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연방의 중앙-지방관계유기중(정치외교학과)Ⅰ. 머 리 말러시아는 세계 최대의 영토를 자랑하는 다민족 국가이다. 광대한 영토 때문에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중앙-지방 관계의 조화를 어떻게 조화롭게 이루어 낼 것인가를 두고 오랜 기간 고민해왔다. 그 고민은 집권자와 집행 기관의 정책 및 입법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조사하고 탐구하다 보면 러시아 연방의 성격을 조금이나마 파악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따라서 본 보고서는 러시아 연방의 구성단위에 대해 살펴보고, 옐친시기부터 푸틴에 이르는 동안을 시기별로 나누어 정책적인 면을 중심으로 서술하려 한다.단, 필자의 부족으로 인해 이 보고서는 각종 국문 자료에만 의존했으며, 그로인해 참고자료를 조합하였거나 요약한 부분이 많음을 미리 밝혀둔다.Ⅱ. 러시아 연방의 구성과 중앙-지방 관계1991년 12월 소연방이 붕괴이후 출범한 러시아 연방은 총 89개의 연방구성주체로 이루어져있다. 이는 구소련 시절 러시아공화국의 행정단위를 대부분 그대로 계승한 것이다. 1993년의 러시아 헌법은 “공화국의 통치 형태를 구비한 연방제 민주주의 법치국가”로 규정하고 있으며, “러시아 연방은 동등한 권리를 갖는 러시아 연방의 주체인 공화국(Republic)), 주(Oblast), 변방주(Krai)), 연방 특별시, 자치주(自治州) 및 자치구(自治區)들로 구성된다”고 하여 연방구성단위를 명시하고 있다. 러시아 연방은 이같이 주체별로 21개의 공화국, 1개의 자치주, 10개의 자치구, 6개의 변방주, 49개의 주, 2개의 연방 특별시)로 나뉜다. 이들 연방구성주체의 구성 원칙은 민족원칙과 지역원칙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그중 공화국과 자치주, 자치구는 민족원칙에 입각해서 형성된 지방조직이며, 변방주, 주, 연방특별시는 지역-행정원칙에 입각하여 구성된 연방주체이다. 다시말해 공화국들은 해당 지역 내의 주요 토착 소수민족들을 명목상의 구성 단위로 하고 있으며 자치주와 자치구는 수적으로 더 적은 민족들을 단위로 하고하게 되었다. 더구나 체제전환에 따른 정치·경제적 혼란 상황으로 인해 옐친은 최우선적 과제로 국가적 통일성 확립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이러한 상황 속에서 옐친은 지방정부에게 상단한 수준의 정치적 지위 부여 및 경제적 부문의 공동 결정 등 상호간 이익의 균형을 꾀하는 방안을 모색하였다. 이것이 1992년 3월 연방조약에 나타나 있다. 연방조약은 러시아 역사상 최초로 중앙과 연방 주체들 사이에 권한 및 관할대상을 법적으로 구분하였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연방조약의 내용을 살펴보면 연방공화국들은 그들 지역 내에서 “완전한 국가권력”을 보유하며, 지역 내의 토지와 광물 자원, 수자원과 기타 천연자원의 “소유, 사용 및 처분에 관한 문제는 러시아 연방과 연방 내 공화국들의 법률에 기초하여 공동으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방조약은 이전 소비에트 정권에서 중앙정부의 권한만을 강화하려는 움직임과는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하지만 이러한 연방조약의 의미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문제점은 여전히 남아있었는데, 먼저 연방의 다른 구성주체들보다 민족 단위의 공화국에게 보다 큰 정치적 및 법적 권한을 제공하고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연방주체들간의 불평등을 초래하여 연방관계의 비대칭성(非對稱性))을 더욱 증폭시켰다. 둘째로, 공화국의 경우에 있어서도 이들의 주권적 지위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이 없었기 때문에 공화국들에 까지도 불만을 사게 하였다. 셋째로 중앙과 지방정부의 권한과 관할대상에 대한 명확한 경계구분이 없었다는 점이다. 러시아 연방정부의 관할대상(50개 항목)과 공동 관할대상(40개 항목)은 분명하게 구분이 있었지만, 지방 정부의 관할대상에는 제한이 없는 상태였다. 또한 연방정부에 대항하는 공화국 및 지역들의 연방 법률에 배치되는 대항법률을 공포하는 등 소위 말하는 “법률전쟁”으로 얼룩졌다.러시아 연방 초기의 연방조약은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안고 있는 문제점 때문에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였고, 조약은 지방의 분리주의 노선을 잠재우기 위한 일종의 타협적 조중심으로 조약관계를 확립해 갔다. 1993년 헌법에 따라 러시아 연방은 89개의 연방주체를 포함하는 연방체제의 형태를 갖췄지만, 중앙-지방 관계에서의 권한과 역할을 명확히 하지 않고 모호하게 남겨둠으로써 연방제의 운영은 연방체제의 성립여부와는 상관없이 혼란스럽게 진행되었다. 예를 들면, 천연자원의 개발 및 이용과 세금 징수권을 둘러싸고 연방정부와 공화국 사이에서 첨예한 다툼이 생기곤 했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힘이 강해진 지방엘리트들을 중심으로 분리주의적 행보가 더욱 강해졌다. 옐친은 이러한 분리주의적 움직임을 쌍무조약을 통해 안정화시키려 했다. 1994년 2월 따따르스탄과 쌍무조약을 시작했으며 바쉬꼬르또스탄, 까바르디노-발까리아, 사하 등과 차례로 쌍무조약을 맺었다. 그리하여 러시아 연방정부는 1998년 6월 16일 모스크바시와 쌍무조약을 체결할 때까지 모두 46개의 연방주체와 쌍무조약을 체결하였다. 이로써 연방정부는 지방의 분리주의 경향을 조금이나마 약화시킬 수는 있었지만 그와는 반대로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였다.먼저, 연방정부와 특정 지방정부 사이의 쌍무적인 협상은 연방헌법과 모순되는 많은 조항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많은 조약에서 연방헌법의 공화국 헌법에 대한 우위에 대한 기술이 빠져있으며 관할범위 부문의 법률상 배치(背馳) 등의 문제가 나타나게 되었다. 또한 1996년 대통령선거 직전에 그 체결 건수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나, 쌍무조약 정책이 합리적으로 진행되었다기 보다는 타협적이고 정치적 목적에 의해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1998년 러시아는 모라토리움(지불유예)을 선언하는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고, 정치적으로도 불안정한 시기였다. 공산당과 지방은 더욱 옐친을 몰아붙였고, 옐친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보수 세력인 프리마코프를 총리로 임명하였다. 프리마코프 총리는 1999년 1월 ‘연방관계에 대한 전러시아회의’에서 ‘연방 7원칙’을 내세웠다. 프리마코프 총리는 나아가 주지사는 지역주민에 의해 선출되기보다는 중앙에 의해 임명되어야 할 것이라입법 및 행정 권력기관의 일반적 원칙에 관한 연방법’이 국가두마(하원)에서 통과됨에 따라, 중앙은 지방 지도자들의 횡포와 권리남용을 예방할 수 있는 강력한 통치수단을 보유하게 되었다. 지방정부가 연방 법률을 중대하게 위해할 경우 해당 연방구성주체의 행정부 수반을 해당 연방구성주체의 행정부 수반을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 것이다. 이 법안은 첫째, 연방헌법과 기타 연방 법률들에 대한 위배 시, 지방 권력기관에 대해 책임을 묻는다. 둘째, 국가두마의 승인을 얻는 경우, 대통령에게 지방의회를 해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셋째, 만일 지방 행정수장이 연방헌법 및 연방 법률에 위배되는 행동을 할 경우, 대통령에게 자신의 명령을 통해서 지방 지도자들을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넷째, 만일 지방 행정수장이 검찰총장에 의해 피소를 당한 경우, 대통령에게 지방 행정수장을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이 정책은 푸틴이 추구하는 단일 법공간의 형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로 말미암아 푸틴은 연방주체를 제재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을 손에 쥐게 되었다.3. 연방회의의 개혁 : 지방의 새로운 대변자(임명직 상원)러시아에서의 첫 번째 상원구성은 1993년 12월 선거에 의해 89개 연방주체에서 각각 2명씩 총 178명의 의원들로 구성되었다. 그 후 1995년 상원은 지방의회의장과 지방정부의 행정수반(주지사)이 선거 없이 당연직으로 전환되었다.이러한 연방회의의 구성방식은 2000년 7월 푸틴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국가기구 개혁 법안을 통해 지방의회와 지방정부에서 한 명씩 임명 또는 선출로 각 연방구성주체에서 두 명의 상원의원을 선임하게 되었다. 푸틴 대통령은 임명직 상원의 근거로 지방 현안에 주력해야 할 지방지도자들이 상원 대의원으로 활동하기 위해 자신들의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모스크바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낭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제도의 실질적 이유는 구제도에서 상원이 당연직으로 임명되었기 때문에 이들이 러시아의 지역을 대표하기보다, 단지 지역권한을 부여하고 있다.하지만 러시아의 지방자치기관은 극히 부실한 재정 자립도와 미약한 수준의 연방재정지원으로 인해서 관할 지방정부에 전적으로 예속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해임권의 부여는 지방자치제도의 정착과 시민사회 발전에 있어서 중대한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이 개혁은 권한이 대폭 축소된 주지사들에 대한 일종의 보상적 성격으로 볼 수 있다.Ⅴ. 푸틴 집권 2기의 연방관계푸틴은 집권 1기 동안 개혁적 연방정책으로 중앙의 지방에 대한 우위를 이끌어 냈다. 이에 더하여 2003년 말 총선, 2004년 초의 대선에서 연달아 여당인 ‘통합 러시아당’과 푸틴 대통령이 승리함에 따라 푸틴은 의회와 여론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강력한 연방정책을 취하고 있다.1. 연방주체 정치엘리트에 대한 통제강화(주지사 임명제도)2004년 12월 푸틴은 주지사 관련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주지사에 대한 임면권을 확보하였다. 옐친은 연방구성주체에 대통령 전권 대표를 파견하고, 지방에 행정장관을 임명하였다고 상기한바 있다. 여기서의 행정장관이 주지사를 뜻한다).법안에 의하면 먼저 연방관구 대통령 전권대표가 후보자를 추천하고, 대통령이 후보자를 최종 선정하고 마지막으로 해당 지방의회가 인준을 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마지막 인준 단계에서 지방 의회가 3차에 걸쳐 인준을 거부할 경우, 대통령은 해당 지방의회를 강제 해산 시킬 수 있으므로 이것은 형식적이고 유명무실한 절차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임명제도는 푸틴의 권력수직화 작업의 완결판이라고 불릴 만큼 강력한 것이다. 이것은 주지사들에 대한 강력한 통제책이기도 했지만, 이 정책의 통과는 주지사들의 이익과도 어느 정도 맞물려 있었다고 한다. 주지사들은 3선이 금지된 상태에서 두 번째 임기가 끝나가자 자신의 임기를 연장시킬 목적으로 새로운 임명직 주지사 제도를 원하기도 했다.이러한 상호이익적 정책으로 푸틴은 지방에도 발전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이는 민주성과 풀뿌리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위험한 정책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2.
Ⅰ. 대학의 형성 원인은 무엇인가1. 오늘에 되살리는 중세 대학(1) 서양중세의 산물인 대학은 12C무렵부터 2,3백년의 세월을 두고 형성됨.(2) 교권, 왕권과 함께 서양 중세 사회를 주도하던 대학은 그 특징들이 대체로 보존되어옴.- 중세 때 수여된 학위가 오늘날 통용되고 있음- 중세에서 이루어진 분야별 교과목과 교수의 전문성, 수학기간 지속- university라는 이름 아래 대학이 지적탐구와 훈련의 중심부로서의 역할을 담당, 확대- 지식전달, 지적 방법 개발에 공헌2. 대학 출현의 환경(1) 12C 십자군 운동 : 중세의 의식을 깨는 물꼬가 됨(2) 번역서들의 소개 : 유럽에 신선한 지적 분위기를 일으킨 자극제(3) 지역문학 성장 : 의식의 개별성을 깨우침(4) 인구증가 : 경작지 확장, 식품종류 증가, 삼포제 경작 확산, 간척사업에 따른 농지 확장 과 인구이동, 영양 향상으로 인한 사망률 저하(5) 상업발전·도시출현 : 물자 유통 촉진(6) 도회지 사람들(townsmen) : 도시의 큰 변화를 주도(7) 수도원과 도시교회의 역할 분담3. 방랑하는 지식인들(wandering scholars)(1) 삶의 진실을 추구(기존 질서와 특혜 거부)(2) 가난한 생활, 성(性)을 영광화시킴(3) 현실의 삶을 철저히 즐기고 그것에서 깨달음을 얻으려함(4) 성당밖의 개인 교습소·사설학교를 낳게 함 → 대학의 형태로까지 진전시킴4. 대학 발생의 원인(1) 마이너(Meiner)- 지식을 추구하는 인간의 멈출 수 없는 전진적 열정에서 구함(2) 마르크스주의적 입장- 체제유지를 위한 계층 이익의 대변기구로 파악(3) 그룬트만(H.Grundmann)- 계층논리를 정면으로 반박- 대학의 발생은 국가지배관료와 교회의 엘리트 성직자 양성을 위해 시작된 것이 아 닌, 지식욕에서 시작되었다.- 대학형성의 근본동기 : 불굴의 추구정신과 기존질서와 타협하지 않는 저항정신(4) 코번(A.Cobban)- 교육은 로마 이후 실용적 이익이나 적용을 위한 수단이었지 교육 자체가 목적이 된 적은 거의이란 말의 용어 풀이(1) 우니베르시타스(universitas)- 공동이익을 위해 구성된 인적 구성조직에 사용- 사람들의 모임이나 가르치는 과목에 중점을 둠(2) 스투디움(studium)·스투디움 제네랄레(studium generale)- 학교가 있는 장소, 학생들이 모여든 시설에 중점을 둠- 스투디움 제네랄레의 특전적 의미ⅰ) 성직자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자신의 근무지를 떠나 비근무자 학생이 되더라도 성직록을 받을 권리를 갖게 됨ⅱ) 교사 자격증 : 어떤 학교에 가서 가르치려할 때 다시 치러야 할 시험을 면제받음(3) 스투디움 파르티쿨라레(studium particulare)- 시당국이나 교구의 주교에 의해 세워짐- 제네랄레보다 과목수가 적음- 대학에 가기 전의 모든 학교들을 지칭한 포괄적 의미로도 사용됨(4) university - 대략 15C후부터 단일통칭으로 사용됨3. 최초로 학생특권을 인정한 「제국법령집」(1) 제국 황제의 대학문제에 대한 적극적 관심-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1152∼90)와 볼로냐 법학자들의 만남을 통해 대학문제에 대한 관심을 갖음(2) 익명의 저자가 쓴「프리드리히 1세 찬양노래」- 볼로냐 법학교의 교수와 학생들은 외국인 학생들에 대한 보복적 행위를 금지시켜줄 것을 황제에게 청함- 모든 사람이 오가고 거주할 수 있도록 이동의 자유를 허용해줄 것을 청함→→학문적 지식이 갖는 뛰어난 가치를 확인· 이를 추구하기 위해 타국에서 사는 사람들 을 보호, 학문을 배우는 모든 곳에서 이동과 거주의 자유를 인정하는 특전을 모든 교수 와 학생들에게 허락, 학생들이 재판을 받을 때 재판관을 스스로 택할 수 있게 함(3) 「제국 법령집」- 대학발전사의 헌장- 여행의 자유를 촉구4. 길드의 전통(1) 길드(guild, corporation)- 교수와 학생들이 스스로 이룩한 조합적 자치- 자신들이 규율을 만들고 스스로 구성원을 선출, 선발- 공통의 관심 공유, 그것의 실현을 위해 돕고 협력하는 정신과 제도(2) 길드적 정신은 대학에과목, 학위를 주기 위한 절차가 있었 다는 근거가 없음Ⅲ. 코뮌과의 대립 속에서 성장한 볼로냐 대학1. 학생 특전의 길을 열다(1) 볼로냐 대학- 유럽에서 가장 먼저 탄생- 명망있는 교수가 있고 그에게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모여 결과적으로 학교의 형태 를 취함(2) 코뮌- 독일 황제와 로마교황 간의 힘의 줄다리기는 이탈리아 도시들의 내전을 유발시킴- 이같은 정치적 위기로부터 형성된 조직- 반군주적·반봉건적(3)『제국법령집』- 볼로냐 대학의 전개와 깊은 관계를 갖고 발표된 칙명- 성직자들의 특전을 학생·학자들에게 동등하게 적용- 주거의 안정 보장, 소송당했을 시 피고가 재판관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여행의 자유2. 볼로냐 대학 형성의 원인(1) 지리적 위치설- 파도바와 함께 북이탈리아 평원의 비옥한 곡창지대 → 음식문화 발달(2) 교통의 요지 → 국제적 성격(3) 코번- 이르네리우스와 같은 전문가의 위상과 법학의 전통이 강한 도시로서의 역사성 이 갖는 비중이 원인이다3. 학생조합과 코뮌(1) 우니베르시타스 - 외국에서 온 학생들의 자기방어적 필요에 의해 결성(2) 코뮌 - 학생들을 규제의 대상 또는 잠재적 경쟁상대로 여김, 엄격한 통제(3) 학생들의 저항과 아레초, 파도바, 나폴리 등의 대학 출현에 위협을 느낀 볼로냐와 코뮌 의 호의적 세력 → 대학의 독립성 인정4. 학생조합은 어떻게 운영되었는가(1) 학생조합의 운영- 교수들은 학생조합에 의해 고용되고 대학의 제정과 수입도 이들에 의해 거두어들이도 록 학칙에 규정되어 있음- 학기가 시작되면 학생대표단과 선생은 강의 자료와 진도에 대해 합의하였는데, 그 일 정에 진도가 못미치면 벌금을 내도록 함- 강의자의 빈번한 결강으로 일정 진도에 미치지 못하면 학생들에게 수업료의 일부를 돌려주어야 함- 선생들의 감시·평가를 위해 네 명으로 구성된 비밀학생 고발단을 선출하여 렉토르에 게 보고함 (렉토르 : 학생길드의 대표로 선출된 집행인)(2) 볼로냐시법- 학생대표 14명이 교회법학자의 도움을 받아 제정- 렉토르 : 독신,치- 변증토론, 논리, 문법, 법률, 의학 등을 가르침(2) 어떻게 대학으로 발전했는가1 파리 학교들 중 어느것이 대학으로 발전되었는가- 파리 대학이 노트르담 주교 학교의 후예다- 가브리엘(Gabriel) : 파리의 주교 학교가 그 존재의 초기부터 신학교육에서 앞서있 었다2 교수조합- 페루올로 : 선생들이 자신들의 학교들을 개혁하고 규칙을 바르게 하기 위해 형성되 었다 → 교육적 이상 추구3. 파리 대학, 도전과 응전(1) 왕과 교황의 관계1 국왕 : 자기 통치의 왕국 내, 또는 도시 안의 대학이라는 안목에서 대학에 접근- 간접적 지원 : 시장을 세움, 도로포장, 성벽 쌓는 일- 직접적 지원 : 카페왕조의 감독아래 가난한 성직자를 지원하기 위한 재단을 세우 는일, 상충되는 이해관계로 발생하는 갈등에서 학교와 학생편을 드는 일2 교황- 교회의 위계질서의 관점에서 대학을 감독- 재정적 지원- 선생수를 줄임 → 양의 제한을 통해 질의 향상 도모- 선생들의 조직을 하나의 법인체로 인정- 총장과의 관계에서 독립적 입장을 취할 근거 제시(2) 파리 대학의 학칙 제정-교황의 지원1 대학에 대한 교황의 지원은 로베르 드 쿠르송(Robert de Courcon)을 통한 학칙제정 으로 가장 구체화되었음2 학칙제정 : 대학의 독립성·자율성 보장3 학칙 내용- 성직자들의 대학 진학을 위해 교회를 떠날때에는 의학과 법학 공부를 금지한다 → 결과적으로 신학만 하도록- 총장은 독립적으로 자격증 수여.. but, 수수료·서약 받지 못하도록 한다- 교사·학생들을 감옥에 가두지 못한다- 교사의 연령을 규정한다- 교수는 어떤 경우든 불명예나 수치스러운 일로 자신의 이름을 더럽힌 적이 없어야 한다- 교과 과목 제정- 교수가 가르치는 기간이나 학생들의 시험기간 중에 연회를 열지 못한다- 학생들의 옷은 사치스럽지 않아야 한다- 하숙자나 세입자는 전임 세입자의 동의 없이 방을 점유할 수 없다Ⅴ. 자기 방식을 찾아간 옥스퍼드 대학1. 옥스퍼드 대학의 특이성(1) 중세대학의 원형에 가장 가깝게 남아있는 총회 또는 전총회- 현직 강의자건 비강의자건 모든 교수들이 합동으로 모이는 총회- 정해진 규정에 따라 투표권 행사- 대학의 입장에서 최고 법정5. 홀와 칼리지(1) 홀- 13C초∼16C 중반까지 대부분 학생들의 일상적 주거지- 기숙에 필요한 경비만 내면 언제나 들어갈 수 있음- 학부생 기거- 유사전공끼리 인문, 법학, 신학, 문법 등으로 모임- 국적·지역에 따라 모임(2) 칼리지- 기부를 받아 세워짐 → 기부자의 의도와 밀접한 관계- 종교재단의 성격- 설립성격 : 기념적·추도적- 설립방식 : 수도원에 의해, 개인적 회사나 기증에 의해- 학문적 관심 : 13C 무렵-인문학, 신학 진작14C, 15C-시민법, 교회법 발전Ⅵ. 대학의 구성체와 운영1. 동향단- 대학의 가장 기층적인 조직- 학부와 대학의 소속원이 속해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직단위(1) 파리의 동향단- 국제적 성격 : 외지인이나 본거지 출신 모두 수용- 교수들의 동향단에 대한 자긍심 높음- 뚜렷한 자율성을 갖춘 독자적 성격의 조직(2) 옥스퍼드의 동향단- 자율성·독립성 얻기 어려움2. 학부(faculty)- 전공분야 즉 인문학·법학·의학·신학을 가르치는 단위조직을 의미→ 학생과 선생들이 각자 자신의 전공을 가지고 조직에 소속됨(1) 파리대학- 인문학부, 상위학부 : 동향단의 이해와 성격- 정책 방향에 영향을 받음(2) 볼로냐- 학생들로 구성된 법학대학이 주를 이룸- 동향단에 의해 구성된 학생조합 안에 학부가 들어설 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학부 기능 미약함(3) 옥스퍼드 대학- 현직교수들의 영향력으로 총장의 힘을 축소시킴 → 명목상의 위치로 머무름3. 칼리지(1) 유럽에서의 칼리지 : 학생이 모여 있는 곳(2) 칼리지의 시작 : 파리〃 : 옥스퍼드, 케임브리지(3) 설립의도- 처음 : 가난하고 재정적으로 어려운 학생을 돕기 위해 출발- 14C, 15C : 보다 우수한 학생을 공부하게 하는 엘리트 교육의 의지가 강해짐Ⅶ. 입학, 교과 과정과 학위 취득1. 입학(중세대학)(1) 입학연령 : 다양∼^^(2) 입을 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