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Hypothalmus 와 Hypophsis의 상관관계시상하부는 뇌하수체 전엽과 hypothalamic-hypophyseal portal system으로 연결되어 시 상하부에서 나오는 호르몬에 의해 뇌하수체 전엽에서 나오는 분비물이 조절된다.시상하부에서 생산된 호르몬은 portal vessel을 통해 뇌하수체 호르몬이 적당하게 분비되도 록 자극하거나 통제하는 뇌하수체 후엽에 분비된다. 뇌하수체에서 분비된 호르몬은 시상하 부의 신경중추에 의해 합성되고 조절된다. 결론적으로 뇌하수체의 분비가 시상하부에 의해 통제된다.2. Hypophysis에서 나오는 Hormones action, control modeglandhormonefunction of hormonemean of controlposterior pituitary(neurohypophysis)뇌하수체 후엽antidiuretic hormone(ADH;vasopressin)항이뇨호르몬신장세관으로부터 물의 흡 수를 증가시켜 혈압을 상 승시킨다시상하부에서 합성되어 뇌하수 체 후엽으로 방출oxytocin임신한 자궁의 수축과 출 산 이후 젖분비 촉진시상하부에서 합성되어 뇌하수 체 후엽으로 방출anterior pituitary(adenohypophysis)뇌하수체 전엽growth hormone(GH;somatotropic hormone;STH)성장호르몬단백질 합성과 지방 유동 증진시키고, 당질 대사을 늦추어 뼈,근육의 성장을 강화시상하부의 성장호르몬 방출 호르몬(GHRH)과 성장호르몬 방출 억제호르몬(GHIH)에 의해 조절prolactin임신중 가슴 발달과 출산 후 젖생산을 촉진시킨다시상하부의 프로락틴방출촉진 호르몬과 프로락틴 억제호르 몬에 의해 조절thyroid-stimulating hormone(TSH)갑상선 자극 호르몬갑상선 호르몬의 생산 분 비 촉진시상하부의TRH(TSH자극호 르몬)에 의해 조절adrenocorticotropic hormone(ACTH)부신피질 자극 호르몬부신피질 호르몬의 생산과 분비를 자극시상하부의 CRH(ACTH자극호 르몬)luteinizing hormone(LH)황체 형성 호르몬여성: 황체(corpus luteum) 의 발달과 난모세포의 방 출 프로게스테론과 에스토 로겐의 생산을 자극한다남성: 테스토스테론의 분 비와 고환의 간세포조직 (interstitial tissue)의 발달 을 촉진시상하부의 생식선 자극 호르 몬(gonadotropin-releasing hormone;GnRH)follicle-stimulating hormone(FSH)여포자극호르몬여성: 난소의 여포성장과 배란을 촉진남성: 정자 생산을 촉진시상하부의 생식선 자극 호르 몬(GnRH)melanocyte-stimulating hormone(MSH)피부색깔에 분명히 관여하 나 역할이 확실치 않다시상하부로부터 방출되는 코르 티코트로핀 방출 호르몬에 의 해 자극되고 dopamine에 의해 억제된다.3. Thyroid, Parathyroid & Adrenal Medullaglandhormonefunction of hormonemeans of controlthyroid(follicular cells)thyroid(parafollicular)thyroid hormone;thyroxine(T4), triiodothyronine(T3)①대부분의 세포에 있어서 세포반응을 가속화시켜 대사율을 증가시킨다②혈관계의 감도를 증가시켜 교감신경 으로 하여금 심장박동 속도를 향상 시킨다③골결근과 중추신경계의 성장과 항상 성에 영향을 미친다④세포분화 및 단백질 합성 촉진⑤성장속도, 수분균형 및 몇가지 다른 신체 작용에 영향뇌하수체 전엽에서 분비되 는 갑상선 자극 호르몬 (TSH) 뇌로부터 분비되는 thyrotropin 방출 호르몬 (TRH)에 의해 조절calcitonin(CT)혈액내 Ca, P의 농도가 증가하였을 때 이를 정상적인 상태로 감소시키는 기능혈액내 칼슘(Ca)농도에 의해서 조절parathormone(PTH;parathyroid hormone혈중 칼슘농도를 증가시키고 혈중 인의 농도를 감소시키는 기능
1996년 고등학교 3학년 때 난 죽음이란 것을 처음 접했다. 개학하던 첫날에 1년동안 같이 학교를 다닌 친구놈이 죽어버린 것이다. 뇌졸증.. 죽음은 그렇게 순간적으로 다가와서 나를 당황스럽게 했고 그 급작스런 상황을 나는 눈물도 한 방울 흘리지 못한 채 그냥 당황스러워 했다. 죽음이란 것을 태어나서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던 나였기에 당연히 삶에 대해서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가 불분명한 나였다. 죽음은 긴이별과는 다른 느낌이었고 그냥 단절 그 사람과의 어떤 끈이 그냥 끊어져 버린 단절이었다. 우리 모두가 죽음이란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도저히 알려고 해도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죽음이란 단어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한 명의 친구를 떠나 보냄으로써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주제를 오랜 동안 고민하였다.이 책 '아주 오래된 농담'에서 다루어지는 내용 중 하나도 삶과 죽음에 대하여 우리에게 화두를 던진다. 경호가 암말기 환자라는 것을 속인 채 그의 부인 영묘와 가족들은 경호가 결핵 환자라고 속이는데 경호는 자신이 눈을 뜬 채 죽을 때까지도 자기의 병명을 알지 못하고 죽는다. 자신의 죽음을 감지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린다. 만약에 경호가 자신이 암말기 환자란 것을 알았다면 그는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았을 것인가? 작가가 던진 물음처럼 환자는 자기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명의 시한까지도 주치의가 알고 있는 만큼은 알권리가 있는가? 그리고 가족들은 가족애를 빙자하여 환자에게 그 진실을 은폐해야 하는가? 또한 그것을 옹호하는 사회적 통념을 어떠한가?나는 분명히 의사 영빈의 입장처럼 시한부 환자는 자신의 병에 대해서 알권리가 있고 알려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죽음이란 것을 우리가 인식했을 때 바로 느끼는 것은 현재와 과거의 삶을 되돌이켜 본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특별한 고난 없이 직선모양의 인생의 그림을 그릴 것이고 어떤 이는 많은 역경으로 고불고불한 모양이 될 것이다. 어떤 이는 인생이란 화폭에 자신이 원하는 분명한 주제를 그려보고 싶어하고 어떤 이는 그 화폭에 뚜렷한 그림이 없이 덧칠만 가득할 수도 있다. 인생이 그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보면서 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린 인생을 다시 돌아보는 시점은 죽음이 근접했거나 주위에서 일어나는 죽음을 접했을 때이다. 하기야 텔레비젼 뉴스에 맨날 나오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서 우리는 많이 무감각해져 있긴 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던 바와 같이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은 나에게 물음을 던진다. '너는 어떻게 살아 가고 있니?' '나는 너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 경호는 이런 의미에서 자신의 삶을 완전히 채우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살아졌다고 할까? 주체적인 입장에서 자신은 태어나서부터 한번도 자신의 삶을 살지 못했다. 만약에 자신의 죽음을 알려주는 영묘나 가족들이 있었다면 아니 영빈이 알려만 주었더라면 경호는 마지막 인생의 여분을 누구의 삶도 아닌 자기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으리라. 경호는 자신이 죽을 병에 걸렸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기회도 자신의 인생을 살아볼 기회도 박탈당했다. 마치 우연히 지나가다 빨리 달리던 차에 치여 죽는 것처럼 그에게 있어서 죽음은 돌발적인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하여 그는 죽음의 시점을 충분히 알고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또한 박탈당했다. 그야말로 이 책의 작은 테마처럼 '눈 뜬 죽음'을 한 것이다.인간에게 죽음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갖게 만드는 것 같다. 우리가 죽음에 직면했을 때 알 수 없는 힘이 우리를 삶에로 인도하게 만든다.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다가도 막상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오늘 하루 밖에 남지 않는다면? 이란 생각을 하게되면 내가 해야 할 일들에 최선을 다하게 되고 더욱 더 열심히 삶을 살게 될 것이다.하루하루 우리는 날마다 죽으면서 다시 태어나는 건 어떨까? 만약 죽음이 없다면 삶 또한 무의미해 질 것이다. 삶의 배후에 죽음이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삶이 빛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죽음이란 것을 단지 두려워만 해야할 대상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경호의 주변 식구들 처럼 병명을 속여서 경호의 삶을 불완전하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단계를 그에게서 빼앗은 것은 잘못된 것이다. 무소유로 유명한 법정스님은 죽음을 두려워할것이 아니라 녹슨 삶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하였다. 삶이 녹슬면 모든 것이 허물어진다고 말씀하시는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스님의 자세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다. 이 초월적 자세를 모든 이가 지닐 수는 깨달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경호의 삶이 녹슨 삶이었다고는 할 수 있다.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경호는 한번도 가지 못했다. 죽음을 자신에게 다가옴을 알았다면 그는 한번이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 껏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살았다면 자신이 병에 걸리기 전 삶보다 병에 걸렸을 때 삶이 더 인간적이고 의지적일 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여기에 부는 바람'에서 유청스님은 죽음의 차이가 삶의 차이라고 말했다. 사람의 삶의 차이만큼이나 죽음의 차이도 각각이라고. 죽음이 주는 의미도 모두 제 각각 이라고 느껴진다.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죽음과 살인죄로 사형장에 끌려가 형장의 이슬이 되어버리는 사형수의 죽음의 의미는 너무도 다르다. 모두 똑같은 죽음이지만 말이다. 테레사 수녀님은 평생을 남을 돕거나 봉사하며서 거룩한 인생을 마감했다. 사형수는 사람의 존귀함을 모르다가 그 또한 죽임을 당한다. 이로써 볼 때 개개인의 죽음은 우리에게 삶의 차이를 느끼게 한다. 모두다 같은 죽음은 아니다. 경호의 죽음은 어떻게 느껴지는가? 그의 삶을 우리는 반추해 봄으로써 그의 죽음을 평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시한부 환자에게 그의 병명을 알려주는 것은 때문에 더 더욱 중요해 진다.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 보고 그의 삶을 평가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는 그의 삶의 질을 더욱 높이고자 아니면 사형수의 죽음과 차이가 나도록 남은 기간이나마 그의 삶을 고귀하게 만들고자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