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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18세기의 경건주의
    17,18세기의 경건주의 운동에 관한 고찰Ⅰ. 서론 ------------------------------------------- 1Ⅱ. 경건주의의 배경과 특징 ----------------------------- 21. 경건주의의 배경 ---------------------------------- 22. 경건주의의 특징 ---------------------------------- 3Ⅲ. 경건주의의 영향 ----------------------------------- 31. 경건주의의 강조점 -------------------------------- 42. 경건주의의 결과 ---------------------------------- 43. 경건주의가 끼친 영향 ------------------------------ 5Ⅳ. 경건주의의 주요 인물 ------------------------------- 61. 필립 야코브 스페너 -------------------------------- 62. 아우구스트 프랑케와 할레 대학 ----------------------- 73. 진젠돌프와 모리비안 ------------------------------- 8Ⅴ. 결론 -------------------------------------------- 9 ------------------------------------------ 10Ⅰ. 서론경건주의는 1670년 경 독일에서 일어난 참 경건과 참 교회를 위한 교회 내적 개혁 운동으로, 종교 개혁 이후 개신교에서 가장 의미 있는 운동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운동은 18세기중엽까지 이른다. 물론 그 뿌리는 16세기 종교 개혁으로 돌아간다. 그 영향은 19세기의 각성 운동에서 다시 구체화되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 있다.)경건주의 운동은 성령과 내적 생명을 존중하는 운동이다. 이 운동은 실제적으로 종교적 대각성 운동으로 독일 뿐만 아니라 스위스, 네덜란드 및 영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종교적 각성이 일어났다. 영ayly, 1565-1631)의 「경건의 훈련」, 존 번연(Bunyan)의 '천로역정' 등도 크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운동의 여파들이 경건주의를 탄생시켰다.(3) 정통주의1546년 루터가 사망한 후 루터파 내에서는 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루터파들과 칼빈주의자들은 각기 자기의 신학을 옹호하기 위하여 정교한 신학적 방법론 및 스콜라주의, 혹은 개신교 정통주의라고 알려진 학구적 신학의 특징을 묘사하는 어휘를 개발해냈다.)경건주의자들은 정통주의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들은 스콜라철학자들을 수사학적으로는 배격했지만 실제로는 자기들이 맹렬하게 공격한 그 방법론의 혜택을 크게 받았다.)당시 루터파 교회내의 정통은 죽은 정통이었다. 주된 강조점은 교리와 교의의 해석에 있었다. 기성 교회는 성서에 근거하기는 했으나, 지적 순종을 요구하는 엄격, 엄밀한 교리적 해석에 더 치중하였다. 이런 가운데 평신도의 역할은 수동적으로 정통이라는 교리를 받아 들이고, 강단에서 하는 설명을 그대로 믿고, 성례에 참여하고, 교회의 규칙을 지키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한 것들이 그 당시 크리스천 생활의 전체였던 것이다. 신자들은 회개를 요청하는 감정에 대한 호소가 없었고, 헌신적인 생활이 없었다. 그들은 교회의 사업에 참서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성직자들은 교회에서 영적 은혜가 넘치는 설교를 하지 못했고,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생활을 소홀히 하였다. 신자들의 내적 생활과 뜨거운 종교적 경험에 대하여 언급하는 자가 없었으며, 성직자의 일부는 그들의 직분을 가치 있게 감당하지 못했다. 심지어 성직자들의 다수는 그들의 죄를 회개치도 않았고, 교인들 가운데는 술을 마시며 부도덕한 자들이 많았다.)(4) 칼빈주의칼빈주의도 경건주의의 관념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가 말한 바와 같이 칼빈의 ‘기독교 강요’ 출판은 경건 생활의 지침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으며, 그가 일으킨 운동은 17세기 네덜란드와 영국의 청교도 운동에서 성화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났다.)2. 경건주의의 특징)① 살아있는 운동이다.경건건주의는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공통된 점이 많다.신비주의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하나님이 성령은 크리스천의 생활에 임재 할 수 있고, 또한 실제로 이를 생생하게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즉 크리스천은 그 생활과 심령 속에 하나님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신비주의는 하나님과 사람의 영혼의 관계를 강조하였다. 이러한 신비주의의 토대 위에 경건주의는 서 있다.)경건주의는 기독교인의 생활에서 하나님을 내적으로 경험하게 함으로써 실제적인 윤리 생활을 이루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신학의 이론에서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또한 성령의 성결한 힘으로 갱생한 자라야 마음에 빛이 있다고 하여, 이지(智) 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운동이었던 것이다. 경건주의는 인간의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선한 사람이 되며, 선한 행실을 하여 보다 더 순결하고 거룩한 생활을 하는 것을 말한다. 경건주의자들은 크리스천의 생활과 목적이 규범이 되는 순결한 교리를 세우고자 한다. 그들은 신자들의 생활을 순화함으로써 교회 안에서 살며, 교회를 안으로부터 혁신하자는 운동이었다. 경건주의의 주요한 목적은 그리스도인을 선하게 만듦으로써 기독교를 실제적인 종교로 만들자는 데 있었다.)2. 경건주의의 결과경건주의 운동은 성경 연구에 큰 자극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신학적 이론에서 실제적 방면으로 주의를 기울이게 하여 중용을 얻을 수 있게 하였고, 성령의 감화와 개인의 갱생의 필요를 깨닫게 하였다. 또한 경건주의 운동은 독일에 있는 영적으로 냉각된 루터파 교회를 많이 재건시켰다. 그리고 경건주의 운동의 가장 성공한 업적 중의 하나는 이교도인 백성들을 위한 외국 선교 사업을 시작한 일이다. 경건주의자들의 깊은 종교적 열성으로 인하여 이 운동은 각국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하여 이 정신은 모라비아파에게 영향을 주었고, 모라비아파는 각국에서 경건주의보다 더욱 전도의 성과를 올렸다.)그러나 경건주의는 극단의 금욕주의와 엄격한 자기 부정을을 만들어 놓았다. 이 점에 있어서 경건주의자들의 공헌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2) 경건주의자들은 현대 에큐메니즘(Ecumenism)에 큰 공헌을 하였다.스페너나 진젠돌프 같은 사람은 그리스도인들을 분리시켜 놓는 교리나 신학적 차이 같은 것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저들은 그리스도인들 간에 무엇이 다른가를 찾으려고 하지 않고 무엇이 같은가를 찾아 연합시키려는 운동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 교리학에 대한 단순화를 추진하였다. 정통신학에는 신학적으로 체계화된 논리는 있었으나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없었다. 물론 경건주의자들에게도 신학적인 실수가 있었으나 분열보다는 일치를 이루는 능력이 드러났다.(3) 경건주의는 사람이 종교적인 인간이 됨으로써 저절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관념을 깨뜨렸다.종교나 종교성이라고 하는 것은 전통 애호가들의 주장이다. 참된 신앙은 개인이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인격적 만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인격적 체험 신앙을 저들 경건주의자들이 일찍이 가르쳐 주었고, 그것이 현대에 와서 보편화된 진리가 되었다.이들 경건주의는 개인적이고도 체험적인 것으로써의 종교, 전 인격적인 참여에 의한 삶의 증거, 하나님 말씀에 의한 능력이 나타나는 생활, 영혼 없는 제도 ? 생명력 없는 몸 ? 내용 없는 형식 등에 대한 저항 등이 전체에 흐르는 핵심을 이루었다.Ⅳ. 경건주의의 주요 인물1. 필립 야코브 스페너(Phillp Jacob Spener, 1635-1705)독일 경건주의의 창도자는 루터 교회의 목사 스페너였다. 그는 영국의 청교도들에 관한 책과 독일의 신비주의에 관한 책들을 읽는 중에 크게 감화를 받아, 결국은 독일에 있어서의 최초의 경건파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다.)루터파 목사들은 점차적으로 정신이 해이해지기 시작했으며, 정부에 종속되고, 신분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오로지 교리적 정통성에만 관심을 쏟고 있었다. 무분별한 음주와 방종이 성직자와 평신도사이에 만연되어 있었다. 경건의 태도는 하나 없이 진리를 주장하는 세태였기을 위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제안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더 많이 가져오자”였다. 성경읽기와 경건 모임에서 성경의 바른 이해를 위한 성도들 간의 대화를 통하여 그것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었다. 이는 곧 경건주의를 하나의 ‘성경운동’으로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스페너는 바른 성도의 삶을 살아가는 경건한 성도들을 신앙적으로 성장시켜서 그들을 통하여 교회를 개혁하고자 하였다. 그는 모든 것을 민족 교회(innerhalb der Volkskirche)에서 자진하여 모여든 성도들의 교육에 집중시켰다. 민족 교회가 함께 드리는 정식 예배 시간 외에 성도들의 경건 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특별 경건 집회를 도입하는 제안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결정적인 것이었다. 이 제안을 위해 스페너가 도입한 새로운 유형의 말은 ‘에클레시올라 인 에클레시아(Ecclesiola in Ecclesia)', 곧 ‘교회 속의 작은 교회’였다.스페너는 기독교를 하나의 생활로 생각하였다. 그가 가르친 기독교는 지적인 지식보다는 더욱 생활이었다. 설교는 교리적이나 논쟁적인 것이 아니라, 신자들의 생활을 개조할 의도를 가진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페너는 기독교는 다만 헌신적 생활과 봉사에서 그 자체를 나타내는 것이 진정한 기독교라고 하였고, 그는 영국의 청교도들과 같이 극장에 가는 것과 댄스와 카드놀이를 반대하였다. 또한 의복과 음주와 음식에도 절제를 요구했다.)2. 아우구스트 프랑케(August Franke, 1663-1727년)와 할레 대학경건주의가 독일 교회에 있어서 실제로 중요한 운동이 된 것은 1689년 부터였다. 그리고 경건주의 운동이 독일에 있어서 최고 절정에 이르게 된 것은 아우구스트 프랑케라는 탁월한 지도자가 있을 때였다.(1) 아우구스트 프랑케의 생애1686년 과학적 방법으로 성서를 연구하기 위하여 성서연구회를 조직하고 대학의 인정을 받았다.1689년 라이프치히에서 학생들과 지방민들을 가르쳤으나, 이를 좋아하지 않는 자들이 있어서, 프랑케는 라이프치히를 떠나서 엘푸르트
    인문/어학| 2007.01.03| 10페이지| 2,000원| 조회(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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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빈의 원죄론
    Ⅰ. 서론신의 인도와 지도를 받아야 할 인간은 그가 본래 지음을 받을 때에 지녔던 본래적인 선을 나타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을 높이 평가하며 그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생각한다면 인간의 본질에 관해서 스스로 속이고 있는 것이다.)우리는 인간 자신에 대한 다음 두 가지 지식을 모두 가져야 하다. 하나는 창조되었을 때 인간이 받았던 우수한 성품에 대한 것이고, 다음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부패한 인간의 성품에 대한 것이다.)하나님은 태초에 인간의 마음속에 선에 대한 열망과 영생에 대한 소원을 심어주셨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것을 잃었고, 오히려 말할 수 없이 추악하고 부끄러운 모습이 되었다.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다음 두 가지 지식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 첫째로, 타락 이전의 탁월한 상태로서의 인간에 대한 지식이며, 둘째로 타락 이후의 비참한 상태로서의 인간에 대한 지식인데, 이때의 인간은 선을 행할 수 있는 아무 소원이나 재능도 없는 상태, 이른바 무(無)의 상태라는 것이다.)타락이후 우리가 왜 비참한 상태에 놓기에 되었는지, 왜 선을 행할 능력이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는 원죄와 아담의 원죄가 우리에게 어떻게 전해졌으며, 그 원죄로 인하여 우리가 어떠한 상태에 놓이기 되었는지를 칼빈이 본 인간의 원죄론과 죄책을 통해서 알아보고자 한다.Ⅱ. 본론1. 원죄의 정의칼빈은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금하신 열매를 따먹음으로 하나님을 반역한 것이 죄의 시초라고 말한다.아담이 범한 죄를 원죄라 칭하는 이유는 그가 인류의 시조이기 때문이요, 생득적이기 때문이며, 그 죄가 우리의 자범죄의 원천이며, 사람의 생활을 더럽히는 모든 자범죄의 내재적 뿌리이기 때문이다.)아담이 그의 창조주와 연결되어 있던 것이 그에게 영적 생명이 되었던 것과 같이, 창조주에게서 멀어진 것은 영혼의 죽음이 되었다.)아담은 시험에 굴복하여 선악과를 취해 먹으므로 최초의 죄를 범하였다. 그 결과로 그는 타락하여 죄의 노예가 되었다.부터 물려받은 부패, 곧 이전에 선하고 순결했던 본성이 악화된 것이 죄의 본질이다. 원죄란 우리의 영혼의 모든 부분에 깊이 침투되어 있는바 우리의 본성의 유전적 타락과 부패인 것으로 본다. 이 유전적 부패로 말미암아 먼저는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고, 그 다음에는 우리 안에서 육체의 일들을 열매로 맺게 된다.)칼빈은 성서의 표현을 빌려서 말하기를 현실적인 인간의 전체는 ‘육’이라고 확인한다. 심하게 말해서 인간은 자체 내에 죄 이외에 아무 것도 지니고 있지 않다. 우리는 신의 피조물이지만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악에 물들여 있다.우리의 본성은 선을 가지지 못하며, 또한 모든 악을 만들어 낸다. 즉, 우리는 본래적인 의로운 성품은 잃어버리고 불신앙 적이며 불순종적으로 되어버린 것이다.바울이 자주 죄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따라서 이것에서 나오는 행위 예컨대, 간음, 우상숭배, 도둑질, 미움, 살인, 열락(갈5:19-21) 등을 바울은 “죄의 열매”라고 부른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런 행위를 보통 “죄들”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두 가지 점을 분명히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 우리의 본성은 철저하게 타락하고 부패하였으며, 이 때문에 우리는 의와 결백과 순결 외에는 아무것도 용납하시지 않는 하나님께 당연한 정죄를 받고 있다. 둘째, 이 부패는 우리 안에서 없어지지 않고 계속적으로 새로운 열매를 맺는다.)우리의 본성은 선이 결핍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각종 악을 생산해 내기 때문이다.2. 원죄의 전가전가(轉嫁)는 그 무엇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을 뜻한다. 신학적으로는 죄 또는 의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을 뜻한다. 전가에는 죄의 전가와 의의 전가가 있다. 죄의 전가란 죄를 돌리심인데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를 모든 인류에게 유전적, 생득적으로 전가시키며, 그리스도인이 전가 받은 죄를 그리스도께 전가시키는 것을 말한다.)우리는 최초의 인간의 죄가 어떻게 우리의 죄가 될 수 있으며 우리 뒤에 올 모든 인류의 죄가 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1) 죄의 유전아담은 인류의 시조였을 뿐만 아니라 인간 본성의 뿌리였다. 그래서 그가 부패하던 때에 인류가 부패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였다. 아담은 범죄 함으로 말미암아 그 자신이 불행과 파멸을 당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의 본성까지도 같은 멸망에 처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그 자신의 죄책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전락했었던 그 부패로 자기의 모든 후손을 오염시켰기 때문이다.)썩은 뿌리에서 썩은 큰 가지가 나왔으며 여기서 나온 작은 가지에 부패가 전달되는 것과 같이 부모에게서 자녀가 부패했고 자녀는 다시 그 후손에게 대대로 병을 옮겨 주었다. 즉, 아담에게서 시작한 부패는 선조로부터 후손에게 전달되어, 끊임없이 흘러간 것이다.인류 최초의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셨던 은사들을 받아 누리거나 또는 상실할 때 그것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동시에 그의 후손들과도 직접 관련되는 것이다.)아담이 그 받은 은사들을 잃었을 때에, 자신만이 잃었을 뿐 아니라 우리 모두도 잃게 한 것이다. 아담이 잃어버린 은사는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도 받은 것이며, 한 사람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해서 주신 것이다.)즉, 아담이 그 은사들을 받아 누리면 그의 후손들도 함께 받아 누리게 되지만, 그것들을 아담이 상실하는 때에는 그 자신만이 아니라 그의 후손들까지도 동시에 상실하게 되고 만다.우리가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우리 안에는 죄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정죄 받고 부패한 인류에 속하기 때문이다.자녀는 부모의 영적 중생에서 나는 것이 아니고 육적 번식에서 나는 것이기 때문에, 죄 있는 불신자든 죄 없는 신자든 썩은 본성에서 자녀를 낳기 때문에 무죄한 자녀가 아니라 유죄한 자녀를 낳는다.)그렇기 때문에 젖먹이들까지도 그들이 모태로부터 저주를 받은 채로 태어나지만, 다른 사람의 허물 때문이 아니라 자기들 자신의 허물을 인하여 정죄되는 것이다.2) 원죄는 모방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앞에서 부모의 불결이 자녀에게 죄의 결과 - 원죄로 인한 인간의 타락지혜와 힘과 성결과 진실과 공의가 없어지고 그 대신에 무지와 무력과 불결과 허영과 불의 등의 가장 추악한 병들이 생겨난 벌을 받은 것은 아담뿐만이 아니라 모든 후손들까지 같은 불행에 빠지도록 하였다.)타락한 본성은 우리의 속에서 잠잠히 쉬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언제든지 새로운 육의 열매를 만들어낸다. 우리의 눈은 어두워졌다. 그래서 오류에서 해매고 있다. 결코 올바른 결단을 할 수가 없다. 우리의 의지는 심히 뒤틀려 있어서 악덕과 불결을 초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물론 우리가 범하는 죄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인 죄도 있고 우리 이웃들에 대한 허물도 있다. 그러나 결국 모든 우리의 악행은 하나님에 대한 것이다.)아담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아담의 죄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그 저주에 함께 말려들었기 때문에 그가 우리에게 죄책이 있게 만들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러기에 젖먹이들까지도 모태에서부터 저주를 받고, 그 책임도 자기의 허물에 있는 것이다. 아직은 그들의 불의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씨는 그들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부패는 우리 안에서 없어지지 않고 계속적으로 새로운 열매를 맺는다.) 우리의 본성은 선이 결핍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각종 악을 생산해 내기 때문이다.1) 창세기 3:6~24절에 나타나 있는 죄의 결과첫째, 피조물인 인간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존하는 대신에 하나님을 떠났다. 둘째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겨날 뿐만 아니라 인간과의 관계에도 문제가 생겨난다. 셋째로, 여자의 후손과 사탄의 후손 간에 원수관계가 있게 되어 서로 싸우게 됨으로 이 세상에 고난과 질병과 재난 등이 있게 된다.)2) 죄책사람들은 부패된 본성을 타고나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가 범죄 함으로 인하여 우리가 더불어 저주를 받게 되었으므로, 그가 우리를 죄책이 있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 리에서 발끝에 이르기까지 죄를 면한 부분은 하나도 없으며, 사람에게서 출발하는 것은 모두 죄로 돌려야 한다.인간의 본성이 부패했다는 것은 인격전체, 즉 지(知), 정(情), 의(意)가 타락했다는 것이다. 첫째, 지성이 타락했다. 이 말은 하나님을 아는 올바른 지식에서 타락했다는 것이다. 둘째, 감정이 타락했다. 인간의 감정이 타락한 증거는 인간이 보고 기뻐해서는 안 될 것을 보고 기뻐한다는 것이다. 셋째, 의지가 타락했다. 칼빈은 “인간의 자유의지가 타락했다는 말은 악에 대한 행위의 자유가 없다는 말이 아니고 선행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타락한 인간의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선에 대하여는 정반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자유의지를 말할 때는 선에 대한 능력과 악에 대한 능력을 분별해야 한다.”라고 하였다.)4) 악을 생산해 냄우리의 본성은 전혀 선한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각종 악을 생산 할 능력이 풍부하다. 인간은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육욕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본성은 모든 부분이 너무나도 부패하고 타락되어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전적 부패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정죄 받은 것은 마땅하다. 이 부패는 우리 안에서 결코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계속적으로 육체의 새로운 열매들을 맺는다.)우리가 죄를 범할 때 외부의 어떤 힘에 의해서 강요되듯이 어떤 강제에 의해서 범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의지와 경향에 의한 것이다.우리의 자유의지로서는 죄짓는 일 이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죄에 맡겨져 있다. 왜냐하면 우리를 주장하고 있는 악성이 우리를 그리로 집어넣기 때문이다. 신으로부터의 타락은 우리에게는 노예화를 의미한다.칼빈은 여기에서 필연성과 강제성을 구별한다. 우리는 신에게서 전향한 상태에 있으며 악을 향하여 결단하며 자발적으로 그것에 따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결단에서부터 우리 자신을 해방시킬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올라갔던 길에서 내려올 수가 없다. 이것은 우리가 죄를 범하게 되는 죄의 필연성이다. 밖으로부터 온 강제는.
    인문/어학| 2007.01.03| 8페이지| 2,000원| 조회(1,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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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요한의 성령론 평가A+최고예요
    Ⅰ. 들어가는 말요한복음에서의 성령론성령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임재 하는 양식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에 대하여 질문하는 것은 매우 급박한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의 실재성, 지금 여기에 있는 하나님과 역사적 예수의 현존, 바로 이것을 가장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성령 이해에 큰 기여를 한 신약의 저자들을 언급하라면 누구나 바울과 누가와 요한을 지적할 것이다.) 신약저서들을 살펴보면 바울서신들(예,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등)과 누가복음, 사도행전과 요한복음이 성령을 특별히 강조함을 알 수 있다.바울은 성령을 ‘새 언약의 영’ 또는 ‘새 창조의 영’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그의 성령 이해를 기본적으로 구원론에 근거시키고 있고, 이와는 달리 누가는 자신의 성령 이해를 중간사 시대로부터 대망되어진 ‘예언의 영’의 전승과 밀접하게 연관 지음으로써 성령의 활동을 카리스마적으로 이해하려고 하였다.)신약에서 성령신학의 절정에 해당하며 성령의 복음이라고 일컫는 요한복음의 성령론을 살펴보고자 한다.Ⅱ. 성령에 대한 요한의 견해요한의 견해는 공관복음과 정반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다르다. 요한은 공관복음과 그 중심은 달리 하지만 성령이 예수께 임재하심을 말한다(요1:32~34). 공관복음에서는 예수가 마귀의 힘을 정복한 것을 기록한데 반해서 요한은 예수가 성령의 힘으로 기적 같은 표적을 행하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는 특별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요한은 예수가 그의 사명을 수행하는데 성령의 능력을 사용했다고 생각한 것은 부활 후 예수가 그의 제자들에게 성령을 베풀어서 그들의 임무수행에 대비케 한 사실로 증명된다. 예수가 그의 세례 시 그에게 임하여 그의 임무수행 중 자기 안에 충만했던 바로 그 성령을 준 까닭이 그가 저들을 세상에 보내어 자가기 수행하던 사명을 계속시키기 위한 것임을 말해준다.(20:21))요한복음이 나머지 세 복음서들과 두드러진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성령의 활동과 사역에 대한 강조라고 할 수 있다. 요한복음의 특징은 ‘성령’이란 술어가받으실 때’ 주어질 수 있고(7:39) 보혜사 성령은 영광을 받으신 예수께서 ‘떠나실 때’(16:7) 제자들에게 오실 수 있다. 위의 두 구절은 모두 성령 또는 보혜사가 오시는 일이 영광 받으신 예수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시점과 맞물려 있다.)고별설교에는(14-16) 다섯 가지의 독특한 말씀이 있는데 이것들은 보혜사(Paraclete)라 칭하는 성령의 오심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헬라어가 동사 parakaleo의 뜻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런 가능성을 부인한다. 흠정역에는 “위로자”(comforter)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이것은 라틴어의 “강하게 만든다”, 또는 “굳세게 만든다”는 뜻을 가진 comfortare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현대의 신학자들 중에는 “보혜사”의 말 속에 위로의 뜻이 있다고 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 헬라 원어에는 애매하게나마 재판상의 “변호자”(advocate)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요한일서 2:1에서는 이 뜻으로 예수에게 적용되고 있다.)1. 보혜사의 어원신약 성경에는 성령에 관해서 모두 264회를 언급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모두 39개의 다양한 명칭들이 사용되었다. 그 중에 중요한 명칭은 성령과 보혜사이다. 파라클레토스란 용어는 신약 성경 중 5회밖에 사용되지 않는 것으로 모두 사도 요한만이 사용한 독특한 용어이다.)파라클레토스의 의미를 어원적으로 법정적인 용어와 비법정적인 용어로 구별해서 다루고 있다.a) ‘곁으로 부르다’(to call alongside)라는 기본적 의미를 지닌 의미로 ‘돕기 위해 곁으로 부름 받은 사람’이란 뜻을 가진 대언자(advocate)나 변호자(defence attoney). 보혜사가 법정적인(forensic) 기능을 가진다는 요15:26과 16:8~11는 구절에서 나타난 보혜사 역할을 볼 때 확실하다. 그러나 보혜사에 관한 요한복음의 5귀절들을 살펴보면, 제자들이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제자들을 보호할 것이라는 점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만약 사람들이 이러한 영원성, 편재성, 전지, 전능이다.b) 세 가지 뚜렷한 신성적 일들이 성령으로 묘사된다. 그것은 창조, 생명을 주시는 일, 예언에 관한 일들이다.c) 구약 성경에서는 그들의 주제에 따라 하나님, 여호와로 불리우던 말씀이 신약성경에는 성령님으로 묘사되었다. 즉, 성령님은 신약시대의 사상에서 존엄한 위치를 차지한다.d) 경건하고 사려 깊은 마음이 어떤 한정적인 존재의 이름과 존엄하신 주의 이름을 짝지울 수 없는 식으로 성령님의 이름이 하나님의 이름과 짝지어진다.e) 성령님을 하나님이라 부른다.(행5:3~4))Ⅳ. 예수와 보혜사예수님은 성령을 “다른 보혜사”라고 부르셨다(요14:16). 여기서 사용된 ‘다른’이란 말은 “똑같은 종류의 것의 또 하나”이다. 즉 보혜사는 두 분이시다. 즉 예수 자신이 첫 보혜사이시며, 성령은 그와 똑같지만 다른(another) 보혜사이시며, 그러나 완전히 질적으로도 다른 보혜사는 아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미 그의 제자들과 함께 있는 보혜사이며 성령은 그를 대신하여 제자들과 함께 그의 사역을 계속하려고 오실 것을 시사한다.)‘다른 보혜사’는 주님의 가르치던 직책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이 보혜사는 그 영과 동일시되며 이젠 성령이라 일컬어졌다.)1. 보혜사와 예수의 유사점브라운은 성령과 예수의 관계에 대한 요한복음의 표현을 근거로 그 유사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1) 보혜사의 도래a) 보혜사께서 오실 것이다 ;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도 세상에 오셨다(5:43; 16:28;18:37).b) 보혜사는 아버지께로부터 오신다 ; 마찬가지로 예수도 아버지께로부터 오셨다(16:27-28).c) 아버지는 예수의 요청에 따라 보혜사를 보내실 것이다 ;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아들을 주실 것이다 (3:16).d) 아버지는 보혜사를 보내실 것이다 ; 마찬가지로 예수는 아버지께로부터 보냄을 받으 셨다(3:17).e) 보혜사는 예수의 이름으로 보내지실 것이다 ; 마찬가지로 예수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보내지실 것이다(5:43).2) 보혜사의 신분a) 성령께8:14,19; 14:7)d) 보혜사는 세상의 미움을 배경으로 증거 하실 것이다 ; 마찬가지로 예수도 세상을 반대하여 증거 하셨다(7:7)e) 보혜사는 예수의 재판에 관하여 세상의 잘못됨을 책망하실 것이다.이와 같이 보혜사의 사역과 예수의 사역은 너무나 정확하게 부합된다. 보혜사는 예수께서 떠나셔야만 오시기 때문에 보혜사는 예수께서 계시지 않을 때 예수의 현존이시다.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거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이러한 약속은 보혜사에 의해 성취되었다.)Ⅴ. 성령과 보혜사요한에게 있어서 성령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이신 예수를 통해서 승천 이전 시기에 활동하고 계셨다. 몇몇 학자들이 주장한대로 승천 이전 시기는 성령이 계시지 않는 모호한 시기가 아니라 성령의 영감을 받은 예수의 말씀사역을 통해서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구원과 생명을 경험하던 종말론적인 새 시대였다.)부활 이전과 이후의 성령의 사역 사이에는 연속성이 존재하더라도 요한은 부활 이전에 예수를 통해서 활동하던 성령을 ‘보혜사’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보혜사는 예수께서 떠나신 후에 땅위에 있는 제자들에게 오셔서 예수의 임재를 계속하는 특별한 역할을 담당한 성령이시다. 성령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으신 예수에게 주어져서 그의 사명인 말씀 사역을 능히 감당하게 하신 것처럼, 성령은 이제 예수의 보내심을 받은 제자들에게 주어짐으로써 그들의 사명인 말씀사역을 감당하게 하신다. 이것은 제자들의 선교가 예수의 사역을 계속하는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보혜사 성령을 통해서 예수가 행사하는 권위는 제자들의 삶과 사역을 통해서 계속된다. 승천 이후에 제자들에게 선물로 주어진 보혜사는 그러므로 그들에게 예수의 활동을 계속하게 하는 성령이시다. 요한에 공헌한 부분이 있다면 보혜사의 이러한 활동들을 크게 부각시킨 점이다.)승천 이후에 성령은 예수의 지상적 임재를 대체하고 그와 제자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가능케 하는 보혜사가 될 것이다. 보혜사를 통해서 역사적 예수와의 가시적이고 육신적인 관계는 새로운 영적 관계로 대체될 역할을 담당한 성령’이란 보혜사 성령이 다름 아니라 예수께서 아버지께로 떠나 세상에 없는 동안 신자 된 사람들의 삶에 계시는 예수의 인격적 임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보혜사는 예수의 지상 사역 기간 동안에 그를 좇아다니며 헌신했던 제자들이 예수께서 아버지께로 다시 돌아간 이후에 그들의 삶 속에서 그의 인격적 임재를 계속하는 성령이시다.)1) 내주적 사역(14:16-17)성령의 새로운 역사는 하나님의 백성 속에 내주하는 영성과 관련된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 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14:16·17).)예수가 떠난 후에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의지할 곳이 없게 될 제자들을 위하여 예수 대신에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시어 제자들과 함께 거하도록 해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다. 다른 보혜사라는 표현을 통해서 보혜사 성령은 아들과는 다른 인격이심을 알 수 있으며, 예수 자신도 하나의 보혜사였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보혜사의 약속은,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활동하셨던 예수처럼, 또 다른 보혜사가 제자들에게 영원토록 내주함으로 불신앙적이고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세상에서 제자들이 그들의 신앙을 굳거니 지키고 그들의 사역을 잘 수행해 나갈 수 있도록 능력을 공급하는 것이다.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하여 신자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배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고 우리 속에 충만히 거하실 때 우리는 온전히 성령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2) 교사적 사역(14:26)예수님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라고 말씀하셨다.(요14:26) 성령, 그 자체이신 보혜사가 예수의 대리자로 와서 하시는 사역은 모든 것을 가르치시는 요 14:26의 말씀은 보혜사의 특
    사회과학| 2007.01.03| 9페이지| 2,000원| 조회(1,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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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과학]긍정적, 성경적 자녀양육
    ◐ 목 차 ◑Ⅰ. 들어가는 말Ⅱ. 부모에게 순종하도록 자녀를 가르치라Ⅲ. 자녀들을 훈계하라1)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훈계 하여야 한다.2) 설득력 있는 훈계는 꼭 필요하다.3) 비판적, 감정적인 태도는 피해야 한다.4) 훈계는 일관성을 가지고 엄하게 해야 한다.Ⅳ.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Ⅴ. 자녀를 적극적으로 칭찬하라1) 칭찬의 방법Ⅵ. 신앙으로 양육하라1) 부모는 모범적 요소이다.2) 복음의 가장 중요한 내용들을 강조해야 한다.3) 가정예배와 성경읽기Ⅶ. 나가는 말Ⅰ. 들어가는 말우리 사회는 지난 몇 십년간 급격한 변화를 했다. 사회의 문화나 가치관, 가족제도 등의 변화는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변화 가운데 현대 사회는 청소년들의 일탈과 비행이 날로 증대되고 있고 그 양상도 심각한 상태에 이르러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특히나 가족제도 등의 변화(확대가족 → 핵가족), 역기능 가정, 맞벌이 부부, 이혼 가정 등이 늘어남에 따라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올바른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들이 자라서 청소년이 되었을 때는 더욱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물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문제들을 일으키지 않는다 하여도 부정적인 자아개념이나 낮은 자존감을 형성하게 된 이런 청소년들은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가 없으며,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따른 삶을 살아가기가 어려울 것이다.따라서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심어주고, 행복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중요하며, 그 울타리 속에서의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으며, 부모의 올바른(긍정적인) 양육이 중요한 것이다.부모가 자녀들의 삶에서 통제할 수 없는 분야가 많이 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정말 중요한 분야에서 부모들은 큰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양육을 받은 아이들은 나중에 인생의 벽에 부딪혔을 때에 그렇지 못한 아이들과 만들어갈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인간관계는 어린 시절에 배운 순종에 그 기초를 두도록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다. 가정에서 자녀들이 순종과 부모에 대한 존경을 배우게 되면 그들은 평생을 통해 적절한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권위를 존중할 줄 모르고 훈련받지 못한 자녀들로 키운다면 평생 우리의 자녀들이 맺게 될 관계들을 망치게 되고 또한 혼란한 세상이 될 것이다.)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순종하도록 명령하셨고, 그들에게 순종을 가르치기 위해 부모들을 임명하셨다. 순종적인 자녀를 만드는 것이 자녀 양육의 가장 중요한 한 목적이다. 부모들에게 이보다 더 근본적인 과제는 없다.Ⅲ. 자녀들을 훈계하라어린 아동을 둔 부모가 직면하는 주요한 관심 중 하나는 얼마나 많이 혹은 얼마나 적게 아동을“훈계”하느냐이다. 불행히도, 우리 사회에서 훈계와 처벌이라는 용어는 종종 같이 사용된다. 누군가가 “아동에게 필요한 것은 훈계이다”라고 말할 때, 보통 그것은 아동이 처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종종 그 성질은 대부분 신체적인 것이다. 그러나 사실 훈계라는 용어는 라틴어 discipula에서 유래했고, 이 말은 누군가 다른 사람-수행원-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성경은 징계의 막대기를 자녀 양육에 꼭 필요한 요소로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성경은 체벌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정반대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잠언 13장24절을 보면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 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자녀를 열심히 훈계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녀를 진정 사랑하지 않음을 뜻한다는 것이다. 어린 자녀들에게는 부모로부터 훈계를 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즉 그들이 아직 부모에게 의존되어 있을 때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 받아야"(엡6:4)할 권리가 그들에게 있는 것이다.훈계는 유아시기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어린아이는 그가 자기 부모를 교묘하게 속일 수 있는가 없는가를 알고 있다. 만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할두 가지 태도를 변화 있게 꾀하기도 한다.위의 두 가지 형태에 대해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어느 타입도 자녀지도의 태도로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쉽게 말해서 아이들이란 아직은 매사에 미성숙한 단계에 있으므로 어느 극단적인 방법으로 치우친다는 것은 예기치 못할 잘못을 범하기가 쉽다.너무 엄격한 초자아나 양심은 부모에 의해 부과되는 지나친 기대나 수준 같은 것에 의해 자라날 수 있다. 지나치게 야단치고 용서해 주지 않는 부모들은 아이들의 죄의식을 증가시킨다.)부모의 징계로 자녀를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부모의 뜻을 전하기 위해 아이가 멍이 들 정도로 매질을 가해서는 안 된다. 매질은 항상 사랑을 가지고 해야 하며 부모가 분노에 차 있을 때는 매질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런 징계는 에베소서 6장 4절이 말하고 있는 교양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하는 환경을 깨뜨리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며, 자녀에게 해롭고, 자녀를 학대하는 행위이다.)부모로서 취해야 할 태도는 보여주어야 할 사랑과 신뢰의 기반 위에서 양육하여야 한다.2) 설득력 있는 훈계는 꼭 필요하다.먼저 요즘 아이들에게도 따끔한 부모의 훈계는 필요하다고 말해두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옛 우리 조상님들의 엄한 훈계 방식을 그대로 따르자는 것은 아니다. 훈계를 받는 입장이 워낙은 추상같은 체벌과 훈계내용 때문에 공포와 죄의식으로 쩔쩔매야만 했던 그 옛날 우리 어른들이 경험했던 방식의 훈계를 말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다만 오늘 우리가 취하고 있는 훈계의 태도에 있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참다운 자녀지도에 효과적인 것인가를 기본적으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상들의 훈계방식에서도 좋은 점이 있다고 본다.오늘의 어른들은 과거에 비해 의연하고도 자신 있는 훈계의 기본을 모르는 것 같다. 즉, 마땅히 가르쳐야 할 어떤 행동지도에 있어 단호하고도 분명한 태도를 가지고 훈계를 하는 데에 자신을 잃고 있다.부모와 자식 사이란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이임에 불구하고 훈계를 함에 있어 이래저래 많은 망설임과 걱정을 하는 것 사나 태도를 쉽게 보여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잘잘못에 앞서 우선 자신들의 인격 자체가 비판당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기가 쉽기 때문이다.훈계의 진정한 의미는 아이들의 감정과 행동을 함께 고려하면서 도와주는 데 있다. 이는 곧 훈계하는 당사자가 자신의 기분이나 권위만을 내세우게 되면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 해도 그 효과를 얻기가 힘들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아이들을 향한 훈계는 부모의 행동을 통해 나타나는 가치관이 자연스럽게 아이들 자신의 것으로 동일시(同一視) 혹은 내면화(內面化)되게끔 유도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이를테면 부모와 자식이 어떤 일을 놓고 공통의 감동을 느끼게 되면 이 공감의 유대관계는 설득력이 있게 되고 효과적인 훈계를 가능하게 한다.부모는 아이들에게 용납되는 행동과 용납되지 않는 행동의 명확한 한계를 인식시켜야 한다. 여러 가지 사정에 있어 일시적인 허용이 가끔은 있을 수 있으나 대개는 분명한 입장과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어린이의 바람직한 행동에는 최대한의 허용이 중요하듯이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에는‘금지’또한 필요하다.부모는 이러한 허용과 제한에 있어 포근한 느낌과 표현이 담긴 그러면서도 의연하고도 분명한 태도로서 훈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한다.4) 훈계는 일관성을 가지고 엄하게 해야 한다.일관성 없는 징계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또 너무 인정을 베풀어 지나치게 관대해서도 안 된다. 잘못을 바로잡아 주는 일은 한결같아야 하며 일관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 부모가 일관성을 지니지 못하면 자녀들은 징계를 임의적이며 일시적인 것으로 여기게 된다.)Ⅳ.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바울은“(부모들이여)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이 명령은 부모들이 고의적으로 혹은 부주의해서 불필요하게 자녀들의 화를 돋구는 일이 없도록 경계할 것을 부모들에게 경고하고 있다.)부모가 생각 없이 자녀들을 괴롭히거나, 의도적으로 화를 돋구거나, 무정하게 방관하거나, 아이들의 화를 돋구게 하는 의도적이거나 부주의한 모든론 성인들의 경우에는 간접적으로 칭찬하는 것도 효과적일 수 있지만 어린 아이일수록 칭찬은 직접 그들의 귀에 들려주어야 효과적이다. 또한 개인적으로 칭찬하는 것도 효과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칭찬하게 될 때 그 효과는 커진다.둘째, 칭찬은 구체적일 때 효과적이다. 두리뭉실하게 칭찬하면 그것은 마음에 잘 와 닿지 않는다.?셋째, 칭찬은 진실한 것일 때 효과적이다.?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칭찬은 칭찬받는 사람에게 격려가 되며 위로가 되는 치유적인 힘을 갖고 있다.?진실하지 못한 칭찬은 상대방에게 오히려 실제와는 다른 허상을 형성하게 할 수 있고 자기도취적인 자기이미지를 형성하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넷째, 칭찬은 반복적일 때 효과적이다.?한 번 칭찬을 듣는 것보다는 여러 차례 칭찬을 듣게 될 때 그 칭찬을 받아들이기가 쉽다.?만약 아이들에게 한 번만 칭찬해주고 이젠 됐다 싶어 칭찬해주지 않는다면 아이의 인격이 성장하는데 심리적인 영양분으로 매우 부족하게 될 것이다.?화초를 키울 때에도 화초의 흙이 마를 즈음에 다시 물을 부어주는 것처럼 특히 인격의 형성기에 칭찬은 반복적이 되어야 한다.?마지막으로, 칭찬의 시기가 적절할 때 효과적이다.?같은 수준의 칭찬이라고 할지라도 인격의 형성기에 칭찬을 해줄 때의 효과와 어른이 된 후에 칭찬을 받을 때의 효과는 차이가 있게 된다.?이것은 마치 발육기에 필요한 영양소를 충분히 공급받았을 때에는 신체적인 발육이 눈에 띄게 나타나지만, 성장이 멈춘 상태가 된 성인기에 같은 영양소를 충분히 공급받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키가 더 이상 크지 않는 것과도 비교할 수 있다.)?Ⅵ. 신앙으로 양육하라성경은 하나님께서 부모들에게 자녀의 영적 훈련에 대한 중대한 책임을 주셨음을 강조한다.부모는 자녀에게 하나님이 인간에게 계시하신 모든 것을 가르칠 것을 명령받고 있다. 여기서‘가르치며’라고 번역된 히브리 단어는‘되풀이하여 가르쳐서 주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기준을 아이에게 반복해서 철저하게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1) 부모는한다.)
    인문/어학| 2007.01.03| 8페이지| 2,000원| 조회(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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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신학]목사의 정체성, 소명, 자질 및 역할 평가A+최고예요
    ◐ 목차 ◑Ⅰ. 서론 ---------------------------------------------------------- 1Ⅱ. 목사의 정체성 (목사란 누구인가?) ----------------------------------- 11. 목사란 말의 어원 ------------------------------------------------ 11) 기독교 대사전에서의 정의 ---------------------------------------- 12) 헌법에서의 정의 ------------------------------------------------ 13) 성경에서의 어원 ------------------------------------------------ 22. 성경에??나타난??Minister의??종류와?특성 ----------------------------- 21) 구약 -------------------------------------------------------- 22) 신약 --------------------------------------------------------- 3Ⅲ. 목사의 소명 -------------------------------------------------- 51. 일반적 소명과 특별한 소명 --------------------------------------- 51) 일반적 소명 -------------------------------------------------- 52) 특별한 소명 -------------------------------------------------- 52. 소명의 방법 --------------------------------------------------- 63. 소명에?대한?증거?----------------------------------------------- 61) 목사의 소명에 대한 내적 증거?------------------------------------ 72) 에 “목사”라는 말이 단 한군데 밖에 안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에베소서 4:11에 나타나 있는 목사만으로도 목사직의 근거는 충분하다. 그러나 에베소서 4:11에 나타나 있는 목사직은 Pastor이다. Pastor 목사직보다 Minister인 목사직을 아는 것이 더 빠른 이해를 가져올 것이다.)2. 성경에??나타난??Minister의??종류와?특성 ??구약시대에 나타난 목사상은 시편 23편에서 제시된 목자로서의 하나님과 그리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사장, 선지자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신약 시대에는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예수님의 12제자들, 특히 베드로와 그 후 바울에게서 발견 할 수 있다. 그런데, Minister 곧 하나님의 종 혹은 일군으로서의 직분들을 보면 구약에서는 족장들, 민족 지도자들, 사사들, 왕들, 제사장들을 들 수 있고 신약에 와서는 사도들, 선지자들, 복음 전하는 자들, 목사와 교사를 들 수 있다.??1) 구약구약의 Minister, 곧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목사적 직분들은 신약의 목사와 동일시 할 수는 없으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목사의 일면들을 살피면서 목사의 그 특성을 밝혀보려고 한다.??(1) 족장들하나님의 택한 자손에게 하나님의 종 또는 지도자로서 목자의 역할을 한 족장은 아브라함(창18:19)과 요셉(창37:2)등을 들 수 있다. 족장들은 가정의 ‘재판관’(참고,창21:,22:,27:)이며 하나님과 종족들 사이의 제사장으로서의 직권이 주어졌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고 예배했으며 또한 여호와 하나님을 각기 자기 가문의 수호신으로 삼았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의 하나님이 되시며, 하나님은 족장을 축복하시고 그를 통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축복을 받게 된다 (참고,창12:2-3,18:18,26:4,28:14).??(2) 민족의 지도자들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지도자로서 Minister의 역할을 한 지도자는 모세와 여호수아이다. 을 위하여 말하는 은사는 크게 발전 되어졌었다. 그리고 그들은 때때로 비밀을 계시하거나 미래의 사건을 예견하는 도구로 쓰여졌던 것이다.) 여기서 비밀을 계시하는 것은 교회 안에 영속하고 있으며 이는 개혁교회에 의해서 명백하게 승인되어졌다.?(3) 복음 전하는 자들(Evangelists)사도들과 선지자들 밖에도 성경은 복음 전하는 자들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다. 빌립, 마가, 디모데 그리고 디도는 바로 여기에 속한다.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이같이 복음을 전하는 자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사도들과 동행하고 동사하면서 때에 따라서는 특수한 선교를위하여 파송되기도 했다. 그들은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하였고 세례도 주었다.)??(4) 목사와 교사목사와 교사는 교회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직책들이다. 칼빈은 이 둘 사이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믿는다고 한다. 교사들은 제자훈련이나 성례집행이나 경고와 권면하는 일을 맡지 않고 성경을 해석하는 일 만을 맡았다. 이는 신자들 사이에 건전하고 순수한 교리를 유지하려는 것이었다. 목사직은 이 모든 의무를 겸한다.?따라서 목사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바른 교훈으로 권면 하고(딛1:9)”, 참된 경건을 가르치며 거룩한 성례를 위해서 사역하는 일을, 목사들은 각각 자기가 맡은 양떼를 위해서 일 해야하는데, 이것이 바로 그가 받은 직분이다.??‘목사란 누구인가?’라는 제목 아래 목사의 어원과 성경에??나타난??Minister의??종류와?특성에 대해 살펴보면서 목사라는 명칭과 관련되어진 많은 용어들을 간추려서 상고 하였다.앞서 언급한 내용들은 종합하여 간단히 세 가지로 나누어 정리하면서 목사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정리하고자 한다.첫째, 목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메신저이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에 의해서 가르침을 받았고 또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메신저로서의 목사는 주님의 메시지를 받아서 그대로 전달하여야 한다. 조금도 가감 없이 액면 그대로의 말씀을 전해야만 하는 것이다.둘째, 목사는 말씀과의 관계에 있어서 파수꾼이고 부르기도 한다.반드시 자신의 은사 확인과 교회의 추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점진적으로 확인해 나가야 한다.3. 소명에?대한?증거???목사는 하나님으로부터 그 목양의 일을 위해 부름 받았다는 자기 인식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사명감에 넘치는 목사가 될 수 없고, 죽도록 충성하는 목사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를 부르신 자의 부름을 의식하지 못할 때 그에 대한 충성심이나 그를 부르신 목적을 알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처럼 목사는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는 자기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후4:1). 곽안련 목사는 목사 되기에 합당한 부르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1) 부르심은 반드시 하나님께로 온다.???2) 부르심은 직접 각 개인에게 온다.???3) 객관적으로만이 아니라 주관적으로도 부르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4) 부르심은 안 받을 수 없다고 했다.????????목사는 하나님께로 부터의 소명을 받을 때에 개인적으로 부르심을 확신해야하며 그에 따른 증거가 나타나야 할 것이다. 그러면 목사의 소명에 대한 내적, 외적 증거를 살펴보고자 한다.1) 목사의 소명에 대한 내적 증거??목회에로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의식에 관하여 스스로 자문해 보는 일은 끊임없이 계속되거나 아니면 가끔씩 대두된다.) 죤 칼빈은 목사의 소명을 “외적소명” 과 “내적 소명” 으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는데, 내적 소명은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아는 일이며 교회는 증인이 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그는 이 직책을 받는 것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교회의 덕을 세우려는 소원 때문이라는 것은 우리의 속마음이 잘 증거한다” 고 했다.????????????이와 같이 소명을 받은 목사는 그 확신이 성령의 내적 운동 가운데서 틀림없이 그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또한 그의 증거는 “근거 없는 것이 아니라 참된 그리스도인의 소망과 겸손에 기초” 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은 그가 하나님의 뜻을 전하 받은 사람들은 모두가 소명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증거를 보여준 사람들은, 에녹, 노아, 아브라함, 요셉 ,모세, 여호수아, 기드온, 다윗,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아모스, 사무엘, 요나 등이 있다.?(2) 신약에서 소명 받은 목사들의 증거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소명은 먼저 세례요한의 부르심으로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제자들을 부르시는 소명’?예수님께서는 바다에서 요한을 부르셨다(마4:21-2). 그리고 예수님은 마태를 부르시고(마9:9), 빌립을 부르셨다(요1:43). 소명을 보여주고 있으며, 더욱이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이후에도 계속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사도와 설교자들을 부르셨다. 신약적 소명의 특징은 몇몇 특별한 직접적인 소명을 제하고는 은사 및 교회의 요구, 그리고 내적 확신과 관련되어 있다. 그4) 소명(부르심)에 대한 책임부르심에 대한 책임은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 성격이 절대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그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어느 한 부분만이 아니다. 그것은 전체적인 부르심이다. 그런 까닭에 모든 크리스챤들은 마땅히 전 생애를 전폭적으로 다 기율여 봉사해야 한다.그러므로 부르심을 받은 목사는 분연히 나서야 한다. 싹이 나고 자라게 하시며 열매 맺게 하시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단지 목음의 씨앗을 언제 어디서나 열심히 뿌리지 않으면 아된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하나의 썩어진 밀알이 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처럼 복음을 증거 하다가 죽을 각오까지 서 있어야 한다.)“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 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담대히 선언한 바울 사도와 같이 복음을 위한 부르심에 강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Ⅳ. 목사의 역할 및 자질1. 목사의 역할목사의 역할은 평신도와 크.
    인문/어학| 2006.05.06| 15페이지| 2,000원| 조회(3,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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