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춘 향 가우리 나라 사람 치고 춘향전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춘향전은 예로부터 우리 국민의 뜨거운 사랑을 받아왔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영화화한 이야기도 아마도 춘향전일 것이다. 춘향가는 잘 알려진 춘향전의 줄거리에 소리를 붙여 만든 것으로 음악적으로나, 문학적인 내용으로나, 연극적인 구성으로나 판소리 다섯 마당(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판소리로 꼽힌다.춘향가의 유래춘향가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확실한 기록은 없다. 조선 영조 때 천안의 목천 사람 유진한이 쓴에 한문시 200구로 적힌 춘향가의 사설이 있고, 같은 시대 남원 사람 양주익이 쓴 에 "병자35세 저춘몽연"이라는 기록이 있으므로 이미 숙종 때부터 있지 않았나 추측할 따름이다.소설가로 유명한 월탄 박종화 선생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유진한과 양주익은 몰락한 양반으로서 불우하였다. 이에 그들은 사회를 비판적인 눈으로 보게 되었고 그리하여 저항정신을 갖게 되었거니와 이 저항정신이 춘향에 탁해져와 을 짓게 되었다."춘향가는 겉으로 드러나듯이 단순한 열녀의 이야기일 뿐이 아니라 안으로는 양반에 대한 저항정신이 담겨 있기도 하다. 기생인 춘향이 어사또의 정실부인이 된다는 사살은 봉건적인 신분제도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춘향가에는 진실을 갈구하며 인간 해방을 희구하는 서민들의 강한 욕구가 짙게 깔려 있다.춘향가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으로는 경판본, 외판본 춘향전을 비롯해 열녀춘향 수절가, 만고열녀 옥중화 등 수십 종에 이르고 이야기의 원류만도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예를 들어보면 옛날 남원의 양 진사(양주익을 이르는 듯함)가 자식이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광대들을 불러 잔치를 했으나 수고비를 줄 여유가 없어 돈 대신 춘향가를 지어주었다는 설이 있다. 또 남원의 신임사또가 내리 3년째 흉년이 계속되니 양반 자제에게 버림받은 못생긴 처녀의 영혼 때문이라 하는 항간의 소문을 그럴듯하게 여겨 굿판을 벌리고 원혼을 달래었는데 그때 무당의 사설에서 비롯부분에서는 이 도령이 광한루에 당도해 "적성의 아침날은 늦은 안개 띠여 있고 녹수의 저문 봄은 화류 동풍 둘렀난듸... 오날 이곳 화림중에 삼생연분 만나볼까." 하고 봄의 정취를 노래하는 '적성가'가 특히 유명하다. 진양조 장단의 가곡성인 적성가는 명곡으로 꼽히기도 하나 가락이 까다로워 어지간히 훈련되지 않고는 깊은 맛을 내기가 어렵다. 장자백이 잘 불렀다고 한다.둘째 부분, 첫눈에 춘향에게 반한 이 도령, "책방으로 돌아와 글을 읽는데 혼은 벌써 춘향의 집으로 가고 등신만 앉아 글을 읽는데, 노루글로 글을 뛰어" 읽는다. 그 중 을 "건(乾)은 원(元)코 형(亨)코 이(利)코 정(貞)코 춘향코 내코 한데 대면 좋고 좋고" 하고 읽으니 방자가 묻는 대목이 재미있다.「방자 : 도련님 그 먼 책이요?도령 : 이것이 주역이다.방자 : 그 어디 주역이요? 코책이제. 도련님, 그 책 속에 코 많소.그 흔한 코 밑에 소인놈의 코도 하나 넣어 주시오.도령 : 에라 에라. 네 코는 상놈의 코라 이 코에 범치 못한다. 」이 책에도 저 책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한 이 도령은 결국 천자문을 읽는데 그 풀이가 별 희한하다. "....하도낙서(河圖洛書) 잠간 보니 일월성신 별 진(辰), 원앙금침 펼쳐놓고 훨훨 벗고 잘 숙(宿), 양각을 번 듯 추켜드니 사양 말고 벌리 열(列), 둥뚱덩 입 맞추니 온갖 정담 베풀 장(張)....." 평조에 중중모리장단으로 흥겹게 엮어내리는 이 도령의 천자 뒤풀이 대목은 김세종의 더늠이 유명하다.마침내 이 도령은 춘향을 만나 정을 나눈다. 여기서 나오는 것이 유명한 사랑가이다. 사랑가에는 정중한 우조에 느릿한 진양조 장단에 맞추어 부르는 우아한 '긴사랑가'와 중중모리장단으로 부르는 발랄한 '자진사랑가'가 있다."....나이 어린 사람들이 부끄럼은 훨씬 멀리 가고 정만 답쑥 들어 하루는 안고 누워 둥글면서 사랑가로 즐겨보는데," 하는 아니리에 이어 긴 사랑가는 이렇게 시작된다.「 "만첩청산 늙은 범이 살진 암캐를 물어다 놓고 이는 다 덥쑥 빠져 먹든 못허고와그르르르르르르 탕탕 부딪치고, 아이고, 여보, 도련님, 이제 허신 그 말씀이 재담이요, 농담이요, 실담이요, 패담이요. 사람 죽는 구경을 도련님이 허 시랴오. 우리 당초 만날 적에 … 무엇이라 말하였소. 산해로 맹세허고 일월로 증인들을 삼어 상전이 벽해가 되고 벽해가 상전이 되도록 떠나 사지 마잤더니 주일년이 다 못되어 이별 말이 웬말이요. 나 의 손길 부여잡고 창전에 멀리 나가 경경이 맑은 하늘을 천번이나 가르치고 만번이나 맹세허였지요. 맹세 구름이 저기 떴소. 말을 허오, 말을 허여. 공연한 사람을 살자살자 조르더니 평생 신세를 망치네 그려. 향단아, 건너방 건너가서 마나님전 여쭈어라. 도령님이 떠나가신단다. 사생결단을 헌다고 죽는 줄이나 아시래라."」높고 가는 세상성(細上聲)과 진양조 장단에 계면조로 이별의 절박감, 세계가 사라지는 듯한 이별의 처절함이 고조된다. 이별가는 모흥갑, 박유전, 성민주, 유공렬이 특히 잘 불렀다고 한다. 또 서편제의 문을 연 박유전이 만든 춘향과 이도령의 '오리정 이별' 대목도 유명하다.넷째 부분, 춘향가 중 가장 변화가 많은 부분으로 평조, 우조, 계면조, 설렁제 따위가 두루 쓰이고 장단도 진양조 장단, 중모리장단, 중중모리장단, 자진모리장단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하다.먼저 호색하기 짝이 없는 변학도가 육방관속을 거느리고 서울에서 남원까지 내려오는 정격을 그린 '신연맞이' 가 흥미롭다. 자진모리장단에 우조로 촘촘히 엮어나가는 탓에 장단을 짚기가 어려워 고수의 솜씨가 드러나는 대목이라 한다. 정정렬의 더늠이 유명하다.또 한때 코미디 프로의 소재로 많이 사용되었던 '기생 점고'도 재미있다. 살구꽃 행화, 봄비 맞은 버드나무 가지 같은 춘흥, 님 그리워하는 반월, 가을 못에 가득 핀 연꽃 같은 홍련, 국화, 설행, 금선…자연과 옛 시인의 정취와 사계절의 꽃이 어우러지는'기생점고'는 음악적으로도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여류 명창 진채선이 잘 불렀다고 한다.한편 춘향은 자기를 잡아오라는 명을 받고 사령들이 달려오는 줄도 모르고 이 잘 불렀다고 전해진다. "…행주치마 산발헌 여자 죽어 사귀혼신, 아이 죽어 동자혼신. 둘씩 셋씩 짝을 지어 움실움실 웃음 치며 훌쩍훌쩍 울음 울며 으으으으으으으으 히히 어으 울음을 우니…" 하고 속목, 즉 가성을 섞어서 귀곡성을 뽑으면 듣는 사람들의 등골이 다 오싹할 정도였다고 한다.또 명창 임방울은 춘향이 옥에 갇혀 이 도령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쑥대머리'를 지어 불러 한순간에 장안의 유명인사가 되기도 했다. 그의 쑥대머리는 축음기판으로 나와 10만 장이 넘게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임방울이 "쑥대머리…"하고 입을 열기만 해도 당시 사람들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고 한다.다섯째 부분, 장면이 일변해 이몽룡의 '과거장' '어사분발' 등의 대목이 씩씩한 우조에 자진모리장단으로 위엄있게 그려진다. 이몽룡이 전라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내려오는 도중에 나오는 '농부가'와 '자진농부가'는 남도민요로 불리기도 한다. 전문적인 명창들에 의해 갈고 닦인 남도민요가 예술성이 높은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박석치 올라서서 좌우 산천을 둘러보니, 산도 옛 보든 산이요, 물도 옛 보든 녹수로구나.…" 하고 어사가 된 이몽룡이 남원이 내려다보이는 박석고개에 올라 과거를 화상하며 부르는 '박석고개'는 진양조 장단에 우조와 계면조가 엇갈리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춘향 어미 월매의 '후원의 기도'에 이어 나오는 '걸인쫓기' 대목은 월매의 계면조와 이몽룡의 우조가 교체하는 구성으로 인해 강한 감동을 준다.또한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조화시켜 관중을 마음대로 울리고 웃기는 판소리의 맛이 이 부분에서도 잘 나타난다. 비장함의 한복판에도 해학이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몽룡이 거지 차림으로 나타나자 춘향 어미가 방성통곡을 하는 대목에 이어 이몽룡이 밥을 먹는 대목이 나오는데 "먼산 호랭이 지리산 넘듯, 두께비 파리 차듯, 중 목탁 치듯,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고수 북 치듯 후닥뚝딱." 하고 휘장모리장단으로 몰아친다.이몽룡이 옥에 갇힌 춘향과 만나는 대목은 애절한 계면조 가락에 느린 진양중모리장단 평조 뒤풀이로 축제 분위기 속에 춘향전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지금까지 춘향가의 내용을 대략 살펴보았다. 오늘날 많이 불리고 있는 춘향전 바디로는 정정렬 바디, 송만갑 바디, 김세종 바디 등이 있다. 현재 명창으로 알려진 성우향, 조상현 등은 김세종 바디를 잘하고 근래에 세상을 떠난 박봉술은 송만갑 바디에 능했으며, 정광수는 김창환 바디를, 김여란은 정정렬 바디를 잘한다.해방 후 김연수는 춘향가를 다시 짜서 그의 제자인 오정숙이 8시간 이상을 불러 한때 세간의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다. 또 춘향가의 여러 바디를 독창적으로 소화시켜 만든 '김소희 춘향가' '박동진 춘향가'도 있다.춘향가는 진정 판소리 중의 판소리로서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도 사랑 받고 자랑할만한 우리의 삶이자 가슴이다.2. 영화 '춘향뎐'조선조 숙종시대, 남원부사 자제 이몽룡은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남원고을에 내려온지 수삭이 지났으나 오로지 책방에 갇혀 공부만 하자니 짜증이 나던 차에 방탕한 마음이 생겨 방자를 앞세우고 광한루 구경을 나선다.흥겨운 가락과 함께 농악놀이가 펼쳐지는 단오날, 씨름판도 벌어지고 그네터엔 처녀들의 그네놀이가 신명나는데 그 무리속에서 해도 같고 달도 같은 뛰어난 미인을 발견한 몽룡은 그만 넋을 잃는다. 퇴기 월매의 딸 춘향이라고 방자가 넌지시 이르자 몽룡은 당장 불러오라고 재촉한다.몽룡의 성화에 못이긴 방자는 춘향에게 몽룡의 뜻을 전하지만 춘향은 "안수해, 접수화, 해수혈"이라는 말을 남기고 향단과 함께 그네터를 떠난다. "기러기는 바다를 따르고, 나비는 꽃을 따르고, 게는 굴을 따른다"는 뜻인 즉, 직접 자신을 찾아오라는 춘향의 뜻을 알아챈 몽룡은 야심한 밤을 틈타 춘향집을 방문한다. 몽룡은 춘향 어미 월매에게 춘향과의 백년가약을 원한다는 뜻을 밝히고 불망기를 써서 자신의 마음이 영원히 변치않을 것임을 맹세한다. 전날 밤, 연못에 잠긴 청룡의 꿈을 꾸었던 월매는 이 일을 길조로 믿고 쾌히 수락한다. 그 밤으로 이루어진 몽룡과 춘향의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