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서론II.본론1.한국 무역의 역사와 현재까지의 근황(1) 식민지 시대의 대외무역(2) 해방후 1950년대(3) 수입대체기 (1960년대)(4) 수출지향기 (1970년대)(5) 수출 안정기 (1980년대)(6) 현재 (1990년대~)2.한국의 무역 구조특성과 한일간의 무역구조(1) 한국 무역구조의 특성1 수출 주도형 경제 개발 정책2 정부 주도형 경제 성장3 단순 가공 제품 중심의 수출 전략 (노동집약적인 제품)4 기술 및 자본의 해외 의존성5 불균형적 경제 성장 구조6 산업의 이중구조(2) 한일간의 무역구조3.대일 무역 불균형의 요인(1) 대내적 문제점1 대일 의존형 산업구조2 수출 경쟁력 열위3 수출마케팅 및 일본의 對한국 이미지 개선 활동 부진a.수출마케팅상의 문제점b.일본의 對한국 이미지개선 활동 부진4 기술,자본의 대일 의존도 심화5 일본기업 글로벌 네트워크와의 경쟁격화(2) 대외적 문제점1 일본정부의 수,출입 규제의 심화2 일본의 불합리한 유통구조4.대일 무역 불균형의 개선방안(1) 고전적 개선안1 고기술 기반산업의 선택적 집중 필요2 산업내 분업체계 개선3 일본시장 경합품목 집중공략4 수입선의 다변화,다양화5 수입대체 산업의 육성6 판매,마케팅 활동의 강화7 정부의 효율적 수출지원 정책a.보조금b.간접적인 수출 지원 제도(2) 개발적 개선안1문화 상품과 상품 수출 연계a. 한국문화상품의 현주소b. 일본의 문화상품시장c. 한국문화상품의 일본시장에서의 위치d .문화상품의 개발과 전망III.결론II.본 론1.한국 무역의 역사와 현재까지의 근황 (1965년 이후부터)1) 한국 무역의 역사의 전개과정(1) 식민지 시대의 대외무역한국의 근대화 과정, 곧 세계 자본주의에의 편입 과정이 자체의 힘에 의하여 자율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일본을 통한 타율적인 힘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하는 점에서 우선 그 특수한 의미를 찾아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서구자본주의화 과정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의 자율적인 국민경제 형성 과정 으로 되지 못하였다는 통해 수출을 진작시켰다.(3) 단순 가공 제품 중심의 수출 전략 (노동집약적인 제품)우리 나라 수출입 구조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단순 가공 제품의 수출 전략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나라가 부존자원은 빈약한 반면에 노동력은 풍부하였다는데 주요한 원인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해방을 맞이하였으나, 자본 및 기술이 부족한 우리 나라는 저임금 무역의 추구가 불가피하였다. 풍부한 노동력과 저임금을 배경으로 하는 노동집약적인 경공업에의 특화는 이들 산업이 수요신장률이 낮고 기술 진보가 낮을 뿐만 아니라 선진 제국에서 쇠퇴하는 산업이기 때문에 경제 개발의 단계에서는 당연한 것이었다.60년대에 추진된 두차례의 경제 개발 5개년계획은 투자를 노동집약적인 경공업 분야에 집중적으로 배분하였기 때문에 섬유 산업과 합판 제조업, 가정용 전기제품, 신발류 수출이 급신장하였으며, 정유 산업, 석유 산업, 제철 공업 등 중화학 공업 분야에 기틀을 다져 나갔다.(4) 기술 및 자본의 해외 의존성우리 나라는 1960년대 초까지 자본 및 기술개발 능력의 부족에 따라 선진국으로부터의 자본의 도입과 기술의 도입을 통한 자립화를 도모하기 위한 각종 시책을 수립. 추진해 왔다. 우리 나라의 자본과 기술 도입은 선진국 미국등 구미 선진국과 특히 아시권에서는 일본에 편중된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 나라의 기술 도입은 1962년 9월 중앙 제약(주)이 미국의 화이자(Fizer)로부터 의약 제품 기술을 도입한 것을 효시로 하여 1986년 4월까지 3,695건의 기술 도입을 한 바 있다. < 표 3 >은 우리 나라의 1962년부터 1985년 6월까지의 기술도입실시권 사용료 현황을 나타내고 있다. 전체 기술 사용료 가운데 미국이 43%, 일본이 30%로 미국과 일본이 전체의 75%를 차지하고 있다.이는 우리 나라가 경제 개발 과정에서의 기술 도입이 미국과 일본에 편중되어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또한 경제 개발 과정에 필요로 하는 것은 자본이다. 자본의 조달은 저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우업제품,34억달러 10.5%의 철강 및 금속제품의 순으로 되어있다.1994년과 1995년에 기계류 및 운반용 기계와 전기 및 전자는 전체의 약 65%를 차지하고 그 다음 부류를 합하면 전체의 90%를 넘는다.이들은 자본재이거나 중간재들이다.1990년과 1992년에도 수입비중의 순위는 대체로 1994-95년도와 같다.1990년대에 대일본 수입의 구성은 거의 고정되어 있다고 할수 있다,이는 한국의 대일본 주종 수입품에 대한 수요는 대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1995년을 1990년과 비교하면 기계류 및 운반용 기계와 전자-전기의 비중은 비교적 크게 높아지고,다른 부류는 대부분 거의 제자리에 있거나 낮아졌다.이는 두 부류의 수입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1990년대 대일 수입의 변화를 살펴보면,표 1-3에서 보듯 1992년과 1993년의 수입은 1991년보다 오히려 줄었다.전체 수입에서는 대일본 수입의 비중은 1988년에는 30.7%였으나 1990년 26.6%,1993년에는 23.8%로 줄었다.그러딪 1994-5년에는 크게 늘었는데,이는 엔고로 대일본 수입품의 값이 오르고 한국에서 경기가 오르면서 자본재의 수입도 늘었기 때문이다.그리하여 전체 수입에서 대일본 수입의 비중은 1994년에는 24.8%로 조금 높아지고 1995년에는 24.1%였다.요컨대 한국의 대일본 수출에서 1차산품과 섬유류의 비중이 아직도 높다.하지만 전자-전기는 그 비중이 크게 높아지고 있고,화학공업제품과 기계류의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아직도 한일간의 무역은 산업간 분업이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점차 전자-전기,철강,화학공업제품,기계류등에서 산업내 분업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우리나라 무역의 질적,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1965년 한,일국교가 이루어진지 20년 이 지난 현재에도 일본과의 무역에 있어서는 만성적인 수지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그 적자폭도 65년에는 1억 22맥만 [달러]이던 것이 85년에는 30억[달러]로 늘어난 매년 확대되어 가고 있는 실 좌우되는 측면이 강함.최근의 문제로서는 바로 한국제품이 일본시장에서 협공을 받아 고전하고 있다는 점이다.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중저가품 시장은 중국, 아세안 등에게, 고급품전체적인 시장판세는 일본 등 선진국 제품에 밀리고 있다.우리나라 역시 임금인상 등으로 인해 노동집약적인 제품에 대해서는 경쟁력을 상실하여 일본시장을 대폭 잠식당하고 있어, 우리제품의 고급화가 요구되는 실정이나 이 부분 역시 특정 품목을 제외하고는 일본이나 여타 선진국 기업과의 경쟁격화로 여의치 않는 실정임.이에 반해 중국의 경우는 일본과의 교역에서 큰 폭의 흑자를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198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은 일본수입시장 점유율 면에서 5∼6% 수준으로 한국과 거의 같은 수준이었으나 이후 동 비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1999년에는 13.8%로 미국에 이어 2번째 일본 수입시장 점유국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는 실정이다.(3) 수출마케팅 및 일본의 對한국 이미지 개선 활동 부진1) 수출마케팅상의 문제점우리 나라의 일본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는 또한 시장특성에 대한 이해부족에 있다고 하겠다.일본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시장인 만큼 사전에 면밀한 시장조사가 필요하나, 사전조사 없이 곧바로 수입상 발굴을 통한 마케팅 추진 특히 유통구조 및 가격구조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거래추진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 발생하고 있다.또한 지역별, 상권별 특성에 관해서는 거의 무관심한 실정인 것도 지적되어야 할 상황이다.이는 일본 특유의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관행에 대해 간과하는 경향에서 비롯되는데 사전에 회사소개서를 발송한다거나, 상담후 인사 서신을 보내는등의일본시장에 있어서 거의 필수적인 절차를 생략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발견될수 있다.또한 정기적인 의견교환과 시장정보 교환 등의 채널구축이 미흡하고 최초 면담시 명함의 직위로 상대를 평가하여 실무 책임자를 무시하는 경향은 우리의 대일수출을 어둡게 하는 보이지 않는 그러나 큰 장애요인이다.또한 거래 사후처리에 대한 성의 자·기술이전 증가 → 아시아 각국 거점 기술수준 향상 → 아시아 각국의 대일수출 확대 → 우리나라 대일수출 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나타나기 쉬운 것이다.2) 대외적 문제점(1) 일본정부의 수,출입 규제의 심화우리 관심 품목에 대한 관세장벽 아직도 높기때문에,일본의 대한무역장벽도 한국 對日수출부진의 큰 요인중 하나로 들 수 있는데 먼저 관세장벽의 경우 일본정부가 2000년 4월 1일부터 對韓 GSP공여를 중지함에 따라 한국제품에 적용되는 관세율이 크게 높아진 것이 새로운 對日수출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또한 한국측의 지속적인 요청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아직도 라면, 소주, 가방류 등 관심품목에 대해 높은 관세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한국의 對日수출에 장벽이 되고 있다.또한 수입할당제 등 각종 비관세장벽도 장벽으로 작용 이밖에 한국제품에 대한 수입할당(Import Quota)제 및 관세할당(Tariff Quota)제 시행, 통관절차상의 제한, 까다로운 검사절차·인증·규격 등과같은 기술장벽 등으로 대표되는 각종 비관세장벽도 한국제품의 對日수출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이다.특히 이중 IQ제는 한국의 對日수출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수산물에 집중되어 있어 수산물 수출업계에 큰 어려움이 되고 있는데, 특히 대구·방어·가리비 등 9개 어패류와 김, 다시마조제품 등에 대해서는 한국에 대해서만 별도의 IQ를 적용하고 있어 중국 등 경쟁국에 비해 상대적인 불이익까지 당하고 있다.최근 통계로 볼 때 이들 비관세장벽하의 對日수출은 7.9억달러로 전체 對日수출 159억달러의 5%에 달하고 있음.까다로운 안전검사기준 등의 행정적 장벽 기술적 조사 및 검사테스트시 조사방법이 통일되어 있지 않고, 개개의 행정기관마다 상이한 해석ㅇ 법규의 조문, 정령, 시행규칙 등이 이해하기 어렵고 일본의 인허가 당국은 국제적인 규격, 표준에 따라 검사한 기술적인 수입품을 불인정 또한 일본의 수입업자는 개개 수입품마다 수입허가를 받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특정제품에 대해서는 상세한 설계도 및된다
목 차※개요I.서론II.본론제 1 절. 대우자동차의 역사가.대우자동차의 성장과정나.대우자동차의 프로필다.대우자동차의 주요 산업분야라.대우자동차의 조직과 프로세스(1) 조직의 분석-조직과 프로세스1 조직의 구조a.국내 부분b.해외부분(2) 프로세스의 전체적인 과정분석1 프로세스의 분석마.대우자동차의 산업현황(1) 대우자동차의 성장(2) 경쟁사와 비교한 대우자동차의 경쟁력 (1994∼1996)제 2 절. 대우자동차의 붕괴 과정과 문제점가.붕괴 과정(1) 무리한 확대경영의 지속(2) 그룹내 확실한 수익기반의 부재(3) (단기)차입금의 폭발적 증가(4) 재무구조 악화와 금융비용의 상승(5) 낙후된 직접자금상품 시장(6) 부실기업 인수에 따른 경영악화나.대우자동차의 문제점(1) 노동조합의 문제점1 노조내부의 갈등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간의 갈등)2 노조측의 강도높은 자구노력 프로그램 미비3 노조의 고립과 분열된 투쟁동력4 노조내부의 문제5 정리해고와 관련된 노조의 문제점(1750명 해고후)a.노조 집행부의 '지그재그'b.노조는 아직도 벼랑끝 전술을 고수(2) 경영자의 문제점1 무책임한 '문어발식 경영'2 분식회계 문제3 기업경영의 투명성 부재(3) 정부의 문제점1 자산·부채에 대한 정확한 실사 자료 부재2 구조조정 주체의 미확립3 구조조정 방안의 비현실성4 정부의 잘못된 시각(4) 단체교섭의 문제점1 단체교섭의 목적2 단체교섭의 실패제 3 절.대우자동차의 구조조정 상황과 최종부도가.대우 구조조정 현황(워크아웃)(1) 대우 구조조정 일지(2) 대우 계열사 워크아웃 처리방안 진행 과정나. 대우차 매각관련(1) 대우차 매각관련 일지다. 대우차 최종부도와 그 파장(1) 대우자동차 법정관리 신청과 금융권 여신(2) 대우자동차 부도 피해 현황라.대우차 구조조정과 최종부도상황에 따른 각계의 입장(1) 노동조합의 입장 변화1 노동조합이 주장하는 대안 공기업화에 대한 분석2 고용 및 생존권 확보를 위한 노동조합 대책의 기본방향3 대우자동차노조의 해외매각반대투쟁의 의미(노조의 입장)a 같다.대우자동차의 국제화 비젼{1단계2단계3단계4단계5단계내수시장단계수출지향단계현지시장 마케팅 단계현지 시장 제품 구조 단계글로벌 통합단계단순히 국내시장의 점유가 목표. 수출부를 두어 해외시장 진출해외에 지사를 두어 관리현지 바이어에 의존하기 보다는 자체적인 브랜드관리를 위해 현지에 판매법인을 설립하고 생산법인도 독립적으로 설립함제품 단위별로 현지시장에서 제품생산과 마케팅이 동시에 이루어짐현지 완결형으로서 생산,판매 조직간의 글로벌 네트워크 단계(자료출저:대우자동차 97년 서울 모터쇼 팜플렛)에서 보듯이 기업이 국제화 되는 데는 단계가 있다. 이 단계중 대우는 공격적인 세계겅영으로 4~5단계의 위치에 올라 있다고 판단된다. 아래에서 설명할 각 지역의 생산이나 판매활동이 독립적으로 이루어질 뿐만아니라 연구개발부문은 부평,영국 등의 세계각지역에서 서로 네트워크 관계로 공유할 뿐만아니라 현지 시장에 맞는 제품을 자체개발하고 있다. 이부분은 해와관리 담당에서 또 해외기술 담담이라는 부서에서 전담하고 있다.(각국마다.)이러한 대우의 세계경영은 동구권에서 특히 강세를 보인다. 동부 유럽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 거리는 결코 낯설지만 않다. 티코 렉시아 루비라 레간자 등 한국의 대우 자동차를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비단 폴란드 뿐 만 아니라 루마니아 체코 등 동구권 어느 나라에도 이같은 현상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94년부터 시작된 대우자동차의 세 계경영 위력을 실감할 수있게 하고 있다. 동구권은 세계 경영의 최대 거점지역이기도 하다. 대우는 이 지역을 토대로 오는 2000년 매출 400억달러를 달성하고 승용차 250만대(해외 130만대, 국내 120만대), 상용차 45만대(국내 25만대, 해외 20만대)를 생산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대우자동차의 세계부분의 활동상은 다음과 같다..미국대우자동차측은 또 "내년도엔 판매망 확대와 미국대학생(캠퍼스 어드바이저)들을 통한 직접마케팅 강화 등을 통해 미국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할 계획"이라며 "L경제 와해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6) 부실기업 인수에 따른 경영악화대우그룹은 또한 상대적으로 재무구조가 열악한 부실기업에 대한 인수,합병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는데 그 중심에 서있는 것 역시,하청,부품 업체가 필요한 대우 자동차였다.기본적으로 부실한 재무구조의 부채를 떠앉아 단지 규모만 늘리기에 급급한 대우자동차와 김우중 회장의 경영은 결국 자사의 재무구조의 악화로서 직접적으로 연결되었다.또한 자동차 사업의 특성상 많은 중소하청업체들을 거느릴 수밖에 없는 특성상 대우 자동차의 파급효과는 그만큼 컸으며 부도후의 경제적 피해의 파장력도 어느기업보다 크게 나타났다.아래 글은 월간 조선 11월호에 실려있는 대우그룹의 한 핵심 관계자의 당시 실무담으로 참고하고자 한다.{) 월간조선 11월호 특별부록 - 金宇中의 大宇는 안팎으로 띄어 먹힌 巨大한 『복지재단』이었 다―大宇의 역사는 부실기업 인수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룹 주력사 대부분이 부실기업으로 인수한 것들입니다. 한동안 金회장은 부실기업 정상화에 발군의 재능을 보인 경영인으로 평가되기도 했죠. 부실기업 인수가 大宇의 몰락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보십니까.『근대화 산업화 과정에서 한국기계, 大宇조선, 자동차 등 많은 부실기업이 생겨났습니다. 정부는 골칫덩이들을 하루빨리 새 주인에게 떠넘기는 과정에서 「떠오르는 샛별」이었던 大宇를 인수자로 동원하곤 했습니다. 大宇에서 인수작업을 위해 회계장부를 조사해 보면 부실 규모가 1조원 정도 되는데 채권은행에서는 부실 규모를 5000억원으로 후려칩니다.정부가 자꾸 독촉하니까 양자는 적당히 7500억원 선에서 타협하고 인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출발부터 2500억원의 부실을 끌어안고 가는 셈이죠. 大宇는 이것을 무기로 하여 주식을 공짜로 넘겨받거나 종자돈까지 지원받으니 일종의 특혜관계가 형성됩니다. 이처럼 유리한 조건으로 인수한 회사를 金회장이 운영을 잘 해서 정상화시켰으면 성공인데, 오늘날 大宇의 운명을 보면 결코 성공이란 평가는 듣지 못할 겁자를 통해 1인경영체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계열사를 지배해 왔다.지난 국정감사 당시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5대 재벌 총수의 경우 자신과 자녀 등 특수 관계인을 합해도 2백44개 계열사 가운데 1백31개(53.7%) 계열사의 지분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대우의 전체 계열사 중 절반은 김회장은 물론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전혀 없었지만 공격적인 기업 확장과 자금 조달을 모두 김회장 혼자 도맡아 했다.중요 협상은 김회장이 항상 양자협상 형태로 혼자 해결했고, 결과적으로 김회장이 경영정보를 독점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총수의 독단적 의사결정을 막을 수 있는 합리적인 시스템도 갖춰지지 않았다.IMF 체제 이후 모든 기업들이 사업매각 및 고용조정을 통한 감량경영에 몰두하던 상황에서 김 전회장의 선택은 대세에 완전히 역류하는 팽창과 공격적 경영이었다. 그 결과 12개 주력계열사의 워크아웃이 진행중인 현재 천문학적인 규모의 금융부실과 공적자금 투입이라는 후유증을 남겼다.2 분식회계 문제매각 자산 ‘넣고’ 해외 차입 ‘빼고’ 없는 이익 ‘잡고’ 대우그룹 계열사의 분식회계와 이를 통한 불법대출은 김우중 전회장의 외형 부풀리기식 차입경영과 방만한 회사 운영이 누적되면서 비롯됐다. 계열사들은 이로 인해 매년 적자가 누적되는 등 구조적 부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환란을 전후한 97∼98년에는 경영상태와 재무구조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금융기관 신용자금 차입이 중단될 위기에 놓이자 급기야 회사가 흑자를 낸 것처럼 회계장부를 조작, 우량기업으로 위장을 시도했다. 검찰조사 결과 드러난 대우 계열사의 회계조작 수법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부채는 줄이고 자산은 최대한 늘려 자기자본을 부풀렸으며, 있지도 않은 이익을 계상해 재무제표를 허위로 꾸몄다. 거기다 해외차입금을 부채에서 아예 누락시키거나 채권, 재고자산, 설비 등을 장부에 허위로 기재하는 등 터무니없는 방법이 모두 동원됐다. 대우통신과 대우전자는 이미 팔았거나 생산에 투입돼버려 실제로 없는 재고자산을 장 57∼73%, 대우전자는 40%에 달하는 등 주력사들의 손실률이 큰 것으로 판정 되었다. 대우 채권단들은 계열사별로 채무조정 방안을 마련 중이다. 대우자동차는 총차입금 9조 8천억원중 3조 5천억원을 채무조정하며 2조원은 전환사채, 1조 5천억원은 출자전환하기로 했다. 이같은 채무조정방안은 채권 금융관들 사이의 이견으로 인해 최종결정까지 시간이 좀 더 걸릴 전망이다. 채권단들은 경남기업, 오리온전기, 대우자판 등 대우계열 3사에 대해서는 이미 10월말에 워크아웃 계획을 확정했다. 대우통신과 쌍용자동차에 대한 워크아웃 계획은 채권 금융기관 회의에서 부결되는 등 난항을 겪고 있다. 대우 계열사의 워크아웃 계획은 주력 4개사의 워크아웃이 최종 결정될 때까지 지연될 전망이다. 채권 금융기관들은 대규모 출자전환 및 전환사채 인수에 따른 부담으로 계획안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청산등 다른 방안도 채권단에게 큰 피해가 예상되므로 결국 채무조정 방안에 합의할 수 밖에 없다.나. 대우차 매각관련(1) 대우차 매각관련 일지{대우차 매각관련 일지일 시주 요 내 용1999.8.26대우차 워크아웃 결정1999.11.25채권금융기관 협의회, 기업개선계획 확정2000.2.10대우 계열 구조조정추진협의회 설치2000.2.14국제입찰 초청장 발송 및 입찰 참여의향서 접수(5개사 참여:GM,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 피아트, 현대){대우차 매각관련 일지일 시주 요 내 용2000.3월∼5월참여업체 실사2000.6.261차 인수제안서 접수(컨소시엄 구성:GM-피아트, 다임러크라이슬러-현대, 포드)2000.6.29포드를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2000.7월∼8월포드의 2차 정밀실사2000.8월∼9월포드 대우차 인수 포기 선언(9.15)2000.10.9GM-피아트 컨소시엄, 대우차 인수 논의 개시 발표2000.11.4엄낙용 산은 총재, 노조 동의서 없으면 부도처리하겠다고 선언2000.11.61차 부도2000.11.8최종부도 처리2000.11.10대우자동차 법정관리 신청 대우차 매각관련 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