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드에 대하여여기서 프로이드를 보는 관점은 나의 비망록(1996)의 도식1(세계이념의 논리적 체계)과 도식2(세계현 실의 역사적 구조)의 빛 안에서이다. 그것은 지금까지로서는 사물의 이념과 그 현실의 시간과 공간 안에 서의 총체적 지속과 그 주기적 변동의 변증법적 구조를 가장 잘 해명할 수 있는 틀로 생각되기 때문이 다. 따라서 이 비망록의 도식 틀은 사물을 어떤 특수한 관점에서 독특하게 해석하는데 있지 않고, 사물 자체의 체계와 그 구조를 있는 그대로 보편적으로 밝힘으로써, 사물의 지속적 구조와 그 주기적 변동의 질서를 역사체제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프로이드도 그의 체계와 그 구조 속에서 자기가 무엇인가를 스스로 말하게 함으로써 자기가 스스로 자기를 해명하게 하는 방식을 취하겠다.1. 철학에서 '역사적으로' 파악 - 자리매김되고 있는 프로이드1) 현대철학은 이성(Ratio)과 의식(Bewusstsein)대신에 충동과 감성(Triebhaft-Emotionalen)에 의해서 지배되는 인간이라고 보는 삶의 철학(Lebensphilosophie)과 새로운 심리학(die neue Psychologie)에 뿌리 박고 있다(Windelband, Lehrbuch der Geschichte der Philosophie, Tubingen 1957, 608).2) 우리는 루카치, 블로흐, 사르트르, 골드만, 가로디, 프랑크푸르트학파와 같은 많은 저술가들이 유토 피아와 '영구수정주의'(콜라코프스키) 속으로 도피한 것을 보는 데, 프로이드의 정신(심리)분석이 빈번히 이들을 위해서 지원사격을 하고 있다(Hirschberger, Geschichte der Philosophie Ⅱ, Herder 1988, 479).3) 프로이드(1855-1939)의 정신분석학을 통하여 문학이나 예술을 통하여 나타나는 현대 인의 전반적 의식구조에 미친 영향이나 또는 현대의 철학적 인간학이 구상하는 새로운 인간상과 관련시 켜 볼 때 그 의의는 크다. 프로이드의 무의식의 세계와 그의 양심으로서 검열 (Zensur)과 억압(Verdrangung)을 가함으로써 죄책감과 불안을 일으킨다. 초의식의 이러한 무의식적 충 동에 대한 규범적-규제적 개입으로 원시적 충동이 승화(Sublimierung)되고, 이러한 승화에서 문화 (Kultur)가 탄생한다. 그러므로 프로이드적 문화에는 언제나 원시적 충동이 그대로 발산되지 못한 채 초 의식의 규범적 규제에 의해서 억압된 불만이 문화 속에(Das Unbehagen in der Kultur) 잠복해 있다.5) 억압(Verdrangung)에서 히스테리(Hysterie)가 생긴다. 이 억압에서 생기는 정신신경증(Hysterie)을 치료하는 것이 프로이드의 과제였고,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의식적 전제가 정신(심리)분석 (Psychoanalyse)이다(20. Jahrhundert, Stuttgart 1981, 74-88).6) 카르납은 '물리학의 언어'가 보편적이라고한 노이라트의 명제를 받아들였다. 1930대 초에 그는 (맑 스주의적 악센트를 가지고) 물리학주의를 자주 '과학적 유물론'이라고 썼다. 그리고 그러한 사상을 결정 적으로 발전시킨 사람들로서 다윈, 맑스, 니체, 그리고 프로이드를 들었다(Wedberg, A History of Philosophy, Vol. 3, Oxford 1984, 222).7) 억압된 욕망은 꿈(Traum)에서 해방적으로 충족되는데, 꿈은 그의 억압된 욕망을 상징적으로 (symbolish) 나타낸다. 그래서 환자의 병은 억압된 욕망이 나타나는 꿈을 통해서 엿볼 수 있고, 꿈은 상 징적이기 때문에 올바른 해석(Deutung)으로써 병의 진단과 치료방법을 발견한다(럿셀, 서양의 지혜, 서 광사 1990, 431-432).8) 사르트르가 잘못된 신앙의 가면을 쓰게 하는 무의식적인 것을 제거하려고 할 때 메를로-퐁티와 리 쾨르는 프로이드의 저작의 역동적 해석으로써 그것을 통합한다. 현상학과 정신분석학은 '주체의 고고학' 의 수준에서 서로 만난다. 무의식은 최초의 의식이고, 억압된 . 두 세대를 갈라 놓는 차이는 헤겔에 대한 관계를 나타내는 표시의 전도에 있다. 즉 어느 곳에서나 결핍은 잉여로 보충된다(위와 같은 책, 23).10) 오늘날, 어제의 아버지요 의혹의 스승이었던 맑스, 니체, 프로이드 등은 기피의 대상이 아니다. 기 피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끼리 서로서로 맞상대하게 만들어 놓는 셈이다(데깡, 오늘의 프랑스 철학사상, 책세상 1991, 31). 본의는 아니더라도 항상 무의식적인 것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무의식은 참된 말에도, 거짓된 말에도 깃든다. 숨겨진 것 - 프로이드의 잠재적인 것 - 과 언어의 의사소통의 차원 사이에서 데 꽁브는 심리학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더 논리학적이라고 여겨지는 어떤 무의식을 주목한다. 그렇게 함 으로써 그는 하나의 진술이 옳게 구성되는 데 꼭 필요한 규칙들을 규명해 내고자 한다. 그런 다음에 이 철학자는 문장들의 구조를 통해서 의미와 무의미의 문제를 제기한다( 위와 같은 책, 234-235).11) 심리학과 정신병리학에는 일반화된 양극이 있다. 즉 파블로프의 객관적이고 실험적인 학파와(행동 주의 심리학), 프로이드의 주관적이고, 내성적인 학파가 그것이다(정신분석학, 심층심리학) (Geschichte der Philosophie, Ⅵ, Berlin 1967, 729).12) 전체적으로 보면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는 자연주의라고 할 수 있다. 자연주의란 경험적으로 직 접 인식할 수 있는 자연적 세계 밖에 존재하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현실관이다. 따라서 자연주의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로 본다. 자연주의는 이성주의적 사변이나 어떤 신의 계시도 아닌 오로지 자연이 준 사실에서 연구를 시작한다. 맑스와 다윈과 프로이드도 그랬다. 맑스는 인간의 (사회적)의식은 단지 사회 의 물질적 토대의 산물이라고 했다. 다윈은 인간이란 긴 생물학적 진화의 결과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리 고 프로이드는 무의식의 연구를 통해서 인간의 행동은 그의 본성에 내재한 자연적 충동 혹은 동물적 본 능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Gaarder사이(정치적 법률)에 일정한 규범적 규제를 가하는 도덕원리(Moralprinzip)이며, 자아(의식)는 이드(무의식)의 충동적 욕망을 그대로 층족시키고자하는 쾌락원리와 그것을 규범적으로 규제하는 초자아(초의식)의 도덕원리가 타협-조화하는 역사적 체제의 현실에 합리적으로 적응하는 현실원리(Realprinzip)다.16) 이드(무의식)의 충동적 욕망은 이미 태어나는 어린시절부터 식욕과 성욕으로 나타나는 데, 그 욕 망을 충족하면 좋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욕망충족을 위한 수단과 그 대상을 바꾸는 일(전이, Transferenz)이 있고, 이러한 욕망충족의 수단과 그 대상을 바꾸는 것이 쾌락원리에 따라 충동적 욕망을 그대로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고, 도덕원리에 따라 규제적으로 충족시킬 때, 승화(Sublimierung)가 이루 어 진다. 바로 이드(무의식)의 쾌락원리에 대한 초자아(초의식)의 일정한 규제적 도덕원리의 시행에서 나타나는 승화에서 소위 문명과 문화(Kultur)라는 빛나는 정신적 산물이 거두어 진다(Das Unbehagen in der Kultur, Wien 1930). 그러나 문화의 본질 속에는 본능적 욕망을 그대로 충족시키지 못한 일정한 불만(Unbehagen)과, 그러한 충동적 본능에 대해서 저항하는 초자아적 도덕원리의 일정한 규제적 억압 (Repression)이 있고, 이 억압이라는 핵심개념을 둘러싸고 정신분석적 이론의 모든 요소들이 연결되어 있다(프로이드, 자서전, 탐구당 1989, 54).17) 억압은 꿈과 연결되는데, 꿈은 억압된 욕망의 위장된 실현이라는 것이다(Die Traumdeutung 1900). 그러므로 꿈은 억압된 본능이 무의식 속에 가라앉아 있다가 잠자는 사이에 의식의 차원으로 떠오 르는 것이며, 따라서 그 꿈은 당연히 억압된 욕망의 신경증적 증상들을 포함하고 있으며(특히 성적으로 억압된), 그 증상들은 어떤 상징적이거나 왜곡된 성격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꿈은 전문가(의사)에 의해서 세심하게 분석되고, 해석되어야 한다. 그래서 꿈은을 보아도(자서전, 139), 정신체계의 이러한 삼분법적 구조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사실, 이것이 프로이드체계의 본질구조다. 그것은 이 구 조가 프로이드적 개인과 상응하는 집단적 사회구조의 정치(자아), 문화(초자아), 경제(무의식)와 상응할 뿐만 아니라, 인간(자아), 신(초자아), 자연(무의식)과도 상응함으로써, 은연중에 전일적 세계체계의 변증 법적 구조에 통일되어 있는 구조적 인간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20) "나는 병리적 사실에 대한 정신분석적 해석에 입각해서 인간의 정신적 구조장치(mental apparatus)를 해부(분석)하는 일을 시작했고 그 구조장치를 자아(ego), 이드(id), 그리고 초자아 (Super-ego)로 구분했다"고 말함으로써 (자서전, 107) 이 정신적 구조장치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더 강 조하고 있다. 그리고 "초자아는 외디프스 콤플렉스의 계승자이며 인류의 윤리적 기준을 대표한다"고 함 으로써(위와 같은 책, 107), 프로이드 심리학이 결정론적 유물론과 무신론으로부터 해방할 수 있는 문을 열었다고 본다. 왜냐하면 "윤리적 기준"이란 인간의 삶의 총체성이 그의 역사적 체제를 통해서 그 자연 적 물질성으로부터 신적 정신성으로 이행(초월)하는 인간의 존재론적 성격에 있기 때문이다(장일조, 비 망록 1996). 그러므로 만일 프로이드가 다른 어디에서 그가 유물론적이고 무신론적임을 명시적으로 고백 하거나, 적극적으로 자처하고 있다면, 그것은 다만 정치상황적인 의미에서 일 것이지, 결코 존재론적인 의미에서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존재론적으로 유물론적이고 무신론적이라면, 프로이드의 규범적으로 규제하는 초자아는 없는 것이며, 초자아가 없는 그의 정신적 구조장치는 체계파괴적인 본능적 충동의 지배하에 놓임으로써 더 이상 체계적으로 성립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3. 몇 가지 비판적 정리21) 프로이드를 요약하면, 그의 관점은 가장 넓은 의미의 성적(Sexual) 발달을 인격의 역학적 기초라 고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다.
제목 : 직장내 성희롱가벼운 농담, 자연스런 스킨쉽, 분위기를 좋게 하기 위해서, 또한 이야깃 거리를 만들기 위해서...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남자들의 핑계이다.그들은 굳이 이런 것들을 위해 상대방이 듣기 거북하고 불쾌할 정도의 말을 해야할까?단지 친밀감을 표하기 위해 여사원들을 뒤에서 껴안는 것일까?예전에 잡지에서 직장내 성희롱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 기사에서 어떤 남자 사원이 한말이 생각난다.직장내에서는, 남자들이 서슴없이 주고 받는 대화가 성희롱이 되고, 앞에서도 말했듯이 친밀감을 표시하기 위한 행동은 성추행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대화나 스킨쉽 정도에 성희롱이란 단어를 내건다면 결국 직장내 성희롱은 없어질 수 없다고 말했다.그들은 가볍게 던지는 말이지만, 정작 상대방은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자존심이 상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불쾌감까지 느낀다.직장내 성희롱에 대한 사례를 하나 들자면,A씨는 대기업 이사 비서실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상사는 직위가 높은 만큼 나이도 많았었다. 그는 A씨에게 자신의 딸과 나이가 비슷하다며 친딸처럼 느껴진다고 소위 여사원들을 부를 때 쓰는 호칭( 미스... )을 부르기 보다는 이름을 부르면서 친아버지처럼 대하라고 했다. A씨는 직장생활이 처음인 그녀에게 어색함을 덜어주려고 하는 그 상사가 고마웠다. 게다가 직위도 높은 만큼 대하기 어려운 그인데 모든일이든지 하나하나 잘 가르쳐주어서 직장생활이 힘든 것만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친하다는 핑계로 A씨에게 말을 함부로 하고, 심지어 스키쉽도 잦아 졌다. 아무리 나이가 어린 여사원이더라도 직장은 공적인 장소인 만큼 존칭어를 써야 하는데 반말을 하는 것은 기본이고, 볼륨이 없다느니, 여자로서의 매력이 없다는 말까지 했다. 그녀는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번은 차를 가져오라는 말에 쟁반에 찻잔을 가져갔는데, 그가 뒤에서 껴안았다. 하지만, 그녀는 쟁반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A씨는, 직장내 성희롱은 어딜가던지 있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하면 참으려고 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그래서 오랜 망설임 끝에 신고를 했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그 상사가 처벌을 받기는커녕 직장 상사를 신고했다는 이유로 그녀는 눈초리를 받았고, 심지어 그 상사에게 험한 욕까지 들었다. 결국 A씨는 그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이렇게 부하 직원에 대한 직장 상사의 사건이 외부화된 경우, 오히려 피해자가 이중 삼중으로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고용관계를 빌미로 이루어 진다는 점에서 피해자가 직접 고소를 하기에는 치뤄야할 물리적, 심리적 부담이 크다.
현대 사회는 패러독스가 만연해 있다. 우리의 예측과 기대를 벗어난 사건들, 서로 모순되는 현상들이 세계 곳곳에서 날마다 벌어지고 있다. 패러독스가 우리의 일상생활에 만연해 있는 예로 [꽃미남]를 들 수 있다. 패러독스의 사회적 방향을 간단히 보여준 것이다.남성들이 미용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우리나라보다 일본이 먼저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특수성은 아니란 애기다. 이 같은 현상은 문명사적 흐름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문명사적 전환기다. 전쟁으로 물들었던 20세기 초의 근대사회에는 이기면 된다, 정복하면 된다 하는 식의 생각이 지배했다. 식민주의시대, 제국주의시대에는 오로지 강한 남성만이 살아남았다. 여성들은 남성들의 그늘에 가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다.그러나 후기 근대 혹은 탈근대 사회로 오면서 여성성이 먼저 바뀌기 시작했다. 억압받던 여성들이 수많은 여성운동을 통해 터프한 여자, 당당한 여자로 우뚝 섰다. 여자들은 충분히 당당해졌고 자신의 길을 찾는 시기가 왔다.여성성이 어느 정도 해결되자 이번에는 남성성이 바뀌기 시작한다. 과거에 추대 받았던 남성성은 무시당한다. 근대사회에서는 터프한 남성, 과묵한 남성, 가정과 사회를 주도하고 통제하고 관리하는 남성이 남성성을 대표했지만, 근대성이 물락 하면서 이러한 마초(macho)들은 연애도 못하고 소통이 안 되고 대화도 잘 이끌 줄 모른다는 이유로 외면 시 된다.소통과 감성의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어야 '진정한 남성'임을 인정한다. 특히 젊은 남성들은 식구들을 위해 말 없이 돈이나 벌어다 주고 눈물도 보이지 않는 자신의 아버지들과 동일시 되기를 거부한다. 이것이 외모로 나타나는 것이 소위 '꽃미남'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강한 힘을 상징하는 근육 대신 자상한 표정과 부드러운 인상을 선호하는 것이다.물론 여리고 섬세해서 몸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남성은 예전부터 있었을 것이다. 터프한 여성이 존재했던 것처럼. 그러나 우리 사회가 워낙 획일주의에 젖어 있다 보니 전통적인 남성상에서 벗어나는 남성은 가치가 절하됐다. 이제야 비로소 이같이 숨어 있던 남성들이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요즘 꽃미남이 트렌드라지만 모든 남성들이 피부관리실 침대에 눕는 것도 아닐 것이다. 다만 다양성이 조금씩 인정받는 사회로 변화하는 하나의 현상으로 보면 될 듯싶다.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양성성 의 인기라는 점이다. 우리들이 익숙해져 있던 종전의 구조가 탈구성되는 과정, 새로운 것을 창조해 가는 과정의 일면을 꽃미남 현상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문화적 유연성을 지닌 양성문화로 바꾸는 일이야 말로 패러독스 경영의 중요한 과제이다.사회가 이렇게 패러독스로 만연하다 보니 경영도 패러독스라는 바람을 맞게 된다. 이책의 저자 역시 80년대 후반에 합리성의 붕괴로 현대사회는 패러독스 경영의 시대를 맞게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저자는 끝까지 패러독스경영이론을 밀고가지 못했다. 저자가 글쓰는 능력이 부족해서 이기보다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자기 자신도 패러독스경영이 언제까지 받아들여질지 장담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우선 필자가 패러독스경영에 대해 논했기 때문에 이에 관한 서평을 쓰고자 한다.평범한 기업이 크게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패러독스를 수용하지 못하고 이것이냐 저것이냐 선택하는 식의 합리적 경영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에 반해 비전기업, 장수기업, 우수기업들이 성공하는 요인은 분명 패러독스 경영을 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선택의 독제 에 억눌려 있지 않은 양자를 함께 추구하는-공존하는-경영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필자는 합리적 경영의 맹점을 밝히고 패러독스 경영을 요구하고 있다.이솝우화를 보면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 하다가 한 마리도 채 잡지못하고 두 마리 다 놓친 사냥꾼의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필자는 서두에서 두마리의 토끼를 잡으라 고 요구하고 있다. 토끼를 두 마리 다 잡으면 그것만큼 좋은 것은 없을테지만, 만약에 둘다 놓쳐버리게 되면 또 그것만큼 않좋은 것은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처지를 알고 적절한 방법을 택해야 한다. 자신의 능력도 알지 못하고 처음부터 두 마리의 토끼를 잡겠다고 나서면 안된다는 말이다.하지만 시대가 변한만큼 우리는 패러독스를 받아 들여야 한다. 애매하고 실천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패러독스 경영을 실행할 능력만 갖추면 단기적인 성과는 물론 미래의 경영환경에서도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다고 본다.내 생각은 이렇다. 지금이 합리적 경영이 막을 내렸고, 패러독스 경영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패러독스 경영 말고도 다른 대책이 있을 수도 있다. 패러독스 적으로 경영을 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내가 아는 유일한 패러독스 경영을 한다고 생각하는 기업은 [유한양행]일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 바디샵(The Body Shop)을 예로 들어 패러독스 경영, 혹은 패러독스를 뛰어넘는 경영을 보여주고자 했다. 바디샵만큼 대기업은 아니지만, 유한양행은 故유일한박사의 경영이념을 굳건히 지켜 지금까지도 무수히 많은 대기업 그룹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유한양행은 2000년 11월 서강대 경영학과 노부호 교수팀이 발표한 [한국 기업의 평판과 경영전략에 관한 조사연구]에서 사회적 평판이 가장 탁월한 기업으로 삼성전자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평판도 판정 근거는 첨단기술 개발의 선도능력, 기업경영의 투명성, 기업이윤의 사회환원, 경영의 질, 제품·서비스의 우수성 등이었는데 유한양행은 이 가운데 기업경영의 투명성 분야에서 1위로 선정되었다. 1926년에 창립해 75년의 역사를 지닌 유한양행은 선각자적 기업가인 고 유일한회장이 일제치하에서 「건강한 국민만이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창업한 회사이다. 유한양행은 「가장 좋은 제품의 생산, 성실한 납세,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을 기업이념으로 내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