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현대사(1949년 이후 ∼ 현재)1949년 - 중화인민공화국 건립 초기1949년 10월 1일 모택동은 북경 천안문 누상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하고 반제국주의·반봉건주의 신민주주의혁명의 승리를 구가했다.건국 후 중국 공산당 정권에 있어 경제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착수된 것이 제국주의 특권, 권익의 폐지였으며 이것에 의해서 무역과 관세 자주권을 회복하였다. 동시에 국민당계를 중심으로 한 관료자본의 공장·광산·철도·은행·선반 등을 몰수, 국영화 하여 이것을 사회주의 통제경제로 삼아 국민경제의 권위를 세웠다.1950년 - 한국전쟁과 삼반·오반 운동1950년 6월 소련의 지원을 약속 받고 한국전에 참가하였다. 이 전쟁 때문에 중국은 국민경제에 막대한 긴장으로 초래했다.중국정부는 이 같은 위기를 다양한 정치적·경제적 캠페인을 통해 극복하고자 하였다. 1951년 10월에 증산절약운동이 시작되었으며, 다시 12월에는 삼반 운동(독직, 낭비, 관료주의에 반대한다), 다음해인 1952년 1월부터는 오반 운동(뇌물, 탈세, 국유자산의 절취·사취, 필요한 일의 절차누락·원재료 속임수, 국가경제정보의 절취에 반대한다)이 전개되었다. 1952년 10월까지 이어진 이 운동에 의해 많은 사영상공업자는 존속의 대상으로서 막대한 벌금이나 현금을 물게 되던가 그렇지 않으면 자숙·폐업을 강요당하고 기업 내에서는 노동조합과의 세력관계 변화를 수용하게 되었다.1953년 - 제1차 5개년 계획1953년부터 제1차 5개년 계획이 시작되었는데 이의 목적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로 숙원이었던 자립적인 민족경제를 건설하는 것, 둘째로 국가의 안전보장의 기초로서 중공업기반을 확립하고 동시에 하루빨리 서방측 공업국을 따라가는 것, 셋째로 생산력 발전이라는 물질적 기초에 입각해서 국민경제의 사회주의적 개조를 완성시키는 것이었다.이상의 과제를 실현해 나가기 위해서는 중앙집권적인 조직이나 제도가 불가결했으므로 이에 따라 소련의 시스템을 모방한 계획경제 제도와 조직을 만들게 되었다.1957년 - 반우파투쟁자유화의 움직임은 오래가지 못하고 1957년 6월부터 반우파투쟁 이 전국에서 잇따라 일어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건국이래 중국정치는 전환을 맞게 되며 통일전선정책이 방치되고 지식인·저널리스트 등을 이분자로 배제함으로써 중국공산당 일당지배의 강화가 시도된다.이 과정에서 인민 내부의 모순을 적대모순으로 오인하여 지식분자와 애국인사를 포함한 55만 명을 우파분자 로 몰아 본인은 물론 친족·우인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사태를 낳았다.이러한 전개의 기초에는 사회주의적 개조 후에도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두 개의 계급, 두 개 노선의 투쟁이 계속된다는 모택동의 판단 이였다.1958년 - 대약진운동(大躍進운동)1957년 전국적인 대수리건설운동의 성공으로 모택동은 자신을 굳히고 이것을 계기로 전국적인 대약진에 돌입하였다. 대약진이 노리는 것은 철강·에너지·식량을 중점으로 한 생산의 대발전이며 10년 안에 영·미 등 여러 나라를 따라잡는 것이었다.그러나 식량생산이나 선철 등의 생산계획목표에 대한 배증 내지는 조기달성이 각 부분과 각 지구정부에게 커다란 압력으로 부과되었다.그 결과 대약진운동은 자연재해, 인민공사끼리의 경쟁·허위보고, 중공업우선정책으로 노동력·농업·석탄·전력·수송부족 등 국민경제의 각 방면으로 병목현상이 일어났다. 3년 동안의 대약진 운동은 중국을 발전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중국 경제를 어렵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모택동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게 되고 이선으로 물러나게 되며 그 대신 등소평과 유소기가 일선으로 등정하게 되었다.1961년 국민경제의 조정을 시작한 이래 당의 좌경착오를 바로잡고 8자 방침을 관철하는데 노력을 경주하여 효과를 보게 되었다. 7천인대회 후에 당 중앙은 대회의 결정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 조정에 들어갔다. 그 내용은 관리자 및 노동자와 도시 인구를 감소시키고 기본 건설 규모를 축소하고 건설 종목도 폐쇄하거나 조업을 정지, 병합하거나 전업의 방법을 썼다. 또 농업을 강화하여 농업생산을 발전시키고 시장의 안정과 통화의 회수·재정 적자를 소멸시키는 것이었다. 국민 경제를 전면적으로 조정함과 동시에 당과 정부는 지식인들에 대한 정책과 사상 문화 사업의 정책도 조종하게 되었다. 또 과학 기술공작조례 초안과 문예공작 조례 초안을 제정했다.대약진의 좌절이후 국민경제 계획을 계속 조정하면서 농·공업생산의 발전에 노력하여 대단한 성과를 올림으로써 1965년 말에 이르러 마침내 조정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었다.1966년 - 문화대혁명(10년동란)경제적인 조정기는 결과적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있으면서 대약진을 주도한 모택동 체제에 대하여 비판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모택동의 부인이 오함이라는 극작가의 작품 해서파광이라는 소설속 주인공과 당시 국방부장관 이였던 팽덕회가 동일인물이라며 이것은 모택동을 비난한다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어 모택동은 이 도전을 봉쇄하기 위해 이른바 문화대혁명을 전개하였다.표면적으로 비판세력을 주자파로 몰아붙이고 홍위병을 동원하여 전통문화를 봉건적인 것으로 몰아 이를 파괴하는 운동이 일어났다.홍위병 운동의 내용은 처음에 4구(구사상·구문화·구풍속·구습관)의 타파였다. 홍위병 운동의 또 다른 면은 혁명의 바람을 선동하고 혁명의 불을 부친 것이다. 홍위병 운동이 일어나면서 모택동에 대한 개인숭배 사상도 정점에 달하였다. 결국, 홍위병 운동은 문화대혁명의 특수산물로서 이 운동이 일어나 문화대혁명의 파괴성을 더욱 부채질하였으며 국가와 인민에게 큰 상처를 주게 되었다.건국 이래의 문예공작의 성과를 완전히 말살하고 전국의 신문과 잡지는 문예 흑색전선에 대하여 공격과 비판을 전개하여 각 영역에까지 신속하게 파급되었다. 또한 이를 계기로 임표와 강청과의 관계가 밀접하게 되었다.1976년 - 주은래의 죽음과 제1차 천안문사건문화대혁명은 모택동의 후계, 권력 승계문제로 임표집단의 반란이 일어났다. 뒤이은 4인방(왕홍문, 장춘교, 강청, 요문원)은 권력 승계를 위하여 주은래를 비롯한 반대세력을 제거하기 위하여 비림비공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1976년 1월 주은래가 사망하자 4인방은 이 때를 당과 국가의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간주하여 주은래와 등소평을 비판하자 중국인들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
- 아시아와 유럽의 축구문화 비교(잉글랜드, 스페인, 한국 중심) -◎ 서 론월드컵을 통해서도 느꼈듯이 세계 어느 나라이든 축구가 미치는 사회 문화는 굉장히 크다.축구를 통해 붉은 악마라는 단체가 생기게 되고 함께 모여 응원을 하면서 기쁨을 같이 하고 문제점을 파악하여 축구를 즐기는 문화가 정착된 반면에 네덜런드 등 유럽의 훌리건들은 축구가 자기 마음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축구장에서 난동을 부리는 등 축구라는 스포츠 속에서 그들의 문화, 정서, 전통을 옅볼 수 있다.어릴 때부터 축구를 좋아하여 TV속의 축구경기는 많이 봤는데 축구해설자들이 예술을 사랑하는 프랑스인과 프랑스의 아트사커, 보수적인 잉글랜드인과 변화를 꺼려온 잉글랜드 축구, 바이킹의 후예들의 파워 축구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처럼 축구를 통해서 충분히 그나라의 문화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이번 리포트의 주제를 축구로 정하고 유럽축구와 아시아 축구를 비교하기로 하겠다.◎ 본 론※ 잉글랜드세계 여러 나라에서 축구와 비슷한 형식의 놀이는 고대부터 행해져왔으나 공식적인 축구의 탄생은 영국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축구종가라는 자존심 때문에 영국은 절대 영연방 4개 국가가 통합해서 축구 대회에 출전하지 않고 있다. 올림픽에 영국이 유독 축구만 출전하지 않는 것도 이 이유에서이다. 축구 종가답게 영연방 4개 국가는 굳이 통합하지 않더라도 각기 상당한 축구 실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으뜸은 단연 잉글랜드이다. 현재 잉글랜드에 등록되어 있는 선수는 약 150만명 정도로, 이 수치는 국민 30명 중에 1명꼴이 축구선수라는 이야기이다. 상당수의 유럽국가가 그러하듯이 잉글랜드에서 축구는 그들의 생활이다. 특히 과거 잉글랜드 축구팀들은 가난한 노동자들에 의해서 탄생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러한 돈 없는 자들에게 축구는 그들에게 유일한 문화생활이자 억압되어 있던 감정의 분출구였다. 그들은 축구장에서 스트레스를 풀고 다시 일터로 돌아와 일을 하고 다시 그렇게 번돈으로 축구장에 찾아오는 일을 반복하는데 이러한 그들에게 축구는 거의 종교라 봐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같은 연고팀을 응원하는 서포터즈들은 그들만의 유대감을 가지고 있으며 함께 그들의 연고팀을 열광적으로 응원한다. 전세계적으로 축구는 가장 내셔널리즘이 강한 스포츠임이 분명하지만 잉글랜드를 비롯한 여러 유럽국가에서는 사실 월드컵보다 챔피언스리그를 중시하는 클럽문화 형성되어 있다. 프리미어리그 뿐만 아니라 2부리그에 해당하는 디비전 1에서 조차 경기장은 팬들로 가득차며 그 열기가 대단하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로서는 참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스페인축구 실력 1위가 브라질이라면 축구 자체에 가장 열광하는 나라 1위는 스페인일 것이다. 정열의 나라 스페인에서 축구는 투우와 함께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이다. 스페인의 축구 문화는 배타적인 지역주의에 있다. 카스티아와 아라곤으로 형성된 스페인은 알다시피 다민족 국가인데 한국의 전라도, 경상도와는 또다른 차원의 지역 감정을 가지고 있다. 특히 카탈루냐와 바스크 지방에서의 반목이 심하며 이들 민족은 스페인이라는 나라의 국민이라는 인식보다 바스크인, 카탈루냐인으로서의 인식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카스티아는 원수와도 같은데, 그들의 불만을 축구로써 해소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유명한 라이벌 관계는 카스티아의 레알마드리드와 카탈루냐의 바르셀로나일 것이다. 레알마드리드는 카탈루냐 인들에게 있어서는 타도의 대상이다. 이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것인데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일본과의 축구 시합을 갖기전, 혹 일본에서 지고 돌아오게 되면 모두 현해탄에 빠져 죽어라 라는 엄포를 놓은 일이 있는데 카탈루냐의 카스타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안좋은 감정도 이 못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몇년 전 바르셀로나 팀의 에이스였던 루이스 피구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자 카탈루냐의 많은 축구 팬들이 엄청나게 분노했으며 루이스 피구를 가리켜 배신자 , 돈만 밝히는 놈 등으로 비난하며 심지어 위협까지 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바스크 지방의 레알 소시에다드로 이적한 이천수가 축구경기 중 바스크어로 써진 속옷 세레모니를 한 일은 스페인의 지역 문화를 잘 이해한 것으로 평가되는데 이처럼, 스페인의 축구 문화의 핵심은 지역감정이며 누구나 그 지역 축구팀의 회원이 되고 싶어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한국옛 문헌에 따르면 신라시대 때 축국이라는 놀이가 현재의 축구와 유사한 스포츠였다고 한다. 또한 중국 문헌에 따르면 한국사람에 대해서 묘사하길 발을 잘 쓰는 민족이라고도 표현했다. 그래서인지 한국 축구는 인풋에 비해 아웃풋이 상당한 국가 중에 하나이다. 특히 아시아에서 한국의 축구재능은 독보적이다. 그러나 축구는 기업에서 생산하는 상품이 아니다. 다시말해 투입/결과 의 효율성보다 결과 의 효과성만이 중시된다. 한국 축구의 투자가 부족한 이유는 축구 열기의 부족일 것이다. 프로 축구 경기마다 관중석이 만원을 기록할 정도라면 한국이 축구에 투자를 안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한국 축구가 지나치게 내셔널리즘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축구발전의 근간은 클럽문화인데 한국에서는 그러한 클럽 문화 형성이 어려운 실정이다. 유럽의 축구 역사에서 클럽 문화가 발달 한 것은 그 나람대로의 역사적 배경이 있는데 한국 클럽 축구는 전두환 대통령 시절의 의도적으로 형성된 스포츠 붐의 결과물로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유럽에서의 그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한국으로서는 우리보다 10년 뒤 출범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열기 있는 제이리그를 벤치마킹하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이다. 제이리그는 은퇴시점의 유명 축구 선수들을 비교적 싼값에 데려와 축구 열기를 형성했다. 그러한 투자가 현재의 일본 축구를 만들어 낸 것이다. 한국축구의 클럽문화가 한국 축구의 발전을 이끌 것임은 명백하나 아직까지는 미숙한 실정이다.◎ 결 론유럽과 아시아에는 수많은 나라가 있고 각 나라마다 고유한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에 유럽축구와 아시아축구를 광범위하게 비교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었다. 굳이 비교를 한다면 유럽은 조직력을 앞세운 힘의 축구를 구사하고 체력을 바탕으로 190Cm의 높은 신장과 좋은 신체조건으로 인해 몸싸움에 능하고 점프력이나 헤딩력이 강한 반면 스피드, 순발력, 민첩성, 유연성은 아시아선수에 비해 떨어진다. 그리고 아시아는 선수비, 후속공, 역습의 전술을 바탕으로 빠른 스피드와 개인기, 유연성이 좋은 선수들이 많다. 그러나 유럽선수들에 비해 작은 신장과 파워, 그리고 골 결정력 부족으로 유럽에 비해 낮은 성적을 받는 것이다.
- 중국과 일본의 명절과 국경일 비교 -◎ 서 론우리나라와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과 중국에 대해서 문화적 차이를 조사하라는 리포트에 대해 어떤 주제를 선택할까 하다가 몇일 후 크리스마스도 있고 우리나라의 명절인 설날도 있어서 중국과 일본의 명절은 우리와 어떻게 다를까 하는 의문점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주제를 중국과 일본의 명절의 차이점으로 잡고 책도 찾아보고 인터넷도 조사하게 되었다.그 결과 예부터 내려오는 명절은 동북아시아 3국인 중국이나 한국, 일본등 공히 서로 상관관계가 있어 보였으나, 국제적인 이념과 사상에 따라 기념일등은 우리나라와 다른 경우도 존재하였다.아래표는 중국과 일본의 명절과 국경일을 한국과 비교하여 나름대로 도식화 해보았다. 본론에서는 모든 명절과 국경일을 다루면 분량이 너무 길어질꺼 같아서 몇가지 중요한 명절과 국경일만 간추려서 알아 보도록 하였다.{월별한 국중 국일 본1월신정,정월대보름신년오쇼가쓰,성인의날2월설날(음력)춘년(음력),원소절(음력)건국기념일3월삼일절,부녀절춘분4월식목일,한식한식절,청명절식목일5월어린이날,석가탄신일,어버이날,스승의날,근로자의 날노동절,청년절헌법기념일,어린이날,어머니날,6월단오(음력), 현충일단오(음력),아동절7월제헌절, 칠월칠석건당절,건군절다나바타,중원,바다의날8월광복절원폭기념일,오봉,종전기념일9월추석(음력)교사절,중추절(음력)오쓰키미,경로의날,추분10월개천절, 한글날국경절,중앙제(음력)체육의 날11월문화의날,시치고산,근로의날12월동지, 성탄일, 제석(제야)천왕 탄생일,성탄일,오오미소까노히(제야)◎ 본 론※ 중국의 명절☞ 춘절 : 음력 1월 1일과년 이라고도 부르며 중국 최대의 명절로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서 가족 친지들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정부에서는 공식적으로 3일간의 휴가를 정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10일 혹은 심지어 한달간 가게를 문닫고 놀기도 한다. 온 가족인 모여 만두를 빚어 먹고 카드나 마작놀이를 하며 즐긴다. 아이들에게 돈도 주며 폭죽놀이를 즐긴다. 이 때 가정에서는 대문에 빨강 종이로 福 자를 써 거꾸로 붙이기도 한다.☞ 원소절 : 음력 1월 15일춘절 며칠 전부터 원소절까지 중국인들은 푹죽놀이를 하며 즐긴다. 이날에 원소를 먹고 등을 감상하는 풍습이 있다. 원소는 찹쌀가루를 원형으로 빚고 그 속에 설탕과 깨를 넣어 끓인 것으로 가족간의 단결화목과 길조를 상징한다고 한다.☞ 부녀절 : 3월 8일1908년 3월 8일 미국 시카고의 여성들이 남녀평등을 요구하면서 시위를 거행했고, 다음해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국제 제2차 사회주의자 여성대회가 개최되어 이날을 국제 여성의 날로 삼기로 결정했다. 이날이 되면 모든 직장 여성들은 오전 근무만 하고 오후엔 쉰다. 또한 집안일도 하루 쉬며 모든 일은 남성이 도맡아 한다. 중국은 여성 해방이 완벽한 나라이기 때문에 부녀절을 중요시 한다.☞ 노동절 : 5월 1일노동자의 나라답게 이날을 아주 중요시 기념한다. 중국에서는 모범노동자를 선발하여 이날을 기념하고 정부에서는 대대적으로 세일을 하는 등 각종행사를 진행한다.☞ 단오 : 음력 5월 5일멱라수에 빠져 죽은 충신 굴원 을 기리기 위해 종자를 먹는다. 이 종자를 먹는 풍습은 물고기가 굴원 의 시체를 뜯어먹지 못하도록 찹쌀을 대잎에 싸서 멱라수에 빠뜨리는데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또한 용선경기를 이때 많이 즐기는데 그래서 단오를 용자절 이라고도 한다.☞ 건당절 : 7월 1일1927년 7월에 상해에서 건립된 중국 공산당 창건을 기념하기 위해, 1941년 이후 중국에서는 이날을 중국 공산당 창건일로 삼았다 매년 이날에는 기념활동을 거행하고 신문 등에 축화문장 등을 발표한다.☞ 건군절 : 8월 1일중국의 모든 군인들은 모자나 견장에 八.一 이라는 모표를 달고 있는데 이는 1927년 8월 1일의 무장봉기를 기념하기 위해서이다.☞ 중추절 : 음력 8월 15일춘절처럼 중시하지는 않지만 전통 명절 중 그래도 중시 하는 날이라 할수 있다. 고대 중국의 제왕들은 봄에는 해에 제사를 지내고 가을에는 달에 제사를 지내고 소원을 비는 풍습이 생겨났다. 이날에는 월명이라는 음식을 먹는데 이는 가족 친지간의 단결 화목을 뜻한다고 한다.☞ 국경절 : 10월 1일1949년 10월 1일 모택동이 천안문에 올라 전세계를 향해 중국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쟁취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을 선포한 것을 기념한 날로, 중국 최대의 국가 기념일이다. 매년 이날 천안문 앞에서는 열병식 행사를 거행하며 전국적으로 2일간 휴뮤한다.※ 일본의 명절☞ 오쇼가쓰 : 1월 1일1월 1일부터 3일간의 휴일로서 일본 최대의 명절이다. 연하장을 읽고 신년맞이를 서로 축하한다. 삳달 그믐날반에는 가족이 모여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도시코시소바를 먹으며 진쟈에 참배하러 가거나 동료나 친지를 방문하면서 보낸다. 집문 앞에 조상신을 맞아 들인다는 의미로 장신한 소나무를 세우고 그 외 부엌입구, 도코노마 등을 장식하기도 한다.☞ 건국 기념일 : 2월 11일일본이 건국된 날로 초대 천황인 진무천황 이 즉위한 날이라고 한다. 일본 최고의 역사서인 일본서기 에 전해지는 건국의 기술에 의해, 이 날에 건국을 그리워 하고, 애국심을 기른다고 하는 취지로 1966년에 추가되었다.☞ 세쓰분 - 우리나라의 4절기'세쓰분'은 4계절이 나뉘는 날로 입춘, 입하, 입추, 입동의 전날을 가리키는데, 일반적으로는 입춘의 전날인 2월 3일을 세쓰분이라 한다. 이 때에는 마메마끼 라 하여 콩을 뿌려 귀신을 쫓는 풍습이 있다. 귀신은 밖으로 복은 안으로 라는 말을 외치며 집안에 콩을 뿌리고 자신의 나이만큼 주워 먹는 행사인데, 이렇게 하면 1년간 병이 들지 않고 건강하게 보낼 수 있다고 한다. 신사나 사원에서는 유명인을 초청하여 마메마끼 행사를 벌이기도 한다.☞ 히나 마쓰리 : 3월 3일빨간색의 단에 히나 인형을 장식한다. 이 행사에는 여자 어린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주길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헤이안 시대에 일로 인형에 신체의 더러움을 옮겨 바다나 강에 흘려 보냄으로써 재앙을 씻어내는 행사였는데, 이것이 후에 인형을 장식하는 마쓰리로 발전하고, 18세기에 이르러 3월 3일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골든 위크(Golden Week)특별한 행사나 명절은 아니지만, 4월 29일 식목일부터 5월 3일 헌법기념일, 5월 4일 국민 휴일, 5월 5일 어린이 날까지 연휴가 이어지는 주간이다. 회사에 따라서는 사이에 끼인 날까지 휴무하여 8∼9일간 휴일이 계속되기도 한다. 유원지나 행락지는 온통 사람들로 붐비고 공항은 해외여행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만원을 이룬다.☞ 다나바타 : 7월 7일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헤어져 있는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번 만난다는 중국의 전설에 의한 것으로 에도시대에는 막부의 공식행사중 하나였다고 한다. 년 공식행사로서의 다나바타는 폐지되었지만 아직도 이날을 기념하는 행사는 이어진다. 상점가에서는 화려한 장식물을 내걸고 손님을 끌며 문구점에서는 단자쿠를, 꽃가게에서는 대나무를 판다. 가정이나 유치원 등에서 주로 어린이들을 중심으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며 다나바타를 즐긴다.☞ 중원 : 7월 15일이 날은 과거의 음력으로 볼때 오본 에 해당하는 날로 고향을 찾거나 선물을 가지고 윗사람을 찾는 풍습이 있었다. 지금도 중원 을 전후한 날에는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을 보내는 풍습이 있다. 일본어로는 '오츄우겐'이라 한다.☞ 바다의 날 : 7월 20일바다와 바다의 교통을 이해하고 관계자들에게 감사하는 날이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여선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오본 : 8월 15일을 전후한 명절(백중맞이)돌아가신 선조를 모시는 날로서 불단에 불을 켜고 조상의 영혼을 집에 모셔 들인다. 많은 사람들이 귀성길에 오르고 성묘를 가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본오도리 를 추는 곳도 많다. 본오도리 는 악기 연주자나 노래하는 사람이 서 있는 대를 중심으로 빙빙 돌며 추는 독특한 원무이며 이는 선조의 영혼을 공양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젊은 남녀의 만남의 장소가 되기도 하면서 점차 오락화 되었다. 우리나라의 추석과 비슷하며 주요행사로는 무카에비(맞이하기), 하카마이리(성묘), 봉다나(제물선반), 봉오도리(윤무), 도쿄오(독경), 오쿠리비(배웅하기)등을 한다.☞ 오쓰키미(中秋明月) : 9월 15일경보름달을 구경하는 날로서 과거에는 음력을 사용하여 날짜가 정해져 있었으나 지금은 양력을 사용하므로 매년 조금씩 날짜가 다르다. 음력 8월 15일에 보름달을 즐기는 풍습은 헤이안 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전해졌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가을의 첫 수확물을 바치는 의례일이 되기도 하였으며 달을 노래하는 많은 시가가 불리워졌다.☞ 시치고산 : 11월 15일어린이의 성장과 건강을 기원하는 행사로서 3살, 5살이 된 남자 어린이와 3살, 7살이된 여자 어린이가 대상이 된다. 기모노를 입혀 신사에 데리고 가 참배하고 치토세아메 라는, 장수를 기원하는 과자를 사서 이웃이나 친척들에게도 돌린다.
에너지와 환경교 수 명 : 김학준 교수님 소 속 : 정보통신공학부 학 번 : 2001174085 이 름 : 김희경 제출 일자 : 2006.05.19(금)목 차우리나라의 에너지원별 년도별 현황, 수급과 전망을 도표를 곁들여 쓰시오. - 우리나라의 에너지원별 1차에너지 수요전망 - 국내별 에너지현황(에너지원별 그래프) - 국내별 에너지현황(년도별 그래프) - 국내별 에너지현황(에너지원별 년도별 그래프) 강의를 듣고 앞으로의 각오와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은 어떻게 전개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쓰시오. - 강의를 듣고 앞으로의 각오 -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 전개방향 참고자료우리나라의 에너지원별 1차 에너지 수요전망3.27.5311.8 (100%)263.6 (100%)192.9 (100%)93.2 (100%)합계10.110.18.6 (2.7%)5.6 (2.1%)2.1 (1.1%)0.8 (0.9%)신탄기타3.87.552.0 (16.7%)39.5 (15.0%)27.2 (14.1%)13.2 (14.2%)원자력-1.9-1.21.2 (0.4%)1.2 (0.4%)1.4 (0.7%)1.6 (1.7%)수력5.420.148.0 (15.4%)32.1 (12.2%)18.9 (9.8%)3.0 (3.2%)LNG4.010.760.3 (21.2%)58.9 (22.3%)39.8 (20.6%)14.4 (15.5%)유연탄-1.8-11.72.3 (1.8%)2.6 (0.9%)3.1 (1.6%)9.9 (10.7%)무연탄석 탄2.17.6139.6 (44.8%)123.7 (46.9%)100.3 (52.0%)50.2 (53.8%)석유'00-'10'90-'00연평균 증가율(%)*************990구분※ 석유 비중은 감소하나 LNG 사용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가 예상됨.단위 : 백만Ton국내별 에너지현황(에너지별 그래프)석 유석 탄L N G수 력원자력신탄기타국내별 에너지현황(년도별 그래프)93.2백만톤총0.8백만톤신탄기타13.2백만톤원자력1.6백반톤수력3.0만톤LNG24.3백만톤석탄50.2백만톤석유1990년도192.9백만톤총2.1백만톤신탄기타27.2백만톤원자력1.4백반톤수력18.9만톤LNG42.9백만톤석탄100.3백만톤석유2000년도311.8백만톤총8.6백만톤신탄기타52.0백만톤원자력1.2백반톤수력48.0만톤LNG62.6백만톤석탄139.6백만톤석유2020년도263.6백만톤총5.6백만톤신탄기타39.5백만톤원자력1.2백반톤수력32.1만톤LNG61.5백만톤석탄123.7백만톤석유2010년도국내별 에너지현황(에너지원별 년도별 그래프)강의를 들은 후 앞으로의 각오에너지를 활용하고 소비하면서 우리는 생활의 편리, 도구의 이용, 이동 등에 매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에너지소비의 무분별한 증가로 인해 에너지의 고갈, 환경오염 등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되였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상당 부분의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는 현실에서 볼 때 우리 주변의 전기, 연료 등의 자원을 절약하는 습관을 길려야 할 필요성이 있다. 1차 에너지원의 고갈로 인해 조력, 풍력, 태양, 파력, 바이오 매스 등을 이용한 대체에너지를 강의 한 9주차 강의가 제일 인상이 깊었고 특히 21세기의 에너지 강국은 산유국에서 대체에너지 기술 보유국으로 변환된다는 소리를 듣고 우리나라도 자원을 아끼고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대체에너지 개발에 힘쓴다면 충분히 에너지 강국의 대열에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에너지 강국이 되려면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에너지의 절약을 위해 가까운 거리 일 경우 걸어 다니고 겨울에 춥다고 히터의 온도를 올리는 대신 내복을 입어 보온성을 유지하고 불필요한 전기의 낭비를 막기 위해 전기제품을 사용 후 콘센트를 뽑는 습관을 길려야겠다. 물론 나 혼자 에너지를 절약한다고 에너지 강국이 되고 에너지 고갈을 늦추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에너지의 절약의 긴급함을 에너지와 생활이라는 과목을 듣지 않는 친구들에게 알려서 에너지에 대한 인식을 고칠 수 있도록 노력을 하면 내가 바라는 에너지 강국에 좀더 가까이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 전개방향1에너지 절약 정책의 강력한 추진과 에너지 가격 정책 전환 에너지 수요에 공급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수용 가능한 온실가스의 공급 가능량에 수요를 맞추어야 한다. 에너지소비절약, 부하관리 등 '에너지수요관리정책'을 착실히 추진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한국은 2010년 이산화탄소 방출 예상량의 28%를 줄일 수 있으며 신규 발전소 건설을 억제할 수 있다. 에너지 가격을 비정상적으로 낮게 유지하는 정책을 변화 시켜야 한다. 탄소세 도입 등 가격 정책의 과감한 전환이 있어야 할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확고한 정책 의지 한국 정부와 산업계는 온실가스 방출을 줄이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정책과 투자 패턴을 변화시켜야 한다. 산업구조의 재편과 에너지 절약,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의 세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전력공급을 두 배로 늘리려는 정부의 계획은 대폭 수정되어야 한다.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 전개방향2재생가능 에너지원의 역할 확대 현재의 대체 에너지 중에는 폐기물 에너지가 90%를 차지하고 있어 실제 재생가능에너지의 역할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재생가능에너지의 생산비용은 계속 낮아져 2000년경에는 완전한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화력발전소와 핵발전소의 비용이 환경적 이유로 계속 상승한다는 것이 고려되어야 한다. 도시지역 상업용 건물에 대한 첨두부하용 태양광 발전 도입, 서해안의 섬지역이나 폐광 지역 중소도시에 지역 주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재생가능에너지 시범사업 실시 등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 전개방향3전력산업의 독점 해체 한국전력에 의한 완전 독점은 효율 향상과 절약에 대한 투자를 가로막고 있으며 재생가능에너지 사업자의 시장 참여를 봉쇄하고 있다. 전력사업 분할을 통해 대용량 집적발전과 원거리 송전 시스템의 개혁을 꾀해야 한다. 자동차 증가의 억제 한국의 자동차 보유대수는 85년 100만대에서 97년 1,000만대로 증가했으며 그 결과 수송부문이 이산화탄소 총배출량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끊임없는 도로 건설은 이산화탄소 흡수원인 산림을 파괴하는 주요인이다. 온실가스 감축과 대기오염 방지, 생기 있는 도시의 회복을 위해 자동차를 줄이고 대중교통과 보행자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할 것이 요구된다.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 전개방향4에너지 저소비형 산업구조로의 전환 영흥도 화력발전소 건설 등 과거에 계획된 사업들은 과감하게 포기되어야 하며 에너지 다소비형 신규 사업에 대한 강력한 억제 수단이 마련되어야 한다. 국내 수요를 초과하는 에너지 다소비 업종을 퇴출 시키고 에너지 저소비 업종이 산업의 중심이 되도록 정책 방향을 수립하고 경제적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 핵에너지 확대 정책의 포기 핵에너지는 이미 사양산업으로서 개발도상국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핵발전소 1기를 건설하고 운영하기 위해 무려 137억 달러의 외화가 필요하며 이런 부담이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진다.참고자료http://ael.chungbuk.ac.kr/ael/lessons/subject/iee2/05/L02-%C7%D1%B1%B9%BF%A1%B3%CA%C1%F6%BB%EA%BE%F7%C7%F6%C8%B2-%C1%B6%BC%BA%BA%C0-%C7%D1%B1%B9%B0%E6%C1%A6%BF%AC%B1%B8%BF%F8.ppt#334,1,슬라이드 1 http://www.kemco.or.kr/up_load/pds/%BD%C9%C6%F7%C1%F6%BE%F6%B9%DF%C7%A51%28%BB%EA%C0%DA%BA%CE%29.ppt#434,1,슬라이드 1 http://www.kemco.or.kr/up_load/pds/%BD%C9%C6%F7%C1%F6%BE%F6%B9%DF%C7%A56%28%BF%A1%B3%CA%C1%F6%B0%FC%B8%AE%B0%F8%B4%DC%29.ppt http://tsp7.snu.ac.kr/prev_html/data/348.ppt http://wwwk.dongguk.ac.kr/%7Ekou/data/em22.ppt#264,1,물(水) http://ael.chungbuk.ac.kr/ael/lessons/subject/iee2/04/04-4-%BF%F8%C0%DA%B7%C2%BF%A1%B3%CA%C1%F6-%C0%CC%C5%C2%C1%D8-%BF%F8%C0%DA%B7%C2%BF%AC%B1%B8%BC%D2.ppt#283,1,원자력기술개발과 국제환경{nameOfApplication=Show}
{열역학 제 1법칙(에너지보존법칙)▣ 에너지 보존법칙의 정의물체에 일을 해 주면 그만큼 내부 에너지는 증가하고, 물체가 외부에 일을 하면 내부 에너지는 그만큼 감소한다.즉, △U(내부에너지 변화량)=Q(가해진 열)-W(행해진 일)→ 내부에너지 U내부에너지는 절대값이 아니라 차이값으로 정의{TRIANGLE U=U _{b-U _{a=}} int _{U _{b}} ^{U _{a}} {} =- int _{b} ^{a} {} d prime W _{ad} =-W _{ad}→ 일 W일은 경로에 무관한 값이 아니며 경로에 영향을 받는다.{W= OINT d prime W= OINT PdV !=0▣ 실생활 예1 자전거 바퀴에 공기주입자전거에 공기를 넣기 위해 펌프질을 빨리하면 펌프가 따뜻해짐을 알 수 있다. 이는 단열과정으로 볼 수 있는데 빠르게 펌프질 (W)을 하면 열이 빠져나갈 시간적 여유가 없다(Q=0) 따라서 대부분에 일이 내부에너지로 전환되어 펌프의 온도가 상승하게 된다2 기상학에서 열역학△U = Q - W에서 계가 기체라면 W = P × V 라 할 수 있다. 즉, 온도의 변화 = 가해진 열량 + 부피의 변화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대기변화의 과정을 단열과정(공기의 질량의 매우 크므로 가장자리 온도변화는 전체 공기덩어리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이라 가정하면 온도의 변화 = 부피의 변화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원리를 적용할 수 있는 것이 높새바람이다. 바람이 높은 산을 올라가서 내려오면 부피가 증가하고 이는 온도상승으로 이어진다3 사람음식을 섭취하고 그것을 에너지로 방출하는데 인간은 화학적 방식을 선택한다. 만일 먹고 운동을 하는데 살이 빠지지 않는다면 남는 양은 배출이나 배설로 충당해야 한다. 실제로 화학에너지의 효율은 높은 편이 아니다. 50을 먹었다면 운동으로 빠지는 것은 1정도고 나머지는 땀과 배설물로 빠져야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살이 된다. 이 모두를 합치면 50이 되므로 질량은 보존되는 것이다.4 지구지구는 중력에 의해 닫힌 계이지만 완벽히 닫힌 계라고 할 수 없다. 당연히 물질의 이동이 조금씩이나마 생길 수밖에 없다. 만일 완벽히 닫힌 계라고 가정할 경우 지구로 유입하는 에너지와 방출하는 에너지가 같지 않다면 E = mc2에 의한 질량변화가 생긴다. 다만 특수상대성이론이 질량보존의 법칙이 나온 후의 이론이라서 질량보존의 법칙만 갖고 생각하면 물질(원소)의 이동이 없다고 볼 경우 성립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물질의 이동이 없다 하여도 에너지의 이동은 항상 있으므로 지구의 질량은 계속 변화할 것이다.▣ 에너지보존법칙을 통한 나의 인생관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는 베푸는 것이다.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어 이 세상이 극락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닫힌 계에서는 에너지보존법칙이 존재한다. 외부로부터의 영향이 차단된 닫힌 계에서는 에너지가 어떤 일을 함으로써 변환해 물리적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도 전체 에너지 양은 항상 일정하다. 계를 유지하는 전체 에너지의 총합은 감소하지도 증가하지도 않고 보존되는 것이다. 인류가 살고 있는 세계를 하나의 계로 보자.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조금 덜어낸다면 누군가 받아갈 것이다. 반대로 누군가가 나에게 덜어줄 수도 있다. 이것은 자발적인 에너지의 교환이다. 그런데 만일 자신은 아무것도 베풀지 않으면서 얻으려고만 한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피해를 보게 되어있다. 한정된 에너지로 운용되는 세계에서는 내가 가진 만큼 누군가는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즉, 내가 남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누군가는 그만큼 부족하다는 말이다. 가진 사람이 자꾸 욕심을 내면 더 많은 사람이 박탈당할 수밖에 없다. 결국 내가 필요이상 많이 가지려고 할수록 다른 사람들을 고통 속에 몰아 넣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베푼다는 것은 가진 것을 덜어낸다는 뜻이다.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주는 것은 어렵지만 욕심을 덜고 여력을 더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자신이 덤으로 가진 것은 다른 사람들이 덜어낸 것이거나 혹은 빼앗긴 것이니 다시 돌려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내가 덜어낸 만큼 누군가 받아서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실행에 옮긴다면 이 사회가 훨씬 아름다워지지 않겠는가. 인생관이나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라고 하면 정의로운 사람이 되겠다. 선한 사람이 되겠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나는 정의 윤리보다는 관계 윤리적 측면에서 더 많은 생각을 한다. 서양의 윤리 사상에서도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배려 윤리론이나 타자 윤리론 같은 관계 윤리론 같은 관계윤리 지향적인 윤리 이론들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나 자신이 천성적으로 사람을 좋아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기 때문에 제도화되고 규정된 윤리보다는 상호 관계적인 윤리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올바름이라는 것도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관계속에 내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에겐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있다. 해야할 공부도 많고 수양도 더 쌓아야 한다. 하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길을 걷게 되든 나는 사람이 되고 사람을 만드는 삶 을 추구할 것이다. 그것이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의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