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소개[제인에어]의 저자 샬롯 브론테는 1816년 4월26일 1남 5녀중 3녀로 출생했다. 그는 아일랜드 혈통인 아버지와 켈트족의 어머니의 영향으로 상상력이 풍부했다고 한다. 이들은 어릴 때 아버지가 사준 작은 병정 인형 열두개를 선물로 받았는데 지극히 사소한 일이고 대단치도 않은 이 선물이 그의 상상력을 확대시키는데 엄청난 기여를 하는 결과를 남았다 별로 할 일이 없는 아이들은 그것으로 공상을 펼치고 마침내 가공의 나라를 만들어 거기에 영웅과 미녀와 시인과 악인등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만들었으며 이들이 만든 나라와 스토리와 인물과 사건이 훗날[제인에어]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그들의 동서 영역은 셰익스피어에서 19C 낭만파 시인 스코트 바이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그래서 작품에서는 낭만주의적 색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이때의 독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1846년 가을에 샬롯은 동생 에밀리와 앤의 시를 같이 묶어 남자 이름의 필명으로 낸 [커러와 앨리스와 액튼의 시집]을 내었지만 두권만 팔렸다.그녀는 시집이 실패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자기가 쓴 첫 번째 작품[교수]를 내었지만 모두 퇴짜를 맞았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다시 쓴 두 번째 새 소설[제인 에어]를 써 런던의 유명한 출판사로 보냈다. 그리고 그녀의 대표작[셜리(1849)] [빌레트(1853)]를 내놓았다. 그리고 그는 1855년에 생을 마감했다샬롯 브론테는 영국 문학사를 빛낸 여류작가 이다. [제인에어]의 저자 샬롯 브론테는 그의 동생 [폭풍의 언덕]의 저자 에밀리 브론테와 함께 가장 많은 독자들을 가진 영국 소설가가 되었다. 그녀의 [제인에어]는 곧 베스터셀러가 되었고 당대의 대 비평가나 작가들로부터 격착을 받았다. 이들 자매의 소설가로서의 인기는 티킨즈를 빼놓는 다면 영국 작가 가운데서 첫손을 꼽아야 할만큼 폭 넓은 것이었다. 우리는 그의 작품중 하나인[제인에어]작품을 이야기 해보려한다.첫째로 [제인에어]는 샬롯 브론테의 서정미 넘치는 감동적인 연예 소설로서 1인칭으로 쓴 [제인에어]는 다분히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들어있다.[제인에어]의 주인공 ‘제인’은 일찍 어머니를 잃은 작가 자신이기도 하다. 첫 부분의 인상적인 에서의 고통스러운 생활이 바로 그녀가 어렸을 떄 당했던 코완 브리지 학교의 추억에 바탕을 두고 있음은 작가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학대를 받다가 죽는 작품속의 인물는 언니 마리아를 모델로 그린 것이다. 씨의 모습에는 브뤼셀에서 짝 사랑했던 에제 교수가 강하게 투영되어 [제인에어]에서 제인의 씨에 대한 사랑의 고뇌를 훌륭하게 묘사할 수 있는 모태가 되었다. 그리고 브론테의 친구인 헬렌넌시의 오빠이며 목사인 헬 리가 샬롯에게 청혼했으나 이를 거절한 일이 있는데 헨리는 바로의 모델인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고백적 사소설로 주문적인 기록도 아니다. [제인에어]는 다소 신비적인 인물 성정이나 묘사가 있는데 이는 샬롯이 어릴때부터 낭만주의 사조에 깊은 영향을 받은데다 요크셔 지방 특유의 기질 같은 것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제인에어]가 오늘날까지 연예소설의 백미로서 높이 평가되는 것은 이러한 낭만적인 내면의 표출 때문이다. 낭만주의적인 전기 이야기의 영향을 받아 독자의 전율을 노린 괴기성 즉과 신비성등으로 운색되어 있고 당시의 독자의 기호에 따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줄거리의 구성 오늘의 안목으로 보아서는 부자연스러운 우연성등이 있다. 또한 주변의 여러 인물을 모델로 삼기는 했으나 여기서도 작가의 강한 상상이 혼합되어 인물의 모습이 변용 또는 과장되어 있기 때문이다.둘째로[제인에어]의 독특한 흥미를 말할 때 우리는 주인공의 개성을 빼놓을 수 없다. 이 개성이 바로 이 작품의 흥미의 원돌력이기 떄문이다. 모든 습관에 반대한 이상하리 만큼 강한 제인의 개성이고 보면 그녀의 파란만장한 편력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그래서 더욱 읽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때로는 탐정 소설 같은 서스펜스가 있고 고딕 로망스풍의 수수께기 와 불쾌 감을 주는 괴기성등은 저자 특유의 상상력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감정의 세계에 리얼리티를 부여했다. 그 때문에 보편적 비개성적인 리얼리키가 아니라 개성적 내면적인 리얼리티를 획득할 수가 있는 것이다. 가장 큰 의의는 빅토리아 시대의 보수적인 문학적 전통과 사회적 관습에 대해서 반항의 소리를 높이 부르짖고 있다는 것이다. 제인은 몸집이 작고 혈색이 창백하며 못생기고 자존심 강한 성격을 가진 가정교사 였으나 진정한 사랑과 자유를 추구했다. 이 사람과 자유를 추구하는 자세는“왜 나는 이다지도 고통을 겪어야 하나”하고 자신에게 반문을 했던 어린시절부터 일관되고 있다. “나는 새가 아니므로 거물에 걸리지 않아요. 나는 독립적 의지를 가진 자유로운 인간이에요”라고 로체스터를 향해서 당당히 말하는 제인에어의 말에는 억압되어 있던 여성의 지위와 지위향상을 주장하는 결의가 보인다 또한 서슴없이 스스로 사랑을 고백하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당시의 사회관념을 타파하고 대담하게 자기를 주장하는 근대 여성의 면모를 엿 볼수 있다. 여성의 해방이라든가 권리의 확립이라는 것을 생각하기에는 당시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제인에어]에서는 두가지 점에서 새로운 여성상을 확립시킨 것으로 높이 평가된다.①소설의 여주인공은 미인이어야 한다는 관념을 깨트리고 전혀 아름답지도 않고 또한 아름답지 않는다고 해서 기가 죽어 지내는 것이 아니라 강인하게 살아가는 여주인공을 내세웠다는 것이다.②교육을 존중하고 교양을 쌓은 두 남성과 대등한 존경을 받으며 결혼한다는 당시 여성의 의견을 구체화시켜 소설속에 묘사했다는 것이다.또한 이 책에서 “나는 그속의 어느 누구와도 같지 않았다. 리드 부인이나 그 여자의 자녀들, 그 여자가 좋아하는 하인들과 조화되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마찬가지로 나도 그들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자기 감정에 충실하다는 것이 기존 질서에 대해서 파괴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샬롯은 재색을 겸비한 히로인을 인정하지 않는다. 샬롯은 인습의 눈에 가리어 보이지 않았던 개성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속에서 뛰어난 재능과 적절한 생명력과 정렬을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한국 속담중에 동의 할 수 없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어린시절 그 성공여부를 판단해 버린다면 지금의 에디슨은 어떻 있을 수 있겠는가? 사람들 중에는 어릴 때 영 실력발휘를 못하다가 뒤늦게 머리가 트여 그야말로 잘 나가는 사람들이 수두룩 하다. 솔직히 그런 사람들이 어디 기대를 받았겠으며 칭찬을 들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토록 어린시절 자신들의 실패를 예견하던 어른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보란 듯이 성공하는 실례가 수두룩하다는 것이다.하지만 옛말 그른거 하나 없다고 슈바이처를 보면 그 속담이 영 어긋진 말은 아닌 것 같다. 슈바이처는 어린시절부터 남다른 면이 있었다. 어리광이나 피우고 떼나 쓰기에 적합한 초등학교 시절 그는 이미 삶의 일부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빈부의 차이와 그에 따른 빈부의 생활들 그는 자신의 삶에서 오는 불평이나 불만이 아닌 다른 이의 삶을 통해 고통과 연민으로 바라 볼 수 있는 삶의 눈이 열린 것이다. 아 마도 이 시절의 이런 고민이 그가 후에 평생을 바치는 사역의 시초가 된 것이리라 생각된다.슈바이처는 자신의 삶에서 끊임없이 배웠고 노력하였고 자신이 품었던 비전을 위해 준비하는 모습이 보여진다. 그 증거로 백과사전에서는 그를 독일계의 프랑스 의사사상가신학자음악가로 설명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알자스가 프랑스령(領)이 되었으므로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게 된다. 루터교 목사의 맏아들로 태어나 스트라스부르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이곳에서 1899년 철학박사학위, 그 이듬해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또, 소르본과 베를린에서 성서를 연구하는 한편 바흐 연구에 심취하였다. 졸업 후에는 목사와 대학강사로, 그리고 어려서부터 천부적 재질을 보인 파이프오르간 연주가로 활약하였다. (사실 그는 8살 때부터 연주해온 솜씨로 이십대에 벌써 파이프오르가니스트로서 이름을 떨쳤으며 특히 바흐의 오르간곡 연주에서는 세계일인자로 손꼽혔다.)그가 우연히 발견한 파리선교사협회의 보고서는 그의 비전에 박차를 가하는 작용점이 된다.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의사가 없어 고통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는 1905년 박애사업에 헌신하기 위해 선교의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발표했고 그는 ‘서른 살 까지는 학문과 예술을 위해 살고, 서른부터는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자’ 라고 결심한다. 서른 살이 되어 모교 의학부의 청강생이 되어 의학을 공부한 후 7년 만인 1913년 드디어 의학박사가 되었다. 그는 연주회의 수입과 저작의 인세와 기부금으로 마련한 의료활동 자금을 갖고, 그를 돕기 위해 간호사 훈련을 받은 아내 헬레네와 함께 람바레네로 출발했다. 그곳에서 오고우에 강둑 위에 원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자력으로 병원을 세웠다. 처음에는 자신의 수입으로 기구를 갖추고 병원을 운영하다가 나중에는 여러 나라의 독지가 또는 재단의 기부금으로 보충했다.제1차 세계대전 동안 그곳에서 적국 외국인(독일인)이라는 이유로 구금되었으며 그 뒤에는 전쟁포로로 프랑스에 억류되기도 했으나 그의 열성을 꺽지는 못했다. 그는 다시 랑바레네로 가서 병원을 재개하여 큰 병원을 이룩하였다. 그는 역사의 거센 변화속에서도 하나의 철학 생명에 대한 경외를 가지고 한가지 일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오로지 아프리카에서의 치료와 그들에게 행하는 박애의 행동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고 어쩌면 이런 그에게 당연한 것인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하게 된다. 그가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까지 그는 자신이 목표한 바에 충실한 삶을 살았었다.
-목 차-Ⅰ.서 론Ⅱ. 청교도주의 개관Ⅲ.용어상의 정의와 적용Ⅳ. 교회와 국가의 한 단체로서의 청교도들1)기도서 논쟁2)가톨릭교회의 악습에 대한 항변3)청교도의 입장에 대한 옹호4)영국교회와의 결별Ⅴ.청교도주의가 미친 영향1)엘리자베스의 교회정책2)청교도의 교회정책3)영국인의 삶과 성경에 미친 영향4)청교도들의 신학과 윤리5)교육과 산업에 미친 영향6)청교도주의와 예술Ⅵ.현대사회에 청교도주의가 남긴 영향1)미국의 현대사회2)현대의 자본주의Ⅶ.결 론Ⅰ.서 론모든 것에 대한 연구가 그렇듯이 청교도 연구도 ‘과연 연구해 볼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물질문명과 과학의 이기가 발달된 시대에 역사 속에서 단지 혁명으로 분류되는 청교도주의 속에 있는 신념이나 종교적 문제점들이 어떤 상관이기에 이러한 연구를 하는 것인가? 라는 여러 가지 의문에도 불구하고, 당시 토론된 근본적 원리들은 매우 실질적이고 민감한 형태로 변화무상한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언젠가 텔레비전 속에서 미국한켠에서 아직도 청교도인들의 삶의 방식과 규칙들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을 촬영한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있다. 청교도라는 용어가 처음 들은 생소한 것은 아니었지만 먼 옛날에 있을 법한, 마친 미국의 역사영화를 보는 듯, 그들의 옷차림과 생활방식을 보면서 청교도주의가 무엇 이길래. 저들을 지배한 것일까? 라는 막연한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그 때는 그들을 설명해 주는 성우의 말이 청교도주의를 대변해 주는 하나의 정의처럼 들리기도 했다.“문명의 이기가 최고조에 달한 미국에서 비록 그들은 차도 타지 않고 재래식의 생활방식을 살고 있지만 그들이 만든 제품과 그들이 재배한 채소는 미국사회에서 인기품목이 될 마큼 정직한 품질을 자랑한다.”청교도라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주제에 대해 공부하면서 다른 어떤 것 보다 청교도주의가 한 역사의 흐름 속에 미친 영향에 대한 궁금증이 강하게 들었다.청교도주의에 대한 매우 다양한 평가들은 그것이 영국의 교에 반대하는 집단들을 관용하기로 한 관용령에 의해 처리되었다.계약 공동체를 수립하여 거룩한 공화국을 실현하려고 한 청교도들의 이상은 토머스 데일에 의해 아메리카 버지니아 식민지로 이식되었으나 가장 큰 기회는 뉴잉글랜드에 찾아왔다. 매사추세츠베이 식민지에 세워진 교회조직의 본래 형태는 장로교와 분리주의의 '중간 형태'였으나, 1648년 뉴잉글랜드의 4곳의 청교도 식민지는 케임브리지 선언을 공동 채택하여 회중교회적인 형태를 취했다.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은 교회의 틀에 따라 세속 사회에서도 공화정을 실시했고 하느님의 선민만이 투표를 하고 다스릴 수 있었다. 이 원칙이 제2세대 거주자들에게 문제가 되자 불완전 서약을 채택했는데, 이는 세례를 받고 도덕적이고 정통 신앙을 가진 사람은 교도의 특권을 누릴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었다. 그밖에도 매사추세츠베이 식민지에서 쫓겨난 로저 윌리엄스는 로드아일랜드에서, 퀘이커교도 윌리엄 펜은 펜실베이니아에서 각각 청교도적 실험을 했다.청교도주의의 특성은 일차적으로 강도 높은 종교 경험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청교도들은 인간이 자신의 죄의 상태로부터 구원받기 위해서는 회심이 필요하고, 하느님은 설교를 통해 구원을 계시하며 이성보다는 성령이 힘 있는 구원의 수단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은 자연히 당시 영국국교회의 설교와 의식의 특성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청교도들은 성서와 일상적인 경험의 이미지들에 주목하는 평범한 설교를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를 중시한 청교도들은 학식 있는 목회를 권장했다. 청교도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회심경험은 칼뱅주의에서 비롯된 예정론과 결합되어 자신들이 역사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라고 하느님이 선택한 선민들이라는 의식을 갖게 했다.Ⅲ.용어상의 정의와 적용만일 청교도주의라는 용어가 1559년의 통일령에서 1662년의 통일령에 이르기까지의 영국국교회를 보다 철저하게 개혁하려는 운동에만 엄격하게 한정할 수 있다면 이는 역사적인 연구의 명료성을 더해 주게 될 것이다. 청교도는 하나관한 것과 마찬가지로 분명히 가톨릭 교회적이며 비기독교적이라고 주장했다. 카트라이트는 1570년 교수직을 박탈당했으나 1572년에 그의 견해를 담은 두개를 경고를 의회에 보냈다. 첫 번째 것은 존 필드와 토머스 윌콕스가 쓴 것으로서 청교도의 교회 개혁 프로그램을 매우 효과적으로 강력하게 기술하였다. 이러한 대략적인 개혁의 필요성은 아직도 영국교회에 남아 있는 가톨릭교회적 악습에 대한고찰이라는 책에 의하여 보충되었고 이 책에 의해서 청교도 성직자들은 기도서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취지에 찬동할 수 없게 되었다. 청교도들의 상세한 비판의 요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①기도서는 설교하는 목회와는 대조적으로 낭독사역에 찬성하고 있다.②그것은 아직 구체화 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확인해 볼 수 없는 설교의 사용을 명하고 있다. 그러한 설교들은 역시 성직자의 주요 활동인 설교 사역을 약화시킨다.③기도서는 제 4계명과 대조적으로 성자들의 날 준수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④성찬식의 순서에 있어서는 성찬 참예자가 성찬수를 받을 때 자리에 앉는 대신 무릎을 꿇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더욱이 그 기도서는 이러한 관련 하에서 사제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여 개인 영성체를 허용하고 있다.⑤세례식은 말씀에서 분리되어 있으며 여자도 사사로이 집행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공적인 세례도 역시 하나님께서 죄를 씻어내는 물을 거룩하게 하셨다고 주장하는 바와 같이 유치하도 미신적인 요소로 가득 차있다. 그 밖에 다른 요소들로서는 대부모가 하는 실현 불가능한 약속, 어린아이에게 던지는 소용없는 질문, 십자가 성호의 사용 등이 있다.⑥결혼식에 있어서 청교도들은 결혼반지를 반대했으며 남자가 아내를 우상화하게 되는 표현, 즉 내 몸으로 나는 그대를 공경하겠노라 라는 구절에도 반대했다. 이밖에도 결혼식에 관련된 미신적인 풍습이 많이 있었다.⑦견진성사는 분별력과 신앙이 동시에 결핍된 자들에게 베풀었으며 이 예식은 부당하게도 주교들에게만 한정되었다.⑧장례예배는 죽은면 부제에도 역시 두 가지 종류가 있는바, 첫 번째는 회계 관리인과 시여물 분배관리인이요, 두 번째는 교회의 개개 구성원에 대한 훈련을 책임지고 있는 감독자 또는 장로의 직분이다. 신약성서와 집사직은 영국국교회의 부제 계급과는 아무런 공통점도 갖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후자는 사제직 바로 직전의 단계에 놓인 직분인 반면에 전자는 명백한 영구직이기 때문이다. 이 직분들은 참으로 기독교회에서만 요구되거나 허용되는 직분이다. 물론 신약성서에는 사도외 예언자 및 전도자 등과 같은 다른 직분도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초대교회 특유의 또는 개혁과 진보의 특수 상황에서만 소생하는 특수직이기 때문에 정착된 교회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통상은 직분은 주교와 부제이다.트래버즈는 청교도들이 매우 중요시하는 또 하나의 요점을 계속해서 전개하고 있다. 보다 상위의 교회행정기관은 특정한 직분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직분에 소속되어 있다 즉 일반 성직자는 위에 임명된 한 개인에게가 아니라 성직자 자신들의 대회에 소속되어 있다. 장로직 또는 세 가지 주요 계층들로서 구성되는 회의가 최고의 권위를 행사한다. 이 대회들은 교회 직원의 임면에 책임을 진다. 이것들은 또한 교인들을 훈계하고 성찬식 참여를 중단시키거나 완전한 파문을 선고하는 등 모든 규율에 관하여 책임을 진다. 가장 근본적적인 요점은 교회 지도자들의 협력관계에 있는 바, 청교도들은 군주제적인 주교직인 초기 기독교의 정신과 막 10:42이하 및 마23 : 8-12등의 취지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4)영국교회와의 결별의회에 대한 제 1차 경고와 트래버즈의 논문은 영국국교회의 예배의식과 행정에 관한 처교도의 입장을 일목요연하게 개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청교도들은 엘리자베스 여왕시대에 자기들의 프로그램의 어떠한 부분도 확보하지 못했다. 참으로 주교들의 행정은 그들 스스로를 옭아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들이 반대했던 예배의식의 세목에 관해서는 그들의 양심이 도무지 위로를 받지 못하였다. 그들은 그녀가 종교적인 진리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녀는 설교 목회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청교도들과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였다. 여왕은 백성들이 신앙으로 교육받든 그렇지 않든 그렇게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청교도들에게 있어서 신교의 입장에 관한 설득력 잇는 설명이 대중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만일 영국이 신교국가가 되려고 했다면 지적인 개종과 학구적인 설교 목회를 바라는 청교도들이 분명히 옳았다. 이 문제에 있어서 엘레자베스 여왕은 반계몽주의자였던 반면에 청교도들은 그들이 표명상 대중적인 승인과 실제로는 대중적인 논의를 위하여 제안했던 견해가 아무리 협소한 것이었든간에 계묭과 교육을 대표하고 있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은 사상을 말살시키고 토론을 질식시키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매우 반동주의적인 기질을 발견할수 있으며 그녀가 추구햇던 가장 근시안적인 정책들 중의 하나는 예언을 억합하는 것이었다. 만일 여왕이 수락만했다면 설교 목회에 대한 청교도들의 요구는 매우 크게 실현될 수 있었다. 교양있는 목회를 유지하는 것이 교회와 국가에게 똑깥이 최선의 유익을 가져다 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심지어는 여왕의 정책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사람들마저도 이 점을 인정했다. 이렇게 목회의 실현을 방해하는 주된 장애물은 바로 여왕의 허욕과 편견이었던 것이다. 어떤 점에 있어서는 청교도 지도자들이 확실히 여왕보다는 영국의 신앙적인 궁핍을 저 정확하게 인식하였다. 사태가 진전되자 개혁된 교리는 개혁되지 않은 규율과 예배와는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개혁되지 않은 예배의식이 개혁 교리를 침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2)청교도의 교회정책기도서를 바탕으로 시작된 비판은 기도서 자체를 비판한다기 보다 기도서의 오용과 기도서에 포함된 의식과 예배가 미신적인 습관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성구집 개정에 대한 그들의 요구는 그것을 명한 성서를 존중한다는 것 이외에도 다른 이유들로 인하여 유용한 것이었다.영국국교회의 성직자 행정에 관련하여 청교도들은 보다.
긴 병에 효자가 없다...이건 어디까지나 자식의 입장에 딱 들어 맞는 말이다.. 나 역시 얼마전 내 어머니의 병간호를 한 적이 있다. 사고로 입원하신 어머니가 참 안쓰럽고 맘아팠다. 자식이어서일까? 그건 참 몇 일 동안만 지속되는 예의상의 감정이었다. 딱딱한 병원침대, 어수선한 잠자리 계속되는 심부름등으로 그 감정은 슬슬 지겨움으로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한달간의 간호에도 그런 맘이 드는데 몇 년씩 부모님의 병 수발을 드는 사람이 새삼 존경스러워졌다. 부모님이라면 당연히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내가 아파할 때 잠도 못주무시고 밤을 꼬박 새며 내 병간호를 하셨다. 잦은 병치레가 많던 나로서는 더더욱 내 어머니에게 있어 걱정의 대상이었다. 사고로 입원하셔서 모든 치료가 가능한 그런 상황 속에서도 병간호에 어려움이 있는데, 치매라는 치료의 희망보다는 절망을 더 많이 느끼게 하는 그 병 앞에서 어떤 자식이든 그 부모가 암담했을 것이다.앞으로 들어야할 많은 시간과 에너지와 관심들은 그 일들이 시작 되기전에 지레 겁먹기 알맞은 병이다. 집 안에 누군가 아픈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모든 식구의 관심과 신경은 그 쪽으로 집중되어 있다. 그것은 각 개인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피곤한 일이다. 더군다나 치매와 같이 기억력 사고력 운동능력이 저하되는 병은 그중 한 사람은 꼭 환자에게 집중하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달고 있다.드라마에서도 이러한 소재를 참 많이 다루고 있는 것을 보인다. 언젠가 한 드라마에서는 치매노인인 어머니를 멀리 버리고 오는 자식의 모습과 그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낸 적이 있다. 보는 사람은 그 자식을 보고 분노하고 비난하고 그 어머니를 불쌍하고 가엾게 여기겠지만, 사실 그러한 상황이 자신에게 닥친다면 아마 장담 못 할 일일 것이다.이 책 속에서처럼, 아니 치매노인이 상주하는 모든 집안이 그렇듯, 치매 어머니로 인해 집안 분위기가 바뀌고, 집안의 모양이 바뀌고, 가족들의 관심이 바뀌는 이러한 일들, 또한 치매노인으로 인해 신경 쓰고 관심을 가져야 하고 육체를 움직여야 할 일이 많아져 이러한 일들이 서서히 스트레스로 다가온다면 이러한 일들이 1년이고 2년이고 기약 없이 계속된다면 복잡한 심리를 가진 사람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일인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나는 절대 그러지 않아. 정성껏.. 내 부모님이 생을 마감하는 그 시간까지 부모님의 병간호를 위해 내 인생을 바칠꺼야..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적어도 발상의 전환이나 사고의 전환이나 시각의 전환이 있기 전 까지는 말이다.이 책에서 봐왔던 김달근 목사님의 모습도 처음엔 그랬다. 견디기 힘들어지고 치매 어머니의 모습들이 점점 더 스트레스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어머니를 보는 시각이, 그 사고가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으로, 밭에 숨겨진 보화로 전환되었을 때 모든 상황들이 전 보다 더 좋아지고 적응하기 쉬워지는 모습들과 과정을 보게 된다.치매란 환자스스로에게나(환자가 의식하든 하지않든) 그 환자를 보호하고 돌보는 사람에게나 실상은 모두에게 다 고통스러울 것이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예전의 기억에 갇혀있는 모습과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판단하지 못하는 모습과 운동신경이 저하되어 잘 다치는 모습들을 지켜보는 것과 대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초보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치매란 사람으로 하여금 경험으로 그 모든 일들을 치러나가게끔 한다. 김달근 목사님의 경우도 여러 부분 경험에서 새로운 지식을 얻어 대처하고 준비했던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치매는 병이다. 병이라면 당연히 간호해야 하고 치료해야 한다. 치매환자를 보호하는 것은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님을 간호해야하는 경우가 더 많다. 부모에 긴병에 대부분의 자식들이 떨어져 나가고, 그래서 어쩌면 당연한 일인 부모를 잘 모시고 긴병의 부모를 잘 보살피는 사람에게 효자, 효부상을 주는 것 다 좋다.다만 그 환자를 대 할 때 더 이상 자신이 받아야 하고 요구해야할 부모님의 모습이 아니라, 이제는 보살펴야 하고 배려해야 하는 환자의 모습으로 볼 필요성을 느낀다. 더구나 우리 믿는 사람이라면 주님의 눈으로 봐라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태도를 바꿔주고 가족에게 있어서 치매 환자의 존재 자체를 바꿔 인식할 수 있는 시작인 것이다. 책의 한 부분에서 이런 말이 등장한다 치매간호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랑이다. 나는 이말에 100%동간한다. 모든 간호가 그렇겠지만 치매와 같은 병엔 사랑만한 치료제가 없다.이 책은 치매환자인 어머니를 돌보면서 느끼게 되는 감정과 모습들, 그리고 대처해야할 모습들이 잘 나와 있다. 이 책 치매환자를 보호하고 있는 많은 보호자들의 지침서처럼 상세하다. 이렇게 정신적 사고적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있는 사람들에게 여러 부분에 있어서 참 많이 유용할 책이다.
제32강 인간의 의무제 39 문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는 의무는 무엇인가?▶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의무는 그의 계시하신 뜻에 복종하는 것이다-인간의 의무가 하나님께 순종이라는 것은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주 시며 은혜 베푸시는 자이시며 주권자이시며 왕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양심을 주셨고 양심을 주재하는 유일한 존재로서 비록 우리는 윗사람들에게 복종해야 하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기를 요구하시기 때문일 뿐 하나님 보다 이들이 우선 이기 때문은 아니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만약 이들이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어떠한 것이라도 행하라 명한다면 우리는 세상 어느 존재보다 하나님께 필히 순종해야할 존재이기 때문에 타 명령에 순종하는 건 거부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에 순종해야할 우리를 위해 그의 뜻을 계시하셨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바 우리의 온전히 순종해야할 유일한 규칙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계시의 뜻 외에 발생하는 모든 만물에 대해 은밀한 뜻을 각각 정해두셨으나 이것이 최상의 것으로 미리 알려질 수는 없기 때문에 순종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의 은밀한 뜻과 계시의 뜻은 이러한 차이가 있다. 하나님의 은밀한 뜻은 행해지고 있고 행해질 모든 일들에 관계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인간의 의지나 의도를 넘어서서 허용하시고 결정하시고 인도하시는 바 죄된 행위에까지 미친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시하신 뜻은 행해야만 하는 모든 일들에 관계하며 의무가 되는 것들과 하나님의 영광과 직결되는 모든 것들에만 미친다. 이 계시하신 뜻은 인간이 순종해야한 유일한 규칙이며 이러한 뜻은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다. 이 성경 속에는 하나님께 행해야할 우리 인간의 모든 의무가 계시되어져 있다.제 40 문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복종에 대한 규칙으로 처음 계시하신 것은 무엇인가?▶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복종에 대한 규칙으로 처음 계시하신 것은 도덕법이었다.-하나님께서는 도덕법 외에 유대인들에게 다른 실증법들을 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함12. 교회의 권징을 실시함 등이 있다.하나님께서 이 규례와 예배의 방법에 관하여 제 이 계명에서 요구하시는 것은1.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규례를 받아들이는 것은 지성으로 이것들을 인정하고 의지로는 기꺼이 맞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2. 그것들을 준수하는 것이다.-규례를 준수하는 것은 그 규례가 요구하는 것을 수행하며 그것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3. 그것들을 순수하고 온전하게 지키는 것이다.-규례를 순수하고 온전하게 지키는 것은, 이 규례에 어떤 것을 추가하거나 삭제함으로 부패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이 계명에서 요구되는 바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모든 종교적인 예배와 규례를 순수하고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준수하고 지키는 것은 "너를 위하여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고 금지하신 내용이 대비되는데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대비된다. 하나님은 어떤 수단에 의해 예배 받으시는 분이시라는 점, 새긴 형상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이 죄라는 점, 따라서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수단으로 예배 드림은 죄라는 점,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규례가 순수하고 온전하게 받아들여지고 준수되고 지켜지도록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방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할 의무가 있다.제 51문 제 이 계명에서 금하는 것은 무엇인가?▶제 이 계명에서 금하는 것은 우상을 통해 하나님을 경배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에 정하지 아니한 다른 어떤 방법으로 하는 것이다.-제 이 계명에서 금하는 죄중 가장 큰 죄는 우상숭배이며 제 일 계명의 우상숭배와 제 이 계명의 우상숭배의 차이점은 제 일 계명에서 금하는 우상숭배는 우리가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예배와 영광을 다른 대상에게 둘 때 저지르게 되는 바 그 대상에 관계되며, 제 이 계명에서 금하는 우상숭배 죄는, 우리가 형상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저지르게 되는 바 예배의 수단에 관계된다. 사람들이 형상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범하게 되는 죄가 몇 가지 있는데 다음 경우와 같이 우상숭배의 른 사람에게든지 농담 삼아 악과 비슷하게 저주를 할 때,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알리셨던 그의 이름이나 칭호나 속성 중 어떤 것을 거슬려 말하거나, 하나님께 합당치 않은 어떤 것을 돌림으로써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할 때,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을 어떤 주술에다 사용할 때, 이며 하나님의 규례가 모독되고 남용되는 경우도 있는데 다음의 경우가 그렇다. 사람이 그것을 수행함에 있어서 불경하게 굴 때, 즉 그들이 기도하거나 말씀을 전파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성례를 집행하거나 다른 어떤 예배에 관계되는 일을 할 때, 외적인 몸가짐에 있어서 웃거나 이야기하거나 잠을 자거나 다른 어떤 불손한 짓을 할 때, 사람이 규례를 집행함에 있어서 마음의 내적인 상태가 시시하고 형식적일 때, 그들의 마음가짐은 왔다갔다하고 산만하고 그들의 가슴은 죽어있고 무디어 있으며 그들이 이 규례를 통해 시중드는 바 그 하나님의 위엄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을 때, 사람의 대부분이 하나님의 규례를 모독하고 남용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진지한 마음으로 힘쓰고 애씀이 없이 사람들에게 신앙이 좋다 라는 평판을 받고 싶어서 이 규례를 행하며 종교상의 공언을 하는, 즉 탐용과 악의와 육욕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런 종교의식을 수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 받고 남용되는 경우는 사람이 시시하게 생각하거나 말을 할 때, 특별히 그들이 하나님을 말씀이나 그 중 어떤 부분을 모독적인 언사로 곡해할 때,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 교리로 곡해하거나 거기에 내포된 온전하고 건전한 교리를 왜곡시킬 때,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적용시킬 때, 의인으로 슬프게 하기 위해 겁을 주고 악인으로 더욱 악한 길에 행하게 하기 위해 약속을 주는 등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되고 남용되는 상황은 사람이 육욕을 충족시키고 정욕을 만족시키고 하나님의 피조물을 무절제하게 사용할 때, 사람이 번창할 때 하나님을 잊어버리거나 그의 은혜에 감사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길이 참으심과 은총을 죄의 기회로 이용하려나님께서 다른 날 들에 번창하게 축복하셨던 것을 안식일 날로 새로 제정된 이날에 바치라고 명령했다. 이것은 그가 또한 주님에게서 주중 안식일을 첫째 날로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음을 말해준다.4. 우리는 제자들이 주 중 첫째 날에 함께 사실과 예수께서 그때 그들 가운데 오셨다는 사실을 읽게 된다. 그리고 팔일 이 지난 후 그러니까 또 다른 첫째 날에 그들이 함께 모였으며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 오셨다. 더구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주 중 첫째날에 함께 모여 주께 예배드리고 말씀을 듣고 떡을 떼면 주님의 만찬의 성례를 받던 것은 관례가 되었었다.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 새"...바울과 그들과 7일을 머물렀으나 우리는 주 중 첫째날 이외에는 어떤 엄숙한 모임에 관해서도 읽지 못한다. 그는 7일의 마지막 날에 그들과 함께 거했다. 그 날은 주 중 마지막 날인 옛날 안식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모여 엄숙하게 예배드렸던 날은 첫째 날이었다. 만약 그 날이 새로 제정된 안식일, 즉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안식일이 아니었다면, 바울에게 있어서 그가 방중까지 신앙적인 사역을 하고서 다음 날 아침에 여행을 떠났다는 것은 매우 불편스럽게 여겨졌을 것이다. 사도 시대로부터 실시되었던 관습을 모두 고려해 보면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 전혀 거치는 것이 아니었음이 명백히 입증된다. 칠일 중의 첫째 날은 주님으로부터 말미암아 제정된 성일 즉 기독교인의 안식일이 된 것이다.제 60문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방법은 무엇인가?▶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방법은 다른 날에도 할 수 있는 모든 세상의 일과 오락을 끊고 그 날을 종일토록 거룩하게 쉬며,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로 그 모든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다만 부득이한 일이나 자비를 베푸는 일에 드려야 할 시간만큼은 예외이다.-안식일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거룩하게 제정하셨으므로 그에 의해 거룩케 된다. 인간이 그것을 거룩하게 준수하고 지킴으로 그것에 의해태도를 지녀야 하며, 그들의 직업이나 신분이나 결혼 등 생애의 중요한 문제에 관해 사리에 맞는 충고를 할 때 기꺼이 따른다. 그들이 늙었거나 궁핍하게 되었을 때 그들을 친절히 보살피며 먹을 것을 공급하여 잘 봉양한다.이에 반해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의무는 다음과 같다. 그들이 어리거나 연약할 때 사랑과 관심을 갖고 보살피며, 자녀들이 그들의 가르침을 수용할 수 있을 때 성경의 지식과 종교의 도리를 훈련시키며 여호와의 율법과 방법들로써 교훈을 심어주고,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 주며 그들에게 거룩, 인내 그리고 의의 좋은 모범을 보여준다. 그들이 어릴 때 순종하게 하되 여호와의 율법에 합당치 않은 것은 그들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친절한 외양과 말로써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며 선행에 대하여는 상을 주고 악행에 대하여는 견책과 책망을 한다. 현재 필요한 것들을 그들에게 공급하며, 미래를 위해 그들의 분량에 따라 자녀를 위해 저축해야 하고, 그들이 성장하였을 때 장사나 직업이나 결혼에 관심을 가지고 최선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고, 그들의 능력이나 취향에 따라 상담하고 같이 생각을 해준다.남편에 대한 아내의 의무는 이러하다. 세상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남편을 더욱 사랑하고, 침소와 신분과 그들에게 위탁된 비밀들에 관하여는 정숙하고 충성해야 한다. 남편을 존경하며 화내기를 두려워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합당한 일에 대하여 그들에게 복종한다. 남편들의 기호와 성향에 맞추어 범사에 그들을 기쁘게 한다. 남편을 짐을 져주는 것과 가정을 위하여 양식을 준비하는데 도움을 준다. 가정의 안녕을 위하여 남편의 말을 귀담아 듣고 선한 것이라면 거기에 동의한다. 남편들이 악한 길에 있을 때 온유함과 지혜로 친절함과 사랑스러운 충고로 정결함과 감미로운 속삭임으로 하나님의 길로 되돌아오게 한다.아내에 대한 남편의 의무는 이러하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이토록 사랑하신 것과 같이 남편은 아내를 최선의 방법으로 사랑하며, 아내들과 함께 거하고 지식에 따라 그들을 귀하게 여기고 그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