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느 날 인터넷으로 네덜란드 회화전을 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사실 난 네덜란드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왠지 이 회화전에 흥미가 가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우리에게 그리고 나에게도 익숙한 17세기 '하멜표류기'로 우리나라를 서양에 최초로 소개한 헨드릭 하멜과 우리나라를 2002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루어내게 도움을 주었던 거스 히딩크 그리고 풍차의 나라라는 것이 나를 이끌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회화전을 보려하니 너무나 막막하였다. 그냥 가서 그림이나 보고 와야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그때의 네덜란드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가야할 듯싶었다. 그럼 우선 17세기 네덜란드의 상황을 조금 이해 하고나서 그림들을 감상하고 이해해야겠다.2003. 10. 05 덕수궁 미술관앞 전경 < Ticket >>'황금시대'라 불렸던 네덜란드 상황을 살펴보면,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지배하에 있었는데 오란녀공公 빌럼 Willem van Orange의 지휘 하에 신교가 우세했던 북부 7주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전쟁을 전개, 혁명을 이루어냈고 반면 가톨릭이 강하고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남부 10주(플랑드르 지방)는 혁명에 가담하지 않고 스페인의 치하에 있다가 후에 벨기에로 독립한다. 당시 네덜란드는 해상력을 바탕으로 자유도시국가들이 경제적 번영을 누렸으며, 그로 인한 경제적 부가 왕이나 귀족이 아닌 시민계급의 차지로 돌아갔다. 또한 가톨릭 체제에 반대하여 신앙과 사상의 자유가 존중되었으며 시민문화가 융성하여 여러 제반 여건이 변모하였다. 이렇게 네덜란드는 17세기에 들어와 외교,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되는데, 이 시기를 '황금시대(Golden Age)'라 부른다.가톨릭 지배가 우세했던 유럽사회에서는 실제 교회나 궁정의 후원으로 바로크의 궁정풍 문화가 유행했던 데 반해 신교가 우세했던 네덜란드에서는 교회, 궁정, 귀족 계급의 문화적 후원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시민들이 주 구매자가 되면서 일상적인 주제들이 선호되었다. 즉 그들의 삶과 도시, 환경을 묘사하는 사실적인 경향의 정물화, 장르화(일상생활의 장면), 풍경화 등이 인기를 누렸던 것이다. 작품에 대한 수요도 많아서 다양하고 많은 작품들이 제작되었으며, 작품의 주제가 분화되고 전문화됨으로써 네덜란드는 이러한 장르들의 본원지가 되었다. 또한 암스테르담, 하를렘, 레이든, 헤이그 등 각 도시마다 지방의 특색을 살린 화풍들이 발전하고 있어 네덜란드 회화는 어느 나라와도 견줄 수 없는 높은 수준의 독창성과 질을 확보하게 되었다. 즉 다수의 천제가 배출되는 위대한 시민의 미술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1. XML이란?XML은 1998년 2월 W3C에서 첨 XML표준을 발표한 이래 정밀 발전하면서 세인들의 관심을 끌어오고 있습니다. 먼저 정의를 내리자면 인터넷 웹을 구성하는 HTML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차세대 인터넷 언어이다. HTML보다 홈페이지 구축기능, 검색기능 등이 향상되었고 클라이언트 시스템의 복잡한 데이터 처리를 쉽게 한다. 또한 인터넷 사용자가 웹에 추가할 내용을 작성, 관리하기에 쉽게 되어 있다.2. XML의 필요성웹에서 사용하기에 HTML은 지금 잘 쓰이고 있다. 또한 DHTML,CGI,ASP,PHP....을 통해서 이제는 동적인 페이지의 구성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또한 문제점들이 속속히 들어나고 있다.첫째로 NT-IIS-ASP-MSSQL, LINUX-Apache-PHP-MySQL등의 것에서 바로 호환성이란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다.둘째로 홈페이지를 새롭게 개편한다고 할때, 디자인이 바뀌면 HTML 내용이 모두 바뀐다. 물론, 텍스트인 까닭에 복사&붙여넣기가 가능하지만 너무 불편하다. 디자인 부분만 디자인 부분만 바뀌면 되는 것을 데이터부분도 바꾸어야 하는 셈인 것이다.이러한 것들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XML이 필요한 것이다.3. XML의 장점첫째로 문서의 내용과 디자인이 완전히 분릴 되어 있다. 즉, 문서의 구조와 프리젠테이션의 분리라 할 수 있다.둘째로 다양한 방식의 링크 기능을 제공 한다. XLink, XPointer를 이용하면 기존 HTML에서 이용하던 하이퍼 링크 이상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셋째로 표준화된 DTD를 통해서 모든 분야에서 사용이 가능하다. 요즘 많이 사용되는 WML,SMIL,SVG등이 모두 XML에 기반을 둔 것들이다.4. XML의 시작XML문서는 DTD의 포함 여부에 따라서 Well-formed문서와 Valid문서로 나눌 수 있다. 먼저 Well-formed란 잘 구성되었다는 뜻이다. 즉, XML 스펙을 보았을 때 XML문서가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지키고 있다면 Well-formed라고 한다. 그럼 Valid문서란 무엇인가? 기본적인 조건에 무언가를 하나 더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즉, 그것이 바로 DTD라고 하는 것이다. DTD란 Document Type Definition의 약자로 문서타입을 정의하는 것을 말한다. 그럼 문서의 타입은 정의해서 어디에 쓰는걸까? HTML에서 기본적으로 모든 시작은 로 한다. 그리고 내에서 와가 나온다. 즉,........위와 같은 구조를 가지게 된다. &me; 구근회 황은혜 2002 8 28 XML의 기본개념 과 활용방안 XML 문서구조 DTD 이글은 XML과 관련된 레포트입니다. 다음과 같은 차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XML이란? XML 의 필요성 XML 의 장점 XML 의 시작 위 XML 문서의 내용을 하나씩 설명해 보자. XML 선언이라는 부분이다. 이 문서가 XML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 이다. 실제로 WML이나 SMIL과 같은 언어도 이러한 선언으로 시작하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version이란 현재 XML 스펙 1.0을 지원한다는 것이며,encoding은 사용할 언어를 지정하는 것이다.우리는 euc-kr이나 ksc5601로 지정하면 한글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만약 이 부분이 빠지면 당연 한글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XML 문서에서 이런 형태로 사용되는 것을 PI라고 부른다. 우리말로는 처리명령이라고 하는데그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PI이며, 스타일 쉬트를 지정하는 것이다. XML은 문서의 구조를 나타내는 부분과 포맷팅, 즉 보여주는 부분이 서로 다르다. 바로 그 포맷팅을 담당하는 것을 가리키는 부분이다.만약 이 부분을 빼고 문서를 IE에서 볼 경우 특정 포맷이 정해지지 않았기에 그냥 문서의 내용이 보여진다. 한번 그 부분을 삭제하고 브라우저에서 읽어보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것이다. 위에서 DTD를 포함하고 있는 문서는 Valid 문서이다 라고 설명을 하였다. 그러한 DTD를 지정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이 바로 "Document Type Declaration"인 것이다. 간단히 의미를 해석하자면 System 즉, Local PC에 있는 메모.dtd란 파일을 DTD정의로 사용한다. 그 메모.dtd의 루트 엘리먼트가 "메모"라는 것이다.먼저 엘리먼트가 무엇인지 부터 살펴보면 위의 XML문서에서 와 같은 것이 보인다.이런 것을 엘리먼트라 한다. 우리가 HTML에서 태그라고 했던 것이라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하지만XML에서는 을 시작 태그라 한고, 를 닫는 태그라고 한다.그리고 ...까지를 엘리먼트라고 한다. 그리고 그중에서 특히 와 같이 가장 먼저 사용된 엘리먼트를 루트 엘리먼트라고 한다. 그럼 HTML에서 루트엘리먼트는 이 되겠다.5. XML의 구성요소XML DeveloperHello World 위와 같은 문서는 분명히 XML 문서이다. 위의 예제를 가지고 XML의 구성요소를 살펴보도록 하겠다.엘리먼트 (Element)위 문장에서 루트 엘리먼트는 이 되겠다. 루트 엘리먼트는 다른 엘리먼트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밖에 , , 와 같은 태그를 시작 태그라 한다. , , 같은 태그를 닫는 태그라 한다. 그리고 이러한 .., ..., ...를 엘리먼트라고 한다.그런데 HTML에서는 닫는 태그를 빼먹어도 별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XML에서는 이러한 태그가 빠진다면 에러로 인식하게 된다. 반드시 모든 엘리먼트는 쌍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그렇다면 , 와 같이 혼자서 존재할 수 있는 엘리먼트는 어떻게 해야 하나?XML 스펙에 따르면 위와 같은 것들은 엘리먼트 내에 내용을 포함하지 않은 것으로서 빈 엘리먼트 (Empty Element)라고 한다.이러한 빈 엘리먼트의 표기법은 와 같은 두가지 형태로 표현 가능하다. 일반적으로는 두 번째 방식으로 표현을 많이 하는 편이다.위의 예제에서도 와 같은 표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엘리먼트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시작태그와 끝태그의 엘리먼트 이름이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다음과 같이 엘리먼트가 사용되었다면 잘못된 것이다.XML Developer속성 (Attribute)위의 예에서 태그를 살펴보면, 태그는 그림을 나타내고 그림의 소스는 xml.gif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었다. 만약 와 같이 혼자만 사용되었다면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게 될 것이다.HTML에서 처럼 이와 같은 것을 속성이라고 부른다. 엘리먼트는 속성을 포함할 수 가 있는 것이다. 속성은 문서를 간결하고 해석하기 쉽도록 만들어준다. 만약 속성이 없었다면 태그를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xml.gifcenter그러나 속성을 활용하면 과 같은 형태로 나타낼 수 있다.첫 번째 형태도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두 번째의 경우가 보다 간결하고 해석하기도 용이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MS-SQL의 경우 XML로 DB에서 데이터를 가져올 때 이 속성을 활용하고 있다. 속성에서 주의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HTML에서는 다음과 같은 표기법도 허용되었다.그러나 XML에서 속성값은 반드시 " 나 '로 둘러 쌓여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Well-formed한 문서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즉, 이러한 형태로 사용되어야 한다.처리명령 (Processing Instruction)사이에 표현되고 특정 응용 프로그램에 대해 처리할 정보나 명령을 가리키는 역할을 한다.대표적으로 XSL을 선언하는 부분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위와 같이 적용되면 XML의 스타일쉬트를 지정하고 타입은 text/xsl이며 소스는 메모.xsl에 있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것을 처리명령이라고 한다.와 같은 것도 처리명령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형태가 처리명령과 같다. 여기서는 XML 버전 1.0을 사용한다라고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XML에서는 이와 같은 것을 특별히 XML 선언이라고 부른다. 모든 XML 문서의 시작은 XML 선언으로 해야 한다.위 예제에서는 사용되지 않았지만 몇가지 중요한 XML의 구성요소를 추가로 설명하도록 하겠다.엔터티 (Enitity)< > & 와 같은 것들을 HTML에서 여러번 보았을 것이다. 이것은 각각 < > &를 나타낸다.
Ⅰ.서론현재 미국은 세계 최강의 국가로 발전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문명국가로서 많은 나라들이 미국의 정치제도를 흉내냈다. 하지만 효과적으로 정부와 자유를 보장하는 정치체제를 이룩하지 못하였다. 현재 미국이 있기까지 그들의 정치 발전상황을 알아보고 그들의 선거제도에 대하여 살펴봄으로써 미국 정치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민주주의의 대표주사로서의 미국을 알고 이해하기 위해선 그들의 정당 체제와 선거형태를 살펴보고자 한다.Ⅱ. 본론◆ 정당1. 정당의 의미 역할현대 민주주의 정치체제들은 경쟁적 정당체제를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도 정당은 공직선거에서 후보자들과 정책의 대안들을 유권자에게 제시한다. 또 선거 후에는 집권세력과 반대세력을 조직화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민주주의 질서가 효율적이고 원활하게 돌아가게 한다. 요컨대 정당은 정부가 구성되는 과정과 정부의 통치력이 행사되는 과정 모두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미국은 정당조직이 가장 먼저 수립, 발전된 나라이며, 미국정당들은 정당의 일반적인 성격과 기능을 지니고 있다. 반면, 미국의 정당과 정당체제는 대부분의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과는 다른 독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에 의해 정치과정 전반의 미국적 특성이 나타난다. 따라서 미국 정당을 이해하는 것은 미국 정치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2. 정당의 발전 과정미국은 지난 2백여 년간 비교적 경쟁적인 양당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정당은 거듭 변화하여 왔다. 특히 정치구조의 변화나 남북전쟁, 경제대공황 등 주요사건은 정당 발전의 주된 계기가 되어 왔다.1)초기정당 형성정부수립 초기 정당은 없었다. 그러나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정책을 둘러싸고 지지자들과 반대자들로 갈라지면서 정당은 태동하였다. 워싱턴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상공인을 중심으로 한 부유층이었고, 반대자들은 농민, 근로자, 채무자 등 서민층이었다. 이들 양대 계층 중 전자는 해밀턴이 주도한 연방주의자당(Federalists)의 지지세력으로, 후자는 토마스 제퍼슨이 주도한 민주-공화당(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두 개의 정당 즉 공화당과 민주당이 정권을 주고받으면서 양당 정치체제를 구축해왔다. 남북전쟁 이후 1930년대 초기까지 16명의 대통령 중 13명이 공화당 출신일 만큼 공화당이 압도적 우세를 지켜왔다. 193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경제 대공황이란 큰 변수의 작용으로 소외계층인 소수민족, 노동조합원, 농민 남부출신을 효과적으로 규합한 민주당이 승리하였고 그 이후 1960년대까지 민주당은 다수정당이 되었다.4)양당정치의 위기1970년 이후 양 정당간의 우위는 분명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유권자들의 정당 선호도는 낮아지고 변화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같은 기간중 대통령 선거에서도 공화당이 우세하였으나, 의회에서는 민주당이 우세였다. 유권자들은 1992년과 1996년의 대통령선거에서는 민주당을 지지하면서 1994년과 1996년의 의회 선거에서는 공화당의 양원 지배를 인정할 만큼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를 두고 정당정치의 종말이 왔다고 단언하는 학자들도 있다. 많은 정치학자들은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이미 미국정당의 쇠퇴를 경고하였다. (Colemen,1996). 이는 양당의 지지계층간 이동과 TV나 선거 캠페인 전문기관의 발전으로 정당이 실제 선거과정에서 하는 역할이 줄어든 것에 그 원인이 있다.3.주요 정당 소개1)다수 정당미국정치의 특징인 양당체제는 민주·공화 양당이 주도하고 있다. 양당의 구성원은 흑인에서 백인, 기타 소수민족까지 다양한 계층을 포괄하고 있고 그 조직은 철저하게 분권화 되어 있으며 정책방향은 이념성을 배제하고, 미국의 가치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지지기반이나 개별 정책에서는 판이하다. 먼저 공화당은 민주당보다는 50여 년 늦게 1854년 노예해방 논쟁의 와중에 창당되었다. 공화당은 창당된 지 6년만에 당 후보인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북부의 모든 주지사 선거에서 승리한 외에 상·하 양원 선거에서도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급성장을 이루었다. 이러한 양극화로써 공산당, 사회당, 사회주의 노동당 등이 있고, 둘째, 특정 이슈 정당으로서 채식주의자당, 금주당 등이 있으며, 셋째, 경제적 저항당으로서 인민당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특정후보에 의해 설립된 후보 지향당으로서 개혁당, 진보당 등이 있다. 그러나 제3의 정당이 밀물처럼 출현했으나 다수 정당의 벽을 깨지 못하고 사라지는 이유는 많은 미국 유권자들이 제3의 정당을 지지하고 있으나 자신의 표가 사표(死票)로 될 것을 우려하는 것과 만약 대통령으로 당선되더라도 의회와의 심각한 대립 갈등으로 정치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한 선거구에서 1명만 뽑는 소선거구제와 전통적으로 영국에서 유래된 양당체제 선호경향도 제3의 정당 진출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제3의 정당이 정치적 낭비로만 그치는 것은 아니며 미국 정치발전에 기여한 바도 크다(Kruschke, 1991). 어쨌든 제3의 정당이 있다는 것은 유권자들의 기존 정당에 대하 불만의 표시인 것이므로 이들 정당이 대변하지 못하는 의견이나 이익들을 제3의 정당이 표방하면서 유권자들(그렇지 않으면 기권하였을)을 투표에 참여하게 하고 있다. 즉 일부 유권자들의 불만이 쌓여 곪거나 폭발하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미국정치에서 제3당은 양당의 결함을 보완하면서 다양한 유권자의 욕구를 여과하는 장치로 충분한 기능을 하는 것이다.4.정당 조직1)전국단위 조직미국의 경우 우리와 같은 중앙당의 개념이 없다. 소위 중앙당에서 모든 당 정책을 총괄하고 공천을 하는 중앙집권 식이 아니다. 극히 미국식으로 풀뿌리 당조직인 선거구위원회(precinct committee) 구성원들이 시 또는 카운티 당위원회를 구성하고 또한 이들이 주 당위원회를 구성하는 상향식 조직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처음 미국에 정당이 출현할 때에도 의회 내에서나 그 실체를 볼 수 있었을 뿐 유권자들이 투표할 때 구체적으로 어느 당이라고 판단할 만한 실체는 없었다. 그러다가 의회에서 소속 당 대통령 후보를 지명하던 것이 전당대부분은 자기의 정치생명을 지방 당조직에 걸고 있다. 정당활동에 관한 규제도 모두 주법(州法)에 근거하고 있다. 주에는 시나 카운티의 대표로 구성되는 주 당위원회(stste party committee)가 있다. 주에 따라 크기나 구성, 기능 등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주위원회는 전당대회 개최를 제외하고는 전국위원회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다. 주위원회 의장은 평균 3년 미만 재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대부분은 명예직이지만 일부 주는 상근 유급직으로 하고 있다. 의장의 역할은 당대표로서 주로 자기당 출신 정치인(주지사나 시장 등)들과의 긴밀환 협조관례를 유지하며 자기당 출신 주지사가 없을 경우 독자적인 영역확보가 가능하기도 하다.3)지방 단의 조직정당조직의 피라미드 구조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조직은 미국 전역에서 10만 개 이상의 선거구 단위별로 구성되어 있는 선거구 위원회(precinct and ward committee)이다. 이들 선거구별 위원회는 시 또는 카운티 위원회를 구성하는데 지방단위 조직은 이들 시 또는 카운티 위원회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지방단위 조직은 대부분 자원봉사자로 구성되어 있어 조직체로서 결속력은 약하다. 선거에 즈음해서 조직되어 정치자금 모금, 당원 관리, 캠페인 등 정당활동을 전개한다. 지방단위 당조직의 활동 양태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선거자유롭고 진정한 선거가 민주주의의 최종적 기준이며 그 시험대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건국 당시 헌법제정자들이 가장 큰 노력을 기울인 것도 공직자를 어떻게 선출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고, 그후에도 보다 공정하고 효과적인 선거방식을 수립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 왔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선거제도는 대단히 독특한 형태로 발전하였다.1.선거제도의 특성1)선거의 종류선거의 종류는 선출대상에 따라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4년마다 실시되는 대통령, 연방의원, 주지사, 주 의원 등을 선출하는 총선거(general election)가 있고, 그 사이 2년마다 벌어지는 중간을 갖고 있는 유권자에게만 투표권을 허용하겠다는 취지로 설정된 것이다. 그러나 거주이전을 자주 하는 20대 이하의 청년층 투표자나 하층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며, 노동자들과 소수인종의 투표권을 부인하기 위해 악용되기도 했다.3)선거 유형미국에는 세 가지 유형의 선거 즉, 예비선거(primary election), 총선거(general election), 결선투표(run off election)가 있다. 그 외에 주민투표(referendum)가 있으나 선거로 보기는 어렵다. 예비선거는 총선거에 출마할 각 당의 후보를 지명하는 선거로서 미국만의 독특한 제도이다. 우리 나라와 유럽 같은 나라에서는 후보 결정이 중앙당의 공천 형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예비선거가 필요 없다. 하위 당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후보를 결정하는 이 제도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서는 더없이 좋은 제도로 생각되지만, 정당의 영향력이 쇠퇴되는 부작용도 크다.4)당선 기준미국 선거에서 당선자를 결정하는 기준은 몇 가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득표율과 상관없이 다수 득표자가 승리하도록 되어 있다. 이 기준은 총선거를 비롯한 대부분의 선거에서 적용되는 기준이다. 일부 남부 주에서는 예비선거의 당선기준으로 과반수 득표를 요구하고 있으며, 과반수 득표자가 없을 경우 결선투표를 실시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에서도 당선기준으로 대통령 선거인단의 과반수 확보를 요구하고 있다.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하원에서 선출하게 된다.5)선거구연방의회와 주의회의 선거구는 매 10년마다 주정부에 의해 재획정된다. 10년마다 이루어지는 인구센서스 결과 나타나는 인구의 변화를 선거구에 반영하기 위해서이다. 구역획정의 주체는 주의회이고 획정은 주법률로 제정하도록 되어 있다. 연방의원들도 보다 유리한 선거구 획정을 위해 주의회 의원들에게 로비를 한다.6)투표용지1890년 이전에 유권자는 정당별로 투표권을 행사했다. 즉 각 정당은 독자적으로 자기당 후보만 기재된 투표용지를 인쇄하여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에게 배부하면 유권자들
세계화와 민주주의라는 전망 하에서 시민사회의 부활을 전제로 하고 쓰여져 있습니다. 즉, 세계화 과정 속에서 국가 권위의 상실이 시민사회의 부활을 요구하고 있지만, 세계화는 동시에 시민사회에 위협을 주고 있다. 국경이 없는 경제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세계화의 시대에 시민사회에 대한 논의가 그 어느 때 보다도 활발하다. 주권국가의 쇠퇴와 함께 주권국가의 기능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자발적 결사체에 기초한 시민사회의 부활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 보다도 강하게 요구되고 있으나 바로 그 시민사회가 세계화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것이 세계화시대의 딜레마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주의 동구뿐만 아니라 제3세계에서도 반시장주의적 대안을 추구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2차세계대전이후의 역사는 이러한 국가주의적인 대안이 점진적인 소멸하는 역사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시장운동에 대한 대항세력으로서의 국가의 약화는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 국가주의의 요새였던 현존 사회주의가 몰락한 뒤 동구와 러시아에서는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추구하고 있지만, 그 경제는 합법성, 윤리성을 상실한 비시민적인 경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제3세계의 신생민주주의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은 그에 따르는 전환의 비용을 정치적, 경제적으로 조직되지 못한 약한 사회세력에 과중하게 부담시킴으로써 개혁자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있고 신생민주주의의 공고화도 위협받고 있다. 선진 자본주의국가에서도 모든 경제적, 사회적 문제를 과거의 국가주의의 과잉에서 찾으려는 신보수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으며, 이러한 신보수주의의 물결 하에서 과거 시장경쟁의 낙오자들에게 제공되어오던 사회적 안전망이 거두어지고 있다. 시장운동은 맹위를 떨치고 있으나, 고삐 풀린 시장운동에 제동을 걸어 왔던 국가가 권위를 상실했다는 것이 세계화시대의 고민이다. 세계화시대에 시민사회의 부활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진 것은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려는 제3의 대안을 모색하는 가운데서 나온 것이다. 시민사회론자들은 세계화시한 그의 시민사회는 자율성, 비찬탈성, 시민성을 특징으로 한다. 즉, 슈미터의 시민사회는 국가와 사적영역으로부터 "이중적 자율성"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동의 이익과 가치를 보호·추구할 수 있는 "집단행동의 능력"이 있으나 국가기구나 사적생산자들을 대체하려고는 하지 않으며(비찬탈성), 기존의 시민적·법적 규칙의 틀 내에서 행동한다는 "시민성"의 특징을 갖고 있다.시민사회는 공적 목적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국가의 공적권력을 찬탈하려하지는 않으나, 국가를 통해서 국가를 변화시켜 자신들의 공적 목적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며, 종교적 근본주의집단 또는 국수주의적 종족집단과는 달리 사회의 정치적, 기능적 공간을 독점하려하지 않고 사회의 부분적 의사만을 대표하려는 다원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시대에 시민사회가 다시금 각광을 받게된 것은 신자유주의적 시장주의의 범세계적 확산이 반드시 민주주의를 외연적으로 확산시키고 내포적으로 심화시키지는 않는다는 비판적 성찰에서 나온 것이다. 시민사회론자들에게 시장주의 확산은 공동체감의 약화와 승자독식의 사회를 낳아 계급·인종·종족·지역·성·세대 간의 불평등을 심화시켜 사회통합을 위협하고 있다. 이때 시민사회는 국가주의가 더이상 대안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민결사체로 구성되는 시민사회야 말로 사회적 연결고리(social connectedness)를 회복시킬 수 있는 대안이 되는 것이다. Schmitter는 민주적 제도나 과정에 따라 행동하는 시민적 규범을 가르쳐주며(민주주의 학교), 원거리에 위치한 중앙정부에 개인들의 요구를 전달하는 통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자치적 시민결사체는 공공기관이나 사적생산자에 걸린 과부하를 덜어주는 기능을 할 뿐 만 아니라, 불법적 권력찬탈이나 다수의 독재에 의한 자의적, 폭군적 권력에 대한 저항의 보루라는 점을 중요시 하였다.대중 민주주의 하에서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개인들이 시민 결사체를 통해 적극적 시민들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자발적 시민 결사체의 매개를 통해서 개인들의 사적 이익과 "인민의 의사"의 형성이 어렵게 되고 사회는 강력한 이익·지역·종교·언어·종족집단으로 쪼개질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어떤 시민사회를 건설하느냐가 더 중요해지고 있으며, 국가의 억압 보다도 시민사회의 억압에 대하여 이야기해야할 때인지 모른다. 미국사회에 대한 이러한 논의는, 한국의 경우에 지역 및 집단 이기주의와 풀뿌리 보수주의의 문제로 이야기 되고 있다. 특히, 풀뿌리 보수주의는 지역주의의 강력한 밑거름이 된다고 이야기 된다. 신보수주의자들은 시민사회 쇠퇴의 원인을 거대 복지국가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신보수주의자들에 의하면, 복지국가가 가족, 교회, 시민결사체 단체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권위와 기능을 복지 전문관료들에게 이양하도록 강요했다는 것이다. 관료화된 복지프로그램은 시민들로 하여금 서로에 의존하지 않고 정부에 모든 것을 의존하게 함으로써 교회, 자선단체, 친목단체와 같은 시민결사체의 전통적 역할을 찬탈해 버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보수주의자들은 동구의 현존 사회주의의 몰락과 경제의 세계화로 인해 비효율적이고 억압적인 것으로 드러난 국가를 축소하고 자발적 시민 결사체에게 원래의 역할을 되돌려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시민사회의 쇠퇴의 책임의 일부는 시민결사체의 자발성, 온정주의, 창의성을 질식시킨 복지국가의 관료주의에 있지만, 더 큰 책임은 시장의 과잉에 있다고 주장한다. 사적 시장의 과잉으로 무한경쟁이 전개되면서 지역 공동체에 대한 기업의 시민적 공약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장의 과잉은 사회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소수에게 부를 집중시킴으로써 보통 시민들의 경제적 불안을 가중시킴으로써 시민 결사체적 생활에 헌신할 수 있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를 뺏어가 버린 것이다. 진보주의자에 의하면, 국가는 반드시 시민사회의 적이 아니다. 러시아에서 국가가 후퇴하자 시민사회에 의해서 뒷받침되는 시장경제가 아니라 마피아가 설치는 무정부적 자본주의로 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민사회를 부활, 재충전시키기 위해서 권위 있는 국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으로 자리잡게되면서 제3세계의 정부와 인민들은 글로벌 생산네트워크에 편입되기 위해 피나는 경쟁을 하고 있다.특히 "구매자 주도 생산네트워크"를 장악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은 생산비용의 계산에 따라 언제든지 하청기지를 옮길 수 있다. 따라서 제3세계의 정부, 기업, 노동자들은 생산비용을 줄이기 위해 시민으로서의 삶을 영위하기에 필요한 소득, 사회복지, 고용안정, 노동조건을 희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경제의 세계화가 "글로벌 동네(global village)"를 가져다주기 보다는 "글로벌 약탈(global pillage)"을 보편화시키고 있는 상황하에서 건강한 시민사회의 출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세계화는 계급으로서의 자본가를 강화시켜 주고 있지만 계급으로서의 노동자들을 위협하고 있다. 노동계급의 해체는 시민사회를 약화시킬 것이다. 세계화는 지난 수세기 동안 진행되어온 노동계급의 시민권 확장투쟁에 제동을 걸고 있다. 지난 수세기동안 노동자들은 시민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격렬히 벌렸다. 마샬에 의하면 노동자들의 시민권 운동은 정치적 시민권에서 사회적 시민권, 경제적 시민권 쟁취운동으로 계속 확산되었다. 2차대전이 끝난 뒤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간에 치열한 체제경쟁은 자본주의 지배엘리트들로 하여금 자본주의에 대한 노동계급의 동의에 대한 대가로 시민권의 확대라는 양보를 하게 된다. 사회민주주의적 계급타협을 가능케 했던 중앙집중적 노사협상제도는 자본과 노동의 중앙집권적인 정상조직이 자본과 노동을 독점적으로 대표하고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노동의 국경이 사라지면서 해외 노동자들이 유입되어 노동조합은 더 이상 노동의 공급을 독점할 수 없게 된 반면 자본의 국경이 사라지면서 자본가들은 자신의 투자를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장소로 이동시킬 수 있게된 것이다. 세계화로 조성된 비대칭적인 힘의 불균형은 노동자들에 대한 자본가들의 협상능력을 강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자본의 공세에 대해 국가가 자본과 노동의 타협을 강제, 보장, 보상할 수 있는 능력 역시 감소 노동간의 역사적 타협체제가 무너지고 있다. 시장의 변덕, 시장의 횡포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해온 복지제도가 해체되고 있으며 선진국의 노동자들은 사회적 시민권, 경제적 시민권을 점차 상실한 채 정치적 시민권만을 가진 초라한 모습으로 전락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지구촌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기 보다는 종족, 지역, 인종, 종교, 언어에 기반한 특수문화가 번성하고 있다. 헌팅턴은 새로운 종족, 지역, 종교적 분쟁을 "문명의 충돌"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려하고 있지만, 이를 문화론적으로 설명하기에는 충분치 못하다. 종족, 지역, 종교적 갈등의 근저에는 세계화시대에 종족, 지역, 종교 집단 간에 경제적 불평등이 증대하고 있다는 사실이 깔려있는 것이다. 경제의 세계화는 기본적으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간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경제의 세계화가 사실은 선진국과 제3세계와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으며 이는 새로이 등장한 제3세계의 신생민주주의의 물질적 기반을 더욱 취약하게 하고 있다. 실상 경제의 세계화란 북미, 동아시아, 유럽의 세 거시경제지역의 생산, 금융, 기술 구조가 수렴하고 있는 현상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제3세계 국가들은 국가가 통제하고 있는 경제 모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자유시장경제를 선택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설교받고 있다. 워싱턴컨센서스로 불리우는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은 신생민주주의국가들에게 안정화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 하에 이윤동기 없이 방만하게 운영되어오던 국영기업을 민간에 매각하고, 대량실업의 위험이 존재하더라도 국가의 규모를 줄이고, 가난한 민중들에게 빈약하게나마 주어져왔던 건강, 주택, 사회보장을 축소하거나 폐지하면서도, 국내시장을 외국의 글로벌자본에 개방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세계화로 인해 경제적 지위와 정치적 권력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비서구에 대한 서구의 패권이 강화되면서 비서구사회에서는 서구문화, 스타일, 습관에 저항하면서 비서구화를 주장하는 토착엘리트의 부활이 일어나고 있다(Huntington, 1993).다.
러시아 외교의 특수성구소련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도 국내의 정치 체제를 온전히 보존하는 것이 급선무였고, 그 다음으로 제 2차 세계대전의 부산물로서 형성된 동유럽 지역에서의 사회주의 정권들을 유지하는 것이 주요 과제였다. 그 결과 구소련의 외교 정책에서는 이데올로기와 국가의 안전 보장을 중시하는 경직된 외교 정책에서는 이데올로기와 국가와 안전 보장을 중시하는 경직된 외교가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 외에 구소련은 지리적으로 유럽 및 아시아에 걸쳐 있던 대국이 있던 관계로 지정학적인 요소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구소련은 독자적인 국제 관계 분석의 틀로서 '힘의 상관 관계'를 신봉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소련 외교의 특질도 냉전 체제의 붕괴에 따라 크게 변질되게 되었다.(1)이데올로기 중시레닌에 의한 소비에트 정권의 탄생은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사상의 지원 하에 달성되었으므로 이후 이 사상은 소련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으로써 기능하게 되었다. 특히, 레닌주의(Leninism)는 레닌의 국내 권력 강화를 위한 반대자들과의 논쟁에서 유효하게 기능하게 되었고, 이후에도 정권 강화와 체제 유지를 위한 유효한 수단으로써 사용되었다. (Meyer, 1986, 221∼226). 이러한 경향은 나아가 정치 지도자간의 권력 투쟁에 있어서 이데올로기가 강력한 무기로써 기능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스탈린(Stalin)의 일국 사회주의와 트로츠키(Trotskii)의 영구 혁명론이 대립하였는데, 소련에서만의 사회주의 건설을 주장했던 스탈린이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민족주의(nationalism)와 사회주의가 결합한 일국 사회주의가 소련을 통치하는 국가이념이 되어 (Hough외 1979, 163∼164) 소련은 국제 사회의 문제에의 개입을 자제하면서 국내 경제 발전을 위해 매진하였다.제 2차 세계 대전에서의 소련의 승전은 국제 사회에서의 본격적인 영향력 강화를 가능하게 하였다. 특히, 유럽 지역에서 냉전 체제가 확립되어 가면서 소련의 국내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서 많은 왜곡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고, 결국에는 경제구조의 불균형을 초래하게 되었다. 즉, 군수 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생산재 산업의 기반과 일반 일상품을 생산하는 소비재 산업의 기반 사이에는 심한 불균형이 나타나게 되었다.이렇게 경제 구조의 왜곡화를 자초하면서까지 소련이 미국과의 군사력 경쟁을 강행한 것은 자국의 안전 보장에 위협을 줄 수 있는 국가는 미국뿐이라는 확고한 인식 때문이었다(Fedorenko 1990, 72∼84). 소련의 안전 보장 관의 기본은 첫째, 자국 영토에 대한 안전 확보, 둘째 동유럽의 사회주의 체제 유지와 그 곳에서의 소련의 정치적 지배 지속, 셋째 자국 영토 및 자국 세력권 인접 국가의 중립국화 또는 우호국화 노력, 넷째 제 3 세계에서의 사회주의 정권의 확대 등이었다. 따라서 소련의 주요 안보상 이해 관계는 대미 전략, 제 3세계 전략 등이 핵심을 이루었다.그러나 냉전 체제의 붕괴에 따라 냉전시 소련이 수행했던 3개의 주요 전략에 있어서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미·러 관계가 급격히 변화하여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신생 러시아 연방은 소련 시절과 같은 세계적인 대전략을 수행할 능력을 이미 상실했다. 그렇지만 러시아 연방 하에서도 안전 보장적 요소가 외교정책 형성에 있어서 주요한 기능을 계속 담당하고 있음은 변함이 없다. 다만 전략에 있어서 변화가 나타나 외부의 위협보다는 CIS 국가 간의 불화, 러시아 연방 내의 민족 분쟁 등 내부적인 요소들이 보다 중요시되고 있다(Gross 1992, 339).(3)지정학적 요소 중시소련은 지리적으로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관계로 많은 국가와 국경을 같이하고 있었다. 이러한 긴 국경은 항시 소련에게는 많은 불안감을 주었다. 따라서 소련은 국경을 함께 하는 국가들의 정치 체제 변화에 항상 민감하게 대처하였다. 가능한 한 소련의 체제와 유사한 체제를 갖는 주변국가들을 만드는 것이 곧 소련의 안전 보장을 제고시키는 일이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 소련은 12개의 주변 국가 중 8개의 비교하여 사회주의의 승리를 확인하여 그것을 선전용으로 넓게 사용해 보려는 의도에서였다.전후 미국의 압도적 우위에 의해 모든 세계질서가 운영되었던 시기에는 힘의 상관 관계는 소련에게 불리했으므로 힘의 상관 관계하는 개념 자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를 못했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의 세계질서의 변화에 수반되어 이 개념은 소련의 분석가들에 의해 많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서방 세계의 세력 균형 개념을 냉전의 논리 또는 힘에 의한 정책이라며 강력히 비판하고 나섰다.(Husbund 1979, 499∼500)힘의 상관 관계가 사회주의권(소련)에 유리하게 변하자 미·중 관계는 개선의 방향으로 변화했고, 반대로 중·소 관계는 불화의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소련은 미·중국간의 정치·전략적인 접근에 큰 불안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서구·일본 등과 경제적 삼각 관계를 갖게 되는 딜레마에 빠진 것과 같이 소련도 미·중국과의 전략적 삼각 관계에 빠지게 되었다(Lynch 1987, 96) 그러므로 힘의 상관 관계가 사회주의권에 유리하게 변했다는 소련 측의 주장에는 객관성이 결여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즉, 객관적으로는 일시적으로 사회주의권이 유리한 입장에 섰던 적은 있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회주의의 자본주의에 대한 우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사회주의권 힘의 자본주의에의 접근을 의미했다.2 러시아 외교의 목표(1)소련시대제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소련은 국제 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된 국가였다. 당시의 소련은 사회주의 동맹 국가를 거의 갖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서방 국가 내에서의 공산주의 운동과 노동자 계급 운동에 대한 지지를 통해 사회주의권의 확대를 시도하였다. 그러한 운동은 코민테른(Comintern)에 의해 점차 조직화되어 갔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소련의 외교 정책은 보다 복잡화되어 갔다.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라 소련이 추구해야할 목표가 다원화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승전국의 지위로써 소련은 많은 전리품을 얻게 되었으며, 특히 주변 동했던 사회주의 국가들은 사회주의 공동체의 일원은 아니지만 국내의 정치 체제가 사회주의 체제였던 중국·유고슬라비아·알바니아·북한 등의 국가였다.②제 3세계에의 접근 강화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소련은 이전에 비해 유리한 국제 환경을 맞이할 수 있었다. 즉, 독일 및 이탈리아 등 패전국들은 식민지들을 상실하였으며, 영국 및 프랑스 등의 승전국들도 전쟁으로 인한 경제력의 소모로 인해 국제 사회에서의 영향력이 많이 약화되었다. 이러한 변혁을 틈타 제 3세계에서의 서서히 해방운동들이 일기 시작했다. 이런 경향들이 확대되자, 소련은 이들 반제국주의적 민족주의 운동을 장려·지지하여 효율적인 대서방 세계 전략의 일환으로 이용하려 했다.특히, 일부의 제 3세계 국가들에서 소련형 사회주의를 본보기로 개혁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자 소련은 이들 국가에 대하 경제적 지원은 물론이고 군사적 지원까지 아끼지 않았다. 소련의 지원은 흐루시초프 시기의 물질적인 지원에서 벗어나 브레즈네프시기에 이르러서는 무력 지원에 의한 모험주의 적인 제 3세계 정책이 정착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지원 형태의 변화를 촉진시킨 주요 요소로서는 여러 가지 외부 환경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첫째 헬싱키 회담의 결과 유럽의 현상 유지가 달성되어 동구에서의 소련의 특수한 권익이 서방 세계에 의해 인정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동구는 동·서 대립의 전초 기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둘째, 베트남 전쟁에서의 미국의 패퇴에 이은 베트남의 공산화는 제 3세계에서 사회주의 세력이 우위에 있음을 상징해 주는 사건이었다. 베트남의 공산화는 소련에게 큰 자신감을 불어넣었으며, 소련의 25차 공산당 대회 이후 더욱 적극적으로 제 3세계에 접근 정책을 전개하였다. 셋째, 서방 세계는 중동으로부터의 원활한 석유 공급에 문제가 발생함에 따라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으나, 사회주의권은 그러한 석유 위기로부터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따라서 소련의 경제 상황은 양호한 편이었으며, 동구 국가들도 점차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갔다. 그제 개혁의 성공적인 추진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러하기 위해 러시아는 자국영토의 온전한 보존을 위해 구소련 구성 공화국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하고 있으며, 서방 국가로부터 개혁에 필요한 지원들을 도출하기 위해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기대했던 서방 지원하의 경제 개혁이 원활히 추진되지 못하게 됨에 따라 러시아는 독자적인 경제 운영 방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결과 CIS 국가들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근린 외교를 전개하기에 이르렀다.3. 외교 정책 결정 과정과 기구(1)소련시대구소련 시대의 외교 정책은 당 정치국을 중심으로 서기장, 중앙 위원회 국제부, 중앙 위원회 사회주의국 공산당·노동당, 외무부, 국방부, 국가 보안 위원회(KGB), 과학 아카데미 산하 연구 기관 등이 주요한 행위자로서의 기능을 담당했다. 소련 사회의 성숙화와 더불어 이른바 비공식 그룹의 역할도 점차 확대되어 정책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행위자(actor)의 범위도 대폭 넓어지게 되었다.①서기장소련의 국가 권력은 외형적으로는 소연방 최고 회의 (입법 기관)를 최고 기관으로 각료회의 (행정부), 최고 재판소 등 3권 분립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으나, 실적으로는 공산당이 일원적으로 중앙 집권적인 통치를 수행하였다. 그 결과 소련 사회의 진정한 지도자는 소련 공산당 서기장(General Secretary)이었다. 그러므로 당 서기장이 외교 정책 형성 과정에서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은 시대와 인물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절대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서기장의 외교 분야에서의 역할 발휘 정도는 국내 정치에 있어서의 서기장의 권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국내 권력 기반이 안정되어 있을수록 서기장은 용이하게 외교 분야에 있어서도 권위를 지킬 수 있었다. 반대로, 국내 정권이 불안정할 경우, 서기장은 외교 분야에 있어서도 권위를 지킬 수 있었다. 반대로 국내 정권이 불안정할 경우, 서기장은 외교 정책을 혼자 주도하기보다는 권력 경합 자들과 협력 또는 분담하여 외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