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싱가폴의 유래1365년에 싱가폴을 "데마셋"이라 부르다가 14세기말 "싱가푸라"라 불려 졌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RAFA CHULAN이라는 남인도 제황이 중국을 정복하기 위해 항해를 하던중 TEMASEK이라는 섬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중국을 정복하기는 너무 길이 멀어서 중국 정복을 포기 한 후 그곳의 공주와 결혼을 하여 "상닐라 수타마" 왕자를 낳게 되었고 그 후 "상닐라 수타마"왕자는 인도네시아까지 내려와서 인도넨시아의 수마트라섬에 "스리비지야"왕국을 세우게 되었는데 하루는 가까운 주변을 여행하다가 싱가폴을 발견하고 이 곳에서 사냥을 하다가 사자모야의 짐승을 보게 되었는데 이를 보게 된것은 좋은 징조이며 행운을 상징한다하여 싱가폴에 정착하기로 결정한 후 이 곳에 왕궁을 세우고 나라 이름도 사자를 뜻하는 "싱아"와 도시를 뜻하는 "푸라" 즉 "싱가푸라" 사자의 도시라고 불러지게 되었다.1819년 영국인 "토마스 스템포드 래플즈"경이 싱가폴을 발견 한 후 싱가폴은 동,서의 중간지점이되고 영국의 무역의 거점으로 최고의 좋은 위치가 된다고 결정한 후 싱가폴 왕과 추장이었던 데멩공에게 현금을 주기로 약속하고 1819년 2월 6일 왕과 추장을 꼬셔서 싱가폴에 영국의 동인도 무역회사를 설립하면서 그들이 발음하기 좋게 "싱가폴"이라 불려지기 시작했다.그 후, 1946년 싱가폴이 영국으로 부터 벗어나게 되었고 1959년 자치 정부를 수립하게 되지만 1963년 싱가폴은 나라도 작고 자원도 없고 인구도 많지 않은 이유와 주변 세력으로 부터의 보호를 위해 말레이 연방에 귀속하게 되는데 싱가폴과 말레이지아는 경제적인 차이점으로 많은 세금을 요구하는 등 민족간의 싸움으로 결국은 말레이 연방을 떨어져나와 완전독립을 하고 1965년 8월9일 민주 공화국을 수립하고 올해 독립 30년째를 맞이하고 있으며 UN에도 117번째 가입이 되어 있다. 1963년부터 1대 수상으로 당선이된 전 이광요 수상은 27년동안 장기집권, 독재 정치를 해오다가 1990년 11월 본인이 자진해서 수상직에서 물 반입하는 것은 가능하다. 일정량 이상의 마약거래자에 대하여는 사형선고를 받는다. 기물파손 및 훼손(Vandalism), 장물보관, 강간등 파렴치 행위등에 대하여는 강제적 태형(곤장)을 엄격히 집행하므로 각별한 유의가 필요하다.9. 음식싱가포르는 쇼핑국가이면서 다인종 국가라서 엄청나게 다양한 음식을 접할 수 있다. 커다란 쇼핑몰에 가면 여러국가의 음식을 모아둔 음식몰을 접할 수 있다. 중국계 사람이 많아서인지 중국사람의 입맛에 맞춘 음식들은 우리나라의 고추장과 김치를 생각나게 한다.기본적으로 중국,말레이,인도음식을 바탕으로 세계각국의 다양한 음식을 만나 볼 수있는데 매년초에 열리는 싱가폴 음식축제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1) 중국 음식 : 싱가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인들의 음식은 그 본토의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크게 광동요리, 복건요리, 북경요리, 사천요리, 상해요리, 조주요리등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2) 말레이 음식 : 말레이의 음식은 크게 하랄과 하람으로 구분하는데 하랄(HALAL)은 동물을 잡기전 기도를 한 후 고통없이 잡은 고기 및 말레이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말하며, 하람(HARAM)은 술,돼지,담배,개,뱀등 이런 이유에서 말레이인이 경영하는 식당은 대부분 원안에 하랄표시가 되어 있으며 현대식 켄터키나 맥도널드에도 같은 표시가 되어 있다. 말레이들이 명절에 많이 먹는 음식으로는 오따오따(안에 생선이들어있음)와 사테, 캣투팟(찹살로 만듬)등이 있다. 싱가폴에서 즐기는 말레이 음식으로는 나시 레막(Nasi lemak), 나시 고랭Nasi Goreng), 사테(satay)등이 있다.참고로 말레이말로 "나시(Nasi)"는 밥이고 "미(Mee)"는 국수이며 "고랭(Goreng)은 기름에볶는다는 의미다.3) 인도 음식 : 인도 음식하면 당연히 카레를 연상하게 된다. 밥이나 빈대떡(로띠)을 카레에 찍어 먹는데 카레에 종류도 매우다양하다.우리나라에서 보자면 국이나 장, 찌개등과 같이 카레도 마찬가지이며 음식을 주문하면 몇가지의 다른 종류의 카레가 함로는 전부 100여개가 있고 그중 가장 긴 고가도로는 2.1km의 Kepel 고가도로이고 가장 긴다리는 Benjamin Sheares Bridge로 1.855km 이다.싱가폴 총 차량대수는 약 60만대로 그 중 승용차가 50%를 차지하며 교통의 혼잡을 막기위해 1975년 부터 실시한 시내 진입료 (평일 7:30am ~ 7:00pm) 제도와 러시아워시간(7:30am ~ 9:30am)에만 고속도로 통행료를 징수하는데 최근에 ERP라는 시스템을 도입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고속도로에서 타운으로 들어오는 길목이나 속도를 낮춰야 할 필요가 있는 곳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서 제한 속도를 지키도록 되어 있다. 물론 전방에 카메라가 설치 되어 있다는 선명한 카메라 모양의 표지판으로 미리 운전자에게 알려서 사고 방지 차원에서 운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교차로에도 Red Light Camera라는 경고판과 함께 감시 카메라가 군데 군데 설치 되어 있어서 교통 질서를 잡고 있다. 만약에 신호를 무시하고 통과 할 경우 가차없이 후레쉬가 터지면서 사진을 찍는데 70S$ 정도의 벌금은 각오 해야 한다. 물론 차량이 적은 이유도 있지만 이러한 시스템을 적절히 활용함으로 싱가폴에서 운전을 하다보면 거리에서 교통 경찰관을 찾아 볼 수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ERP 란?Electronic Road Pricing 란 뜻으로 통행료 전자 징수 시스템 정도로 해석 할 수 있겠다. 자세히 주의를 기울여 보면 싱가폴의 모든 차량 앞유리 부분에 카드를 끼울수 있는 장치가 부착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곳에 주유소 등지에서 구입한 현급카드를 삽입하여 사용하게 되는데 통행료를 징수하는 도로를 통과하다 보면 ERP 징수 장치를 통해서 자동으로 금액이 지불된다. 물론 카드가 없이 통과하면 벌금을 부과한다.싱가폴 국민들의 가장 태표적인 교통수단은 MRT로 1987년 개통되었고 지상과 지하로 연결되어 있고 매일 70만명의 승객을 수송하고 있는데 출퇴근 시간에는 3-4분간격한 가뭄이 들어 사람들이 거의 죽게 되었다. 이때 'Hou Yi"라는 사수가 태양을 쏘아 떨어 뜨리고 사람들을 구한 후 황제가 되었는데 그는 주색을 일삼고 많은 백성들을 괴롭혔다. 어느날 그가 불로장생하는 약을 구해 마시려고 하자 황후가 이를 대신 마시고 백성들을 고통에서 구한 후 하늘에 올라 월궁에 살게 되었다고 한다. 중추제때 먹는 월병의 기원은 14세기 "주원장"이라는 사람이 몽고인이 세운 원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싸웠는데 그때 비밀문서를 월병속에 넣어 전달했다는 데서 기원했다. 그래서 주원장은 원나라를 쫑아내고 싸움에서 승리한 그는 명나라 최초의 황제가 되었고 매년 음력 8월15일이면 이 축제를 행하고 있다. 싱가폴에서는 차이나 타운(China Town)에 가서 월병을 사고 주롱(Jurong)에 있는 차이니스 가든(Chinese Garden)에서 등만들기,서예 경연대회등의 민속행사가 열리며 어린이들은 색색등을 들고 저녁엔 거리를 행진한다. 원병은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쌀가루를 빚어 단팥속을 넣고 달을 상징하는 삶은 계란 노른자를 넣기도 한다.。하리라야 하지(이슬람 력으로 12월 10일)°메카를 다녀온 사람과 다녀 오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거룩하게 기도를 하는 날이며 이브라힘이 하나님의 시험을 받아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고 재물로 이브라힘의 아들을 재물로 바치도록한 권고도 받아들이므로써 신이 미리준비해 두었던 산양을 받쳐 축복을 받았다라는 전설에서 유래 되었으며 오늘 날에도 양(축복의 상징)을 잡아 성지를 다녀온 사람은 1/3을 갖고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2/3을 나누는 말레이들의 큰 명절이다.。하리라야 후하사 (이스람 력으로 10월 1일)°이슬람 종교의 5계명중 하나인 라마단 즉, 한달간의 금식을 마치고 난 후 금식의 종료를 축하하는 명절이며 이 기간 동안에는 말레이들이 많이 모여 사는 깜뽕 글람이나 겔랑등지에서 1달간 점등식을 갖고 축하하는 명절이다.。타이 푸삼 축제°타이 푸삼은 인도 달력으로 10월 보름달때 행해지는 축제이며 "타이"란 인도 많은 발전을 거듭하였고 90년대말 동남아를 비롯한 아시아에 불어닥친 IMF의 바람에 한동안 주춤했던 경기도 지금은 거의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이다. 막대한 외환을 보유하고 있는 싱가폴도 주변국에 대한 과도한 투자와 수출입에 의존했던 무역의 감소등으로 고전함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했으며 주변국의 형세에 따라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기도 하다.싱가폴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된 싱가폴 항구는 17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데 영국이 싱가폴을 발견한 목적은 싱가폴을 영국의 부역식만지로 만들기 위해서 였다. 초기에 싱가폴 강입구에 부두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무역을 했었고 증기선이 없었을때는 지옥의 배라고 불렀던 돗단배를 타고 더러는 폭풍과 해적들의 공격을 받아가면서 물건을 싣고 들어와 무역을 했었는데 18세기초 영국의 유명한 발명가였던 James Watt에 의해 최초의 증기가 발명된후 증기선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1869년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면서 동서를 항해 할때 120일 걸리던 것이 50일로 단축되었고 싱가폴은 동서의 중간지점으로서 동서를 왕래하는 많은 배들이 반드시 싱가폴 앞바다를 거쳐야했는데 이러한 지리적인 위치 덕분으로 싱가폴 항구는 자연적 중개 무역의 거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싱가폴에서 가까운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태국도 있었지만 특별히 이 작은 싱가폴이 동,서양의 자유무역항으로 성공 할 수 있었던것은 다른 나라등은 정부나 통치자에게 모든 무역의 허락을 받아야 했고 또 많은 세금을 내야 했는데 싱가폴의 경우는 정부나 통치자에게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고 까다롭지 않아서 자연적으로 많은 상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으며 싱가폴은 지금도 모든 물건에 세금이 붙지 않기 때문에 쇼핑천국이라고 말하기도 한다.싱가폴 최초의 항구로는 Tanjong Pagar Container Terminal이며 전부 6개의 International Container Terminal이 있는데 Keppel, Brani, Pasir Panjang, Jurong,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