상이 아니라 이겨야 할 대상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네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을 하면서 또 다른 자신인 스미스에 대해서도 알고자 한다. 매트릭스 3편에서 스미스와의 마지막 대결을 벌이는 와중에도 네오는 자신과 스미스에 대해 생각을 한다. 그리고 스미스가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네오는 스미스에게 흡수되는 방법을 통해서 스미스를 이겨낸다. 자신을 알고자 하고다.
    인문/어학| 2004.06.17| 11페이지| 3,000원| 조회(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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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의 유태인 대학살 평가A+최고예요
    시작하면서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등에서 전기와 가스 등으로 유태인 및 피점령 국민들에게 행한 대량 학살. 전후 이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근대문명에 배반하는 파시즘의 야만성이 강조되었다. 약 600만명으로 추정되는 유태인이 학살당했고 소련군포로, 반나치운동가, 레지스탕스, 국내 정치범등이 살해당했다.그러나 이와 같은 무저항의 국민을 학살함으로써 지배를 유지하는 것은 체제여하를 막론하고 체제대립이 격화되는 경우나 전쟁시 때때로 되풀이되었다. 근대 제국주의전쟁에서는 민족주의·쇼비니즘을 이용해서 적대국민을 열등·극악시한 결과 자주 대량살육이 행해졌다.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일본의 대량학살과 생체실험등을 통하여 과학과 기술로 문명이 발전한다고 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야만적인 본능이 감소한다고 말할 수가 없으며 종전 이후에도 다양한 형태의 대량학살은 지속되었다.하나의 국가 혹은 체제, 집단의 이익에 부합이 된다면 언제든지 이른바 "최종계획" 은 다시 일어날 수 있으며 개인의 생각에 따라서 수백만의 생명이 사라진 것이 단지 통계상의 숫자로만 여겨지는 무감각한 세상이 앞으로도 재현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홀로코스트는 개인과 소수의 편견 그리고 정권의 유지를 위해 일어난 비극일 뿐 어떠한 이론과 논리로도 설명될 수 없는 잔혹한 행동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상은 반복되고 있으며 언제라도 재현될 가능성은 존재한다.이러한 이유로 유대인 대학살이란 역사를 되돌아 보려한다.1.나치나치의 근본사상-국가주의-반 민주주의-권위주의-민족주의본래 나치의 근본사상은 국가주의적 경향, 중산계급과 지식인의 반민주주의적·권위주의 적·민족주의적 경향, 특히 군부·관료·경영진·교회·교육계 등 사회 일반에 통하는 권 위주의적·군국주의적 전통과 강렬한 국가주의 사상이었고, 나치스의 지지자로서는 항상 몰락의 위협을 받고 있던 중산계급이 중심이었으며, 거기에 다시 군인으로 복원된 병사· 장교와 중소농민, 노동조합에 불만을 품은 노동자·점원·실업자 등이 참가하여 나치스의 대중적계급투쟁의 배격, 강대한 독일의 건설, 군비의 대확장과 군국주의적 국가건설, 독재 정치의 수립, 경제발전, 민주공화제의 전복, 독일의 유럽 제패 등의 주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치스를 지지하였다.변질- 일인독재체제: 히틀러와 나치를 중심으로 독재체재 확립- 반 유대주의: 가장 하등한 민족인 유대인 말살해야 한다2.유대유태인은 동화할 수 없는 민족으로 게르만 민족에 대해 구제에의 길을 가로막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히틀러의 생각이었다. 따라서 독일인의 유태인과의 결혼은 금지되었 으며, 또한 유태인은 행정부, 법조계, 은행, 출판계로부터 기피 당하거나 배제되었으며 마침 내 1935년에는 뉘른베르크법에 의해 모든 유태인들이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말았으며, 독일 민족지상주의와 인종론. 즉, 게르만족은 인류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종족이기 때문에 다른 민족을 지배할 사명을 가지고 있으며, 이와 반대로 가장 열등하고 해악적인 인종은 유대인 으로, 그들은 아무리 환경을 개선하고 교육을 실시하더라도 그들의 천성적인 열등성과 해 악성은 개선되지 않으며, 항상 주위환경을 부패시키거나 또는 해악을 만연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우수한 민족은 그들의 열악성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을 격리시키거나 또는 절멸시켜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이후 1939년 전쟁이 발발하자 반 유대적인 나치의 정책은 한층 강화되었다. 독일 내의 유대인뿐 아니라 유럽의 유태인들을 게토라는 지역에 가두고 대량 학살을 한다든가 굶겨 죽였다. 또한 많은 유태인들이 강제수용소에서 독가스에 의해 질식사 하거나 화형을 당했다.- 전개 과정: 뉘렌베르크 법 => 수정의 밤 => 유대인 강제이송 =>유대인 대학살 => 해방- 노란별을 단 유대인유대인을 배척하기 위해 나치는 강제적으로 유대인들에게 별을 달게 하였다.- 유대인 상점에 표식이 붙기 시작했으며, 이 때부터 점차 죽음의 서곡이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게토: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40년 이후에는 나치스 독일이 폴란드 등 그들의 점령지 곳곳에 치스의 게토는 중세의 게토를 부활시킨 것처럼 보였으나, 인종론에서 발상한 것이어서, 중세의 게토와는 다르다. 이 유대인 거주지역은 보통 벽이 둘러지고 그 바깥 지역으로는 저녁부터 아침까지 통행이 금지되었으며, 외출할 때는 특정한 모자 또는 두건을 쓰고 윗저고리에는 황색의 표지를 하였다.3. 홀로 코스트(Holocaust)일반적으로 인간이나 동물을 대량으로 태워 죽이거나 대학살 하는 행위를 총칭하지만, 고 유명사로 쓸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스 독일에 의해 12년간(1933~1945) 자행된 유대 인 대학살을 뜻한다.600 여 만명에 이르는 유태인들이 가스와 전기 생체실험 등으로 학살당했다.1) 아우슈비츠 수용소폴란드 남부 비엘스코주의 도시. 크라코프에서 서쪽으로 50㎞ 지점에 있다.폴란드의 원래 지명은 오슈비엥침이다. 독일 최대의 강제수용소이자 집단학살수용소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중 나치스는 이곳에서 250만∼400만 명의 유대인을 살해했는데 이 때문에 아우슈비츠라는 이름은 나치스의 유대인 대량학살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1919년 폴란드가 독립함으로써 폴란드에 귀속되었고, 세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39년 독일군에 점령되었다. 1940년 4월 27일 하인리히 히믈러가 첫번째 수용소 건립을 명령했으며, 같은 해 6월 14일 최초로 폴란드 정치범들이 수송되어왔다. 히틀러의 명령으로 41년 대량학살시설로 확대시켰다.2) 다하우 수용소아돌프 히틀러의 총리 취임 약 5주 뒤인 1933년 3월 10일 독일에 만들어진 최초의 나치 집단수용소.독일 뮈헨 근교 북쪽으로 약 16㎞ 거리의 다하우 시(市)소재. SS가 조직한 수용소들의 모델이 되었으며 훈련 중심지였다.제2차 세계대전 동안 약 150개에 달하는 지부 수용소가 남부 독일과 오스트리아 여러 곳에 세워졌고 이들은 본부 수용소와 합쳐 다하우라 불렸다. 이 남부 조직과 함께 부헨발트에 중부 수용소, 작센하우젠에 북부 수용소가 세워졌으며 적어도 16만 명의 죄수가 본부 수용소를, 9만 명이 지부를 거쳐갔다.질병, 죽었다. 의학실험에 강제로 사용케 하기 위해 최초로 실험실을 세운 가장 중요한 수용소였다. 다하우수용소에서 독일 공군의 항공의학연구소가 실시한 고압(高壓)과 저온(低溫)이 인체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생체실험이 실행되었다. 이 실험의 책임자 슈트루크홀트는 뒤에 미국에 건너가 미국 공군의 각종 우주의학연구 프로젝트에 참가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계속된 실험과 혹독한 생활환경으로 다하우는 가장 악명 높은 수용소가 되었다.3)베르겐_벨젠 수용소프로이센 하노버에 있던 첼레에서 북서쪽으로 약 16㎞ 떨어진 베르겐과 벨젠 마을 근처에 있었다. 1943년 7월 설립 당시에는 전쟁포로 수용소 겸 이송 중인 유대인의 임시 수용소로서 약 1만 명 정도를 수용할 계획이었으나 전쟁 말기에는 4만 1,000명을 수용했다. 가스실은 없었으나 여러 독일 수용소 가운데 가장 비참하고 지저분한 곳으로 3만 7,000명에 달하는 수감자가 굶주림·과로·질병으로 죽었으며 시체는 집단매장했다.안네의 일기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안네 프랑크도 1945년 3월 여기에서 죽었다. 1945년 4월 15일 영국군의 점령으로 해방된 최초의 수용소로서 즉시 이곳의 참상이 알려졌다. '벨젠의 짐승'으로 불렸던 나치 친위대 사령관 요제프 크라머는 영국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교수형을 받았다.4)부헨 발트 수용소최초이자 최대의 수용소 중 하나로, 당시 독일 튀링겐에 있던 바이마르 북서쪽에서 7㎞가량 떨어진 숲 언덕에 있었다. 1937년 세워져 북쪽으로는 작센하우젠, 남쪽으로는 다하우에 있던 집단수용소를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제2차 세계대전 때 2만여 명을 수용했고, 그들 대부분은 근처 공장에서 교대로 쉬지 않고 12시간을 노예처럼 일했다. 가스실은 없었지만 달마다 수백 명이 질병·영양실조·과로·구타·처형 등으로 죽어갔다. 무장 나치 친위대 위생학연구소의 한 부서인 티푸스와 바이러스 연구부가 여기에 있어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바이러스 감염과 백신 효과에 대한 생체실험을 했다.엄격한 규율로 운영되었으며, 1939~45년에로 악명을 떨쳤다.대학살! 아우슈비츠 수용소사진 설명1. 수용소의 열차 정문과 수용소에 내린 유대인들몇 년동안 유럽의 모든 도시에서 오는 열차들은 이 문을 통과했다. 모든 유대인들은 이 문을 통과했고, 그 죽음의 수송열차는 다시 빈차로 돌아갔다.수송되어 오는 동안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고, 지쳐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 까지 모두 시체로 간주하고 차곡차곡 쌓았다. 화차는 수송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깨끗이 청소되어 다시 보내졌다.2. 고압선도망치려다 고압선에 걸린 채로 죽은 유대인 포로.이 고압선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이 도망치려다 죽어 나갔다.3. 수용소의 내부.소나 돼지 보다 못한 위생시설과 상태. 처형자들로 하여금 양심의 가책을 덜 느끼게 만 들어주기 위한 일종의 수단이 됨.가장 오른쪽 사진: 아래 두 번째 칸 노벨평화상을 받은 엘지위젤, 그가 만든말이 홀로코 스트(대학살) 이었다.학살 과정1)기차로 수용소까지 이송 됨2)옷,보철기구,안경,신발 심지어 머리까지 잘려서 수용소로 이동3)일차 선별 과정(비교적 건강한 사람, 젊은 여성 제외 노동에 충당, 나머진 가스실 행으 로 결정)4)가스실 가는 길, 실제론 목욕을 하러 간다고 하였다.(처형자들은 가스 샤워라 하였다)5)가스실에 최대한 압축한다.6)전멸 후 시체에서 금니와 반지 등을 수거7)시체들을 시체 소각소로 보내 소각한다.▷ 매일 이러한 죽음의 작업이 연속된다.※ 기타 사진 설명 생략-가스샤워: 실제로 처형자들은 가스실을 가스 샤워라 불렀는데 방위에서 나오는 뿌려지는 가스에 샤워를 하는 듯 하다고 해서 그렇게 불려졌던 것 같다. 죽기 전 목욕탕 (샤워실)로 간다고 말하는 처형자들의 말이 거짓말은 아님이 분명하다.-시체를 소각하는데 소각로가 부족하여 광장에 시체를 모으고 기름을 뿌려 화장하기도 하였다.4. 생체실험- 생체 실험이란 사전 정의에 의하면 살아 있는 몸을 사용하여 실험하는 일이라 정의되어 있으며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731부대와 독일의 나치가 생체 실험을 자행했었다.생체실험의 결과로 독일과 일본.
    사회과학| 2004.05.25| 6페이지| 2,000원| 조회(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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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의 축구문화
    ◈ 주제선정 배경◈{1999년부터 붉은 악마 활동을 하면서 축구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았다. 특히나 국가대표간의 경기에 대해서는 거의 빠지지 않고 전국을 누비며 다녔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때 기적과 같이 4강에 진출하게 되고 그 경기에서 94년 미국 월드컵 예선에서 우리에게 어이없고 아쉬운 패배를 안겨주었던 독일을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독일 팀의 실력은 94년의 아쉬운 패배를 경험했던 낡은 독일 전차의 실력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우리는 패배하게 되고 졌지만 후회없는 월드컵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이때 보았던 독일축구의 모습과 얼마안되는 독일 서포터의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이번 수업에 맞추어 독일 축구에 대한 소개를 준비하게 되었다. 함께 발표하는 팀에서 독일의 프로축구인 분데스리가를 발표함으로 이 보고서에서는 독일 국가대표 경기를 중심으로 독일 축구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축구의 역사 ◈BC 7∼6세기 무렵 고대 그리스시대에 행한 에피스키로스라는 공을 차고 던지는 간단한 형식의 게임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지며, 고대 중국에서는 이보다 먼저 축구형식의 공놀이가 행해졌다는 설도 있다. 그 뒤 로마시대에는 군사경기로 널리 보급되었고, 로마가 영국을 침공하였을 때 하르파스툼이라는 경기를 보급시켜, 이것이 영국에서의 근대 축구의 기원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최초의 축구경기는 217년 영국에서 성령강림절의 화요일에 더비에서 개최된 경기로서, 로마군의 공격을 막아낸 것을 기념하는 축제의 일환으로 행해졌으며 1175년에 이르러 영국에서는 축구경기가 연례행사로 열렸다.축구가 현재와 같은 스포츠로서의 형식을 갖추게 된 것은 1800년대라고 할 수 있다. 1800년대 영국에서의 풋볼은 무질서한 가운데 행해졌기 때문에 각 그룹들은 통일된 경기규칙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863년 10월 26일 풋볼 그룹의 대표자들은 런던에 모여 제1차 회의를 가졌으나 회의는 부진하였다.그러다가 같은해 12월 8일 개최된 제6중간 해에 4년마다 아마추어나 프로 선수 모두 참가하여 열리는 월드컵축구대회, 월드컵여자축구대회,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등이 있다.축구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단체경기로서 관중의 호응도도 높은데, 1969년에는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사이에 '축구전쟁(Soccer War)'이 발발하기도 하였으며, 특히 극성스러운 영국 응원단(훌리건)이 일으키는 집단난동이 잘 알려져 있다.◈ 독일축구역사 ◈{축구가 영국 이외의 지역으로 퍼지며 큰 인기를 끌자 독일에서도 축구 열기로 온 나라가 달아올랐다. 1900년에 독일축구협회(DFB)가 발족되었으며 4년 후에 독일은 FIFA의 정식 회원국이 되었다.20세기 초 바이에른 뮌헨, FC샬케 04와 같은 축구 명문클럽들이 잇달아 창단 되었지만 축구에 대한 인기는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한동안 주춤하였다가 전쟁 이후 다시 높아졌다. 이에 따라 1919년 당시 15만 명이던 축구 선수 등록 수가 1932년에는 무려 백만 명을 넘어섰다.1934년 독일은 FIFA 월드컵™에 처음 출전하였으며 데뷔 무대에서 3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축구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독일에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하였다. 1954년 프리츠 발터가 이끄는 독일 대표팀은 강호 헝가리를 물리치고 처음으로 FIFA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독일(당시의 서독)은 진정한 세계 축구 강국으로 급 성장하였다.{독일이 FIFA 월드컵 역사상 16강에 진출하지 못했던 경우는 단 세 번에 불과했다. 1930년과 1950년 월드컵에는 독일 측에서 불참한 경우였고 1938년에는 1라운드에서 스위스에 패해 탈락하고 말았다.1972년 UEFA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독일은 전설적인 프란츠 베켄바우어와 게르트 뮐러를 중심으로 1974년 자국에서 개최한 FIFA 월드컵에서 다시 한번 우승을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다. 특히 이 대회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FIFA 월드컵에 출전한 동독이 1라운드에서 서독을 1 대 0으로 물리치면서 주목을 끌기도 하였아 선전했지만 아깝게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이때 골키퍼인 올리버 칸은 인상깊이 남아있다.현재 독일은 2006년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주요 전적-- 1954, 스위스 FIFA 월드컵 우승-- 1974, 서독 FIFA 월드컵 우승-- 1990, 이탈리아 FIFA월드컵 우승-- 1966, 잉글랜드 FIFA 월드컵 준우승-- 1982, 스페인FIFA 월드컵 준우승-- 1986, 멕시코 FIFA 월드컵 준우승{-- 2002, 한일 FIFA 월드컵 준우승-- 1934, 이탈리아 FIFA 월드컵 3위-- 1970, 멕시코 FIFA 월드컵 3위-- 1958, 스웨덴 FIFA 월드컵 4위-- 1962, 칠레 FIFA월드컵 8강-- 1994, 미국 FIFA 월드컵 8강-- 1998, 프랑스 FIFA 월드컵 8강-- 1972, 벨기에 UEFA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980, 이탈리아 UEFA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996, 잉글랜드 UEFA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976, 유고슬라비아 UFEA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준우승-- 1988, 서독 UEFA 유럽축구선수권대회 4강-- 1992, 스웨덴 UEFA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준우승◈ 독일 대표팀 소개 ◈{이 름포지션소속팀미로슬라프 클로세FW카이저슬라우테른카르스텐 양커FW뮌헨마르코 보데FW브레멘올리버 비어호프FWAS 모나코게랄트 아사모아FW샬케베른트 슈나이더MF레버쿠젠카르스텐 라멜로브MF레버쿠젠옌스 예레미스MF뮌헨토르스텐 프링스MF브레멘미하엘 발라크MF레버쿠젠크리스티안 치게DF토튼햄 하스퍼토마스 링케DF뮌헨{크리스토프 메첼더DF도르트문트마르코 레머DF베를린제바스티안 켈DF도르트문트외르크 뵈메DF샬케프랑크 바우만DF브레멘라스 리켄MF도르트문트디트마어 하만MF리버풀 한스외르크 부트GK레버쿠젠올리버 칸GK뮈헨올리버 노이빌레FW레버쿠젠◈ 독일의 축구가 흥행하는 이유 ◈종주국이 유럽이고, 서민층의 참여의식, 연고지 제정착, 100여 년이 넘는 축구역사, 서포팅 문화, 축구의 이벤트 및 생활화, 대륙간의 축구교류, 축다양한 소비층을 가지고 있다.그리고 급속히 발달하는 경제 전쟁시대 이기 때문에 스포츠에 특히 축구팀에 스폰서 하는 기업이 엄청나게 많다. PSB아인트호벤 구단을 소유한 네덜란드 필립스사와 같은 기업이 있기도 하지만 그래서 기업의 미지를 높여 물건을 팔아먹기 위해서 좋은 팀을 선정해서 스폰서를 서 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축구가 계속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 독일인, 독일축구 ◈겨울에도 파란 잔디 위에서 매일 펼쳐지는 축구 경기는 독일 사람들의 힘의 원천이고 가장 즐기는 국민운동이다. 각 도시별로 대표팀을 만들고 1부 리그, 2부 리그로 나뉘어서 계속 선두경쟁을 벌인다. 각 도시마다 수많은 축구팀이 있어 계속해서 경기를 벌인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밤중에 제일 환한 곳이 축구장이고 사람이 제일 많이 모이는 곳도 축구장이며, 제일 뜨겁고 관심이 많은 화제도 축구에 관한 것이다. 유명한 정치가보다도 축구선수가 더 인기 있는 스타이고, 심지어 자기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담담해도 자신이 응원하는 축구팀이 경기에 지면 울고불고 난리가 난다고 한다.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 열광 그 자체이다. 선수들이 두꺼운 옷을 입고 경기를 할 정도로 추운 날에도 응원자들은 그 뜨거운 열기로 웃옷까지 벗고 열광한다. 축구경기가 있는 날에는 그쪽 방향의 지하철은 가능한 한 피하는 것이 좋다. 홈팀이 이겼을 때야 별 문제가 없지만 졌을 때는 괜히 화를 불러들인 소지가 있다. 그래서 그런 날들은 경찰들이 지하철역마다 사나운 셰퍼트의 입에 마스크를 씌우고 돌아다닌다고 한다.축구경기를 보면 이기는 팀이 있으면 또 반대로 지는 팀이 있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경제적 사정 역시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쁠 때도 있기 마련이다. 독일의 경우 통일이 된 후에 경제가 굉장히 안 좋아졌다. 하지만 축구경기가 있는 날이면 그 도시 주변에 위치한 호텔까지 빈방이 없을 정도다. 또 어떤 도시는 자기 지역 팀이 이기면 많은 주점들이 그 날의 술값을 절반으로 내리는 경우도 있다. 어떤 주점은 맥주 한 잔씩을 무료로 의외로 우리 선수들이 잘했던 것이다. 그래서 후반전에 3:2가 되었고, 오히려 독일 님이 반칙을 해서 우리가 패널트킥을 하나 받을 수 있었는데 심판이 모르는 척 했다. 하지만 독일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했기 때문에 실황 방송 중계자와 해설자도 한국과 독일의 경기는 사실상 비긴 것이라고 평가했다.◈ 독일의 유명 프로축구팀 ◈[ 독일 축구의 전설, 바이에른 뮌헨 ]{63~64 시즌을 시작으로 막을 올린 이래 41번째 시즌을 맞고 있는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많은 우승 회수를 자랑하고 있음은 물론 가장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클럽이 바로 바이에른 뮌헨이다.분데스리가의 정식 출범 이전인 1932년에도 한 차례 우승 경력이 있어 총 18회의 우승을 자랑하고 있기도 하다. FC 바이에른은 축구 클럽 외에도 농구팀, 여자 축구팀, 핸드볼, 탁구 팀 등을 산하에 두고 있는데 FC 바이에른 스포츠클럽에 가입되어 조직적으로 서포팅을 하는 인원들만 9만3,000명에 이르며, 이들 중 축구팀에만 8만여 명이 소속되어 있어 가장 큰 규모의 팬 층을 자랑하고 있다.독일 축구의 황제라 불리는 프란츠 베켄바워가 구단의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왕년의 명 스트라이커 출신인 칼-하인츠 루메니게가 구단 의장을 맡아 선수 출신의 경영진이 프런트를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들은 각각 70년대와 80년대 초반까지 팀의 간판으로 활약하던 대표적인 선수들이었다.바이에른은 딱히 전성기라고 말할 만한 시기를 꼽기 힘들 정도로 리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해 왔다. 더비 라이벌로 잘 알려진 1860 뮌헨이 분데스리가 출범 멤버로 이름을 올리면서 리가 출범 이후 2년 뒤인 65~66 시즌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분데스리가에 뛰어들게 되었다. 이후 바이에른은 단 한번도 강등되지 않고 근 40여 시즌을 1부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다. 첫 시즌에 3위를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킨 바이에른은 68~69 시즌에 첫 우승을 이루어낸 뒤 70년대 초반 3차례의 연속 우승을 이루어 내는 등 리가의 강자로 자도다.
    예체능| 2004.05.25| 8페이지| 2,000원| 조회(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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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문화] 독일의 음식과 음식문화 평가C아쉬워요
    Ⅰ. 독일음식의 개요1. 독일 음식의 특징(1) 독일 고유의 특징1 소시지, 감자, 그리고 맥주- 독일의 음식은 주변 국가인 이탈리아의 스파게티나 프랑스의 화려한 음식들에 비하여 특별히 훌륭하다거나 내세울 만한 음식은 없다. 이러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독일의 불리한 지리적 위치와 독일 특유의 음식 변천사가 그것이다. 우선 독일은 일조량이 적고 산림지역이 많은 지리적인 여건으로 인해 고기 및 곡식이 부족하고, 해산물 또한 그리 풍부하지 못한 편이다. 그리고 독일은 역사적으로 16개 주들의 요리가 각기 서로 다르게 변화되어왔기 때문에 현재 ‘전형적인 독일음식’이나 ‘국민음식’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연유로 독일인들은 과거로부터 돼지고기, 소고기, 감자, 호밀 등을 즐겨먹어 왔는데, 현대에 와서 독일인이 있는 자리에 꼭 빠지지 않는 음식이 있다면 바로 소시지와 감자, 그리고 맥주이다. 즉, 다양한 먹을거리의 부족으로 인해 이를 대신했던 음식들이 오늘날의 독일 음식 문화의 특징을 만들어 냈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은 빵만 먹고 살 수 없다. 반드시 소시지와 햄이 있어야 한다’라는 독일의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시지는 독일 사람들에게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음식이 되었으며, 이들 음식은 대부분의 독일 가정 식탁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른다.2 재료의 원맛을 중시- 어떤 음식이든 본고장의 맛을 능가할 만한 것은 없겠지만, 특히 독일에서 맛보는 소시지와 햄은 특별하다. 어떤 것을 먹든 육질 본래의 쫀득쫀득함을 느낄 수 있어 개인적으로 입에 맞는 것을 만나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한다. 이것은 재료의 원맛을 중시하는 독일 음식문화의 특징에서 나온 것이기도 한데, 햄이나 소시지의 끈기를 내기 위해서 낮은 급의 고기를 섞지않으며, 화학조미료나 착색제, 방부제 같은 것 또한 사용하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3 따뜻한 음식을 선호- 독일인들은 찬 음식보다는 더운 음식을 즐기며, 특히 점심시간에 따뜻한 음식을 먹는 것을 선호한다. 특히 냄비에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반해, 독일인들은 점심식사를 푸짐하게 한다. 불에 조리한 음식을 먹기 때문에 이를 따뜻한 음식(Warmes Essen)이라고 하며, 육류로 된 주요리에 감자, 쌀, 국수, 야채 샐러드 등으로 식사가 구성된다. 점심식사는 대개 아침과 저녁식사에 비하여 양념이 강하고 양도 엄청나게 많은 편이다.(3) 저녁식사- 저녁은 밀로 만든 하얀 빵은 영영가가 없다고 하여 각종 잡곡을 넣은 빵을 먹는데, 이 빵에 소시지, 햄, 치즈 등을 곁들여 먹는다. 저녁은 점식과 같이 불에 조리된 음식을 먹지 않기때문에 찬 음식(Kaltes Essen)을 먹는다고 한다.3. 식사예절 및 식사법(1) 공통적인 식사예절 및 식사법- 어디서든 식사를 할 때는 공통적으로 지켜야할 식사예절이 있는데, 이는 우리 나라의 것과 비슷하다. 우선 음식을 먹을 때는 소리를 내어 먹으면 안되는데 특히 커피, 홍차 등을 후루룩 소리와 함께 마시게 되면 상대방이 매우 불쾌해 한다. 또한 식사중 트림이나 헛기침, 방귀 등의 소리가 나면 안된다. 반면에 식사 중이나 식사 후 코를 푸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데 이는 우리 나라와는 다른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식사법은 식사는 포크를 왼손에, 나이프를 오른속에 쥐고, 식사 중 바꿔지지 않는다. 양손은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식사시에 왼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므로 왼손은 식탁 위에 살며시 올려놓아야 한다. 특이한 점은 감자와 생선을 자를때는 나이프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과 고기를 자를 때 한 번에 잘라놓지 않고 그 때 그 때 잘라서 먹는다는 점이다.(2) 가정집- 가정집에 식사를 초대받았을 시에는 방문 전 사전에 알려야 하며 시간을 정확히 지켜야 한다. 초대된 손님은 종종 여주인에게 꽃과 함께 선물을 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포장은 풀어서 건네며 꽃은 장미나 카네이션은 삼가도록 한다. (붉은 장미는 연인을 위한 선물로만 사용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방에 들어가서는 주인이 앉으라고 할 때까지 기다린다. 또. 이것은 반죽속에 덩어리 고기를 넣어 만들기 때문에 zungenwurst에는 혀, Berliner rotwurst에는 베이컨이 들어 있다. 제품에 따라 슬라이스, 혹은 발라먹는 형태이며 데우지 않고 그냥 차게 소비된다. 독일의 소시지는 크기도 다양하여 새끼손가락처럼 가는 것부터, 어른팔뚝 만한 것, 등 다양하다. 또한 미국이나 우리 나라처럼 빵에 끼워서 핫도그 등의로 즐기는 경우는거의 없고, 소시지자체의 맛을 즐긴다. 왜냐하면 간이 짜기 때문에 소시지를 한 번 먹고, 빵 한번 먹고 하는식으로 먹는다. 주로 그냥 먹을땐 겨자를 잔뜩찍어서 먹고, 각종양념을 하는 것 들도 있다. 독일에서는 소고기가 돼지고기보다 비싸기 때문에 소고기 소시지가 돼지고기 소시지보다 고급으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소고기로 만든 소시지는 상대적으로 퍽퍽하기 때문에 주로 돼지로 만든 것을 즐겨 먹는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종류의 소시지는 독일에서 볼 수 있다.(2) 소시지의 종류(82종조사)1)Angburgerwurst조분쇄 돈육 및 베이컨을 각종 양념과 잘 섞어 48시간동안 냉장한 후 돈장에 충전하고 3시간 동안 진한 냉훈을 하고 6-8주간 건조한다.2)Augsburgerwurst돼지고기를 거칠게 분쇄하고 지방을 사각으로 썰어 양념과 혼합한 후 천연 케이싱에 충전하여 일간 풍건하고 가볍게 훈연한 것. 삶아 먹는다.3)Bavarian독일의 전형적인 데친 소시지로서 돼지고기와 송아지 고기로 만들며 후추가 많이 들어가고 마늘과 골파는 꼭 들어가며 24시간 풍건시킨 후 온훈을 한다. 삶아 먹는다.4)Berliner Rotwurst가열 소시지(Kochwurst)로서 Rotwurst는 흑색 pudding의 한 종류이다. 색깔이 검붉고 후추가 들어가며 거칠게 간 고기와 베이컨 조각들이 들어간다.5)Bierschinken데친 소시지로서 단면에 피스타치오나 햄 지방의 조각들이 보인다. 직경이 크고 일반적으로 차게 먹는다.6)Bierwurst양념이 강하게 된 돼지고기 소시지이다. 일반적으로 조직이 한다. 지금은 순 소고기, 혹은 소고기와 돼지고기의 혼합 제품들이 생산된다.22)Frankfurt Tongue돼지 다리육을 조분쇄하여 염지를 하고 양념과 섞은 후 사각으로 썰은 혀와 피스타치오를 혼합한 후 소 창자에 충전하여 삶아 익힌다. 그리고 참나무 연기로 훈연한다.23)Gefullter Gansehals거위 간 소시지. 거위 간과 돼지고기 그리고 계란과 빵 부스러기를 양념과 함께 반죽을 만들어 거위 목 케이싱에 충전하여 거위 지방으로 튀긴다.24)Gehirnwurst돼지 골 1: 돼지고기 및 지방 1을 이용하여 양념과 함께 반죽 후 돈장에 충전하여 삶아 익힌다.25)Grutzewurst돼지 내장을 10 cm 길이로 절단하고 향기로운 국물로 익힌 곡류 가루와 잘 섞은 다음 양념을 하여 데친다.26)Gutsleberwurst거칠게 분쇄한 간과 고기 조각 및 지방 조각을 함께 반죽으로 만들어 제조한 가열 제품.27)Hamburger Gekochte MettwurstMettwurst는 생소시지이지만 이것은 조분쇄 돈육 소시지로 가열제품이다.28)Hertzwurst조분쇄된 돼지 염통을 미세하게 분쇄된 어깨와 삼겹살, 그리고 양념과 함께 잘 혼합하여 돈장에 충전한 제품29)Hildersheimer StreichleberwurstHanover 특산의 돼지 간과 고기로 만든 소시지로서 빵에 발라먹을 수 있다.30)Kalbsleberwurst송아지 간 소시지.31)Kalbsroulade돼지고기와 송아지 고기를 사각조각 지방과 피스타치오를 섞어 만든다.32)Kasseler LeberwurstKassel 지방 특산으로 짙은 색깔의 소시지로 돼지 간과 사각으로 썰은 돼지고기가 들어간다.33)Katenrauchwurst길이 40 cm, 직경 10 cm 인 껍질이 흑색의 생 소시지로 훈연 돈육 조각들이 들어 있다. 색깔이 짙고 조직이 거칠지만 단단한 소시지로서 굴뚝에 매달아 오랫동안 훈연을 한다.34)Knackwurst뭉툭한 소시지로 50% 돼지 살코기: 30% 소고기: 20% 가 있어 조분쇄에서 미세 분쇄의 소시지가 있고 단단한 조직에서 발라 먹을 수 있는 조직까지 다양한 형태가 있다.50)Metz소고기와 베이컨을 미세하게 분쇄하여 양념과 혼합하며 라인 포도주가 들어간다. 24시간동안 냉훈을 하고 익힌다.51)Milzwurst바바리아 지방의 송아지 고기 소시지로서 버터에서 튀겨 먹는다.52)Munchener Weisswurst독일의 Munich 정육점에서 1857년 2월 22일에 개발된 데친 소시지. 원래는 송아지고기와 파슬리가 주 원료였지만 지금은 소고기도 사용된다. 이것은 백색소시지(white sausage)라고 부르며 철두철미한 Munich 사람들은 이 소시지를 아침 11시 이후에는 먹지 않는다.53)Nurnburgerwurst미세하게 분쇄한 돼지고기와 베이컨 지방 사각조각들을 잘 섞어 버찌술에 담가 만든 소시지.54)Oberland Leberwurst돼지 어깨살과 등지방 사각조각들을 함께 삶아 동량의 돼지 간과 함께 잘 다진후 양념들과 혼합하여 충전하고 가볍게 삶는다. 찬물에 담가 뻣뻣해지면 꺼내 서늘한 곳에서 걸어 건조시킨다.55)Pinkel독일의 grutzwurst의 지역적 변종으로 곡류가루, 베이컨, 양파 그리고 오로지 후추와 소금으로만 양념을 하고 가볍게 훈연한다.56)Plockwurst생 소시지의 일종으로 소고기 함량이 높아 색이 짙다. 훈연을 하고 풍건을 한다.57)Regensburger바바리안 지방의 특산으로 소고기와 돼지고기에다 베이컨 조각을 첨가한다.58)Resterwurst고기와 지방 그리고 곡류 가루를 혼합한 소시지.59)Rindfleisch Kochwurst소고기 3: 돼지 지방 1을 염지하여 48시간동안 건조시키 만든다.60)Rindfleischwurst소고기에다 돼지고기와 베이컨 지방을 약간 넣고 양념을 하여 삶아 익힌 소시지.61)Rostbratwurst돼지 살코기 4: 돼지 지방고기 1: 송아지 고기 1을 미세하게 반죽하고 양념하여 만든다.62)RotwurstThuringian blutwurst같시킨다.
    인문/어학| 2004.04.29| 12페이지| 2,000원| 조회(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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