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표학기 : 2006학년도 1학기“웃음을 통한 눈물, 눈물을 통한 웃음”Nikolay Vasilyevich Gogol러시아 극작가 고골리에 관하여≪ 목 차 ≫■ 들어가기에 앞서- 작가 ‘고골리’를 연구하는 우리의 방향1. 시대적 배경가. 19세기 러시아 사회적, 정치적 시대상나. 19세기 러시아 문학상2. 성장배경☞ 그가 겪은 정신적 고뇌, 컴플렉스☞ 고골리, 작가로서의 푸슈킨과의 만남☞ 예술에서 종교로의 방향전환3. 작품세계가. 우크라이나 산문기- 작품소개① [지카니카 부근 농가에서의 밤], ② [미르고로드]나. 뻬쩨르부르크 산문기- 작품소개① , ② , ③ , ④ , ⑤ 다. - 줄거리- 과 그 당시 러시아 사회와의 상호작용관계☞ 웃음의 비밀☞ 등장인물들의 성격에 대한 우리의 고민☞ 고골리는 왜 비극이 아닌 희극을 썼을까?라. 4. 개인사와 작품을 통해 바라본 고골리가. 비평가들의 견해나. 고골리가 러시아 문학사에 끼친 영향과 평가☞ 고골리의 사회참여☞ 고골리의 이상세계5. 2006년, 우리는 왜 고골리를 다시 바라보는가?6. 참고자료부록. 러시아 연보와 고골리 연보 도표■ 들어가기에 앞서- 작가 ‘고골리’를 연구하는 우리의 방향고골리 작가 연구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우리는 우선 그의 대표 작품 을 읽었다. 우리가 을 읽고 받은 첫 번째 느낌은, 일단 ‘재미있다’였다. 책을 펴든 순간부터 쉬지 않고 책을 읽어 내려갔을 정도로 작품은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었고, 눈을 뗄 수 없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그 매력은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째로 독특한 소재, 아이디어였고, 둘째로 심각할 수 있는 사회의 썩은 비리를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들로 묶어 나가는 것이고, 셋째로 개성 있는 등장인물들의 등장과, 각자의 성격을 세심하게 묘사해 나가는 것, 넷째로 웃다가도 가슴이 뜨끔해 지면서 나도 모르게 나와 내 주변을 보게 되는 것 등이었다. 이러한 특징들은 뿐 아니라 그의 여러 다른 작품들에서도 나타났다. 그래서 우리는 이 특징들을 고골리 특유의 작가적 동경심을 간직한 채 상경한 고골리는 뻬쩨르부르크의 눈보라와 싸늘한 추위에 위축되고 만다. 채 20살도 안 된 고골리에게 연고 하나 없는 수도는 당혹스러운 것이었고 어느 누구도 그에게 관리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큰마음을 먹고 사비를 들여 출판한 장편 시 [간스 큐헬가르쩬]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냉혹한 비판을 받자 그는 큰 좌절감에 빠졌다. 기세 등등 자존심 세고 자만에 차있던 그에게 자신의 작품이 수준에 미치지 못 했다는 것을 인정하기보다, 뻬쩨르부르크의 냉정함 자체만이 큰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화려한 데뷔는 실패하고 충격에 빠진 그는 팔리지 않은 그의 작품을 모두 사서 불태워 버리고 도망치듯 외국행에 나섰다. 우발적이고 과격한 행동은 작은 상처도 견디지 못하는 그의 성격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이후에도 고골리는 자주 도피여행을 떠났다. 가까스로 얻은 관리직에서도 실패하였다. 자부심 강한 고골리에게 말단직원의 하찮은 일은 견뎌낼 수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남달리 감수성이 예민하고 자의식이 강하며 콤플렉스도 많은 그의 성격에서 비롯된 행동으로 보인다.☞ 그가 겪은 정신적 고뇌, 컴플렉스이즈음에서 우리는 그의 남다른 성격을 짚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의 성격이 그의 컴플렉스가 되어 그의 작품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족함 없는 환경, 좋은 학교 출신 등의 배경을 가진 그는 스스로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을 것이며, 그의 부모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온갖 정성을 기울이며 사랑을 주었을 것이다. 그를 낳기 이전에 두 번이나 유산을 경험한 부모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추측하건데 그런 부모의 과한 사랑이 그를 자만에 빠지게 하고, 심리적 상처를 잘 견디지 못하는 나약한 사람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김나지움 학교에서도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하였고, 다시 말해 성장과정에서 사회화 과정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자만심이 강한 그에게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뻬쩨르부르크는 순식간에 꿈의 도시에서 썩은 도시로 바뀌었고 비를 쓰면서 그는 그의 재능의 한계를 처절히 느끼고, 그 고민은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끝내 완성 직전의 원고를 불태워 버렸다.1848년, 정신적 안정을 위해 러시아로 돌아와 고향인 우크라이나로 돌아가 를 계속해서 썼으나 그의 고뇌는 점점 악화되었고 또 다시 그의 작품을 스스로 불태워 버렸다. 결국 마지막에는 심한 우울증과, 착란상태에 가까운 정신으로 단식에 들어가 그대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예술에서 종교로의 방향전환허영과 허위의 도시 뻬쩨르부르크는 그에게 실망만을 안겨주었고, 몇 차례의 날카로운 비판과 비난은 그를 정신적으로 더욱 나약하게 만들었다. 과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등의 작품이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그러한 폭발적인 반응 또한 그를 괴롭혔고 자연히 그는 종교의 힘에 의지하게 되었다. 게다가 1842년부터 1848년까지 계속된 긴 여행길에서 심한 병치레를 하면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많이 나약해져 더욱 더 종교의 힘에 자신을 맡기게 되었다. 이것은 논문, , 예루살렘 성지순례, 수도원을 여러 차례 방문하는 등 많은 부분에서 드러난다.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는 점점 더 도덕과 윤리의 문제에 심취하여 급기야 자신의 소명은 작가로서의 활동 이상의 것이어야 한다는 인식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정교에 의해 인류의 구원, 구원된 미래세계의 제시를 자신의 최종 사명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이러한 생각 때문에 의 비윤리적 주인공을 개심한 인간으로 다시 그려야만 한 것이다. 그동안 자기가 만든 작품 속의 세계를 혐오하고 죄악감에 떨면서 작품을 통해 약자에게 유익한 선행의 모범을 보이려 를 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늘 우스꽝스러운 인간, 부정적 인간을 내세워 풍자적 글을 써 왔던 그에게 그것은 한계에 다다르는 일이었을 것이다.그는 자기가 의도하는 이상적 인물을 자기가 생각한 것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없는 것을 자기 자신이 아직도 도덕적으로 완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비관 속에서 고골리는 자신의 영혼을 정화시킬 목적으로 더욱 종교의 세계에쩨르부르크에서 절망에 가까운 실패의 연속을 맛본 고골리가 관찰하기에는, 수도 뻬쩨르부르크의 삶은 혼돈과 무질서의 세계 자체였다. 이 혼란스러운 세상의 본질적인 이면을 꿰뚫어보고 풍자적인 시각에서 그린 일련의 작품이 바로 뻬쩨르부르크 산문이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고골리의 문학적 단계에서 우크라이나 주제에 뒤이어 두 번째로 등장한 주제이고 대도시의 안과 밖을 예리한 해부학적 시각에서 분석한 단편작품들이다. 이에 속하는 작품으로는 , , , , 등이 있다.은 전체적으로 사실주의로의 접근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산문시대에는 주로 환상적 낭만주의 작품을 발표하였으나, 뻬쩨르부르크 산문시대에는 주로 낭만적 사실주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작품의 공간적 배경이 뻬쩨르부르크라는 점, 시간적 배경은 고골리의 수도체류 기간과 동일한 시점이라는 점, 등장인물은 흔희 하층계급의 관리 등 소외된 인간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 작품 기법 상 현실적인 사실주의와 기괴한 취미의 환상적인 낭만주의적 테크닉을 자유롭게 혼용한다는 점 등을 말할 수 있다.- 작품소개① 주인공은 아크센찌 포프리신이라는 이름의 구족출신 9등관 서기다. (고골리는 후일 러시아 문학상 즐겨 사용되었던 러시아 하급관리라는 소재를 문학적 모티브로 사용하여 철저하게 그들의 세계를 탐구하기 시작한 최초의 작가이다.) 그는 스스로 귀족출신이라는 데에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자신이 처해있는 현실에 강한 불만을 품고 상류사회에 대한 무한한 동경심을 갖는다. 그 동경심은 상류사회를 엿보고 싶어 하는 심리를 불러일으킨다. 더욱이 장관의 딸을 짝사랑 하게 되면서 그 출세의 욕망은 정점에 이르게 된다. 결국 그의 꿈은 이루어진다. 하지만 실제로 출세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망상 속에서 그는 자신을 ‘스페인의 국왕’으로 생각하고 그것에 만족하게 되는 것이다. 한 말단 관리의 허망한 꿈과, 그 꿈에 의해 미치게 되는 인간의 모습을 포프리신의 일기형식으로 엮었다.② 네프스키대로란 뻬쩨르부르크의 실을 은폐할 목적으로 홀레스따꼬프를 찾아와 뇌물공세를 펼친다. 그들의 뒤를 이어가는 도시의 상인들과 부인네들이 몰려와 시장의 비리를 폭로하며 처벌을 호소한다. 한편 홀레스따꼬프는 심심풀이 삼아 접근했던 시장의 딸과 약혼선언까지 하게 된다. 이에 시장은 출세 길이 열렸다며 매우 좋아한다.제5막 : 홀레스따꼬프가 도망치기 직전, 뻬쩨르부르크의 친구에게 쓴 편지를 우체국장이 뜯어봄으로써 그의 사기행각이 폭로된다. 행복해 하는 시장 집에 우체국장이 나타나 이 사실을 밝혀 모든 사람들이 놀라고 분노하는 소동이 일어난다. 그런데 바로 이 와중에 헌병이 와서 수도의 진짜 검찰관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알려줌으로써 모든 사람들은 경악한 나머지 화석이 된 채 막이 내린다.- 과 그 당시 러시아 사회와의 상호작용 관계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니꼴라이 1세의 통치시대이다. 1825년 12월 14일 데까브리스트 난이 일어나자 짜르 니꼴라이는 공포정치로 국민을 다스렸다. 당시 러시아는 하나의 거대한 군대조직과 같았다. 국가 전복을 두려워한 니꼴라이 1세는 강력한 검열제도를 도입하였다. 이른바 ‘철의 법규’라고 하는 이 제도는 모든 자유사상을 고취한 저술과 그 저자를 검열 위원회에 보고되어 통제받도록 하는 제도였다.초연 당시 황제 니꼴라이 1세를 포함한 많은 귀족이 공연을 관람 하였는데 비평가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귀족들과 보수파들은 러시아 관료체제의 존엄성을 흔든 작품이라며 화를 냈고 반대 진보적 지식인들은 러시아 현실과 관료체제를 신랄하게 비판한 작품이라며 통쾌해 했다. 당시 공연을 직접 관람한 니꼴라이 1세는 “음, 모두들 멋있게 두들겨 맞았어. 그러나 누구보다도 호되게 얻어맞은 것은 황제인 나야.”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공포정치를 행하던 니꼴라이 1세도 사회비판적인 공연에도 불구하고 고골리에게 특정한 처벌을 내리지 않았다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것이 풍자와 웃음의 힘이 아닐까 한다. 웃음을 통한 풍자는 꼬집되 꼬집지 않으며 혼내되 혼내지 않고 두렵게 만들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