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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대의 과거제도 평가B괜찮아요
    당대 과거제도와 문화당대는 중국 봉건 사회가 고도로 번성한 성세였다. 이러한 시대 배경 아래에서 과거제도는 양 한 이래 장기간 전개과정을 거치고 당조 삼백 년간 역사중 부단히 발전을 거듭하여 완성되었다. 이 제도는 당대는 물론이고 후대 중국사회와 문화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과거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과목으로 진사를 제시하고 있으며 , 매년 10월 조정에 가서 정기시험에 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주·현 등에서 지방 예비시험을 실시하였음이 명확하게 제시되고 있다. 즉 이것은 후세 향시 의 방법이며 수대의 선거제도와 같이 반드시 관부의 추천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당 고조 무덕5년(622)의 선거제도에 대한 조서를 통해 자천으로 고시에 응시는 특징의 과거제도가 탄생하였다. 그 후 과거' 의 거(擧)는 단지 관습법을 이어받은 것에 불과하였다. 왜냐하면 사인들이 과거고시에 참가하는데 이미 관부의 추천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1. 당대 과거의 응시자(생도와 향공)당대 과거의 응시자들은 크게 생도와 항공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생도는 관학의 학생으로 그들은 수학기간을 마치면 과거에 참가 고시에 응시할 수 있었다. 항공은 지방사인들이 독학을 하였거나 혹은 민간 사숙에서 수학한 사람으로 그 지방 주현의 예시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한 후 재차 추천되어 경사(京師)에 가서 시험에 응시한 사람을 말한다.향공은 매년 10월 지방에서 경사로 보내지는 세량(稅糧)과 지방공문서와 함께 조정에 보내졌는데 발해(發解)라 칭하였다. 주 ·현을 향해 서류를 보내 시험을 치루는 것을 구해(求解)또는 취해(取解)라 하며 주현 예시의 일등을 해원(解元)이라고 칭하였다. 이것 모두 당·송대 사람들의 시·문의 서문과 발문가운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명칭이다.생도와 향공이 당대 과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당초기에는 대체로 생도가 향공보다 많았으나 성당(盛唐).중당(中唐)이후 생도의 비율이 점차 적어지고 향공이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당대 세족·사족의 망 원인 중의 하나가 되었다.2. 당대 각종 과거과목『신당서(新唐書)』, 『선거지(選擧志)』에 의하면 당내 과거 과목은 수재·명경·준사·진사·명법·명자·명산·일사(一史)·삼사(三史) ·개원례(開元禮)·도거(道擧)·동자(童子)과 등이 있었다. 또한 당대 무측천(武側天)시에는 무과도 설치되었다. 당대 과거 발전 과정에서 이러한 과목은 존재하기도 하고 폐지되기도 하였으며 홍성하기도 하고 쇠퇴하기도 하였다.당초기에는 한에서 수대에 걸쳐 실시한 수재 과를 답습하였다. 수대에는 수재과가 특히 어려웠고 당대에도 이러한 영향을 받아 수재과는 높은 수준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일반사인들이 응시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오래지 않아 폐지되었다. 그 후 수재는 일반 독서인 중에서 과거에 응시하는 사람의 통칭이 되었다. 기타 잡과목은 그 수도 적었으며 관리에 나아갈 길도 좁았으므로 사인들은 별 관심을 갖자 않았다. 그리하여 단지 명경·진사 두 과가 당대 과거의 중요한 근간이 되었으며 가장 많은 사람이 응시한 과거가 되었다.명경과는 기원을 한 대에 두고 있다. 당대의 명경 과 고시는 각종 유가경전을 시험쳤으며 그 외에 『노자』를 포함시켰다 왜냐하면 당대 황제는 자신의 가문에 대한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가세문제(家世門第)에 대한 연구가 성하였다.명경과의 고시는 첩경(貼經)과 묵의(墨義)로 구분된다. 첩경이란 시험관이 경전중에서 임의로 한 단락을 선택하여 종이로 그 중 여러 글자 도는 여러 구절을 붙여서 응시자로 하여금 유사하게 답해 빈곳을 채우도록 하는 방법이다, 매 10첩 중 여섯 개 이상 맞으면 합격이다.묵의는 필답시험인데 시험관이 경전에 의거해 문제를 출제하여 응시자로 하여금 그 해당되는 경문에 대한 전대 사람의 주소(注疏) 혹은 상하의 문장을 쓰도록 하는 방법이다.섭경과 묵의의 고시 방법은 단지 시험생들의 경전에 대한 암기력만을 측정하는 것으로 정신과 의리에 대한 이해는 상관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개인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하지 못했다. 당시에 이러한 방법을 채을 만들어 외었다.(『백거이집』 중 策林 부분에 수록됨)이러한 풍조는 사회전체에 만연되어 있었다.고종 조로(調露) 2년 (680) 공원외랑(功員外廊)에 응시한 유사(劉思)는 진사는 단지 옛 책문만을 암송하고 실제 재주는 없다 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진사과에 시책 외에 첩경을 첨가하고 약간의 조문과 잡문 두 수를 첨가하도록 건의하였다. 그리하여 진사과에도 잡문·첩경·책문 등 세 가지 고시제도가 형성되었다.첩경방식과 명경과는 서로 같으며, 합격표준은 일반적으로 첩경은 10문제에서 4문제 이상으로 난이도가 명경과 보다 낮았다. 책문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구책문을 외우는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공론적인 것이므로 진사과 시험에서 최고의 관건은 잡문 두 수의 시험이었다.송 대와 당초기에 수재·진사과의 책문 시험은 커다란 의미에서 이미 일종의 문학 고시였으며, 당 고종 때는 진사과에 잡문 두 수를 첨가하여 더욱 고시의 문학성이 증가되었다.현종 개원년간에 이르면 잡문 두 수는 시·부 각각 한 수씩 두 가지로 명확해졌다. 세 차례 고시 중 실제로 첫 번째는 시·부가 가장 중요하였다. 당대사람 조광(趙匡)은 개원년간에 「거선의」를 올려 말하기를 시험관이 채점하는데 있어 실재는 시부의 우열에 있었다 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당대의 사람들은 진사과를 일러 사과(詞科)라 하였으며 후인들은 당대는 시부로 인재를 뽑았다고 하였다.시부고시는 사인으로 하여금 상당한 역사문화 지식을 요구하며, 또한 생동감있는 형상 사유능력과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감상하고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첩경,묵의 같은 것에 비해 맑고 깨끗하며 활발하고 상상력이 풍부하다. 시부는 대구와 자음과 모음 방면에 엄격한 규정이 있었다.당대의 시부체는 오언·육운·십이구의 배율체로서 운각{ 시부의 구절 마지막에 쓰는 운자(韻字)은 시험은 시험관에 의해 한정되고 있다. 당송 양대 과거는 모두 이런 시의 체제를 이용하였다. 청대 건륭 이후 다시 이런 종류의 시의 체제를 사용하게 되면서 시첩시(試帖詩)라 칭하였고 거제도에 세습되어 정식 제도가 되었다.발해시 를 통과한 거자들은 전례에 의해 즉시 몸을 움직여 고향을 떠나 조정으로 진공되는 물품과 함께 당해년 시월에 보내져 경사에 도착한다. 황제는 친히 천하의 공물과 공인(貢人)을 검열하였다. 당 전기에는 과거가 상서성내 이부의 책임 하에 이루어졌다. 현종 개원년간에 예부의 책임으로 바꿔졌으며 그 후 역대 왕조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성시는 예부시 또는 예원(禮園)이라고 칭하기도 한다.예부 아래 공원을 설치하여 시험의 실시와 시험지 채점 ,합격자 방을 붙이는 것 등 모든 것을 공원에서 거행하였다. 과거를 주관하는 관원을 지공거라 칭하고 통상 예부시랑이 겸하였다. 지공거관은 약칭해서 주사(主司) ·주문(主文)·주고(主考)·유사(有司)등으로 부르기도 하며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취사를 담당한다 라 였다.후대와 비교해볼 때 , 당대 과거에 있어서 작페에 대한 방지는 무척 관용적이 였으며 통상적으로 명경과의 방지는 무척 삼엄했다. 왜냐하면 첩경과 묵의의 고시방법은 혁대와 함께 참고서를 넘겨주는 등 작폐행위가 발생되기 쉬었기 때문이다. 진사과 시험에서 어떤 때에는 시험관이 거인으로 하여금 참고서를 가지고 들어올 수 있게 하였다.시험에 응시하는 거인들은 시문(時文)중에서 반드시 국휘(國諱, 황제 명칭),재휘상(재상의 이름), 주문휘(主文諱, 지공거관의 이름)을 피해야 한다. 국휘 의예는 송대 이후 황제 이름자에 벽자(僻字)를 사용하여 비교적 피하기 쉬었으나 당대에는 황제의 이름이 대부분 자주 사용되는 글자였다. 당대 과거의 합격자 발표는 통상 2월에 하는데 십년 고생이 한 떨기의 계수나무를 꺽은 데 불과 하다.2월 농염한 태양은 수많은 꽃과 같다 고 하였다. 도교의 설법에 의하면 대라천(大羅天)의 은 예궁주이라는 도교의 묘에서 실시한다. 그러므로 진사의 방방을 칭하기를 예방(蘂榜)이라 한다. 합격자를 급제 라고 칭하기도 하고, 등과(登科)·등제(登第)·탁제(擢第)등으로 칭하기도 한다. 일등을 장원이라 하였고, 송 이후에는 이등과나면 각과 급제자는 이부에 예속되고 관직을 받아 파견된다. 그러나 늦고 바름은 성적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고 결원된 관원의 많고 적음에 의해 결정되므로 신 진사가 후보관으로 수년씩 기다리는 경우도 있으며, 일반적으로는 구품의 낮은 관위에서 시작한다. 이것은 주로 시(詩)·부(賦)·논(論)·판(判)등을 시험을 치르는데 진사 중에서 더욱 뛰어난 문제를 가진 인사를 선발하는 것으로 매번 시험에서 단지 몇 사람만을 발하고 즉시 관직을 제수한다. 그러나 높은 재주를 가진 인사라도 이부시험에 몇 차례 좌절을 하였다.6.신진사의 경축연회진사급제는 봉건시대 사인들의 일생중에서 가장 중요한 관건으로 다년간 힘들고 고생스러운 노력 끝에 입신양명하는 것이다. 방밥(급제자발표)이후에 어떤 어려운 난관과 힘든 과정을 건너야 한다고 해도 신과 진사들은 각종 명목의 많은 경축연회에 빠졌다. 예를 들면, 희연(喜宴)·신진사의 경연(慶宴)·앵도연(櫻桃宴)·곡강연(曲江宴)·월등각타구연(月橙閣打球宴)등이 있다. 이중 가장 성대한 것은 곡강연이었다. 곡강(曲江)은 장안성 동남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유람의 명승지고 궁전의 원림(園林)과 비교해도 차이가 없다. 월등각타구연(月橙閣打球宴)은 산과 진사들이 월등각에 모여 마구(馬 )놀이를 하는 것이다. 그들은 말을 타고 막대기를 들고 빠르게 달리면서 공을 때리고 번개같이 사라진다. 사방에 천막들을 즐비하게 설치하고 보는 사람이 대단히 많았다. 그리하여 큰소리로 웃었는데 오래 실행된 뒤에 방지하였다, 이것이 끝나면 누각 위에서 통쾌하게 술을 마셨다. 이런 상황의 묘사는 사람으로 하여금 당대 사인들의 기질과 풍채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또한 당시 그렇게 분방하고 얽매이지 않는 사회 습관과는 상대적으로 북송 이후 점차 서재 속에서 독서에만 열중하여 문약에 빠진 유생들이 고루한 사회 풍속에 얽매이게 되는 점은 놀라 탄식할 일이다. 이것은 민족정시의 약화 추세를 표명한 것이다.7.통방(桶傍)과 행권(行卷)당대 과거시험과 송대 이후 과거시험과의 중요한
    인문/어학| 2003.06.06| 9페이지| 1,500원| 조회(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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